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역사이야기 (독서요약)/2.서울(경성)의 역사

다시, 서울을 걷다 (2025)

동방박사님 2025. 11. 2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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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시,
서울을 걸으며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서울의 모습을 발견하다

2008년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에서 저자 권기봉은 서울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르거나 숨겨져 있는, 또는 잊지 말아야 할 서울의 역사적 의미와 장소, 문화,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었다. 

그로부터 4년여가 흐른 지금, 저자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보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현장을 찾아 다시 서울로 나섰다. 

권력자의 시각이 아닌 이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우리들’의 입장에서 다시 서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서울지하철’을 시작으로 ‘성수대교’와 ‘세종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아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서울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고민했다.

 ‘피마길’과 ‘마장동’ ‘어린이대공원’ ‘장충체육관’ 그리고 ‘대학로’ 등 얼핏 익숙한 듯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낯설기만 한 곳을 걸으며 우리가 서울이라는 공간과 역사에 얼마나 무심한지도 살펴보았다. 

화교나 도시빈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옛 소공동 차이나타운’과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을 찾았으며, 노동자들과 철거민의 삶이 오롯이 새겨져 있는 ‘가리봉 오거리’와 ‘회현 제2시범아파트’를 답사했고, 한국 사회의 오늘을 보여주는 ‘말죽거리’와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걸었다.

그 많던 건물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는 말해주지 않은 채 복원사업에만 열중하고 있는 ‘경복궁’과 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서울시청이 스스로 부숴버린 ‘옛 서울시청사’도 주요 목적지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지나간 옛이야기 정도로 치부하고 있으나 슬그머니 역사적 반동을 꿈꾸는 세력의 망령을 고발하고자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과 신당동의 ‘박정희 가옥’ ‘남영동 대공분실’ ‘전쟁기념관’ 등을 샅샅이 살폈다. 

제국주의 향수에 젖어 있는 일본의 몰상식한 태도를 비판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들에 대해 토론해보고자 ‘일본대사관’과 ‘경성방송국 옛 터’ 그리고 ‘중명전’도 돌아보았다.


목차
1부 일상을 걷다
지하철 건설하면 나라 망합니다!
-역사를 안고 달리는 ‘서울지하철 1호선’

성수대교는 그저 흘러간 옛이야기가 아니다
-부실공화국의 증거, ‘성수대교’를 찾아

누가 짜장면을 하찮다 하는가
-지금은 사라진 ‘소공동 차이나타운’을 찾아

그곳에 ‘광장’은 없다
-대한민국 중심 거리 ‘세종로’를 거닐며

더이상 지역 차별의 공간이 아니다
-반포동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아

우리에게는 사스보다 더 경계해야 할 증후군이 있다
-신림9동과 압구정동 사이

달동네가 사라진다고 도시빈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을 찾아

2부 장소를 걷다
누가 ‘말죽거리 신화’의 이면을 보았나
-부동산 투기의 현장, ‘강남’을 찾아

기어이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서울시청이 부숴버린 ‘서울시청’을 찾아

한국은 테일러 가족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행촌동 ‘딜쿠샤의 비밀’을 찾아

그 많던 건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초의 엑스포장 ‘경복궁’을 찾아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
-구로동맹파업의 현장 ‘가리봉 오거리’를 찾아

이곳을 시범 삼아 튼튼히 지으라
-한국 최고最古의 시민아파트, ‘회현 제2시범아파트’를 찾아

3부 의미를 걷다
독재, 흘러간 과거가 아니다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과 신당동 ‘박정희 가옥’을 찾아

이제 잊어도 되는 ‘추억’일까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국가나 민족 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수요시위의 현장 ‘일본대사관’ 앞을 찾아

네거티브 문화유산의 존재 이유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을 찾아

한국 방송의 역사는 그대로 이어진다
-정동 ‘경성방송국’ 터를 찾아

전시되지 않은 역사를 생각한다
-전쟁을 기념하는 ‘전쟁기념관’을 찾아

4부 문화를 걷다
눈썰미를 지닌 이들이 그리운 이유
-사라져가는 ‘피마길’을 걸으며

워낭소리를 대신하는 한숨소리
-사라져가는 땅의 이야기, ‘뚝섬’과 ‘마장동’을 찾아

독재자는 왜 어린이를 사랑했을까
-새로운 변신을 앞둔 ‘어린이대공원’을 찾아

민주화운동의 ‘소도’는 어디를 향하는가
-약자들의 안식처 ‘명동성당’을 찾아

그 자체로 한국인의 삶과 함께해온 동반자였다
-리모델링 중인 ‘장충체육관’을 찾아

우생학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경성제국대학’의 흔적을 찾아

저자 소개 
저 : 권기봉 
권기봉은 월악산국립공원에서 자란 산골소년이다.

 1998년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에 입학하면서 경험하게 된 서울은 ‘원더랜드’ 그 자체였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공간이 궁금해 무작정 길을 나섰는데 사람이 보이고 역사가 읽히고, 또 그 배경이 되는 건물과 장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재발견한 메트로폴리스 서울에 대한 글쓰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워낙 호기심이 많고, 여행 다니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알...


책 속으로
노면전차의 빈자리를 메우고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보완하기 위해 떠오른 대안은 바로 ‘지하철’이었다. 

자동차가 나날이 늘어났기 때문에 불붙은 데 기름 붓는 격이 아니고서야 버스를 더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김학렬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는 이 상황을 딱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하철 건설하면 나라 망합니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고작 255달러에 불과했다. 필리핀보다는 60달러 정도 많았지만, 당시 잘나가던 아르헨티나에 비하면 4분의 1 수준이었다. 

부총리의 반대가 완강했지만, 문제는 차량 못지않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서울 인구였다. 

1955년만 해도 157만 명이던 서울 인구가 1970년에는 3.4배에 가까운 543만여 명으로 늘어났다. 

바로 그때 대중교통 수요만이 아니라 교통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인 지하철 건설이 결정되었다.---pp.18~19

화교들의 지역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일이 벌어진 것은 1966년 들어서였다. 

박정희 정권이 251명의 간호사를 처음 서독으로 파견한 그해 말에 제36대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이 방한했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용병 격으로 베트남에 1개 군단 규모의 군대를 파병해놓은 상태였으니, ‘보스’의 방한을 허투루 준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울 인구가 379만 명 정도이던 그때, 일반 시민 155만 명에 학생 100만 명 그리고 공무원 20만 명 등 모두 275만 명을 동원해 김포공항에서부터 환영식이 열리는 서울광장까지 24킬로미터에 달하는 연도 주변에 빈틈없이 도열시켰다. 

존슨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팻말과 꽃다발,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게 하고 마치 북한에서 하는 듯한 ‘열렬한 환대’를 베푼 것인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막상 환영식이 열리는 서울시청 주변의 낙후한 환경을 미리 손보지 않아 쇠락할 대로 쇠락한 소공동 차이나타운의 모습이 그만 미국 텔레비전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되고 만 것이다.---pp.43~44

공사를 시작한 지 채 다섯 달도 되지 않아 완공된 건물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지금의 여의도환승센터마냥 기둥에 지붕만 올린 가건물 형태의 승하차장 세 개와 공동 정비고뿐이었다. 

이렇게 사무실 하나 없이 빈약한 시설을 터미널로 삼기에는 고속버스 회사들이 보기에도 만족스럽지 못했던 모양이다.

 고속버스 회사들은 도심에 있던 각자의 터미널을 출발한 뒤 ‘예의상’ 이곳을 거쳐 목적지로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서울 인구의 대부분이 강북에 몰려 있었기에 굳이 반포동까지 와서 버스를 타려는 사람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속버스 회사 입장에서든 승객 입장에서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은 여러모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결국 반포동의 새 터미널은 시내 곳곳에 난립해 있던 터미널들을 한곳으로 모으려던 본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단지 한밤중에 버스를 세워두는 곳으로만 이용될 뿐이었다.---p.70

서울시가 중장비를 동원해 시청 뒤쪽에 붙은 ‘태평홀’을 부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8월 26일 오전 10시쯤이었다. 출근 시간대가 지난 데다 높은 펜스까지 둘러쳐져 있었기에 철거를 눈치챈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장비가 내는 굉음만은 숨길 수 없었다.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이 현장을 목격하면서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결국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의 보존·관리·활용을 위한 자문 및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과 해제 등을 심의하는 기구로, 문화유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 일컬어진다.
시청사의 뒷부분에 자리한 태평홀은 1926년 완공 당시 지금의 서울시 의회 격인 경성부회 회의장으로 쓰였던 공간이다. 

해방 뒤에도 서울시 의회로 사용되었고, 2003년에는 ‘등록문화재 제52호’로 등재되기도 했다. 

그런데 민간 기업이나 개인들에게 ‘제발 문화재를 아끼고 보호해달라’고 호소해도 시원찮을 판에 정작 서울시가 나서서 문화재를 부수고 있으니, 문화재위원회로서는 격앙될 수밖에 없었다.

 평소 민감한 사안이 많아 서너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던 회의가 단 30분 만에 의견을 모으고 끝난 이유다.
---pp.119~120


출판사 리뷰
우리는 고도(古都) 서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처럼 역사가 깊은 도시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이 본격적인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른 것은 조선이 개국하면서 수도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600여 년 전부터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이 지역을 놓고 패권을 다퉜을 만큼 서울은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서울은 다사다난했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법궁인 경복궁을 비롯한 중요한 건축유산들이 불에 타거나 훼손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민족 고유의 건축 양식인 한옥들이 제국주의 양식의 서양식 건축물들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서울의 고유한 지명들 역시 일제의 편의상 사라지거나 변경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뿐 아니라 한국전쟁 동안에 수많은 폭격으로 서울은 거의 황폐화되다시피 했다. 

게다가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철학도 명분도 없이 두더지처럼 혹은 불도저처럼 서울이라는 공간을 삭막한 콘크리트로 뒤덮어버렸다.

그럼에도 서울이라는 도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처럼 서울은 런던이나 파리처럼 오랜 역사를 지녔음에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압축적인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특히 문화적인 면에서 크게 후퇴했다. 

그럼에도 서울이라는 도시가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1000만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새로운 문화와 기억 그리고 의미를 각각의 장소에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대와 근대 그리고 현대의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서울은 때로 정리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역사가 오랜 만큼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있다.
권기봉은 이처럼 서울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르거나 숨겨져 있는, 또는 잊지 말아야 할 서울의 역사적 의미와 장소, 문화,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2008년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에 담았다.

 우연찮게도 이 책이 발간될 즈음 숭례문 방화사건이 일어났고, 역설적이게도 이 사건으로 인해 서울과 서울 속 문화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경복궁이나 서울성곽과 같은 곳을 답사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을 뿐 아니라 서울을 다루는 책들도 여럿 출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여가 흘러 숭례문 복원공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 서울이라는 공간과 그 속에 산재한 문화재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각과 태도에는 과연 변화가 있었을까?
이에 권기봉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보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현장을 찾아 다시 서울로 나섰다. 

권력자의 시각이 아닌 이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우리들’의 입장에서 다시 서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서울을 걸으며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서울의 모습을 발견하다

지은이 권기봉은 ‘서울지하철’을 시작으로 ‘성수대교’와 ‘세종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찾아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서울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고민했다.

 ‘피마길’과 ‘마장동’ ‘어린이대공원’ ‘장충체육관’ 그리고 ‘대학로’ 등 얼핏 익숙한 듯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낯설기만 한 곳을 걸으며 우리가 서울이라는 공간과 역사에 얼마나 무심한지도 살펴보았다. 

화교나 도시빈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옛 소공동 차이나타운’과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을 찾았으며, 노동자들과 철거민의 삶이 오롯이 새겨져 있는 ‘가리봉 오거리’와 ‘회현 제2시범아파트’를 답사했고, 한국 사회의 오늘을 보여주는 ‘말죽거리’와 ‘압구정 로데오거리’를 걸었다.

 그 많던 건물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는 말해주지 않은 채 복원사업에만 열중하고 있는 ‘경복궁’과 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서울시청이 스스로 부숴버린 ‘옛 서울시청사’도 주요 목적지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지나간 옛이야기 정도로 치부하고 있으나 슬그머니 역사적 반동을 꿈꾸는 세력의 망령을 고발하고자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과 신당동의 ‘박정희 가옥’ ‘남영동 대공분실’ ‘전쟁기념관’ 등을 샅샅이 살폈다. 

제국주의 향수에 젖어 있는 일본의 몰상식한 태도를 비판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들에 대해 토론해보고자 ‘일본대사관’과 ‘경성방송국 옛 터’ 그리고 ‘중명전’도 돌아보았다.
권기봉은 “다시 서울을 걸으며 깨친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모든 과거가 한결같이 ‘현재적’이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역사는 과거에 멈춰 있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숭례문 복원 완료를 앞두고 있는 지금 《다시, 서울을 걷다》를 세상에 내놓는 이유”라고 이야기한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57845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