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세계사의 이해 (독서요약)/2.세계사문화

흑해 (2026)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동방박사님 2026. 2. 2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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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국역사가협회가 선정하는 ‘프랜시스 파크먼 상’과 인종차별 타파에 기여한 저작에 수여되는 ‘애니스필드울프 상’을 수상한 찰스 킹(조지타운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이 2700년에 이르는 흑해 세계의 장대한 역사를 단 한 권에 집약해낸 『흑해: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가 출간되었다. 

유럽과 러시아, 중동이 교차하는 21세기 지정학의 핵심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흑해 세계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책은 국내에 부재했다.

국제학 전문가이자 유라시아 지역 연구의 권위자인 찰스 킹은 흑해의 탄생부터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 창세기에 얽힌 ‘대홍수’ 신화, 그리스·로마 신화 영웅들의 모험, 오스만제국·러시아제국·소련으로 이어지는 열강들의 각축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흑해 세계의 ‘전체사’를 써냈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이와 같은 역사의 거대 행위자들과 그들이 벌인 사건들을 망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민족’과 ‘국가’를 중심에 둔 종래의 역사 서술을 배격하면서, 이 지역에 등장했던 다양한 집단·종족, 문화, 경제, 종교, 도시 그리고 자연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나아가, 강제 이주와 제노사이드 등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된 이들의 존재 또한 놓치지 않고 포착해냄으로써, 흑해 세계의 진정한 전체사를 완성했다.

흑해는 언제나 역사의 변두리에 위치해왔다. 

유럽과 아시아, 문명과 야만,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를 가르는 ‘경계’인 동시에, 각 세계의 ‘변방’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흑해는 언제나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세계의 ‘끝’으로 여겨져온 흑해는 언제나 역사가 ‘시작’되고, 세계가 ‘연결’되는 바다였다.

목차
감사의 말
이름에 관하여
지도

1장 장소의 고고학

사람들과 물 | 지역, 변경, 민족 | 시작 | 지리와 생태

2장 폰투스 에욱시누스 기원전 700~기원후 500년

세상의 끝 | “연못가의 개구리들” | “종족 집단” | 스키타이인이 문명을 보존한 방법 | 아르고호의 항해 | “우리 자신보다 더 야만스러운” | 폰토스와 로마 | 다키아 트라야나 | 플라비우스 아리아누스의 원정대 | 아보노테이코스의 예언자

3장 마레 마조레 500~1500년

“스키타이 부족은 하나다” | 바다불 | 하자르인, 로스인, 불가르인, 튀르크인 | 가자리아에서의 사업 | 팍스 몽골리카 | 카파에서 온 배 | 콤니노스 제국 | 투르키아 | 동방에서 온 사절

4장 카라 데니즈 1500~1700년

“모든 바다의 근원” |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팔려 가겠어요!” | 돔느, 칸, 데레베이 | 선원들의 낙서 | 갈매기 해군

5장 초르노예 모레 1700~1860년

바다와 스텝 | 아조프의 소함대 | 클레오파트라는 남쪽으로 | 칼무크인의 탈출 | 헤르손에서 보낸 한 철 | 해군 소장 존스 | 신러시아 | 열병, 학질, 검역소 | 트라브존의 영사 | 크림

6장 흑해 1860~1990년

제국, 국가, 조약 | 증기선, 밀, 철도, 석유 | “낙서를 끄적거리는 천박한 관광객 부대” | 쾨스텐제 철도의 문제 | 인구 제거 | ‘바다의 분할’ | 바다를 아는 것 | 프로메테우스주의자 | 발전과 쇠퇴

7장 물과 마주하기


저자 소개
저 : 찰스 킹 
미국의 작가, 국제학 전문가. 옥스퍼드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조지타운대학에서 국제관계학 교수로 있다. 

대표작 《문화의 수수께끼를 풀다》는 문화인류학의 창시자인 프란츠 보아스와 네 명의 여성 제자 마거릿 미드, 루스 베네딕트, 엘라 캐러 델로리아, 조라 닐 허스턴의 삶과 사상을 한 편의 전기처럼 엮어, 20세기 미국에서 ‘문화인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하는 과정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역 : 고광열
연세대학교에서 철학과 노어노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오리건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소련 흐루쇼프 시기 우크라이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지역의 인민경제회의 개혁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소비에트-폴란드 전쟁(1919~1921)과 볼셰비키의 세계 혁명관 변화〉, 역서로 《러시아혁명 1917-1938》, 《해방 직후 한반도 북부 공업 상황에 대한 소련 민...

책 속으로
육지가 아닌 바다에 주목할 때 보이는 인간의 역사
역사와 사회 연구에는 육지 중심의 편견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우리는 역사와 사회생활이 땅 위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 예컨대 바다를 항해하거나 강을 타고 내려가는 여정은 단지 배우들이 목적지에 도착해서 펼칠 진짜 연기를 위한 무대 장치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대양과 바다, 강들은 단순히 통로나 경계가 아니라 인간의 상호작용과 교류라는 독특한 이야기들의 핵심 주역으로서 자기만의 역사가 있다. (……) 우리의 지리적 시선을 토지에서 수역으로 옮기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역’이나 ‘민족’ 같은 명칭과, 우리가 세상을 분할하는 방식에서 이런 안이한 범주가 지닌 특권적 역할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또한 장소의 의미 자체에 관해, 그 의미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우리가 여러 민족과 문명 사이에 그어놓은 지적 경계선들이 생각보다 얼마나 훨씬 더 자의적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 p.25 「1장 장소의 고고학」 중에서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 속 대홍수의 원형을 찾아서
만약 홍수 이론이 맞다면(물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바다의 탄생을 목격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옛 호수를 둘러싸고 있던 신석기 공동체에 미친 영향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물이 밀려오면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호숫가를 떠나 유럽과 근동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흑해의 형성은 대단히 파국적이고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이어서, 민간전승 형태로 근동 사람들의 구전 전통에 스며들었을지도 모른다.

 바다가 형성된 지 약 5,000년이 지난 후 디오도로스 시켈로스가 발견했듯이, 그리스어로 말하는 세계의 사람들은 여전히 홍수가 가져온 재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의 창세기에 담긴 더욱 오래된 홍수 이야기도 흑해의 수위 상승에서 기원했을 수 있다. 물론 대홍수 이야기는 많은 문화권에 존재하는데, 특히 저지대 농업 지역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계절적인 하천의 범람에 의존하는 문화권에서 그렇다.

 게다가 이런 홍수 신화가 반드시 단일한 실제 대재앙에서 비롯됐다고 믿을 이유도 없다. 

그러나 만약 분노한 신의 진노에서 비롯된 재앙의 원형을 찾고 있다면, 흑해의 기원이 아마 좋은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p.47-48 「1장 장소의 고고학」 중에서

‘그리스인’과 ‘야만인’ 사이의 흐릿한 경계선
흑해의 활발한 상업은 이오니아 본토 도시들과 그 식민지의 활력뿐만 아니라 그리스 정착민들과 비그리스계 원주민들 간의 공생 관계에도 의존했다.

 지중해 정착민들과 여행자들에게 흑해 원주민들이 ‘야만인들’, 즉 그리스어로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오늘날 그 형용사가 함의하는 의미에서처럼 반드시 야만스럽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다른 변경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폰토스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마주친 종족들의 문화에 적응하고 심지어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들만의 방식을 찾아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그리스다움’이라는 개념 자체의 유동성 때문이었고, 동시에 장기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한 문화 집단들 간의 자연스러운 관습의 교환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종의 혼종 문명이 발달했는데, 러시아 학자 미하일 로스토프체프가 “종족 집단”이라고 부른 이것은 연안과 내륙의 예술 형식, 생활 양식, 심지어 언어까지 융합된 형태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고전기 아테네의 시인과 극작가가 상상했던 ‘그리스인’과 ‘야만인’ 사이의 명확한 문화적 경계선은 실로 매우 흐릿해졌다.
--- p.74-75 「2장 폰투스 에욱시누스 기원전 700~기원후 500년」 중에서

흑해, 몽골제국이 완성한 실크로드의 종착지가 되다
이러한 상업 중심지, 특히 크림 해안의 도시들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주한 작업장과 세계 각지에서 온 상인들로 가득한 시장을 마주했을 것이다. 포장된 거리에서는 열 가지가 넘는 언어가 들렸고, 노점상들은 그리스어와 이탈리아 방언이 뒤섞인 혼성어로 거래를 성사시켰다.

 시간을 알리는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 수도원의 종소리가 이슬람의 기도 호명이나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사제들의 성가와 경쟁하듯 울려 퍼졌다.

 시민과 상인은 영사관 궁전의 접견실에 몰려들어 구제책을 구하거나 공증인을 재촉하여 계약서에 인장을 받으려 했다.

 낙타와 짐말 대상들이 성문을 통과하여 항구로 향하는 길을 구불구불 따라갔다.

 남유럽 출신 상인들인 이탈리아인, 카탈루냐인 등은 점점 늘어나는 무슬림과 유대인을 만났고, 펠로폰네소스와 에게해 군도에서 새로 밀려온 정교회 신자와도 마주쳤는데, 이들 중 일부는 도시에 영구히 정착했고 다른 이들은 지중해로 돌아가기 전까지만 그곳에서 겨울을 났다.
--- p.161-162 「3장 마레 마조레 500~1500년」 중에서

‘오스만의 멍에’와 노예 무역에 관한 진실
오스만인에게는 특정한 ‘노예 인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노예 신분은 생물학적 열등함이라는 관념과 결부되지 않았고, 평생 지속되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부모에서 자식으로 전해지는 일도 거의 없었다. 누가 사고팔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금기는 있었다. 

예를 들어 무슬림은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에게 팔리지 않았다. 

흑해 지역 출신 ‘백인’ 노예와 북아프리카, 홍해, 페르시아만 출신 ‘흑인’ 노예 사이에는 어느 정도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노예 신분이 특정 문화 집단의 전유물은 아니었고, 따라서 아메리카 대륙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제처럼 선천적인 인종적 열등함이라는 함의를 담지 않았다. (……) 후대 역사가에게 노예 무역은 경제 발전을 지연시키고 사람들을 본래 고향에서 소외시킨 ‘오스만의 멍에’의 혐오스러운 측면 중 하나였다. 

특히 발칸반도의 역사 서술 전통에서 오스만 지배의 경험은 일반적으로 여전히 피지배인들의 사회적·문화적·경제적 번영을 가로막은 유감스러운 장애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오스만 국가와 이 지역의 다양한 속국 정권 사이의 정치적·군사적 관계는 그러한 해석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 p.214-216 「4장 카라 데니즈 1500~1700년」 중에서

18세기 페스트 팬데믹과 흑해의 도시사
스펜서가 발견했듯이 체계는 항상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선박은 항구에서 위생 담당관을 만났고 담당관은 긴 장대나 집게로 승객 및 선원과 소통했다. 

하지만 출항 항구의 상황을 확인하는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러시아와 오스만은 별도의 격리 체계를 운영했지만 프랑스의 체계처럼 건강 증명서 발급을 담당하는 영사는 없었다), 요구되는 유일한 문서는 여권을 비롯한 신분증이었다. 

때로 무관심한 관리는 여행자가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다는 구두 서약(신약성경, 구약성경 또는 쿠란에 대고 하는)을 하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증거를 요구하지 않았다. 

오스만 항구에서 오는 선박은 정기적으로 격리 대상이 됐지만, 실제로 그 기간은 정해진 규정이 아니라 수석 의료 담당관의 변덕에 따라 결정됐다. (……) 그럼에도 라자레토가 있다는 것은 어느 항구에나 이점으로 여겨졌다.

라자레토가 없는 항구는 쇠퇴했고, 라자레토가 있는 항구는 주요 무역 거점이 될 수 있었다. 

입항 선박이 짐을 내리거나 다른 항구로 가기 전에 격리 검사를 받는 첫 기착지였기 때문이다. 

사실 19세기 초 니콜라예프와 헤르손이 무역 중심지로서 쇠퇴한 것은 부분적으로 러시아 정부가 오데사에 격리 시설을 배치하기로 결정한 탓이었다
--- p.302-303 「5장 초르노예 모레 1700~1860년」 중에서

‘민족’ 만들기와 역사의 희생자들새로운 협상이 진행되면서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 인구 이동이 발생했다. 이는 1923년 7월 튀르키예와 연합국이 서명한 로잔 조약에 의해서 승인됐다. 

조약은 그리스와 튀르키예 양국의 민족 구성을 단일화하고 양국 정부의 보복으로부터 소수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흑해 연안 도시를 포함한 아나톨리아에서 그리스로 최대 150만 명의 정교회 기독교인을 강제로 보내고, 그리스에서는 특히 에게해 북안의 마케도니아에서 약 35만 명의 무슬림을 이주시키도록 규정했다. 

(이스탄불의 그리스 정교회 신자와 서부 트라키아의 무슬림은 추방에서 면제된다고 선언했다.)

 이번에는 주요 유럽 열강이 승인한 추방이 야기한 심리적 트라우마에 더해, 추방자들이 겪은 육체적 피해도 극심했다. 가족들은 임시 수용소에 갇혔다가 비좁은 배에 실려 이송됐다. (……)

 로잔 조약은 마치 ‘그리스인’(정교회 기독교인을 지칭하는 용어)과 무슬림을 구별하는 것이 쉬운 일인 양, 그리고 두 공동체 모두 각각 그리스와 새 튀르키예공화국을 자신의 자연스러운 조국으로 친밀감을 느껴야 하는 양 작성됐다. 그러나 많은 공동체에서 경계선은 불명확했다. 

조약에서 ‘그리스인’을 규정한 유일한 기준인 정교회에 소속된 사람이 튀르키예어로만 말하거나 에게해 출신 그리스어 사용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리스어 변종을 쓸 수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출신 무슬림도 튀르키예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나 발칸 슬라브어가 가장 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공동체들은 추정된 민족적 특성을 이유로 집단 이주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 p.368-369 「6장 흑해 1860~1990년」 중에서

‘민족’과 ‘국민국가’의 역사적 승리가 낳은 무지
페르낭 브로델은 모든 항구는 양쪽을 향한다고 썼다. 밖으로는 바다와 물 위로 떠밀려오는 다양한 영향을 대하고, 안으로는 내륙과 항구를 특정한 장소에 정박시키는 육지의 문화를 대한다. 

19세기 중반부터 흑해 주변의 많은 행위자는 양쪽을 향하던 얼굴을 육지 쪽으로 돌리고, 해안가의 삶을 특징지었던 다양한 정체성을 제거하고, 연안 지역을 젊은 민족의 유산이자 더욱 젊은 국가의 재산으로 주장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노력했다.

 냉전 시대에 바다는 경쟁하는 국가와 사회 체제 사이의 장벽이 됐다. 

각 국가는 바다 건너편 상대와의 차별화를 꾀했고, 그들의 이념은 해안과 바다 자체를 국가 주도 개발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 오늘날 세계에 흑해 주변만큼 정치 엘리트와 평범한 시민이 자기 이웃에 관해 모르는 곳은 없다.

이는 민족을 시간을 초월한 것으로, 국가를 예정된 것으로, 지역을 일시적인 것으로 보는 역사관이 부추긴 의도적인 무지이다. 

멀지 않은 과거에는 어부, 상인, 항구 관리, 심지어 바다 건너편의 친척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이런 관계를 상상하기가 더 어렵게 여겨지는 것은 역사, 정치, 사회관계를 이해하는 특정한 방식이 승리했음을 증명한다.
--- p.405-406 「7장 물과 마주하기」 중에서

기독교/이슬람, 유럽/아시아, 문명/야만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역사 쓰기
아널드 토인비는 제1차 세계대전의 후폭풍에 관한 역작인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서방 문제』에서 동부 지중해와 흑해를 바라보는 서양인 대부분의 머릿속에 박힌 잘못된 이분법 세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는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이분법이고, 둘째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이분법이며, 셋째는 문명과 야만 사이의 이분법이다. 

이렇게 대립하는 범주 사이의 경계는 멀리서 보면 충분히 명확해 보일 수 있으나, 토인비는 이스탄불이나 오데사나 바투미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거나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그 범주는 그야말로 우스꽝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흑해가 NATO와 EU의 동부 변경이 되고, 서로 다른 이민 정책, 무역 제한, 안보 정책이 흑해를 양분하는 가운데, 이런 경계가 토인비가 말한 이분법 사이의 경계처럼 굳어질지 궁금하다. 

이는 차르나 술탄 혹은 냉전을 정의했던 사회 체제가 세운 것과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누구에게나 실재하는 경계가 될 것이다. 

21세기에는 비자 담당관과 세관 직원이 19세기의 검역 의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전임자가 그랬던 것처럼, 비자 담당관과 세관 직원의 노력도 의심할 여지 없이 실패할 것이다. 

제국과 국가의 치밀한 계획을 무시하고 오랫동안 흑해 세계를 함께 연결하는, 숙련된 경계 횡단자들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 p.418 「7장 물과 마주하기」 중에서

역사의 또 다른 가능성, 지금 ‘흑해’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
에너지, 곡물, 관광, 군사 안보가 얽힌 흑해는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라 유럽 안보와 세계 식량 공급의 핵심 무대가 됐다. 2022년 이후 흑해의 미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 러시아와 서방의 장기적 관계, 튀르키예의 전략적 선택, 그리고 흑해 연안 국가들의 통합 또는 분열에 달려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흑해가 앞으로도 국제 정치의 주요 갈등 지점이자 협력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역동적 공간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 『흑해』는 그리스 식민 도시부터 오스만제국, 러시아제국, 소련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장기지속의 역사 속에서 흑해가 어떻게 문명의 ‘경계선’이 아니라 ‘연결 고리’로 기능해왔는지를 보여준다. (……) 

국제 공급망과 식량 안보, 에너지 위기가 일상을 흔드는 지금, 한국 독자들에게 흑해의 역사는 국제 정세를 읽는 필수적인 나침반이자, 단순한 진영 논리를 넘어 지역의 복합적 이해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단일 민족 신화와 고정된 국경 안에서의 국민국가 개념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 흑해는 민족과 언어, 종교가 끊임없이 뒤섞이고 국경이 유동하며 정체성이 중첩되는 역사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 p.435-436 「옮긴이의 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오랜 세월 흑해는 세계의 ‘끝’이었다
그러나 흑해는 언제나 역사가 ‘시작’되고 세계가 ‘연결’되는 바다였다

유럽과 아시아,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넘어
마침내 복원한 흑해 세계의 실체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의 시선은 주로 ‘육지’에 머무른다. 이때 육지는 ‘민족’과 ‘국민국가’를 경계로 나뉘며, 그 조각들의 만남은 대개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는 전쟁과 정복의 역사로 채워진다. 

동유럽과 유라시아 지역을 연구해온 국제학 전문가 찰스 킹은 이러한 역사 서술의 접근법을 거부하고, ‘바다’를 역사의 전면에 내세운다. ‘흑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서구인들에게 흑해는 오랜 세월 문명과 기독교 세계, 유럽의 동쪽 끝, 다시 말해 ‘세계의 끝’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야만, 이슬람, 아시아가 도사리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역작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서방 문제』에서 서구인이 흑해와 동지중해를 바라볼 때 범한다고 지적한 잘못된 이분법 세 가지, 즉 기독교와 이슬람, 유럽과 아시아,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이다. 하지만 이런 정신적 지도는 분명 근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냉전을 거치며 흑해 세계는 소련의 영향권에 속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로 채워진 ‘동유럽’과 동일시되었고, 그 결과 냉전의 이분법이라는 또 하나의 이분법이 덧씌워졌다.

 이러한 이분법들 속에서 흑해 세계의 실체는 역사 속에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흑해』는 이 같은 이분법들이 가리고 있는 흑해의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 정치를 하나로 엮어내고, 역사의 지층 속에 잠들어 있는 깊고 풍부한 흑해 세계의 실체를 복원한다.

이 책은 한때 의미 있는 지리적 공간으로 존재했을지도 모를 장소가 수 세기에 걸쳐 어떻게 점진적으로 해체됐는지, 바다를 가로지르는 인간관계의 연결망이 유럽과 유라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전략적 환경 변화와 보조를 맞춰 어떻게 형성되고 사라지고 다시 형성됐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지리적 고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한 실험이다. 

그 목적은 20세기 후반 공산주의와 탈공산주의의 얇은 지층 아래 묻혀 있던 잊힌 관계망과 정교한 인간관계를 발굴하는 것이다. 이 작업의 중심에는 바다가 자리한다.―129~130쪽

찰스 킹은 독창적인 구성을 통해 흑해 역사의 중층성을 드러낸다. 

저자의 방법론을 개괄하는 1장을 지나, 흑해의 연대기를 이루는 2장부터 6장까지 각 장의 제목은 당대 흑해 지역을 지배한 세력의 언어들로 구성된다. 2장의 ‘폰투스 에욱시누스Pontus Euxinus’는 라틴어로 ‘환대하는 바다’를 의미한다. 기원전 7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를 다루는 2장은 그리스 식민 도시들이 흑해 연안으로 뻗어나가 스키타이인과 교류하고, 이윽고 로마가 진출한 고대를 다룬다. 3장의 ‘마레 마조레Mare Maggiore’는 이탈리아어로 ‘큰 바다’를 뜻한다. 이 장은 500~1500년에 걸쳐 비잔티움제국과 제노바·베네치아 상인들이 활약하던 중세 시대를 조명한다. 4장의 ‘카라 데니즈Kara Deniz’는 튀르크어로 ‘검은 또는 어두운 바다’라는 뜻이다.

 4장은 오스만제국이 흑해를 사실상 내해로 장악하고 노예 무역이 번성하던 1500~1700년의 시기를 서술한다.

 5장의 ‘초르노예 모레Chernoe More’는 마찬가지로 ‘검은 바다’를 의미하는 러시아어이다. 5장은 러시아제국이 남진 정책을 통해 오스만을 밀어내고 흑해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1700~1860년의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6장에 이르러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 단어인 ‘흑해Black Sea’가 등장한다. 6장에서는 증기선과 철도, 석유와 밀 수출로 국제화한 근대화 시기부터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 소련 해체까지를 포괄한다. 

책은 탈냉전 이후 흑해의 미래를 전망하는 7장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처럼 ‘흑해’를 지칭해온 여러 언어들로 차례를 구성한 것은, 그 자체로 흑해가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공간이 아니었고, 시대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문명권의 중심 무대였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 책이 쓰인 2004년 이후, 흑해 세계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거쳐 2022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소용돌이로 치달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러시아와 그 인접 지역을 공부하고, 우크라이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지역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장기간에 걸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옮긴이는 이 책 출간 이후, 현시점 흑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정학적 충돌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옮긴이의 말」을 통해 세밀하게 서술한다. 이로써 『흑해』는 흑해의 과거뿐 아니라 오늘, 바로 이 순간까지 망라한다.

경계와 변방에서 세계사의 핵심으로,
2700년에 이르는 흑해 세계의 전체사를 쓰다

찰스 킹의 『흑해』는 흑해 세계의 2700년 역사를 아우르는 최초의 포괄적 역사서이다. 

『흑해』의 독창성은 연대기적으로 ‘흑해’의 전 역사를 아우른다는 점뿐만 아니라, 흑해 세계를 구성해온 다양한 종족·집단들, 문화, 도시, 경제, 자연(바다, 강, 산, 평야, 산, 강)과 그들의 역할을 총체적으로 다룬다는 데 있다. 

특히 저자는 흑해를 ‘문명 충돌의 경계선’이 아니라 종교 공동체, 언어 집단, 제국과 국가, 도시들을 연결하는 ‘다리’로 재해석함으로써,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 연구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지역사 방법론을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방대한 사료와 폭넓은 연구에 기초하여 지리, 군사·정치사, 경제와 무역, 인구, 종교, 문화 그리고 이들 각각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저자는 이 모두를 유머와 통찰이 어우러진 유연한 서술로 한데 엮어낸다.

이러한 흑해의 전체사를 쓰기 위해서, 저자는 특히 세 가지 개념을 강조한다. 

첫째, ‘지역region’이다. 저자는 지역이란 범주가 어떻게 구분하고 경계 짓든 본질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는 지역에서 중요한 점은 실상 ‘구분’이 아닌 ‘연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흑해 세계는 오랫동안 사람과 사물, 사상이 종횡무진 이동하고, 서로 협력하면서도 갈등을 빚는 인간관계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총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각 지역들은 정적으로 고정된 경계보다는 역동적으로 이동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의해 규정된다.

어떤 넓은 지리적 단위를 다른 것과 구별해주는 본질적 특성들을 찾아내려고 하는 순간, 그런 특성들은 실망스럽게도 덧없어 보이기 시작한다. 

근본적으로 지역은,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그 지역의 구성 요소가 공유할지도 모르는 언어나 문화, 종교, 기타 특성들의 공통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은 연결에 관한 것이다. 즉, 한 공간을 다른 공간과 구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공동체들 사이의 깊고 지속적인 연결 고리에 관한 것이다.―32쪽

둘째, ‘변경frontier’이다. 변경은 ‘경계boundary’가 아니다. 제국이나 국가들 사이의 변경은 다양한 집단과 공동체가 자리해온 거점이자, 지역과 지역,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오간 경계 횡단자들의 주 무대가 된 공간이다.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해안과 내륙의 인간 집단·공동체들은 끊임없이 접촉하고 교류했다. 

그 가운데 사람들은 확고한 정체성을 고집하기보다는 종교, 언어, 풍습 등 사회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문화와 정체성이 뒤섞이고, 하나의 복잡한 그물망을 이루며 살아갔다.

주의가 필요한 또 다른 용어는 ‘변경’이다. 내륙 아시아 역사학자 오언 래티모어는 변경이 경계와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경계는 정치적 권력의 의도된 한계, 즉 국가나 제국이 특정 지리적 공간에 자신의 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가장 먼 범위를 나타낸다. 변경은 경계의 양쪽에 존재하는 구역이다. 

변경은 독특한 경계 횡단자들의 공동체가 거주하는 곳으로, 이들의 삶과 생계는 정치체 간의 물리적 경계뿐만 아니라 민족, 종교, 언어 집단 간의 사회적 경계를 넘나드는 데 전문가가 되는 것에 달려 있다.―35쪽

셋째, ‘민족nation’이다. 근대에 이르러 역사는 ‘민족’이라는 관념에 속박되었다. 즉, 같은 언어·문화·역사를 공유하고, 한 장소에 뿌리내린 채 살아왔으며, 공동체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정체성이라 가정되는 민족은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민족과 민족에 토대를 둔 국민국가가 근대에 접어들며 처음 등장하고, 이후 인간 사회와 국제 정치에 대한 우리의 상식으로 뿌리내린 과정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 때문에 저자는 민족이라는 관념이 등장하여 꽃을 피운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까지는 의도적으로 민족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민족과 국민국가, 그리고 그것에 바탕한 역사라는 현재의 뿌리 깊은 편견을 먼 과거에 투영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이다.

민족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언제나 목소리들을 침묵시키는 일이다. 

이는 사람들 주위에 경계선을 긋고, 인간 공동체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잘라내며, 복잡한 과거에 순수한 정체성과 불변의 경계라는 윤곽을 투영하는 작업을 수반한다. 

사람들의 실제 생활과 문화는 대개 소음으로 가득하고, 때로는 합창 같기도 하며, 때로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독창은 거의 없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그런 조용한 목소리 중 일부에 귀를 기울여보자고 요청한다.―41~42쪽

민족과 국민국가 신화가 지운 역사를 발굴하고
21세기 지정학적 충돌을 이해하는 참조점
‘방법으로서의 흑해’

민족과 국민국가를 둘러싼 신화가 사상누각이라는 사실은 흑해의 역사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아도 여실히 드러난다. 

흑해 세계에는 오늘날과 같은 ‘민족’들의 경계와 ‘국민국가’들의 경계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숱하게 존재했다. 

가령 이곳에는 후에 ‘그리스인’으로 분류됐지만 그리스어 대신 튀르키예어로만 말하거나, 튀르키예어가 아닌 그리스어나 슬라브어를 가장 편하게 사용하는 그리스 출신 무슬림이 공존했다. 

이는 다양한 세력이 교차하고 상호 침투하는 흑해 세계의 오랜 역사에서 비롯한 자연스러운 삶의 양상이었다.

그러나 민족과 국민국가가 탄생하는 역사적 과정, 구체적으로는 국경 전쟁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전후 질서를 확립하는 정치적 협상과 조약의 결과 불분명한 민족적 특성을 기준으로 대규모의 강제 이주와 인구 교환, 추방과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 같은 역사의 희생자들을 마주하고, 역사의 지층 아래 잠들어 있는 흑해 세계의 실체를 대면하는 일은 단일 민족 신화와 고정된 국경 안에서의 국민국가 개념이 강고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히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흑해의 역사는 민족과 국민국가의 신화를 넘어 여러 집단과 언어, 종교가 끊임없이 뒤섞이고, 지리적·정치적 경계가 요동치며, 정체성이 중첩되는 역사의 진면목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더욱이 흑해 지역은 에너지와 식량, 안보 등을 매개로 국제 정치·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무엇보다 2022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우리에게도 더 이상 먼 곳이 아니게 되었다.

현재 이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민족과 국민국가의 신화를 벗어나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과 탈냉전을 거쳐 오늘에 이른 흑해 세계의 지정학과 그 역사적 연원을 오롯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에너지 정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곡물 및 원자재 공급사슬의 변동, 전장을 테스트베드로 한 전쟁 기술 실험까지, 이 모든 일들이 흑해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 사태의 배경을 단순히 러시아의 야욕이나 서방의 확장 정책, 그리고 그들 간의 대결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 지역이 품고 있는 수천 년에 걸친 역사적 복잡성을 놓치게 된다.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의 집착, 튀르키예의 중재자 역할, 조지아와 루마니아의 전략적 선택, 이 모든 것은 역사적 맥락 없이는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흑해』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의 민족 분쟁과 에너지·환경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동체와 집단, 종교, 제국, 그리고 후대의 국가들을 연결하며 흑해가 어떻게 ‘경계’가 아닌 ‘가교’ 역할을 해왔는지 무수히 많은 연결 고리들을 탐구한다. 

이런 점에서 흑해의 역사에 주목하는 것은 비단 세계사의 하위 분야, 지역별 항목을 한 가지 더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흑해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민족과 국민국가의 신화를 넘어서 역사와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키며, 단순한 진영 논리를 넘어 21세기 지정학의 핵심을 파악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추천평
이 시의적절한 저서에서 찰스 킹은 유럽과 아시아, 문명과 야만, ‘우리’와 ‘타자’ 등 항상 모든 것의 경계에 자리해온 이 어두컴컴한 수역에 대한 유연한 연대기를 제공한다. (……) 

이른바 ‘동방문제’라고 불리던 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느끼지만, 이제 와서 알아보기엔 너무 늦었다고 남몰래 걱정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수적인 책이다.
- 가디언


학구적인 역사가가 일반교양 대중을 위해 쓴 탄탄한 저작이다. 

특히 저자는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잊힌 에피소드들을 훌륭하게 다뤄낸다. 찰스 킹은 민족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신화의 이면을 꿰뚫어 보기 좋은 위치에 있고, 역사의 희생자들을 향한 탁월한 시선을 지니고 있다. (……) 

킹의 책은 방대한 사료들의 배치, 대서양을 가로질러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 그리고 최근에 아주 각광받는 우아한 문체까지, 훌륭한 미국 학술서의 모든 미덕을 갖추고 있다.
-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소련의 붕괴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제국들과 함께 파묻히거나 냉전 구도에 의해 주변화되었던 거대한 지정학적 무대 두 곳을 소생시켰다. 첫 번째 무대는 중국 국경 지대에서 시베리아 남부를 가로질러 힌두쿠시산맥에 이르는 광활한 내륙 지역인 중앙아시아다. 두 번째 무대는 발칸반도, 중앙아시아, 중동이 만나는 교차점인 흑해이다. 

(이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이러한 재구축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특별한 관점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리스와 스키타이부터 로마, 비잔티움, 오스만, 러시아 그리고 격동의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흑해의 수많은 정치적 변천사를 추적한다. (……) 지금처럼 분열되고 여러 약소국과 불안정한 국가들로 채워져 있을 때조차 이 지역은 하나로 응집되어 있다. 

시야를 확장시켜주는 이 책은 그에 걸맞은 고찰과 접근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 포린 어페어스


이 책은 혁신과 신선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거대한 규모의 저작이다. (……) 

책 한 권에 2700년의 역사를 담아내는 일은 분명 엄청난 난관에 봉착할 것처럼 보이지만, 찰스 킹은 모든 의구심을 불식시킨다. 

그의 논지에는 흔들림이 없고, 그의 통찰이 가하는 일격은 매 쪽마다 우리를 놀라게 한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러시안 리뷰


일반 독자와 전문가 모두 킹의 책을 즐겁고 유익하게 읽을 것이다.

 이 책이 다른 학자들로 하여금 이제껏 소홀하게 다뤄져온 지역에 관심을 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인터내셔널 히스토리 리뷰


생동감 넘치고, 술술 읽히며, 매혹적이다.
- 이스트-웨스트 리뷰


이 핵심적인 수로를 둘러싼 집단과 세력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해온 교류를 탁월하게 다룬 작품이다.
- 올랜도 파이지스 (역사학자 · 런던대학교 버벡칼리지 역사학 교수 · 『러시아, 그 역사와 진실』, 『혁명의 러시아 1891~1991』 저자)


이 훌륭한 저서에서 찰스 킹은 흑해에 대한 멋들어지고, 신뢰할 만하며, 명민한 서술을 선사한다. (……) 그는 명료함과 유머, 통찰력이 깃든 글을 쓰고,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세부 내용들로 책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면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이 지역의 전체사를 능수능란하게 망라한다.
- 제프리 스캐멀 (역사학자 · 전 케임브리지대학교 펨브룩칼리지 역사학 학과장, 명예펠로우 · 전 국제해양사위원회 영국위원회 위원장)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75278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