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한일관계사 연구 (독서)/3.재일조선인

1945, 마지막 항해 (2023) - 폭침된 ‘부산행 귀국선’ 우키시마호

동방박사님 2024. 2. 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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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가라앉은 배의 비망록,
꺼지지 않을 역사의 잉걸이 되다

광복으로부터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1945년 8월 22일, 일본의 오미나토 항구에서 한 척의 배가 출항했다. ‘한국 부산항’을 향해 항해하던 이 배는, 그러나 목적지 근처에도 닿지 못한 채 출항 이틀 만인 8월 24일 일본의 마이즈루만에서 폭발해 가라앉았다. 이날 ‘폭침’된 배의 이름은 ‘우키시마호’. 애타게 부르짖던 광복이 왔으니, 조국을 잃어버렸던 조선인들을 그리운 ‘우리나라’로 돌려 보내주겠다던 배였다.

『1945, 마지막 항해』는 일본인 저자인 시나다 시게루가, 마찬가지로 다수의 일본인들로 구성된 ‘우키시마호 희생자를 추도하는 모임’의 활동 및 우키시마호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집필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변명도, 외면도, 면책(免責)도 없다. 오직 풍랑 속에서도 진실만을 주시하려는 부동의 의지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는 우키시마호 사건과 같은 역사적 잘못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그들의 결연한 마음에서 시작된 ‘추도하는 모임’은 우키시마호 순난자 추도비 건립, 추도 집회(위령제), 우키시마호 사건을 알리는 영화([아시안·블루 - 우키시마호 사건]) 및 연극([바다를 바라보는 군상 이야기]) 제작, 한-일-중 동아시아 심포지엄 개최 등으로 활동을 넓혀가며 벌써 수십 년째 이 ‘역사’의 등대가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의 편에 계속 서기 위해, 이 등대의 불이 꺼지지 않고 오래도록 빛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키시마호 사건과 추도하는 모임의 활동 이력을 『1945, 마지막 항해』라는 한 권의 책으로 편찬했다.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고자 나아갈 때, 이 책의 등불이 부디 우리의 길을 밝혀줄 수 있기를 기원한다.

목차

우키시마호 사건과 「희생자를 추도하는 모임」 - 7

제1부 우키시마호 사건

1. 어떤 사건이었나? - 23

2. 우키시마호 사건을 알기 위해 - 35
·마이즈루라는 거리 35
·귀국선이 도착한 항구 38
·우키시마호가 출항한 오미나토 41
·해군 오미나토 경비대가 강행한 출항 명령 46
·폭침의 현장 49
·남겨진 의문 51

제2부 우키시마호 사건 추도 활동의 경과

1. 몰랐던 우키시마호 사건 - 65
·중학교 교사 노다 미키오 씨 66
·아이들 싸움의 원인과 배경 68
·노다 씨와 스나가 씨의 만남 71
·조선의 문화를 배우자 72
·일조협회 마이즈루 지부의 결성 74
·우키시마호 사건과의 만남 75
·20주년을 맞은 위령제 78

2.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 추도비를 만들자 - 80
·풍화해 가는 전쟁 체험 80
·스나가 씨의 성장 84
·군대 생활 87
·패전 그리고 시베리아 억류 88
·최초의 ‘일본 귀국’ 91
·전쟁은 두 번 다시 싫다 93
·우키시마호 사건을 전하는 기념비를 만들자 95
·겨우 결정된 건립지 98
·‘희생자 추도비’를 만들기 위한 3원칙 100
·‘옥신각신’, 추도비의 이미지 104
·추도비는 묘가 아니다 110

3. 근본적인 질문 - 왜 우리는 추도하고 계승하는 것인가? - 114
·8월 24일의 추도 집회 114
·우키시마호 사건 희생자 ‘명부’와 마주치다 119
·『우키시마호 사건 기록』의 간행 123
·너무나도 알려지지 않은 우키시마호 사건 126
·추도 활동의 전환점 131

4. 우키시마호 사건을 이야기로 전하다 - 133
(1) 영화 「아시안·블루 - 우키시마호 사건」
·갑작스런 방문 133
·영화 〈우키시마호〉 제작 협력 마이즈루의 모임 137
·시나리오 만들기 142
·마이즈루 촬영 144
·‘우키시마호 희생자를 추도하는 모임’의 출발 152
·후생성 장관으로부터의 메시지 155
(2) 연극 〈바다를 바라보는 군상 이야기〉를 만들다
·스나가 씨의 교통사고 159
·오미나토를 방문 160
·젊은이가 주인공 연극을 하고 싶다 163
·마이즈루에서 꿈은 이루어질까? 165
·꿈의 무대 만들기에 대한 학습 168
·성공적인 무대 170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희망 174
(3) 한국 광주 시민과의 교류
·〈아시안·블루〉 상영을 한국에서 176
·전환기를 맞다 177
·영화 수출은 승인되었지만…… 180
·한국 젊은이들의 감상 182
·영화 상영에서 광주 시민과의 교류로 184
·마이즈루에서 온 광주 방문단 186
·시민 차원의 솔직한 의견 교환 188
(4) 마이즈루에서 열린 한·일·중 ‘동아시아 국제평화 심포지엄’
·동아시아 사람들과 평화에 대해 생각하자 194
·심포지엄 주제와 코디네이터 196
·2005년도 여름·심포지엄 직전 199
·심포지엄 직전에 퇴원해 온 노다 씨 200
·심포지엄 ‘우키시마호 사건: 동북아 평화를 위한 조건’ 202
·코디네이터로부터 전해진 기대 216
·‘추도하는 모임’ - 그 후 그리고 지금 217

「우키시마호 사건」 관련 연표 - 221

저자 후기 - 226

저자 소개

저 : 시나다 시게루 (品田 茂)
 
1958년 9월 24일, 교토부 마이즈루시(京都府 舞鶴市) 출생.
이바라키 대학(茨城大?)에서 역사학(국제관계론)을 공부.
1982년부터 마이즈루 시청에 근무.
현재, 마이즈루시 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 우키시마호 희생자를 추도하는 모임 사무국, 「가라 가라! 어묵 조사대(行け行け! かまぼこ調査隊)」 대표.
역 : 김영식
 
경남 고성에서 출생하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문학사), 보건환경학과(보건학사), 중어중문학과(문학사)를 졸업하고, 부경대학교 산업대학원 냉동공조공학과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경상국립대학교 대학원 에너지기계공학과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에서 15년가량 근무했고, 1996년부터 현재까지 대성에어테크 대표로 산업환기 분야에서 근로자의 작업환경 개선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임진왜란과 ...

출판사 리뷰

광복으로부터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1945년 8월 22일, 일본의 오미나토 항구에서 한 척의 배가 출항했다. ‘한국 부산항’을 향해 항해하던 이 배는, 그러나 목적지 근처에도 닿지 못한 채 출항 이틀 만인 8월 24일 일본의 마이즈루만에서 폭발해 가라앉았다. 반파된 배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들은 차갑고 어두운 물속에서 “아이고, 아이고!” 외쳐댔다고 한다. 인근 해변에서 노동 중이던 마이즈루 주민들이 구조에 착수했으나, 생존할 수 있었던 피해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해당 사건이 ‘항로에 매설돼 있던 기뢰로 인한 불가항력적 사고’였으며, 이로 인해 ‘배에 탑승한 조선인 승객 3,735명 중 총 524명이 사망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한국 시민 단체가 추산한 당시 사건의 실제 사망자 수는 최소 3천여 명에서 8천여 명 이상에 이른다. 각국이 계산한 전체 탑승객 숫자 또한 판이하다. 증언에 의하면 당시 선실과 갑판까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태워진 조선인 승객은 최소 6천여 명에서 8천여 명 이상으로, 최소치만 하더라도 일본 측이 공식 발표한 탑승객의 두 배가 넘는다. ‘촉뢰로 인한 불가항력적 사고’라는 말 역시 믿기 어렵다. 사건 발생 후 해당 함선의 운행 관계자와 오미나토항 인근 주민 등은 “처음부터 조선(부산)이 아니라 마이즈루가 목적지였다.”, “조선인들을 실은 배가 항해 중 폭발할 것이며, 이미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라며 폭발 사고가 ‘일본 정부에 의한 의도적인 자폭’이라고 진술했다.

1945년 8월, ‘빼앗긴 들에도’ 비로소 ‘봄’이 피어났건만 차디찬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한 척의 배가 있다. 이날 ‘폭침’된 배의 이름은 ‘우키시마호’. 애타게 부르짖던 ‘그날’이 왔으니, 조국을 잃어버렸던 조선인들을 싣고 그리운 ‘우리나라’로 돌려 보내주겠다던 배였다. 우리는 여전히 그날의 진실을, 그리고 돌아오지 않은 그들을 모른다.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 참극을 새기며
교토 마이즈루에서 그들의 기록을 전한다.”


우키시마호 사건은 무수한 한국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참극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에서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사건 당시 일본 정부가 해당 사건을 축소 및 은폐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으며, 승선객 대부분이 사고 당시 사망해 제보의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1945, 마지막 항해』는 ‘전후 세대’가 사라져가기 시작하는 지금, 한일 양국에서 지워져가고 있는 우키시마호 사건을 기록하고 여전히 그날 사고의 피해자들을 기리고 있는 ‘우키시마호 희생자를 추도하는 모임’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내린 책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비극의 비망록이자, 꺼져가는 역사의 잉걸로서 탄생했다.

『1945, 마지막 항해』의 저자 시나다 시게루와 그가 소속된 ‘우키시마호 희생자를 추도하는 모임’의 주재자 노다 미키오, 스나가 야스로는 뜻밖에도 모두 한국과는 어떤 연고도 없는 평범한 일본인이다. 우키시마호 폭발 사고가 일어났던 해상과 인접한 도시에 살고 있던 그들은 각자 우연한 계기로 ‘우키시마호 사건’을 알게 되었고, 이 참사의 책임자여야 할 일본이라는 국가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한때 같은 생을 공유했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뿌리 깊은 애심(哀心)과 부채감을 느꼈다.

“다시는 우키시마호 사건과 같은 역사적 잘못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그들의 결연한 마음에서 시작된 ‘추도하는 모임’은 우키시마호 순난자 추도비 건립, 추도 집회(위령제), 우키시마호 사건을 알리는 영화(〈아시안·블루 - 우키시마호 사건〉) 및 연극(〈바다를 바라보는 군상 이야기〉) 제작, 한-일-중 동아시아 심포지엄 개최 등으로 활동을 넓혀가며 벌써 수십 년째 그 ‘기억’의 등대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의 편에 계속 서기 위해, 이 등대의 불이 꺼지지 않고 오래도록 빛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키시마호 사건과 추도하는 모임의 활동 이력을 『1945, 마지막 항해』라는 한 권의 책으로 편찬했다. 그곳에는 변명도, 외면도, 면책(免責)도 없다. 오직 풍랑 속에서도 진실만을 주시하려는 부동의 의지만이 있을 뿐이다.

“잊지 않음으로써 잃지 않기 위해 읽어야 할
1945년 8월 24일,
우리들의 가라앉은 기록”


역사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수많은 답변이 따라올 테지만, 여기서는 역사가 결국 기억이라는 데 주목하고자 한다. 기억은 역사의 최소 단위다. 분명히 존재했던 사건이라 한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일은 역사가 아니요 나아가 실재조차 아니게 된다. ‘추도하는 모임’의 구성원들이 시모사바카 해변에 ‘추도비’를 세운 것 역시 누군가 오래도록 이 사건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금도 시모사바카 해변에는 한복을 입은 채 우뚝 선 한국인 여성이 굳건한 눈으로 먼 바다를 건너 〈고향의 봄〉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우리와 한핏줄을 나눈 선조들에게 일어났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또한 그들의 치열했을 삶을 잊지 않기 위해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을 역사로서 기억하려 걸음을 뗄 때, 이 책의 등광(燈光)이 부디 우리의 길을 밝혀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