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한국정치의 이해 (독서요약)/1.한국정치사상

민주당의 역사 1955-2025 (2025) - 시민과 더불어 써 내려간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

동방박사님 2025. 9. 1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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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한민국 제1당!
시민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지켜온 국민정당
민주당 70년의 뜨거운 역사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난다

올해로 더불어민주당은 창당 70주년을 맞는다. 

2025년은 시민의 힘으로 내란을 종식하고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한 해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인 해를 기념하여 민주당 70년 정당사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이 책은 ‘탄생’ ‘분열’ ‘통합’ ‘수난’ ‘저항’의 순간이라는 다섯 가지 테마로 민주당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왜 우리는 민주당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가? 

그것은 이 땅에 태어나 살다 갔거나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가 역사적 순간들을 민주당과 함께해왔기 때문이다. 

1955년 9월 19일 창당한 이래 민주당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국면마다 국민과 함께해왔다. 

그 탄생부터 그랬다.

 역사가 민주당을 태동시켰다. 부산정치파동과 발췌개헌, 연이은 사사오입 개헌 등 이승만 정권의 반민주적인 행태가 민주당을 탄생시켰다. 

그렇게 태어난 민주당은 이후 기나긴 군부 독재가 이어지는 동안 언제나 저항과 투쟁의 선두에 섰다.

잔인하고 지독한 탄압에 숨만 겨우 붙은 채 납작 엎드려 살아야 했던 세월도 길었다. 

그래도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군정이 종식된 뒤에도 국정 농단과 검찰 독재, 지난 2024년 12월 3일 불법 계엄에 이르기까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중대 기로에 놓일 때마다 민주당은 언제나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과정은 비록 힘겨웠을지라도 시민들의 빛에 의지하여 끝끝내 길을 열었다. 

“정당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민심이 빚은 그릇이다.

” 그렇듯 한국 현대 정치사는 민주당과 깊게 연루되어 있다. 

민주당의 역사를 아는 것이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들여다보는 렌즈이자 우리 민주주의가 오늘에 이르게 된 과정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리라는 기대로 이 책은 쓰였다.

민주당 70년 역사는 숱한 수난으로 점철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국가보안법 개정, 박정희 정권의 굴욕적인 한일협정과 3선 개헌 등 독재 정권의 폭거를 막기 위해 시민과 함께 전력을 다해 싸웠음에도 대부분 막아낼 수 없었다. 

국회에서 개처럼 끌려나가는 수모도 여러 번 겪었다. 

정치 테러도 숱하게 당했다.

 독재 정권은 자신들에 반기를 드는 민주당 지도자들을 암살하려는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민주당 70년 역사에는 수난뿐 아니라, 되짚어보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정도로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순간들도 많다.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목전에 두고서 서로 싸우며 분열해 국민 여망에 부응하지 못한 때가 특히 그러했다.

그러나 역사를 직시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에게는 부끄러운 역사마저 반성하고 고침으로써 더욱 발전케 하는 양분이 된다.

그런 믿음으로 이 책은 민주당의 부끄러운 역사마저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좋은 정당이 있어야 좋은 정치가 이루어지고, 좋은 정치가 이루어져야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독자들에게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됨과 함께, 역사가 주는 깊은 교훈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목차
들어가며

I. 탄생의 순간

대통령의 쿠데타 | 사사오입 공화국 | 대동단결 | 새로운 시작

II. 분열의 순간

잃어버린 승리 | 배신당한 혁명 | 만발한 사쿠라 | 국회냐, 거리냐 | 갈라진 유신 전야 | 각목 전당대회 | 강요된 내전 | 완전한 이별 | 홀로 선 외톨이 | 굿바이 민주당 | 거대 여당의 침몰 | 싸우다 끝난 새정치

III. 통합의 순간

민중의 이름으로 | 새로운 민주를 향해 | 조용한 혁명 | 오 년 만의 해후 | 3당 야합에 맞서 | 거대한 연합군 | 새천년의 문을 열다 | 백년정당의 꿈

IV. 수난의 순간

곰사냥 | 짓밟힌 장충단 | 조작된 반혁명 | 날아든 질산병 | 납치된 망명자 | 새벽은 온다 | 사형선고 | 광란의 용팔이 | 운명이다 | 검찰 공화국

V. 저항의 순간

자유를 위해 | 혁명의 불길 | 굴욕에 맞서다 | 도둑맞은 표를 되찾자 | 헌법을 지켜라 | 민주화의 새벽을 밝히다 | 호헌철폐, 독재타도 | 자치를 되찾다 | 내란을 막아내다

나오며

- 민주당계 정당 계보도
- 민주당 연표
- 참고문헌
- 도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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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박혁 
1971년, 전남 신안에 있는 작은 섬, 재원도에서 태어났다. 

독일 남부에 있는 레겐스부르크대학교, 프리드리히 알렉산더(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을 다룬 논문 「정치와 다양성(Politik und Pluralitaet)」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전남대학교, 경희사이버대학교, 서울시 시민대학에서 강의했고 동국대학교 객원 교수, 상명대학교 초빙 교수로 일했다. 지금은...

책 속으로
민주당의 역사를 뒤지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정당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민심이 빚은 그릇이다.

 민주당은 그렇게 시대와 민심이 만들어낸 당이다.

 민주당은 그 누구보다 거울과 그릇으로서 충실히 역할해왔다. 

그 역사에는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얼굴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래서 민주당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 「들어가며」 중에서

사십여 일간 벌어진 소동이 막을 내렸다. 

흔히 부산정치파동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이승만이 일으킨 친위 쿠데타였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반복하여 등장할 비극의 시작, 즉 폭력으로 개헌하고 폭력으로 정권을 연장하려 한 첫 시도였다. 

폭력으로 직선제 개헌을 한 이승만은 장기 집권을 위한 발판을 얻었다.
--- 「대통령의 쿠데타」 중에서

자유당 폭거를 막지 못했으니 의원직을 사퇴하자는 국회 자폭론과 자유당 불법에 맞서 강력하게 싸우자는 투쟁론이 엇갈렸다. 

논쟁 끝에 투쟁론이 우세했다. 

투쟁과 함께 국민을 토대로 한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데도 박차를 가하자는 합의를 이루었다. 

위헌대책위원회를 ‘호헌동지회(호동)’라는 이름으로 바꿔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호헌구국의 대의를 위하여 계속 투쟁”하기로 했다. 

부산정치파동 이후로 무기력을 떨치지 못했던 야당 세력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위기는 늘 그렇게 기회와 함께 온다. 

문제는 그 기회를 잡느냐 못 잡느냐다.
--- 「사사오입 공화국」 중에서

언론도 호헌동지회가 조봉암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대동단결을 말해놓고 굳이 조봉암은 안 된다는 졸렬함을 질타했다. 

조봉암을 끝내 내친 이유가 정녕 사상 문제였냐고 되물었다. 

신당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감투싸움, 세력 다툼 때문 아니었냐는 것이다. 

어쨌든 민주대동파는 크게 낙담했다. 

결국 신당 운동에서 이탈해 독자적인 혁신정당 창당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기세를 올리던 신당 운동도 한풀 꺾이고 말았다. 

조봉암은 신당 운동이 ‘동질자, 같은 주의자끼리만의 당’을 만드는 것으로 변질되어, 민주 세력 대동단결이 무산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호헌동지회는 반독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보수와 혁신 세력이 힘을 합치려는 쉽지 않은 시도였다. 

그 시도는 안타깝게도 절반 남짓한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 「대동단결」 중에서

박정희가 탱크를 앞세워 한강 다리를 건넜다.

 1961년 5월 16일, 신민당이 만들어진 지 석 달, 장면 정부가 들어선 지 여덟 달 만이었다. 

12년 독재 끝에 세운 정부가 눈 깜짝할 새 무너지고 만 것이다. 

너무나 허탈하고 허망한 순간이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한갓되이 ‘역사의 시계’만 되돌려보았다. 

민주당 신구파가 한창 싸우고 있을 때 국회 앞에는 ‘당파상쟁은 이조 오백 년 망국의 본이다’라고 쓰인 현수막들을 들고 분당하지 말라고 연일 소리치는 당원들이 있었다. 

민주당이 그 요구대로 분당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구파가 신파와 좀 더 협력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을까? 

물론 그 어떤 가정으로도 쿠데타 세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유로도 민주당이 4·19혁명이 부여한 소명을 저버렸다는 사실을 가릴 수는 없다. 

분열하는 순간에 혁명에서 흘린 피로 세운 민주당 정부는 이미 실패할 운명이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신구파의 분열은 당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군홧발에 짓밟히는 길을 열어주고 말았다. 

민주당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 「배신당한 혁명」 중에서

강경노선과 온건노선이라는 이 두 갈래 길은 야당 내 갈등과 분열을 낳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 시작했다. 

민주당 세력이 다시 통합해 만든 민중당도 그렇게 갈라지고 말았다. 

여기에 정권이 벌이는 공작까지 겹쳐 서로를 사쿠라로 의심하고 불신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제 사쿠라는 어느 때고 만발할 수 있었다.
--- 「만발한 사쿠라」 중에서

우여곡절 끝에 전당대회 날이 왔다. 

5월 25일, 누구도 이날 전당대회가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 생각지 않았다지만 상황은 생각보다도 훨씬 심각했다.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당대회장을 차지하려고 각목으로 무장한 주류와 비주류 측 당원들, 동원된 조직폭력배들이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난투극 속에서 네 차례나 전당대회장 임자가 바뀌었다.
--- 「각목 전당대회」 중에서

6월 10일 오후 6시, 민주대장정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마흔두 번 종이 울렸다.

 분단과 독재의 세월 42년을 상징했다. 

종소리가 울리자 대회 장소인 서울 시청 앞 성공회 대성당 주변에 모인 시민들은 애국가를 부르고 차들은 경적을 울렸다. 성명서가 낭독되었다. 

민정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는 무효라고 선언했다. 

최루가스 뒤덮인 거리에서 시민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이날, 잠실체육관에서 노태우는 꽃가루 휘날리는 무대에서 전두환 후계자로 선출되었다. 

노태우는 호텔 연회장에서 흘러나오는 베사메 무초에 파묻혔지만, 전국에서 거리를 내달렸던 시민 3,831명은 닭장차에 실려 가 밤샘 조사를 받아야 했다.
--- 「완전한 이별」 중에서

분열이 낳은 자멸. 아주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1955년 이후 민주당은 분열하는 바람에 역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다.

 처음 집권했던 순간에도 그랬다. 

그때도 신파와 구파는 집이 타도 빈대가 죽으니 좋다며 싸웠다. 

끝내 구파가 신민당이라는 딴살림을 차렸다.

 결국 집권 9개월 만에 박정희 쿠데타에 정권을 내줬다. 

그 후 군부통치는 26년간이나 계속되었다.

 1987년은 그 길고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민주당 세력이 단합했다면 26년간 이어진 군정을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은 진실에 가깝다.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은 끝내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했고, 전두환 후계자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그 패배는 민심을 배반한 욕심과 분열에서 비롯되었다.
--- 「홀로 선 외톨이」 중에서

통일민주당이 3당 합당에 가담함으로써 평민당은 이념적·지역적으로 철저히 고립되었다. 

민주당 역사에 이토록 완전한 고립은 없었다. 

민자당은 ‘보수 대 혁신’이라는 대결 구도를 만들어냈다. 

자신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대한민국을 번영시킬 우익이라고 포장했다. 

반면 김대중과 평민당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좌익 세력이라며 색깔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3당 합당은 호남을 고립시키는 비호남 연합이기도 했다. 

평민당은 그 고립과 포위를 뚫고 너른 평원으로 나아가려 몸부림쳤다. 

더 넓어지고 더 커져야 했던 평민당은 중도 민주 세력을 아우르며 민주 대연합 구축에 나섰다.
--- 「홀로 선 외톨이」 중에서

우연한 순간이 역사적 순간일 때가 있다. 

사진 한 장이 신주류를 도왔다. 

사달이 난 것은 2003년 9월 4일 당무회의에서였다. 

신주류는 더 늦출 수 없다며, 이날 신당 창당을 최종 의결하려고 했다. 

구주류는 또다시 회의를 저지하고 나섰고, 회의장은 욕설과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신주류 측 이미경 의원이 머리채를 잡혀 고통스러워하고, 머리채를 잡은 구주류 쪽 문팔괘 여성특위 부위원장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 회의장에 민주당가를 틀어 놓았다. 

‘너와 나 하나 되어 힘차게 나아가자 새 희망 민주당!’
--- 「거대 여당의 침몰」 중에서

선거를 했다 하면 지고, 그때마다 지도부가 갈렸다.

 안철수, 김한길 공동대표가 물러나고 박영선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맡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번에는 비대위라는 이름이 민망했던지 국민공감혁신위원회라고 불렀다. 

국민이 공감할 만한 혁신으로 당을 재건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던 참에 세월호 특별법 처리 문제를 두고 강경파와 온건파 간 갈등이 커졌다. 

세월호 특별법 합의 과정에서 여당에 너무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것이다.

 폭풍 친 언덕에서 무지개가 뜨길 기다린다던 박영선마저 끝내 무지개를 못 본 채 물러나야 했다.

 비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민망했지만 다시 문희상이 비대위원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는 첫 일성으로 당을 정상화할 때까지 계파 활동을 중단하자고 했다. 

그 계파 활동이 패배를 재생산하고 공멸을 자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 「싸우다 끝난 새 정치」 중에서

신민당이 탄생하는 순간이 왔다. 

1967년 2월 7일 오전 11시, 숱한 파도를 넘어 마침내 이룬 기적이었다.

 이 순간, 두 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름 한 자씩만을 신민당에 남겨두었다. 

양당 대표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시작을 축복하며 손을 맞잡았다. 

신한당 윤보선 대표는 ‘형식적인 통합이 아닌 진실된 통합’을 이루자고 했다. 

민중당 박순천 대표도 ‘진실로 합쳐야 국민의 올바른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양당이 추천한 대의원 각 28명과 재야 측 대의원 4명 등 모두 54명은 대통령 후보에 윤보선, 당수에 유진오를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이로써 윤보선은 생애 세 번째로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유진오는 입당한 지 백여 일 만에 제1야당 대표라는 중책을 맡았다. 

대통령 후보로 추대된 윤보선은 후보 수락 연설에서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전통을 이 땅에 토착시키는 보람찬 대업을 이룩하겠으며 여생의 모두를 다 바쳐 민족의 새로운 활로를 기어이 개혁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 「새로운 민주를 향해」 중에서

40대 인사들이 나섰다.

 그들은 ‘파벌’이 아니라 ‘세대’를 내세웠다. 

세대교체만이 당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40대 기수론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확실히 신민당은 늙은 정당이었다. 

공화당은 30대와 40대가 주도하는 반면, 신민당은 60대가 중심이었다. 

당내 젊은 세대들은 60대 지도층이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니 당이 생기를 잃고 민심도 잃었다는 것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자는 세대교체 바람에 신민당 사람들은 적잖이 놀라고 당황했다.

 세대교체 바람은 시원하고 신선하다 싶더니 어느새 세찬 태풍이 되어가고 있었다.
--- 「조용한 혁명」 중에서

시작부터 참 지독했다. 

전두환은 정권을 잡자마자 신민당을 하루아침에 없애버렸다. 

당만 해산한 것이 아니었다. 

당 잃고 흩어진 사람들 손발까지 묶었다. 

그러나 박정희 치하에서도 13년 넘게 싸워온 신민당이었다.

 묶인 줄이 단단해 옴짝달싹못했지만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 

그러자 작은 틈새가 생겼다.

 그 작은 틈새로 꿈틀거림이 시작됐다. 

그리하여 마침내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가 탄생했다. 

정치 활동도, 정당 활동도 금지당한 사람들, 차마 관제 야당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꿈틀거리며 만든 조직, 그 형태는 정당도 아니고 재야 단체도 아닌 특이한 모습이었다. 

민추협은 끊어진 민주당 역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그 다리를 건너 민주당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신한민주당이 다시 태어났다.
--- 「오 년 만의 해후」 중에서

일 년 넘는 시간을 들여 우여곡절 끝에 이룬 통합이었다. 

의석수로만 보면 신민당 67석, 민주당 8석으로 격차가 컸지만 대등한 통합이었다. 

숫자 논리로만 보면 신민당이 양보한 셈이지만, 실상은 얻은 것이 더 컸다.

 김대중과 신민당에게는 영남 지역으로 정치적 기반을 넓혀 호남당 이미지를 벗는 일이 아주 절실한 과제였다. 

통합으로 그 과제를 해결할 좋은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반면 소수 정당으로서 얻은 게 많아 보였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오히려 힘든 결단을 내렸다. 

반호남, 반김대중 정서가 강한 영남에서 신민당 간판을 다는 것은 다음 선거에서 낙선을 각오한 일이었다. 

이래저래 다음 해 있을 제14대 총선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 사람들은 통합으로 얻을 결실을 잔뜩 기대했다.
--- 「3당 야합에 맞서」 중에서

12월 19일, 마침내 선거일 새벽이 밝았다. 

그날 투표소 문이 열리기도 전에 집을 나와 울면서 거리에 깔린 조선일보를 바삐 거두어들이던 이들이 있었다. 

민주당 당원과 노사모 회원 들이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하루 종일 휴대폰으로, 인터넷으로 서로에게 투표를 독려했다. 

노무현을 지키려는 마음들은 그렇게 간절하고 절절했다.
--- 「새천년의 문을 열다」 중에서

새 당명을 공모하니 3천 2백여 개나 쏟아졌다. 

그 이름에는 당에 가졌던 아쉬움과 바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부분 이름엔 ‘민주당’이 들어갔다. 

그만큼 지지자들은 ‘민주당’이라는 이름에 자랑과 긍지,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2015년 12월 28일, 마침내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이름이 선정되었다.
--- 「백년정당의 꿈」 중에서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은 장면 개인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막 발을 뗀 민주당을 향한 노골적인 정치 테러였다. 

장면 테러 사건에는 정적을 인정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제거하려는 독재자의 본성, 상대 세력을 분열시켜 권력을 유지하는 독재 정권의 본색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민주당 사람들은 정치 테러에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국민과 함께 독재와 부패에 저항했다. 

모진 수난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을 역사적 소명이자 정치적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민주당은 죽다 살아난 장면을 내세워 기어코 민주당 정부를 수립한다.
--- 「곰사냥」 중에서

실제로 장충단 집회 테러 사건 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채 유야무야되자, 정치 깡패들은 날개를 단다. 

자유당 정권 사병 노릇을 하며 야당과 언론, 시민에게 거침없이 폭력을 휘둘렀다. 

정권은 이를 방조하고 묵인하고 비호했다. 

그러는 사이 그 폭력은 권력을 좀먹고, 이승만 정권 몰락에도 일조했다.
--- 「짓밟힌 장충단」 중에서

몇 차례 찔끔찔끔 정치 활동 금지를 풀어주기는 했지만, 오롯이 박정희 마음에 달려 있었다. 

그가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일이었다. 

누가 언제 해제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단 한 사람 장면에게는 털끝만큼도 아량을 베풀지 않았다. 

1963년 대선에서도, 총선에서도 ‘민주당의 보스’를 산송장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묶여 있던 장면은 1966년 5월 16일에야 정치 활동이 허용되었다. 

1965년 6월 21일 풀려난 이승만보다 더 늦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죽음이 눈앞에 찾아와 있었다. 

결국 정치 활동 금지가 풀린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장면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치고 “당파도 없고 선거도 없고 정정법도 없는 천국”으로 떠났다.
--- 「조작된 반혁명」 중에서

질산 테러 일주일 전, 김영삼은 국회 본회의에서 김형욱을 겨냥해 ‘3·15 부정선거 주동자로 교수형당한 최인규 꼴 안 나려면 자중하라’고 경고했다. 

이 발언이 김형욱 심기를 몹시도 건든 모양이었다. 

테러가 발생하기 얼마 전, 고흥문 신민당 사무총장을 만나 그가 했다는 말은 섬뜩할 정도였다.

 “김영삼이 배때기에는 칼이 안 들어가나?” 

그런 말을 한 자가 말로만 그쳤을 리 없다고 김영삼은 확신했다. 

말이 바뀐 것은 칼 대신 질산을 썼다는 점뿐이었다.
--- 「날아든 질산병」 중에서

늘 그랬듯, 마지막 대응법은 사건을 ‘미궁’에 가두는 것이었다. 

사건 직후부터 중앙정보부 소행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고, 그와 관련된 범행 당사자 증언도 잇따랐다. 

그런데도 정부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슬그머니 파면하면서도 정작 범인은 잡지 않았다. 

되레 피해자인 김대중만 동교동 집에 갇히는 ‘처벌’을 받았다. 

한참이 지나 사건 전모가 드러났다. 

예상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다. 

김대중 납치 사건은 중앙정보부 고위급들이 직접 기획하고 실행한 정교한 작전, 일명 “KT 작전”이었다.
--- 「납치된 망명자」 중에서

김영삼 총재는 결전을 앞둔 장수처럼 비장한 각오를 세웠다.
“우리들은 오늘 죽고 영원히 사느냐, 오늘 살고 영원히 죽느냐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비굴하게 살고 싶지 않다.”
모든 의원이 김영삼 총재와 운명을 같이하자는 투쟁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우리는 김 총재에 대한 징계가 신민당 전체에 대한 정치 보복이며 우리 당을 지지한 절대다수 국민에 대한 도전적인 망동으로 규탄한다.”
제1야당 총재 제명은 무리수였고, 그 무리수가 분당 직전까지 간 신민당을 되살렸다. 

전화위복이란 말조차 모자랄 정도였다. 

신민당은 똘똘 뭉쳐 다시 총구를 바깥으로 돌렸다.
--- 「새벽은 온다」 중에서

김대중은 1982년 3월 3일에 무기징역형에서 징역 20년으로 감형되었다. 

1982년 12월 23일에는 형 집행 정지로 출소해 두 번째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그로부터 오 년 후 김대중은 내란 음모 사건에서 사면 복권 되었다.

 그 길로 자신과 함께 엮여 반란의 땅이 된 광주를 찾았다.

 광주 영령들 앞에서 “여러분이 흘린 피는 역사와 더불어 영원할 것이다”라며 펑펑 울었다. 

그 모습이 보는 사람 가슴을 쥐어뜯었다. 

김대중은 1998년 마침내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 되었고, 임기를 마친 2003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79년 12·12사태와 1980년 5·18을 전후해 발생한 신군부의 헌정파괴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함으로써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행한 정당한 행위이므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사형선고」 중에서

용팔이 사건은 정치 공작과 정치 테러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이 사건은 확실히 이전 정치 테러와는 달랐다. 

그전까지 정권은 야당을 향한 정치 테러를 야당 내부 싸움으로 보이게 하려 조작했다. 

장면 부통령 저격이 그랬고, 장충단 집회 방해 사건이 그랬다. 

적어도 민주당 내부인이 테러에 직접 개입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민주당은 하나로 똘똘 뭉쳐 조작과 테러에 맞섰다. 

그러나 용팔이 사건은 달랐다. 당 내부에서 반대 세력을 제압하려고 정보기관과 손잡고 공작 정치에 가담했다. 

내부자가 정보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아 깡패에게 폭력을 하청 준 것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 「광란의 용팔이」 중에서

4월 30일, 결국 노무현은 검찰로 향했다.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면서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다. “국민 여러분께 면목 없다. 

실망시켜드려 죄송하다.

” 착잡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지지자들에게 ‘저를 버리셔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참담한 시간들이 그를 낙담케 한 것이다.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일요일 아침, 동네 뒷산으로 올라간 노무현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친구 문재인이 침통한 표정으로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을 전했다. 

노무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그가 남겨둔 글로 미루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고,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고,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 「운명이다」 중에서

검찰은 도대체 왜 그토록 잔혹하고 집요하게 이재명을 물고 늘어졌을까?

 물론 첫째 목표는 이재명을 제거하는 것이었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민주당을 풍비박산 내겠다는 의도도 분명했다. 

민주당 구심이 된 이재명을 ‘사법리스크’로 옭아매서, 다른 도전자나 계파에 기회를 주고 결국 당이 분열되게 하겠다는 속셈이었다.
--- 「검찰 공화국」 중에서

그렇게 혼돈 가득한 시간에 죽은 자가 돌아왔다. 

그 죽은 자가 산 자들을 빛으로 이끌었다.

 4월 11일, 마산중앙부두에서 시체가 떠올랐다. 

3월 15일 마산시위에서 행방불명된 17살 소년 김주열이었다. 

눈에는 최루탄이 박혀 있었다.

 끔찍하고 처참한 모습이었다.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그 참혹한 모습을 찍어 신문에 실었다.

 마산 시민들은 그 사진을 보고 경악하고 분노했다. 

이승만 정권은 물러가라! 이기붕을 처단하라!
--- 「혁명의 불길」 중에서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비준동의안심사특별위원회에 참여한 민중당 의원들은 마지막까지 싸웠다.

 8월 11일 심사특별위원회는 질의응답을 밤 11시까지 이어갔다.

 대체 토론을 남겨둔 상태였다.

 느닷없이 공화당 조시형 의원이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키자고 동의했다.

 재청, 삼청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표결 절차만 남게 된 것이다. 

민중당 의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사회자 자리로 달려 나갔지만, 공화당 의원들이 길목을 막았다. 

공화당 의원들은 민중당 의원들보다 머릿수가 많은 데다 전투력도 우세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결국 비준 동의안은 정부 원안대로 심사특별위원회를 통과했다.
--- 「굴욕에 맞서다」 중에서

선거운동 과정은 물론 투개표도 온통 부정으로 얼룩진 총체적인 부정선거였다. 

전남 벌교, 화순, 여수 등지에서는 공개투표가 이루어지는 바람에 신민당 후보가 분을 못 이기고 사퇴하기도 했다. 

서울 종로, 동대문, 서대문 등지에서는 대리투표가 행해졌고, 무더기 표가 쏟아진 투표함도 부지기수였다.

 일부러 불을 꺼버리고 개표하는 올빼미 개표도 판을 쳤다. 

괴한이 투표소에 난입해 야당 참관인을 쫓아내기도 했다. 

대놓고 투개표 조작을 하다 보니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불과 한 달 전 대선 때보다 유권자가 74만 명이나 더 많았다. 

대선 때 유권자 수를 줄였든지, 총선 때 유권자 수를 늘렸든지 좌우지간 둘 중 하나는 조작한 셈이었다. 

그 모든 사례가 거대한 부정선거를 가리키는 증거들이었다.
--- 「도둑맞은 표를 되찾자」 중에서

권력을 향한 욕망은 죽어야 끝나는 법이다. 

그 끝없는 욕망을 멈춰 세우는 조치가 바로 헌법 제69조, 대통령 임기는 4년으로 하고 단 한 차례 중임만 허용한다는 규정이었다. 

그로써 한 사람이 대통령직에 머무는 것은 길어야 8년이 되었다. 

그러나 막 다디단 권력에 익숙해 가는 박정희에게 그것은 말 같지 않은 소리였다.
--- 「헌법을 지켜라」 중에서

민추협은 총선 참여를 계기로 신당 창당까지 결심했다. 

신민당이 해산된 지 5년 만에 민주당 정통을 잇는 당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민추협은 가장 어두웠던 시대, 가장 긴 정치 공백 기간을 버티며 민주당의 또 다른 역사가 되었다. 

정치 활동이 금지된 시간, 민주당 사람들은 민추협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투쟁하고 연대했다. 

민추협은 통합과 연합정치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루었고, 한국 민주화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어 거대한 민주화를 이룬 민추협은 그해 마지막 날 해산했다.

 해산하는 순간까지 민추협은 자신들이 했던 약속을 멋지게 지켜낸 아름다운 조직이었다.
“우리가 마침내 쟁취할 민주주의의 영광은 역사와 국민에게 돌리고, 모든 고난과 희생은 우리의 것으로 하는 헌신을 우리 활동의 기초로 삼고 투쟁한다.”
--- 「민주화의 새벽을 밝히다」 중에서

3월 11일 신민당은 서울 지역 당원 1,500명이 모인 가운데 개헌추진위원회 서울시지부 결성대회를 열었다. 

이날을 시작으로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청주 등 각지에서 서명운동과 지부 결성대회를 진행했다. 김대중은 집에 갇혀 대회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연설을 녹음해 결성대회에 보냈다. 

대회가 열릴 때마다 수만 명이 모였다.

 대회를 마친 시민과 당원들은 “대통령을 내 손으로!” “민주는 천하지대본” “독재타도!” 등을 외치며 시가행진도 했다.

 신민당이 추진한 개헌 서명운동은 각계각층에 큰 자극을 줬다. 종교계, 대학 교수, 학생들도 개헌을 요구하는 시국 선언을 연이어 발표하고 서명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신민당과 재야 단체들은 힘을 합쳐 ‘민주화를 위한 국민연락기구’도 만들어 가동했다. 국민들은 뜨겁게 호응했다.

 기세가 오른 신민당은 정권을 더 압박했다.

 헌법을 고치지 않으면 “오는 88년 대통령 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을 것이며 선거거부투쟁을 끝까지 펼칠 것”이라고 다짐했다.
--- 「호헌철폐, 독재타도」 중에서

일흔이 가까운 김대중에게 무기한 단식은 초강수였다. 

민자당은 난처해졌다.

 단식이 길어져 김대중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그제야 부랴부랴 당론을 정하겠다느니 협상에 나서겠다느니 법석을 떨었다. 

단식 나흘째 되는 날, 단식에 일가견이 있는 김영삼이 평민당사로 찾아왔다. 

김대중은 김영삼에게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동지로서 간곡히 호소했다.
“지자제를 하는 것이 민주화의 핵심이니 아무리 여당으로 갔다고 해도 외면하지 마시오.”
--- 「자치를 되찾다」 중에서

12월 3일 22시 23분, 윤석열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대국민 긴급 담화를 하겠다며 노란 봉투에서 꺼낸 종이를 읽어 내려가니, 온통 야당과 국회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야당과 국회를 가리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라고 했다. 

그 괴물 탓에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예상한 대로였다.

 그러더니 담화문은 갑자기 선포문으로 바뀌었다.

 10시 27분, 윤석열은 목소리를 더 높이더니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할 목표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 「내란을 막아내다」 중에서

그렇게 뜨거운 가슴과 무거운 어깨로 민주당은 창당 70주년을 맞았다. 

사람 나이 칠십을 흔히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마음이 가는 대로 걸어가도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 나이. 민주당의 70년도, 탄생하던 순간 품었던 그 마음을 따라 걸어온 시간이었다.
--- 「나오며」 중에서

출판사 리뷰
탄생, 분열, 통합, 수난, 저항
그리고 승리!
민주당의 역사는 계속된다

이 책은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각각 민주당의 ‘탄생’ ‘분열’ ‘통합’ ‘수난’ ‘저항’의 순간들을 다룬다.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하는 통시적·연대기적 서술을 채택하지 않은 이유는 민주당의 역사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봄으로써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일례로 1965년 한일협정 반대 투쟁에서 우리는 민주당의 분열과 통합, 저항, 수난의 면면을 모두 읽어낼 수 있다. 

온통 굴욕적인 협정 내용이 공개되었을 때 민주당 사람들은 ‘민중당’으로 통합하여 저항했다.

 대일굴욕외교 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를 조직하여 시민의 힘까지 한데 모으고자 했다. 

그러나 저항 방법과 투쟁 노선을 두고 당내에서 목소리가 나뉘었고 종내는 분열을 피하지 못했다.

 한편 한일협정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박정희 정권의 의지는 강력하였다. 

민주당은 눈앞에서 법안이 날치기 통과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등 수모를 겪어야 했다. 

우리가 민주당과 그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적인 사건 전개와 함께 이러한 면면들까지 세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되풀이되는 분열의 이유와 통합의 동력, 수난의 상처와 불굴의 저항”을 발견하고 민주당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한다.

「1장. 탄생의 순간」은 이승만 쿠데타부터 ‘반독재 민주화’를 기치로 대동단결해 민주당을 창당하기까지 이야기를 담았다. 

 

「2장. 분열의 순간」은 4·19혁명으로 민주당이 집권한 직후 신구파로 분열하였던 이야기부터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분열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따라서 2장은 민주당의 부끄러운 역사를 담은 장이기도 하다. 

 

「3장. 통합의 순간」에는 1965년 한일협정에 맞서 일어난 민중당 창당부터 더불어민주당 출범까지, 기쁘고 감격스러운 역사를 펼쳐냈다. 

「4장. 수난의 순간」에서는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부터 이재명 테러 사건까지를 되짚으며 모진 고난과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민주당의 용기와 끈기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마지막 「5장. 저항의 순간」은 1958년 보안법 파동부터 윤석열 내란까지, 시민과 함께 불굴의 정신으로 저항하며 한국 민주화의 역사를 새긴 자랑스러운 순간들을 다룬다. 

사건의 순차적인 흐름을 알고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권미에 연표와 민주당계 정당 계보도, 찾아보기도 수록했다.

“내 아버지가 사랑한 민주당
내 아들이 사랑할 민주당”
진정한 ‘백년정당’을 꿈꾸며

저자 박혁은 어린 시절 사회과부도 책을 펼쳐놓고 자신에게 ‘정치지리’를 설명해주시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 책에는 ‘평화민주당’ 국회의원들 사진과 기사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신문에서 직접 오려 붙인 것들이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팍팍했던 시절에 폭력과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민주당은 아버지의 영웅이었다.

 청년 시절 저자는 독일 유학을 꿈꾸었으나 뜻을 이룰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운동권 활동을 하다 형 집행유예를 받은 까닭이었다.

 그때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저자는 사면 복권되었고, 독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전부 스스로 미리 목표하고 계획한 적 없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그 모든 지난날을 돌아보면 자신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민주당에 스며들어 민주당과 같은 역사를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비단 박혁이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김창규의 추천사와 같이 이 책에는 “민주당을 사랑하고 때론 미워한, 모든 이들이 걸어온 시간의 향기가 있다.”

그들이 민주당을 사랑한 까닭은 차치하더라도, 민주당을 사랑할 수 없었던, 심지어 미워하기까지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당 70년 역사는 “뜨거운 투쟁과 찬란한 영광으로 빛났지만, 동시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아픈 분열도 반복되었다

.” 물론 갈등 없는 민주주의란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제도와 절차 안에서 토론·토의하여 의견을 조율하고 차이를 품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왜 그토록 지독하게 싸웠을까?

 왜 그렇게 자주 갈라서야만 했을까?

 꼭 이리 아픈 과거를 남겨야만 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그 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을 것인가.’

지난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 민주당은 계엄군을 막아선 시민들에 힘입어 국회를 열고 계엄 해제 의결에 성공했다. 

그 긴박했던 순간에, 민주당 당직자인 저자도 국회에 있었다.

 그리고 이후 2025년 4월 4일 마침내 윤석열이 파면되기까지 수개월 동안 아들과 함께 광장에 섰다.

 한 손에 응원봉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아들의 손을 잡고서 “윤석열 탄핵, 내란 척결”을 외치며 저자는 깨달았다.

 자신은 아들에게 민주당과 민주주의를 알려주기 위하여 사회과부도를 펼쳐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민주당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언제나 균열은 독선과 조급함에서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뿌리 깊은 정서를 어떻게 철폐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당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 

더 많은 당원이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당은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당원 주권 정당, 당원 중심 정당. 그것이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 또한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대한민국의 주권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국민에게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 책은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이라는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싸워온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의 윗세대에서 우리에게로 흘러 내려온 역사가 다음 세대에서는 좀 더 나은 양상으로 전개되기를 희망한다.

 더 자유롭고, 더 정의롭고, 더 민주적인 역사. 

그리하여 그들은 훨씬 더 희망찬 미래로 향해 가기를. 

오랜 세월 사람들이 역사를 중요시해온 이유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또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민주당의 역사 1955 2025』가 그렇게 밝은 미래를 만드는 일에 크게 쓰임받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추천평
1997년 민주당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우리 가족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모두 울었다. 

그토록 열렬히 지지하던 민주당과 김대중 후보의 승리를 미처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아버지께 국민과 함께 12·3 내란을 막아낸 민주당 이야기를 들려드린다면 얼마나 신나하실까! 

아버지 생각에 촉촉해진 눈으로 민주당이 걸어온 이 땅의 민주주의 역사를 꼼꼼이 되짚으며 새 길을 꿈꾼다. 더 잘해라 민주당!
- 박현도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부산에서 자란 나는 밥상머리에 앉을 때마다 “대통령감은 김대중뿐"이며 "찍을 수 있는 당은 민주당뿐”이라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어린 게 뭘 안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김대중 후보를 뽑아야 한다며 홀로 선거운동을 했고, 중학교 때는 조부와 함께 연설 현장을 쫓아다녔다.

 관련 저서를 닥치는 대로 읽은 건 덤이다.

 현실은 매정했다. 

패배는 습관이 되어야 했고, 세상 사람 마음, 특히 경상도 사람 맴이 내 맴 같지 않음을 세월 속에서 체감했다.

 짝사랑은 지겹게 졌다.

 지지고, 볶고, 싸우고, 분열하는 게, 전매특허처럼 보였으나, 결국 이 모든 건 ‘과정’이었다. 

지금 민주당은 정책으로는 해답을 내고, 위기 앞에선 하나로 선다. 

다만 이 또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이 짙은 희로애락의 발걸음을 찬미도 질타도 없이 담백하게 직시한 한 권을, 어찌 마다할 수 있을까.

 ‘박혁’이라는 고급 필터로 정제한 민주당의 역사는 에스프레소의 첫 모금처럼 쓰지만, 뒤이어 스며드는 단맛이 깊다. 

이 여운 속에서 민주당을 사랑하고 때론 미워한, 모든 이들이 걸어온 시간의 향기가 있다.
- 김창규 (딴지일보 편집장)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54106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