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정치의 이해 (독서요약)/7.정치외교학일반

캅카스전쟁과 체첸전쟁의 기원과 과정 (2025) - 러시아와 체첸의 끝나지 않은 전쟁

동방박사님 2025. 11. 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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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하드인가, 테러인가? 체첸전쟁에 대한 해석

러시아 및 유라시아 지역 내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러시아와 동유럽의 역사에 있어 핵심적인 분쟁 사건이다.

 2022년에 발발하여 현재도 진행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30여 년 이전에 벌어진 캅카스전쟁과 체첸전쟁은 지금의 러시아를 비롯한 그 주변국과의 관계성을 밝혀 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캅카스전쟁은 제정러시아가 제국주의 야망으로 러시아 남부로의 영토 확장을 시도하면서 벌어진 전쟁이다. 이는 러시아가 유럽 제국으로 편입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러시아는 1816~1864년 거의 반세기 동안 벌어진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이후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제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 1991년 소련 해체까지 오랜 기간 러시아는 캅카스와 중앙아시아를 지배했고, 캅카스전쟁의 승리는 그 근거가 되었다.

역사적 시간은 흘러가 다시금 체첸전쟁이 있었다.

 아직도 체첸 지역은 분쟁이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이 지역의 분쟁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등장할지 예측하기란 어렵다.

 당분간은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질 테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의 행방에 따라 어떤 형태라도 다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존한다.

지하드(Jihad: 성전),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교도들과의 전쟁을 모두 성전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분리 독립을 성취하기 원하는 민족이 가지고 있는 지하드에 대한 이념을 고찰했다. 

이러한 과정이 특정 민족의 역사, 운명 그리고 미래의 방향성에 대한 최소한의 정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료된다. 지하드는 러시아에서 열세에 있던 이들이 채택한 전쟁 개념이며 투쟁의 아이콘이었다.

목차
머리말

서론

1부│1차 캅카스전쟁과 지하드 기원

1장 _ 제정러시아의 북캅카스 점령 역사와 지하드 기원
2장 _ 체첸 이맘 만수르의 지하드 선포와 1차 캅카스전쟁

2부│2차 캅카스전쟁과 지하드

3장 _ 러시아와 북캅카스 민족의 군사적 충돌과 2차 캅카스전쟁의 과정
4장 _ 지하드인가, 테러리스트의 원조인가?
: 이맘 샤밀의 신정국가와 성전(聖戰)의 연관성
5장 _ 19세기 북캅카스에서 지하드 투쟁만 있을까?
: 전쟁을 반대하는 ‘쿤타 하지’의 평화와 공존의 이념

3부│1차 체첸전쟁(1994~1996)의 과정과 지하드

6장 _ 러시아-체첸전쟁의 서막
: 1940년대 체첸 강제이주의 과정과 인권 담론
7장 _ 1차 체첸전쟁은 캅카스전쟁의 데자뷔인가?
: 전쟁의 기원과 과정

4부│2차 체첸전쟁(1999~2002)과 성전(聖戰)

8장 _ 2차 체첸전쟁과 신정국가 선포 그리고 지하드
9장 _ 2차 체첸전쟁과 러시아의 대응
: 바사예프 사령관의 지하드 항쟁과 푸틴의 대테러 작전을 중심으로
10장 _ 지하드인가, 테러인가?
: 체첸전쟁에 대한 해석학

결론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정세진 (Jung Se Jin,丁世眞)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 러시아 및 유라시아 역사, 종교문화사 연구자.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1989~1996년까지 한국경제신문사 기자로 근무하였다.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19세기 전반기 북카프카스의 카프카스 전쟁과 이슬람 요소 연구』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2005). 

한국외국어대, 연세대, 한동대에서 강의하였고, 현재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로 재직하고 있...

책 속으로
모든 무슬림이 만수르의 봉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봉기 참여를 거부했다. 아바르인은 러시아에 충성을 맹세했으며, 카바르다인은 중립을 지켰다. 

오스만 투르크가 북캅카스에서 종국적으로 그 지배권을 상실한 이유는 캅카스에 대한 두 가지의 정책 때문이었다. 

러시아와 전쟁이 벌어졌을 때 오스만 투르크는 북캅카스 민족을 지원하기 위해 접근했다. 

그러나 평화 시기 오스만 투르크는 그들의 투쟁을 무시했고 그 지역에서의 현실적 체제를 유지하는 정책을 더 선호했다. 

그 결과 오스만 투르크는 북캅카스 민족의 신뢰를 상실했다. 

그럼에도 북캅카스 민족은 오스만 투르크를 지원했고 오스만 투르크의 편에서 러시아에 대항해 싸웠다.
--- 「1부, 2장 _ 체첸 이맘 만수르의 지하드 선포와 1차 캅카스전쟁」 중에서

춤은 몸을 느리게 움직이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점점 빠른 움직임으로 원을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원형으로 춤을 추면서 노래로 찬양한다.

 지크르는 천사들을 매개체로 하여 알라와의 직접적인 교통을 이루며 신을 찬양한다.

 이들은 신비적이고 금욕적인 수피즘의 원칙을 따르면서 무슬림은 신과의 합일, ‘신에게로 향하는 길’을 추구해야 한다는 타리카 교의에 몰두하였다. 찬양의 주제는 다양하다. 

위대한 성인이 행한 여러 가지 사건, 일반적 무슬림에 관한 주제, 신을 향한 찬양, 쿤타 하지를 향한 칭송 그리고 정의로운 칼리프였던 알리에 대한 찬양 등이다. 

찬양 의식의 목적은 변화하는 세계와 자연을 기억하면서 신 앞에서의 의무, 도덕적인 삶과 행위 등을 신자들에게 요청하는 일 그리고 이슬람의 모든 계명 등을 성실히 준수하자는 희망을 표현하고 개인의 사상과 행동에 있어서의 정직성을 추구하였다.
--- 「2부, 5장 _ 19세기 북캅카스에서 지하드 투쟁만 있을까?」 중에서

체첸인의 강제이주의 원인은 무엇일까? 

당국은 체첸 민족이 독일 군대에 협력했다는 이유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사실 명확하지는 않다. 

필자의 박사 논문 지도교수였으며 저명 역사가인 故 세르게이 아르추노프는, 강제이주는 체첸인이 독일 군대에 협조한 이유로 스탈인이 강제이주시킨 것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전과 그 기간에 체첸인이 당국에 일으킨 정치적 저항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공식적으로 소련 당국은 반역을 저지른 체첸인에 대한 징벌 차원으로 강제이주를 단행했다고 언급했다. 

독일군의 진군에 저항하기 위해 국경지대에서 소수 민족 사람들이 국가적 의무를 다해주기를 바라는데, 전쟁 위기 상황에 그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으며 체첸 민족도 그러했다는 것이 당국의 입장이었다.

문서로 전해지는 가장 참혹한 사건은 1944년 2월 27일 체첸 샤토이 지역 카이바흐(Khaibakh) 지구의 갈란토쥐(Galanchozh) 헛간에서 700명 정도의 체첸인이 산 채로 화장 당한 일이다.

 최연소자는 3살이었으며, 노인 중에는 100세 된 이도 있었다. 

도로로 나오면 트럭으로 기차역까지 수송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걸어서 도로까지 나갈 수 없었다.

헛간 안에는 방화 장치가 되어 있었고 안에 있는 모든 이가 사망했다.

베리야의 극동 지역 NKVD 행정 책임자이자 이주 작전 중 갈란토쥐의 책임자였던 미하일 그비쉬아니(Mikhail Gvishiani, Михаил Гвишиани, 1905~1966)는 방화를 명령했다.

이외에도 여러 잔혹 행위가 있었다.
--- 「3부, 6장 _ 러시아-체첸전쟁의 서막」 중에서

체첸 내에서도 이미 러시아화된 정치, 문화, 과학 지식인들과 일반 민중 사이의 격차가 벌어졌다. 

전통적인 견해의 지지자들은 체첸의 현대화 지지자들과 관점을 달리했다. 

독립주의자들은 러시아연방의 범위 내에서 자치권을 얻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1993년 두다예프 정권이 권위주의 통치를 감행하면서, 1991년 체첸 통합을 꿈꾸던 희망에 비해 많은 실망감이 나타났다.

두다예프 정부 초기 권력자들은 도리어 권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1994년 옐친은 체첸 정권을 두다예프와 그의 ‘산적 조직’(bandit formations)이 행사하는 불법적 독재통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두다예프에 반감을 갖는 체첸인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공식 선언이었다.
--- 「3부, 7장 _ 1차 체첸전쟁은 캅카스전쟁의 데자뷔인가?」 중에서

지하드는 어떤 의미일까? 지하드는 이교도에 대한 성전 선포이다.

 여기에는 18세기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주의, 18세기와 19세기 초 서부 아프리카 운동 그리고 19세기 초 수마트라의 지하드 운동 등이 있다. 

지하드는 유럽 국가의 식민지 건설에 반대하면서 유럽인에 대항해 일어났다. 

이러한 운동에는 남아시아의 와하비주의자, 캅카스의 샤밀, 알제리의 압델 카디르(Abdel Qadir), 리비아의 세누시스(Senussis) 등이 있다.

 2차 전쟁 전후에 등장한 와하비주의는 지하드와 연관되어 있다.

 와하비주의는 이슬람 국가에서 나타난 지하드 운동의 이념적 요소였으나, 그 자체는 지하드의 가장 강력한 근원이 아니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 이념과 매우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 대신 지하드는 이교도들과의 ‘거룩한 전쟁’, 즉 ‘성전’(聖戰)의 의미로 이해된다.

또한 무슬림 사회의 현실적 상황과도 일정 부분 결부된다.
--- 「4부, 8장 _ 2차 체첸전쟁과 신정국가 선포 그리고 지하드」 중에서

1994년 벌어진 1차 체첸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군대는 승리 이외에도 체첸을 붕괴시키고 체첸의 독립 의지를 종식시키겠다는 결의가 매우 강해졌다. 

러시아 군대가 강력히 전쟁을 수행하면서 체첸인의 손실과 공포도 늘었다. 

이는 체첸인으로 하여금 급진적 이슬람주의로 스스로 무장하는 상황으로 이끌었다. 

체첸인은 러시아인을 향해 더 강력한 저항의 움직임을 가졌다. 

체첸전쟁이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 

그것은 전쟁이라는 분쟁, 갈등 과정 속에서 이슬람의 역할이 변화하였다는 점이다.

즉, 와하비주의로 무장해서 더 강력히 이슬람 정신으로 러시아에 저항했다는 사실이다.

체첸 저항의 역사는 전 세계의 분쟁지에 다양한 유사점을 보여준다.

또한 어떤 점에서는 통찰력 및 교훈을 준다.

1999년 10월에 시작된 2차 전쟁으로 체첸의 테러리즘은 점점 더 잔인해졌다.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이 표적이 되었고, 여러 차례 사형이 집행되었으며, 달아나는 인질들이 등에 총을 맞고 죽어갔다.

체첸인은 2차 전쟁을 전후해 러시아연방 내 혹은 북캅카스에서 여러 테러 행위를 일으켰다. 

2004년 북오세티아 베슬란 테러 사건 때 참여한 여성 반군의 언급을 보면 체첸인의 테러 경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러시아 군인들이 체첸의 우리 아이들을 살해했다. 

그래서 우리는 너희들의 아이들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그런 식의 모토였다. 

베슬란 테러 사건을 기획한 바사예프는 한 인터뷰에서 “학교를 점령한 결과와 러시아군의 손에 수많은 아이들이 사망한 일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학교 점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그 학교에서 불과 100km 떨어진 곳에서, 어떤 종류의 규칙과 국경도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체첸인에 대한 공개적인 대량 학살이 지속되고 있다”며 러시아를 비난했다.
--- 「4부, 9장 _ 2차 체첸전쟁과 러시아의 대응」 중에서

일반적으로 중동 아랍 국가를 중심으로 그 의미가 보편화된 ‘지하드’(Jihad)는 매우 정치적인 용어다.

지하드는 대체로 이슬람의 성전(聖戰)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지하드라는 용어를 떠올릴 때 가장 많이 이해되는 부분은 전쟁 혹은 투쟁이다.

무슬림은 역사적, 전통적으로 비무슬림 민족들을 향한 투쟁의 기치로 지하드를 내세웠으며, 이 단어는 현대 글로벌 사회에서도 여전히 통용된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체첸전쟁 등 무슬림 민족과 격렬한 전쟁을 치른 바 있는 러시아연방 당국자들에게 지하드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수용된다. 

그들은 체첸 민족 등 북캅카스의 테러리스트들이 테러를 저지를 때마다 지하드를 내세운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통치자들은 러시아연방 내에 많은 무슬림이 거주하고 있으며 특히 북캅카스를 중심으로 테러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는 연방 내에 지하드 주창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4부, 10장 _ 지하드인가? 테러인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지하드인가, 테러인가? 체첸전쟁에 대한 해석

러시아 및 유라시아 지역 내에서 벌어진 이 전쟁은 러시아와 동유럽의 역사에 있어 핵심적인 분쟁 사건이다. 

2022년에 발발하여 현재도 진행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30여 년 이전에 벌어진 캅카스전쟁과 체첸전쟁은 지금의 러시아를 비롯한 그 주변국과의 관계성을 밝혀 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캅카스전쟁은 제정러시아가 제국주의 야망으로 러시아 남부로의 영토 확장을 시도하면서 벌어진 전쟁이다. 

이는 러시아가 유럽 제국으로 편입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러시아는 1816~1864년 거의 반세기 동안 벌어진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이후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제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 1991년 소련 해체까지 오랜 기간 러시아는 캅카스와 중앙아시아를 지배했고, 캅카스전쟁의 승리는 그 근거가 되었다.

역사적 시간은 흘러가 다시금 체첸전쟁이 있었다. 

아직도 체첸 지역은 분쟁이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이 지역의 분쟁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등장할지 예측하기란 어렵다. 

당분간은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질 테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의 행방에 따라 어떤 형태라도 다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존한다.

지하드(Jihad: 성전),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교도들과의 전쟁을 모두 성전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분리 독립을 성취하기 원하는 민족이 가지고 있는 지하드에 대한 이념을 고찰했다. 

이러한 과정이 특정 민족의 역사, 운명 그리고 미래의 방향성에 대한 최소한의 정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사료된다. 

지하드는 러시아에서 열세에 있던 이들이 채택한 전쟁 개념이며 투쟁의 아이콘이었다. 

이 책의 저자 정세진은 오랫동안 러시아연방 내 체첸과 다게스탄 등에서 진행된 19세기 전반 ‘캅카스전쟁’과 1994~1996년, 1999~2001년 러시아연방 내 체첸자치공화국에서 벌어졌던 ‘체첸전쟁’에 대해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다.

 이 책은 지난 20년 이상 연구한 결과물이다. 

저자 정세진은 한 민족의 운명에 대해 서술하고자 했다. 

더불어 여러 자료 등을 통해 전쟁의 전체적 성격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 주제는 이슬람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러시아정교회 등 종교적 요소만이 그 전부는 아니다.

또한, 하나의 민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민족의 처절한 생존과 삶을 위한 투쟁이다. 전쟁 당사자의 역사적 아픔과 상흔, 그 모든 것을 한 권에 모두 담기에는 지극히 역부족이나, 자그마하게라도 하나의 특정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싶었다고 한다.

1부에서는 18~19세기 북캅카스 지하드의 전반적인 특성을 기술한다. 

 

2부에서는 본격적인 캅카스전쟁이라 할 수 있는 2차 캅카스전쟁 기간 체첸, 다게스탄 민족 그룹을 포함한 북캅카스 민족이 군사 침공을 감행하던 제정러시아에 맞서 지하드 정신으로 항쟁하는 내용이 서술되었다. 

3부에서는 1차 체첸전쟁(1994~1996)의 과정과 지하드, 4부에서는 2차 체첸전쟁(1999~2002)과 성전(聖戰)을 전체 주제로 한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63653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