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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서지현 전 검사 강력 추천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에 이은 젠더 전문기자 박정훈의 세 번째 질문
“남성들 스스로 거대한 백래시의 흐름을 끊어내야 한다”
안티 페미니즘과 여성혐오, 피해자·약자라는 착시…
남성을 망가뜨리는 구조에 관한 성실한 기록
청년 남성들의 ‘억울함’은 실재하는가?
정말로 페미니즘으로 인해 여성우월주의 세상이 되어 남성들이 역차별받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젠더 전문기자 박정훈이 5년 만에 신작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로 돌아왔다.
저자는 첫 책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을 통해 페미니즘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남성들이 기존과는 다르게 살아야 함을 촉구했고, 두 번째 책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에서는 남성들에게 스스로의 ‘깨어 있음’에 만족하지 말고 ‘성별 이분법’을 흔드는 데까지 나아가자고 역설했다.
그리고 페미니즘 3부작의 종착역인 이 책에서는 앞선 두 책이 남성들에게 온전히 다가가지 못했음을 반성하면서, 남성들 스스로 거대한 백래시의 흐름을 끊어내야 한다고 간절히 호소한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건 윤석열의 당선, 동시에 이루어진 안티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정치적 승인은 지난 3년간 남성들이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20·30 여성들이 중심이 된 응원봉 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며, 착시는 굳어지고 남성들은 더더욱 막다른 길로 돌진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라고 지적한다.
이 책은 이런 현상들이 어떻게 벌어지게 되었는지 2026년 최신 사례부터 과거의 사례로 거슬러 올라가며 남성을 망가뜨리는 구조를 낱낱이 파헤친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취재한 생생한 자료와 여러 연구 논문, 통계 등을 통해 그에 대한 근거를 탄탄하게 보여준다. 저자의 전작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은 남성을 비난하는 책이 결코 아니다.
서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포기할 수 없어서, 같이 살고 싶어서” 내미는 손길이며, 여성혐오에서 시작해 장애인·이주민 등 소수자·약자로 확장되는 흐름을 끊어내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다.
“그런데 ‘차별을 훔쳐간 남성들’이 행복했을까? 아니다.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으니 해결책도 나오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스스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니, 혐오 뒤에는 절망뿐이다.
정치인들과 인플루언서들은 청년 남성들에게 ‘남성 해방’을 위해 싸우기를 주문하지만, 실제로는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이용하는 셈이다. 지금 청년 남성들이 ‘정의라고’ 믿으며 따라가는 길이 여성의 삶을 위협하는 동시에, 남성의 삶도 망가뜨리는 것이다. 사랑도, 연대의 마음도 모두 잃은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7쪽)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정치권이 여야 가릴 것 없이 안티 페미니즘과 여성혐오를 ‘억울한 남성의 목소리’라며 정치적으로 승인해준 결과는 남성의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연쇄적 혐오’였다. 더 성평등해져야 하는 상황에서 그 반대길을 택한 대가를 우리 사회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
명백하고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숨기거나 정당화해왔던 ‘정치적 관습’이, 무한경쟁과 줄 세우기만이 공정이라는 ‘그릇된 공정 감각’이, 인권과 평등을 이야기하는 모든 언행을 역차별이나 위선으로 간주해도 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81쪽)
목차
프롤로그
1부 집단 착시에 빠진 남자들
남자아이들은 어떻게 인셀이 되어가는가
‘안티 페미니즘’은 10대를 극우로 이끈다
‘밀양 성폭력’과 교제살인, 20년간 바뀌지 않은 남자들
딥페이크 성범죄, 동료 시민의 자격을 묻는다
포스트 호주제와 청년들의 삶
‘영포티’라는 말은 어떻게 혐오가 되었나
‘그런 관계도 괜찮다’는 남자들의 믿음
‘남자는 왜 빼먹어요’ 정서
안티 페미니즘 단체 유튜브에 내 얼굴이 박제된 날
이준석은 어떻게 안티 페미니즘의 선봉이 되었나
이준석이 ‘롤모델’이 되는 세상
남성 페미니스트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재명 정부와 실종된 페미니즘
2부 남성을 망가뜨리는 구조에 관해
여경무용론과 교제살인 못 막는 사회
‘돌보지 않는 사회’가 만든 저출생
‘잠재적 가해자’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저는 술집 여자” 연설과 80년 광주 황금동 여성들
60대 남성 당대표였다면 어땠을까
남성의 몸은 ‘관대함’이라는 특권의 결과물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는 건 남성뿐
위문편지는 왜 ‘어린 여성’의 몫이 되어야 했나
집게손이 ‘남혐’이라는 황당한 음모론
‘국방부의 시계’가 해결해주지 않는 것
“살기도 싫은데 낳으라고”
3부 그럼에도 함께할 수 있다면
〈흑백요리사〉와 능력주의
〈우리들의 블루스〉가 ‘낭만화’하는 남성들
운전을 시작하고 알게 된 것
‘여성들’을 지우는 방송사
여성 급식대가들의 노동은 왜 폄하되는가
엄마와 이모들은 오늘도 풋살을 한다
응원봉의 의미
모욕에 맞서는 방법
환대의 스파게티
연대 이후의 삶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추천의 말
저자 소개
저 :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면서 젠더 부문 기사를 쓰고 편집하고 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TF 전문위원이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기자협회보 정기 칼럼 ‘스페셜리스트?
젠더 부문’ 담당 필자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대안적 남성성을 제시하는 책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2021),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201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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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페미니즘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는 관점이자, 나의 ‘이상함’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 해석의 틀이었다.
포기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고자 하는 제도적 개선이, 성별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견고한 유리천장을 부수고자 하는 시도가 어째서 ‘남성의 몫을 빼앗는 일’이란 말인가.
--- p.5~6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는 말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건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 동시에 이뤄진 안티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정치적 승인은, 3년간 남성들이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다.
20·30 여성들이 중심이 된 응원봉 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착시는 굳어지고,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는 자꾸만 가로막히고, 남성들은 더더욱 막다른 길로 돌진하고 있다.
--- p.9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남초 커뮤니티 등을 통해 여성을 비하하는 밈은 빠르게 퍼져나가고, 그것을 청소년들은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작 교실에선 성평등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는 분위기이며, 남성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여성혐오적 언행을 수행하면서 동질감을 느끼는 ‘또래문화’가 형성된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온라인을 매개로 한 다양한 폭력과 혐오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법을 찾지 못하는 동안, 청년 남성들은 온라인상의 여성혐오에 무방비로 물들어가고 있다.
--- p.33
연구진은 “남성들 중에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성 규범에 의해 억압되는 존재가 있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남성성 규범의 해체”라고 강조한다.
“가부장적이지 않고 남성중심적 질서에 포섭되고 싶지 않은 욕망을 가진 이들”의 남성 롤모델이 부재하기 때문에, 이들은 탈가부장이나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대신 오히려 페미니즘이 자신들을 ‘남자답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 p.39~40
수많은 교제폭력 살인사건이나 밀양 성폭력 사건 등의 재발 방지를 위해선 누군가를 단죄하는 것에 심취하기보다는 내 주변을, 내가 살아온 삶을 성찰하는 게 먼저일 거다.
특히 나와 같은 남자들은 ‘나는 착한 남자’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기를 부탁한다.
내가 속한 집단이 성평등한지, 그동안 젠더폭력 피해에 둔감하지는 않았는지, 여성을 성적으로 도구화하는 문화를 당연하게 여기진 않았는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강 변호사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변화하도록 여러 조치가 있는지’ 살펴보고 다 같이 감시하면 좋겠다.
--- p.50
‘젠더 갈라치기’와 안티 페미니즘에 암묵적으로 힘을 실어주려는 정치적 시도가 성공하면서 이것이 젠더 감수성의 제고로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남성들이 성범죄를 접할 때도, 페미니스트 여성들과 청년 남성들과의, 혹은 (가상의) 페미니즘에 장악된 권력기관과 청년 남성들 간의 힘싸움으로 보는 독특한 시선이 대두되고 있다.
n번방 성착취 사건 당시에도 그러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사회적 공분에 의해 묵살됐다면,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에서는 국가에 의한 ‘검열 강화’ 등을 먼저 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다.
--- p.60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기존의 혼인-혈연 중심의 가족제도를 유지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고 동성 커플 등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강하다.
하지만 가족제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남성성의 변화도, 여성혐오의 구조를 깨부수는 일도 시도할 수 없게 된다.
남성이 힘들어한다면, 그 이유는 여성들이나 페미니즘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남성들이 만들고 확립해온 지금의 가족 및 사회 체제에서 비롯됐다.
‘남성이 주인인 세상’이 역설적으로 남성을 망가뜨린 것이다.
--- p.70~71
여성들로부터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기분’, 기성세대들이 청년들의 몫까지 독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분노와 박탈감을 키운다.
또래 청년 여성이든, 중년 남성이든 모두 자신의 앞길을 막는 적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청년 남성들이 스스로의 롤모델을 가부장으로 여기는 데서, 성별 고정관념이 너무나 강력하게 작동한 데서 비롯된다.
여성과 남성 둘 다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심지어 여성은 취업 성차별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몫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며 분노하는 것은 남성들뿐이다.
--- p.79~80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정치권이 여야 가릴 것 없이 안티 페미니즘과 여성혐오를 ‘억울한 남성의 목소리’라며 정치적으로 승인해준 결과는 남성의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연쇄적 혐오’였다.
더 성평등해져야 하는 상황에서 그 반대길을 택한 대가를 우리 사회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
명백하고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숨기거나 정당화해왔던 ‘정치적 관습’이, 무한경쟁과 줄 세우기만이 공정이라는 ‘그릇된 공정 감각’이, 인권과 평등을 이야기하는 모든 언행을 역차별이나 위선으로 간주해도 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 p.81
흔히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공권력의 작동 범위나, 치안의 수준만이 ‘안전함’의 척도일까.
‘안전한 공간’이라는 외피를 둘러썼지만 실은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조롱과 탄압이 일상화되고, 능력주의 논리가 약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 곳이 지금의 한국이다.
어떤 이념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삶의 토대가 위협받고 흔들리는 사회가 과연 안전한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던 이에게 “이곳은 안전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나?
--- p.100
이준석이라는 존재는 혐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고, 이같이 ‘혐오의 승인 및 보편화’ 현상은 지금도 한국의 많은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있다.
그런 그가 롤모델인 세상은 어떨까.
사람들이 선망하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경력을 쌓았지만 타인의 고통을 비웃거나 ‘망상’이라고 말하는 사람.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지, 그 자체로 빛나고 있는지,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 아이들이 우후죽순 자라나는 세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 p.118
결국 20대 남성을 어떻게든 감싸고 돌보라며, 그들의 억울한 ‘느낌’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남성 차별’을 언급하는 이들이 동시에 ‘이대남 극우화’를 우려하는 것을 보며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억울한 ‘느낌’에 힘을 실어주는 순간 집게손 음모론 같은 것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근거 없는 남성 차별 주장과 안티 페미니즘을 주류 정치 세력이 ‘그럴 수도 있지’라며 포용하고 인정해버리면혐오는 승인받고 정당화되며 이는 극우화의 원동력이 된다.
민주당을 찍을 가능성은 더 적어진다는 이야기다.
--- p.138~139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런데 n번방 가담자가 26만 명까지 추정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n번방 가담자는) 일상적으로도 볼 수 있고, 또 내 옆에도 있을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어떻게 불안해하지 않거나 심각성을 안 느낄 수 있을까요? ‘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내가 억울하다고, 기분 나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만큼 경각심을 갖고 ‘이 구조에 대해 충분하게 성찰하지 않으면 나도 공범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 p.159~160
문제의 근본은 바뀌지 않았다.
남성은 나라를 지키는 데 헌신하고, 여성은 그런 남성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도구’로 쓰이는 국가주의적 젠더 체계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기성세대 남성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중요한 건 그들이 신봉하는 젠더 체계는 너무나 남성중심적이면서 동시에 남성을 소외시키며, 여성은 자연스럽게 부수적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사실이다.
--- p.191
‘페미니즘 사상 검증’이라는 마녀사냥을 멈추는 방법은 한 가지다.
그것을 우리 사회가 헛소리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2023년 11월 연예기획사 안테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뜬뜬〉의 웹 예능 ‘핑계고’ 영상이 논란이 됐다.
게스트로 출연한 박보영 씨가 ‘유모차’라고 말한 것을 자막에서 ‘유아차’로 썼기 때문이다.
영상에 ‘싫어요’와 악플이 달렸고 ‘작가 중 페미를 색출하라’는 요구까지 빗발쳤지만, 안테나는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논란은 곧 잠잠해졌다.
--- p.199
나는 군대가 왜 단절된 공간이어야 하는지를 되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핸드폰 사용, 최저임금 지급, 군 복무 기간 단축은 군대를 사회로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 생각하는데, 사실 이마저도 부족한 듯하다.
모병제, 여성과 남성의 공동 징병제 등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있지만 선행되어야 할 부분은, 군대를 최소 경찰 수준까지는 사회와 연결되어 감시받는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12·3 비상계엄에서도 그 필요성이 여실히 드러난 부분이다.
--- p.208
출판사 리뷰
“청년 남성의 극우화·젠더 갈라치기·페미 사냥·
디지털 성범죄·교제살인·붕괴된 가부장적 남성성…”
피해자의 자리를 훔쳐 간 남성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의 1부에서는 현재 한국의 청년 남성들이 ‘남성 피해자’ ‘남성 약자’라는 착시를 믿게 된 원인을 해부한다.
저자는 호주제 폐지 이후 붕괴된 가부장적 세계 속에서 남성들이 뚜렷한 대안적 남성성을 찾지 못해 결국 ‘가부장되기’를 원하는 상황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하지만 청년 남성들은 노동구조와 사회상의 변화로 가부장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거기서 오는 불안감과 분노를 ‘여성들이 우리 몫을 빼앗고 있다’는 반여성주의적 프레임으로 투사하는 것이다.
저자는 남초 커뮤니티 등에서 확산된 이런 근거 없는 음모론을 이준석과 윤석열 정부가 정치적으로 승인해주며 우리 사회에 ‘남성 피해자론’을 안착시켰다고 이야기한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또한 젠더적 관점이 부재하여 계속 ‘남성 달래주기’와 같은 정치적 메시지를 내고 있으나 이는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이며 오히려 남성 극우화를 더욱 부추기는 방향이라고 지적한다.
2부에서는 교제살인, 여성 자살률, 저출생 문제, ‘잠재적 가해자론’과 ‘집게손 음모론’ 등 일상의 여러 젠더적 이슈들을 통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구조를 들여다본다.
언젠가부터 남성들은 친밀한 관계 내에서 살해당하거나 차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여성들을 보며 슬퍼하거나 함께 분노하는 대신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고 입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서도 ‘가담자만 22만 명’이라는 진실을 외면한 채 페미니스트 여성 vs 청년 남성, 혹은 ‘페미니즘에 장악된’ 권력기관 vs 청년 남성들 간의 힘싸움 구도라고 왜곡하기도 한다.
이 원인으로 저자는 오랜 시간 여성을 배제하거나 도구화해온 ‘주류적인 남성 문화’로 인해 남성들이 여성들을 동료 시민으로 보지 못하는 기저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여성이 폭력과 구조적 차별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묵인하고 방관했던 남성들에게 희망적인 미래는 없다며 사랑도, 연대의 마음도 모두 잃은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흔히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공권력의 작동 범위나, 치안의 수준만이 ‘안전함’의 척도일까.
‘안전한 공간’이라는 외피를 둘러썼지만 실은 체제에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조롱과 탄압이 일상화되고, 능력주의 논리가 약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 곳이 지금의 한국이다.
어떤 이념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삶의 토대가 위협받고 흔들리는 사회가 과연 안전한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던 이에게 “이곳은 안전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나?”(100쪽)
“이준석이라는 존재는 혐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고, 이같이 ‘혐오의 승인 및 보편화’ 현상은 지금도 한국의 많은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있다. 그런 그가 롤모델인 세상은 어떨까.
사람들이 선망하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경력을 쌓았지만 타인의 고통을 비웃거나 ‘망상’이라고 말하는 사람. 인간이 얼마나 존엄한지, 그 자체로 빛나고 있는지,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 아이들이 우후죽순 자라나는 세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디스토피아일 것이다.”(118쪽)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누가 더 아픈지 경쟁하는 세상이 아니라
그 누구도 생존을 위협받거나 상처받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혐오를 기반으로 한 능력주의와 배타주의를 넘어
느슨한 연대의 가능성을 향해
3부에서는 혐오를 기반으로 한 능력주의와 배타주의를 넘어 느슨한 연대의 가능성을 말한다.
언제부턴가 페미니즘은 남성 비하를 주장하는 언어가 아님에도, 남성을 공격하는 불온한 사상이라고 착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이는 ‘페미 사냥’으로 이어져 어떠한 젠더적 이슈조차 입 밖에 꺼내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현실에 낙담하고 무력해진 여성들도 많다.
그러나 저자는 페미니즘은 수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숨구멍이자 거대한 부조리에 대항하고, 일상의 폭력에 맞서는 언어라고 말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고자 하는 제도적 개선이, 성별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견고한 유리천장을 부수고자 하는 시도가 결코 ‘남성의 몫을 빼앗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도깨비 도로’의 진짜 아래쪽에 서서 같이 좀 살자고 소리치는 여성들에게 인간성의 영역에 서서 혐오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연대의 손을 내미는 방법만이 우리 모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말이다.
책을 추천한 서지현 전 검사는 “이 책이 지난 5년간 외면하고만 싶었던 현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여성들의 생존의 위협과 불안과 분노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누가 더 아픈지 경쟁하는 세상이 아니라 그 누구도 생존을 위협받거나 상처받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며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많은 여성이 페미니스트로 사는 ‘공포’를 이야기할 때, 게임 회사 여성 직원들이 ‘페미니스트 색출’을 당할까봐 걱정할 때, 나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지만 제3자의 이야기처럼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공포의 정체를. 내 삶이 한순간에 매도당할 수 있다는 공포. 정체도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처절하게 짓밟힐 수 있다는 공포.
반격했다가는 더 큰 피해를 입을 것 같다는 공포. 동시에 ‘용기’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됐다.
죽음과도 같은 공포를 이겨내고 온갖 모멸을 당할 줄 알면서도 바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98~99쪽)
“그럼에도 연대만이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도울 수 있기에, 언제나 연대에 기대게 된다.
페미니스트들의 시위에 평범한 남성 시민들이 함께했을 때, 파업하는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의 곁을 대학생들이 지켰을 때, 분명 세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연대는 약자들이 싸움에서 승리하게 만들고,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다음 싸움을 준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줬다.
나아가 지금의 연대자들이 훗날 투쟁의 전면에 나설 때도 누군가가 연대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준다.
연대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275쪽)
추천평
박정훈 기자의 책을 읽고 드는 마음은 부끄러움이었다. 외면하고만 싶었던 현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었다.
여성들이 오랜 시간 누적된 생존의 위협과 불안과 분노를 말하기 시작했을 때, 이 사회가 가장 빠르게 반응한 것은 ‘여성들의 생존을 위한 대책’이 아닌 ‘상처받은 남성들의 마음을 보듬기 위한 대책’이었음을, 이 사회가 누구의 불안을 보호 대상으로 삼고 누구의 생존을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놓는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기록하고 있었다.
당장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외면한 고통 위에서는 그 어떤 변화도 자라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글로써 말하고 싶었으리라.
그의 기록은 남녀가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협이 되고 차별이 되는 과거를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누가 더 아픈지 경쟁하는 세상이 아니라 그 누구도 생존을 위협받거나 상처받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그의 계속될 기록을 미리 응원하며 다음번 기록은 좀 더 희망적인 모습이기를 기도해본다.
- 서지현 (전 검사)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80486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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