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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근시안적 화두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사상적 기원을 탐색하다
당대의 관점과 복안複眼으로 다시 읽는 대한제국 후기 사회정치사와 개혁운동
대한제국 후기에 흥기한 정치세력들의 개혁운동과 정치사상을 분석하고 그 귀결까지 조명한 역작이 나온다. 임정과 대한민국 정부의 연결고리를 추적한 바(『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있는 저자는 이번에 근대 민족주의의 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침략과 저항’의 기존 분석틀 대신 20세기 초 대내적 정치사회 흐름과 세력(신분) 변화에 착목한 결과, 광범위하게 펼쳐진 민족운동과 국가 건설의 움직임을 촘촘하고도 유기적으로 파악한다.
목차
머리말 5
화보 18
제1부 대한제국 후기 신흥 정치세력의 등장 양상 21
제1장 신흥 정치세력의 등장 배경 23
(1) 과거제와 신분제 폐지 24
(2) 한인 거주공간의 확대 28
제2장 신흥 정치세력의 특징 33
(1) 향반·서얼·중인의 부상 33
(2) 평안도와 함경도 출신의 중앙 진출 40
제2부 대한제국 후기 신흥 정치세력의 등장 과정 49
제1장 러일전쟁 개전 이후 신흥 정치세력의 대두 51
(1) 환상 불러온 한일의정서 ‘시정개선’ 조항 51
(2) 다시 열린 ‘개혁의 판도라 상자’ 65
(3) 민권과 국권의 딜레마 79
제2장 을사조약 이후 신흥 정치세력의 변화 93
(1) 한반도를 뒤덮은 ‘보호국’이란 안개 93
(2) 일진회의 길, 대한자강회의 길 103
(3) 껍데기만 남은 대한제국 115
제3장 고종 강제양위 이후 신흥 정치세력의 분화 132
(1) ‘무면지왕無冕之王’ 이토 통감 132
(2) 경쟁하는 일진회와 대한협회 143
(3) 벌열 유길준의 ‘신민臣民’과 평민 신민회의 ‘국민國民’151
(4) 대한제국의 해체 167
제3부 신흥 정치세력의 민족운동론 195
제1장 재미 한인의 국민국가론 197
(1) 문명부강론 주장 198
(2) 계급타파론 제기 210
(3) 국민주의 창도 226
제2장 개신유학자 출신의 국수보전론國粹保全論 246
(1) 신채호와 주시경의 ‘문명 부강론’ 248
(2) 국수론國粹論의 대두 261
(3) 민족기원론 고취 283
제3장 천도교 지도부의 부강발전론 312
(1) 문명개화론 수용 314
(2) 국민계몽론 실천 324
(3) 권력참여론 주창 343
제4부 대한제국기 근대화 운동에 대한 재평가 359
제1장 대한제국 전기 정부의 ‘제한된 근대화’ 363
(1) 대한제국의 국가이념: 혁구도신革舊圖新 363
(2) 광무개혁에 대한 평가: 실패한 절대왕정 시도 371
제2장 대한제국 후기 민간의 근대화 운동 381
(1) 일진회의 ‘식민지 근대화론’ 381
(2) 대한자강회·대한협회의 ‘보호국 근대화론’ 388
(3) 신민회의 ‘자주적 근대화론’ 395
제5부 국가이성으로 본 대한민국의 수립과 전개 403
제1장 자주적 근대화,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과 기원 405
제2장 근대 국가이성에 대한 이론적 고찰 413
(1) ‘국가이성’ 개념의 형성과 확산 413
(2) 한국의 근대 국가이성 형성 419
제3장 한국 근대 국가이성의 역사적 전개 422
(1) 개화파, 독립협회·만민공동회 422
(2) 대한제국 426
(3) 신민회와 대동단결선언 428
(4) 대한민국임시정부 431
(5) 대한민국 정부 438
맺음말 447
후기 455
참고문헌 458
저자 소개
저 : 이선민 (李先敏)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조선일보사에 입사해 32년 남짓 근무하면서 논설위원, 문화부장, 오피니언부장, 선임기자 등을 역임했다.
영국 런던대 SOAS(동양 아프리카대학)와 미국 브라운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공부했다.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3년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규장각학국학연구원 객원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민족주의, 이제는 버려야 하나』(2...
책 속으로
조선왕조가 오랫동안 서북인의 정치적 진출을 막았기 때문에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이 조선왕조의 운명에 냉담하다는 토로였다.
이는 또 서북인의 정치적 욕망이 그만큼 강하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대한제국 후기에 서북 출신의 정치적 진출을 주도한 것은 신흥 상공업자가 중심이 된 평민층이었다.
평안도는 중국과 무역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했다.
18세기에 이르러 평안도의 경제적 부유함이 널리 인식되고 있었다.
영조와 정조는 평안도가 풍요로운 고장이라며 상인에 대한 채무 탕감 등 혜택을 부여하면서 상업을 진흥했다.
서북 지역 평민층의 정치의식은 개항 이후 급격히 높아졌다.
조선왕조와 그 지배이념인 유교에 거리감이 있던 서북 평민이 서구 문명과 그 정신적 토대인 개신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자연스러웠다.
서북 지역에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개신교 신자가 있었다.
1870년대 후반에 만주를 드나들던 서북 상인이 그곳에서 활동하는 개신교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이었다.
청일전쟁을 전후하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서북 지역에 선교활동을 벌이면서 개신교 신자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서북 지역의 개신교 신자들은 독립협회 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문명개화 운동을 전개해 갔다.
독립협회 지부의 절반 이상이 서북 지역에 만들어졌다. 유교적 국가체제와 신분제에 불만을 가졌던 이들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로운 상업 활동이 보장되는 시민사회를 지향했다.
서울로 진출하고 일본·미국 등에 유학한 서북 출신 청년들은 대한제국 후기에 민간 정치·사회운동이 고양되면서 1906년 10월 정운복·김명준·이갑·박은식 등이 중심이 돼 서우학회西友學會를 조직했다.
---pp.41~42
역사적 습관의 선악을 가리지 않고 모두 없애 버리면 장차 무엇에 기초하여 국민의 정신을 유지하며, 무엇에 근거하여 국민의 애국심을 환기하리오. 외국 문명을 수입해야 하지만 단지 이만 의지하다가는 [주체성 없는] 명령螟蛉 교육이 될 것이며, 시대의 흐름에 응수해야 하지만 단지 이만 따르다가는 마귀의 시험에 빠질 것이다.
중요하고 급하도다, 국수國粹의 보전保全이여.
한국이 일본의 준식민지가 된 상황에서 ‘정신상 국가’와 그 구심으로서의 ‘국수’를 내세우는 것은 이토 통감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일본의 우산 아래에서 근대화’를 거부한다는 의미였다.
당시 많은 지식인이 일본을 문명화의 모델로 생각했고, 한국의 문명화 과정에서 일본의 지원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신채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신채호는 한국의 힘으로는 자주독립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일진회에 가입한 친구에게 “일본인의 퇴물상을 빌어서 충복지계充腹之計를 하면 몇 백 세世라도 걸인乞人의 이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힐난했다.
그는 또 일본의 힘을 빌어서 부강해져야 일본을 물리칠 수 있다는 일진회의 논리에 대해서 일본과 친해지고 난 뒤 을사조약과 정미7조약이 체결되고 군대가 해산됐으며 일본인의 식민植民이 본격화하고 전선·우편·철도·광산·삼림·어장을 빼앗겼을 뿐이라고 통박했다.
그는 ‘세계가 동양의 황인종과 서양의 백인종이 경쟁하는 시대이니 동양은 가장 강력한 일본을 맹주로 단결해서 국가를 보전하고 차례로 진보해야 한다’는 동양주의에 대해서는 금성·수성의 공격에 대비하여 인류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허황되다며 국가경쟁 시대에는 동양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를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인韓人이 동양주의를 이용하여 국가를 구하는 자는 없고, 외인外人이 동양주의를 이용하여 국혼國魂을 빼앗는 자가 있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pp.268~267
출판사 리뷰
피지배세력의 반기
러일전쟁 이후 일제의 내정간섭이 노골화함에도 지배세력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자, 권력에서 소외되어 있던 서얼, 향반, 중인, 평민 등이 세를 키워 나갔다.
저자는 이들의 흥기와 세력화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침략과 저항’의 기존 도식에서 놓친 대한제국 후기 변화상을 온전히 조명한다.
일제가 고종황제의 전제권을 약화시키자 당시 민간에서는 나라(국가주권:국권)냐, 민권(국민주권)이냐를 놓고 고민하기도 했다(제2부 제1장 (3).
그럼에도 “러시아 전제군주제를 모델로 한 광무개혁은 군사적.경제적 개혁만 추진할 뿐 민권의 최소한인 ‘인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마저도 저버리고 말았다.”(제4부 제1장)
이에 따라 대한제국 후기는 곧 구세력과 신흥세력이 교차되는 변곡점이자, 아이러니하게도 근대국가상을 조각해 나가는 암중모색기였다.
신진세력은 여러 갈래의 단체로 조직화하여 부강, 독립, 민권이라는 삼중과제 해결에 나섰다. 저자는 일제의 대조선정책 변화에 맞추어 일진회(1904)와 공진회(1904), 일진회와 대한자강회(1906), 일진회와 대한협회(1907) 등의 대응을 통시적으로 훑어 내려간다.
시기별 사안에 대해 서로 반대 입장을 가진 두 단체를 대비시켜 서술함으로써 흥미를 높임과 동시에 그 시대에 대한 이해도도 끌어올린다.
특히 유길준의 평화광복책과 신민회취지서는 벌열에서 평민으로 근대화 운동의 주체가 변화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전자는 당시 보호론에 치우친 조선의 현실주의자들이 상당수 존재했음을 알려 주며, 후자는 그럼에도 평민(농민, 향반)들 가운데는 신민新民과 신국新國을 꿈꾸었음을 보여 준다.
먹구름 속 싹틔운 근대화 비전
다양한 출신으로 구성된 단체들이 이합집산하는 가운데 저자는 민족적 자주성을 유지하면서 근대화를 추구한 세 세력의 운동론에 주목한다(제3부).
첫째, 천도교 지도부는 중간 신분 출신이자 계몽운동 세력의 하나로, 문명부강을 위해 일본에 유화적 태도를 취하며[用日] 민족의 독립도 소망했다.
둘째, 향반 출신의 신채호, 주시경, 나철 등 개신유학자들은 각각 역사, 국어, 종교 민족주의를 제창함으로써 국수보존을 통한 문명부강을 추구했다.
이들 모두 공통적으로 단군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1910년 망국 이후 단군교는 더욱 확산되었다.
세 번째, 안창호, 이강 등 평민 출신으로 구성된 재미 한인은 미국에서 개신교 신자로서 자치기구인 공립협회에 이어 통합단체인 국민회를 결성하고, 공화제의 국민주권론과 국민국가론을 제기하였다.
저자는 공립협회와 국민회의 기관지 『공립신보』, 『신한민보』의 논설을 면밀히 분석하여, 이들이 양반과 국왕, 군주제를 비판하는 토대 위에 새 근대국가 건설의 의지를 키워 나갔음을 입증한다.
깃발에서 국가로
1907년에 조직된 신민회는 재미 한인인 안창호 등 공립협회의 이념(신민회취지서)을 근간으로, 양기탁·신채호 등 대한매일신보 언론인, 이갑 이동휘 등 청년장교, 그리고 상동교회 중심의 민족운동가들이 연합하여 결성되었다.
신민회는 ‘자주적 근대화’를 기치로 실력양성 활동을 벌임과 동시에 공화정체의 국민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고 독립전쟁 준비론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장기적인 민족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제4부 제2장 (3)
곧 실질적으로 근대화의 삼중과제를 온전히 수행하려던 단체인 것이다.
제5부에서는 국가의 지도이념이라고 정의되는 ‘국가이성’ 개념을 도입하여 한국의 근대국가 이행이라는 긴 역사적 여정을 되짚어 봄으로써 근대 국민국가의 이념적 토대와 발전 과정을 추적한다.
근대 국가이성의 핵심인 국민주권론은 신민회에 의해 주창된 이후 대동단결선언에 명시적으로 공표되었고 대한민국임시헌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민족 내부의 균등’을 강조한 삼균주의는 대한민국건국강령에 반영되었고, 국민주권론과 삼균주의는 1948년 대한민국 제헌헌법에 구현되었으며, 경제조항 등 세부 국가방략은 변화하였음을 논증한다.
자주적 근대화를 선도한 지도자들과 일진회(식민지 근대화론).대한자강회·대한협회(보호국 근대화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조급하지 않았고 멀리 보았다는 것이다.
비관론에 빠져 눈앞의 문명부강에 매진했던 종속적 근대화론자들과 달리, 신채호는 한국인의 잠재적 경제 능력을 믿었고(p.255) 안창호는 청년들에게 좌절하지 말라고 당부했다(p.215). 이들이 미래를 낙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내외적 역사 흐름을 냉철하게 이해하였고 민권과 자주독립 등 근본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마침내 이상을 실현하여 대한민국이라는 새 국가의 이념적 초석을 놓았다.
최근 학계에서 논의되는 논쟁들은 정치이데올로기와 맞물려 과열되며 근시안적 편가르기에 급급하다.
100여 년 전 비관론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듯하다. 이러한 때 대한민국의 기원을 추적한 저자의 이 책은 눈이 확 트이게 만든다.
또한 우리 민족이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함께 따라 걸으면서 근대화와 그 이후의 과제는 어떤 것이 될지 고민하게 한다.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관점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보는 거시적인 틀을 제시한 이 책의 반향은 크고 깊을 것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95101994>
'47.한국근대사 연구 (독서기록) > 4.대한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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