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미술의 이해 (독서>책소개)/1.현대미술교양

피카소의 전쟁 (2024) - 현대미술은 어떻게 미국에 진출했는가

동방박사님 2024. 12. 1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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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대예술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뉴욕에 왔는가
피카소를 둘러싸고 벌어진, 가히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치열했던 혁신과 저항, 시도와 실패가 맞버텨온 예술의 대서사

반짝이는 유리와 검은 강철 벽으로 드넓은 부지를 둘러싼 뉴욕 현대미술관(MoMA). 미국에서 가장 탐나는 땅 위에 선 이 미술관의 중심에 한 예술가의 작품이 있다. 

바로 스페인 출신으로 파리 아방가르드 미술을 이끈 리더, 파블로 피카소와 그의 작품 「아비뇽의 여인들」이다. 

놀랍게도 그는 생전에 미국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미술관의 60개 전시실에는 유령과도 같은 그의 존재감이 유유히 흘러다닌다. 

하지만 그가 미국 대중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인정받기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걸렸다. 

20세기 초 뉴욕에서 생존 예술가에게 관심을 가진 컬렉터는 소수에 불과했고 동시대 현대예술은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그 새로운 색채와 기법을 혐오하거나 심지어 전복적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 현대예술은 조롱의 대상이었고, 외면당했다. 

그러니 이런 예술작품과 예술가에게 초점을 맞춘 미술관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현대미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최신 예술을 미국에 들여오고자 노력한 이들이 있었다. 

비록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전쟁과 경제위기, 회의적인 대중에 의해 끊임없이 방해를 받았고 거의 실패할 뻔도 했지만, 

혁신적인 예술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 소수의 결의와 결단력이 없었다면 미국은 결코 오늘날과 같은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들에 대한 이야기다.

목차
서문
프롤로그

PART 1

1 미국이 아닌
2 어느 회화 작품의 반생
3 파리, 동쪽
4 프랑스의 교훈
5 스치듯 지나간 여인
6 의회의 입체주의
7 체스 선수와 흥행사
8 전원시의 최후
9 크나큰 환상
10 전쟁중의 입체주의자들
11 새로운 시작
12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13 피카소의 정원에서
14 KKK 비평
15 위험한 접촉
16 퀸의 만찬
17 최후의 전투

PART 2

18 그가 사라지다
19 매우 현대적인 앨프리드 바
20 그가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21 그만의 미술관
22 파리 프로젝트
23 피카소가 모든 경주에서 승리하면
24 힘의 균형
25 실패
26 예술 창작…… 다시 독일
27 멋진 코네티컷
28 작업을 위해 목숨을 걸다
29 그림에 손을 놓은 해
30 스페인의 분노
31 이런 그림을 가질 기회는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32 파리의 최후
33 전쟁보다 중요한
34 탈출


저자 소개 
저 : 휴 에이킨 (Hugh Eakin) 
『뉴욕 리뷰 오브 북스』의 수석 편집자이자, 『NYR 데일리』의 창립 편집자. 현재는 『포린 어페어스』의 선임 편집자를 맡고 있다. 

피카소의 전쟁』은 그가 수년간에 걸쳐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20세기 초 미국 사회와 미술계의 움직임을 촘촘하게 재구성한 역작이다. 

책에서 저자는 “현대미술의 이야기, 즉 작품을 수집한 컬렉터, 연구한 학자, 전시한 미술관, 그리고 관람을 위해 긴 줄을 선 관람객”에 대한 ...

역 : 주은정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뒤샹 딕셔너리 - 예술가들의 예술가 뒤샹에 관한 208개의 단어』,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25년간의 인터뷰』, 『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내가, 그림이 되다 -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미술비평: 비평적 글쓰기란 무엇인가』 ...

책 속으로
시내 전문 법률회사의 수장으로 의욕 넘치는 이 아일랜드계 미국인은 맨해튼 금융계 인텔리층 사이에서 일을 했다. 

월 스트리트 법조계 최고 인사로 인정받는 그(존 퀸)는 뉴욕증권거래소와 규모 순으로 따지면 미국에서 둘째가는 은행이라 할 만한 국립상업은행의 법률고문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또한 문화를 교란하는 특이한 제2의 삶을 살았으니, 가장 참신한 시인과 예술가를 발굴하고, 실험적인 작가들의 작품 출간을 돕고, 논란이 무성한 연극무대를 후원하고, 새로운 아일랜드 시에 대해 논쟁을 벌이며 긴 밤을 보내곤 했다. 

이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우리 시대의 사람이 되고 싶어.”
--- p.22

피카소의 입체주의적인 인물로 가득한 방에 들어서는 경험이 당시 뉴욕 사람들에게 얼마나 당혹스러운 것이었을지, 오늘날에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수 세기 동안 재현적인 미술에 길든 뉴욕 사람들은 피카소가 극적으로 단순화하여 표현한 머리를 “알래스카의 토템폴”로, 다시점에서 동시에 포착하기 위한 원뿔과 입방체의 활용을 “정신이상의 소산”으로 보았다. 

퀸은 피카소의 드로잉에 크게 당황했고, 이후 한 친구에게 이 드로잉을 묘사하면서 사실상 온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없다는 듯 “습작(?)”이라 언급했다.
--- p.30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경제를 일구는 사이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는 역동적인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고 있었다. 

미국의 컬렉터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작품 한 점을 구입할 수 있는 금액으로 피카소와 마티스의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세잔이나 반 고흐의 작품까지 몽땅 살 수 있었다. 

형태와 색, 원근법으로 현란한 실험을 시도하며 전통성을 와해하는 이 작품들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이 시대의 정신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얼마 전 추방된 파운드가 퀸에게 말했듯,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또다른 16세기”를 잡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초강대국 미국이 대양 건너편에서 들여온 작품들은 거개가 지난 시대의 걸작들이었다. 

맹렬한 속도로 미국의 현대화를 추진해온 컬렉터들?대부분 남성인?은 현대예술에 병적이라 할 만한 혐오를 보였다.
--- p.35

퀸은 친구들과 예술계의 연줄 닿는 이들에게 자신이 꿈꾸는 미술관의 개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중 교육을 선도하는 혁신가로 유명한 사서이자 박물관 수장인 존 코튼 데이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현대미술관을 바라왔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미술관은 새로운 예술과 새로운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쏟는 지속적인 전시 프로그램과 함께 “살아 있는 예술가들의 대표작을 구입하고 유증받는” 곳이 될 터였다.
--- p.89

전쟁으로 퀸은 깊은 갈등에 빠졌다. 그는 프랑스의 용맹함에 감탄했고, 연합국 합류를 거부한 윌슨 대통령을 증오했다. 

이 가혹한 교착상태가 몇 년 안에 끝나지 않을 것 같았으니, 자신이 옹호해온 예술가들을 포함해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서 희생될 것이었다. 

퀸은 곤에게 이렇게 써 보냈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모든 예술가들이 이 순간 군인이 되어 있다니,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 뉴욕에서 열정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던 1915년 봄에 이미 그는 자신의 활동을 전쟁 관련 지원책의 한 가지 방법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전장에 나간 예술가들에게 지지의 메시지를 때로는 돈과 함께 보냈다.
--- p.140

바에게 아트센터의 특이한 전시는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새로운 예술이 전혀 호응을 얻지 못하던 시절에 가장 흥미로운 새로운 예술을 발견한 퀸의 “놀라운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퀸의 선택에는 전통적인 통념과 문화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예술가들의 것과도 같은 짜릿한 자유의 감각이 있었다. 전시를 되돌아보면서, 바는 퀸을 미국에서 “가장 자유로운” 예술 컬렉터라고 불렀다. 

그는 또한 퀸의 동기에 대해서도 감명을 받았다. 

그의 컬렉션을 살펴보면 가장 영감 넘치는 예시들로 드러내는 프랑스 현대예술에 대한 폭넓은 시야, 즉 세잔이나 쇠라 같은 이들부터 시작해 마티스와 피카소를 거쳐 현재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조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의 미술관에서 완전히 빠져 있는 이야기요, 바 자신이 필사적으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 p.260

1936년에서 193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유럽에서는 파시즘과의 군사적 대립이 점차 암울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바의 초현실주의 전시가 개최되기 전에 이미 프랑코의 군대가 마드리드를 포위하기 시작하여 잔인한 시가전이 벌어졌고, 독일 폭격기가 도시를 강타하고 있었다. 

마가가 예견한 대로 민간인뿐 아니라 중요한 예술작품도 위협을 받았다.
--- p.415

피카소는 분노에 휩싸여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의 “의분”에 도라 마르는 감동을 느꼈다. 만 레이 또한 세상일에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하는 피카소를 처음 보았다. 

그의 친구이자 시인인 베르가민은 이를 가리켜 “스페인의 분노”라 묘사했다.

20 피카소는 더이상 지난 몇 주, 몇 달 전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이 점을 의식했다. 주민 전체를 희생자로 만든 그 특별한 비극의 어느 요소가 피카소를 흔들어 깨워 수동적인 태도에서 끄집어낸 것만 같았다. 

그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주던 감정의 댐이 갑자기 무너진 것이다.
--- p.418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피카소 전시는 일종의 도전장으로 여겨졌다. 

사실 스튜어트 데이비스, 아실 고키, 존 그레이엄 등 몇몇 미국 화가들은 그간 수년에 걸쳐 피카소와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터였다. 

그레이엄은 1930년대 초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회화 작품은 피카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가 등장한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 p.476

전쟁이 끝날 무렵 〈피카소: 화업 40년〉은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되었으며 가장 많이 회자된 현대예술 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전시 시작 이후 맞이한 첫 겨울 내내 꾸준히 증가했다. 

뉴욕에서 이 전시는 첫 달 동안 한 주에 1만 5000명의 관람객을 불러 모았는데, 이는 4년 전 반 고흐 전시의 관람객 수를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전시가 시카고미술관으로 옮겨졌을 때는 이를 보려는 사람들이 중서부 전역에서 모여들었다.
--- p.498

출판사 리뷰
20세 초 미국은 현대적이지도 선도적이지도 않았다

1913년 뉴욕에서 열린 [아모리 쇼]는 현대미술을 미국에 소개한 기념비적인 전시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모리 쇼] 이후 수년이 지나서야 현대미술관이 겨우 문을 열었고,

약 30년 동안 대중과 미술계는 이 새로운 예술을 외면했다.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부유한 미국인들 역시 미술에 관심이 없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의장직을 맡았던 은행가 J. P. 모건 같은 인물은 유럽 거장들의 작품만이 진짜 미술이라고 여겼다.

심지어 시카고미술관에서 열린 마티스 전시에 대한 대중과 미술계 반응은 가히 폭동 수준이었다.

마티스 그림의 복제본을 만들어 불에 태우고 가짜 재판을 열어 마티스의 작업은 예술적 살인이라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런 시위를 벌인 이들은 다름 아닌 미술과 학생들이었다.

또한 레오와 거트루드 스타인 남매를 통해 피카소가 미국에 폭넓은 관심을 얻어냈다는 ‘전설’이 인구에 회자되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남매는 미국에 현대예술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바가 거의 없고,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파리에 살면서 파리의 예술가들과 교유하는 미국인들이었을 뿐, 자신들의 조국에 현대미술을 알리는 데는 무관심했다. 

그러니 남매가 수집한 피카소의 놀라운 초기 작품들은 파리에 단단하게 안착했고 수십 년간 보존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도 거트루드는 미국에서 개최되는 전시에 자신의 컬렉션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스타인 남매가 피카소의 주요 후원자로 있었던 기간은 매우 짧았다. 

과연 미국은 현대미술의 불모지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일찍이 동시대 미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대중의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한 인물들이 있었다. 

존 퀸(John Quinn), 그리고 앨프리드 H. 바 주니어(Alfred H. Barr Jr.). 이 낯선 이름의 두 사람은 생전에 서로 만난 적 없고, 교류한 적도 없지만 20세기 초,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전환의 시대에 현대미술을 미국에 들여오고자 헌신한 인물들이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작가 휴 에이킨이 존 퀸과 앨프리드 바를 중심으로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의 복잡다단한 현대사와 미술사, 

그 방대한 자료를 촘촘하게 엮어 풀어낸 『피카소의 전쟁』은 세계문화사의 변화를 미술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낸 역작이다.

세계문화사의 지각 변동을 일으킨 두 사람

앞서 이야기했듯이 책의 중심축을 이루는 인물은 존 퀸과 앨프리드 바다. 

총 2부로 구성된 책에서 전반부는 존 퀸의 이야기를, 후반부에서는 앨프리드 바의 이야기를 다룬다. 책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의 말처럼 단순히 ‘다룬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작가는 문화사적 변천 과정을 조밀하게 속속들이 훑어 서술한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존 퀸은 놀라울 정도로 에너지 넘치고 교양 있는 뉴욕 월 스트리트의 변호사다.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T. S. 엘리엇의 시를 미국에 소개하고 “참신한 시인과 예술가를 발굴하고, 실험적인 작가들의 작품 출간을” 도왔으며, “논란이 무성한 연극무대를 후원하고, 

새로운 아일랜드 시에 대해 논쟁을 벌이며 긴 밤을 보내곤 했다”. 

퀸은 대부분의 미국인이 현대예술을 매우 의심쩍게 여기던 시절에도 아방가르드 회화 작품과 모더니스트 산문을 열정적으로 지지했는데 그가 소개한 예술가와 작품 중에는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의 「포가니 양」,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과 그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등이 있다. 

또한 법정에서 금기를 위반한 소설들을 변호했을 뿐 아니라, 현대예술에 부과되는 가혹한 수입관세를 없애고자 의회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최신의 예술은 사회 진보와 별개일 수 없다는 것, 최신의 예술을 대중에게 폭넓게 소개하는 일이 미국 문명을 현대 세계의 선봉에 서게 하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을 혼자 누리는 데 만족하지 않은 퀸은 오랜 시간 공들여 수집한 자신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에 전념하는 새로운 미술관의 설립을 바랐다. 

불행히도 그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일을 완수하기 전 1924년에 간암으로 사망했고, 그의 컬렉션 대부분은 유럽으로 되돌아가 흩어졌다.

퀸 사망 2년 후, 이스트 56번 스트리트에 자리한 2층짜리 전시장에 짧은 기간이나마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한 개인의 예술품 컬렉션을 훑어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마련되었다. 

퀸의 소장품 중 약 100여 점을 전시한 그 전시를 관람한 이들 중에는 20대 중반의 앨프리드 바도 있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바의 인생은 완전히 새로운 전환의 길로 접어든다. 

퀸의 소장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바는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사학자가 되고자 결심했고 연구에 매진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패에 낙담하고 좌절하기 일쑤였지만, 훨씬 더 특별한 기회, 존 퀸이 이루지 못한 유산의 핵심이라 할 만한 기회가 그를 찾아온다.

“자네, 현대예술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새로운 미술관을 운영해보고 싶지 않은가?”(269쪽)

MoMA, 그 역사의 시작

뉴욕의 세 친구, 릴리 블리스, 메리 퀸 설리번, 그리고 애비 앨드리치 록펠러는 가장 모험적인 미술관 창설의 원동력이 된 인물들이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모마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라도 이 세 여성이 없었다면 모마는 탄생할 수 없었다. 

넉넉지 않은 초기 자본으로 뉴욕 미드타운 헤크셔빌팅 12층을 임대해 처음 문을 연 모마는 현대미술에 취약한 미국 미술계에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인물을 애타게 찾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적임자가 나타난다. 

“매우 현대적인 앨프리드 바.” 이제 막 27세가 된 바는 고대 세계의 폐허 속에서 최신의 예술을 위해 설립된 모마의 초대 관장직을 맡는다. 

이후 시작되는 앨프리드 바의 분투기는 제2차세계대전, 경제위기 같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의 파도를 뚫고 대양을 건너 유럽에서 미국으로 예술의 지형도가 변화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현대미술의 상징이자 부적과도 같은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가히 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맹렬하고 치열한 시도와 실패가 뒤얽힌 대서사다.

책에는 퀸과 바, 두 사람 외에도 예술이라는 무대를 종횡무진 누빈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현대미술에 대한 야망의 동력을 제공한 피카소를 비롯해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현대미술의 씨앗을 뿌린 전설적인 미술상 폴 로젠베르그와 다니엘헨리 칸바일러, 그 밖에 미술계 안팎의 인물들이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거대한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벅차게 다가온다. 

역사가 매력적인 것은, 그리고 예술이 매력적인 것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 

그 과정에서 휴 에이킨은 수많은 자료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능숙하게 종합해 역사와 미학을 엮어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는 문화의 지형도가 변화하는 그 생생한 현장을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바라볼 수 있다.

“오늘날 문화 헤게모니를 장악한 뉴욕 현대미술관은 한때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마침내 피카소의 거대한 힘이 깨어났을 때, 무엇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추천평
“휴 에이킨은 복잡하게 얽힌 미술사의 산더미 같은 자료를 날카로운 통찰과 예리한 판단력으로 훌륭하게 재구성했다. 이 책은 살아 있는 역사 위에 우뚝 섰다.”
- 뉴욕 타임스 북리뷰


“탄복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흥미롭다! 『피카소의 전쟁』은 인상 깊은 전기적 세부 정보를 탄탄히 엮어 만든 대단히 훌륭한 이야기다.
- 뉴요커


“휴 에이킨은 명쾌하고 섬세하며 유려한 문장으로 20세기 초, 변화하는 예술의 지형도와 간과되었던 미술사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 배니티 페어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000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