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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김정희원 교수, 김인정 기자, 홍성수 교수 추천! ★
“피해자의 지위는 이제 특권이자 무기이다.”
모두가 자신을 ‘진정한 피해자’로 내세우는,
타인의 고통을 잊어버린 억울한 피해자들의 사회에 대하여
“플랫폼마저 권력과 자본에 점령당한 시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도둑맞은 피해자성을 되돌려줄 책.”
_김인정 (저널리스트, 『고통 구경하는 사회』 저자)
“어떻게 특권을 지닌 힘있는 가해자 남성들이 피해자 행세를 하게 되었는가?
이 중요한 책은 새롭고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_에바 일루즈, (『감정 자본주의』 저자)
“악랄한 허위 고발로 저와 가족의 명예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졌습니다.
” 2018년 가을, 성폭력 혐의로 고발당한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 브렛 캐버노는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트럼프와 공화당 의원들은 그에게 연민을 표하며 “미국의 젊은 남자들에게 아주 힘든 시대”라고 한탄했고, 소셜미디어에는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아우성이 들끓었다.
그를 고발한 크리스틴 블래시 포드도 소셜미디어에서 전 세계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캐버노 지지자들의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블래시 포드 외에도 세 여성이 용기를 내 비슷한 증언을 했지만 캐버노는 수사조차 받지 않고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눈물을 흘리며 억울한 피해자라고 열변을 토하는, 그럼으로써 상황을 모면하는 장면은 우리 사회에서도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언제부터 가해자가 자신이야말로 억울한 피해자라고 호소하기 시작했을까? 그 적반하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무엇보다, 왜 피해자를 자처하는 것일까?
‘피해자의 지위는 이제 특권이자 무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교수 릴리 출리아라키는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에서 피해자와 피해자성(victimhood)의 역사와 ‘무기화’ 현상을 파헤친다.
현대사회는 소셜미디어와 언론에 고통이 넘실대는 ‘고통의 민주주의’ 사회다.
성폭력 피해 여성,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흑인, 이동권을 박탈당한 장애인 등 소수자의 고통도 확산하지만, 동시에 ‘역차별’을 억울해하는 남성, ‘소수자 우대 정책’을 한탄하는 백인, ‘무고’를 읍소하는 가해자의 고통도 무차별적으로 확산한다.
인권이라는 대의하에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은 모두 공감과 연민을 받아 마땅한 ‘피해자’로 보이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언뜻 시민의 책무처럼 느껴진다.
누구의 주장이든 ‘나는 억울하고 고통스럽다’라는 개인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원론적으로 윤리적일 수 있을까?
저자는 이처럼 개인의 상처와 인권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일수록 피해자는 공감과 연민, 정당성과 발언권을 부여받기에 피해자성이 ‘무기’로 남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피해자성이 유용한 정치적 무기가 될 때, 피해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은 남의 목소리를 짓누르며 목청을 높일 수 있는 권력자들이다.
피해자의 지위가 가장 정당한 권력의 표상을 가진 지금, 가해자들의 거짓된 피해자 행세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연대해야 하는가?
저자는 ‘누가 피해자로 인정받았는가’를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피해자성 전쟁’을 파헤치며 취약한 사람들에게 피해자의 지위를 되찾아줄 대안을 모색한다.
목차
추천의 말
서문과 감사의 말
1장 어째서 피해자성인가?
2장 과거에는 누가 피해자였나?
3장 오늘날에는 누가 피해자인가?
4장 피해자성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릴리 출리아라키 (Lilie Chouliaraki)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회학, 윤리학, 기호학, 페미니즘 등을 바탕으로 인간의 고통과 취약성에 관해 연구해왔으며,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여러 매체와 공적 발언들을 분석하여 타인의 취약성이나 고통을 대하는 개인의 태도, 생각, 행동에 관한 책과 논문을 펴내고 있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극우 포퓰리즘, 인종주의, 여성혐오 등에 관한 분석을 바탕으로 피해자(성) 개념의 역사와 무기화 현...
역 : 성원 관심작가
대학에서 영문학과 지리학을 공부했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배우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일이 어느덧 업이 되었다. 몇 년 전 탐조를 접하고 난 뒤 이제 외출을 할 때면 늘 쌍안경을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옮긴 책으로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나의 때가 오면』, 『빈 일기』,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 『공기전쟁』, 『쫓겨난 사람들』, 『백래시』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첫 번째는 이 이야기가 전 세계로 퍼져 국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는 사실이 시사하듯 피해자성 주장은 미국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라 서구 문화권 전체의 관심을 사로잡는 포괄적인 사안이라는 통찰이다.
이는 새로운 시각이 아니다. 25년 전에도 미국 비평가 로버트 휴즈Robert Hughes는 우리가 “모두가 부유하고 유명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고난에 시달리는 고통의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했다.
10년 후 디디에 파생Didier Fassin과 리샤르 레스만Richard Rechtman의 “트라우마의 제국”에 관한 중대한 연구는 피해자성을 오늘날의 삶에서 핵심적인 도덕적·정치적 조건으로 보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트라우마는 정신의학 어휘에 한정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일상 용법으로 깊이 뿌리내렸다. 사실상 그것은 어떤 사건에 대한 새로운 언어를 창조했다.
” 캐롤린 딘Carolyn Dean은 최근에 이 주장을 되풀이하며 “트라우마를 입은 피해자는 오늘날 서구 문화의 핵심에 자리한다”고 역설했다.
이 언설들은 피해자성을 서구 문화 일반의 지배 담론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블래시 포드와 캐버노의 이야기가 제기하는 핵심 문제를 건드리지는 않는다.
모두가 자신의 고난이 상대방의 고난보다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피해자가 범람하는 세상은 어떤 종류의 세상인가? 어떻게 세상이 지금처럼 변했을까?
그런 세상은 삶에 어떤 유익을 주는가?더 중요하게는, 그 대가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고심해보려고 한다.
--- 「어째서 피해자성인가?」 중에서
고통의 정치라는 틀 안에서 우리는 어째서 피해자성이 자아에 본질적인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부여하는 기표가 아니라, 반복해서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근대성에서 개발된 고통의 언어를 차용하여 취약한 자아를 위해 “나 상처 받았어” 또는 “나 억울해”라고 발언하고 가엾어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통 행위인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달리 말해서 피해자는 고정된 특정 사람이 아니라, 자아가 고난에 처했다는 주장을 통해 바로 그 순간 취약한 존재로 생성되는 반복적인 발화행위자이다.
피해자성을 공적 담론에서 일종의 투쟁 현장으로 만드는 것은 트라우마 또는 상해의 주장들이 즐비한 가운데 새로운 자아를 드러냄으로써 그 주위에 있는 다양한 인정의 공동체를 불러내는 수행적인 역량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정치는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 말했듯 “늘 필연적이거나 확정적이거나 절대적이거나 본질적이지는 않”지만, 정치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국면에 피해자의 정체성을 잠정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고통과 자아를 연결시키는 언어적 “체결articulations”이라는 가변성 높은 행위에 크게 의지하는 한 대체로 고통의 정치이다.
그러므로 누가, 어떤 고난의 주장을 가지고, 어느 공동체에 속한 채 피해자로 생성되는가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라 비판적인 공적 담론 분석을 요구하는 정치적 소통과 관련된 문제이다.
--- 「어째서 피해자성인가?」 중에서
피해자성의 어휘의 과거와 현재를 재고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바로 피해자성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서 공적 담론의 “표면에” 드러난 겉모습만으로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고난을 소통할 때 고통의 주장과 자아의 조건은 결코 선험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으므로, 피해자성 연구는 피해자 개념의 근본적인 우발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주장과 조건(또는 맥락)을 재삼 구분하는데, 둘을 가르는 어떤 고정된 경계가 “저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분을 발견적 수단heuristic device으로 활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발견적 수단은 특정한 시공간에서 주장과 조건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유용한 분석적 틀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짜real” 피해자와 “가짜fake” 피해자를 구분하는 질문 대신,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해야 한다.
어떤 조건에서 특정한 고통의 주장이 특정한 자아를 피해자로 여겨지게 하는가?
이런 자아는 어떤 권력의 입장에서 발언하는가? 이들의 주장은 이들에게, 이들이 호명한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안기는가? 이런 주장은 어떤 종류의 배제를 전제하고 공고히 하는가?
--- 「어째서 피해자성인가?」 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피해자성의 어휘는 이런 배제의 역사에 기초한다. 이는 취약성이 인류의 “보편적인” 속성이 아니라 20세기 근대성의 전형적 피해자로서 백인 남성에게 특별하게 주어진 자격임을 곱씹게 한다.
백인 남성은 싸우다가 고통받고, 살해하다가 고통받고, 보호하다가 살해하고, 보호를 위해 고통받는다.
이 모든 형태의 고통이 상호적 상해의 실행이라는 전쟁의 핵심 목표에 내재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서구 남성 자아가 근본적으로 선하고 오직 우발적으로만 나쁘며 자신이 저지른 모든 폭력 때문에 전문적인 의학적 처치와 공감을 받아 마땅한 유일한 행위자라는 개념을 유지·온존시킨다.
백인 남성의 고통에 이렇게 특권을 부여하고 참혹한 폭력과 치유의 순환 고리가 활성화된 덕에 남성들은 “증언의 자격”이라는 유산을 부분적으로라도 부여받았다.
덕분에 고통을 주장해봤자 역사적으로 인정받은 적이 별로 없는 여성들과는 달리, 남성들은 고통과 고난을 호소할 때 신뢰받을 수 있게 되었다.1
22 여성들과 유사하게 비백인 자아들은 발언할 권력도 갖지 못하고 그들의 희생, 고통, 상실을 인정·추모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싸우고 죽는다.
--- 「과거에는 누가 피해자였나?」 중에서
힘있는 사람들이 고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행위는 이미 “반피해자주의antivictimism”라고 부르는 이론적 연구 대상이다.
앨리슨 콜은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 정치를 연구하면서 극우 세력이 피해자성을 무기화하는 현상을 간결하게 정리한다.
그는 극우 세력이 “인종의 정치, 페미니즘, 그 외 저항적인 정치들을 계속해서 흠집내기 위해” “새로운 피해자 집단을 고안하고 선전함으로써” 자기 고유의 피해자성 브랜드를 내세운다고 말한다.
이어서 “이 운동은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줄이기 위해 설계된 법을 개정하면서 2004년 ‘태어나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폭력에 관한 법Unborn Victims of Violence Act’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태아의 피해자 지위를 법에 명시하는 데 성공했다”고 덧붙인다.
콜의 연구는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고개를 든 반피해자주의를 검토하고 있지만, 그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은 그 뿌리를 1960년대 중반의 미국 민권운동과 페미니즘 투쟁 이후 그때까지 배제되었던 집단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진 법적·사회적 개혁에 대한 반동적인 불만에서 찾는다.
보수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인 일부 중간계급들은 이런 운동들 덕에 흑인과 여성을 민주적으로 포용하는 방향으로 사회구조가 확장된 것에 억울함을 느끼고, 피억압집단들이 “피해자성 카드놀이”를 한다고 공격하면서 대신 자신들을 시스템의 “진정한 피해자”로 내세웠다.
이에 로버트 호위츠Robert Horwitz는 “백인 남성들이 특히 소수자 권리의 증진과 여성 혁명의 여파로 자신들이 누리던 사회구조적 특권 일부를 상실하기 시작하자 그 혁명이 피해자성의 정치라며 날을 세웠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힌 사건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이제야 완성된 반피해자주의 기획이었다.
새뮤얼 J. 알리토 판사의 표현대로 “비판적인 도덕적 질문”을 해결한다는 허울을 쓰고서 복음주의 극우 세력의 당파적인 주장을 많은 주에서 법적인 사실로 현실화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 「피해자성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중에서
흑인 커뮤니티의 트윗에서 유래했지만 이제는 다른 곳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캐런” 비유는 자신의 인종적 특권을 이용해서 자신을 흑인폭력Black violence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백인 여성 자아를 일컫는 표현으로, “힘퍼시”처럼 기득권 중심의 공감과 동일선상에 있다.
“아쉬울 게 없는 백인의 우월함과 계급 특권”49을 지녔다는 설정의 “캐런” 비유는 “힘퍼시”보다 역사가 길지만, 2020년 봄 흑인 남성 크리스천 쿠퍼가 자기 때문에 위협감을 느끼는 척 연기하며 경찰에 신고한 백인 여성이 찍힌 증거 동영상을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백인 여성의 눈물”을 무기 삼아 인종적 타자를 향해 잔인함의 효과를 유발한 사례였던 것이다.
50 여기서 기득권 중심의 공감은 흑인은 범죄자라는 인종주의 서사에서 고난에 처한 여성과 위해를 가하는 남성이라는 전통적인 성역할 이분법에 의지함으로써 백인 여성에게 위협을 가하는 흑인 “폭력배” 고정관념을 중심으로 반피해자주의 주장을 구성한다.
--- 「피해자성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중에서
도전하지 못한다. 이런 폭력의 형태에 맞서려면 사회적 고난에 대한 개인주의적 설명 대신 애당초 고난을 유발한 조건을 바꿀 수 있는 단결된 실천을 요구하는 집단주의적 정의의 서사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미디어 경관과 바이럴리티 주도의 주목경제economies of attention에서 집단주의적 서사는 낡은 것으로 간주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현시대에 맞춰 현대화된 집단주의적 서사는 반피해자주의와 극우 세력의 잔인함의 정치에 맞서는 투쟁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절실한 미래지향적인 사회 변화 비전에도 필요하다.
1장에서 확인했듯 오늘날의 미디어 또는 정치 담론들에서는 고통의 소통이 상업화되고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가 주도하는 장르에 잠식되어 트라우마나 인권의 서사를 개별화하고 사람들의 고통을 전적으로 개인의 고생담으로만 재현하는 한편, 고통의 구조적 원인을 중심으로 한 설명적인 주장들을 희석하거나 삭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유주의적 담론은 “비아냥irony”이라는 소통 양식을 선호하는 데, 이는 전반적인 메시지는 불의를 집중적으로 겨냥하지만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으며 종종 “다 안다는 듯한 무심함, 모든 진리 주장을 향한 자의식적인 의심… 유희적인 불가지론”으로 가득한 담론을 통해 표현된다.
가령 비정부기구 캠페인이나 유명인사를 앞세워 인권이라는 대의를 브랜드화하는 오늘날의 인도주의적 소통 양식은 미디어 사용자들에게 인기를 얻었지만, 공적인 참여를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사적인 문제로 홍보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는 “연대를 위한 실천을 역설하는 일체의 도덕적 호소에는 회의적이지만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어떤 행동에는 열려 있는” 교양 있는 시민이라는 양가적인 모델을 배양한다.
--- 「피해자성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중에서
출판사 리뷰
“백인 남성은 근본적으로 선하며, 오직 우발적으로 악하다”
피해자의 자격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피해자의 지위가 권력이라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누가 피해자가 되는가’이다.
이때 피해자란 단순히 상처나 손해를 입은 자가 아니라, 자신의 고난을 반복적으로 주장하면서 인정받은 자다. 성폭력을 겪고도 가해자와 ‘무고’라는 편견이 두려워 고발하지 못하는 여성은 피해자가 되지 못한다.
피해자란 인정 투쟁을 통해 획득되는 지위이며, 고난을 겪은 이들의 역사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저자는 인류가 경험한 최대의 고난인 전쟁들, 전면전으로 치러진 미국 독립전쟁과 양차 세계대전, 냉전 시기의 베트남전쟁, ‘인도주의적 안보전쟁’을 표방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톺아보며 ‘누가 피해자로 인정받았는가’를 살핀다.
그는 전쟁의 폭력에 희생된 민간인보다 전쟁을 수행한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군인의 복잡한 지위에 주목한다.
군인은 독립전쟁과 양차 세계대전에서 대의를 위해 희생한 숭고한 피해자였고, ‘대의’가 부재한 베트남전쟁에서는 ‘이념에 의해 살생을 강요당한’ 피해자, ‘안보전쟁’에서는 서구 국가가 원하는 ‘세계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전투를 수행하는 피해자로 호명되었다.
전쟁을 일으킨 서구 국가 백인 남성의 정당성을 대변하기 위해 이 피해자의 지위에는 유럽과 미국의 백인 군인만 오를 수 있었으며, 유색인종 군인, 심지어 주로 여성과 어린이인 민간인 희생자의 자리마저 없었다.
저자는 20~21세기 전쟁의 명분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백인 남성이 ‘유일한’ 피해자로 자리매김했다고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피해자성의 어휘는 이런 배제의 역사에 기초한다.
이는 취약성이 인류의 “보편적인” 속성이 아니라 20세기 근대성의 전형적 피해자로서 백인 남성에게 특별하게 주어진 자격임을 곱씹게 한다. 백인 남성은 싸우다가 고통받고, 살해하다가 고통받고, 보호하다가 살해하고, 보호를 위해 고통받는다. (…)
서구 남성 자아가 근본적으로 선하고 오직 우발적으로만 나쁘며 자신이 저지른 모든 폭력 때문에 전문적인 의학적 처치와 공감을 받아 마땅한 유일한 행위자라는 개념을 유지·온존시킨다.“
_〈과거에는 누가 피해자였나?〉에서
한편 20세기 이후는 보편적 인권 개념 아래 많은 이들이 피해자로 인정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흑인·여성·성소수자·장애인·노동자의 사회운동은 가부장제, 인종주의, 자본주의에 저항하며 생존권과 시민권을 쟁취해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부당한 폭력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백인 남성에게만 온전히 부여·인정되었던 피해자성을 일부 부여받았다. 이처럼 특권층만을 피해자의 지위에 올려놓으려는 인종주의적·성차별적 기획과 이에 대한 광범위한 저항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피해자와 피해자성은 여러 입장이 경합하며 변화하는 정치적 개념이 되었다.
“나도 억울한 피해자다!”
피해자의 지위는 어떻게 빼앗기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피해자’는 대체 누구인가? 앞서 말했듯, 자신의 고난을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의 시대에는 정당성만으로는 결코 부당한 고난을 겪는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소셜미디어에 넘실대는 고난은 그 고난을 유발한 원인이나 맥락과는 무관하게 떠돌다가 임의의 사용자에게 도달한다. 사용자들은 고난의 맥락을 세세히 살피기보다 자신이 이입하거나 정당화하고 싶은 부분에 공감을 표하며 이를 다시 확산한다.
역설적으로 고난은 널리 퍼질수록 그 원인과는 멀어지며, 소셜미디어는 고통과 공감을 호소하는 주장이 맥락과 분리된 채 경쟁적으로 확산할 뿐인 ‘피해자들의 시장’이 된다.
이 시장에서는 성폭력 피해자와 억울함을 주장하는 가해 용의자가 똑같이 자신의 고난에 공감해줄 것을 요청하고, 누구의 말이 더 정당한지 묻지 않는 알고리즘은 오로지 ‘더 인기 있는 주장’을 증폭한다.
고난의 경험과 그 조건의 분리야말로 가해자, 권력자가 원하는 바이다.
개인의 고난이 어떤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지 지워버릴 수 있다면, 고난에 처한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 마땅한 동등한 존재가 된다.
성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도, ‘억울한’ 가해 용의자의 눈물도 하나의 인간적 아픔일 뿐이고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이자 서로에게 상처받은 피해자인 두 개인의 갈등으로 축소된다.
이처럼 폭력의 구조를 감추고 피해자의 지위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주장하는 피해자성을 저자는 ‘전략적 피해자성’이라고 명명한다
. 전략적 피해자성은 차별에 대한 시정 조치를 ‘역차별’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조치를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편견을 ‘합리적 두려움’으로 왜곡하며 자신의 고난을 발화할 권력이 없는 약자를 짓밟고 피해자의 지위를 빼앗는다.
“가장 취약한 이의 구조적 고통에 주목하라”
빼앗긴 피해자성을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모두가 억울한 피해자를 자처할 때, 우리는 누구의 고통에 주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이때 개인이 겪는 모든 고통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누군가의 호소가 고통받는 다른 이를 침묵시키고 폭력과 차별의 구조를 지탱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저자는 이러한 전략적 피해자성을 구별하기 위해 피해자성 탐문법이라는 분석적 도구를 제시한다.
피해자성 탐문법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가 어떤 사회적 지위에서 어떤 종류의 권력을 가진 채로 발화하는지, 그의 주장이 특정한 배제나 차별을 전제하거나 영속화하는지, 그 주장이 듣는 이로 하여금 무슨 감정을 유발하여 어느 공동체를 결집하는지 그 세밀한 맥락을 짚어 피해자성이 무기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렇다면 넘쳐 흐르는 고통의 주장 사이에서 어떻게 전략적 피해자성을 구별해낼 것인가?
전략적 피해자성의 핵심은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을 무시·호도하고 권력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피해의식을 과장하여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전략적 피해자성을 주장하는 잔인함의 화법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바로 기득권(백인, 남성, 중산층…) 중심의 공감, 이상화(‘피해자는 순수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환상), 언어적 역전(성폭력 ‘피해자’를 무고의 ‘가해자’로 호명하기), 의미의 탈맥락화(‘페미나치’ 등 사회운동을 비하하는 용어 개발하기), 완곡어법(전쟁 중 비서구 민간인 사망을 ‘부수적 피해’로 표현하기), 일시적 투사(‘역차별’의 공포 과장하기), 보편화(‘흑인목숨은소중하다’ 운동에 ‘모든목숨은소중하다’로 맞서기)이다.
이러한 화법들은 피해자성 탐문법과 함께 전략적으로 피해자를 자처하는 가해자를 구분하고 비판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이며, 대신 ‘가장 취약한 이들’의 고통에 주목하는 방법이다.
성폭력 가해자로 여러 차례 고발을 당하고도 연방대법관이 된 브렛 캐버노는 2022년 다른 연방대법관과 함께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번복했다.
자신을 억울한 피해자라고 호소하여 성폭력 고발을 무마한 그는 마찬가지로 태아야말로 무고한 피해자라고 말하며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 여성으로부터 자신의 신체에 대한 통제권을 박탈했다.
가해 용의자가 읍소하는 ‘억울함’을 존중하며 ‘중립’을 지킬 때, 진위를 가리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며 자신의 판단을 유예할 때 가장 취약한 이들은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대신 범람하는 피해의 목소리 중에 취약한 이들의 외침을 발견하고 가해자의 거짓을 가려낼 때, 정치적 무기로 오염된 피해자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추천평
너만 힘드냐는 말엔 언뜻 솔깃함이 있다. 고통은 보편적이며, 누구나 느낄 수 있으니까. 책 안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고통의 민주주의” 속에서 산다. 극우도 억울함과 박탈감을 주장하며 피해자라고 호소한다.
가해 용의자는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로 둔갑하고, 피해자는 가해자로 의심받고 되려 공격당한다.
게다가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어떤 고통이 더 많이 보여질지에 깊이 관여해 이미 인기 있는 고통의 말을 증폭한다.
특권을 가진 자들의 고충이 긴박한 고통으로 부풀려진다.
플랫폼 위에 피해자가 범람하고 자신의 고통이 더 중요하다고 치받는 사이, 사람들은 누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이 책은 흔한 고통보다 이면의 특권을 파헤쳐 보는 데 집중한다.
혼돈 속 진실을 벼려내려면 누가 피해자인지보다, 무엇이, 왜, 불의인지 알려주는 구조적 고통에 집중하라고 권한다.
역사적으로 강자에게 포획되어온 고통의 언어가 잔인해지는 지점을 냉정히 분석하면서도, 공감과 분노를 건드리는 고통의 정치에 잠재력이 있다는 조심스러운 낙관을 놓지 않았다. 플
랫폼마저 권력과 자본에 점령당한 시대, 혼돈과 피로 속에서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길을 보여준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도둑맞은 피해자성을 되돌려줄 책이다.
- 김인정 (저널리스트, 《고통 구경하는 사회》 저자)
어떻게 피해자 담론은 가진 자들의 무기가 되었을까? ‘갈라치기’의 정치공학이 노골적으로 펼쳐지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자를 손쉽게 ‘가해자’로 지목하고, 반면 자신은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보상을 촉구한다.
이같은 경합의 장을 어떻게 읽어내면 좋을까. 이 책은 우리가 피해자성을 둘러싼 담론적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 이면에 놓인 구조와 권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훌륭한 분석틀을 제공한다.
저자는 기득권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새롭게 호명함으로써 불균등한 권력 관계를 재생산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결국 피해자성은 우리 시대의 강력한 무기이자 상징자본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저자는 변화를 촉구하며 질문을 던진다.
피해자의 자리가 특권이 된 시대, 우리는 고통의 언어를 취약한 이들의 것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까? 이 쉽지 않은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 김정희원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공정 이후의 세계》 저자)
인권과 평등이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증언, 그리고 그들의 용기와 희생은 결정적이었지만, 오늘날 피해자라는 언명 자체는 더 이상 진보의 원동력이 되기 어려워졌다.
전통적인 지배 집단이 스스로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피해자 중에서도 특권층만이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누리게 되면서, 진정한 소수자들의 권리는 더 이상 피해자로서 정치화되기 힘들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권력 집단이 오히려 역차별의 ‘피해’를 호소하고 다닌 지 오래다.
이 책은 ‘피해자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역사를 돌아보고 현대사상의 통찰을 활용하며 맥락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리고 어떤 질문을 어떻게 던져야, 피해자성의 문제를 재구조화하고 정의를 지향할 수 있는지, 그리고 피해의 호소가 연대의 요청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 탐구하고 있다.
-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말이 칼이 될 때》 저자)
어떻게 특권을 지닌 힘있는 남성들이 피해자 중의 피해자 행세를 하게 되었는가?
이 중요한 책은 이에 대한 새롭고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페미니스트, 문화와 미디어 연구자, 교차성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에바 일루즈 (《감정 자본주의》 저자)
자신이 피해자라는 주장이 공적 담론을 경쟁적으로 집어삼키고 있는, 피해자에 관해 말하기 조심스러운 시기에 이 책은 피해자에 관해 많은 것을 들려준다.
특권층의 불만과 사회구조적 불안정성을 분리함으로써 저자는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피해자의 언어를 되찾아준다.
이 책은 풍부하고 정교한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의 정치적 교착 상태를 넘어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앨리슨 콜 (뉴욕시립대학교 교수, 《진정한 피해자성이라는 환상》 저자)
침묵의 성인들의 성스러운 슬픔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저자는 그 답을 알려준다.
그 모든 슬픔은 고난이 경쟁하는 시장으로, 항상 권력자들에게 유리한 그곳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는 정의롭고 아름다운 정치의 이름으로, 또 다급하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권력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고통에 주목하라고 호소한다.
- 존 더럼 피터스 (예일대학교 교수, 《자연과 미디어》 저자)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9226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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