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정치의 이해 (독서요약)/7.정치외교학일반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 (2024)

동방박사님 2026. 6. 1.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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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트럼프도 파시스트일까?

이 책은 후기 자본주의와 파시즘을 다루는 책이다. 

트럼프는 이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중요하고도 주된 등장인물이다. 

그는 파시스트인가? 

이 책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과거의 파시즘이나 파시스트의 개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과거의 파시스트의 특징들은 일단 잊으라고 한다. 

원래 기회주의적이고, 이념으로서는 늘 모순적으로 반대편의 태도와 사상을 차용하여 끊임없이 입장을 바꿨던 파시즘 자체가 그 동안 사라진 적은 없었으나, 트럼프처럼 기성정치에 반대하여 등장한 정치인들에 의해 지금 다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문화현상처럼 스며들고 브랜드처럼 만들어지는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을 이 책은 파고든다.

한편으로 이 책은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사회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파시즘의 재등장은 경제 위축과 정체체계의 동공화가 특징인 정치적 경제의 장기화로 인한 결과라고 이 책은 분석한다.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좌파 정부든 우파 정부든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 대신 포퓰리즘적, 파시즘적 정책으로 일관하여 경제도 정치도 모두 실패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시민의 삶은 계속 악화되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종차별주의와 국수주의가 선거정치를 지탱할 유일한 수단으로 등장하면서 파시스트의 입지가 늘어나고 있다고 이 책은 분석한다.

이 책은 그런 분석에서 아주 적합한 예로 트럼프를 제시한다.


목차
서론 _ 13

1장 위기로서의 후기 자본주의 _ 33

금융 위기36
후기 자본주의의 모순들41
정치의 붕괴50
모두 똑같음57
무질서65
독재적 자본주의와 반란-진압67

2장 파시스트 스펙터클 _ 75

파시스트 대중 정치79
어디든 있는 거짓 약속85
지도자는 브랜드를 만드는 자95
미시정치104
모두 정체성106
온라인 파시즘116
마르크스주의 사냥꾼과 외로운 늑대125
슬그머니 스며드는 파시즘141
파시즘의 얄팍함146

저자 소개
저 : 미켈 볼트 라스무센 (Mikkel Bolt Rasmussen)
코펜하겐 대학교의 예술과 문화연구 부문의 ‘정치 미학’ 교수이며, 아방가르드 시대의 정치와 역사 및 현대 예술과 혁명 전통의 정치학을 연구하는 예술 사가이자 이론가이다. 

덴마크어로 쓴 저서가 7권이고 영어로는 이 책 포함 여섯 권이다. 영어저서는 다음과 같다. Crisis to Insurrection: Notes on the ongoing collapse(2014), Playmates and Playboys a...

역 : 김시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서로는, 『팝음악의 미학(Aesthetics of Pop Music)』(2025),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Late Capitalist Fascism)』(2024), 『쉽고 간결한 학교상담(Brief Counselling in Schools)』(공역, 2019), 『코칭심리학: 실천 지침(Coaching Psychology)』(공역, 2017), 『청소년 상담: 청소...

책 속으로
금융위기로 시작되었지만, 사실은 더 오래전부터 끌어왔던 경제위기였다. 

그것이 빠르게 정치적이고도 사회적인 위기가 되어버린 것은 각국 정부가 정책을 재조정할 줄 모르고 그냥 하던 대로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은행에다) 돈을 찍어주고 긴축을 시행하는 뒤죽박죽 불안정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가의 민주주의적 체계는 더욱 동공화되어서 주로 기업과 소수의 엘리트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듯하다.
--- 「서론」 중에서

우리는 정치가 자체-재생산을 못하는 무능함을 그 중심에 두고 있는 특정한 국면을 살고 있다. 

게다가 대중문화의 극심한 개별화, 인구의 원자화, 소셜미디어상에서의 인종차별적 정서의 주류화가 더해진다. 

이러한 전개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의 가능성을 구성한다. 

그것은 다중위기이다. 경제, 정치, 사회, 사회심리, 세계적 팬데믹 그리고 환경의 위기들이다.

 우리가 직면한 그 위기들이 파시즘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고 파시즘 그 자체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게 해준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및 여타 사람들이 보여주었듯이 신자유주의의 재구조화의 사회적·경제적 결과들은 정말 참혹했다. 

이 기간 동안 불평등은 급격히 증가했다. 

1945년부터 1968년까지는 미국의 가장 부유한 계층과 가장 가난한 계층의 격차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1968년부터는 그런 전개가 멈췄을 뿐만 아니라 역전되어 오늘날에는 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와 동일한 전개를 거의 모든 곳에서 볼 수 있다. 불평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 「1장 위기로서의 후기 자본주의」 중에서

오늘날 트럼프는 살아 있는 정치인 중 가장 경멸받지만, 또한 최면을 거는 듯한 정치적 권위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반정치적 자격들을 숭상하는, 새롭지만 사실은 낡은 글로벌 저항운동의 마스코트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힐러리 클린턴과 낸시 펠로시를 사탄주의 소아성애자라고 하거나 코로나19를 치료하기 위해 락스를 주사해야 한다고 하는 등의 가장 괴상한 망언도 다 받아들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모든 격분, 망상과 그 과장된 엉터리 뒤에 트럼프 안에는 어색한 진실이 하나 있다.

말하자면 미국의 상황이 정치계급과 그 하수인들이 계속 주장하는 만큼 좋은 것은 아님을 그는 인정한다.

트럼프의 법과 질서 운동은 바로 파시스트의 각본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조지 플로이드 시위를 “다스리겠다”고 말했고, 바이든의 선거운동을 거리 시위와 연결시키려고 하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미국을 차지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적인 가치의 마지막 보루였다.

“불만을 품은 젊은 남성들은 인생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서도 마치 모든 것을 이룬 듯이 행세하고, 환상의 도구를 이용하여 그들의 패배집단(4chan의 용어로는 그들의 ‘실패’)을 ‘승리’로 탈바꿈할 수 있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 트럼프는 희망 없음이라는 이 온라인 문화의 거울이었다.

희망 없음의 패러다임적인 모습은 선동적인 댓글을 다는 백인 청년 실업자이다.

그들은 부모 집 지하실에 살면서 하루 종일 온라인게임을 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에 집착하고, 온라인에서 사람들을 놀리거나 괴롭힌다. 

기존 언론이 트럼프를 경멸하는 점이 이 환경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끌림을 강화시켰을 뿐이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가 텅 비었음은 눈에 잘 띄지 않게 숨겨져 있다. 노동계급은 사라졌다. 

오늘날 ‘노동자’는 외국인에 대한 증오의 통로가 되는 정치적 정체성으로 호출된다. 

계급투쟁은 나쁜 정체성 정치가 되어버렸고, 좌파와 우파라는 낡은 정치적 이분법은 마침내 의미 없어 보이게 되었고, 구식 국가민주주의의 정치적 스펙터클을 유지하는 패턴이 되었다. 

끊임없는 교체와 조작이 일상의 질서다. 

정치가 긴 시간에 걸쳐 비즈니스가 되어버리면서 기괴한 파시스트 인물들의 재등장이 [기성] 정치에 대한 유일하게 가능한 반대가 되고 있다. 

그 인물들은 자신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민주주의 제도의 동공화를 확인시키고 화폐경제와 ‘민족국가에 대한 부정을’ 무기한 연기할 뿐이다.
--- 「2장 파시스트 스펙터클」 중에서

출판사 리뷰
후기 자본주의가 파시즘의 등장이라는 위기를 만들어낸다

현재의 파시즘에 대한 어떤 분석이든 자본주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파시즘이 자본주의의 도구라는 의미는, 어떤 단순한 의미에서가 아니다. 

또 파시즘을 노동계급의 저항을 분쇄하려는 사악한 자본가들의 의도의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고도로 모순된 현상으로서 자본주의 계급의 객관적인 위기를 표현해 준다. 

우리는 정치가 자체-재생산을 못하는 무능함을 그 중심에 두고 있는 특정한 국면을 살고 있다. 

게다가 대중문화의 극심한 개별화, 인구의 원자화, 소셜미디어상에서의 인종차별적 정서의 주류화가 더해진다. 

이러한 전개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의 가능성을 구성한다. 그것은 다중위기이다.

오늘날의 파시즘은 정치적 영역을 넘어선, 특히 온라인을 통한 문화적 현상이다.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은 잃어버린 민족공동체를 재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의 모조품을 무대에 올리는데 특히 능란함을 보여왔다. 

트럼프, 보우소나로 등 많은 사람이 디자이너자 브랜드를 만드는 자가 되어 부서진 공공영역을 지배하고, 대중의 느낌을 중재하고 재설계하면서 공개적인 혐오발언과 모호한 혐의들로 암호화한 말들을 결합시킨다.

현대 파시즘의 눈에 띄는 특징은 그 연결망의 성격이다. 

즉 파시즘이 온라인에 존재하고 디지털 플랫폼상에 존재할 정도이다. 

한때 본래 민주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정보의 더 평등한 공유의 길을 깔아주고 집중된 통제를 넘어서 함께 가는 새로운 길을 창출한다고 생각되었던 소셜 미디어가 지배와 복종의 욕구를 파시즘으로 변형되기 쉽도록 만들어주는 이 상황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한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6890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