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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터에서 그들은 알바, 인턴, 기간제로 불렸다.
이름 대신 ‘막내’라는 계급으로 불렸고, 어떤 날은 ‘걔’, 어떤 날은 ‘그년’으로 불렸다.
그들 모두는 각자의 이름이 있었고 꿈이 있었으며 맡은 일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던 우리 시대 청년 여성들이었다.
이 책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전수경이 청년 여성 노동자 스무 명의 곁으로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은 기록이다.
가장 약하고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일과 삶에 오랫동안 주목해온 저자는 ‘MZ세대’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대녀’라는 멸칭 안에서 소비되고 지워졌던 2030세대 여성 노동자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되살려낸다.
그들의 일터는 최대한의 노동력을 싼값에 뽑아내기 위해 최소한의 청춘, 삭제된 삶을 강요했다.
가난과 질병과 가부장제는 이들을 두 번 죽였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무례한 일터에서 삭제되고 소멸된 우리 시대 청년 여성 노동자들의 삶 자체다.
아무도 그들을 몰랐지만, 이제 이 책에 담긴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청년 여성의 존재뿐 아니라 그들이 애쓰고 분투하며 살아가는 세상의 작은 부분들까지도 알게 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글 / 모멸과 혐오를 뚫고 나온 이야기
지영 / 아이스크림 카페의 21세기 여공
수진 / 강아지 유치원 교사의 독박 노동
민정 / 공공기관의 ‘청년 인재’ 활용법
혜진 / 돌봄에서 소외된 돌봄 노동자의 몸
은지 / 나쁜 직장에는 허드렛일이 많다
소영 / A4 용지, 종이컵, 막내 직원의 공통점
미영 / 왜 피해자가 회사를 떠나야 하는가
현정 / 야근 수당으로 받은 기프티콘
수빈 / 가난한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예진 / 하루가 24시간 이상이 되는 계산법
다은 / 남자 사장, 남자 고객, 남자 직원에 맞서
채영 / 현장실습생, 희망을 잃고 우울을 얻다
서연 / ‘젊은 여자’가 아니라 ‘노동자’ 한 사람
윤서 /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청춘
민지 / 버티고 버티면 성공할 수 있을까
유진 / 진상 고객보다 벌점이 무서운 개미지옥
경희 / 좋은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나
나영 / 정규직은 멀고 고독사는 가까운
라비나 / 온전히 번역되지 못한 고통
선아 / 가족돌봄청년의 세상에 대한 유감
대담 / 우리는 일회용품도 예쁜 꽃도 아니다
_ 박한솔, 심서현, 전수경
나가는 글 / 여성들은 언제나 다른 여성을 돕는다
저자 소개
저 : 전수경
장래희망이 언제나 ‘작가’였고 자신의 정체성을 ‘쓰는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지금은 일하는 모든 사람을 존경하는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일하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고,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활동가라는 직업을 정말 좋아한다.
죽고 다치는 노동자들을 보며 성명서와 보도자료 등 분노와 규탄의 문장도 많이 썼지만, 정규직보다 더 전문적이고 능숙하게 일하는 하청노동자, 산재를 당하고 나서 차가운 ...
책 속으로
이 책은 21세기 공장 순례기 같은 것이다. 21세기의 공장은 카페이거나 콜센터, 도로 위 오토바이, 24시간 패스트푸드 매장이다.
20세기의 여공들이 잠을 쫓기 위해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먹어가며 미싱을 밟았다면 21세기의 청년 여성들은 고카페인 에너지 드링크를 먹으면서 야간 알바를 한다.
약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알기 위해서는 찾아가서 듣는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난 스무 명의 청년 여성들은 폭력이 난무하고 들숨에 모멸이 날숨에 혐오가 떠다니는 거칠고 험한 곳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시한다고 무시당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남아 있는 동료들을 위해서 타협하고 조정하고 제 몫을 찾고자 분투했다.
나는 그들 내면에서 튀어나오는 힘을 보았다.
이 젊은 여성들이 마냥 당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힘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에는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저항의 방법 중 하나다.
이 책은 그런 저항의 기록이다.
약한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곧 힘이기 때문이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지영의 카페에도 막무가내로 아이스크림을 많이 달라는 손님, 카드를 던지는 손님, 재료가 떨어졌다고 말해도 반드시 그 음료를 먹겠다고 우기는 손님은 출현했다.
진상 손님이라 불리는 악역은 눈에 보인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걸 요구하는 사람을 달래가면서 응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은 분명 사람을 말리는 일이다.
그러나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육체노동은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육체적 고됨이 노동을 노동으로 만드는 너무도 기본적인 요소라서 그건 아예 이야깃거리가 안 된다고 여기는 것일까.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이 누구나 하는 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야기로 전하지 않고, 그 일을 기록하는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쓰지 못한다. 일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 p.23
원장은 충원을 해주겠다며 구인광고를 내고는 서류가 들어와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혼자 일하게 되면서 수진은 체력이 떨어지고 무릎도 점점 아파왔다.
저녁이면 강아지들이 눕는 마룻바닥에 같이 누울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다.
둘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이 하도록 방치하고 직원을 더 구하지 않는 사용자, 그럼에도 그 노동자가 두 사람 몫을 해내고야 마는 상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고용주들에게는 우렁각시라도 얻은 듯 흐뭇한 일이겠지만 노동자들은 몸과 마음이 갈려 나간다.
--- p.39
“괜찮아, 천천히 해.”
과장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그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그가 무섭도록 낯설었다.
그의 평온 앞에서 떨고 있는 자신이 비참했다.
‘나는 누군가를 화나게 하는 존재도 못 되는구나.’ 민정은 그 관리자가 맡긴 일을 쳐내는 데도 실패하고 마음의 병까지 앓게 되었다.
출근 시간이 다가오면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일을 하다가도 누군가가 다가와 뭔가 물어볼 것 같으면 ‘또 나한테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먼저 흘렀다.
쌓여가는 일을 다 할 수 없다는 공포와 무기력이 같이 왔다.
쉬는 날엔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일어날 기운도 없었다.
잠에서 깼는데 해가 져 있던 어느 휴일 저녁에 민정은 자기 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관리자들이 일을 가져왔을 때 이 일까지만 하자, 이 부탁만 들어주자, 하면서 시키는 대로 일을 받은 것은 나다.
’ 민정은 이처럼 이상한 결론을 내린 후부터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 pp.53-54
“그 프로그램보다 네 월급이 싸서 널 쓰는 거야.”
부장이 소영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걸 모르다니, 이상하구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서 지식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노동 효율을 해치는 일이 되는 것일까.
값싼 노동자는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복사기 옆의 A4 용지만 소모품일까, 탕비실의 종이컵만 일회용일까.
소영은 기계가 아니었고, 자신의 힘으로 존엄을 지켜야 했다.
소영은 결국 사표를 냈다.
소영이 해온 노동보다 노동하는 소영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소영을 외롭게 했다.
소영은 평등하고 좋은 일터를 찾지 못할 바엔 외로운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pp.84-86
원장에겐 원생을 늘릴 수 있는 영업 포인트였지만, 현정에겐 그저 무급 연장근무였다.
야근이 많아질 때에는 원장이 가끔 ‘기프티콘’을 보내주거나 월급에 5만 원을 얹어주었다.
현정은 어린이 의자에 앉아 수업을 했다.
엉덩이만 걸터앉은 몸은 앞으로 구부러지고 힘이 들어갔다.
저녁이면 온몸이 굳어 펴지지가 않았다.
병원에선 ‘역 C자 목’, ‘라운드숄더’ 같은 말을 하면서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를 권했다. 치료비가 꽤 나갔다.
원장은 현정이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란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원장은 현정이 아프다고 해도, 그만둔다고 해도 말로는 걱정했지만 현정을 붙잡으려는 성의는 보여주지 않았다. 현정은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1년이었다.
보람도 없었고 돈도 모으지 못했다.
탈곡기에서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 p.99
24시간 매장에서 스케줄의 총합을 24시간으로 계산하면 오류가 난다.
힘들다고 안 나오고 미리 짠 스케줄이 아니면 출근을 안 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하다.
패스트푸드 매장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자율적으로 짜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감시하면서 시스템의 톱니바퀴를 굴린다.
예진 같은 이들은 시스템에 결함이 생길까 봐 걱정한다.
노동자들의 이런 마음이 24시간 패스트푸드 매장을 굴리는 연료다.
“단 둘이서 일한 적도 있어요.
12월 31일에. 아무도 안 나오려고 하니까요.”
월셋집을 벗어나고 싶은 곤궁한 사정은 ‘독박 노동’으로 연결되고, 예진의 수면 패턴과 생리 주기를 바꿨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의 체력을 믿었지만 3년 정도 지나자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참는 게 노동자의 미덕이자 자격인 사회에서 몸이 상한다고 쉬거나 근무시간을 조정하려 한다면 대체로 잘리거나 그만두라는 압력을 받는다.
예진은 자신의 몸을 달래고 통증을 눌러가면서 버텼다.
야간 근무 후 아침에 퇴근할 때면 손목이 덜덜 떨려왔다.
집에 들어오면 침대에 잠깐 앉아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쓰러져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 「하루가 24시간 이상이 되는 마법」 중에서
그 임원이 사라지고 채영도 계속 회사를 다니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차를 대고 기다리는 다른 관리자가 등장했다.
퇴근할 때 데려다주겠다는 그에게 채영이 물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도 이러시는 건, 도대체 저를 뭘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는 미안하다고, 오래 봐서 편하게 생각했다며 당황해하면서 답했다. 하지만 채영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다 썩었어요.”
채영은 무언가가 자신을 임계점까지 밀어붙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전에 사과문을 올리고 떠난 임원이 승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채영은 인사 정보를 확인해봤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 후로 회사는 채영의 인사 정보 접근 권한을 차단했다.
‘이렇게 회사에 다니는 게 의미가 있을까?’
채영은 우울증 판정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혼자 궁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회사에 회계 조작 비리가 있다고 언론에 알릴까?
직원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한 임원을 징계하는 척하더니 오히려 승진시킨 사장을 고발할까?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고 채영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회사에서 생긴 우울감과 배신감을 털어놓을 마땅한 사람이 없었고 갑갑한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함께 찾아줄 곳이 없었다.
- 채영 / 현장실습생, 희망을 잃고 우울을 얻다, 135-137쪽
--- pp.135-137
박한솔: 성희롱, 성폭력, ‘여자 알바생’ 같은 게 소비되는 문화가 있죠.
우리 노동이 이토록 성폭력에 취약한 구조라는 걸 보여주는….
그러나 직장 내 성폭력 문제가 여성 노동 문제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이유가 그것이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인지 다른 노동 문제를 제대로 명명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직장에서 어린 여성이라고 욕하고 무시하는 행태들을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심서현: 성희롱, 성폭력은 이미 너무 많이 드러나서 “묻고 떠블로 가!” 이런 게 아닐까요.
여성들에게 직장 내 성희롱은 그냥 공기 같은 거라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지 물어볼 것도 없어요. 성희롱, 성폭력에 흡수되어버려서 오히려 제대로 이름 붙여지지 않은 일들이 많죠.
여성 직원들에게 핑크색 유니폼을 입혀서 상품을 진열해놓은 것처럼 보이는 회사가 있었고, 하얀색과 금색 둘 중 한 가지 색깔 옷만 입으라고 하는 회사가 있었어요.
왜 그렇게 입으라고 했는지 물어보니까 “우리 대표님이 좋아해서요”라고 답하더라고요.
면접에서는 “남자친구 있어요?” “산 좋아하나? 살 좀 빼야 될 것 같은데.
” “혼자 살아요?” “동물 키워요?” 이런 질문이 아직도 나온다고 해요.
동물을 키우면 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킬까 봐, 고양이 챙기러 갈까 봐 물어본다는 거예요.
고양이인 경우면 그래도 낫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반응이 돌아온대요.
“개는 산책시켜야 되니까 야근을 못 하겠네?
우리는 강아지 키운다고 안 봐주는데?”
“아, 아뇨, 괜찮습니다.
저희 애들은 분리불안이 없거든요….”
--- pp.232-233
출판사 리뷰
우리 시대 청년 여성의
아픈 몸과 우울한 마음
알바, 인턴, 기간제, 막내, 걔 또는 그년이라 불린
수많은 지영, 민정, 윤서, 소영, 서연 들의 이야기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이 누구나 하는 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야기로 전하지 않고, 그 일을 기록하는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쓰지 못한다.
” 엄연히 존재했지만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져버리는 이름들이 있다.
일터에서 그들은 알바, 인턴, 기간제로 불렸다.
오랜 시간 동안 이름 대신 ‘막내’라는 계급으로 불렸고, 어떤 날은 ‘걔’, 어떤 날은 ‘그년’으로 불렸다.
그들 모두는 각자의 이름이 있었고 꿈이 있었으며 맡은 일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던 우리 시대 청년 여성들이었다.
『아무도 나를 몰랐지만』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전수경이 청년 여성 노동자 스무 명의 곁으로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은 기록이다.
가장 약하고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일과 삶에 오랫동안 주목해온 저자는 ‘MZ세대’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대녀’라는 멸칭 안에서 소비되고 지워졌던 2030세대 여성 노동자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되살려낸다.
반복되는 육체노동과 여성을 향한 모멸과 혐오 문화 때문에 진통제와 항우울제를 달고 사는 청년 여성들은 “다들 저랑 똑같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하면서도 자신만의 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아이스크림 카페 아르바이트, 공공도서관 계약직, 신문사 인턴, 콜센터 직원, 스포츠센터 강사, 장애인 활동지원사, 강아지 유치원 교사, 현장실습생 등으로 일했다.
그들에게 직장의 복지나 사회 안전망에 대한 기대는 그림의 떡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일터는 최대한의 노동력을 싼값에 뽑아내기 위해 최소한의 청춘, 삭제된 삶을 강요했다.
가난과 질병과 가부장제는 이들을 두 번 죽였다.
“네 월급이 싸서 널 쓰는 거야”
아프고 다쳐도 쉴 수 없었던 곳에서
민정은 1년에서 하루가 빠진 364일짜리 계약서를 쓰고 공공도서관 기간제 직원으로 채용됐다.
공공기관들은 이런 계약서를 내밀고 365일을 일하면 30일치의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근로기준법을 피해갔다.
저자는 이를 “마법의 법 기술”이라 부른다.
민정은 자신의 주 업무 외에도 어린이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 도서관 홍보물 디자인까지 떠맡았지만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용기를 내서 일을 거절한 날에는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대답이 돌아왔다.
“괜찮아, 천천히 해.” 민정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충을 쉽게 털어놓지 못했다.
시키는 대로 일을 받은 자신을 탓하며 마음의 병만 얻었다.
소영은 콜센터에서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에요?”란 팀장의 말을 듣고 퇴사한 뒤 한 외국계 회사에 들어갔다.
강도 높은 업무와 반복되는 야근으로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아프다고 말하면 팀장은 “나도 아파”라고 대답했다.
그 회사에는 ‘막내’라는 신분이 있었다.
‘막내’ 소영의 연차는 다른 직원들이 쓰고 남은 날로 정해졌다.
생수통 갈기, 회식 메뉴 설문조사하기, 점심 배달 주문하기 모두 막내의 일이었다.
자기 일을 효율적으로 해보려 다른 회사들처럼 자동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구입해달라고 건의한 날에는 “그 프로그램보다 네 월급이 싸서 널 쓰는 거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불공정 계약 관행과 취약한 노동자를 기계로 취급하는 문화에 더해 청년 여성들은 다치고 아파도 기댈 곳이 없었다.
강아지 유치원 교사 수진은 두 사람 몫의 일을 하느라 입사 초기에 무릎 연골판이 찢어진 것도 방치했다.
참고 참다가 수술을 받겠다고 말하자 원장은 “수술 미룰 수 없어?”라고 반문했다.
결국 수진은 수술을 받고 회복도 못 한 채로 다시 출근해야 했다.
유진도 팔꿈치 터널증후군 때문에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한 날을 빼고 단 이틀만 누워 있다가 출근했다.
기본급 200만 원에 붙는 인센티브 40만 원을 더 받기 위해서였다.
개개인이 서로 감시하게 만들고 등급과 점수를 매기는 콜센터 특유의 노동 환경이다.
저자도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급한 수술도 못 받게 할 만큼 상담사들을 통제하는 유인책이 한 달에 최대 40만 원이라는 것은 노동자에 대한 모욕이다.”
“네가 따박따박 말하는 게 싫어”
몸보다 먼저 무너진 청년 여성의 마음
청년 여성들은 육체적 고통에 더해 마음에 입은 상처로 더 오랫동안 아팠고 우울해했다.
저자는 청년 여성이 젊고 어리다는 이유로, 또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맞닥뜨리는 폭력적 언어들을 생생하게 포착해낸다.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오는 젊은 여성들을 조롱하며 그들이 받는 것이 ‘시럽급여’라고 말한 국회의원의 말이 대표적이다.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더 노골적이고 더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말들이 난무했다.
“여자한테 기술은 필요 없다. on/off만 알면 된다”, “여자들은 잘해주면 그만둔다”, “저거 기 죽여야 돼. 옛날 같았으면 재떨이 던졌을 텐데”, “대학을 안 나와서 그런가 일이 느리네”, “니가 뭔데? 함부로 나대지 마”, “네가 따박따박 말하는 게 너무 싫어.”
자신을 성추행한 임원을 용기 내어 고발하고 공개 사과와 전직 발령 처리를 받아낸 뒤에 겨우 회사 생활을 이어가려 하는데 또 다른 관리자의 스토킹을 당한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다 썩었어요.” 반복되는 성적 괴롭힘으로 인한 우울감과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외로움이 누적되어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버린 채영은 결국 사표를 냈다.
이 책에 수록된 대담에서 청년 여성의 노동을 연구하는 심서현은 이렇게 말한다.
“젊은 여성이 이래서 힘들구나, 얘기될 수 있으려면 여성들이 일하면서 느끼는 팽팽한 긴장의 상태를 더 많이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이걸 이해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지만, 그래도 ‘그건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야’, ‘그건 사회적 문제야’라고 말해야 해요.”(대담 “우리는 일회용품도 예쁜 꽃도 아니다”)
“나는 그들 내면의 힘을 보았다”
모멸과 혐오를 뚫고 나온 이야기
수많은 민정, 소영, 수진, 유진, 채영 들.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도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두세 명 몫의 일을 하고, 탕비실에 간식을 채워 넣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떠맡았지만 돌아온 것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아니라 ‘여자가 하는 일은 일다운 일이 없다’는 멸시와 조롱 또는 ‘더 많은 일’이었다.
하지만 열악하고 처참한 상황에서도 청년 여성들은 마냥 당하고 있지 않았다.
저자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청년 여성들은 무시한다고 무시당하지 않았고, 동료를 위해서 나쁜 상사를 고발했다. 자신의 일과 삶을 무가치하게 만들려는 모든 것 앞에서 그들은 분투했다.
이 책이 “들숨에 모멸이 날숨에 혐오가 떠다니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청년 여성들의 서글픈 초상에만 그치지 않는 까닭이다.
“나는 그들 내면에서 튀어나오는 힘을 보았다. 이 젊은 여성들이 마냥 당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들어가는 글 “모멸과 혐오를 뚫고 나온 이야기”)
『아무도 나를 몰랐지만』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개인에게 국한된 특수한 사례도 예외적인 현상도 아니다.
이토록 무례한 일터에서 삭제되고 소멸된 우리 시대 청년 여성 노동자들의 삶 자체다.
아무도 그들을 몰랐지만, 이제 이 책에 담긴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청년 여성의 존재뿐 아니라 그들이 애쓰고 분투하며 살아가는 세상의 작은 부분들까지도 알게 될 것이다.
“약한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곧 힘이기 때문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93406971>
'42.사회학 연구 (독서기록) > 4.노동문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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