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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300년 전 노론사관과 100년 전 식민사관이
아직도 살아 있는 권력으로 날뛰는 광기의 뿌리를 추적하다!
주자학을 유일사상으로 받들어 양명학을 이단으로 만들고, 수많은 천주교도를 도살했으며, 위로는 임금을 독살하고 아래로는 신분제를 강요해 백성을 노예로 만든 노론. 그들의 권력은 지금까지도 한국 주류 역사학계를 좌지우지한다. 300년 전 노론사관이 100년 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식민사관으로 이어지고, 지금까지도 학문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노론 후예 학자들이 해방 이후 학문 권력을 틀어쥔 채 역사 왜곡을 일삼는 현실과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모순적 연구 풍토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 독살설에 대한 논쟁이 왜 노론사관의 뿌리 깊은 독선과 매도, 날조와 조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 냉철한 시선으로 비판한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는 정병설과 이덕일의 상반된 관점에서 시작하여 2009년 2월 발견된 정조 어찰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덕일과 유봉학, 안대회의 논쟁, 십만양병설의 진위를 놓고 벌어진 이덕일과 오항녕의 논쟁 등을 통해 노론 후예 학자들의 역사 왜곡과 날조, 집요한 인신공격과 마녀사냥의 실체를 보여준다. 또한 역사학계에 뜨거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이덕일이 왜 노론과 식민사관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지, 그들은 또 어떻게 교묘하게 권력을 행사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아직도 살아 있는 권력으로 날뛰는 광기의 뿌리를 추적하다!
주자학을 유일사상으로 받들어 양명학을 이단으로 만들고, 수많은 천주교도를 도살했으며, 위로는 임금을 독살하고 아래로는 신분제를 강요해 백성을 노예로 만든 노론. 그들의 권력은 지금까지도 한국 주류 역사학계를 좌지우지한다. 300년 전 노론사관이 100년 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식민사관으로 이어지고, 지금까지도 학문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노론 후예 학자들이 해방 이후 학문 권력을 틀어쥔 채 역사 왜곡을 일삼는 현실과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모순적 연구 풍토를 조목조목 짚고 있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 독살설에 대한 논쟁이 왜 노론사관의 뿌리 깊은 독선과 매도, 날조와 조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 냉철한 시선으로 비판한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는 정병설과 이덕일의 상반된 관점에서 시작하여 2009년 2월 발견된 정조 어찰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덕일과 유봉학, 안대회의 논쟁, 십만양병설의 진위를 놓고 벌어진 이덕일과 오항녕의 논쟁 등을 통해 노론 후예 학자들의 역사 왜곡과 날조, 집요한 인신공격과 마녀사냥의 실체를 보여준다. 또한 역사학계에 뜨거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이덕일이 왜 노론과 식민사관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지, 그들은 또 어떻게 교묘하게 권력을 행사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목차
저자 서문 한국사 주류 프레임 블랙박스를 열며
1부 노론사관·식민사관 X파일
1장 | 무거운 거짓 가벼운 진실
1. 누가 지식인인가
2. 대한민국 특급 인문학자(?)의 인터넷 강좌 ‘우리 시대의 명강의(?)’
3. 파시즘과 노론이즘
2장 | 정병설, 노론 수호의 총대를 메다
1.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정병설의 수준
2. 대중 위에 군림하라
3장 | ‘비판 아닌 비판’을 비판하다
1. 왜 『사도세자의 고백』에 광분하는가
2. 역사는 ‘왜’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3. 사료 비판이 필요한 이유
4. 『한중록』의 노예가 된 정병설
5. 『사도세자의 고백』, 어떤 책인가
4장 | 『사도세자의 고백』 비난에 대한 세부 비판
1. 배경과 맥락이 없는 명제
2. 날조와 조작
3. 혜경궁 홍씨는 왜 『한중록』을 썼나
5장 | 노론사관의 치명적 폐해
1. 독선과 능멸 그리고 죽이기 풍토
2. 노론의 사생아들
3. 노론 천국, 백성 지옥
4. 공상의 역사
5. 마녀사냥
6. 양심과 윤리의 문제
7. 집요한 인신공격의 뿌리 179
8. 토론인가, 전쟁인가 187
9. 유사 지식인들 190
2부 노론사관의 뿌리와 가지
6장 | ‘정조 독살설 논쟁’의 진실
1. ‘정조 어찰 공개’ 소동
2. 거짓의 굿판을 거둬라
7장 | 안대회의 정조 독살설 비판
1. 노론 후예 학자들의 고질병
2.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라
8장 | 오항녕의 극우 파시즘
1. 십만양병설 논쟁의 핵심
2. 윤휴 죽이기에 나선 성리학자들
3. 노론 바이러스
9장 | 노론사관의 적통 유봉학
1. 정조 시대를 연구한 유봉학의 활약상
2. 뼈아픈 진실, 당쟁
3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0장 | 뿌리 깊은 역사 전쟁
1. 서로 다른 민족주의
2.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은 한 뿌리
11장 | 한국사의 원형과 진실
1. 침묵의 카르텔
2. 역사가의 책임
1부 노론사관·식민사관 X파일
1장 | 무거운 거짓 가벼운 진실
1. 누가 지식인인가
2. 대한민국 특급 인문학자(?)의 인터넷 강좌 ‘우리 시대의 명강의(?)’
3. 파시즘과 노론이즘
2장 | 정병설, 노론 수호의 총대를 메다
1.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정병설의 수준
2. 대중 위에 군림하라
3장 | ‘비판 아닌 비판’을 비판하다
1. 왜 『사도세자의 고백』에 광분하는가
2. 역사는 ‘왜’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3. 사료 비판이 필요한 이유
4. 『한중록』의 노예가 된 정병설
5. 『사도세자의 고백』, 어떤 책인가
4장 | 『사도세자의 고백』 비난에 대한 세부 비판
1. 배경과 맥락이 없는 명제
2. 날조와 조작
3. 혜경궁 홍씨는 왜 『한중록』을 썼나
5장 | 노론사관의 치명적 폐해
1. 독선과 능멸 그리고 죽이기 풍토
2. 노론의 사생아들
3. 노론 천국, 백성 지옥
4. 공상의 역사
5. 마녀사냥
6. 양심과 윤리의 문제
7. 집요한 인신공격의 뿌리 179
8. 토론인가, 전쟁인가 187
9. 유사 지식인들 190
2부 노론사관의 뿌리와 가지
6장 | ‘정조 독살설 논쟁’의 진실
1. ‘정조 어찰 공개’ 소동
2. 거짓의 굿판을 거둬라
7장 | 안대회의 정조 독살설 비판
1. 노론 후예 학자들의 고질병
2.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라
8장 | 오항녕의 극우 파시즘
1. 십만양병설 논쟁의 핵심
2. 윤휴 죽이기에 나선 성리학자들
3. 노론 바이러스
9장 | 노론사관의 적통 유봉학
1. 정조 시대를 연구한 유봉학의 활약상
2. 뼈아픈 진실, 당쟁
3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0장 | 뿌리 깊은 역사 전쟁
1. 서로 다른 민족주의
2.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은 한 뿌리
11장 | 한국사의 원형과 진실
1. 침묵의 카르텔
2. 역사가의 책임
책 속으로
사물을 선과 악, 흑과 백, 천사와 악마,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인식하는 이분법의 뿌리는 송시열과 노론에서 비롯되었다. 17세기 이후 ‘사문난적斯文亂賊’(주자학을 문란하게 한 도적)이라는 말이 생겨 주류 학문은 나와 다른 타인을 억압하고 유폐하는 폭력적 도그마로 변질했다. 개방성과 역동성, 운동성을 잃고 닫힌 해석에 안주하는 철학과 지식은 필연적으로 권력의 효과적 통제 수단으로 전락한다. 지금 우리 안에 조선 후기 역사가 있고, 그것이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하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간섭한다. 왜 그럴까? 노론은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서면서 권력을 향유했다.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병합이라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일전하여 일본으로 옮기는 것이다.” “조선 국민은 대일본제국의 국민으로서 그 위치를 향상시키는 일이 될 뿐이다.” 이것이 대표적 노론 명가 출신이자 당수인 이완용이 한국 최초 근대 소설로 추앙받는 [혈의 누]의 저자이자 비서인 이인직을 통해 일제 통감부에 전한 노론 당론이다. 중국에 사대하던 것을 일본으로 바꾸자는 것이 노론의 입장이요, 사상이자 이데올로기다. 민초를 중심으로 시대가치를 추구하는 프레임이 노론에게는 없다. --- pp.5~6 「저자 서문」중에서
“자식이 미쳤다고 해서 아버지가 자식을 죽였다는 것은 참 납득하기 어렵다. 당연히 의혹이 뒤따를 만하다. 그런데 [한중록]을 읽어보면 그 경위가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사도세자는 어려서부터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인 아버지 영조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이런 것들로 인해 정신 질환이 깊어졌는데, 죽기 직전에는 아버지를 죽인다는 등 별별 망측한 언행을 다 하다가 그 사실이 영조에게 발각되어 역모 혐의를 받아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덕일은 이런 혜경궁의 논리를 혜경궁이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기 위해 꾸민 것으로 보았다. - 정병설, [길 잃은 역사 대중화], [역사비평] 2011년 봄호, 330~331쪽”
이것이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판하는 정병설의 핵심 견해다. 이덕일 소장은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사료 비판한다. 사석이나 강연에서 “[한중록]에는 사실도 있고, 과장도 있고, 왜곡도 있고, 거짓말도 있다”고 말한다. 어느 것이 사실이고 과장·왜곡·거짓말인지 밝히는 것이 바로 학자가 할 일이다. 반면 [한중록]은 진실을 기록한 글이니 사료 비판 없이 사실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 정병설 주장의 요체다.
[한중록]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은 많다.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저술할 때부터 비판이 있었다. 혜경궁 홍씨의 친정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가해자의 기록이다. 정병설은 중요한 살인 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말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럴까? “[한중록]을 읽어보면 그 경위가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말에 그 답이 있다. ‘앞으로 모든 살인 사건의 피의자는 그 경위만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무죄다.’ 이것이 정병설의 논리다. --- pp.39~40 「3장 비판 아닌 비판을 비판하다」중에서
[사도세자의 고백] 발간 이후 [역사에게 길을 묻다]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이덕일 소장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힌다.
“사도세자에 관한 기본 사료는 크게 세 가지다. 사관들이 편찬한 [영조실록]과 정조가 편찬한 [어제장헌대왕지문] 그리고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이다. 정조의 [어제장헌대왕지문]이 사도세자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라면, [영조실록]은 사도세자에 대한 건조한 기록이다. 이는 세자의 아들인 정조 재위 시에 편찬되었으나 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론이 다수 편수관으로 참여한 데서 나온 결과다.
문제는 [한중록]이다. 남편 세자가 뒤주 속에서 갈증과 기아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나약한 여인의 피맺힌 기록이란 선입견이 일반인들은 물론 일부 전문가들까지 사료 비판을 생략한 채 사실로 믿게 만들었던 것이다. 28세에 동갑인 세자를 잃은 그녀가 젊은 과부를 뜻하는 청상과부로서 [한중록]을 썼다고 지레짐작했던 것도 [한중록]을 오독하게 만든 원인의 하나였다. (……) 그녀는 20대의 청상과부로서 [한중록]을 쓴 것이 아니라 일생의 대부분을 권력투쟁의 현장에서 보낸 70대의 노회한 정객으로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한중록]을 쓴 것이었다. --- pp.76~77 「이덕일, [역사에게 길을 묻다]」중에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한중록]을 보는 이와 같은 관점과 맥락으로 이덕일 소장은 [사도세자의 고백]을 저술했다. 이에 대해 정병설은 [사도세자의 고백]이 제대로 된 근거와 논지를 갖추지 못해 역사서도, 소설도 못 된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 pp.60~61 「3장 비판 아닌 비판을 비판하다」중에서
김용섭 선생의 회고록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에 담긴 내용이다.
“6·25전쟁 이래로 남에서 제기되는 통사의 편찬 문제는, 아직은 깊은 연구에 기초한 식민주의 역사학의 청산 없이, 우선은 기성의 일제하 세대 역사학자들에게 일임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기성학자들은 일제하 일본인 학자들에게서 역사학을 배우고, 그들과 더불어 학문 활동을 같이해온, 이른바 실증주의 역사학 계열의 학자들이 중심이었다. -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지식산업사, 2011년, 35쪽”
이렇게 해방 후 역사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일본인 학자, 즉 식민사학자에게 역사학을 배운 이른바 실증주의 학자들이 해방 이후에도 통사를 편찬했다는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해방과 동시에 해체됐지만 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는 그대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와 같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와 현재 주류 사학계의 뿌리 깊은 역사 전쟁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병합이라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일전하여 일본으로 옮기는 것이다.” “조선 국민은 대일본제국의 국민으로서 그 위치를 향상시키는 일이 될 뿐이다.” 이것이 대표적 노론 명가 출신이자 당수인 이완용이 한국 최초 근대 소설로 추앙받는 [혈의 누]의 저자이자 비서인 이인직을 통해 일제 통감부에 전한 노론 당론이다. 중국에 사대하던 것을 일본으로 바꾸자는 것이 노론의 입장이요, 사상이자 이데올로기다. 민초를 중심으로 시대가치를 추구하는 프레임이 노론에게는 없다. --- pp.5~6 「저자 서문」중에서
“자식이 미쳤다고 해서 아버지가 자식을 죽였다는 것은 참 납득하기 어렵다. 당연히 의혹이 뒤따를 만하다. 그런데 [한중록]을 읽어보면 그 경위가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사도세자는 어려서부터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인 아버지 영조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이런 것들로 인해 정신 질환이 깊어졌는데, 죽기 직전에는 아버지를 죽인다는 등 별별 망측한 언행을 다 하다가 그 사실이 영조에게 발각되어 역모 혐의를 받아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덕일은 이런 혜경궁의 논리를 혜경궁이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기 위해 꾸민 것으로 보았다. - 정병설, [길 잃은 역사 대중화], [역사비평] 2011년 봄호, 330~331쪽”
이것이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판하는 정병설의 핵심 견해다. 이덕일 소장은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사료 비판한다. 사석이나 강연에서 “[한중록]에는 사실도 있고, 과장도 있고, 왜곡도 있고, 거짓말도 있다”고 말한다. 어느 것이 사실이고 과장·왜곡·거짓말인지 밝히는 것이 바로 학자가 할 일이다. 반면 [한중록]은 진실을 기록한 글이니 사료 비판 없이 사실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 정병설 주장의 요체다.
[한중록]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은 많다.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저술할 때부터 비판이 있었다. 혜경궁 홍씨의 친정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가해자의 기록이다. 정병설은 중요한 살인 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말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럴까? “[한중록]을 읽어보면 그 경위가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말에 그 답이 있다. ‘앞으로 모든 살인 사건의 피의자는 그 경위만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무죄다.’ 이것이 정병설의 논리다. --- pp.39~40 「3장 비판 아닌 비판을 비판하다」중에서
[사도세자의 고백] 발간 이후 [역사에게 길을 묻다]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이덕일 소장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힌다.
“사도세자에 관한 기본 사료는 크게 세 가지다. 사관들이 편찬한 [영조실록]과 정조가 편찬한 [어제장헌대왕지문] 그리고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지은 [한중록]이다. 정조의 [어제장헌대왕지문]이 사도세자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라면, [영조실록]은 사도세자에 대한 건조한 기록이다. 이는 세자의 아들인 정조 재위 시에 편찬되었으나 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론이 다수 편수관으로 참여한 데서 나온 결과다.
문제는 [한중록]이다. 남편 세자가 뒤주 속에서 갈증과 기아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나약한 여인의 피맺힌 기록이란 선입견이 일반인들은 물론 일부 전문가들까지 사료 비판을 생략한 채 사실로 믿게 만들었던 것이다. 28세에 동갑인 세자를 잃은 그녀가 젊은 과부를 뜻하는 청상과부로서 [한중록]을 썼다고 지레짐작했던 것도 [한중록]을 오독하게 만든 원인의 하나였다. (……) 그녀는 20대의 청상과부로서 [한중록]을 쓴 것이 아니라 일생의 대부분을 권력투쟁의 현장에서 보낸 70대의 노회한 정객으로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한중록]을 쓴 것이었다. --- pp.76~77 「이덕일, [역사에게 길을 묻다]」중에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한중록]을 보는 이와 같은 관점과 맥락으로 이덕일 소장은 [사도세자의 고백]을 저술했다. 이에 대해 정병설은 [사도세자의 고백]이 제대로 된 근거와 논지를 갖추지 못해 역사서도, 소설도 못 된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 pp.60~61 「3장 비판 아닌 비판을 비판하다」중에서
김용섭 선생의 회고록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에 담긴 내용이다.
“6·25전쟁 이래로 남에서 제기되는 통사의 편찬 문제는, 아직은 깊은 연구에 기초한 식민주의 역사학의 청산 없이, 우선은 기성의 일제하 세대 역사학자들에게 일임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기성학자들은 일제하 일본인 학자들에게서 역사학을 배우고, 그들과 더불어 학문 활동을 같이해온, 이른바 실증주의 역사학 계열의 학자들이 중심이었다. - 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지식산업사, 2011년, 35쪽”
이렇게 해방 후 역사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일본인 학자, 즉 식민사학자에게 역사학을 배운 이른바 실증주의 학자들이 해방 이후에도 통사를 편찬했다는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해방과 동시에 해체됐지만 산하 조선사편찬위원회는 그대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와 같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와 현재 주류 사학계의 뿌리 깊은 역사 전쟁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 pp.273~274 「10장 뿌리 깊은 역사 전쟁」중에서
출판사 리뷰
300년 전 노론사관과 100년 전 식민사관이
아직도 살아 있는 권력으로 날뛰는
광기의 뿌리를 추적하다!
모든 권력은 역사를 통제하고 조작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도 지배한다.
노론은 주자학朱子學을 유일사상으로 보는 닫힌 세계관 때문에 주자학과 다른 모든 사상을 이단으로 몰아 탄압했다. 양명학陽明學을 이단으로 만들고, 수많은 천주교도를 도살했으며, 위로는 임금을 독살하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신분제를 강요해 노예로 만들었다. 그 결과 조선 후기 사회는 ‘노론 천국, 백성 지옥’이 된다. 뿐만 아니라 노론은 나라를 팔아먹는 데 조직적으로 가담한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에게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은 76명의 수작자受爵者를 분석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최고위직인 후작을 받은 이완용李完用과 이재완李載完, 이재각李載覺, 이해창李海昌, 이해승李海昇 등 왕실 인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수작자는 사실상 ‘노론당인 명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권 노론 일색이다. 76명 중 80퍼센트에 가까운 57명이 노론이다.
300년 전 노론사관은 100년 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식민사관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한국 주류 역사학계를 독점하고 있다. 노론 후예 학자들은 해방 이후 학문 권력을 틀어쥔 채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으며, 스승과 기존 학계의 논리를 비판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풍토 때문에 그 폐해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 책은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의 역사 왜곡에서 시작하여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모순적인 연구 풍토를 조목조목 짚어보았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 독살설에 대한 논쟁을 통해 노론사관의 뿌리 깊은 독선과 매도, 날조와 조작을 냉철하게 비판했다. 기존 역사학계의 권위주의, 보수성, 학벌 카르텔에서부터 통섭을 거부하는 편협한 학자들까지 문제 많은 한국 역사학계를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사도세자의 고백]과 [한중록]에 담신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
2010년 12월 이른바 ‘대한민국 특급 인문학자’ 3명 중 한 사람으로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정병설 교수가 인터넷 강좌 ‘우리 시대의 명강의’ [권력과 인간] 온라인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 첫 회인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에서 정병설은 이덕일의 책 [사도세자의 고백]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덕일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해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1년 [역사비평] 봄호 [길 잃은 역사 대중화]에 이덕일과 [사도세자의 고백]비판 전문을 게재했다. 이어서 2011년 여름 정병설은 EBS [TV 평생대학 - 역사이야기]에서 같은 내용을 강의했다.
정병설은 왜 이덕일을 공격하는가? 정병설의 책 [한중록]의 사도세자와 이덕일의 책 [사도세자의 고백]의 사도세자는 왜 전혀 다른 인물로 그려지는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 사도세자는 왜 지금도 노론의 희생양으로 공격받고 있는가?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는 정병설과 이덕일의 상반된 관점에서 시작하여 2009년 2월 발견된 정조 어찰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덕일과 유봉학, 안대회의 논쟁, 십만양병설의 진위를 놓고 벌어진 이덕일과 오항녕의 논쟁 등을 통해 노론 후예 학자들의 역사 왜곡과 날조, 집요한 인신공격과 마녀사냥의 실체를 보여준다. 또한 역사학계에 뜨거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이덕일이 왜 노론과 식민사관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지, 그들은 또 어떻게 교묘하게 권력을 행사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300년 전 노론사관과 100년 전 식민사관이
아직도 살아 있는 권력으로 날뛰는 광기의 뿌리를 추적하다!
석주 이상룡,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 겸 민족사학자와 조선총독부 사이의 대립 이후 노론 이데올로기와 식민주의 학문 체계는 해방 후 단 한 번도 해체 과정을 밟지 않고 학문 권력을 틀어쥐었다. 해방 직후의 식민사학 청산 움직임은 반민특위의 좌절과 함께 무너졌고, 이때부터 식민사학계는 절대 학문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과 다른 논리, 곧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은 재야 사학으로 매도해 배척했다. 그 후에도 전선은 계속 대치하고 있었으나 식민사학은 너무 강고했고 민족사학은 너무 미약했다. 이들의 뿌리가 식민사학뿐 아니라 노론에 있기에 그토록 강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론 후예 학자들은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 일본인 스승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역사를 공부했다. 그들이 배운 역사는 다름 아닌 한국사 매도다.
2011년 출간된 역사학계 원로 김용섭 선생의 회고록([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과 사회학계 원로 최재석 선생의 회고록([역경의 행운-파란 많은 고난을 헤쳐 나온 한 노학자의 회고록])은 식민사학자들의 모순된 논리와 행태를 여실히 보여?다. 특히 김용섭 선생이 서울대학교 교수 재직 당시 겪은 일화([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279~283쪽)는 조선총독부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가 역사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금기가 많다. 왜 금기가 있어야 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학문 권력이 자신의 지배력을 인정하지 않는 인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생생한 증언과 사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식민사학과 노론의 사진死眞을 찢고 사진寫眞을 찍다!
역사 논쟁은 가장 치열한 사상 논쟁이다. 역사적 팩트에 기초해서 치밀한 논증과 추론을 구성하고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겸허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런데 노론 후예 학자들은 희한한 궤변을 만들어 노론의 가치를 비판하는 상대를 매장하고 거세한다. 역사 연구의 기초인 사료 비판을 배제한 채 닫힌 사고에 갇혀 학문을 권력 유지 수단으로 움켜쥐고 있는 노론은 자신들과 다른 이론을 내세우거나 연구하면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조선 후기부터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고 유지해온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을 철폐하는 일이 한국사의 원형과 진실을 바로잡는 일이며, 한국 사회를 혁신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아직도 살아 있는 권력으로 날뛰는
광기의 뿌리를 추적하다!
모든 권력은 역사를 통제하고 조작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도 지배한다.
노론은 주자학朱子學을 유일사상으로 보는 닫힌 세계관 때문에 주자학과 다른 모든 사상을 이단으로 몰아 탄압했다. 양명학陽明學을 이단으로 만들고, 수많은 천주교도를 도살했으며, 위로는 임금을 독살하고 아래로는 백성에게 신분제를 강요해 노예로 만들었다. 그 결과 조선 후기 사회는 ‘노론 천국, 백성 지옥’이 된다. 뿐만 아니라 노론은 나라를 팔아먹는 데 조직적으로 가담한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에게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은 76명의 수작자受爵者를 분석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최고위직인 후작을 받은 이완용李完用과 이재완李載完, 이재각李載覺, 이해창李海昌, 이해승李海昇 등 왕실 인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수작자는 사실상 ‘노론당인 명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집권 노론 일색이다. 76명 중 80퍼센트에 가까운 57명이 노론이다.
300년 전 노론사관은 100년 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식민사관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한국 주류 역사학계를 독점하고 있다. 노론 후예 학자들은 해방 이후 학문 권력을 틀어쥔 채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으며, 스승과 기존 학계의 논리를 비판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풍토 때문에 그 폐해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 책은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의 역사 왜곡에서 시작하여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모순적인 연구 풍토를 조목조목 짚어보았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 독살설에 대한 논쟁을 통해 노론사관의 뿌리 깊은 독선과 매도, 날조와 조작을 냉철하게 비판했다. 기존 역사학계의 권위주의, 보수성, 학벌 카르텔에서부터 통섭을 거부하는 편협한 학자들까지 문제 많은 한국 역사학계를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사도세자의 고백]과 [한중록]에 담신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
2010년 12월 이른바 ‘대한민국 특급 인문학자’ 3명 중 한 사람으로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정병설 교수가 인터넷 강좌 ‘우리 시대의 명강의’ [권력과 인간] 온라인 연재를 시작했다. 연재 첫 회인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에서 정병설은 이덕일의 책 [사도세자의 고백]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덕일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해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1년 [역사비평] 봄호 [길 잃은 역사 대중화]에 이덕일과 [사도세자의 고백]비판 전문을 게재했다. 이어서 2011년 여름 정병설은 EBS [TV 평생대학 - 역사이야기]에서 같은 내용을 강의했다.
정병설은 왜 이덕일을 공격하는가? 정병설의 책 [한중록]의 사도세자와 이덕일의 책 [사도세자의 고백]의 사도세자는 왜 전혀 다른 인물로 그려지는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 사도세자는 왜 지금도 노론의 희생양으로 공격받고 있는가?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는 정병설과 이덕일의 상반된 관점에서 시작하여 2009년 2월 발견된 정조 어찰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덕일과 유봉학, 안대회의 논쟁, 십만양병설의 진위를 놓고 벌어진 이덕일과 오항녕의 논쟁 등을 통해 노론 후예 학자들의 역사 왜곡과 날조, 집요한 인신공격과 마녀사냥의 실체를 보여준다. 또한 역사학계에 뜨거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이덕일이 왜 노론과 식민사관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지, 그들은 또 어떻게 교묘하게 권력을 행사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300년 전 노론사관과 100년 전 식민사관이
아직도 살아 있는 권력으로 날뛰는 광기의 뿌리를 추적하다!
석주 이상룡,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 겸 민족사학자와 조선총독부 사이의 대립 이후 노론 이데올로기와 식민주의 학문 체계는 해방 후 단 한 번도 해체 과정을 밟지 않고 학문 권력을 틀어쥐었다. 해방 직후의 식민사학 청산 움직임은 반민특위의 좌절과 함께 무너졌고, 이때부터 식민사학계는 절대 학문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과 다른 논리, 곧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은 재야 사학으로 매도해 배척했다. 그 후에도 전선은 계속 대치하고 있었으나 식민사학은 너무 강고했고 민족사학은 너무 미약했다. 이들의 뿌리가 식민사학뿐 아니라 노론에 있기에 그토록 강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론 후예 학자들은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 일본인 스승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역사를 공부했다. 그들이 배운 역사는 다름 아닌 한국사 매도다.
2011년 출간된 역사학계 원로 김용섭 선생의 회고록([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과 사회학계 원로 최재석 선생의 회고록([역경의 행운-파란 많은 고난을 헤쳐 나온 한 노학자의 회고록])은 식민사학자들의 모순된 논리와 행태를 여실히 보여?다. 특히 김용섭 선생이 서울대학교 교수 재직 당시 겪은 일화([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279~283쪽)는 조선총독부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가 역사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금기가 많다. 왜 금기가 있어야 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학문 권력이 자신의 지배력을 인정하지 않는 인물을 어떻게 다루는지 생생한 증언과 사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식민사학과 노론의 사진死眞을 찢고 사진寫眞을 찍다!
역사 논쟁은 가장 치열한 사상 논쟁이다. 역사적 팩트에 기초해서 치밀한 논증과 추론을 구성하고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겸허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런데 노론 후예 학자들은 희한한 궤변을 만들어 노론의 가치를 비판하는 상대를 매장하고 거세한다. 역사 연구의 기초인 사료 비판을 배제한 채 닫힌 사고에 갇혀 학문을 권력 유지 수단으로 움켜쥐고 있는 노론은 자신들과 다른 이론을 내세우거나 연구하면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은 조선 후기부터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고 유지해온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을 철폐하는 일이 한국사의 원형과 진실을 바로잡는 일이며, 한국 사회를 혁신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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