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책소개
지리상의 발견 이후, 유럽 각국이 경쟁적으로 아시아 시장의 개척에 나선 것을 우리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고 한다.
산업혁명이 진전됨에 따라 1820년경 전 세계 공업 생산의 약 50%가량을 점하고 있었던 영국은 적극적으로 대외 투자를 진행하며, 인도를 식민지화하고 동아시아에 진출했다.
1819년에는 싱가포르를 매수하고 해협 식민지를 개척한 데 이어, 말라카(현재의 말레이 반도)를 획득해 상업·군사상의 거점으로 만들고 난 뒤, 중국으로 눈을 돌린다.
1842년에는 아편전쟁을 통해 홍콩을 획득하고, 무역항으로 광동, 상해 등 5개 항을 개항시켜 중국 화남 지역의 시장을 독점한 다음, 이번엔 장강(양자강)연안을 다른 국가에 할양하지 않도록 중국을 압박한 후, 다시 1860년에는 북경조약에 따라 홍콩 섬 맞은편의 구룡반도를 할양 받고 천진까지 개항시켰다.
러시아도, 1858년의 아이훈愛琿조약으로 흑룡강 이북의 지역을 청으로부터 할양 받는다.
이어서 1860년 북경조약을 통해 우수리강 동쪽 지역인 연해주沿海州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을 건설하고 시베리아 철도의 개통을 서두른다.
또한, 프랑스도 인도차이나반도에 진출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을 발족시킴과 함께, 중국으로부터 광주만広州湾을 조차한다.
독일도 산동의 교주만膠州湾을 조차하여 산동반도의 광산 개발
권과 철도 부설권을 획득한다.
“이런 식으로 하여, 지나支那1의 주요 부분은 영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4강 및 일본에 의한 조차租借 또는 불할양不割讓의 형식으로 각기 세력 범위를 정하게 되었고, 지나 분할의 세를 형성하는 데 이르러···” (임시 산업조사국 “지나에서의 열국의 이권 경쟁”) 미국은 1880년대 초반에 공업 생산 측면에서 영국을 앞지른다.
그리고 19세기 말에 세계 공업 생산의 31%를 점하여 영국의 18%를 크게 앞서게 되자, 이 압도적인 공업력을 바탕으로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미서전쟁)을 통해 필리핀 제도와 괌을 획득하고, 하와이 군도도 합병한다.
다음해인 1899년, 국무장관 존 헤이John M. Hay는 중국의 영토 보전, 문호 개방, 기회 균등의 3원칙을 열강들에게 제창하였다.
광대한 국토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공업 생산력과 금 보유량을 자랑하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유럽 열강이나 러시아와 일본이 잠식해가고 있는 중국에서의 기득권을 개방시키는 편이 더 유리했다.
이것이 당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며, “총알 대신 달러를 앞세운다”는 이른바 ‘달러 외교2’ 등장의 배경이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이 무렵 태평양의 양 끝인 캘리포니아와 중국이 거의 동시에 개방되어, 세계의 양 끝을 잇는 항로를 개설하기 위해 미국 페리 제독의 함대가 출현하자, 개국의 바람에 눈을 뜬 일본 국내에서는 대외 적극론이 대두하게 된다.
막부 말엽의 사상가로, 페리 함대 2차 도래 시에 기함 포하탄USS Powhatan호에 승선하여 밀항을 기도한 바 있었던 조슈번의 요시다 쇼인은, “동지 일치 의견”이라며, “러시아, 미국과의 강화講和를 확정하고 … 조약의 내용을 엄격히 지키고 신의를 두텁게 하여, 그 사이에 국력을 기른다.
그리하여, 다루기 쉬운 조선·만주·중국을 분할해 장악하고, 무역을 통해 러시아에게 잃은 것은 조선과 만주의 토지로 보상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1876년에 일본이 함포의 위협 아래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구미 열강에 앞서 조인하여 조선을 개국시키자,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 등 일본 입헌개진당 당원 7명은, 이토 히로부미 참의에게 의견서를 제출하고,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여 병탄하는 것에 힘쓸 것”이라고 하며 조선의 식민지화를 주장한다.
청일전쟁이 끝나고 대만이 일본의 영토가 되자, 1896년에는 대만 총독부가 설치되고, 제2대 대만 총독에 취임한 가쓰라 다로桂太郎육군 중장은 “금일 대만을 근거로 하여, 아모이(샤먼)로부터 우리 세력을 남중국으로 투입해 훗날 남청 일대도 조선 반도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적극적인 남진론을 전개한다.
일본은 북방을 지키고 남방으로 진출하는 ‘북수남진北守南進’ 책략을 국책으로 삼아야 하며, 대만은 남청에서 말라카와 남양 군도 쪽으로 향한 ‘대외 진출’을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경로가 된다는 것이다.
1899년에는, 대만의 중앙은행으로서 대만은행이 설립되었다.
‘남진’을 시작한 대만은행은, 1945년 종전 시에 대만에 17개, 중국 본토에 35개, 남양 지역에 20개, 필리핀에 9개의 지점 등 총 96개 점포를 동남아시아 일대에 전개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1897년에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으로 변경했다), 1902년에 일본 제일은행 한국지점이 은행권을 발행했다.
그리고 러일전쟁에 따라 한국을 일본의 보호령으로 하고 한국 통감부를 설치한 이후, 1909년에는 일본 제일은행으로부터 중앙은행 업무를 인계받아 한국은행이 설립되고, 다음 해에는 한국 병합으로 인해 명칭을 조선은행으로 바꿨다.
이리하여 일본은, 중국 대륙과 남방 지역에 대해 소위 ‘조선은행은 북쪽에서, 대만은행은 남쪽에서 진출하는’ 체제를 정비하게 된다.
조선은행의 요코세 모리오横瀬守雄 이사는, 조선총독부 발행 잡지인 “조선朝鮮” 1939년 2월호에, ‘동아시아에서의 조선은행의 역할’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기고하며 이렇게 논하고 있다.
“조선이 대륙 전진 병참 기지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
금일의 조선은행은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기는 하나, 오로지 조선의 은행이 되는데 그치지 않고 국책에 부응하여 관동주關東州3, 지나 등에 있어 특수한 사명을 수행하는 데 맞춰져 있다 …
조선의 대륙 전진 기지성을 이름에 맞게 실천하는 것으로써, 그러한 것에 오히려 긍지를 느낀다.
” 대륙 전진 병참 기지. 이 한마디가 한반도의 위치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코세 이사가 말하는 것처럼 조선은행은 만주와 화북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한국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1909년부터 태평양전쟁 종결로 폐쇄되는 36년 동안 방대한 영업망을 구축하였다.
조선에 경성 본점 이하 24개 점포와 구 만주 지역에 26개, 시베리아에 8개, 중국 관내에 40개, 그리고 일본 내지에 9개의 점포가 있었고, 거기에 뉴욕 출장소 및 런던 파견원 사무소를 포함하여 모두 109개 점포를 동아시아 일대에 전개했다.
조선은행의 이와 같은 점포 전개는 당시 일본의 국가 시책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러일전쟁은 애초에 한반도에서 루블화와 엔화 사이의 각축전에서 시작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은 조선은행권의 시베리아 진출이었다.
또한, 만주사변은 조선은행권(약칭 선은권鮮銀券)이 만주철도 부속지에서 강제 통용력을 부여받았던 연장선상에 있고, 나아가 중일전쟁은 군용 통화로서의 선은권과 파운드 및 달러화에 기초하는 중국 “법폐”와의 통화 전쟁이기도 했다. 중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의 시기는 어떤 시기였던가?
1945년 종전 직후에 일본을 찾은 미합중국 전략 폭격 조사단의 보고서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국력이 취약함을 지적하여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요컨대 일본이라는 국가는 본질적으로 작은 나라로, 수입 원료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는 빈약한 나라이고, 모든 형태의 근대적 공격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였다.
소위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식의 산업 구조를 가진 일본 경제로서는 여력이 없고 긴급 사태에 대처할 방법도 없었다.
이 경제는 미합중국의 절반 정도의 힘만을 가진 적과의 장기전에 있어서도 버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1936년에서 1938년간의 세계 공업 생산 비중은, 미국이 32%, 영국이 9%인데 비해, 일본은 겨우 4%에 불과했다. 또 다른 수치를 보면, 미국과 일본의 1941년의 석유, 석탄, 철광석, 선철, 알루미늄 등 중요 물자 13개 품목의 단순 생산량 비율은 78대 1이다. 이렇게 현저한 국력 차이를 무시하고 일본은 무모하게 미국과 전쟁에 돌입했던 것이다.
그런 빈약한 국력의 일본이 중일전쟁 발발부터 8년간이나 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은행권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의 조선은행권과 대만은행권, 나아가 만주 중앙은행권이라는 식민지 통화를 장벽으로 삼은 뒤, 전쟁 발발 후에는 점령지에 설립한 중국연합준비은행, 중앙저비은행 등의 통화를 이용하여, 현지의 군사비와 개발 투자, 경영 비용을 마련한 교묘한 금융 시스템이 있었다.
요컨대, 군수 물자만이 아니라 통화도, 자금도 모두 현지 조달을 했던 것이다.
중일전쟁이 시작된 1937년 7월부터 종전 시인 1945년 8월까지의 도쿄의 소매 물가는 2.5배 상승에 그친 데 반해, 점령지인 북경과 상해의 물가는 폭등해서, 이 기간 동안 물가 상승률이 무려 1000배에 달하기도 했다.
이것도, 일본 엔으로 일본 내지에서 송금된 군사비와 투자 자금을 중국과 남방의 점령지에서 연은권이나 저비권, 남방개발금고권 등으로 지출하고, 남아 있는 일본 엔 자금은 일본 국채의 구입에 충당하여 국고로 환류시키는 방식으로 점령지 경제를 희생하여 통화를 운용한 결과였다.
점령지의 통화 발행을 증가시킴으로써 일본은행권의 남발을 억제하여 일본 내지 경제의 붕괴를 막고, 전쟁을 지속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그 주역이 바로 조선은행이었다.
국력이 취약하고 자본이 부족했던 일본의 대륙 정책은 무력이 주된 방법이 되었으며, 엔 외교를 전개할 여력은 사실상 없었다. 조선은행은, 일본의 군사 행동과 맞물려 동아시아에 엔 통화권을 형성하게 되는데, 그러한 조선은행을 주인공으로, 통화·금융의 측면에서 메이지 시대 일본의 한반도 진출부터 시베리아 출병, ‘자금 상호 예치’ 방법에 의한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전비 조달, 그리고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조선은행권이 모습을 감추기까지의 일본 대륙 정책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목차
추천의 글 감수의 글
들어가며 1
제1장 일본 제일국립은행의 조선 진출
1871년, 일본의 금 본위제 채택 3
제일국립은행, 조선으로 진출하다 13
본위 화폐가 없었던 조선 16
한국 백동화와 밀조의 증가 13
러시아와 결탁하는 민씨정권 23
한국에서 유통되는 일본 통화 25
제일은행이 한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게 되다 27
한국의 백동화를 회수하다 23
이토 히로부미, 초대 통감이 되다 31
제2장 한국 병합을 진행시키는 일본
한국의 자치 육성을 꾀하는 이토 35
한국 중앙은행 설립 결정 36
동양척식회사의 설립 40
이토 통감의 반대 42
가쓰라 수상은 한국 병합 촉진론자 44
이토 통감이 사임하다 46
한국은행 설립 최종안 48
한국은행의 개업 50
3.1 운동이 일어나다 53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 역에서 암살되다 55
제3장 조선은행, 만주로 진출하다
1311년, 조선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하다 53
세이난 전쟁의 아픈 경험을 되살려 60
신 100엔 지폐의 발행 63
‘조선은행의 과거 및 장래’ 보고서로부터의 발췌 66
조선은행, 만주로 진출하다 63
은 본위제를 채택했던 당시의 중국 70
군표 회수를 통한 요코하마정금은행의 세력 확대 71
정금은행과 조선은행의 대립 73
제4장 1차 세계대전과 중국 차관
일본으로 유입되는 황금의 홍수 77
한국 화폐의 소멸 78
만주 봉천성과의 차관 계약 체결 82
오쿠마 내각의 대중국 정책 혼란 83
경제 외교로 중·일 친선을 도모한 데라우치 내각 86
교통은행 차관의 실상 30
진전되지 않는 중·일간 화폐 통일 33
‘엔 외교’의 시도, 니시하라 차관 36
니시하라 차관 실패의 배경 33
제5장 시베리아 출병과 선은권의 시베리아 진출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다 103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 104
북방 진출 준비를 갖추는 조선은행 107
선은권의 ‘시베리아 진출’ 103
루블화의 급락 113
제6장 로마노프 금화 사들이기
로마노프 왕조가 보유하고 있었던 금괴 117
옴스크 국립은행 지점의 금괴 행방 120
금괴의 행방을 쫓는 일본군 122
만철을 이용해 금화 80상자의 수송을 강행하다 126
‘세묘노프 금괴 문제 해결안 세부 사항’의 결정 123
조선은행에 몰려든 루블 금화 130
금화를 0.36배로 환산해서 매입하다 135
제7장 금융 공황기를 맞은 조선은행
대련거래소의 금 본위 거래 도입 실패 133
자산 내용의 악화 143
효과가 없었던 불량 채권 처리 시스템 146
진전되지 않는 재건 계획 148
대만은행 휴업, 전국으로 확산된 예금 인출 사태 150
1341(쇼와 16)년에 정리 완료되다 152
압록강의 수력 개발 사업에 대한 대출 154
제8장 만주사변과 중국의 폐제 개혁
만주 모종 중대 사건 157
만철 경영 악화의 원인 160
만주사변의 발발 162
만주중앙은행의 설립 163
은 가격의 국제적 폭등 166
중국의 ‘재정정리대강’ 167
조선은행의 발행권 회수를 주장한 다카하시 고레키요 163
리스 로스의 중국 화폐 제도 개혁안 173
화북 금융 독립 공작 176
예금 등을 만주흥업은행에 이관 178
실패로 끝난 화북 금융 독립 공작 180
제9장 중일전쟁과 전비 조달
선은권의 가치 하락 183
통화 전쟁에서의 패배 185
중국연합준비은행의 설립 183
발행준비의 집중은 진전되지 않고 132
조선은행과 연은의 예치계약 135
영업의 중심이 중국으로 이동하다 138
일본은행의 대리점이 된 중국의 조선은행 지점들 201
종이로 하는 전쟁의 구조 203
제10장 태평양전쟁과 조선은행
적성은행의 접수 207
인플레이션에 따른 중국 계정의 팽창 210
부풀려진 실적 212
패전의 그림자 214
증가하는 선은권 발행고와 이익 216
선은권의 증발 요인 217
군사비의 현지 조달 220
종전 시 예치 채무 전액 상환 223
대륙으로 건너간 엔화의 최후 226
제11장 종전과 조선은행의 폐쇄
일본 내지 지점의 폐쇄와 선은권의 추가 발행 223
38도선에 의한 남북 분단 231
남북에서 서로 달랐던 접수 이후의 조치 233
선은권에서 분리된 발행준비 236
선은권의 현지 인쇄 233
일본 인쇄국 제조의 선은권이 무효화되다 242
제12장 한국은행의 발족과 한국전쟁
서울이 함락되고 선은권이 약탈되다 247
한국은행권을 일본에서 인쇄하다 250
전란 속에서의 통화 교환 251
적성분자가 사용하는 선은권의 교환 저지 253
최소한으로 억제된 경제 교란의 피해 255
맺음말 253
역자 후기 263
조선은행 연표 263
참고자료 275
출판사 리뷰
역사의 파고 속에서 피어난 중앙은행의 발자취:
화폐의 정치학 150년의 상전벽해, 그 뿌리를 찾아서
1871년 강화도조약 체결로 이 땅이 외세에 의해 문호를 개방한 지 어느덧 15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전근대적인 농업 기반 위에서 현대적 의미의 산업이라 부를 만한 것이 전무했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 유수의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글로벌 경제의 주역으로 우뚝 섰습니다.
나날이 진보하는 세계 경제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이제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국가 경제의 근간을 지 탱하고 통화 가치를 수호하는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의 심장이자 최후의 보루로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한국은행은 단순한 은행 그 이상이며, 경제 적 안정과 번영을 일궈낸 자부심의 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 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견고한 금융 시스템의 뿌리는 결코 평화로 운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단했던 탄생의 기록과‘발권’의 무게
한 나라의 중앙은행은 자국의 무역과 상업을 보호하고 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화폐를 발행하는‘발권(發券)’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지닙니다.
18세기 근대적 화폐제도가 등장한 이후 세계 각국은 본 위화폐 제도 정비에 사활을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사 용하는 지폐 한 장에는 사실 한 국가의 주권과 권력의 역사가 층층 이 쌓여 있습니다.
누가 돈을 찍어내고 누가 그 가치를 보증하는가 를 살펴보면, 그 사회의 권력 구조와 지배의 본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의 탄생사 역시 질곡 깊은 우리 근현대 역사 와 그 궤도를 같이합니다.
불행히도 한국은행은 탄생과 동시에 일 본이 주도하는 엔화 통화권에 흡수되어 ‘조선은행’이라는 이름으 로 일제의 식민 통치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은행은 일제의 대륙 침략 과정에서 통치 세력과 군부, 일본 민간 자본에 금융 지원을 수행하는 전형적인 식민지은행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본서의 절반가량이 이 시기의 기록에 할애되어 있는데 결코 유쾌 한 내용은 아니지만 독자들이 우리 금융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진실입니다.
이후 한국은행이 겪어야 했던 고난은 일제의 패망과 남북 분단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거치며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좌우 대립과 전쟁은 우리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한 국은행은 초대 총재를 중심으로 전 임직원이 똘똘 뭉쳐 험난한 과 정을 이겨내며 오늘날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본서는 바로 그 고 단했던 역사의 시작점인 조선은행의 역사를 통해 우리 금융사의 원형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조선은행’이라는 거대한 미궁: 제국의 혈관이 된 금융
저자인 다다이 요시오는 평생을 조선은행 연구에 바친 인물입니다.
조선은행의 잔여 재산을 바탕으로 설립된 일본채권신용은행에 서 활약하며 이 주제를 자신의 일생 과업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조선은행이 단순히 식민지 조선의 금융기관을 넘어 일 본 제국이 대륙으로 뻗어 나가는 길목마다 자금과 통화를 연결하 던, 조선 24개, 만주 2(개, 시베리아와 연해주 8개, 중국 40개, 일 본 )개, 뉴욕출장소, 런던사무소 등 총 10)개의 점포를 거느린 일 본제국주의가 설립한 거대한 글로벌 국제투자은행의 원형이었음 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조선은행의 뿌리가 1878년 시부사와 에이이 치의 제1국립은행 부산지점 설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입 니다.
이후 일본은 자신들이 서구 열강에 당했던 ‘금 유출’의 고통 을 거꾸로 우리에게 강요했습니다.
제일국립은행을 창구 삼아 한 반도의 사금(砂金)을 대량으로 유출시켰고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핵심 자원이 되었습니다.
‘근대화’라는 화려한 이름 아래 감춰졌던 냉혹한 수탈의 역사는 중앙은행의 사명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통화 조작을 통해 전쟁 비용을 만들어낸 지배의 메커니즘
이 책의 가장 날카로운 통찰은 전시 체제 하에서 제국주의 일본 이 어떻게 조선은행을 통해 대륙 침략을 위한 전쟁 비용을 만들어 냈는지 파헤치는 대목입니다.
이를 위해 일본의 금융가들은 소위 ‘상호 예치계정’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고안했습니다. 준비금도 없이 장부상으로만 가공의 예금을 만들어 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통해 중일전쟁의 군자금을 거의 무제한으로 조달한 것입니다.
이는 식민지의 통화 가치를 희생시켜 제국의 전쟁 비용을 충당 하는 지독한 지배의 메커니즘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세련된 근대 금융의 외양을 띠었지만, 실체는 제국의 재정 부담을 식민지에 전 가하고 침략 전쟁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무기’였습니다.
저자는 이 복잡한 금융 거래의 이면을 해부하며, 금융 질서가 결코 중립적 이지 않으며 특정한 권력의 의지를 품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경고 합니다.
중앙은행의 어제와 오늘: 한국은행의 뿌리를 성찰하며
201)년부터 2024년 한국은행을 퇴직하기 전까지 한국은행 커 뮤니케이션국 사료반에 근무하면서 조선은행 사료를 처음 접할 수 있었던 저는 현재의 현대화된 중앙은행 역사와 제도를 제대로 이 해하기 위해 그 이면에 놓인 식민지 시기의 역사와 구조를 외면해 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해방으로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생각하기 쉽 지만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50년 (월 12일 한국은행이 출범하 던 당시 한국은행 조직, 인력 및 업무수행 방식은 조선은행을 그대 로 계수한 역사적 연속성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조선은행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식민지시기 중앙은행 의 어두운 유산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은행의 과거가 어 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계보 위에 세워졌는지를 성찰하는 고귀한 작업인 것입니다.
미래를 위한 역사적 이정표
오늘날 우리는 결제시스템의 디지털화, 암호화폐의 등장, 기축 통화의 패권 다툼 등이 긴밀히 얽힌 역사적 격동기를 경험하고 있 습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동아시아의 통화질서가 붕괴, 확장, 재구 축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국제 질서의 본 질과 ‘화폐 주권’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동일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역사적 선택에는 만약이란 가 정과 그 결과의 뒤바뀜에 대한 상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들 합니다.
김탁환은 소설 ‘뱅크’에서 개성상인의 눈을 통해 조선의 자주적 중앙은행을 설립하려는 노력이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좌절당하고 실패할 수 없었던 과정을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 그려낸 바 있습니다.
이 책이 중앙은행과 한국금융 나아가 한국경제의 미래를 고민하 는 독자 여러분들께 한국의 중앙은행, 금융과 한국경제의 뿌리와 정체성을 이해하고 미래의 금융 전략을 구상하는 데 있어 흔들리 지 않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2026년 3월
전 한국은행 사료반장
김 기 원
추천평
식민지 침탈의 숨겨진 도구, 점령지 통화 정책의 실체를 마주하다
역사를 바라보는 렌즈는 다양하지만, 한 시대의 실체적 흐름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돈의 흐름’입니다.
일 제강점기라는 뼈아픈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경제적 접근은 필 수적입니다.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대중의 관심 속에서 일본 제 국주의가 한국 경제를 어떻게 수탈했는지, 토지와 식량, 노동력의 착취와 같은 실물 경제 측면의 연구는 비교적 상세하고 깊이 있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착취 시스템이 원활하 게 작동할 수 있도록 이면에서 혈관 역할을 했던 ‘통화 정책’과 ‘금 융 구조’에 대한 연구는 그 중요성에 비해 다소 미약했던 것이 사 실입니다.
이번에 타임코드북스를 통해 새롭게 번역 출간된 “조선은행: 엔 통화권의 흥망”은 바로 그 오랜 학술적 갈증을 해소해 줄 귀중한 저작입니다.
이 책은 일제가 어떻게 화폐라는 수단을 통해 식민지 경제를 통제하고 병참기지화했는지, 그 숨겨진 메커니즘을 방대한 사료와 날카로운 시각으로 밝혀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조선 내부 의 경제 상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조선은행의 발권력을 바탕으 로 만주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으로 팽창해 나갔던 ‘엔화 경제권’의 실체와 그 몰락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본서가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의 총칼 뒤에는 언제나 자본을 독점한 은행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조선은행이 단순한 금융 기관을 넘어, 일제의 침략 전 쟁과 경제 블록 구축에 어떻게 복무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이 복잡다단한 화폐 금융 정책의 역학을 짚어낸 저자의 노고 덕분에, 우리는 일제강점기 경제사를 보다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관련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연구자들에게는 훌륭한 사 료이자 학술적 토대가 될 것이며,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 들에게도 경제 제국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신선한 통찰을 선 사할 것입니다.
한국 근대 경제사 연구의 공백을 메워줄 이 번역서 의 출간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본서를 시발점으로 삼아 앞으로 통 화와 금융의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재조명하는 수많은 훌륭한 후 속 연구들이 만개하기를 기대합니다.
- 2026년 03월
- 김세완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87939917>
'47.한국근대사 연구 (독서요약) > 3.일제강점기 (식민지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선 무단통치의 악마들 (2026) (0) | 2026.03.28 |
|---|---|
|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과 천도교 (2025) - 교육활동 교리강습소와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0) | 2025.11.16 |
| 손기정 평전 (2025) - 제국의 트랙을 딛고 민족을 넘다 (0) | 2025.09.24 |
| 붉은 시대 (2025)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0) | 2025.09.24 |
| [책] 제국의 어린이들 (2025) - 일제 강점기 조선 반도의 어린이들이 쓴 삶의 풍경 (0) | 2025.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