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덴마크어: Peder Severin Krøyer

1897년에 제작된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의 자화상
신상정보
출생 1851년 7월 23일 스타방에르, Stavanger
사망 1909년 11월 21일(58세) 스카겐
직업 화가, 조각가, 그래픽 예술가, 예술가
국적 노르웨이, 덴마크 왕국(1889~)
학력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
스승 프레데리크 페르디난드 헬스테드, 빌헬름 마르스트란, 레옹 보나
사조 인상주의
수상 레지옹 도뇌르 훈장 / Thorvaldsen Medal / Knight of the Order of the Dannebrog (1891)
부모 헨리크 니콜라이 크뢰위에르(부)
배우자 마리 크뢰위에르(1889~1905)
자녀 비베케 크뢰위에르
주요 작품
힙 힙 후레이!, 스카겐 남쪽 해변의 여름 저녁, 스카겐의 여름 저녁. 해변의 화가 아내와 개, 장미, 스카겐 해변의 하지 전야 모닥불, 산업가들, 히르슈프룽 가족 초상화

크뢰위에르 부부
영향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덴마크어: Peder Severin Krøyer, 1851년 7월 23일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 1909년 11월 21일 덴마크 스카겐)는 덴마크의 화가이다.
P. S. 크뢰위에르(P. S. Krøyer)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라우리츠 툭센이 그린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의 초상화》
생애
크뢰위에르는 1851년 7월 23일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미혼모인 엘렌 세실리 예스달(Ellen Cecilie Gjesdal)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그를 돌볼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어, 예스달의 언니인 베르타 세실리(Bertha Cecilie)와 그녀의 남편인 덴마크의 동물학자 헨리크 니콜라이 크뢰위에르(Henrik Nikolai Krøyer) 밑에서 성장했다.
크뢰위에르는 곧 수양부모와 함께 살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이주했다.
9세부터 미술 교육을 받으면서 예술적인 재능을 보였고 이듬해 코펜하겐 기술 연구소에 입학했다.
1870년 19세의 나이로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마쳤으며, 그곳에서 프레데리크 베르메렌(Frederik Vermehren)에게 배웠다.
1873년에는 금메달과 장학금을 받았다.
초기 경력
1871년 샤를로텐보르궁(Charlottenborg)에서 열린 미술 작품 전시회에서 자신의 친구였던 화가인 프란스 슈바르츠(Frans Schwartz)의 초상화를 출품하면서 미술계에 데뷔하였다.
그는 평생 동안 샤를로텐보르에서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1874년에는 덴마크의 담배 사업가 겸 미술품 수집가인 하인리히 히르슈프룽 (Heinrich Hirschsprung)이 처음으로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의 그림을 구입하면서 장기적인 후원 관계가 시작되었다.
히르슈프룽의 예술 수집품은 코펜하겐에 있는 히르슈프룽 미술관의 기초가 되었다.
여행
1877년부터 1881년까지 유럽 각지를 여행하던 동안에 여러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미술 기법을 배웠다.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체류하던 동안에는 레옹 보나 밑에서 공부했으며,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에드가 드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두아르 마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제작한 미술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평생 여행을 계속하며 외국 예술가와 문화로부터 끊임없이 영감을 얻었다.
히르슈프룽은 초기 여행 기간 동안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크뢰위에르는 이 기간 동안 덴마크에서 계속 전시회를 열었다.
스카겐
1882년 덴마크로 귀환한 그는 6월부터 10월까지 덴마크 북단에 있는 외딴 어촌 마을인 스카겐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지역 생활의 테마와 예술가 공동체인 스카겐 화파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이후 스카겐에서 발전한 예술 및 문학계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었다.
스카겐의 다른 예술가들로는 작가인 홀게르 드라크만, 게르그 브라네스, 헨리크 폰토피단과 화가 미카엘 앙케르, 아나 앙케르 등이 있었다.
크뢰위에르는 여름에는 스카겐의 임대 주택에서, 겨울에는 대형 주문 초상화 작업을 위해 코펜하겐의 아파트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해외 여행도 병행했다.
크뢰위에르와 마리
마리 크뢰위에르의 초상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88년 파리 여행 중 그는 코펜하겐에서 알고 지냈던 마리 크뢰위에르(본명 마리 트립케)를 만났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열정적인 연애 끝에 1889년 7월 23일 독일의 친정집에서 결혼했다.
역시 화가였던 마리 크뢰위에르는 스카겐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으며, 결혼 후 크뢰위에르의 그림에 자주 등장했다.
부부는 1895년 1월에 태어난 딸 비베케(Vibeke)를 두었다.
두 사람은 오랜 별거 끝에 1905년에 이혼했다.
크뢰위에르의 시력은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점차 나빠져 결국 완전히 실명했다.
낙천주의자였던 그는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거의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렸다.
실제로 그는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것이 다른 쪽 눈의 시력을 더 좋게 만들었다고 농담하며 반실명 상태에서도 마지막 걸작 중 일부를 그려냈다.
크뢰위에르는 수년간의 건강 악화 끝에 1909년 스카겐에서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정신 질환 증세로 병원을 드나들기도 했다.
작품
크뢰위에르의 가장 잘 알려지고 사랑받는 작품은 1893년에 제작된 《아나 앙케르와 마리 크뢰위에르가 있는 스카겐 남쪽 해안의 여름 저녁》(Sommeraften ved Skagen Sønderstrand med Anna Ancher og Marie Krøyer)이다.
그는 해변에서의 여가 생활(목욕하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과 지역 어부들을 다룬 많은 해변 장면을 그렸다.
또 다른 인기 작품으로는 1906년작 《스카겐 해변의 하지 전야 모닥불》(Sankthansbål på Skagen strand)이 있다. 이 대작은 하지 전야에 해변의 커다란 모닥불 주위에 모인 스카겐의 예술가들과 영향력 있는 공동체 인물들을 묘사하고 있다.
이 두 작품 모두 크뢰위에르를 중심으로 모였던 예술가 공동체를 기념하는 스카겐 박물관에 상설 소장되어 있다.
갤러리

《히르슈프룽 가족 초상화》, 1881년

《조업이 없을 때의 상점에서》, 1882년

《스카겐에서의 예술가들의 점심 식사》, 1883년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부들》, 스카겐 북쪽 해변, 1883년

《힙 힙 후레이!》, 1888년

《스카겐 남쪽 해변의 여름날》, 1884년

《1888년 코펜하겐 프랑스 미술 전시회 위원회》, 1888년

《라벨로의 오스테리아》, 1890년

《라벨로의 로지아》, 1890년

《마리 크뢰위에르》, 1891년

《스카겐의 여름 저녁. 해변의 화가 아내와 개》, 1892년

《아나 앙케르와 마리 크뢰위에르가 있는 스카겐 남쪽 해변의 여름 저녁》, P. S. 크뢰위에르, 1893년

《아침 식사. 화가와 그의 아내 그리고 작가 오토 벤존》, 1893년

《장미》, 1893년

《코펜하겐 증권거래소에서》, 1895년

《벤존의 딸들》, 1897년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 — 화가와 그의 아내》, 1899년

《스카겐 해변의 하지 전야 모닥불》, 1906년
Sources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