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명의 조합원을 두고 강화 직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강화산업조합>,
산업조합의 역사는 지워졌고
조양방직의 역사는 지금도
흐르고 있을까요?
역사는 승자기록의 역사일까요?
강화의 가난한 서민들의 생존기반이었던곳
집에서 직물을 짜던 8천명의 농민들
여성에게 직물 짜는 법을 가르치다가 한글을 가르쳐야 했던 청년들
8도를 다니며 직물을 팔던 사람들
노동자.농민과 함께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던 조합장과 직원들
이들에 대한 기억도 그렇게 흘러 사라진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마음도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본가들과 소위 지역 유지들의 악날한 행동과 함께 흘러갔다.
그렇게, 그렇게 사라진 기억이 되었다.
조양방직과 심도직물만 남았다.
얼마나 교묘한 역사 왜곡인가! (최태육페이스북에서)>
"황우천(1894~1953)은 부근리에서 출생하여 경성중앙학교와 일본 경응慶應 대학을 졸업하고 1933년 초대 국정 경기도의원, 강화여자중학교 설립, 강화 향교장 등을 지냈다.
또한 1933년 강화산업조합(은행)을 설립하여 이사장직을 수행하면서 강화지역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강화산업조합은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젤 직물회사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강화할인마트로 변신해 있고
벽이 그나마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934년경 건축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강화산업조합 사무실이라고 합니다
강화산업조합은 1930년대와 40년대 강화 직물산업을 이끌었던 곳이고
80대후반 노인들은 조합장의 이름을 비롯해 강화산업조합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으나
70대 노인들은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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