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왜 궁궐에 매료되며, 빌딩 숲에서도 온기를 품고 여유를 주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조선왕조가 남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즉흥적이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오늘날 현대 도시인들에게 저자는 우선 사진 한 컷 한 컷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유려하고 경륜 있는 가이드이기도 한 저자는 풍경 하나하나에 가치를 부여한다. 저자가 시선을 옮길 때마다 궁궐은 수백 년간 자신이 숨겨온 속살을 드러낸다.
인왕산과 북악산의 호위를 받는 근정전의 자태는 행각에서 바라볼 때만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동쪽을 바라보고 설계된 창경궁에서는 어떠한가. 정전인 명정전에 올라서 정면을 응시하면 동쪽으로 펼쳐진 옛 도시, 한양이 펼쳐진다.
각 궐의 전각과 문양에 대한 설명은 적절한 교양 선에서 지나치게 깊기도,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도 않다. 친절하고 유익하고 흥미롭다.
전통 건축이 지닌 고루한 형태론적 이야기로 빠지지 않고 마냥 실록 속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새지도 않는다. 관람객들은 대개 정문에서 시작하여 정전에서 일정을 마친다.
그 뒤편에 자리한 왕실의 생활공간과 뒷이야기는 관심 밖이다.
저자는 흥미로운 접근방식으로 읽는 이를 시간여행으로 이끈다.
저자는 왕실과 신하, 외국 사절은 물론 수많은 낭인과 궁녀가 거닐었을 각 궁궐의 금천교가 바로 모든 궁 이야기의 시작점이라고 한다.
더불어 주요 전각과 후원의 가치를 되새기고, 공간 감상 포인트를 되짚는다.
우리 기억에서 잊힌 궁, 근대사가 할퀴고 간 경희궁은 새삼 진한 여운을 남긴다.
임금은 과연 모든 것을 누리기만 했을까?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만든 창덕궁 자경전, 청기와가 올려진 선정전, 헌종의 꿈이 담긴 낙선재 등 역사책 속 글자로만 기억되는 이름이, 사진 속 저자의 시선이 살갑고 따듯한 설명과 함께 머릿속에 그려진다.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래 정궁으로 쓰인 창덕궁에 남은 문양과 근대적인 인테리어 요소들, 구한 말에 본격적으로 조성된 덕수궁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오얏꽃 문양, 법궁인 경복궁 곳곳에 있는 전설의 동물 천록까지. 저자는 궐 속에 숨어 있는 왕조사와 조선만이 지닌 그윽한 전퉁문화와 근대적 개혁을 꿈꿨던 대한제국의 고민과 의지, 스러져간 왕조의 서글픈 흔적을 짚어낸다.
결국 이 책에는 단편적이고 편리적인 역사적 사실이 아닌 풍경과 어우러진 건축 이야기와, 한때는 찬란했던 조선 르네상스 문화와 쇠잔한 슬픈 역사도 담겨 있다.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궐을 산책하듯 유유히 걸으며, 우리 궁의 숨은 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광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이다.
목차 들어가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10
경복궁 존재 그 이상의 존재감 12 창덕궁 자연의 흥취를 한껏 살리다 66 창경궁 효심이 빚은 궁궐 110 경희궁 치유를 기다리는 상처 142 덕수궁 도심의 여백 164
Thanks to 마음 한편 202
저자 소개 저 : 안희선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해외로 나아가는 꿈을 꿨으나 우리나라 역사를 아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 우연히 펼친 역사책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 후 생각을 완전히 바꿔 국내 역사 여행가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으로 역사 여행을 꾸려 가고 있습니다.
선조들의 발자국이 남겨진 궁궐과 길 곳곳에서 귀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
책 속으로 그렇다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궁궐은 어떤 의미일까요? 궁궐에는 5백 년이 넘는 조선의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치열한 삶을 살아간 이들의 기쁨, 슬픔, 고뇌가 곳곳에 묻어납니다.
그들이 만든 삶의 궤적은 우리에게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힘과 찬란한 내일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필요한 지혜와 교훈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p.10, 「들어가며 /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중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용감한 두 장군이 근정전 양쪽에서 왕을 호위한다. --- p.40, 「경복궁 / 근정전」중에서
무엇을 믿든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을 신기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자. 새로운 ‘썰’이 탄생할 수 있으니. --- p.55, 「경복궁 / 교태전」중에서
아마도 겉으로 아는 것보다 깊이 헤아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일을 대할 때 전심전력(全心全力)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자 했을 것이다.
유일한 것을 찾아 나선 길은 선조들의 지혜로 채워진다. --- p.76, 「창덕궁 / 궐내각사」중에서
희정당의 지붕 양쪽 합각면 중앙에는 글자가 하나씩 새겨져 있다.
그 글자들을 합치면 ‘강녕’이 된다. 복원할 때 경복궁의 강녕전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희정당 안에 경복궁이 있다. 그 안에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있다. --- p.89, 「창덕궁 / 희정당」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