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시슬레 / Alfred Sisley

시슬레(1863년)
신상정보
본명 Alfred Sisley
출생 1839년 10월 30일 / 프랑스 파리
사망 1899년 1월 29일(59세) / 프랑스 모레쉬르루앙
직업 화가, 에칭화가, 석판화가, 시각 예술가
스승 마르크샤를가브리엘 글레르
제자 Paul Vogler, Camille Varlet, Rudolf Quittner
후원자 장바티스트 포르, François Depeaux, 귀스타브 카유보트
사조 인상주의
배우자 Marie-Louise Adélaïde-Eugénie Lescouezec(1897~)
자녀 Jeanne Sisley, Pierre Sisley
주요 작품
포르마를리의 홍수, 루브시엔의 머신 길, 마를리의 슈닐 광장, 눈 효과
알프레드 시슬레
알프레드 시슬레(영어·프랑스어: Alfred Sisley 앨프리드 시슬리 1839년 10월 30일~1899년 1월 29일)는 프랑스 태생 영국의 화가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으나 영국 국적을 유지했으며 인상주의 풍경화 화가로 활동했다.
그는 야외 사생에 전념했다는 점에서 인상주의자들 중 가장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인물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으며, 오귀스트 르누아르나 카미유 피사로와 달리 인상주의에서 자신의 예술적 소명을 찾았다.
그의 중요한 작품 중에는 1874년에 그린 템스강 시리즈(대부분 햄프턴 코트 주변)와 모레쉬르루앙 근처를 묘사한 풍경화들이 있다.
그가 초기에 그렸던 파리 외곽의 센강과 다리들을 그린 그림들은 그의 많은 풍경화처럼 평온함이 특징이며, 연한 녹색, 분홍색, 보라색, 먼지 낀 듯한 푸른색과 크림색의 색조를 띤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슬레의 표현력과 색채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와 그의 아내》, 1868
생애
시슬레는 파리에서 부유한 영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시슬레는 실크 사업에 종사했고, 어머니 펠리시아 셀은 교양 있는 음악 감상가였다.
1857년, 18세의 나이에 알프레드 시슬레는 비즈니스 경력을 쌓기 위해 런던으로 보내졌으나, 4년 만에 이를 포기하고 1861년 파리로 돌아왔다.
1862년부터 그는 파리 에콜 데 보자르 내의 스위스 예술가 마르크 샤를 가브리엘 글레르의 아틀리에에서 공부하며 프레데리크 바지유,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친분을 쌓았다.
그들은 햇빛의 일시적인 효과를 사실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작업실이 아닌 야외에서 함께 풍경을 그리는 야외 사생을 실천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이 접근 방식은 대중이 익숙했던 그림들보다 더 다채롭고 폭넓은 작품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시슬레 등은 처음에는 작품을 전시하거나 판매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그들의 작품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 전시회인 연례 살롱 거부당했다.
그러나 시슬레는 1860년대에 아버지로부터 용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동료 예술가들보다 경제적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1866년, 시슬레는 파리에 사는 브르타뉴 출신의 외제니 레스쿠에제크(1834~1898, 보통 마리 레스쿠에제크로 알려짐)와 교제를 시작했다.
이들 부부에게는 아들 피에르(1867년생)와 딸 잔(1869년생)이 있었다.
당시 시슬레는 많은 파리 화가들의 모임 장소였던 카페 게르부아와 클리시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1868년, 그의 그림들이 살롱에 받아들여졌지만, 이 전시는 그에게 경제적 또는 비평적 성공을 가져다주지 못했으며, 이후의 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몰지 보 – 아침》, 1874년 시슬레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 제작한 그림 중 하나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시작되면서 시슬레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했고, 시슬레는 오로지 작품 판매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의 작품 가격은 사후에야 크게 올랐기 때문에 그는 이후 남은 생애를 가난하게 살아야했다.
하지만 가끔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영국을 몇 차례 짧게 방문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방문은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 이후인 1874년에 이루어졌다.
런던 남서부에서 보내는 몇 달 동안, 그는 이스트 몰지와 햄프턴 코트 다리 아래의 조수 영향이 없는 템스강을 묘사한 약 20점의 연작을 제작하였다.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이를 "인상주의의 완벽한 순간"이라고 묘사했다.
1880년까지 시슬레는 파리 서쪽 시골에서 살며 작업했다.
그 후 그와 그의 가족은 19세기 초 바르비종 화파 화가들이 작업했던 퐁텐블로 숲 근처의 모레쉬르루앙 옆 작은 마을로 이사했다.
미술사학자 앤 풀레는 이에 대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부드러운 풍경은 그의 재능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모네와 달리 그는 거친 바다의 드라마나 코트다쥐르의 화려한 색채를 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숲 가장자리 시냇가에서의 휴식》, 1878, 오르세 미술관, 파리
1881년, 시슬레는 두 번째로 영국을 짧게 방문했다.
1897년, 시슬레와 그의 파트너는 다시 영국을 방문했고, 마침내 8월 5일 웨일스의 카디프 등기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은 페나스에 머물렀으며, 그곳에서 바다와 절벽을 그린 유화 적어도 6점을 그렸다.
8월 중순 그들은 가워 반도의 랭글랜드 베이에 있는 오즈번 호텔로 옮겨, 랭글랜드 베이와 로더슬레이드(당시에는 레이디스 코브) 주변에서 최소 11점의 유화를 그렸다.
그들은 10월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것이 시슬레의 마지막 영국 방문이었다.
카디프 국립박물관은 페나스와 랭글랜드의 유화 두 점을 소장하고 있다.
다음 해 시슬레는 프랑스 시민권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두 번째 신청에서는 경찰 보고서의 지원을 받았지만 병에 걸렸고, 결국 시슬레는 영국 국적 상태로 사망했다.
그는 아내가 죽은 지 몇 달 후인 1899년 1월 29일, 모레쉬르루앙에서 59세의 나이에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라셀생클루의 밤나무 길》, 1865
작품
시슬레의 학생 시절 작품들은 유실되었다.
그의 초기 풍경화들은 어두운 갈색, 녹색, 옅은 푸른색을 사용한 침울한 색채를 띤다.
그것들은 종종 말리 성과 생클루에서 그려졌다.
시슬리는 런던에서 J. M. W. 터너와 존 컨스터블의 작품을 보았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들과 시슬레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일부에서는 귀스타브 쿠르베와 장바티스트 카미유 코로처럼 이 예술가들도 인상주의 화가로서의 그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전 세대 화가인 카미유 피사로와 에두아르 마네의 양식과 주제에서 영감을 받았다.
시슬레는 스타일과 주제가 유사한 모네의 그늘에 가려져 왔으나, 시슬레의 효과는 더 절제되어 있다.
미술사학자 로버트 로젠블럼은 그의 작품을 "거의 전형적인 성격을 지닌, 완벽한 인상주의 회화에 대한 개성이 없는 교과서적 이념"이라고 묘사했다.
그의 작품은 강렬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특히 하늘 묘사는 항상 인상적이다.
그는 다른 어떤 인상주의 화가보다 일관되게 풍경에 집중했다.

《동틀 녘의 센강》, 1877, 르아브르 안드레 말로 현대미술관
시슬레의 작품중 가장 잘 알려진 그림으로는 시카고 미술관이 소장한 《모레의 거리》와 《모래 더미》, 그리고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모레쉬르루앙의 다리》가 있다.
《모레쉬르루앙 근처의 포플러 가로수길 》은 니스 미술관에서 세 번이나 도난당했다.
첫 번째는 1878년 마르세유 대여 중(며칠 후 도시 하수구에서 회수), 다음은 1998년(박물관 큐레이터가 절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공범 2명과 함께 5년형을 선고받음), 마지막으로 2007년 8월이었다.(2008년 6월 4일 프랑스 경찰이 마르세유의 승합차에서 이 그림과 다른 도난 유화 3점을 회수했다).
수많은 가짜 시슬레 작품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슬레는 약 900점의 유화, 약 100점의 파스텔화 및 많은 소묘를 남겼다.
나치 시대(1933~1945) 동안 시슬레의 여러 작품이 홀로코스트에 앞서 자행된 대규모 유대인 미술품 약탈 과정에서 탈취되었다.
2004년 6월 18일, 시슬레의 《봄의 햇살, 루앙》(1892)이 파리에서 열린 기념식을 통해 루이 히르슈 가문에 반환되었다.
2008년 스위스의 미술품 딜러 알랭 드레이퓌스와 경매 회사 크리스티스 사이에 시슬레의 그림 《모레의 봄 첫날》을 두고 분쟁이 발생했는데, 이 그림은 파리 법정에서 린든 가문이 소유권을 주장했다.
드레이퓌스는 크리스티즈가 그림을 경매에 내놓기 전 작품의 이력이나 출처를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16]
또한 2008년에 시슬레의 《생마메에서 수리 중인 배들》(1885)이 나치에 의해 약탈된 것으로 인정되어, 나치 점령 전 이를 소유했던 베노와 프란시스 번스타인의 상속인들과 합의가 이루어졌다.
《겨울 풍경》과 같은 수많은 시슬레 작품들은 나치 약탈 조직인 E.R.R.에 의해 압류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다.
독일 실종예술품재단에는 시슬레의 작품이 24점 등재되어 있다.
주요 작품
이 부분의 본문은 알프레드 시슬레의 작품 목록입니다.
라셀생클루의 밤나무 길 (1865)
시테 데 플뢰르에서 바라본 몽마르트르 언덕 (1869)
빌뇌브라가렌의 다리 (1872)
일드라로주의 나룻배, 홍수 (1872)
아르장퇴유의 그랑드뤼 ( 1872c.)
아르장퇴유의 쇼세 거리 (1872)
아르장퇴유의 보도교(프랑스어판) (1872)
루브시엔의 머신 길 (1873)
루브시엔, 언덕길([[:fr:{{{3}}}|프랑스어판]]) (1873)
햄프턴 코트 다리 (시슬레) (1874)
몰지 보 – 아침 (1874)
햄프턴 코트 근처 몰지의 보트 경기 (1874)
햄프턴 코트 다리 아래 (1874)
생제르맹의 테라스, 봄 (1875)
봄의 작은 초원, 뷔 (1881년경)
갤러리

《생마르탱 운하의 풍경》, 1870, 오르세 미술관, 파리

《아르장퇴유의 센강》, 1872, 포르 박물관, 엑스레뱅

《빌뇌브라가렌의 다리》, 18 7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아르장퇴유 언덕의 곡식 밭》, 1873, 함부르크 미술관, 함부르크

《루브시엔의 머신 길》, 1873, 오르세 미술관, 파리

《안개, 브아쟁》, 1874, 오르세 미술관, 파리

《작은 광장 - 마을 거 리》, 1874, 애버딘 미술관

《햄프턴 코트 다리 아래》, 1874, 빈터투어 미술관, 스위스

《생제르맹의 테라스, 봄》, 1875, 월터스 미술관, 볼티모어

《초원》, 1875,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워싱턴 D.C.

《부지발의 센강》, 1876,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쉬렌의 센강》, 1880, 레스 갤러리, 뉴욕

《브뇌의 서리》, 1880, 미시간 대학교 미술관, 앤아버

《레사블롱의 길》, 1883,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미술관, 캔버라

《퐁텐블로 숲 가장자리》, 1885, 푸시킨 미술관, 모스크바

《숲으로 가는 여인들》, 1886, 아티존 미술관, 도쿄

《폭풍 효과 아래의 모레 다리》, 1887, 안드레 말로 현대미술관, 르아브르

《해변, 랭글랜드 》, 1887, 베른 미술관

《루앙강의 굽이》, 1892, 카탈루냐 미술관, 바르셀로나

《아침 햇살 속의 모레 교회》, 1893, 루앙 미술관

《숲속의 빈터》, 1895,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마드리드
Sources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