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인문교양 (독서요약)/1.인문교양

AI 사피엔스,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2026) - 괴베클리 테페에서 AI 문명까지 인류 노동의 역사와 미래

동방박사님 2026. 1. 18.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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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종도서 선정 『일자리 그 위대한 여정』 저자 최신작
★조희연(前 서울시교육감), 김종구(前 한겨레신문 편집국장), 윤승용(남서울대학교 총장) 강력 추천!
★AI 시대 필독서! 인류의 노동에 관한 3부작 완결편

괴베클리 테페부터 실리콘밸리까지인류가 ‘노동’으로 만든 장대한 문명의 여정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공포가 세상을 덮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이 변화는 과연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재앙일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1만 년 인류 문명사의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저자는 젊은 시절 노동 현장에서 투옥되는 시련을 겪고, 이후 공공직업교육기관의 수장으로서 기술과 노동의 관계를 성찰해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그는 퇴임을 앞두고 인류 문명의 결정적 전환점들을 직접 발로 밟으며, 각 시대마다 ‘노동’의 의미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추적했다. 

농경도 정착지도 없던 시절에 세워진 최초의 신전 ‘괴베클리 테페’에서 시작해, 불멸을 꿈꾸었던 이집트의 거대 건축, 인간 중심 사유의 꽃을 피운 그리스 아테네, 그리고 이슬람 문명이 보존해낸 지혜의 불꽃이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여정이 펼쳐진다. 저자는 말한다.

“노동은 문명을 만들고, 문명은 다시 노동을 새롭게 정의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의된 노동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역사서가 아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시간표에 묶인 인간’을 만들었다면, 오늘날의 AI 혁명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을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저자는 현대차, 샤오미, 도요타의 공장 설계 철학을 비교하며, AI 시대의 승패는 단순히 기술력(GPU 숫자)이 아니라 ‘사람이 일을 더 잘하도록 세상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역설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단 한 세대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한국의 저력이 AI라는 거대한 전환기에서 어떻게 발휘될 수 있을지, 그 구체적인 미래 설계도를 제시한다. 

정치 개혁(권력의 재배치)과 세제 개혁(부의 재분배)을 통해 기술의 혜택이 인류 전체의 공유재가 되는 세상, ‘2B(Brain & Body) 교육’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미래. 

이 책은 AI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망설이는 사피엔스들에게, 두려움 대신 새로운 문명을 설계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건네줄 것이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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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문명의 기원과 인간의 노동

1장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 인간, 노동, 그리고 문명 22
2장 괴베클리 테페 - 신을 만든 상상력, 문명의 첫걸음 46
3장 이집트 - 영원을 건축한 사람들, 기억을 돌에 새기다 62
4장 그리스 - 인간이 중심, 사유의 불꽃을 밝히다 85

2부 계승된 지혜, 새로운 빛이 되다

5장 이스탄불과 이슬람 - 문명은 흐른다, 바다와 육지를 잇는 다리 112
6장 르네상스 - 다시 깨어난 인간 정신, 유럽을 깨우다 138

3부 문명의 전환, 노동의 새로운 의미

7장 산업혁명 - 영국에서 미국까지, 대서양의 파고를 넘어 162
8장 일본 - 전통과 근대의 이중주, 칼과 국화가 남긴 질문들 189

4부 AI 시대, 다시 노동을 묻다

9장 산업사회의 종언, AI 제국의 서막 - 실리콘밸리에서 베이징까지 216
10장 한국 - 동방의 불꽃, 세계의 빛으로 240
11장 인간의 노동, 다시 문명을 짓다 - 인간의 존엄으로 짓는 미래 270


저자 소개
저 : 백완기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공군 학사장교(80기)로 전역하고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그 시절, 노동조합은 곧 ‘불온 세력’으로 규정되었고, 합법적 절차를 거친 파업조차 불법으로 몰렸다.

 동료 여섯 명과 함께 구속되는 경험을 했는데, 그 일은 깊은 상처와 동시에 노동의 존엄에 대한 강렬한 문제의식을 남기게 했다. 이후 회사에 돌아...

책 속으로
노동의 의미는 언제나 문명에 따라 달라져 왔다. 

괴베클리 테페의 공유경제 노동, 이집트의 영원을 쌓는 노동, 그리스의 사유와 예술 속 노동, 이슬람의 신성화된 노동, 산업혁명의 기계와 결합한 노동, IT 혁명으로 정보화된 노동.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모든 흐름을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 AI 시대 도래를 목도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서, ‘일’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다음의 비교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단서다.
--- p.42

샨리우르파 시내에서 괴베클리 테페로 가는 길은 광활한 평야를 가로지른 후, 완만한 곡선을 따라 언덕 위로 이어진다.

언덕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인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약 11,000년 전, 괴베클리 테페가 처음 만들어질 무렵 이 지역이 숲으로 덮여 있었는지, 지금처럼 멀리까지 조망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을 모시는 장소가 높은 곳에 자리했다는 점은 여러 문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 p.48

1963년 처음 발견된 괴베클리 테페는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의 발굴과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는 학계를 뒤흔들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이 유적이 기원전 9600년경에 건설된 것임이 밝혀지자, 전 세계 고고학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 p.53

괴베클리 테페의 삶은 약 3,000년 동안 이어졌다. 

제례가 없는 날이면 사람들은 흩어져 사냥과 채집을 하다가 다시 신전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신을 섬기고, 다른 집단과 교류하며 축제를 즐겼다. 

사회적 계층은 뚜렷하지 않았고, 지도자는 지배자라기보다 보호자에 가까웠다. 

그 시작은 ‘무소유의 풍요’였고, 그 기반은 ‘상상과 공유’였다.
--- p.57

이집트 문명은 레반트(Levant) 지역과 오랜 시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중해 동부 연안에 해당하는 레반트 지역은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 등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고대 이집트에게 단순한 이웃을 넘어 전략적 요충지이자, 군사적 완충지, 나아가 교역로의 핵심으로 여겨졌다.
--- p.71

이집트가 거대한 신전과 무덤, 불멸의 제국을 남겼다면, 그리스는 인간의 정신과 질문, 그리고 사유의 궤적으로 문명을 다시 설계했다.

신이 부여한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다.
--- p.86

기술이 모든 것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사회가 도래해도, 그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된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그리스가 남긴 자유와 이성의 정신은 인류 전체의 것이 되었지만, 정작 그리스인들 자신은 끝내 그것을 모두 누리지 못한 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AI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일이다. 

자유와 평등이 경계 밖까지 확장되는 문명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폴리스의 시작이다.
--- p.108

그리스 문명의 찬란한 유산은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서유럽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그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사막과 해상 무역로를 잇는 이슬람 문명은 종교와 언어, 지리의 경계를 넘어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을 품었다.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Bayt al-Hikma)’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히포크라테스, 유클리드의 저작이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수많은 학자들이 이를 자신들의 천문학·수학·의학과 결합했다.

이 지적 융합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 새로운 이론과 발견으로 이어졌고, 십자군 전쟁과 안달루시아(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다시 서유럽으로 전해졌다.

르네상스의 토양은 이렇게 마련되었다.
--- p.135

그렇다면 한동안 잊혀졌던 고대 그리스의 인문 정신은 어떻게 르네상스를 자극할 수 있었을까?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그리스 지식의 유입과 전파였다. 

유입 경로 중 하나는 이슬람 문명을 통한 유입였다. 

8세기부터 아프리카 북부와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한 이슬람은 서고트 왕국의 혼란을 틈타 스페인을 점령하고, 약 800년간 이 지역을 통치하며 문화 융합을 이루었다. 

그라나다가 함락되기 전까지, 알함브라 궁전과 톨레도와 같은 걸작들이 이슬람-기독교 문화의 교류 속에 탄생했다.
--- p.142

많은 사람들이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단어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부활’을 떠올린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단순한 고대 문명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혁명적 전환이다. 

괴베클리 테페에서 보았듯, 인류는 신을 상상하고 창조함으로써 문명을 열었다. 

이후 인류의 사고는 오랫동안 신의 뜻을 해석하고 복종하는 데 집중되었다. 

고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이슬람 세계가 ‘알라’라는 유일신을 받아들이면서, 인간은 더욱 ‘신의 도구’로서 자기 자신을 규정했다. 

신을 거스르는 행위는 곧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격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긴 지배 속에서 단 하나의 예외는 고대 그리스의 인본주의적 사유였다. 

그러나 이 역시 중세의 신 중심 세계관 앞에서는 미약한 불빛에 불과했다.
--- p.147

두 번째 거대한 전환점은 산업혁명이다. 

농경 이후에도 많은 기술적 발전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인력과 축력에 의존하는 생산 방식은 그대로였다. 

기원전 1000년 인구 1억 명이던 세계는 1760년 산업혁명 직전까지 약 7억 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약 2700년 동안 연평균 0.07%의 느린 성장률이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세상은 달라졌다. 

산업혁명 당시 7억 명이던 인류는, 불과 265년 뒤인 2025년 기준 약 80억 명에 이르렀다. 

연평균 0.925%라는 증가율은 괴베클리 테페에서 산업혁명까지의 연평균 증가율(0.04% 미만)의 20배 이상이다. 

이처럼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단순한 숫자 변화가 아니라, 인류가 생산성의 한계를 극복했음을 뜻한다. 이는 곧 인류가 처음으로 ‘멜서스의 덫’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 p.163

왜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사회가 오히려 비참한 인간 환경을 만들어냈는가? 

이 질문을 끝까지 따라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약육강식의 야만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느냐”이다. 

기술의 방향과 진보의 윤리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산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기술 발전이 반드시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산업혁명은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하면서 노동 조건을 악화시켰고, 그 부작용을 바로잡기 위해 오랜 사회적 투쟁과 제도 개혁이 필요했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지적·창의적 영역에서의 자동화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지만, 그 혜택이 소수에게만 집중되면 또다시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다.
--- p.183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일본은, 한국과 가장 가깝지만 때로는 가장 멀게 느껴지는 나라다. 

그 거리감의 뿌리에는 ‘와(和)’와 ‘야마토(大和)’라는 두 기둥이 있다. 

‘와’는 개인보다 집단, 자아보다 전체를 우선하는 질서의식이다. 

‘야마토’는 고대 일본 국가의 이름이자 왕권과 민족 정체성을 상징한다. 

이 두 단어는 일본인의 정신적 DNA에 새겨진 핵심 코드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개혁자 쇼토쿠 태자가 선 곳에 닿는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17개조 헌법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화를 귀하게 여긴다.(和を以て貴しと?す)”그 한 문장은 이후 일본인의 가치관을 관통하는 문장으로 자리 잡았다. 

충성, 인내, 자기희생, 집단에 대한 헌신. 

심지어 태평양 전쟁의 자살 특공대가 ‘야마토 정신’을 외치며 떠난 것도 이 가치관의 절대적 표현이었다.
--- p.208

이 풍경은 유럽 르네상스를 연상시킨다. 

피렌체의 공방에서 인간이 신의 피조물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재발견하던 순간처럼, 실리콘밸리에서도 인간은 질문을 바꾸었다. 

‘기계가 인간의 손을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산업사회의 물음은, 이제 ‘알고리즘이 인간의 두뇌를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졌다. 

르네상스가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세우며 근대의 문을 열었다면, 실리콘밸리는 인간의 두뇌마저 기계에 외주화하면서 포스트-근대의 문턱을 넘었다.
--- p.227

역설적이게도, 이 전쟁은 한국이 세계의 관심을 끄는 계기가 된다. 

영국 작가 제임스 모리스(James Morris)는 “한국은 한때 세계지도 한 구석에 무심히 찍힌 얼룩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중심 무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이자 ‘핫존(Hot Zone)’으로 자리잡게 된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또한, 한국을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닌 “세계 자유의 운명이 걸린 문제”라 규정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 이목의 집중은 한국인에게 오히려 부담이 된다. 

갈수록 강대국 간 대립의 정점이 되면서,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공간은 점점 더 협소해진다.
--- p.248

두 나라의 길은 모두 근대를 향했지만, 일본이 ‘제국’을 만들었다면 한국은 ‘민주’를 만들었다. 

오늘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AI 시대의 산업화는 소수의 권력과 자본을 위해 봉사할 것인가, 아니면 모두의 자유와 창의성을 지키는 민주적 토대가 될 것인가.
--- p.261

출판사 리뷰
“AI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이 물음은 인류가 문명을 시작한 이래 사라진 적이 없다.

 태어나면서 직업이 정해지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웠다.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우는 일은 오랜 신분 상승의 경로였다. 

사회의 상층부에 진입하면 당사자는 물론 후손에게까지 특권이 세습되었기에, 목숨을 걸만한 일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는 이러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 

한나라 유방과 그의 참모들, 로마 시대 노예 신분에서 황제에 오른 인물들 모두 전쟁을 통해 신분 상승을 이뤘다. 

이후 산업혁명으로 신분 상승의 길은 다양해졌다

사유재산과 이윤 추구가 법적으로 보호받으며, 폭력 이외 방법으로 사회적 상승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자본주의는 온순한 방식으로 특권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로 진화했다. 

부를 축적하는 과정은 부를 빼앗는 것뿐 아니라, 함께 나누는 방식도 가능해지며, 더 표용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했다. 

그 과정에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 공통점은, 인간은 언제나 서로 연결되어 상호 작용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괴베클리 테페에서 시작된 문명은 항상 권력과 연결되었고, 창의성과 자율은 오랜 시간 제한받아 왔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자산은 언제든지 절대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박탈될 수 있었다. 

창의적인 활동을 위한 사유재산의 보장과 안전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 책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따지는 책은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사회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 즉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를 획득할 것인가에 가장 큰 관심이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이유도 결국은 ‘어떤 일자리,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일부의 주장처럼, 모든 지방 국립대를 서울대로 바꾼다고 해도 사교육 문제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 내재된 문제는 단순한 제도의 개편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AI 시대는 무엇이 변할 것인가

이제 세상은 근본적인 전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산업혁명보다 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기술 혁신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인간 사고방식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단순한 생산 방식의 변화가 아니었듯, AI 혁명 역시 기술적 진보를 넘어선 문명의 전환이다.

저자는 “산업혁명은 사실 15세기 르네상스에서 시작된 인간 중심 사고의 결과였다”면서 “‘신’ 중심의 가치관이 인간 중심의 가치관으로 이동하면서, 약 300년에 걸쳐 삶의 양식 전반이 재편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처럼 거대한 변화조차, AI 혁명과 비교하면 인간 삶의 일부만을 바꾼 사건으로 평가될지 모른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신석기 시대 농경의 시작과 18세기 산업혁명 두 가지였으며, 그 사이의 사건들은 문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 역사적 전환의 공통점은 모두 ‘경제적 생산 양식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라면서 “생산 방식과 생산량이 바뀌면 사회도 바뀐다. 

그 기저에는 언제나 과학과 기술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것이 곧 인간의 삶을 결정해 왔다”고 강변한다. 

이제는 무엇을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도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일의 설계가 곧 삶의 설계다.” 디테일이 삶의 질을 바꾼다. 

같은 직업도 운영 방식과 배려의 정도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나뉜다. 

갈등은 숙명이 아니다. 

설계된 노동 환경이 대안을 만든다.

피할 수 없는 갈등이란 없다. 

관리자와 노동자의 대립 구조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라별 직업 만족도 조사를 살펴보면 직업 만족도는 단순히 직업적 지위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일의 설계와 운영 방식, 사회 전체의 배려와 세심한 고민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공공 일자리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의 경우, 이러한 고민은 더욱 절실하다. 

저자는 “만약 우리 사회가 이처럼 일하는 방식 자체를 개선해 간다면, 굳이 모두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선망받는 직업을 갖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직업에 따라 사회에서 받는 대우 역시 점차 동등해지고, 서로를 존중하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일을 하는 데는 내가 상대방과 대등한 입장에 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고, ‘갑’과 ‘을’이 명확한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고등교육과 첨단기술은 삶의 질을 결정하지 못한다

한국은 고등교육 이수율대학 졸업자 기준이 70%를 넘는 반면, 북유럽은 40~50%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는 삶의 만족도에서 세계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10점 만점 기준으로 북유럽은 평균 7.2점을 기록하는 반면, 한국은 6.5점으로 OECD 36개국 중 33위에 머무르고 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사회 구조와 일의 설계에 있다. 

그러나 이들 북유럽 국가들이 항상 이렇게 높은 삶의 만족도를 누린 것은 아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특히 노르딕 3국은 유럽에서도 가장 빈곤한 국가군에 속했으며, 사회 안전망이나 경제 자원, 미래 전망도 밝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불과 수십 년 만에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냈다.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하듯, 이들의 발전 또한 하나의 기적”으로 평가했다.

정보통신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기술은 우리의 삶을 혁신적으로 편리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미얀마의 로힝야 사태를 조명한다.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이슬람을 믿는 로힝야족을 차별·박해·학살한 사건 말이다. 

종교 갈등은 역사적으로 흔한 일이지만, 이 사건이 유독 현대 사회에서 주목을 받은 이유는 바로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때문이다. 

미얀마는 모바일 망을 이용한 페이스북이 사실상 유일한 정보전달 매체로 기능하고 있었다. 

정부, 군, 종교단체들도 페이스북을 공식 발표 수단으로 활용할 만큼 영향력이 막강했다. 

하지만 사건 초기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은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와는 반대로 불교 극단주의자들이 퍼뜨린 ‘로힝야는 테러리스트, 파충류, 침략자’ 등의 혐오 게시물과 가짜 뉴스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는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자사 이익 극대화를 위해 인간 심리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이후 페이스북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알고리즘을 일부 수정했지만, 이미 70만 명 이상이 희생되고 수십만 명이 난민이 된 뒤였다. 

이러한 현상은 동남아의 어느 개발도상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 전 세계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극심한 정치적 분열과 사회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가짜 뉴스와 증오를 부추기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이를 제작·확산하는 이들이 ‘유튜버’라는 그럴듯한 명칭으로 수익까지 창출하며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술이 사회에 봉사할 것인가”“사회가 기술에 종속될 것인가”

앞으로도 기술의 발전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일단 과학자의 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20세기 초 전 세계 과학자의 수는 10만 명을 넘지 않았으며, 이들 대부분은 유럽과 미국에 집중돼 있었다. 

반면, 오늘날 세계의 연구자 수는 1,300만 명 이상, 이 중 물리학자만 120만 명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인구 5천만 명 중 45만 명 이상이 R&D에 종사하고 있다. 

기기와 도구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슈퍼컴퓨터, 곧 상용화될 양자컴퓨터는 과거의 어떤 실험 장비보다 강력하다. 

이처럼 관측 능력과 이론의 해상도(theoretical resolution)가 높아진 지금, 과학 발전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과거를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우리의 착시일 수 있다.

여전히 풀어야 할 난제들이 있지만 포용적이고 효율적인 사회를 만든다면, 이 발전의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빨라질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다시 한 번 ‘인류의 거대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미래 사회에서 기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기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더 이상 늦기 전에, AI 기술을 포함한 광범위한 미래 기술의 활용 방식과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저자는 “특히 한국은 기술 발전 수준과 사회적 관심도, 미래에 대한 열망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나라”라고 설명하며, “지금 우리부터 논의를 시작한다면, 그것이 인류 미래 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다. 

동시에, 현재의 사회적 모순이 어떻게 기술 발전을 가로막고 있으며, 때로는 어떻게 기술이 부당하게 활용되고 있는지도 깊이 성찰하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기술에 대한 이해와 활용은, 앞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사회에 봉사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기술에 종속될 것인가?

” 저자는 이 물음의 답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주어진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고 설계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후손들에게 물려줄 세상은 유토피아적 이상향이 될 수도 있고, 디스토피아적 감시 사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미래를 알고 싶다면 과거를 보라!”

저자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사회는 결코 ‘필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여 만들어낸 결과도 아니”라며 “단지 주어진 조건과 우연이 겹쳐 지금의 모습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한 가지 상상을 제안한다.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전 세계로 이주를 시작했던 그 순간을 상상해 보자.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부는 살던 터전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출발점은 분명한 목적이나 계획이 아닌, 그저 환경과 유전적 특성, 그리고 우연의 조합이었다. 

인류 유전자의 ‘7R 변이체’처럼 새로움을 추구하고 충동성을 띠는 일부 집단이 먼저 움직였다.

‘7R 변이체’ 유전자 보유율은 동쪽으로 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최종적으로 도달한 아마존 유역의 티쿠나, 수루이, 카리티아나 족은 이 변이체를 약 70%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멀리 간 사람들일수록 변이체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은, 운명도, 계획된 결과도 아닌 단지 환경과 우연의 산물”이라면서 “세상이 ‘필연’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필연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웅변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이 시기에,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말을 인용하면서, 과거 문명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미래를 알고 싶다면 과거를 보라.”

“일의 설계가 곧 삶의 설계다!” 문명사적 통찰로 풀어낸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 철학!

AI가 인간의 노동과 지능을 대신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까? 

이 책은 인류 문명의 기원인 괴베클리 테페부터 이집트, 그리스, 르네상스, 산업혁명을 거쳐 오늘날의 미·중 패권 전쟁에 이르기까지 ‘노동’을 렌즈로 문명의 역사를 다시 읽어낸다.

전직 교육행정가이자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저자는 기술이 본래 가치중립적이며,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공동체의 철학임을 역설한다. 

특히 한 세대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한국의 역동성이 AI 시대의 새로운 문명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치와 세제의 재설계, 존재의 의미를 묻는 교육(2B 교육) 등 실천적 대안을 담은 이 책은, 막연한 불안감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인간 존엄을 지키며 기술과 공존할 수 있는 명쾌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추천평
공교육과 민주주의,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두고 교육행정을 수행해 온 사람으로서, 나는 이 책이 현재의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뿐 아니라 교육과 정책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지혜의 책이 되리라 확신한다. 

AI 시대는 우리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의 의미, 기술과 인간의 관계, 문명의 방향, 그리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깊이 성찰하도록 요구한다. 

이 책은 그러한 질문들 앞에서 망설이던 독자들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나는 이 책이 많은 시민들에게 지적 영감을 주고, 새로운 노동문화·교육문화·문명적 상상력을 촉발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깊은 사유와 현장 경험, 글로벌 시야가 어우러진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추천한다.
- 조희연 (사회학자, 前 서울시교육감)


이 책은 단순한 지적 탐구서가 아니다. 미래를 향한 안내서이자,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한 철학적 지침서라고 불러도 좋다. 

무너져가는 노동의 의미를 다시 세우고, 불안한 시대를 건너는 데 필요한 나침반을 조심스레 건넨다. 저자는 독자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우리는 이제 어떤 문명을 지을 것인가?

” 이 질문은 읽는 내내 가슴 어딘가에 내려앉아 있다가,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남아 잔향처럼 맴돈다.
- 김종구 (前 한겨레신문 편집국장·편집인)


이 책은 기존 문명사가 ‘일의 미시적 설계’를 전면에 세워, 역사 해석을 현장의 실행 프레임으로 변환한다. 

한국의 경험을 세계 전환의 촉매로 재배치하면서, AI 시대의 승패가 GPU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 이 일을 더 잘하도록 세상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일깨워 준다. 

책을 읽고 나면 두 가지가 남는다. 문명은 상상과 협력의 공동 설계에서 시작되었다는 통찰에 바탕한 역사에 대한 겸허와 AI 시대의 핵심은 종말이 아니라 재설계라는 혜안이다. 

“노동은 문명을 만들고, 문명은 다시 노동을 새롭게 정의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의된 노동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는 명제는 기존의 저서와 맥락이 연결되는 긍정적 전망이자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나침반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인류의 노동과 일자리, 교육 등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분들께 강추한다.
- 윤승용 (남서울대학교 총장, 前 노무현정부 청와대 홍보수석)


이 책은 역사와 문명의 발전 방향이 어떠해야 함을 고대 문명의 기원지인 괴베클리 테페에서부터 레반테, 이집트, 그리스, 로마, 이슬람, 르네상스, 산업혁명, 미국, 일본을 거쳐 오늘날 미·중 디지털 패권 경쟁의 현실과 미래, 그리고 2차대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유일한 나라인 우리나라의 미래, 그리고 AI 시대 노동의 미래를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역사발전의 방향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을 필요로 하는 현대인, 특히, AI 시대를 경이, 불안, 공포의 눈으로 보고 겪고 있는 현대인들이 꼭 일독해야 할 책이다.
- 김한주 (법무법인 동서양재 대표변호사, 前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


책을 덮고 나면,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가치관’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우리 시대가 꼭 읽어야 할,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사유의 지도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그의 글은, 무소유의 풍요에서 공유의 가치로, 그리고 오늘날 AI 시대의 도전으로 이어지는 철학적 메시지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 조동표 (에이아이디코리아 대표, 한국장학재단 사회리더대학생 멘토)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희소성의 법칙을 지닌 귀한 저작이다. 

과거 인류 발전의 궤적을 고찰하게 하는 인류학적·고고학적 통찰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수행해 온 가장 본원적 행위인 ‘노동’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오늘날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깊이와 시야를 담은, 다시금 인간과 문명을 되돌아보게 하는 귀한 책이다.
- 이석희 (iNTER VR-대표이사, 남서울대학교 가상현실학과 가상증강현실 융합전공 교수)


저자는 다가올 AI 시대가 기술 패권 경쟁에 따른 승자독식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것으로 귀결되는 더 좋은 사회를 꿈꾸며, 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시종일관 인간과 노동을 중심에 두는 그의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 이동진 (前 도봉구청장)


이 책을 읽다 보면요, 마치 인류 문명을 싹 훑으며 여행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괴베클리 테페에서 출발해 실리콘밸리까지, 발이 아플 틈이 없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지막 장을 덮으면 ‘아, 내가 왜 일 하고 사는지’ 딱 감이 옵니다. 

웃음도, 깨달음도, 그리고 미래를 향한 작은 용기도 챙겨주는 고마운 책입니다.
- 강석 (방송인, 前 MBC라디오 〈싱글벙글쇼〉 진행자)


AI는 희망이자 두려움이다. AI 시대에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의미와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을까?

 저자는 인류 문명사를 공시적·통시적으로 종횡무진하며 과거로부터의 교훈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하나의 서사로 정교하게 엮어 낸다. 

괴베클리 테페에서 시작하여 문명사의 전환 지점을 누비는 그의 여정에서 독자들은 AI 시대에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새로운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서경주 (前 광주 MBC 사장, 번역가)


백완기 교수님의 이번 신간은, 내가 준비 중인 『신화 속 눈 이야기』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방식은 달라도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질문은 같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할 것인가?

” 우리는 다가올 AI 시대를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시선으로 바라 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양가적 감정 속에서 우리가 어떤 관점을 지녀야 하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길잡이로 생각합니다.
- 기홍석 (안과전문의 의학박사, 『명화 속의 눈 이야기』 저자)


이 책은 단순한 일자리 논의를 넘어, ‘AI 시대에 노동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노동 없는 사회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독자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직장인은 물론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과 청소년, 그리고 미래 사회의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각자의 일자리와 존재 방식을 다시금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박래형 (자산관리 컨설팅 AIMS-CO 대표, 前 한국은행 부장, 세계은행 자산운용 컨설턴트)


이 책은 AI가 가져올 노동·정치·세제·교육의 변화를 단순한 미래 전망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 설계의 과제로 확장해 내는 보기 드문 저작이다.

 ‘일의 의미’를 존엄·창의·관계의 가치로 재해석함으로써, 기존 노동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깊이 있게 성찰하게 만든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갈등과 불평등의 원인을 큰 틀에서 설명해 주어, 기업과 정부, 노동 전문가에게 실질적 방향성과 정책적 기준점을 제시한다. 

기술이 아닌 인간 존엄을 중심에 둔 미래 사회 설계라는 점에서, 수많은 AI 담론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시각을 갖춘 책이다. AI 시대 노동과 제도의 재편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반드시 읽어야 할-미래 노동 문명의 핵심 안내서다.
- 우재원 (노무법인 현명 대표 공인노무사)


이 책은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노동과 더불어 발전시켜 온 인류의 문명에 대한 신선한 고찰을 바탕으로 이미 도래한 AI가 이끌어 갈 새로운 문명의 시대에 인간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쾌하고 긍정적으로 제시한다.
- 박순호 (국립 강릉원주대학교 치의학과 교수)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74028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