36.일본학 연구 (책 소개)/7.일본전후사

천황제의 침략책임과 전후책임 (2017)

동방박사님 2023. 3. 24.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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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천황제의 침략책임과 전후책임』은 일본과 천황의 전쟁책임, 나아가 이들의 식민지 지배책임을 심도 깊게 실증적으로 논한 책이다. 이 책은 구체적인 사실 추적을 통해 천황제의 전쟁책임론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논증한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쇼와천황 히로히토뿐 아니라 그 이전 세대인 메이지천황 무쓰히토의 재위 기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천황제의 전쟁책임을 규명한다. 저자는 무쓰히토 천황이 청일전쟁·러일전쟁에 관여한 방식과 그의 침략책임을 명확히 하고, 히로히토가 의식적으로 이를 계승하였음을 밝힌다. 이를 통해 전후 아시아 침략을 통한 경제‘발전’에 기반을 둔 상징 천황제의 침략책임을 특정한 천황 한 사람이 아닌 제도로서의 천황제 자체에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일본 국민의 보편적 인식과 달리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히로히토는 정치와 군사에 주체적으로 관여했으며, 따라서 구체적인 전쟁책임을 져야 함을 입증한다. 셋째, 히로히토는 미·일안보체제 제창을 시작으로 전후에도 일본 정치·외교에 큰 영향을 미쳤고 전후 일본의 존재 형태에 결정적으로 관여하였음을 밝힌다. 이 과정에서 히로히토가 전쟁 당시뿐 아니라 전후에도 아시아 각국을 경제적으로 수탈했고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함을 밝히고 있다. 천황제의 전쟁책임을 자국민 시점에서 논한 이 책이 향후 이 분야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양국 간 관계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목차

서론

제1장 침략책임과 전후책임

제2장 메이지천황의 침략책임
계승되어야만 하는 전쟁책임
천황친정인가 입헌제인가
침략에는 찬성, 개전에는 주저
전승 보고에 안도
대(對)러시아 개전에 대한 공포
천자에서 대제로
소나무[松]와 국체
‘밖으로 무공을 빛냄’
보론 - 천황의 왕위교체와 노동자 통합

제3장 쇼와천황의 전쟁책임 은폐
영국, 독일 그리고 아시아
2·26 사건
히로히토, 다나카 기이치 수상을 파면
‘만주사변’과 히로히토
전쟁책임의 은폐
전쟁책임 등에 관한 건

제4장 ‘성단’신화의 재검토 - 쇼와천황의 종전 지도
중신회견과 고노에 상주문
오키나와전과 일·소 교섭
포츠담 선언
히로히토의 정치공작
하나의 조건인가 4개의 조건인가
제1차 ‘성단’
국체유지 조회와 회답
히로히토의 동요
동요를 극복한 히로히토
제2차 ‘성단’

제5장 천황제 계승 선언 - ‘종전조서’와 ‘인간선언’
조서 작성과 라디오 방송
‘종전조서’가 가진 의미
‘인간선언’

제6장 천황 무죄, 국민 유죄 - 히가시쿠니노미야 내각의 ‘일억 총 참회’론
황실만이 건재했었다
패전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수상의 ‘일억 총 참회’
히로히토와 히가시쿠니노미야
히로히토의 불안
히가시쿠니노미야, 히로히토에게 퇴위를 제언

제7장 공동의 통치자 - 맥아더와 히로히토
11회에 걸친 정치회담
『맥아더 회상기』의 거짓말
히로히토, 전쟁책임을 부인
‘인간선언’의 겉과 속
맥아더·히로히토 제3회 회담
‘영령’을 배신한 히로히토
맥아더가 히로히토에게 민주주의를 설교

제8장 안보체제의 제창자 히로히토 - 궁정개혁과 이중외교
궁정의 축소
히로히토, 새로운 중신 그룹을 구상
제1차 요시다(吉田) 내각과 히로히토
중도내각에 대한 개입
궁정인사를 둘러싼 두 가지 대립
쇼와전공(昭和電工) 사건
맥아더·히로히토 제4회 회담
히로히토의 ‘오키나와 메시지’

결론
후기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 : 치모토 히데키 (千本秀樹)
 
1949년 효고(兵庫)현에서 출생했다. 교토(京都)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고,1979년 교토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에서 현대사를 전공한다. 1987년 쓰쿠바(筑波)대학 역사인류학 연구과에서 근무하고, 2015년 3월 쓰쿠바대학 역사인류학 연구과에서 정년퇴임했다. 주 전공은 일본 근현대사이며, 주요 논문으로는 「日本???同盟の?展と若き日の西尾末?」가 있다.
 
역 : 최종길
 
영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근대사를 공부하였다. 이후 짧은 직장생활을 거쳐 1997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츠쿠바(筑波)대학에서 일본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2005년 3월 츠쿠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 동의대, 고려대, 동아대, 원광대에서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진실 ·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
 

출판사 리뷰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하여 논한 책은 일본에서 많이 출간되었고, 국내 일본 연구자들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국내에 이를 소개하고 또 주장했다. 그러나 국내 일본사 분야에서 일본과 천황의 전쟁책임, 나아가 이들의 식민지 지배책임을 심도 깊게 실증적으로 논한 출판물은 번역서, 저서를 막론하고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의 한일 관계를 되돌아보면 양국 간 역사적 경험을 새로운 시각에서 논할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예로 들면, 한국은 일본에 과거사 책임을 추궁하고,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은 1965년에 체결한 일명 ‘한일협정’(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이다)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하며 평행선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좋든 싫든 한일 양국은 1965년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한편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전쟁책임론은 대체로 1931년부터 1945년까지의 시기에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제 한국은 1965년 프레임을 파괴하고, 일본은 ‘전쟁책임론’에서 벗어나 ‘식민지 지배책임론’으로 확대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구체적인 사실 추적을 통해 천황제의 전쟁책임론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논증하고 있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쇼와천황 히로히토뿐 아니라 그 이전 세대인 메이지천황 무쓰히토의 재위 기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천황제의 전쟁책임을 규명한다. 저자는 무쓰히토 천황이 청일전쟁·러일전쟁에 관여한 방식과 그의 침략책임을 명확히 하고, 히로히토가 의식적으로 이를 계승하였음을 밝힌다. 이를 통해 전후 아시아 침략을 통한 경제‘발전’에 기반을 둔 상징 천황제의 침략책임을 특정한 천황 한 사람이 아닌 제도로서의 천황제 자체에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일본 국민의 보편적 인식과 달리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히로히토는 정치와 군사에 주체적으로 관여했으며, 따라서 구체적인 전쟁책임을 져야 함을 입증한다. 셋째, 히로히토는 미·일안보체제 제창을 시작으로 전후에도 일본 정치·외교에 큰 영향을 미쳤고 전후 일본의 존재 형태에 결정적으로 관여하였음을 밝힌다. 이 과정에서 히로히토가 전쟁 당시뿐 아니라 전후에도 아시아 각국을 경제적으로 수탈했고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함을 밝히고 있다. 천황제의 전쟁책임을 자국민 시점에서 논한 이 책이 향후 이 분야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양국 간 관계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