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계국가의 이해 (독서기록)/1.독일역사문화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때 (2026)

동방박사님 2026. 6. 30. 07:04
728x90

책소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 했지만……
마르크스는 종교와 싸우지 않았다

원로 종교사학자가 본 ‘마르크스와 종교’

카를 마르크스는, 정신분석학을 개척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더불어 문명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지성으로 꼽힌다. 그의 사상에 경도된 이들이 세계사를 요동치게도 했다. 

당연히 그에 관한 저술은 차고 넘친다. 한데 원로 종교사학자가 쓴 이 책은 조금 색다르다. 

《자본론》을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 사상을 해석하고, 평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마르크스의 종교관에 초점을 맞췄다. 종교(기독교)의 본질을 어떻게 보았는지,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을 이야기한다. 

대학 시절 흘려보냈던 ‘불온서적’을 다시 읽으며 “마르크스 지성의 거대함과 프롤레타리아로 대표되는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에서 받은 충격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풀어간 글을 읽노라면 “지금은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모습”이 떠오른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카를 마르크스: 괴물, 천재 혹은 진정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
모제스 헤스
다시 엥겔스


제2장 출생, 교육 그리고 가족
아버지의 개종
두 스승
한 여인, 그리고 아이들


제3장 청년 헤겔주의자
헤겔을 만나다
박사클럽
프로메테우스
브루노 바우어
제4장 역사적 유물론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민중의 아편”
프롤레타리아 해방
제5장 《자본론》
1848년 혁명
런던
《자본론》
그 이후
맺는 말
에필로그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류대영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버지니아의 유니언신학교와 하버드대학교를 거쳐 밴더빌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성서신학, 기독교역사, 미국사를 주로 공부했다.

 서양사학적 방법론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조명하는 일에 중점을 두면서, 『미국 종교사』(2007),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2004), 『북한 종교의 새로운 이해』(공저, 2002), 『초기 미국 선교사 연구』(2001) ...

책 속으로
엥겔스는 1839년 11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는 슈트라우스의 책들이 “기독교 속의 가공의 것들”을 드러냈다면서, 다시 기독교로 돌아가는 것이 “어처구니없다”고 말했다. 

엥겔스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면서 고향 바르멘을 지배하는 경건주의가 결국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도구가 되고 있음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 p.26

헤스는 스피노자를 통해 사회주의적 인본주의의 길을 열었다. 

신을 부정하고 유대교 가르침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출교당한 17세기 네덜란드의 유대인 (스피노자)과 할아버지에게 철저한 경전 교육을 받은 19세기 프로이센의 유대인 (헤스)이 만나 인본주의에 기초한 초기 형태의 사회주의가 만들어진 것이다.
--- p.36

마르크스의 부계는 트리어의 유서 깊은 랍비 가문이었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큰아버지가 모두 랍비였다.

당시 프로이센, 특히 라인란트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랍비의 권위는 대단했다.

랍비는 유대교 의식을 집전하고 율법에 대한 해석권을 가진 종교 지도자였으며, 유대인 공동체 내부의 분쟁을 조정하고 판결하는 재판관이기도 했다.
--- p.55

프랑스 점령으로 직업의 자유를 얻게 된 히르셸 마르크스는 변호사가 되었다.…

1814년, 30대 후반의 나이에 트리어 고등법원 “법정 변론 변호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해 말 그는 헨리 에테 프레스부르크와 결혼을 했다. 당시 유대인에게 가능한 모든 영예-랍비 가계, 성공한 상인, 그리고 전문직-가 결합된 결혼이었다. 

카를 마르크스는 그 부부의 아홉 자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 p.130

마르크스에게 사회주의를 처음 소개한 사람이 베스트팔렌이었다는 사실이다.

베스트팔렌은 생시몽을 “흠모”했고, 소년 마르크스와 긴 산책을 하며 그에게 생시몽의 유토피아 사회주의를 이야기해 주었다.
--- p.71

그들은 카를이 본대학에서 베를린대학으로 전학하기 직전인 1836년 여름 조용히 약혼했다. …

1843년 크로이츠나흐의 한 개신교회에서 간략한 결혼식을 올렸다. 

프러시아 귀족과 유대인 평민의 관계가 애정을 넘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아버지 루트비히 베스트팔렌 아래서 쌓은 계몽주의적이고 진보적인 교양이 예니로 하여금 유대인이요 급진적 청년이던 마르크스와 결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 p.76

마르크스는 예수의 죽음을 ‘부자들’과 ‘가난한 목수’의 갈등, 즉 종교적이 아니라 계급투쟁적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 틀림없다. 

“결국 우리는 기독교를 꽤 많이 용서해줄 수 있어. 왜냐하면 기독교는 우리에게 어린이를 숭배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니까.

” 마르크스는 아이들을 좋아했기에,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마십시오.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입니다”라고 했던 ‘가난한 목수’ 예수 또한 좋아했을 것이다.
--- p.86

마르크스의 김나지움 졸업논문 가운데는 “직업 선택에 관한 한 청년의 성찰”이라는 글이 있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인류의 복지”와 “우리 자신의 완성”이라고 보았다.
--- p.97

청년 헤겔파는 이 논리를 더 발전시켜, 철학이 빛을 발하고 있으므로 그보다 낮은 단계인 종교는 불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에게 종교는 인간의 자기의식을 억압하는 사회적·심리적 기제인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종교 비판 출발점이었다.
--- p.116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헤겔의 철학을 이용하되 자유주의적-유물론적 접근을 했다. 헤겔과 달리 그는 각 사람의 자기의식의 절대성, 독립성, 개별성을 강조하였다. 

마르크스는 그런 인식에 이르는 길을 열어준 에피쿠로스를 “그리스 계몽주의의 가장 위대한 대변자”라고 평했다.
--- p.121

서문에서 그는 철학의 본질을 “세계를 진압하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심장”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철학의 “신학화”에 반대한다고 밝혔다.…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모든 신을 증오한다.”
--- p.122

바우어는 1840년부터 성서가 신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이 상상력으로 쓴 창작물이라는 요지의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특히 1841년에 출간한 《공간복음서의 복음적 역사 비판》은 예수가 복음서 저자에 의해 창작된 가공의 인물이라고 하여 예수의 역사적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 p.132

마르크스는 본대학에서 “바우어를 뒤따라” 일단 강사 자격을 얻어 강의를 개설하고 이후 철학 교수로 정착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우어도 본대학에서 급진주의자로 찍혀 있는 상황이었다.…

마르크스는 바우어가 본대학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대학에서 영영 자리 잡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 p.140

모제스 헤스는 아돌프 루텐베르크가 떠난 쾰른의 《라인신문》 편집장 자리로 오라고 그를 초대했다.…

마르크스는 바우어가 본대학를 떠난 직후인 1842년 4월 쾰른으로 향했다.
--- p.141

현실 문제에 눈을 뜬 마르크스는 《라인신문》이 단지 “무신론이라는 꼬리표”를 가지고 장난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라인신문》이 독자 대중에게 교육적 효과가 있는 매체가 되길 원했다.…

따라서 “내용이 없는 종교 그 자체”가 아니라 “왜곡된 현실의 폐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 p.152

철학은 “이 세상에 관한 지혜”이고 종교는 “저세상에 관한 지혜”이므로 정치나 경제 같은 인간 삶의 구체적인 현실은 종교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세상이란 ‘환상’에 불과하니 그것에 대한 지혜인 종교는 현실을 인식하거나 바꾸는 데 쓸모없을 뿐이었다. 이제 마르크스는 인간의 ‘반영’에 불과한 신을 인간의 “겉모습”, “비인간”으로 규정한다.
--- p.158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며, 심장 없는 세상의 심장인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그것은 민중의 아편이다. 민중의 허구적 행복으로서 종교의 폐지[지양]는 그들의 현실적 행복에 필수적인 것이다. --- p.160

종교는 현실의 삶을 위무하기 위해 민중이 선택하여 사용하는 위안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종교와 관련하여 마르크스의이 유명한 명제를 변용하여 사용하면서, 외부에서 주입한 마약이라는 차원을 강조한 것과 구별된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민중의 아편”과, 예를 들어, “민중을 위한 아편”은 분명히 다른 표현인 것이다.
--- p.162

민중은 현실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아편을 섭취했다. 

따라서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마르크스가 종교의 현실적 효용을 인정한 말이기도 했다. 

물론…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마르크스는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 p.169

마르크스에게 종교는 민중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둘러싸고 멋있게 보이도록 만드는 “후광”이었다. 

그 후광이 없어진다면 현실이 “눈물의 골짜기”임을 사람들은 직시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에 대한 비판은 고통스러운 현실 극복의 싹인 것이다.
--- p.170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은 인간을 비하하고, 사로잡고, 버리고, 경멸하는 “관계들”을 뒤집어야 한다는 선언으로 끝났다. 프랑스 계몽주의자, 바우어, 포이어바흐를 모두 종합하여 종교 비판을 종결하며 한 선언이었다.

1884년 2월, 26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3개월 전이었다.
--- p.173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자연발생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궁핍해진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는 “지금까지 존재하는 세계 질서의 해체”의 도래를 알리고 “사유재산의 부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 p.174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함께 1846년 초 공산주의 통신위원회를 결성했다. 유럽 각지의 사회 주의자들을 연결하여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정당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들이 만든 최초의 정치 조직이었다.
--- p.187

인간의 “정신적 생산”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하부구조가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그 ‘정신적 생산’의 하나인 종교도 인간의 생산력, 생산관계, 그리고 그것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나온 생산물이라는 말이었다.

 따라서 종교는 경제적 하부구조를 지배하는 지배층이 자신들의 지배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의 하나가 된다.
--- p.193

마르크스는 ‘기독교의 사회적 원칙들’이 비겁함, 자기 비하, 굴종, 낙담 같은 “우민의 온갖 성품들”을 “설교”한다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기독교의 사회적 원칙들은 위선적인 반면,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적이다.” --- p.194

그는 1847년 6월 공산주의자동맹이 런던에서 결성되자 엥겔스와 함께 가입했다.…공산주의자동맹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동맹을 알리는 정견을 작성해달라고 의뢰했다.

 공산주의의 기본원칙과 목표를 알리고, 계급투쟁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 대중을 결집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 목적으로 두 사람이 쓴 것이 《공산당 선언》이었다.
--- p.197

주임 사제가 언제나 지주와 손을 잡고 갔듯이, 성직자적 사회주의 또한 봉건적 사회주의와 손을 잡고 갔다. 기독교적 금욕주의에 사회주의적 색채를 입히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 …기독교적 사회주의는 성직자가 귀족의 속 쓰림을 축복해주기 위해 뿌리는 성수聖水에 불과 하다.
--- p.198

《자본론》에서…종교는 더 이상 그 자체로 마르크스의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성서의 익숙한 구절들은 비유적으로, 특히 자본주의의 탐욕을 풍자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경전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하나의 고전문학 작품으로 여겨진 것이다.
--- p.216

마르크스는 성서와 예수의 가르침에 권위를 부여하여 긍정한 후, 그런 가르침에 반대되는 자본주의를 역설적으로 비판했다.…한 연구자는 “종교의 제거”를 마르크스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라고 믿는 사람들을 마르크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단정했다.
--- p.228

역사적 유물론을 확립한 성숙기의 마르크스에게 종교는 완전히 부수적 관심거리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종교는 독자적인 생명력 없이 경제적 토대 위에 피어있는 ‘환상의 꽃’에 불과했다. 

그 왜곡된 토대를 뒤집으면 종교는 자연스레 사라지는 무엇이었다. 

마르크스는 오직 그 토대를 분석하여 알리고, 그런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을 통해 그 토대를 전복시키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 p.238

성숙기의 사상가·혁명가 마르크스가 결코 종교를 타도 대상으로 삼고 공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분명한 것은 마르크스는 종교와 싸운 사람이 아니라 민중이 ‘종교라는 아편’으로 고통을 달래는 그 현실과 싸운 사람이었다.
--- p.247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를 ‘자기 소외’의 역사로, 사유재산을 자기 소외의 대표적 형태로 보았다. 공산주의란 그 자기 소외의 극복 과정인 것이다. 

그가 공산주의 혁명으로 이루고자 한 바는, 거듭 말하지만, 인간이 자기 소외를 극복하고 ‘자기’를 되찾는 ‘자기 회복’이었다.
--- p.248

예수 사랑의 고결함은 적에 대한 관용과 자기희생에 있었고, 마르크스적 사랑의 절박함은 적에 대한 분노와 투쟁으로 표현되었다. 

예수의 사랑은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에,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랑은 과학적 사고와 비판력에 기초했다.
--- p.259

노동의 상품화는 인간 소외를 낳고, 노동과 생산수단의 분리는 잉여가치 발생과 부의 편중을 낳으며, 생산수단의 발전은 그것을 무한히 강화시킬 뿐이다. 이 놀라운 통찰력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마르크스의 꿈 또한 살아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 p.261

출판사 리뷰
왜, 지금 다시 마르크스인가
지은이는 책 말미의 ‘에필로그’에서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자본주의 몰락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의 이론을 따랐던 모든 사회주의 체제 국가들이 실패한 현실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AI를 비롯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산수단이 갈수록 고도화하면서 인간 노동력은 더 비싸고 더 필요 없는 생산요소가 될 테지만 자본주의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즉 노동의 상품화는 인간 소외를 낳고, 노동과 생산수단의 분리는 부의 편중을 낳으며 생산수단의 발전은 이를 강화할 따름이라 예측한다. 

그런 만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위해, ‘인류 복지’와 ‘자기 완성’을 추구했던 마르크스의 행적을 담은 이 책을 새겨 읽을 필요가 있다.

인간적 면모까지 담아낸 평전
이 책은 마르크스의 저술은 물론이고 그의 경제론, 종교론, 여성주의 등을 포함한 수십 종의 연구서까지 섭렵한 바탕 위에 쓰였다. 

그의 두 ‘스승’, 아버지 하인리히 마르크스와 장인 루트비히 폰 베스트팔렌, 현실적으로도 큰 도움을 준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모제스 헤스의 영향과 인연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다.

 더해서 마르크스의 인간적 면모도 여실히 드러낸다. 

마르크스가 평생 아버지 사진을 몸에 품고 있었다든가, “유럽 언어로 된 모든 시들”을 성실하게 열심히 읽었다든가 마르크스 사상의 원천으로 알려진 대영박물관에 때로는 “빚쟁이를 피하기” 위해서 간 적도 있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그런가 하면 청소년 시절 김나지움 졸업논문에서 직업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인류의 복지’와 ‘자기 완성’이라고 했을 정도로 조숙한 천재의 면모도 들려준다.

종교 비판은 현실 극복을 위한 ‘싹’
물론 책의 핵심은 마르크스가 종교를 어떻게 보았는지 또는 어떻게 극복하려 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이를 위해 헤겔과 포이어바흐 등을 거론하고, 청년 헤겔파와의 관계와 슈트랄라우에서의 각성을 꼼꼼히 살폈다. 

지은이에 따르면 마르크스에게 종교는 민중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멋있게 보이도록 만드는 ‘후광’이었다. 

즉, 그는 종교란 현실의 삶을 위무하기 위해 민중이 선택하여 사용하는 위안물이라 보았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그의 《헤겔 법철학 비판》에 등장하는 유명한 명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은 역설적으로 마르크스가 종교의 현실적 효용을 인정한 말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어낸다. 

결국 그의 대표작 《자본론》에서도 종교 자체는 더 이상 논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성서 구절은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탐욕을 풍자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즉, 마르크스는 종교와 싸운 사람이 아니라 민중이 ‘종교라는 아편’으로 고통을 달래야 하는 ‘현실’과 싸운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92687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