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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사로잡혀 2017년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직접 찾아가 사진과 글로 기록하고 있는 김동우 작가. 취재는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일본을 거쳐 10개국에 이르렀고, 이 책은 그중 러시아와 네덜란드의 한인독립운동 이야기다.
의병들이 본거지를 만들고 독립운동가들이 망명을 이어간 땅, 연해주. 그곳에 망국 앞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안중근 단지동맹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가옥과 순국지, 자유시 참변의 현장,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실제 모티프가 된 ‘15만 원 탈취 의거’, 헤이그 특사가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방, 한인 최초 볼셰비키 혁명가 김알렉산드라,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 김알라 여사와 이인섭의 막내딸 스베틀라나 여사의 인터뷰 등등 《뭉우리돌의 들녘》은 역사에서 배제된 채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역사적 현장 앞에서 그 현장이 담고 있는 서사와 감정을 끌어내고자 한 묵직한 사진들은 단순한 기록물이나 아카이빙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어쩌면 우리는 ‘독립’이라는 역사의 결말만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그 결말에 닿기까지 쌓여진 무수한 이야기를 복원하고 연대하려는 시도다. 작가의 진정성 어린 글과 사진으로 이제 독립의 ‘과정’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끼게 될 것이다.
목차
서문 | 다시 요동칠 기억의 연대를 꿈꾸며
1장. 연해주
목숨을 건 도강
세 부류로 나뉘다
고난을 피해 역경 속으로
2장. 연추
아득한 그날의 현장
‘페치카’라 불리던 사나이, 최재형
마패를 든 이범윤
안중근의 마지막 가출
단지, 단지는 단지가 아니다
사진 속 코드
원조 코리아 타운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
3장. 해삼위
더부살이의 설움
독립운동의 성지, 신한촌
짓밟힌 터전
블라디보스토크의 ‘남남북녀’
체코로 간 비녀와 가락지
15만 원 탈취 의거
밀정과 한글 활자 절도 사건
위대한 여정의 시작점
4장. 헤이그, 상트페테르부르크
숨 가쁜 준비
이범진은 누구인가?
기록되지 못한 사후
대한제국의 호소
이준의 위대한 나라
지워진 이름
열 수 없던 문
작업의 몇 가지 원칙
5장. 다시, 블라디보스토크
들녘에 서서
장도빈, 발해를 깨우다
“모든 걸 불사르라!”
질문을 던지는 사진
한 언덕에서의 버둥질
홍범도의 반쪽짜리 사진
축복의 땅 ‘사만리’
6장. 자유시
KGB 조력자
승리 뒤에 비극
자유시, 재앙의 늪
“다시는 우리끼리 싸우는 일이 없기를”
이별의 왈츠
7장. 하바롭스크
한 여성 혁명가의 탄생
모든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다
우아한 복수
기억되지 못한 사람
책을 나오며 | 실천적 예술을 위한 또 한걸음
참고 자료
1장. 연해주
목숨을 건 도강
세 부류로 나뉘다
고난을 피해 역경 속으로
2장. 연추
아득한 그날의 현장
‘페치카’라 불리던 사나이, 최재형
마패를 든 이범윤
안중근의 마지막 가출
단지, 단지는 단지가 아니다
사진 속 코드
원조 코리아 타운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
3장. 해삼위
더부살이의 설움
독립운동의 성지, 신한촌
짓밟힌 터전
블라디보스토크의 ‘남남북녀’
체코로 간 비녀와 가락지
15만 원 탈취 의거
밀정과 한글 활자 절도 사건
위대한 여정의 시작점
4장. 헤이그, 상트페테르부르크
숨 가쁜 준비
이범진은 누구인가?
기록되지 못한 사후
대한제국의 호소
이준의 위대한 나라
지워진 이름
열 수 없던 문
작업의 몇 가지 원칙
5장. 다시, 블라디보스토크
들녘에 서서
장도빈, 발해를 깨우다
“모든 걸 불사르라!”
질문을 던지는 사진
한 언덕에서의 버둥질
홍범도의 반쪽짜리 사진
축복의 땅 ‘사만리’
6장. 자유시
KGB 조력자
승리 뒤에 비극
자유시, 재앙의 늪
“다시는 우리끼리 싸우는 일이 없기를”
이별의 왈츠
7장. 하바롭스크
한 여성 혁명가의 탄생
모든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다
우아한 복수
기억되지 못한 사람
책을 나오며 | 실천적 예술을 위한 또 한걸음
참고 자료
책 속으로
역사는 인문학의 기초다. 기단석 없는 건물은 존재할 수 없다. 일찍이 신채호(1880~1936)는 “민족을 버리고는 역사가 없을 것이며, 역사를 버리고는 한 민족의 자기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못할 것”이라며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목숨을 담보로 강을 넘은 이주와 그곳에서 독립운동에 삶을 바친 이들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과거 없는 지금은 성립될 수 없고, 지금 없는 미래는 도래할 수 없다. 과거, 현재, 미래는 그래서 한 권의 책과 같다. 다른 시간대는 모두 같은 선상에서 하나의 선으로 연결돼야 온전히 한 편의 서사를 완성시킨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공유돼야 힘을 갖는다. 그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네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가 왜 위대한지를 깨닫게 한다.
--- p.12, 「다시 요동칠 기억의 연대를 꿈꾸며」중에서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명세한 그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공자 또는 그의 제자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효도 경전 〈효경〉 첫머리에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란 말이 나온다. 부모에게 받은 몸을 잘 보존하는 게 효의 첫걸음이란 뜻이다. 단지동맹을 맺은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을까. 단지는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단발’과는 다른 차원이다. 피를 봐야 하고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는 일이다. 그리고 생채기를 평생 눈으로 보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단지는 효의 실천보다 나라의 존립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 아닐까. 그것은 효를 사사로운 감정으로 밀어내, 그 자리에 독립이란 두 글자를 채우는 일이다.
--- p.88, 「단지, 단지는 단지가 아니다」중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며 신한촌을 출근하듯 다녔다. 첫째 날은 남은 게 없어 난처함에 도리머리를 지었고, 둘째 날은 사라짐 앞에 무망함이 밀려들었고, 셋째 날은 현실 앞에 오기가 발동했다. 이동휘가 1935년 사망할 때까지 말년을 보낸 집터를 찾아 나섰다. 그 자취는 상점 건물이 대신하고 있었다. 1920년 3·1혁명 1주년을 기념해 한인들이 세웠다는 독립문도 이젠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흔적이라면 서울 거리란 뜻의 ‘서울 스카야’ 표지판 하나가 전부다. 어디에 한민학교 교정이 있었을까, 신채호가 글을 쓴 곳은 어디일까, 밀정들은 어디서 독립운동가들을 훔쳐보고 있었을까, 모락모락 군불 떼던 마을 모습은 속내와 달리 평화롭게 보였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나뭇가지 위 까치집뿐인 건가. 그럼에도 카메라를 거둘 수 없던 까닭은 이 공간이 품고 있는 기억 때문이다. 좀 봐달라고 생떼를 쓸 수 있는 건 여기에 기억을 잇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 p.131, 「짓밟힌 터전」중에서
체코 군단이 아무리 값싸게 무기를 넘긴다 해도 군대 무장은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기회가 눈앞에 왔는데 자금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를 수도 없지 않나. 누군 굳은 살점 같던 가락지를, 누군 쪽머리에서 빛바랜 비녀를, 누군 집 안 어딘가에 꼭꼭 숨겨 놓았던 패물을 들고 나왔을지 모른다. 그것도 없는 사람들은 질그릇이라도 가져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한인들의 반지, 은비녀, 놋요강 등이 과거 체코 벼룩시장에 쏟아져 나올 이유가 없다. 미뤄 짐작하건대 이것들은 무명 독립운동가들이 내놓은 알토란 같은 또 다른 독립자금이었을 거다.
--- p.152, 「체코로 간 비녀와 가락지」중에서
동원된 인원은 최대 9,000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무기 운반에는 상황에 따라 우마차를 활용하기도 했고 언 땅을 만나면 썰매를 이용했다. 행군으로 운반하는 경우에는 한 명이 소총 네 정을 양어깨에 나눠 메고 눈을 피해 험한 산길을 내달렸다. 운반대 대부분은 농민들이었다. 구매 협상이 지연되기라도 하면 운반에 나선 북간도 농민들은 손을 놓고 온 농사일로 애간장을 태웠다. 운이 없으면 마적대에게 구입한 무기를 모두 빼앗기기도 했다. 인근 한인 마을의 도움은 필수였다. 마을 사람들은 안전한 길을 안내하고 쉴 곳과 음식을 제공했다. 때에 따라서는 무기 운반을 돕기도 했다. 어렵사리 무기 운반대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독립군들은 벅차오르는 마음에 갈쌍거리는 눈을 하고 그들을 맞아주었을 거다. 봉오동·청산리에서의 승리는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의 합인 셈이다.
--- p.152, 「체코로 간 비녀와 가락지」중에서
엄인섭이 묘절한 밀정 거두란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이 밝혀진다. 그가 우리 독립운동에 끼친 해악을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실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올 지경이다. 백 명 아니 천 명의 일본군보다 한 명의 밀정이 무서운 법이다. 의병장으로 칭송받던 그가 어쩌다 모살한 밀정이 됐을까.
--- p.164, 「밀정과 한글 활자 절도 사건」중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태극기 아래로 특사들이 드나들었을 문을 열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삐거덕대는 나무 마루 위를 걸었다. 마치 그 소리가 시간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이 방에서 이준열사가 순국하셨습니다!’ 방문 위에 쓰인 문구가 보였다. 1907년 7월 14일 저녁 숨을 거둔 이준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 p.196, 「이준의 위대한 나라」중에서
공항 구석 의자에서 노숙을 해야 했던 그 밤. 무슨 영화를 보려 하는가, 이런 상황이 오면 이따금 작업을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찍은 사진을 리뷰한다. 왜 그렇게 현장 하나 하나가 외로워 보일까. 그러다 보면 문득 다음 촬영지가 궁금해진다. 거긴 또 얼마나 허한 공간일까. 내려놓고 싶을 때 마음을 다잡는 나만의 방식이랄까.
--- p.222, 「작업의 몇 가지 원칙」중에서
시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소비에트 스카야 언덕. 이곳은 4월 참변 당시 400여 명이 총살된 현장이다. 최재형도 이곳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우수리스크에 머물 동안 날마다 미립나게 언덕 잿길을 올랐다. 하루는 아침 댓바람에, 또 하루는 해가 중천일 때, 어떤 날은 어스름한 시간을 골랐다. 처음에는 또박또박 정직하게 사진을 찍어 봤다. 성에 차는 컷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카메라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스트로보를 미친 듯 쏘아댔다. 이도 마음에 안 들면 삼각대를 꺼내 필터를 끼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나중에는 아예 카메라를 들고 뛰기도 했다. 언덕에 오르면 매번 어떤 막연함 앞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향을 잡기 힘들었다. 할 수 있는 건 카메라를 들고 언덕 위 숙살지기 앞에서 버둥질하는 게 다였다. 그러다 그 누구의 죽음과 아무 상관도 없는 십자가 옆으로 해가 넘어가는 걸 보고 터벅터벅 언덕을 내려왔다. 걸음이 더해질수록 ‘그는 도대체 어떤 빛을 보고 절명했을까’ 걸음걸음 떨쳐낼 수 없던 의문이 몸집을 키웠다. 그리고 다음 날 구원받지 못한 그 누구의 꿈을 찾아 부득불 다시 언덕을 올랐다.
--- p.263, 「한 언덕에서의 버둥질」중에서
거목처럼 큰 사람이었던 홍범도. 그의 외손녀 김알라 여사는 공식적으로 홍범도의 혈육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홍범도의 피가 섞인 건 아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의 가족이라 봐야 한다. 가족은 피를 나누지 않아도 이룰 수 있으니. 중요한 건 직계 혈통 여부가 아닌 그녀가 갖고 있는 그 어떤 기억이다. 김알라 여사의 존재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 기억은 자신의 증명으로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녀가 내놓은 홍범도의 권총집과 손때 묻은 사진 등은 자기를 자기로 봐달라는 증거품인 셈이다. 하지만 혹자 중에는 그것들이 진짜 홍범도의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증거해야 했던 사람 중 하나였고 증명하지 못한 시간을 살아왔던 김알라 여사를 바라보는 잣대는 진짜냐 가짜냐의 눈초리다. 그 차갑고 잔인한 시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p.276, 「홍범도의 반쪽자리 사진」중에서
시내를 벗어나 철길 옆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 보면 자유시 참변 현장 체스노코프역이 나온다. 주로 화물 열차가 정차하는 이곳에 남아 있는 증기기관차 급수탑은 자유시 참변의 상징이다. 독립군 중 일부가 과거 수라세프가 마을이던 이 급수탑 주변에 주둔 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내전 아닌 내전이 벌어진 현장, 급수탑은 화약 냄새 진동하고 피비린내 풍기는 아비규환을 모두 내려다봤을 거다. 유일한 목격자는 본의 아니게 그 모든 걸 떠안듯 비극의 상징이 돼버렸다.
--- p.303, 「“다시는 우리끼리 싸우는 일 없기를”」중에서
찍고자 한 건 망각과 은폐에 저항하는 사진이다. 한 장의 사진이 능동적으로 망각을 직시한 채 그것을 기억으로 되돌렸으면 했다. 과거는 이해되어야 한다. 그 앎은 반성적 태도 위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망각에서 기억까지의 흐릿함을 다시 선명하게 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흐릿한 스베틀라나 여사의 얼굴이 과거의 재인식을 도와 망각을 추동한 자들을 떠오르게 했으면, 이를 통해 진실한 기억의 지도가 제 모습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됐으면, 그렇게 이 이야기와 사진이 소임을 다했으면.
--- p.12, 「다시 요동칠 기억의 연대를 꿈꾸며」중에서
신체를 훼손하면서까지 명세한 그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공자 또는 그의 제자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효도 경전 〈효경〉 첫머리에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란 말이 나온다. 부모에게 받은 몸을 잘 보존하는 게 효의 첫걸음이란 뜻이다. 단지동맹을 맺은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을까. 단지는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단발’과는 다른 차원이다. 피를 봐야 하고 극심한 고통을 감내하는 일이다. 그리고 생채기를 평생 눈으로 보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단지는 효의 실천보다 나라의 존립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 아닐까. 그것은 효를 사사로운 감정으로 밀어내, 그 자리에 독립이란 두 글자를 채우는 일이다.
--- p.88, 「단지, 단지는 단지가 아니다」중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며 신한촌을 출근하듯 다녔다. 첫째 날은 남은 게 없어 난처함에 도리머리를 지었고, 둘째 날은 사라짐 앞에 무망함이 밀려들었고, 셋째 날은 현실 앞에 오기가 발동했다. 이동휘가 1935년 사망할 때까지 말년을 보낸 집터를 찾아 나섰다. 그 자취는 상점 건물이 대신하고 있었다. 1920년 3·1혁명 1주년을 기념해 한인들이 세웠다는 독립문도 이젠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흔적이라면 서울 거리란 뜻의 ‘서울 스카야’ 표지판 하나가 전부다. 어디에 한민학교 교정이 있었을까, 신채호가 글을 쓴 곳은 어디일까, 밀정들은 어디서 독립운동가들을 훔쳐보고 있었을까, 모락모락 군불 떼던 마을 모습은 속내와 달리 평화롭게 보였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건 나뭇가지 위 까치집뿐인 건가. 그럼에도 카메라를 거둘 수 없던 까닭은 이 공간이 품고 있는 기억 때문이다. 좀 봐달라고 생떼를 쓸 수 있는 건 여기에 기억을 잇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 p.131, 「짓밟힌 터전」중에서
체코 군단이 아무리 값싸게 무기를 넘긴다 해도 군대 무장은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기회가 눈앞에 왔는데 자금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를 수도 없지 않나. 누군 굳은 살점 같던 가락지를, 누군 쪽머리에서 빛바랜 비녀를, 누군 집 안 어딘가에 꼭꼭 숨겨 놓았던 패물을 들고 나왔을지 모른다. 그것도 없는 사람들은 질그릇이라도 가져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한인들의 반지, 은비녀, 놋요강 등이 과거 체코 벼룩시장에 쏟아져 나올 이유가 없다. 미뤄 짐작하건대 이것들은 무명 독립운동가들이 내놓은 알토란 같은 또 다른 독립자금이었을 거다.
--- p.152, 「체코로 간 비녀와 가락지」중에서
동원된 인원은 최대 9,000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무기 운반에는 상황에 따라 우마차를 활용하기도 했고 언 땅을 만나면 썰매를 이용했다. 행군으로 운반하는 경우에는 한 명이 소총 네 정을 양어깨에 나눠 메고 눈을 피해 험한 산길을 내달렸다. 운반대 대부분은 농민들이었다. 구매 협상이 지연되기라도 하면 운반에 나선 북간도 농민들은 손을 놓고 온 농사일로 애간장을 태웠다. 운이 없으면 마적대에게 구입한 무기를 모두 빼앗기기도 했다. 인근 한인 마을의 도움은 필수였다. 마을 사람들은 안전한 길을 안내하고 쉴 곳과 음식을 제공했다. 때에 따라서는 무기 운반을 돕기도 했다. 어렵사리 무기 운반대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독립군들은 벅차오르는 마음에 갈쌍거리는 눈을 하고 그들을 맞아주었을 거다. 봉오동·청산리에서의 승리는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의 합인 셈이다.
--- p.152, 「체코로 간 비녀와 가락지」중에서
엄인섭이 묘절한 밀정 거두란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이 밝혀진다. 그가 우리 독립운동에 끼친 해악을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실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올 지경이다. 백 명 아니 천 명의 일본군보다 한 명의 밀정이 무서운 법이다. 의병장으로 칭송받던 그가 어쩌다 모살한 밀정이 됐을까.
--- p.164, 「밀정과 한글 활자 절도 사건」중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태극기 아래로 특사들이 드나들었을 문을 열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삐거덕대는 나무 마루 위를 걸었다. 마치 그 소리가 시간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이 방에서 이준열사가 순국하셨습니다!’ 방문 위에 쓰인 문구가 보였다. 1907년 7월 14일 저녁 숨을 거둔 이준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 p.196, 「이준의 위대한 나라」중에서
공항 구석 의자에서 노숙을 해야 했던 그 밤. 무슨 영화를 보려 하는가, 이런 상황이 오면 이따금 작업을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찍은 사진을 리뷰한다. 왜 그렇게 현장 하나 하나가 외로워 보일까. 그러다 보면 문득 다음 촬영지가 궁금해진다. 거긴 또 얼마나 허한 공간일까. 내려놓고 싶을 때 마음을 다잡는 나만의 방식이랄까.
--- p.222, 「작업의 몇 가지 원칙」중에서
시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소비에트 스카야 언덕. 이곳은 4월 참변 당시 400여 명이 총살된 현장이다. 최재형도 이곳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우수리스크에 머물 동안 날마다 미립나게 언덕 잿길을 올랐다. 하루는 아침 댓바람에, 또 하루는 해가 중천일 때, 어떤 날은 어스름한 시간을 골랐다. 처음에는 또박또박 정직하게 사진을 찍어 봤다. 성에 차는 컷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카메라를 흔들어 보기도 하고, 스트로보를 미친 듯 쏘아댔다. 이도 마음에 안 들면 삼각대를 꺼내 필터를 끼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나중에는 아예 카메라를 들고 뛰기도 했다. 언덕에 오르면 매번 어떤 막연함 앞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향을 잡기 힘들었다. 할 수 있는 건 카메라를 들고 언덕 위 숙살지기 앞에서 버둥질하는 게 다였다. 그러다 그 누구의 죽음과 아무 상관도 없는 십자가 옆으로 해가 넘어가는 걸 보고 터벅터벅 언덕을 내려왔다. 걸음이 더해질수록 ‘그는 도대체 어떤 빛을 보고 절명했을까’ 걸음걸음 떨쳐낼 수 없던 의문이 몸집을 키웠다. 그리고 다음 날 구원받지 못한 그 누구의 꿈을 찾아 부득불 다시 언덕을 올랐다.
--- p.263, 「한 언덕에서의 버둥질」중에서
거목처럼 큰 사람이었던 홍범도. 그의 외손녀 김알라 여사는 공식적으로 홍범도의 혈육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홍범도의 피가 섞인 건 아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의 가족이라 봐야 한다. 가족은 피를 나누지 않아도 이룰 수 있으니. 중요한 건 직계 혈통 여부가 아닌 그녀가 갖고 있는 그 어떤 기억이다. 김알라 여사의 존재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 기억은 자신의 증명으로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녀가 내놓은 홍범도의 권총집과 손때 묻은 사진 등은 자기를 자기로 봐달라는 증거품인 셈이다. 하지만 혹자 중에는 그것들이 진짜 홍범도의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증거해야 했던 사람 중 하나였고 증명하지 못한 시간을 살아왔던 김알라 여사를 바라보는 잣대는 진짜냐 가짜냐의 눈초리다. 그 차갑고 잔인한 시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p.276, 「홍범도의 반쪽자리 사진」중에서
시내를 벗어나 철길 옆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다 보면 자유시 참변 현장 체스노코프역이 나온다. 주로 화물 열차가 정차하는 이곳에 남아 있는 증기기관차 급수탑은 자유시 참변의 상징이다. 독립군 중 일부가 과거 수라세프가 마을이던 이 급수탑 주변에 주둔 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내전 아닌 내전이 벌어진 현장, 급수탑은 화약 냄새 진동하고 피비린내 풍기는 아비규환을 모두 내려다봤을 거다. 유일한 목격자는 본의 아니게 그 모든 걸 떠안듯 비극의 상징이 돼버렸다.
--- p.303, 「“다시는 우리끼리 싸우는 일 없기를”」중에서
찍고자 한 건 망각과 은폐에 저항하는 사진이다. 한 장의 사진이 능동적으로 망각을 직시한 채 그것을 기억으로 되돌렸으면 했다. 과거는 이해되어야 한다. 그 앎은 반성적 태도 위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망각에서 기억까지의 흐릿함을 다시 선명하게 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흐릿한 스베틀라나 여사의 얼굴이 과거의 재인식을 도와 망각을 추동한 자들을 떠오르게 했으면, 이를 통해 진실한 기억의 지도가 제 모습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됐으면, 그렇게 이 이야기와 사진이 소임을 다했으면.
--- p.352, 「기억되지 못한 사람」중에서
출판사 리뷰
“대한독립 뭉우리돌의 흔적을 좇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우리 독립운동의 자취를 찾아 기록하는
김동우 작가의 두 번째 책, 『뭉우리돌의 들녘』 출간!
『뭉우리돌의 들녘』은 러시아와 네덜란드에 남겨진 우리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굴하고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김동우 작가는 2017년 이래로 국내외 여러 나라에 산재한 독립운동 사적지와 독립운동가 후손을 취재하는 ‘뭉우리돌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있다.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로, 김구의 『백범일지』에서 비롯됐다. 김구가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을 때 일본 순사가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말하며 그를 고문했다. 그 말에 김구는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답했다. 작가는 김구의 말에서 착안하여 뭉우리돌처럼 굳건히 박혀 독립운동에 생을 바친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국내 등 10개국 300여 곳 이상의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했으며, 현재까지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1년 7월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의 한인 독립운동 작업물을 엮어 『뭉우리돌의 바다』를 출간했으며, 『뭉우리돌의 들녘』은 그 두 번째 책으로 러시아와 네덜란드 이야기다.
독립운동 성지 연해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활약,
헤이그 특사 최후의 여정, 독립운동사 최대 비극 자유시 참변의 현장…
실패했으나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위대한 독립영웅들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뭉우리돌 이야기
한반도와 맞닿은 땅, 극동러시아. 1864년 기근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간 조선인들이 연해주에 한인 마을을 세워 정착했다. 이후 연해주는 한인들의 생존을 위한 땅이자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투쟁 본거지이자 최전선이 되었다. 수백의 독립운동가들이 탄생하고 스러져간 땅, 가장 먼저 임시정부가 설립된 땅. 그곳에 망국 앞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책 표지 사진은 독립운동가 최재형 가옥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는 잘 알고 있지만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재력가이자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은 잘 알지 못한다. 헤이그 특사가 무엇인지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의 끝 네덜란드까지 내달려간 특사들의 절박함과 결연함, 그리고 고국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그들의 최후는 어땠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념 갈등 역사 때문에 지워진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 또한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라의 위기 앞에 여지없이 뭉쳤던 민초들도 있다. 민초들은 독립운동가들의 무장을 위해 기꺼이 가락지와 비녀, 놋요강 등을 내어놓았고, 청산리, 봉오동 전투의 기반이 되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실제 모티프가 된 ‘15만 원 탈취 의거’도 연해주 일대를 배경으로 한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기에 한국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 김알라 여사와 이인섭의 막내딸 스베틀라나 여사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도 들어 있다. 『뭉우리돌의 들녘』은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뭉우리돌, 역사에서 배제된 채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이야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 할머니의 할머니 때 이야기…
“찾지 못한 기록, 지워진 기억 그리고 감춰진 진실은 분명 이 현장에 있을 거다”
빈터만 남겨진 현장에서 희미해져가는 역사를 잇다
“첫째 날은 남은 게 없어 난처함에 도리머리를 지었고, 둘째 날은 사라짐 앞에 무망함이 밀려들었고, 셋째 날은 현실 앞에 오기가 발동했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거둘 수 없던 까닭은 이 공간이 품고 있는 기억 때문이다. 좀 봐달라고 생떼를 쓸 수 있는 건 여기에 기억을 잇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_본문 중에서
『뭉우리돌의 들녘』은 국외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이자, 그들에 대한 기억을 살려내고자 한 어느 사진작가의 치열한 분투기다. 김동우 작가가 사적지를 찾으며 가장 많이 마주하는 것은 빈터다. 주소 한 줄에 의지해 어렵사리 사적지를 찾아가면 초라한 기념비만이 황망하게 서 있거나 그도 없이 황량한 빈터가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다. 때론 불필요한 오해를 받거나 촬영 계획이 터무니없이 꼬여버리기 일쑤다. 작가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적지는 사진가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장소’라고 말하며 사진을 통해 ‘과거를 연상하기보다는 어떤 감정을 전달’해 기억의 연대를 다시 꾀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넓은 들녘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고, 텅 빈 공간에서 무엇이 있음을 더듬는다. 그래서 그는 사적지와 독립운동가 후손을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찍곤 한다. 지워진 역사를 표현함과 동시에 지워져서는 안 되며,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들녘을 터벅터벅 걸어 어렵사리 목적지를 찾아가면 황량한 빈터가 전부이거나, 누군가 두 팔 벌려 환영해줄지 모른다는 상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 재차 확인하는 순간이 온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기록해놓을 순 없다. 또박또박 찍어 나가는 사진은 분에 넘치는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편하자고, 비용을 줄여보자고 카메라를 잘못 선택하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 같다. 누가 정해놓거나 시킨 게 아니다. 단지 당당하고 떳떳하고자 했을 뿐이다. 누구에게? 나보다 먼저 나라를 생각하며 지금을 존재케 한 과거의 그들에게. 〈뭉우리돌을 찾아서〉는 내게 그런 작업이다.” _본문 중에서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전 세계에 남은 민족의 흔적을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실패는 했어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분들이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오롯이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으면 역사는 잊힌다. 발걸음이 이어진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이자 기억하겠다는 의지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데에 작게나마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점점 잊혀가는 역사적 현장 앞에서 그 현장이 담고 있는 서사와 감정을 끌어내고자 한 묵직한 사진들은 단순한 기록물이나 아카이빙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어쩌면 우리는 ‘독립’이라는 이 역사의 결말만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기억의 매개자가 되고자 하는 작가의 진정성이 담긴 사진들은 그 독립의 ‘과정’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끼게끔 한다.
이 나라는 어떻게 지켜졌는가
굵직한 세계사 속 빛나는 우리 독립운동의 위상
이 책은 독립기념관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정보를 기본으로 취재했고, 단행본, 논문, 국내외 기사, 각종 자료 등을 망라하여 한반도와 극동러시아, 네덜란드가 얽힌 우리 독립운동사를 집대성하였다. 두만강을 오고가며 자연스럽게 시작된 이주의 역사와 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본과 러시아, 중국의 각축, 1차 세계대전과 연결된 각 국가의 이해관계 등 굵직한 세계사의 한복판에서 흔들림 없이 쌓아간 강인하고 애달픈 독립운동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같은 동지끼리 총부리를 겨누었던 자유시 참변의 쓰라린 역사도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다. 국외독립운동 사적지의 오늘날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96여 장의 컬러 사진과 해당 현장과 연결된 역사적 정황, 이해를 돕기 위한 지도 등은 우리 독립운동사를 입체적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영국의 언론인 프레더릭 매켄지의 『한국의 자유투쟁Korea's Fight for Freedom』에는 헐벗은 독립운동가들을 보고 쓴 대목이 있다. “그들은 불쌍해 보였다. 그들은 죽을 운명이었고, 전혀 가망이 없는 명분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오른편에 있는 지휘관을 보았고, 그의 반짝이는 눈과 미소는 나의 이런 생각을 비웃는 듯 했다. 동정. 내가 동정해야 할 대상은 그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과거 선조들은 반인류적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서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고자 생을 바쳤다. 관리되지 않는 현장의 처량함과 올곧은 선조들의 항일투쟁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상반된 감정의 충돌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내 오늘을 있게 한 독립운동의 역사,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졌는가를 되새기며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제 기억하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우리 독립운동의 자취를 찾아 기록하는
김동우 작가의 두 번째 책, 『뭉우리돌의 들녘』 출간!
『뭉우리돌의 들녘』은 러시아와 네덜란드에 남겨진 우리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굴하고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김동우 작가는 2017년 이래로 국내외 여러 나라에 산재한 독립운동 사적지와 독립운동가 후손을 취재하는 ‘뭉우리돌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있다.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로, 김구의 『백범일지』에서 비롯됐다. 김구가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을 때 일본 순사가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말하며 그를 고문했다. 그 말에 김구는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라고 답했다. 작가는 김구의 말에서 착안하여 뭉우리돌처럼 굳건히 박혀 독립운동에 생을 바친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다.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국내 등 10개국 300여 곳 이상의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했으며, 현재까지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1년 7월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의 한인 독립운동 작업물을 엮어 『뭉우리돌의 바다』를 출간했으며, 『뭉우리돌의 들녘』은 그 두 번째 책으로 러시아와 네덜란드 이야기다.
독립운동 성지 연해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활약,
헤이그 특사 최후의 여정, 독립운동사 최대 비극 자유시 참변의 현장…
실패했으나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위대한 독립영웅들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뭉우리돌 이야기
한반도와 맞닿은 땅, 극동러시아. 1864년 기근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간 조선인들이 연해주에 한인 마을을 세워 정착했다. 이후 연해주는 한인들의 생존을 위한 땅이자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의 항일투쟁 본거지이자 최전선이 되었다. 수백의 독립운동가들이 탄생하고 스러져간 땅, 가장 먼저 임시정부가 설립된 땅. 그곳에 망국 앞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책 표지 사진은 독립운동가 최재형 가옥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는 잘 알고 있지만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재력가이자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은 잘 알지 못한다. 헤이그 특사가 무엇인지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의 끝 네덜란드까지 내달려간 특사들의 절박함과 결연함, 그리고 고국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그들의 최후는 어땠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념 갈등 역사 때문에 지워진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 또한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라의 위기 앞에 여지없이 뭉쳤던 민초들도 있다. 민초들은 독립운동가들의 무장을 위해 기꺼이 가락지와 비녀, 놋요강 등을 내어놓았고, 청산리, 봉오동 전투의 기반이 되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실제 모티프가 된 ‘15만 원 탈취 의거’도 연해주 일대를 배경으로 한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기에 한국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홍범도 장군의 외손녀 김알라 여사와 이인섭의 막내딸 스베틀라나 여사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도 들어 있다. 『뭉우리돌의 들녘』은 이렇게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뭉우리돌, 역사에서 배제된 채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이야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 할머니의 할머니 때 이야기…
“찾지 못한 기록, 지워진 기억 그리고 감춰진 진실은 분명 이 현장에 있을 거다”
빈터만 남겨진 현장에서 희미해져가는 역사를 잇다
“첫째 날은 남은 게 없어 난처함에 도리머리를 지었고, 둘째 날은 사라짐 앞에 무망함이 밀려들었고, 셋째 날은 현실 앞에 오기가 발동했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거둘 수 없던 까닭은 이 공간이 품고 있는 기억 때문이다. 좀 봐달라고 생떼를 쓸 수 있는 건 여기에 기억을 잇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_본문 중에서
『뭉우리돌의 들녘』은 국외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이자, 그들에 대한 기억을 살려내고자 한 어느 사진작가의 치열한 분투기다. 김동우 작가가 사적지를 찾으며 가장 많이 마주하는 것은 빈터다. 주소 한 줄에 의지해 어렵사리 사적지를 찾아가면 초라한 기념비만이 황망하게 서 있거나 그도 없이 황량한 빈터가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다. 때론 불필요한 오해를 받거나 촬영 계획이 터무니없이 꼬여버리기 일쑤다. 작가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적지는 사진가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장소’라고 말하며 사진을 통해 ‘과거를 연상하기보다는 어떤 감정을 전달’해 기억의 연대를 다시 꾀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넓은 들녘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듣고, 텅 빈 공간에서 무엇이 있음을 더듬는다. 그래서 그는 사적지와 독립운동가 후손을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찍곤 한다. 지워진 역사를 표현함과 동시에 지워져서는 안 되며,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들녘을 터벅터벅 걸어 어렵사리 목적지를 찾아가면 황량한 빈터가 전부이거나, 누군가 두 팔 벌려 환영해줄지 모른다는 상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 재차 확인하는 순간이 온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기록해놓을 순 없다. 또박또박 찍어 나가는 사진은 분에 넘치는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편하자고, 비용을 줄여보자고 카메라를 잘못 선택하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 같다. 누가 정해놓거나 시킨 게 아니다. 단지 당당하고 떳떳하고자 했을 뿐이다. 누구에게? 나보다 먼저 나라를 생각하며 지금을 존재케 한 과거의 그들에게. 〈뭉우리돌을 찾아서〉는 내게 그런 작업이다.” _본문 중에서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전 세계에 남은 민족의 흔적을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실패는 했어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분들이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오롯이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으면 역사는 잊힌다. 발걸음이 이어진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이자 기억하겠다는 의지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데에 작게나마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점점 잊혀가는 역사적 현장 앞에서 그 현장이 담고 있는 서사와 감정을 끌어내고자 한 묵직한 사진들은 단순한 기록물이나 아카이빙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어쩌면 우리는 ‘독립’이라는 이 역사의 결말만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기억의 매개자가 되고자 하는 작가의 진정성이 담긴 사진들은 그 독립의 ‘과정’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끼게끔 한다.
이 나라는 어떻게 지켜졌는가
굵직한 세계사 속 빛나는 우리 독립운동의 위상
이 책은 독립기념관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정보를 기본으로 취재했고, 단행본, 논문, 국내외 기사, 각종 자료 등을 망라하여 한반도와 극동러시아, 네덜란드가 얽힌 우리 독립운동사를 집대성하였다. 두만강을 오고가며 자연스럽게 시작된 이주의 역사와 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본과 러시아, 중국의 각축, 1차 세계대전과 연결된 각 국가의 이해관계 등 굵직한 세계사의 한복판에서 흔들림 없이 쌓아간 강인하고 애달픈 독립운동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같은 동지끼리 총부리를 겨누었던 자유시 참변의 쓰라린 역사도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다. 국외독립운동 사적지의 오늘날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96여 장의 컬러 사진과 해당 현장과 연결된 역사적 정황, 이해를 돕기 위한 지도 등은 우리 독립운동사를 입체적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영국의 언론인 프레더릭 매켄지의 『한국의 자유투쟁Korea's Fight for Freedom』에는 헐벗은 독립운동가들을 보고 쓴 대목이 있다. “그들은 불쌍해 보였다. 그들은 죽을 운명이었고, 전혀 가망이 없는 명분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곧 오른편에 있는 지휘관을 보았고, 그의 반짝이는 눈과 미소는 나의 이런 생각을 비웃는 듯 했다. 동정. 내가 동정해야 할 대상은 그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과거 선조들은 반인류적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서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고자 생을 바쳤다. 관리되지 않는 현장의 처량함과 올곧은 선조들의 항일투쟁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상반된 감정의 충돌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내 오늘을 있게 한 독립운동의 역사,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졌는가를 되새기며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제 기억하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다.”
추천평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 시절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 특별전에서 김동우 작가의 사진을 전시했다. 사진 하나하나 예술성이 탁월해 깊이 감동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비가 많이 들어가는 이 작업을, 어떠한 지원도 없이 자비로 충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전 연구와 철저한 준비가 없다면, 또한 사명감과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국외 독립운동가들의 자취와 숨결을 전하려는 작가의 마음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는 재외동포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이 책을 통해 가슴으로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명예교수, 前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
-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명예교수, 前대한민국역사박물관 관장)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폄훼가 공공연히 행해지는 오늘, 김동우 작가의 새 책이 반갑다. 그는 탁월한 안내인이 되어 우리를 독립운동가의 피와 눈물, 숨결이 서린 세계 곳곳으로 이끈다. 선열들이 머물렀거나 투쟁했던 장소로 인도할 뿐 아니라 그들의 전후 서사, 결의와 의지, 역사적 맥락까지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뜨겁게 공감되고 쉽게 읽히는 이유는 치밀한 자료 연구와 기자 출신다운 끈덕진 취재,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문장, 그리고 사진 한 장에도 기어코 역사의 진실을 담아내려는 작가의 열정 때문이다. 실로 이 책은 독립운동가들이 일궈낸 거룩한 역사를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이자 우리로 하여금 후손 된 도리를 갖게 해주는 고마운 선물이다.
-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5년』 저자)
- 박시백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5년』 저자)
『뭉우리돌의 들녘』에는 맑고 차가운 사진이 많다. 러시아와 네덜란드의 매서운 추위가 투명하게 전해진다. 작가는 엄혹한 역사를 견뎌내야 했던 독립운동가의 삶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것은 매섭게, 또 집요하게 파고드는 시린 ‘들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리고 그곳에서 미처 전하지 못한 채 사라져 가는 희미한 이야기를 찾아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이야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 할머니의 할머니 때 이야기다. 이제 자신이 찾아낸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자 한다. 한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경계를 넘어갔던 독립운동가와 한국사의 드넓어진 공간의 이야기를.
- 박광일 (역사작가,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저자)
- 박광일 (역사작가,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저자)
'22.역사이야기 (관심>책소개) > 7.독립운동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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