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한국근대사 연구 (독서요약)/3.일제강점기 (식민지배)

붉은 시대 (2025)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동방박사님 2025. 9. 24. 06:20
728x90

책소개
광복절 80주년을 맞는 올해는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창당 이후 공산당은 항일투쟁 현장에서 늘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나라를 되찾는 것을 넘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은 ‘반제국주의, 소수민족 해방, 최저임금 보장, 산업재해 보상, 노동자의 경영 참여, 토지 개혁, 동성애 탈범죄화, 임신 중지 합법화, 유급 출산 휴가’ 등 급진적인 의제를 거침없이 내세우며 가장 억압받은 이들을 위한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주장했다.

 가히 ‘붉은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전간기(1, 2차 세계대전 사이) 조선 공산주의운동을 복각하는 이 책은 조선의 좌파운동을 세계사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며 조선 공산주의운동이 당대 러시아와 독일, 중국 등지의 운동과 어떻게 상호 작용해왔는지를 새롭게 밝힌다.

 

또한 민족적ㆍ민주적ㆍ계급혁명적 성격을 모두 결합한 식민지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강력하고 고유한 특징을 분석한다.

나아가 공산당 활동에 참여한 이들의 지적 궤적과 조선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독창적이고 선구적인 연구를 소개하고, 당내 분파 논쟁과 당 강령 갱신, 조선 사회에 대한 당의 분석과 전략, 실천이 당대인의 사고에 끼친 영향을 알아본다.

 

1928년 일제에 의한 조선공산당 해체 이후 운동의 쇠퇴와 꾸준한 재건 시도, 이러한 부침 속에서도 이어져온 ‘붉은 시대’의 유산에 관해서도 살피며, 현재적 맥락에서 식민지 조선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비판적 계승이 가능할지 또한 가늠해본다.

소련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귀화한 저자 박노자는 코민테른 기록 보관소의 자료는 물론, 일본, 한국, 러시아, 중국의 1차 자료를 풍부하게 살피며 ‘식민지 조선 붉은 시대’의 철학적ㆍ사회적ㆍ정치적 실천에 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내용까지를 촘촘히 복원한다.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이 다시 발발하고, 21세기판 반공주의가 각종 혐오와 결합해 등장하고, 전 세계적으로 반이민ㆍ반다양성의 파시즘적 양상이 출현하는 등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는 시기, 이 책은 ‘의도된 망각’을 거부하고, ‘극우 시대’를 헤쳐 나갈 실마리를 비춘다.


목차
서론_ 1919년에서 1930년대 후반, 전 세계적 붉은 시대와 식민지 조선

1부. 조직

1장_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주체들
2장_ 분파와 분파투쟁
3장_ 공산주의 강령

2부. 새로운 지식

4장_ 박치우의 마르크스주의 철학
5장_ 사회주의 민족 개념과 역사
6장_ 1945년, 김사량의 중국 해방구 관찰
7장_ 조선인 여행자의 눈에 비친 붉은 수도 모스크바

후기_ 남한과 북조선의 사회주의
결론_ 조선의 붉은 시대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추천의 말_망각을 거부하라!


저자 소개 
저 : 박노자 (Vladimir Tikhonov, Park No-ja,블라디미르 티호노프, 朴露子, 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춘향전]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


역 : 원영수 
1982년 대학 입학 이후 학생운동, 노동운동, 좌파정치운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1997년 이후 국제 연대 활동에 주력해왔으며,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국제기획실장,『노동자의힘』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포럼 운영위원, 도서출판 타흐리르 편집장으로 일한다.

 옮긴 책으로지금 건설하라, 21세기 사회주의』,『세계화의 가면을 벗겨라』,『한국의 민중봉기』와『아시아의 민중봉기』가 있다.『The Internationa...

책 속으로
그들은 또한 1945년 이후 지적 세계를 많은 면에서 예견하고 있었다.

 1930년대 중후반, 전체주의적 국가 이데올로기가 유럽의 많은 나라, 일본제국, 중화민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을 때, 조선의 선구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파시즘의 지적·철학적·사회정치적 뿌리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제공했다. 

 

그들은 ‘민족문화’의 보수적 본질화와 유사한 경로로 향하고 있던 조선 내 동시대 문화적 민족주의에 반대했다. 

그들은 처음으로 본질화된 ‘민족’ 또는 ‘민족사’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고, 민족은 근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태어나고 있으며, 인기 있는 민족주의적 글에서 흔히 ‘민족성’으로 표현되는 영구하고 탈역사적인 불변의 특성은 허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조선 고대의 원시적·원초적 ‘조선다움’의 무비판적 물신화와 1930년대 조선의 신화적 건국 군주 단군에 대한 민족주의적 숭배에 내재한 위험을 지적한 소수의 논쟁가들이었다.
--- p.39~40

복지국가나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식민지 시대 공산주의자들의 투쟁 목표였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최종 목표에 비해 급진적이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전에 분명히 밝힌 것처럼, 붉은 시대의 급진파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대중에게 국유화된 경제 시스템의 관리직까지 올라갈 수 있는 대규모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을 허용함으로써 그들이 꿈꾸는 당-국가가 사회를 철저하게 민주화하기를 원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과거 급진주의 계승자들 대부분이 더 이상 당-국가 건설 및 경제 국유화를 꿈꾸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경제적 의미에서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개혁을 지향한다. 

그들은 비특권층 출신의 계층 이동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무상 고등교육을 보장하고, 노동자가 생산과정과 자신이 속한 현장의 문제에서 더욱 주인이 되게 함으로써 주체성을 강화할 현장 민주주의를 원한다. 

오늘날 한국 좌파운동의 급진성 정도는 전 지구적 상황과 마찬가지로 ‘붉은 시대’의 그것에 거의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두 운동은 본질적으로 유사하거나, 관련한 영감에서 비롯되었다.
--- p.44

만약 “잃을 것이 사슬밖에 없는 노동자”라는 마르크스의 표현이 가시적으로 적용되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식민지 시대 조선이었다. 

 

독일이나 심지어 (1905년 혁명 이후 대의제가 도입됐고 노동자도 제한적인 투표권을 얻었던) 러시아와 달리, 조선의 노동자는 시민이 아니었다. 

그들은 투표권 없이 지배당했으며 세금도 내야 했다. 

 

대부분의 경우 고용은 불안정했고, 임금은 일본인 동료 노동자보다 상당히 낮았지만, 일본의 공장법은 일본 식민지 조선에는 적용되지 않았고, 최초의 총독부 내무국 노무과는 1941년에야 겨우 설립됐다. 

 

노동자의 급진주의는 자발적이면서 강력했고, 따라서 대안적 근대성에 대한 인텔리겐치아 급진파의 비전과 공장 생산과정에서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자신을 재창조하려는 노동자의 자연스러운 열망은 결합할 수밖에 없었다. 

인텔리겐치아 급진파에게 조선에서 사회주의 문화 비전을 발전시키는 사업에서 희망과 영감을 준 것은 공장 현장에서의 급진적 경향이었다.
--- p.86

1920년대 초반 주로 해외에 기반을 둔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상해파 고려공산당 사이의 논쟁으로 시작해, 민족적 접근 대 계급적 접근을 둘러싼 논쟁은 1920년대 중반 조선 공산주의운동 내 상이한 분파들 사이에서 계속됐다. 

 

논쟁의 주역은 이르쿠츠크파 공산주의자들과 직접 연계된 (비합법 조직인) 화요회, 엄격한 레닌주의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해 1925년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들이 세운 일월회, 상해파와 연계된 (비합법) 서울파와 (비합법) ML(마르크스-레닌주의)파 등이었다. 

투사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였던 ML파는 1926년 말 정통 이론 위에서 분파를 극복한 (통상적으로 ‘제3’이라고 불리는) 통일된 조선공산당을 조직하려고 시도했다. 

 

모든 분파들은 조선의 공적 공간에 마르크스주의의 기초를 소개하는 거대한 사업에 기여하려 했다. 

정백鄭栢, 1899~1950, 이성태李星泰, 1901~38, 그리고 다른 서울파와 상해파 활동가들은 1923~25년에 마르크스주의 출판사 민중사民衆社를 운영했고, 이 출판사는 예를 들어 마르크스의 중요한 1849년 저작인 〈임금노동과 자본Lohnarbeit und Kapital〉의 조선어 번역을 최초로 출판했다.

 대부분 기존의 일본어판에 기초한 것이었다.
--- p.105~106

안광천은 조선 공산주의운동에서의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강조했다. 

대중운동의 기반이 여전히 형성되는 과정이었고, 노동계급이 막 정치투쟁의 장에 들어온 시점에서, 안광천은 러시아어에서 유래한 특정한 함의를 지닌 용어인 ‘인텔리겐치아’가 민족주의운동과 공산주의운동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광천은 인텔리겐치아의 취약성, 즉 끊임없는 조직적 분란과 보다 온건한 지식인이 “개량주의자로 전락해 부르주아지와 타협하는” 경향 등을 인정하면서도, 강점을 강조했다. 

어쨌든, “선진국”의 지식인과 달리, 산업적으로 덜 발전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과 직접적 관련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본가에게 굴종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다양한 사회적 모순에 대한 상대적으로 강한 불만을 품는” 경향이 있었다. 

지식인의 지배가 조선 공산주의의 약점이었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안광천은 지식인의 과장된 역할의 불가피성을 일정 부분 인정했다.
--- p.123

코민테른은 명확하게 반식민 민족주의를 일시적일지라도 잠재적 동맹자로 보았고, 반면 열강에 너무 긴밀하게 연결돼 있으며, 식민지 기업에 연루되거나 영토 확장을 추구하는 민족주의는 반동적이라고 비난했다.

 예를 들어, 코민테른과 가맹 팔레스타인공산당은 영국을 비롯한 다른 식민주의자들을 대표해 시온주의를 “아랍 대중”의 (정당하고 혁명적인) 민족주의를 억압하는 “제국주의의 군사 부대”라고 정의했다. 

 

이런 의견을 충분히 지지하며 조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시온주의자들이 영국제국의 권력에 의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국민당은 1927년 반공주의적 쿠데타 때까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지만, 그 이후 국민당의 민족주의는 자연스럽게도 반동적인 것으로 재정의됐다.
--- p.214

만약 우리가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근대의 대안적 이상을 제시할 때부터 현재까지 전 지구적 역사의 흐름을 총체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유럽-아메리카 핵심부에서든, 정세에 따라 다양한 추격형 발전 계획을 추진하는 반주변부와 주변부에서든, 지배적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오히려 그 핵심부 지역에서 자본주의는 20세기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을 통해 강화됐고,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정치적으로 노동계급을 복지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시민, 효율적 생산자, 돈을 쓸 줄 아는 소비자로 만들어주었다.

 

 잘 확립된 민주주의 메커니즘과 고도의 노동자 조직을 갖춘 서유럽 산업주의 요람의 상황이 그렇다면, 유럽 사회민주주의자의 (반)주변부 이데올로기적 “사촌”, 즉 볼셰비키 또는 볼셰비키의 중국과 북조선 후계자들은 핵심부 헤게모니 세력의 제국주의적 침탈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임무를 추가로 부여받는 가운데 자본주의 생산양식 그 자체를 철폐하는 길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 p.290

일본 경찰은 몇 년간 활동한 대부분의 지하 그룹들을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파괴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그룹이 집요하게 재등장하면서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대안적 근대의 비전을 도시와 농촌의 조선인 노농 대중 다수의 일상투쟁과 연계할 수 있게 됐다. 

 

지식인들의 서클로 시작한 조직이 1930년대 중반에는 진정한 풀뿌리 운동으로 발전했다. 

일본 경찰이 조선의 상황을 보고하며 1933년 성진, 부산, 원산과 기타 조선 항구에서 적발한 선원과 항만 노동자의 적색조합 사건을 핵심으로 적시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 공산주의는 공식적으로 조직된 당 중앙이 부재했는데도 불구하고 주목해야 할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 p.318

공산주의자의 조직화 사업은 도시와 농촌 지역의 짓밟힌 자들, 즉 적색조합, 급진파들이 지도하는 야학과 독서회에 참여한 노동자와 농민이 사회정치적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했다. 

더 나아가 공산주의자는 그들의 풀뿌리 지지자들이 평범한 삶의 투쟁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강화하고 요구와 열망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지하 공산주의자의 활동 방식은 어쩔 수 없이 식민 국가의 경찰 기구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 p.320

전시 조선의 좌파는 일본 본토, 독일 또는 헝가리와 다르지 않게 탄압받았지만, 결코 절멸당하지는 않았다. 

일본 식민 지배가 끝나자마자, 과거의 좌파 네트워크가 부활해 도처에 등장한 인민위원회와 결합했다. 

 

남한의 인민위원회들은 다시 미국의 탄압을 받았지만, 결국 새로 탄생한 북조선에는 중요한 지지 기반이 되었다. 

수많은 식민지 시대 국내파 공산주의 인물, 저명하게 1945년 이후 남한 공산주의자의 지도자가 됐고 이후 북조선의 외상外相이 된 박헌영 같은 인물은 해방 후에도 정치적으로 아주 뚜렷한 역할을 했다.

 

 심지어 남한 정권의 강경 반공주의도 이제는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했던 식민지 시대 생존한 좌파가 1950~60년대 정치 활동을 계속하고, 1980년대 태동하는 노동운동과의 연계를 통해 자신을 강화하고 계속해서 현재까지 남한의 정치와 사회 무대에서 그 투쟁을 계속한 좌파-진보운동을 낳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일본 본토나 수많은 중부 유럽 사회와 다르지 않게, 조선의 전간기 사회주의의 가장 커다란 역사적 기여는 조선의 지적 생활에서 좌파의 역할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연구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로 이런 역할이다
--- p.321~322

박치우가 보았듯이, ‘개인의 자유’는 근대 자본주의 이행 시기에 발명됐고, 운명과 출생으로 부여된 신분 체계에 의해 지배되던 전근대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경제에 내재한 모순(과잉생산과 노동자의 과소소비 사이의 불균형으로 인해 이윤율이 하락하고 그에 따라 자본이 군사화로 유입되는 현상)은 세계대전과 함께 부르주아 자유의 원초적 형태와 상반되고 이질적인 통제경제와 파쇼 사회를 불러왔다.

 

 변증법적으로 말하자면, 부르주아적 개인의 자유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스스로를 부정했다.
--- p.324~325

그렇다면, 1920년대와 1930년대 조선의 좌파 철학, 여행기 또는 논쟁은 그들의 명백한 시대적 한계를 고려해 ‘진보’에 대한 모스크바 중심적인 과장된 묘사와 ‘부르주아 문화’의 내재적 자기파괴에 대한 교조적이고 그른 대예언으로만 판단해야 할까?

 

 한계는 명백했지만, 성취 역시 분명하다. 불편한 ‘비본질적’ 뉘앙스가 제거된 신생 소비에트 유토피아에 대한 과장된 묘사는 어쨌든 ‘현재 속의 미래’ 소비에트의 서사에 영감을 받은 ‘붉은’ 노동자와 농민(1장을 보라)에게 자신을 조직하고 교육하고 힘을 키울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들의 꿈을 근대적 용어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전례 없는 아래로부터의 동원을 강화하는 접착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그들은 1980년대 남한에서 급진화된 지식인이 민주화투쟁을 이끌 때 중요한 역사적 선례이자 영감의 원천이 됐다. 

 

또한 토지개혁 또는 소비에트에서 영감을 받은, 복지국가를 향한 식민지 시대 공산주의의 요구들은 해방 후 북조선에서 개혁의 방향을 이끌었고, 북조선은 1950년대 중반에 공식적으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최초의 제3세계 복지국가 가운데 하나가 됐다(3장을 보라).
--- p.328

출판사 리뷰
“과거의 망각은 미래의 더 풍부한 가능성의 망실로 이어진다.
『붉은 시대』는 이제라도 이런 수렁에서 빠져나오라고 다그치는 나팔 소리다.” _장석준, 사회학자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1919~1945,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광복절 80주년을 맞는 올해는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창당 이후 공산당은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등 항일투쟁 현장에서 늘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일제강점기에 형무소를 드나든 이들 중 다수는 공산당원이거나 그 지지자 또는 공산당 재건운동 참여자였다.

”(342쪽, 추천의 말) 나라를 되찾는 것을 넘어 더 나은 사회를 꿈꾼 이들은 ‘반제국주의, 소수민족 해방, 최저임금 보장, 산업재해 보상, 노동자의 경영 참여, 파업권 보장, 토지개혁, 유급 출산 휴가’ 등 급진적인 의제를 거침없이 내세우며 가장 억압받은 이들이 주체가 되는 사회를 꿈꾸고 주장했다. 

 

이 책 1장에서 드러나듯 당시 항일투쟁의 성격이 백정, 기생, 여성, 청소년까지를 포함하는 유례없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일 수 있었던 까닭이자, 중국혁명에 대한 연대, 일제의 만주 침략에 대한 반기,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소수민족 해방 지지 등 초국경적 연대 활동으로 뻗어갈 수 있던 이유다.

1945년 해방 이후 이념 갈등과 체제 경쟁의 영향으로 남북 모두 군사적 대치와 상호 경쟁적인 개발 권위주의 정치로 나아가면서 조선 마르크스주의운동의 역사는 의도적?강제적으로 망각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기의 유산은 근현대의 초석이 되어 현재까지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래 마르크스주의자였다가 이후 우익으로 전향한 유진오가 초안을 작성한 대한민국 헌법은 그 시작부터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조화”(346쪽)를 기본 정신으로 삼았으며, “우파가 우상시하는 박정희의 경제성장 위업”(348쪽) 또한 사회주의 계획경제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복지국가’ 개념의 구상은 물론, 노동3권의 보장과 8시간 노동제, 근로 조건 개선과 임금 인상을 대대적으로 이끈 1987년 노동자대투쟁 또한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운동의 이념과 실천을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운동의 역사와 그 유산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복원하는 이 책은 현대 한국 사회를 이해하고 “미래의 더 풍부한 가능성”(348쪽)을 꿈꾸기 위해 “대한민국 정신사의 잃어버린 고리”(346쪽)를 복원하는 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전 지구적 맥락에서 전개된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전략과 실천

기존의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서술과 이 책의 가장 큰 차이는, 조선 마르크스주의운동을 당대 유럽, 러시아, 일본, 중국 등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다룬다는 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식민지 조선의 붉은 시대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의 시대였다.

 

 제1차 세계대전과 이후 대공황, 침략 전쟁의 발발, 빈곤과 차별, 불평등의 심화 등 자본주의 체제의 종말에 관한 코민테른의 파국적 예언이 실현되는 듯 보였던 “비상사태” 한가운데서 조선의 위기 또한 심화되었고, 여기에 식민 지배를 받는 상황까지 더해져 다중의 위기를 겪는 와중이었다.

“왜 이런 일이 1919년에 일어났는가? 

그 시점의 국내 사건들은 거대한 전 지구적 흐름과 중첩되어 일어났다. 

국내에서는 1910년 일본의 조선 식민화 이후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는데, 농민은 토지 소작 조건의 악화를 원망했고, 일부 지주와 부유한 상인도 식민 당국이 산업 발전을 제한하자 경악했다.

 

 개항 이후 등장한 도시 중간계급은 진보적·근대적 발전의 부재에 절망했다.

 게다가 식민 행정부가 공식화한 조선인의 차별은 ‘인민’을 역사의 주체로 만드는 기막힌 장치였다.

한편, 전 지구적으로 1919년은 반란의 해였다. 1968년보다도 급진적이었다. 

1968년에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중심지에서 일어난 ‘반란들’이 이윤을 위한 생산, 자본축적, 공적 영역에서 대량소비 논리를 상징적으로 공격했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존재 자체를 진정으로 위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19년에는 세계대전과 스페인독감 팬데믹 이후에, 그리고 전후 경제 불황 와중에 진정으로 세계체제가 최종적으로 폭발 직전에 있다는 뚜렷한 느낌이 존재했다.”
--- 「서론」 중에서

다중의 모순과 억압 속에서 조선의 좌파들은 마르크스를 비롯한 최신의 논의들을 참고하고, 코민테른의 이데올로기와 지침을 당 강령에 반영하며, 타국의 반제국주의ㆍ계급투쟁의 영향을 받는 등 그들의 투쟁을 국제적ㆍ국제주의적 맥락 안에 놓으면서도 식민지 조선의 고유한 현실을 중요하게 염두에 두며 ‘조선의 해방’을 위한 전략을 벼리고 ‘해방 조선’에 대한 기대와 상상을 펼쳐 나갔다. 

 

2장에서는 조선의 위기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과 전략으로 단일하기보다는 다단했던 1920~30년대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양상을 조명한다. 

이 시기 공산주의 그룹 분파 갈등의 주요 골자는 그룹의 지도부 대부분이 프티부르주아계급 출신 지식인이라는 한계와 계급투쟁보다 반제국주의 투쟁을 우선하는 (공산계ㆍ비공산계) 민족주의 그룹과의 관계 맺기에 관한 것이었다. 

 

정통 공산주의 그룹의 관점에서는 조직 내 계급적 위계와 민족혁명 너머를 상대적으로 덜 고려하는 운동의 방향성은 ‘계급혁명’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성취하는 데 어려움을 만드는 요인이었다.

그렇지만 대중투쟁의 기반이 계몽을 거치며 아직 형성 중에 있고, 반제투쟁이 계급투쟁에 비해 광범한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조선의 공산주의자 대부분은 어느 정도의 긴장 속에서 이 모순들을 수용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당대 코민테른은 물론, 후대 역사가들 역시 이 시기의 분파주의를 공산주의 대의의 실천을 가로막는 부정적 요인으로 해석했지만, 저자는 이러한 분파 간 경쟁으로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ㆍ전술적 성숙이 크게 가속화”(127쪽)되었다고 재해석한다. 

 

각자의 입장을 선명히 드러내면서도 타협과 교섭의 기회마다 치열한 고민을 이어간 당시의 역사는 이견을 가진 세력이 어떤 식으로 함께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참조할 이야기를 전해준다.

3장에서는 조선 공산주의 당 강령을 시기적으로 살펴본다.

 강령이란 당 차원에서 제시하는 조선의 혁명적 미래상이자 대중에게 호소할 표어이기도 했기에, 당은 강령을 통해 식민지 사회 다양한 하위 계층의 “근대적ㆍ민주적 요구”를 종합하고, 이를 “보편주의적?

탈민족주의적 세계관”과 조화시키며, “주류 조선 사회의 보수적 분자들을 밀어내”며 “광범한 반식민 동맹”(133쪽)으로 나아갈 의도를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조선공산당 17대 슬로건에는 ‘8시간 노동제, 최저임금과 실업수당, 파업권 보장, 출산수당과 여성의 모성 휴가 보장, 여성과 아동의 위험한 노동 금지, 의무적 무상교육과 직업교육, 노령연금 지급(남성은 60세, 여성은 55세 이후)’ ‘모든 지주의 토지?

일본 국유지 몰수 후 농민에게 재분배’ 등 지금의 관점에서도 급진적인 의제들이 포함되었다. 

조선공산당의 이러한 강령은 공산주의보다 민족주의적 경향이 우세했던 신간회 같은 항일 단체에도 영향을 미쳐, 이들로 하여금 ‘성평등, 성매매 철폐, 형무소 재소자에게 독서와 통신의 자유 허용’ 의제 지지 선언을 하게 하기도 했다.



‘조선’ ‘조선 민족’ ‘조선인다움’을 둘러싼
날카롭고 치열한 논쟁

사회적 결속의 방식으로 민족주의적 방식이 대중적 호응을 얻었던 가운데, 4장과 5장에서는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당대 공산주의자들의 논의에 초점을 맞춘다.

 

 4장에서는 ‘단군 신화’와 ‘혈통주의’를 매개로 점차 본질화ㆍ국수주의화되어가던 ‘민족’ ‘민족사’ 담론을 비판하고, 극우 민족주의를 흡수한 자본주의가 결국 ‘파시즘’으로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내다본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박치우의 사상을 다룬다.

 

 조선에서의 극우 민족주의의 부상을 미리 예측하고 우려한 그는 ‘조선인’의 정체성을 비이성적ㆍ신화적 근거에서 찾는 당시의 경향을 지적하며, ‘조선인’의 위치를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단계론 속에서 파악하려 시도했다. 

나아가 역사 단계론에 따라 사회가 발전하려면 사회 내부에 엄연히 존재하는 모순을 ‘개인적’ㆍ‘집단적’으로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며, “사회적 모순의 진정한 성격에 대”(178쪽)한 “주체적” 이해를 강조했다. 

 

공산주의 사상을 ‘전체주의적’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데 익숙한 이들에게는 역설적으로 들릴 이야기이지만, 마르크스주의자인 그에게 파시즘은 역사 발전론의 대전제인 변증법 자체를 부정하여 체제 내 모순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고,

 “민족(국민)의 유기적 일부분인 한에서만” 개인의 존재를 “허용”하고, “개인의 자유”를 “민족(국민)국가의 요구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186쪽)하는 위험한 체제였다. 

그가 강조한 ‘주체성’ 개념은 훗날 북한에서 ‘주체사상’ 개념으로 이어진다.



5장에서는 ‘조선인’ ‘조선 민족’ ‘조선적인 것’과 관련된 정의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식민지 조선의 지적 세계를 구체적으로 살핀다.

 

조선 민족을 “특수성, 독창성, 단일성, 동질성 개념으로 정의하”(225쪽)여 긍지를 고양하고 저항의 구심점을 마련하려던 민족주의 진영의 구상을 “위험한 비역사적인 시도”로 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족’을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자, (운명과 출생에 의해 결정된다는 측면에서) 전근대적 계급 모순의 일종으로 이해하며 “민족주의자들이 구축한 절대화된 민족 개념을 탈신화화하려고”(225쪽) 노력했다.

 

반공주의와 민족 혐오가 교묘히 결합되어 그 효과를 증폭하고, 식민주의?민족주의적 발상이 전쟁이라는 극단의 폭력으로 다시 나타나는 시기, 민족주의를 둘러싼 식민지 조선의 첨예한 논의들을 다시 살펴보는 시도가 “포스트 종족-민족주의 시민사회”(226쪽)로 나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의 꿈과 좌절
그리고 망각된 역사가 남긴 것에 대하여

앞선 장이 ‘조선의 해방’을 위한 전략과 그 실천에 초점을 맞춘다면, 해방 직전ㆍ직후를 주로 다루는 6~7장은 ‘해방 조선’의 청사진에 주목한다.

 

 6장에서는 디아스포라의 시각에서 조선인 정체성에 관한 글을 쓰던 작가 김사량의 『노마만리』를, 7장에서는 조선인의 모스크바 여행기를 살피며 ‘해방공간’에 대한 당대 좌파 지식인들의 상상과 기대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본다. 

 

항일 저항 전쟁 동안 공산주의 노선의 준국가를 건설하려 시도한 중국공산당의 ‘해방구’를 방문한 기록인 『노마만리』에서 저자는 “근대적 계몽” “대중의 자발적 참여” “시장경제의 현명한 활용” 제국주의에 맞서는 “조선과 중국의 평등주의적 동맹”(252쪽)에 주목한 김사량의 시선을 읽는다.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의 갈망이 반영된 조선인의 모스크바 기행문을 소개하는 7장에서는 장밋빛 관찰기가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누락한 소련 사회의 모순들(스탈린 체제하에서 심화된 관료적 위계제와 평등주의로부터의 후퇴 등)을 짚으며 ‘해방 조선’의 미래 비전에 대한 조선 좌파 지식인의 순진함과 이상주의를 지적한다.

동시에, 조선 사회주의운동의 불씨를 실천적 차원에서 이어가기 위해 다소 이상주의적일지라도 ‘붉은 수도’ 모스크바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여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후기에서는 일제 탄압에 의한 조선공산당 해체 이후 무수히 이어진 공산당 재건 시도, 해방 직후 대중의 지지를 얻은 조봉암의 진보당과 그 폭력적 해체, 60~61년 혁신계 정당 활동, 유신 체제하 풀뿌리 좌파의 재탄생, 인민혁명당 사건, 1987년 노동자대투쟁과 80년대 노학연대ㆍ지하 사회주의 서클 활동, 

 

2000~2008년의 민주노동당 창당 등으로 이어져온 식민지 조선 공산주의운동의 계보를 짚으며, 현재적 맥락에서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운동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논한다.



‘의도된 망각’을 거부하고
우리 안의 ‘해방 공간’을 복원하자는 뜨거운 제안

소련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귀화한 저자 박노자는 코민테른 기록 보관소의 자료는 물론, 일본, 한국, 러시아, 중국의 1차 자료를 풍부하게 살피며 ‘식민지 조선 붉은 시대’의 철학적?

사회적?정치적 실천에 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내용까지를 촘촘히 복원한다. 

 

조선공산당은 1928년 일제에 의해 해체된 뒤 다시 재건되지 못했지만, 이후에도 망명 활동가와 지하 투사들, 이론가들은 당 강령을 갱신하고 이론을 정교화시켰으며, 적색노동조합과 적색농민조합을 활동을 계속 이어가며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도모했다. 

비록 그 역사는 탄압 속에서 망각되었더라도, ‘붉은 시대’의 불씨는 결코 꺼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현대 남한과 북한의 정치?사회적 토대를 이루었음을 밝히는 것 또한 이 책의 중요한 시도다.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이 다시 발발하고, 21세기판 반공주의가 각종 혐오와 결합해 등장하고, 전 세계적으로 반이민ㆍ반다양성의 파시즘적 양상이 출현하는 등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는 시기, 이 책은 다시 도래한 ‘극우 시대’를 헤쳐 나갈 실마리를 우리 안에서 발견하는 길을 안내한다.

“대한민국 시민 대다수는 식민지 조선 공산주의운동과 함께 걸어온 현대 한국 사회의 형성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무지할 수밖에 없다. 

“농업의 재구조화, 탈식민화, 성평등과 복지국가”의 씨앗들이 뿌려진 역사를 모르니, 그 성과들을 줄기차게 발전시켜나가는 힘 또한 약하게 마련이다. 

 

심지어는 우파가 그토록 우상시하는 박정희의 경제성장 위업마저 ‘경제 계획’이라는 관념을 익숙하게 만들었던 이념-운동의 영향 없이 성립할 수 없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제 와서는 다른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더 신자유주의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기후 위기 대응이나 돌봄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 전반을 과감히 새로 기획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렇듯, 과거의 망각은 미래의 더 풍부한 가능성의 망실로 이어진다.”
--- 「추천의 말」 중에서

추천평
망각을 거부하라!
올해는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다. 

조선공산당은 1925년 4월 17일 경성(서울)에서 창당했다. 

 

이후 공산당은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등 항일투쟁 현장에서 늘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일제강점기에 형무소를 드나든 이들 중 다수는 공산당원이거나 그 지지자 또는 공산당 재건운동 참여자였다.

 특히 해방의 그날이 가까워질수록 사상범 가운데 공산주의 관련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그렇다면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허투루 지나쳐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항일독립운동을 바탕으로 건국했다고 자부하는 나라라면 말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공산주의’라는 네 음절 단어와 또 다른 복잡하고 심란한 인연을 맺고 있다. 

이 단어를 내세운 정권과 끔찍한 전쟁을 벌여야 했고, 이로 인한 상처가 아직까지 모든 이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규정하고 있다. 

 

더 슬픈 것은 이런 비극을 독재와 억압, 무지와 폭력의 빌미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좀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친위쿠데타를 시도했다 결국 파면당하고 만 대통령은 집권 3년 내내 이른바 “공산전체주의”와의 전쟁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마치 이 호소에 응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선공산당 창당 장소에 설치된 작은 표석이 어느 극우 인사에 의해 불법 철거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형편이니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그에 합당한 관심과 평가를 받길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4월에 학술적 성격의 몇몇 단체가 주최한 조촐한 기념 토론회조차 이 행사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쏟아내는 소음을 참으며 진행돼야 했다.

이러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2023년 출간된 박노자 교수의 영문 저작 The Red Decades가 드디어 우리말로 옮겨져 한국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공산당과 그 전신인 고려공산당 그리고 공산당 해산 이후 이를 새롭게 재건하려 한 운동을 중심으로 좌파 성향 항일독립운동의 여러 측면을 깊이 파고든다. 

 

최근 들어, 20세기 말에 시작된 좌파 항일독립운동 역사 연구의 성과들이 거대하고 풍부한 서사로 정리돼 대중에게 소개되고 있는데, 이 저작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붉은 시대』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전개된 항일투쟁의 역사 가운데에서도 그 사상사 혹은 지성사라 할 측면을 부각한다. 

 

공산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세대, 계층, 집단의 지적 궤적을 훑고, 공산당 내 분파 간 논쟁이나 지속적인 당 강령 갱신, 식민지 조선 사회에 대한 체계적 분석 등이 당대인들의 사고에 끼친 영향을 밝혀내며, 우리 시대의 지구화 이전에 이미 한반도 밖 세상과 활발히 소통하며 교섭하던 식민지 세대 지식인들의 드넓은 시야를 되살린다. 

 

그러면서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지낸 과거의 이 경험들이 현대 남북한 사회에 어떠한 깊숙한 자국을 남겼는지 환기시킨다.

저자는 이 모든 작업을 20세기 전반의 전 세계적 시대정신이라는 보편적 무대 위에서 전개한다.

 책 제목인 ‘붉은 시대’가 바로 그러한 무대다.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폭발한 러시아 10월혁명의 여파로 세계 곳곳에서 대중의 전례 없는 각성, 민주적 집단행동이 분출했다. 

 

특히 1919~1923년 사이에 저자가 ‘붉은 물결’이라 부르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놀라운 드라마가 펼쳐졌다. 

경영진 없이 노동자의 힘만으로 당대 최첨단 제품(자동차)을 생산하는 실험이 벌어진 이탈리아의 ‘붉은 2년’도, 모든 역사학자가 현대 중국의 출발점이라 인정하는 5.4운동도, 식민 지배를 받던 민족들에게 제국주의에 맞서는 횃불로 여겨진 인도의 비협력운동도 모두 이 시기에 전개된 전 세계적 민중투쟁의 일부였다. 

 

『붉은 시대』가 지적하듯이, 한반도의 3.1운동도 이 거대한 흐름의 당당한 한 지류였다. 

1919~1923년의 전 지구적 항쟁을 계기로 각국에서 공산주의운동이 시작된 것처럼, 식민지 조선에서도 3.1운동에 참여한 세대의 주도로 공산당이 출범한다.

그러나 ‘붉은 물결’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양차 대전 사이의 훨씬 더 긴 기간은 혁명의 여진이 생동하던 시기라기보다는 파시즘과 스탈린주의가 승리를 구가한 시기로 기억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이 채 진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공황이 닥쳤고, 새로운 세계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경제위기가 지속됐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 시기를 지배한 것은 ‘비상사태’의 논리였다.

 이 논리에 따라, 서유럽에서는 파시즘이 의회민주주의를 철저히 파괴했고,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지난날의 혁명 동지들이 서로를 ‘인민의 적’ ‘파시스트 간첩’으로 고발하고 심판하며 즉결 처형했다. 

식민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 역시 이런 그늘진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해방 이후 새 나라를 건설하면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발전시켜가야 할지 깊이 고민하지 못한 채 1930년대 소련 사회를 교과서처럼 추앙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후세대인 우리가 ‘공산주의’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부정적 기억이나 인상과 직결된 ‘붉은 시대’의 어두운 측면들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붉은 물결’을 통해 분출했던 새 세상을 향한 열망과 의지가 ‘붉은 시대’의 나머지 시기에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음을 강조한다. 

 

가령 파시즘을 자본주의 문명의 필연적 귀결로 파악하고 이에 맞서 가장 전투적으로 싸운 것은 공산주의운동 안팎의 활동가, 지식인들이었다. 

 

일본형 파시즘을 향해 나아가던 일제 치하 조선에서도 박치우 같은 좌파 지식인들이 이와 같은 시각에서 파시즘을 선구적으로 비판했다. 

 

또한 소련 체제가 경직되어가는 와중에도 소련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공산주의운동은 노동자, 농민의 젊은 세대가 구세대의 패배적 정서와 지적 낙후성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활기찬 통로가 되어주었다. 

1930년대 조선에서도 ‘적색’노동조합이나 농민조합 활동을 통해 이러한 노동자, 농민의 ‘유기적 지식인’들이 역사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시대’에 자라난 이 모든 새로운 요소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보다 조금은 더 나아진 세계의 토대가 됐다. 

그래서 저자는 “전간기 급진파들의 한계가 무엇이었든, 그들은 많은 측면에서 농업의 재구조화, 탈식민화, 성평등과 복지국가가 구현될 1945년 이후 세계의 선구자였다”고 평가한다.

『붉은 시대』의 이러한 공산주의 사상사 복원 작업은 대한민국 정신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여정이기도 하다. 

감히 대한민국과 공산주의를 이런 식으로 엮다니,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선동 논리에 여전히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는 이들에게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붉은 시대’를 뜨겁게 살았던 앞 세대를 통째로 망각했기에, 아니 망각을 강요받았기에 무참히 가려지고 만 대한민국의 더 원만한 얼굴과 더 풍부한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붉은 시대』는 집단적 기억의 집요한 발굴과 환기를 통해,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데도 우리 스스로 채 의식하지 못했던 또 다른 진실을 훤히 드러낸다.

 “망각을 거부하라!”는 민주주의를 억압해온 중화인민공화국 체제에 맞서 불굴의 투사이자 사상가 첸리췬錢理群이 부르짖은 표어이지만(『망각을 거부하라: 1957년학 연구 기록』, 길정행 외 옮김, 그린비, 2012), 20세기 한반도의 고된 역사를 어깨에 짊어진 우리에게도 역시 절절한 외침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첫 헌법이 제정되던 현장으로 돌아가보자. 

헌법 제정 과정은 1948년 6월 23일, 헌법기초위원회에서 헌법 초안 작성을 주도한 유진오 전문위원의 초안 해설로 시작되었다. 

유진오는 헌법의 기본 정신을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조화”라고 명확히 정리했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위하고 존중”하면서 동시에 “경제 균등을 실현해보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정신은 “경제상 자유”보다도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경제 질서의 근본 원칙으로 명시한 제헌헌법 제84조,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을 모조리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는 제87조 등으로 구체화됐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를 “공산전체주의”의 반대말쯤으로 이해하는 이들의 짐작과는 달리 대한민국이 건국하며 확인한 지향은 순수한 자본주의보다는 사회민주주의에 훨씬 더 가까웠다.

그날 그 자리에 있던 국회의원들에게는, 헌법 초안 발표자가 어떤 인물인지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었다. 유진오는 『붉은 시대』의 등장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비록 태평양전쟁 시기에 일제에 협력한 오점이 있지만, 유진오는 법학자이자 소설가로 활약한 저명한 좌파 지식인이었다. 

공산당에 입당하거나 재건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주의에 공감하는 입장에서 문필 활동을 했기에 ‘동반자’라 불린 작가 명단에서 이름이 빠진 적이 없었다. 

 

해방 이후 유진오는 재건 공산당에 합류하지도 않았고,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다. 

하지만 그 시절 한국인들은 동시대인인 유진오가 헌법의 기본 정신이라 못 박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조화”가 어떠한 오랜 집단적 고뇌와 모색에서 나온 결론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는 공산주의자들과 그 반대 진영 모두가 한 세대에 걸쳐(‘붉은 시대’) 치열하게 펼친 논쟁과 상호 영향, 협력과 대립이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의 우리와는 달리 이 경험이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었기에, 반공 노동조합운동(대한노총)을 이끌며 공산당 지지 노동자들과 폭력 대결을 펼치기까지 했던 전진한 의원 같은 인물이 오히려 헌법 초안의 기본 정신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초안에도 없던 노동자 경영참여권, 이익균점권 등을 더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시민 대다수는 이러한 현대 한국 사회의 형성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무지할 수밖에 없다.

 “농업의 재구조화, 탈식민화, 성평등과 복지국가”의 씨앗들이 뿌려진 역사를 모르니, 그 성과들을 줄기차게 발전시켜나가는 힘 또한 약하게 마련이다. 

 

심지어는 우파가 그토록 우상시하는 박정희의 경제성장 위업마저 ‘경제 계획’이라는 관념을 익숙하게 만들었던 이념-운동의 영향 없이 성립할 수 없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제 와서는 다른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더 신자유주의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기후 위기 대응이나 돌봄 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 전반을 과감히 새로 기획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렇듯, 과거의 망각은 미래의 더 풍부한 가능성의 망실로 이어진다.

『붉은 시대』는 이제라도 이런 수렁에서 빠져나오라고 다그치는 나팔 소리다. 

그리고 박노자는 이런 기상나팔을 불기에 가장 적격인 저자다. 

 

저자의 고향 러시아는 ‘붉은 물결’의 진원지였고, ‘붉은 시대’ 내내 조선을 비롯한 전 세계가 영감의 원천으로 삼던 거대한 실험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에서 그 시절은 잊고 싶은 실패의 기억으로만 취급되며, 최근 스탈린의 정신적 후계자 격인 푸틴 정권 치하에서 아류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붉은 시대』의 중요한 두 무대인 러시아와 한국 모두 ‘붉은 시대’에 대한 의도된 망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 망각의 정도가 강할수록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킬 가능성이 제약된다는 점 역시 두 나라에 공통되는 사실이다. 

역으로, 과거를 망각으로부터 구해낼수록 두 나라의 미래 전망은 보다 풍부해질 것이다.

 박노자 교수 말고 또 누가 있어 이런 묘한 운명의 얽힘을 간파하고 일깨우겠는가.

아무래도 첸리췬을 다시 한번 인용해야겠다.

 ‘붉은 시대’에 중국의 양심이었던 루쉰의 정신적 후예 첸리췬은 『내 정신의 자서전: 나에게 묻는다,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2012)에서 다음 같은 지극히 루쉰적인 문장으로 지난 역사를 총괄하고 미래를 향한 의지를 선포한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노력한다. 

 

우리는 이처럼 서로서로 부축한다. ―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서로 부축하며 기어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책이 그 증거다.
- 장석준 (사회학자, 출판&연구공동체 산현재 기획위원)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50319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