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인간과 건강 (독서요약)/2.백세시대 (인생명언)

노년이란 무엇인가 (2025) - 늙음을 혐오하는 사회에 맞서다

동방박사님 2025. 10.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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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모든 노인은
‘더욱 부유하고, 유식하고, 생산적인 노년’이라는
거짓 이상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창조적인 노년을 위한 안내서

‘박홍규의 사상사’ 시리즈 두 번째 책
『노년이란 무엇인가』

‘박홍규의 사상사’ 시리즈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우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전작의 도발적인 질문에 이어 이번에는 ‘노년’이 사상과 문화, 예술, 정치, 사회 등의 영역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그려져 왔는지 검토한다. 

노년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늙음’과 ‘늙은 이후의 시기’를 뜻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노년을 말하는 책들조차 ‘노년’과 ‘늙음’이라는 말을 터부시하는 데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그리하여 대신 ‘나이 듦’ ‘지혜롭게 나이 드는 법’이라는 완곡하고 ‘온화한’ 어휘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다. 

“늙음을 수치스러운 비밀처럼 여기고, 그런 걸 입에 담는 자체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연하였다. 

이 책은 각 시대의 정치·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노년은 무엇으로 정의되었는지 살핀다.

 많은 사상가는 저마다 노년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았으며, 그 이유와 근거는 무엇이었는지도 고찰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소위 ‘노년 사상’이라 하는 것의 실체를 파헤쳐 노년을 해방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이와 무관하게 모두가 서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것”이 옳으며 “나이는 물론 성별, 인종, 성적 취향 등 그 무엇으로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이 책은 그처럼 자연스러운 노년을 지지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더욱 건강한 노인” “더욱 성공하는 노인” “더욱 유식한 노인”을 이상으로 삼는 기존의 노년 담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노인들이 자치하며 스스로 자기 삶을 경영하는 것을 추구한다. 

이 책 전체에 걸쳐 동서양 노년의 표상으로서 검토하는 이들은 중국의 도연명, 조선의 정약용, 러시아의 레프 톨스토이다. 

그들이 “위대한 시인이거나, 사상가, 소설가여서가 아니라” 노년에 “새로운 창조적 혁명”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년에 이르면 사람은 변화하기 어렵다는 통념을 깨고 자각을 새로이 하며 삶을 새로 창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은 그처럼 ‘창조적인 노년을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다.

목차
머리말

제1부 근대 이전의 노년

1. 노년이란 무엇인가?
2. 고대의 노년
3. 고대 동아시아의 노년
4. 고대 그리스의 노년
5. 고대 로마의 노년
6. 기독교의 노년
7. 도연명의 노년
8. 중세 동아시아의 노년

제2부 근대 이후의 노년

9. 르네상스의 노년
10. 바로크의 노년
11. 근대 동아시아의 노년
12. 정약용의 노년
13. 19세기의 노년
14. 레프 톨스토이의 노년
15. 20세기의 노년
16.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년
17. 현대 한국의 노년

맺음말

저자 소개
저 : 박홍규 (朴洪圭)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사실 우리에게 ‘사회’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함께 사는 ‘사회’가 없으니 그 구성원으로서의 ‘개인’도 없는 것입니다. 

오로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각자’가 있을 뿐이지요. 

남이야 어떻든 오로지 각자 저 살기만을 꾀합니다. 

1584년 임진왜란 당시에 나온 이 말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삶의 기본 격언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쩌면 한반도는 아직도 임진왜란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년, 청년, 장년, 노년 등의 구분이 실제로 널리 사용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그전까지 아이는 나이 어린 성인이고, 노인은 나이 든 성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한 이후에는 모두 ‘어른’이 되었지요.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 성인은 2013년 이후 법적으로 만 19세 이상을 가리키지만, 조혼이 성행한 과거에는 19세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 마지막인 노년이라는 개념은 과거부터 있었으나, 나이를 기준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오늘날 의학의 발전으로 수명이 연장되며 정년퇴직 등을 시키기 위해 정한 바에 불과합니다.
--- 「주름살이 아름답다」 중에서

이 책은 그처럼 자연스러운 노년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합니다. 

나는 자유로운 개인이 모여 자치하며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을 추구해왔고, 또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가령 수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저 평소에 면도하지 않고 있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바리캉으로 밀어줄 뿐입니다. 

유기농 농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고 종종 묻는데, 나는 항상 그냥 내버려두다가 가끔 바리캉으로 수염을 밀듯 삽질을 한다고 대답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나의 노년을 그냥 내버려두다가 아주 가끔 ‘관리’할 생각입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 「노년은 자유다!」 중에서

탈현대를 통해 노동에서 해방된다거나 창조적 일탈이 가능해진다는 것도 적어도 현재의 한국에서는 픽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노인은 노동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노동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 비참하기에 창조적 일탈 따위는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동양의 통일체적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은 봉건사회의 이데올로기로서 현대에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로 악용되었습니다.
--- 「노년의 사상사」 중에서

노화는 인간에게 불가피한 현상이고 시대를 초월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노화와 노년, 늙음에 대해 자주 숙고했습니다. 

노년에 대한 사고는 각 문화의 종교와 국가 조직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으며, 사회질서 차이의 핵심에는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기본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노인에 대한 개념과 대우는 중국의 계급주의 사회구조와 그리스의 민주주의 구조의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서로 많이 달랐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노년을 쇠퇴의 하향 경사로 향하는 슬픔으로 보았습니다.

 반면 고대 중국에서는 노인이 존경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적어도 지배층에서는 분명히 그러했습니다. 

스파르타를 제외하고, 그리스 세계의 폴리스 사람들은 고대 중국인들만큼 노인을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 「동서양 고대 노년의 비교」 중에서

『장자』 「추수」 편은 늙어서 생명을 자연으로 온전히 되돌리는 방법으로 ‘외부의 사물로써 자신을 해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외부의 사물이란 돈, 명예, 권력과 같이 본래적인 자아 외의 것들로, 욕망의 대상이 되어 온전한 생명을 해치는 것을 말합니다. 

장자는 나아가 내면 수양을 위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등의 ‘정감을 없애야 한다(無情)’고 하며, 희로애락에서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장자』 「대종사大宗師」 편에서는 “자연은 우리에게 모습을 주었다. 

우리에게 삶을 주어 수고하게 하고, 우리에게 늙음을 주어 편하게 하며, 우리에게 죽음을 주어 쉬게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삶을 좋다고 하면 스스로의 죽음도 좋다고 하는 셈이 된다”고 하여 삶과 늙음과 죽음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 「장자의 노년」 중에서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늙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통해 늙음에 대한 신화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들의 이야기는 곧 인간의 소망을 드러내지요.

 늙음에 대한 인간의 불만이 늙지 않는 신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의 노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저주로 여겨집니다. 

헤시오도스는 『노동과 나날』에서 판도라가 인간들에게 “노년이 가져다주는 잔인한 병들을 심었으니, 비통하게 빨리 늙어버리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저주 이전에 인간은 “노동도, 고통도, 잔인한 노년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언제나 팔과 다리가 건장했고, 마치 잠들듯이 죽었다”면서요. 늙음은 인간에게 노동이나 고통과 같은 불행이었습니다.
--- 「그리스 신화의 노년」 중에서

히포크라테스가 죽고 약 1세기 뒤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노화와 죽음에 대한 의학적 이론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히포크라테스의 열이 삶의 필수적인 질이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영혼의 자리는 심장에 있으며, 자연적인 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영혼은 태어날 때 타고난 열과 결합되며, 영혼이 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열이 필요합니다. 

삶은 영혼과의 관계에서 이 열을 유지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타고난 열을 연료가 공급되고 유지되는 불에 비유했습니다. 

불이 연료가 고갈되거나 꺼질 수 있는 것처럼, 타고난 열도 꺼지거나 고갈될 수 있습니다. 

열을 계속 생산하려면 연료가 필요하고, 연료가 고갈되면 노년과 마찬가지로 불꽃이 약해집니다. 

약한 불꽃은 청춘의 강한 불꽃보다 더 꺼지기 쉽겠지요. 

그대로 두면 연료가 고갈되어 불꽃이 꺼지고 그 사람은 노령으로 죽게 됩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년」 중에서

키케로는 기원전 106년에 태어나 기원전 43년에 죽었습니다. 

그는 원로원이 권력을 갖는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정치인이었는데, 원로원에 입성한 30대에 이미 공화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이는 그가 살해당하기 한 해 전에 쓴 그 책에 그대로 반영되었지요. 

그러나 키케로가 옹호한 로마 공화정을 지금 우리가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 공화정이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키케로는 왕정과 같은 일인 독재에 반대하지만, 민중의 실질적 정치 참여를 봉쇄하는 엘리트 집단지도체제인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을 지지했습니다. 

따라서 원로원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는 희망, 지금까지 누렸던 원로원의 특권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노년론을 쓴 취지였습니다.

 『노년에 관하여』는 특권계급인 원로원 노인들을 위한 책이었습니다.
--- 「키케로의 노년」 중에서

세네카는 무위도식해서는 안 되고 후손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배워야 한다고 말하지요. 

여기까지는 키케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친구와 계속 친하게 지내려면 외모를 내버려두거나 무관심해서는 안 되고, 보기 좋게 가꾸어야 한다고 말하여 당황하게 합니다. 

물론 한국식 외모지상주의는 아니고 노인이 외모를 가꾸지 않고 늙은 모습 그대로이면 친구를 잃기 쉽다고 경계하는 말이라 여겨지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 「세네카의 노년」 중에서

기독교가 서양의 이데올로기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기독교가 그 가장 중요한 교리인 사랑을 포기하고 게르만족의 관습에 순응하여 세속화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기독교는 처음에는 고대 그리스 사상과 대립했으나, 4세기 이후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고대 그리스 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기독교는 노예제도를 금지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스나 로마제국에서 부정적이었던 노인들의 운명도 개선하지 못했습니다.
--- 「중세의 노년」 중에서

이 두 작품 외에도 중세 말의 모든 문학은 악과 혐오, 영혼과 육신의 쇠락, 우스꽝스러움이라는 주제로 오로지 노년을 희화화합니다. 

여자는 30세, 남자는 50세면 노인이 되고, 60세에는 모두 죽는다고 합니다. 

특히 남자 노인보다 여자 노인을 더 심하게 풍자합니다.
--- 「초서의 노년」 중에서

르네상스는 노년에 적대적이었습니다. 르네상스기에도 서양에서 노인은 무시당했습니다.

 청춘의 그리스를 흠모해 그것을 부활하고자 시도한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은 노년을 어둠의 중세처럼 저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았습니다. 많은 노인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었으니까요.

 가령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70세까지, 오스만투르크의 쉴레이만 1세는 72세까지, 포르투갈 왕 엔리케는 68세까지, 로마 교황 율리우스 2세는 70세까지, 코시모 데 메디치는 75세까지 통치했습니다. 

정치가만이 아니라 예술가들도 노년에 창조적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89세까지, 티치아노는 99세까지 활동했습니다. 

다 빈치도 67세에 죽었고, 62세에 죽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가 정리한 『미술가 열전』에 나오는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이탈리아 예술가 47명 중 72퍼센트가 60세를 넘겼습니다.

 중세와 마찬가지로 르네상스도 노인이 지배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인들은 역시 예외라고 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가난한 무명으로 살았으니까요.
--- 「르네상스 사회의 변화와 노년」 중에서

17세기의 평균수명은 20~25세였습니다. 영양 부족 상태에서 중노동을 해야 했던 데다가 위생 또한 불결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절반이 돌이 되기 전에 죽었지요. 

거의 매일이 기근인 와중에 영주는 농민을, 고용주는 노동자를 착취했습니다.

 이 시기에 노인들은 대체로 고통받았습니다.

 청년들이 사회의 권력을 잡았고, 권위주의적이고 절대주의적인 사회는 노인과 여성, 아이들을 배척했습니다.

 농민과 장인 사이에는 가족 부양 제도가 있었고 교회의 지원도 있었지만 형편없었습니다.

 반면 부르주아 계층에서 노년은 가치 있다 여겨졌으며, 가족 또한 이상화되었습니다.
--- 「17세기의 노년」 중에서

사이드는 사람들이 대부분 말년에는 타협과 보수의 길로 가지만, 비타협과 반역의 길로 가는 소수가 있다고 하는데, 정약용이 바로 그 소수에 속합니다. 

그는 당시의 관습이나 풍습, 특히 지식인들의 사대주의적인 학문을 칠십에 벗어나게 되었다고 기뻐합니다. 

나아가 자신이 평생 이룩한 학문적 성취를 회의합니다.

 이처럼 그가 나이 칠십에 전통이나 관습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비타협의 참된 지식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는 뛰어난 노년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참된 비타협이나 반역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공자를 비판하기는커녕 공자에게로 되돌아갔으니까요.
--- 「「노인일쾌사」 5수」 중에서

쇼펜하우어의 노년론은 자신과 같이 크게 가난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노년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는 나이 들어서 가난한 것은 큰 불행이라고, 경제적 어려움이 없고 건강만 유지된다면 노년은 일생 가운데 가장 견디기 좋은 시기라고 하지만, 이는 가난한 노인을 고려한 말이 아닙니다. 

그의 눈에 가난한 노인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노년에 성적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이성을 되찾고 허무에 대해 확신하게 되는 것을 강조하는 점을 비롯하여 앞서 본 플라톤 『국가』의 노년론 취지를 따른다는 점에서 쇼펜하우어는 부르주아적인 노년론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보부아르가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여겨지네요.
--- 「쇼펜하우어의 노년」 중에서

19세기 미국의 철학자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1862년에 과학자들이 그 이후로 확증한 노화의 특성을 설명했습니다.

 주로 신체가 노화되고 삐걱거리더라도 정신은 탄력성으로 크게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 증거로 존 애덤스(John Adams)가 90세에도 기민하고 간결했으며, 워싱턴(Washington), 제퍼슨(Jefferson), 매디슨(Madison), 먼로(Monroe)가 각각 대통령이 되었을 때의 나이도 빠르게 기억했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겉모습이 정신의 질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습니다. 

에머슨에 의하면 예리함을 정의하는 것은 젊음이 아니라 ‘판단력(식별력)’입니다. 예리함은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지요.
--- 「에머슨의 노년」 중에서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Лев Толстой, 1928~1910)는 82년 생애 중 3분의 2가 지나 50세가 되던 1878년에 참회를 시작해 칠 년 뒤인 1885년까지 정신적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세상일에 무관심하고 자기 안일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게 행복을 갖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그렇지 못한 세상에 분노하고 비판한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나이가 들어 늙었다고 세상일의 옳고 그름에 무관심해지고 오로지 개인적인 행복 추구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얼마나 야비하고 초라한 일이겠습니까?
--- 「톨스토이, 노년의 참회」 중에서

이 작품을 쓸 때 하인리히 만은 삼십 대 중반이었습니다. 

노교사 운라트는 프로이센 사회의 경직성 혹은 독재 권력기관의 은유입니다.

 노교사 운라트의 몰락은 결국 속물들이 이끄는 독일제국 사회가 미래에 마주할 파국을 예언한 것입니다. 

반면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노작가가 어린 소년을 짝사랑하다가 병으로 죽는 이야기입니다.
--- 「하인리히 만의 노년」 중에서

『노인과 바다』도 빈곤의 소설입니다. 1952년까지 십여 년간 쿠바에서 생활하면서 헤밍웨이가 본 것은 가난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쿠바는 사회주의국가였습니다. 

공산당이 지지한 바티스타 독재 정권이 부활한 1952년에 그 소설이 나왔습니다. 

흔히 헤밍웨이가 쿠바를 너무 좋아해서 마지막 생애 이십여 년을 그곳에서 살았다고 하지만, 그가 좋아한 쿠바는 사회주의 쿠바가 아니라 억압과 가난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쿠바였습니다. 

영원한 패배 속에서 살아가지만 언제나 우아함을 잃지 않는 인민의 나라였습니다. 

헤밍웨이는 그들 인민이 자유롭게 자치하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노인과 바다』를 썼습니다.
--- 「나의 헤밍웨이 기행」 중에서

이와 반대로 코헨은 삶의 후반부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발달을 ‘내적 충동(inner push)’에 따라 중년의 재평가 시기(midlife revaluation), 해방기(liberation pace), 회고기(summingup), 앙코르기(encore)로 설명합니다. 재평가기는 탐색과 전환의 시기로, 40세에서 60세 사이에 자기 삶을 진지하게 재평가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해방기는 새로운 것을 실험하거나 종래의 것을 혁신시키기 이전의 제한과 금지된 것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시기로 오십 대 후반에서 칠십 대에 이릅니다. 

회고기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회고하고 결의를 다지고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 시기로 육십 대 후반에서 팔십 대에 이르는데, 타인에게 베푸는 봉사와 인류애를 발휘합니다. 

마지막 앙코르기는 고난과 상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삶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면서 창의성과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펴는 시기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간의 뇌기능은 나이가 들수록 저하하기는커녕 도리어 계속 고도화한다”고 코헨은 말합니다(10~12쪽).
--- 「진 코헨의 노년」 중에서

현대 한국에서 노년은 ‘타자’이자 ‘이질적인 종’ ‘비인간’입니다. 

사회의 소위 정상적인 삶에서 배제된 노년은 소모적인 권태, 씁쓸하고 굴욕적인 쓸모없음의 감각, 자신들에게 무관심한 세상 속에서 외로움에 처하게 됩니다. 

현대 한국 시인들의 작품 중에 노년을 다룬 것이 많지만, 내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문정희의 「안개 노인」뿐입니다.
--- 「문정희의 노년」 중에서

노년학 외에도 여타 기존 학문과 예술 등의 노인 담론이라는 것도 ‘더욱 건강한 노인’이나 ‘더욱 성공하는 노인’ ‘더욱 유식한 노인’을 이상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사실 오래된 전통입니다. 

유사 이래 노년 문제가 없었던 적이 없으나, 언제 어디서든 반수 이상의 노인은 가난한 노예거나 농노, 노동자여서 기존의 노년 담론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한 문제는 유교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 가장 심각하고, 그중에서도 한국이 제일 심각합니다. 

그래서 공자가 죽어야 아기가 태어나고 노인도 행복해진다는 주장도 나올 법 한데, 이상하게도 전혀 없습니다.

 학자들은 그저 공부하라 명령하고, 소설가들은 늙은 몸을 부끄러워하라고 윽박지릅니다.

그렇다고 노인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나라에 살며 니체처럼 노인에게는 자살이 명예로운 일이라며 부추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 더욱이 노쇠한 민족에게는 전쟁만이 명예라고 하는 니체의 말을 따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노인 자살률과 전쟁 가능성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니체가 인기가 있다는 것은 이해 못 할 일이 아니지만, 몹시 못마땅합니다.

 지난 반반세기 이 땅에서 65세 이상이 매년 오천 명씩, 십만 명이 자살한 것은 대개 가난 때문이지 명예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은 미쳐 마지막 11년을 의사와 가족의 배려 속에서 억지로 살았으면서 늙음은 오로지 무의미하니 자살하라고 권한 니체는 이 땅에서 추방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나는 정약용보다 1400여 년이나 앞서 살았던 도연명의 노년을 내가 따라야 할 아나키 유토피안 노년의 모범으로 삼습니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나 벼슬을 집어치우고 고향에 돌아가 죽을 때까지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민들과 벗하면서 자연 속에 살았고, 왕도 귀족도 장군도 없이 모두가 농사지어 자급자족하는 도화원을 이상사회로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거부하고 농민을 멸시한 공자의 유교를 비판했음은 물론, 세상을 혐오한 불교나 도교와도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런 도연명의 아나키 유토피아는 19세기 러시아의 톨스토이와 20세기 미국의 헤밍웨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맺음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었던
노년의 역사를 ‘다시 쓰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읽는
노년의 사상사

이 책은 총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각각 근대 이전과 이후의 노년 사상을 살핀다. 

오늘날 만연한 사회 문제에 대하여 혹자는 ‘건강한 유교 질서의 붕괴’를 원인으로 들며 노인과 그들의 지혜가 존중받았던 시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노년을 다루는 이 책의 1부는 ‘노인이 존경받았던 시대’란 허상이라고 말한다. 

존중받는, 혹은 존중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노인은 극소수였으며, 생활환경이 열악하였던 시대에 노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자체가 ‘특권’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극심한 빈곤 속에서 죽을 때까지 노동해야 했으며, 그런 그들의 모습은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특권계급 노인들은 당시 사회를 이끌었으나, 부와 사회적 지위를 두고 젊은 세대와 끊임없이 갈등 관계에 놓였다. 

 

1부에서 이상적인 노년의 표상으로 꼽을 만한 인물은 4~5세기를 살았던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다.

 도연명은 벼슬을 좇느라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마음 내키는 대로 살기 위하여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농사지으며 농민들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순박함으로부터 배웠다. 

늙음과 죽음을 불안해하며 갈등하기도 했지만, 결국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하기로 한다.

비로소 늙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상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순간은 19세기 이후이다. 

 

2부에서는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와 19, 20세기 등 근대 이후의 노년 사상을 살핀다. 

이 시대도 노년에게 적대적이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많은 예술작품이 노년을 추하고 혐오스러우며, 탐욕이 많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묘사했다.

 2부에서 이상적으로 꼽는 인물은 정약용과 톨스토이다.

 정약용은 말년에 비로소 중국의 말과 글에서 벗어나 조선 말로 조선 시를 쓰게 되었다고 기뻐한다. 

그리하여 노인일쾌사 5수에서 노인의 기쁨 중 하나가 “붓 가는 대로 미친 말을 마구 씀”에 있다고 한다. 

“나이 칠십에 전통이나 관습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비타협의 참된 지식인”이 되었다며 기뻐한 것이다. 

톨스토이는 생애 3분의 2가 지났을 때 농부의 삶이야말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 시기 그가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모든 권위를 철저히 비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자신만의 종교관을 구축하였다는 점을 이 책은 주목한다. 

바로 거기서 삶에 필요한 노동을 스스로 할 것과 비폭력 무저항을 주장한 톨스토이주의가 나왔다. 

이 책은 기존의 노년 사상을 톺아보고 그것에 대한 비판을 종합하여 소박하고 자유로우며 창조적인 노년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에게는
부유한 노인들의 철학이 아닌
늙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노년 사상이 필요하다

“노년에 대한 사상가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공소한 것들입니다. 

나는 그것을 비판하고 뒤집어야 늙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 쓰일 수 있다고 봅니다.” _본문에서

역사는 언제나 승자, 강한 사람의 관점에서 쓰인다. 

따라서 그 역사를 돌아보는 우리에게는 그 외 사람들의 관점을 알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년에 대한 사상사를 검토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노년에 대해 말할 여유가 있었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에 있었으며, 그렇지 못한 노인들은 먹고살기만도 바빴던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오늘날 가장 유명한 노년론으로 일컬어지는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를 그 대표적인 예로 든다. 

그 책은 노년에 대한 고대 저술로서는 유일하게 우리말로도 여러 번 번역되었으나, 그것을 ‘단순 노년 철학 담론’만으로 볼 수는 없다.

그 책에는 공화정이 무너져가는 시기에 원로원에 입성한 키케로의 불안이 반영되어 있다. 

원로원의 권위를 회복하고 지금까지 누렸던 특권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그 책을 썼다는 것이다. 

결국 “『노년에 관하여』는 특권계급인 원로원 노인들을 위한 책”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부유한 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쓴 노년 사상을 오늘날 우리가 절대적인 진리처럼 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이 책은 그러한 노년 사상들을 철저히 비판하기 위해 쓰였다. 

그로써 늙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노년 사상이 나올 수 있으리라는 일념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을 자랑한다. 

혹자는 수명만은 대폭 늘어나지 않았는가 말할지 모르나, 어쩌면 실제로 늘어난 것은 “노년의 비참함”인지도 모른다. 노인 빈곤율과 마찬가지로 치솟는 노인 자살률이 그 증거다. 

따라서 이 책은 “노년 사회보장의 확립을 전제로 한 노년의 창조성 앙양”을 주장한다.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고 “굶주리고 병들어 죽지 못해 겨우 살아가는 형편”에는 창조력이 싹틀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길어지는 평균 수명과 치솟는 노인 빈곤율에 대응하여 정년을 늘리고 노인들을 재교육하여 계속 노동하게 하자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사회에 기여’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노동이나 교육은 노인들은 물론이고 청년들에게도 더 이상 시켜서는” 안 된다. 

결국 노인이 자유롭게 해방되어 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회 패러다임 전체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 책은 노인들이 먼저 각성하여 그러한 ‘혁명’에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59059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