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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궁극의 범죄, 제노사이드의 비극을 완성한 평범한 가해자들
그들의 몸과 기억에 깃든 감정을 추적한 『모자이크』
사법적 단죄와 이념의 프레임을 뛰어넘어 인간성의 본질을 탐색한다!
대량학살과 전쟁 범죄의 현장을 다루는 기존의 논의들은 주로 피해자의 목소리와 트라우마에 주목해왔다.
학살 현장의 실행자들은 ‘반인륜적 괴물’이라는 도덕적 단죄의 프레임에 갇혀 연구의 공백 지대로 남겨져 있었으며, 가해자 연구 역시 제도적 구조나 명령체계, 이데올로기 등 거시적 차원에 집중되어왔다.
지은이는 의문사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우리 사회의 민간인 학살 및 국가폭력을 조사하는 동안 기존의 사법적 단죄나 거시적 구조 분석만으로는 ‘살인이 어떻게 가능해졌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하고, 최근 국제 학계의 제노사이드와 대량학살 연구에서 중요한 주제인 ‘가해자의 감정’에 주목한다.
즉 폭력이 발생하는 다차원적인 맥락과 인간 행동의 복잡성을 세밀하게 포착해 극단적인 폭력의 중심에 서 있었던 가해자들이 현장에서 어떤 감정을 경험했으며, 그것이 그들의 도덕 판단과 어떻게 관계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제노사이드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파악하려고 한다.
특히 지은이는 가해자들이 잔혹행위 이후에 마주하는 굴욕감, 수치심, 죄책감, 혐오 등의 다양한 감정 중에서도 ‘혐오’에 주목한다. 학계에서는 혐오의 사회적 역할을 두고 편견을 낳는 위험한 정서로 보는 부정론과 도덕 감각에 기여한다는 긍정론이 대립해왔는데, 『모자이크』는 ‘혐오 긍정론’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한국전쟁의 국민보도연맹원 처형 현장 책임자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비밀공작 지휘관, 크메르루주의 실행자들과 중일전쟁기의 일본군 전범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비극을 완성한 평범한 이들의 고백과 진술을 씨실과 날실로 삼아 수치심, 당혹감, 죄책감, 혐오 같은 근원적 정서들이 인간의 도덕 체계와 사회적 행위에 연결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특히 대량학살 현장에서 가해자가 겪는 신체적 혐오 증상(구토, 메스꺼움, 각성 등)이 이성의 도덕 판단에 앞서 강력한 도덕적 신호로 작용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잔혹행위와 감정, 그리고 도덕 판단으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목차
책머리에
1부 신화
1장 고백
일등상사 김만식의 진화하는 이야기 | 비밀공작 책임자 유진 알렉산더 드 콕 | TRC 무대 위의 춤사위-청문회 | 너는 이제 우리 중 한 명이다
2장 회심
크메르루주의 실패한 공산사회 | 일본 전범에게 생존자라는 거울 | 감정 질서는 어떻게 변하는가
2부 책임
3장 폭력
악명의 대명사 김종원 | ‘백두산 호랑이’의 명예욕 | 제주 4·3의 사이코패스 탁성록 | 폭력에 친밀한 자들-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인간성
4장 명령
방관자의 공모와 자기사면-오제도와 선우종원 | 가해자란 무엇인가 | 명령이라는 지배 서사
3부 감정
5장 시선과 눈동자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비인간화 | ‘그들은 진짜 인간이 아니다’-공동체 감각의 꾸미기 원리 |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도덕적 이탈
6장 움직이는 감정
감정이란 무엇인가 |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존재론적 사건으로서 감정 | 인간의 얕은 마음과 잔혹함-굴욕과 수치심, 혐오
7장 인식의 조장
자연종과 비인간화되는 인간종-나마와 헤레로, 아르메니아인 | 허구의 인종 개념-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과 의사종분화 |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증오 | 대중운동과 선동
4부 혐오
8장 도덕 판단
안와르 콩고의 구역질-1965년 인도네시아의 비극 | 유대인 사냥과 101예비경찰대원의 신체 반응 | 혐오에 대한 도덕 판단
9장 잔혹행위의 심리
임종현의 혐오와 일본 군인의 마비된 감정 | 혐오의 매개와 대상의 개념적 일반화
10장 집단
떼 짓는 공격성-집단심리의 본능과 진화 | ‘일부 집단’이 왜 문제인가 | 정신화와 가해자의 심리적 구획화 | 분절화 또는 인격의 분열
책을 마치며
저자 소개
저 : 한성훈
사회학자.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연세대학교에서 최우수강사로 선정되어 총장상을 수상하였다.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했다.
저서로 『전쟁과 인민: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 인민의 탄생』(2012), 『가면권력: 한국전쟁과 학살』(2014),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2018), 『인민의 얼굴: 북한 사람들의 마음과...
책 속으로
사회학자 아브람 더 스완은 사회적 억압이 기억과 감정을 억누를 때 ‘정신적 구획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원리를 밝힌다.
가해자의 마음속에서 감정과 기억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분리해 이 둘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심리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집단학살의 시대가 끝난 후 가해자는 문명화된 시민의 삶으로 돌아왔고, ‘살육의 구획’은 그들의 일상 뒤편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그들은 살인자라는 자아를 정신적·사회적 존재로부터 분리하여 ‘닫힌’ 구획에 명확히 밀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 p.36
분절화란 “자아가 두 개의 기능적 전체로 나뉘어, 한 부분의 자아가 하나의 완전한 자아처럼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두 개의 자아 또는 자아의 이중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특정 부분이 전체로부터 떨어져나와 별도의 시스템으로 작동함을 의미한다.
리프턴이 강조한 분절화의 핵심은 두 자아가 완전히 분리된 해리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두 자아는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의 도덕적 영향력을 받지 않도록 마디처럼 나뉘어 있다.
--- p.37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 대량학살에서 잔혹행위를 저지른 가해자의 혐오와 수치심을 보편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총칼로 민간인을 살해한 후 갖게 되는 감정은 수치심과 죄책감, 혐오로 묶을 수 있다.
명령을 따른 것이라며 회피하더라도 자의식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 공개하지 않았을 뿐, 가해자의 내면에서 이런 감정의 표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비단 가해자뿐만 아니라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 목격자에게 나타나는 당혹감과 굴욕감, 수치심 또한 상당하다.
--- p.104
인간을 대량학살로 내모는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거기에 탐욕과 살인욕, 명예욕 같은 요소를 추가해야 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전쟁과 작전, 폭력 상황이 가해자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해왔다.
최근에는 역사적·문화적 조건이 학살의 사고방식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다.
반면 개인의 전기적 배경과 학살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성향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은 미진한 편이다.
--- p.147
가해자를 분류할 때 부대 책임자와 현장 지휘관, 실행 병사들 못지않게 중요한 이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배후이다. 폭력에 동조하거나 공모한 채 방관한 사람들이다.
국민보도연맹 조직과 관리로 잘알려진 서울지방검찰청 소속의 사상 검사들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그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였고, 1948년 오제도가 입안한 국가보안법과 그 유산은 현재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그들은 단순한 관료나 정치인, 법조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틀을 세우고 국가를 운영하는 확신에 가득 찬 설계자이자 구현자이다.
--- p.220
가해자를 ‘이해’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량학살과 같은 종류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에서 가해자와 그 행위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인간성을 들여다보려는 한 사회의 공감 능력에 해당한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이 종잇장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이어져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경계선 한 줄로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있지만,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있다. 그들은 우리 공동체의 일부다.
--- pp.240-241
스미스는 “다른 사람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인식하는 행위”를 비인간화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는 두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하나는 그 사람에게 “무언가가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 사람을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여긴다”라는 점이다.
이런 경우 인간은 물건이나 동물 정도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비인간화 과정의 전제 조건은 개인의 비인격성에 있다.
--- pp.279-280
승인된 학살은 우리가 동료 인간에게서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박탈할 때 가능해진다.
정체성을 잃고 공동체에서 배제된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기는 어려우며, 그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개별적인 상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어떤 집단이 오직 그들이 속한 범주로만 정의되고 이 범주가 인류에서 배제될 때, 그들을 죽이는 행위는 도덕 문제에서 훨씬 더 쉽게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제노사이드나 전쟁범죄에서 반복해 나타난다.
켈만은 이것이 단순한 개인의 악의가 아니라, 사회적·제도적 구조가 만들어낸 심리 환경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증오라는 감정 없이도 비인간화는 가능하며, 이는 비인간화가 폭력의 ‘촉진제’이지 반드시 증오의 결과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상대방을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그에 대한 공감이 빠져 있어 도덕 판단이 부재하면 비인간화가 발생한다.
--- pp.311-312
혐오는 음식, 동물, 신체 분비물, 특정한 성적 행위, 피부와 신체 표면의 손상, 불결한 위생 상태, 불쾌한 사람과의 접촉, 도덕적 과오라는 영역에서 쉽게 발생한다.
이런 영역에서 발생한 혐오는 개인감정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지만, 특정한 집단을 대상으로 할 경우 하나의 문화로 전파된다.
일반적으로 어떤 집단의 성원으로 규정되는 특성을 설명할 때 문화라는 용어를 선택한다.
개인이나 집단 차원에서 본다면 이것은 성과 언어, 인종, 계급, 민족성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 p.390
자신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 대한 증오는 눈에 보이는 불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불만과 증오의 관계는 단순하고 직접적이지 않으며, 대부분 상대적으로 부풀려져 있다.
스피노자가 통찰했듯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증오는 말살의 필요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친밀성의 부정에서 비롯된 혐오, 분노와 두려움이라는 격정, 판단·결정·헌신의 평가절하 또는 축소라는 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결합하면 불타오르는 증오가 생긴다.
이런 요소들이 갖춰지면 증오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대상을 말살해야 하는 강한 필요를 느낄 수밖에 없다.
--- p.414
혐오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다.
안와르가 구역질하는 것은 자신이 되풀이한 잔혹한 행동에 대해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본성적인 혐오를 느꼈기 때문이다.
혐오는 인간의 신체와 깊은 연관이 있다.
어떤 물질이 신체 안으로 들어오면 혐오는 이것을 인지하고, 그 물질에 대한 주변 사람의 반응에서 무엇을 혐오해야 할지 배운다.
자신의 행위를 재연하며 마주한 ‘죽음’ 또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안와르의 몸은 거부한 것이다.
그의 몸은 과거의 행위를 고스란히 간직한 시간의 기록물이나 다름없다.
--- p.434
집단은 개인에게 자기 판단과 개별 책임, 개인적 이해관계의 포기를 요구하는 대가로 거대한 전체의 일부가 되는 안정감을 제공한다. 이때 개인은 더 이상 도덕적 행위자라기보다 명령 수행자 또는 사명의 도구로 전락한다.
이렇듯 집단은 인간에게 수치심 없이 ‘증오할 자유’나 ‘잔인해질 자유’를 제공하는 셈이다.
만약 이때 가해자들이 잔인함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면 그들은 ‘더 이상 정상적 도덕을 따를 수 없다’거나, 우리는 ‘도덕 위에’ 있고 ‘새로운 시대의 도덕’을 원한다고 할 것이다.
--- p.513
‘평범한 사람’이 곧 ‘평범한 가해자’는 아니다.
나는 이 한 문장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를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하거나 ‘평범한 가해자’라고 유포된 잘못을 바로잡아주길 기대한다.
그들이 인격체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량학살을 수행하고 살아온 경험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했을 때, ‘평범한 가해자’ 담론이 의미 있는 많은 것을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역설적인 전형들이 책에 등장한 가해자와 각종 사건에서 그 과업을 진술한 군인들이다.
--- p.534
학살은 타자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집요하고 잔혹했던 게 아니라, 너무 가까웠던 그들을 더 이상 우리로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결정 때문에 더욱 잔혹했다.
비동일시는 동일시의 부정이 아니며 동일시이후의 선택적 파기를 의미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인간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공감과 도덕적 반응을 유예할 수 있도록 설계한 사회적·인지적 구획화가 작동했기 때문에 집단살해가 가능했다.
--- p.559
출판사 리뷰
도덕적 이탈과 분절화: 가해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
잔혹행위에 가담한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자신이 국가 또는 조직, 상관의 명령을 수행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다.
그리고 정신적·심리적 ‘분절화’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일상적 자아를 보호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학살 가담에 따른 수치심과 죄책감, 혐오 등으로 내면의 격렬한 동요를 경험한다.
『모자이크』는 제노사이드가 단일한 원인이나 광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과 명령체계, 가해자의 심리적 기제, 그리고 인지적 왜곡이 맞물려 작동하는 ‘복합적인 구조’에 따라 발생한다는 데 주목한다.
그리고 다양한 학살 사건에서 실행자, 방관자 등 다양한 위치에 있었던 이들의 서사를 개별적으로 분석하고, 이 기록들을 퍼즐 조각으로 삼아 그 구조의 작동 기제를 추적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들이 범죄 전후로 경험한 복잡다단한 감정을 들여다보는데, 그것은 잔혹행위 자체를 정당화하거나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들이 타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인지적 왜곡인 ‘비인간화’의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서이다.
『모자이크』는 신체에서 일어나는 감각과 각성이 어떻게 도덕적 이탈 및 도덕 판단과 조응하는지 인과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다수 사례와 접목함으로써 개별 가해자라는 파편들이 거대한 대량학살의 구조적 전경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참회와 정체성의 변화: 한국전쟁의 영웅부터 일본군 전범의 사상 개조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제목인 ‘모자이크’는 세 가지의 중의적인 비유와 학술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흔히 범죄자의 신원을 숨길 때 처리하는 화면 속 픽셀의 모자이크처럼 과거사 진상조사 과정에서 가려져 있던 가해자들의 실체와 내면을 비판적으로 투시하겠다는 의지이다.
둘째, 서로 다른 유형의 국내외 사건과 가해자라는 개별 조각들을 촘촘히 엮어냄으로써 대량학살이라는 보편적이고 거대한 폭력의 구조적 전말을 재구성하려는 기획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신체와 기억 깊은 곳에 조각나 봉인되어 있는 다양한 정서적 반응들을 퍼즐처럼 하나씩 맞추어나가겠다는 방법론적 선언이다.
이러한 기획하에 『모자이크』의 1부에서는 전쟁 영웅이라는 신화적 외피에 둘러싸여 평생을 지내온 김만식 일등상사를 통해 영웅적 자아와 가해자 자아 사이의 심리적 분열을 보여준다.
김만식은 이북에서 아버지가 처형되는 현장을 목격한 후 월남해 남조선국방경비대에 입대한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한국전쟁에서 인민군을 상대로 혁혁한 전과를 거둔 전쟁 영웅이다.
전쟁이 끝난 후 외형적으로는 평온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그가 2007년 청주청원 지역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이 가해자임을 밝히고 용서를 구했다.
그가 잔혹 행위가 있은 지 57년 만에 유족들 앞에서 평생의 죄책감을 참회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를 직시하고 성찰하는 사회 분위기와 가톨릭 신자였던 김만식 개인의 종교적 정서가 정체성의 통합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사적 정체성의 변화는 아파르트헤이트 시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비밀공작 책임자 유진 알렉산더 드 콕의 참회,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TRC)의 피해자 청문회와 사면청문회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펼쳐낸 공감과 윤리적 회복의 순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지은이는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이 저지른 대학살(킬링 필드)의 가해자들과 10년간 교류하며 학살의 중심부를 취재한 다큐멘터리 〈인민의 적들〉과 중일전쟁기의 일본인 전범들이 중국의 사상 개조와 학습을 거치며 회심한 사례를 통해 가해자가 피해자를 동료 인간으로 다시 인식하면서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폭력의 일상화와 가학적 병리, 그리고 침묵하는 방관자들
2부에서는 여순사건, 제주 4·3,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과 국민보도연맹원 처형 등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현미경 삼아 인간 행동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살펴본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하사관 출신으로 잔혹함의 극치를 보여준 김종원, 음악인이었지만 지독한 아편중독 상태에서 성폭력과 살인을 일삼았던 탁성록, 이 두 사람 못지않게 성폭력과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던 권준옥 세 사람의 사례를 통해 폭력이 개인의 가학적 욕망 및 지배 서사와 결합하는 과정과 양상을 살펴본다.
또한 직접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았지만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에서 침묵하거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대량학살의 공모자가 된 오제도와 선우종원 같은 방관자들의 행위 역시 비판적으로 짚어낸다.
3부에서는 같은 종인 동료 인간을 거리낌없이 살해하는 대량학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심리적·인지과학적 기저에 놓인 ‘비인간화의 원리’로 논의의 지평을 넓혀나간다.
지은이는 비인간화가 ‘상대방을 비하하는 비유적 언어’가 아니라 우리 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인지 변화이자 타인에게서 ‘인간의 본질’을 박탈하는 인지적 이탈 작업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 타인을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가 아니라 사물로 취급하는 왜곡이 일어나면서, 인간의 존엄을 지탱하는 정신의 힘이 무력해지고 결국 이는 대량살상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이 인지적 마비와 왜곡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피노자에서부터 윌프리드 트로터, 윌리엄 샤바스, 마이클 모리스, 마샤 누스바움, 존 엘스터 등 다양한 분야의 사상가와 학자들의 주장과 이론을 아우르며, 국가적 폭력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봉인하고 분절화했던 가해자들의 심리적 구획을 분석하는 다학제적 연구를 시도한다.
그리고 4부에서 가해자들의 신체에 각인된 생리적 반응을 다시 한 번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다학제적 사상 체계와 심리적 구획화 이론을 실증한다.
4부에서는 이성의 이데올로기적 판단에 앞서 작동하는 ‘근원적인 도덕 신호’를 살펴본다.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주동자 안와르 콩고가 수십 년 뒤 자신의 고문 행위를 재연하며 보인 격렬한 ‘구역질’과 나치 101예비경찰대원들이 유대인 사냥 직후 겪은 신체적 거부 반응을 큰 축으로 삼아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본성적인 혐오를 분석한다.
두 사례는 집단이라는 기제가 개인에게 개별 책임과 도덕적 자율성을 포기하게 만드는 대가로 수치심 없이 ‘잔인해질 자유’를 부여하며 인격을 분절화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특히 나치 치하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학살이 타자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가까웠던 이웃을 ‘더 이상 우리로 인정하지 않기로 한’ 인지적 구획화와 비동일시의 선택적 파기 때문에 더욱 잔혹했음을 규명한다.
사법적 단죄를 넘어 인간성의 본질을 묻다
『모자이크』가 전하는 가해자들의 서사와 진술, 그리고 학살의 잔혹성에 대한 세밀한 기록은 독자에게 고통스럽고 불쾌한 ‘불편함의 수용’을 요구한다. 참상의 기록을 읽어나가다보면 분노나 혐오감이 일 수밖에 없지만, 지은이는 이때 느끼는 불편함이야말로 이 주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긴장이자 인간 신체 반응을 설명하기 위한 불가피한 성찰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불행한 시기의 현장을 복원하는 목적이 결코 가해자 개인을 고립시켜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스스로 가해자임을 밝히는 고백과 성찰의 기록들은 여전히 국가폭력과 비인간화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토대를 진단하는 실천적 거울로 역할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과거를 마주하는 것은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우리 사회의 특성으로 인해 잔혹행위 당시의 현장을 역사로 복원해내는 데 필요한 목소리를 충분히 담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한다.
하지만 『모자이크』는 가해자 연구의 토대가 확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현실에서 사법적 단죄와 이념의 프레임을 뛰어넘어 인간성의 회복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통된 인간성의 언어를 공유하게 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92563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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