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책소개
몽골 제국이 불러온 전례 없는 규모의 문화 접촉과
종교적·민족적·지정학적 정체성의 재편
몽골 제국이 촉발한 폭발적 인적 이동은 제국 안팎의 사람들을 연결했고, 과학과 기술 교류의 기회를 창출했다.
그러나 제국 도처에 전해진 ‘통치 도구’의 대부분은 그들의 고유한 양식이 아니라 정주 지역 복속민의 양식을 차용한 형태였다.
칭기스 칸의 제국이 바야흐로 전 세계적 문명 교류의 불을 지핀 것이다.
교류를 촉진한 이들은 각지로 파견된 제국의 대리인들이었고,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제도와 문화는 몽골의 규범과 신념을 다양한 양식으로 재현한 것들이었다.
이때의 몽골은 세계를 통제하는 전능한 ‘빅 브라더’나 자유방임적 교류를 허용하는 방관자가 아니었다.
대신에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제국 운영에 필요한 도구를 발굴하고 그중 가장 효과적인 도구를 선택하는 조정자로서 세력을 확장했다.
이렇게 해서 칭기스 칸과 그의 후예들은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해 동서남북을 연결하고 세계를 하나로 통합했다.
다시 말해, 세계는 이전과 다른 세계가 되었다.
또한 몽골의 시대는 신대륙 발견에 기여했으며, 중세에서 근세로의 시대 대전환을 촉발했다.
그 유산은 몽골의 시대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유라시아의 여러 제국에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이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종합하고 면밀히 검토한다.
목차
제1부. 지역사: 가장자리에서 바라본 세계
몽골 제국의 몽골 지역: 중심에서 주변부로_모리스 로사비
몽골이 수도를 건설하다 | 카라코룸과 몽골 지역의 쇠락? | 권력 투쟁 | 쿠빌라이 카안과 몽골 지역 | 카이두와 몽골 지역 | 원의 통치 노력 | 원 조정과 그들의 문제 | 몽골 귀환 이후의 분열 | 참고문헌
몽골 제국 속의 고려_데이비드 로빈슨
서론 | 첫 접촉 | 동맹과 전쟁 사이 | 장기전 | 제국으로의 통합 | 군사와 왕권 | 인구 이동과 그 결과 | 유산 | 참고문헌
조지아와 캅카스_로렌초 푸블리치
몽골 이전 | 몽골의 첫 번째 코카시아 침입, 1220년 | 코카시아 최종 정복 | 코카시아의 몽골: 통치와 협력 | 몽골의 코카시아 경영 | 군사 협력 | 일 칸국 후반기의 몽골과 캅카스 | 결론: 캅카스의 몽골 유산 | 참고문헌
몽골과 시베리아_토머스 올슨
북쪽 변경 | 삼림 생산물 | 북방 정복 | 원격 통치 | 다시 열린 변경 | 삼림 지대의 유산 | 여파 | 참고문헌
루스 공국_로런스 랭어
루스 침공, 1237~1241년 | 13세기의 암흑기 | 몽골에 대한 공물 | 14세기 | 15세기, 쇠퇴하는 몽골의 지배 | 몽골의 지배와 루스 | 참고문헌
제2부. 외부 역사: 몽골과 정복되지 않은 지역과의 관계
몽골과 유럽_니콜라 디 코스모
서론 | 몽골의 유럽 침공과 초기 접촉 | 몽골에 대해 알기 | 외교 관계 | 몽골 영역에서의 무역과 상인 | 몽골 아시아에서 선교사의 존재 | 몽골과 유럽: 물질과 문화적 영향 | 결론 | 참고문헌
몽골과 아랍_중동 레우벤 아미타이
서론 | 첫 만남 | 맘룩과의 계속되는 전쟁 | 아라비아 | 비군사적 접촉과 결론 | 참고문헌
남아시아와_몽골 제국 탄센 센
군사 충돌과 외교 교류 | 몽골 세계와의 상업적 연결 | 몽골 세계와의 종교적, 문화적 연결 | 맺음말 | 참고문헌
맺음말.
몽골 제국, 유목 문화, 세계사 _미할 비란·김호동
칭기스계의 교환: 문화적, 경제적, 종교적 변화 | 종교 변화 | 경제 교류 | 제도적, 지정학적 변화 |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모리스 로사비 (Morris Rossabi)
미국의 저명한 동아시아·중앙아시아 전문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생인 모리스 로사비는 뉴욕시립대학(CUNY) 역사학과 석좌교수다.
컬럼비아대학 겸임교수로, 중국사 및 내륙아시아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수성의 전략가 쿠빌라이 칸』(강창훈 역, 사회평론, 2015)과 과 『몽골제국(The Mongols: A Very Short Introduction)』을 비롯한 수많은 책과 논문을 집필했다. 다른 주요저작으로는 ...
저 : 데이비드 로빈슨 (David M. Robinson)
미국 콜게이트대학 아시아학 교수로, 『제국의 황혼(Empire’s Twilight)』에서 14세기 중반 몽골의 멸망 이후 동북아시아에 닥친 혼란을 조명했다.
그 밖에도 명 궁정의 문화와 생활을 소개하는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저 : 로렌초 푸블리치 (Lorenzo Pubblici)
이탈리아 나폴리 오리엔탈레대학 교수로, 전근대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친다.
『몽골의 캅카스: 13세기 유라시아 변방 지역의 침략, 정복, 통치(Mongol Caucasia: Invasions, Conquest, and Government of a Frontier Region in Thirteenth-Century Eurasia)』와 『베네치아와 몽골(Venice and the Mongols)』 등을 펴냈다.
책 속으로
한국사에서 더 중요한 점은 조선 왕조의 설립에 참여한 많은 주요 정치인, 군인, 지식인이 몽골 치하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조선 왕조를 건립한 이성계 가문은 몽골이 1258년 고려의 동북 방면에 세운 쌍성총관부에서 세습 군관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성계와 그의 조상들은 고려 및 여진 집단들과 토착적 유대 관계를 맺었고, 옷치긴(칭기스의 동생)의 후손 및 고려 북부까지 영향력을 확장한 다른 강력한 몽골 귀족들과도 관계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 「제2장, 몽골 제국 속의 고려」 중에서
몽골이 전성기에 아시아의 3분의 2와 유럽의 3분의 1에 달하는 영토를 통합한 것은 진정한 문화적 혁명이었다.
보다 준비가 잘 돼 있었던 이탈리아 도시들(특히 베네치아와 제노바)은 무역 종착 지점으로서 콘스탄티노플을 버리고 투자처를 흑해로 옮겼고, 그 결과 일부 경우에는 이탈리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실질적 고향이 된 무역 거점들, 예를 들어 크림반도의 카파, 아조프해의 타나, 또는 조지아의 사바스토폴리 등을 만들었다.
몽골의 남캅카스 지배는 상인의 이동성에 유리하게 작동했으니, 무역로가 안전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생산성이 높아졌다.
전문적인 인력은 자신의 모국으로부터 대칸의 궁정에 있는 작업장으로 강제 이동됐다.
--- 「제3장, 조지아와 캅카스」 중에서
역사상 가장 중대한 발견 중 하나인 화약은 이론의 여지없이 중국에서 (다른 제조법으로) 발명됐다.
이미 12세기에 군사 목적으로 사용됐지만, 화약 무기가 크게 개선된 것은 13세기 몽골 전쟁 중의 일이었다.
몽골은 중국 원정 도중에 화약 기술을 접했고, 13세기 말 원 왕조 시기에 그것을 도입했다.
동시에 몽골은 이슬람 세계와 인도로 화약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13세기 후반에 이미 화약을 정확한 비율로 제조하는 방법이 등장했지만, 화기 기술은 몽골과 유럽의 무역 관계가 번창하던 14세기 초에야 비로소 나타났다.
몽골이 통치하던 아시아로부터 유럽으로 화약이 전해진 방식과 경로에 관한 직접적이고 명백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이슬람 지역에도 알려진 지 100년이 넘은 이 기성의 기술이 아시아와의 상업적, 정치적 접촉이 증가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유럽에서 독자적으로 발견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 「제6장, 몽골과 유럽」 중에서
남아시아 국가들과 원 사이에는 그와 같은 폭력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 두 지역 사이의 문화적 관계는 현저히 달랐다.
이 관계의 주목할 만한 측면 중 하나는 아니게(1245~1306)라는 네팔 예술가가 남아시아에서 쿠빌라이의 영토로 예술 전통을 전파한 일이다.
1260년 쿠빌라이는 스스로 몽골의 대칸임을 선언한 후에 종교적 스승 팍빠의 지휘 아래 여러 불교 건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제8장, 남아시아와 몽골 제국」 중에서
출판사 리뷰
몽골 제국의 세계주의와 문화적 활기는 그들의 개방적인 유목 전통에서 기원했다.
몽골의 세계 정복전이 가져온 지역적 제약의 붕괴는 장거리 문화 교류의 전례 없는 번성을 촉발했다.
_ 김호동 서울대 명예교수
몽골 제국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13~14세기에 칭기스 칸과 그의 후계자들은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해 동서남북의 땅과 바다를 연결하고 세계를 하나로 통합했다.
몽골의 급속한 팽창과 전방위적 통합은 구세계 전역에 문화적, 종교적, 경제적, 지정학적, 종족적 대변혁을 일으켰다.
이 모든 충격과 그로 인한 변화로 인하여 세계는 중세에서 근세로 빠르게 이행했고, 이른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또 역설적이게도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여러 유목 정치 세력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한편 몽골의 침략을 경험한 일부 지역에서는 이후 지역 및 국제 교역의 증가로 재창조가 파괴만큼이나 빠르고 강력하게 이루어졌다.
14세기 중반이 되자 몽골 제국의 네 울루스는 정치적·생태적 위기에 봉착했고, 결국 이란의 훌레구 울루스(1336)와 중국의 카안 울루스(1368)가 붕괴됐다.
초원 지대를 지배하던 금장 호르드와 차가다이 울루스도 후퇴를 피할 수 없었다.
이 가운데에서도 카안 울루스의 종말은 ‘몽골의 시대(1206~1368)’의 끝으로 간주되곤 한다.
칭기스 칸의 후손들이 정주 지역에서 물러나 초원으로 돌아갔고, 몽골의 지배 아래 보편화되었던 경제적·문화적 교류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칭기스 칸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서부 초원 지대, 이슬람 중앙아시아, 그리고 인도에서 18세기와 19세기까지 통치를 이어갔다.
‘몽골의 시대’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과 당대의 정치 문화, 그리고 몽골이 세계 각 지역을 지배하며 수립한 다양한 제도들은 근세에도 유라시아 전역에서 제국 형성과 통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너무나 광범위하여 한눈에 다 보이지 않고, 때로는 여럿으로 분절된 정치체로 보이기도 하는 몽골 제국을 전체론적(holistic) 관점으로 통합하여 다시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이 책은 몽골의 시대의 모든 것에 육박한다!
이 책은 세계사상 ‘몽골의 시대’라고 부르는 시기에 대한 종합 안내서이다.
역사 연구자들에게 필독서로 간주되는 〈케임브리지 역사〉 시리즈의 한 편으로 2023년 8월 출간된 이 책의 원서에는 도합 40명의 학자가 참여했다.
원서의 제1권은 책임 편집자를 맡은 김호동과 미할 비란을 필두로, 몽골사 연구가 폭발하는 기점이 된 토머스 올슨,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군사·무기 전문가 티모시 메이, 몽골 통사를 교양서로 종합한 데이비드 모건, 당대의 변화를 기후·생태·환경으로 확장시킨 니콜라 디 코스모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자신의 이론과 연구 성과를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원서의 제2권은 문헌, 고고학, 그리고 시각 자료를 검토하고 몽골 제국사 연구 전체를 종합하는 참고문헌 목록을 제시한다.
몽골의 유산은 실로 다양한 언어와 지역을 포괄하며, 각지에 서로 다른 언어와 형태의 사료가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기에 제국 연구에 가장 중요한 16개 언어권의 사료 및 고고학 자료들을 수록했다.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의 한국어판은 원서의 제1권을 번역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의 제자로서 현재 대학에서 활발하게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는 조원희·최소영·김석환 교수가 각각 정치사·주제별 역사·지역사와 외부 역사를 맡아서 번역했다.
몽골 제국의 범위와 복잡성만큼이나 방대한 분량으로 인하여 한국어판은 원서의 각 부를 구성하는 정치사(제1부)·주제별 역사(제2부)·지역사와 외부 역사(제3부와 제4부)를 세 권으로 나누어 출간한다.
몽골의 시대와 그 영향 개관
‘몽골의 시대’는 칭기스 칸이 등장한 1206년부터 카안 울루스의 대칸이 중국에서 철수한 1368년까지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160년을 다시 두 시기로 구분하는데, 전기는 1260년까지 지속된 ‘통일 몽골 제국’ 시대이다.
이 시기에 몽골은 동과 서로 끊임없이 팽창하며 새로 정복한 영토에 몽골식 제도를 정착시켰다.
후기는 ‘몽골 연방’ 시기로, 이때 칭기스 칸의 후예들이 중국, 이란, 중앙아시아, 볼가 지역에 네 개의 지역 단위 제국(4대 울루스)을 탄생시켰다.
대칸 혹은 카안이 통치하는 카안 울루스는 북중국 지역을 중심에 놓고 대도(大都, 몽골어 Daidu, 현재 베이징)에 수도를 건설했다.
원(元)으로도 알려진 이 울루스는 다른 울루스들에 명목상 우위를 점했지만, 때로는 지역 울루스의 칸들이 대칸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했다.
나머지 세 울루스는 창시자인 칭기스 칸의 아들 주치와 차가다이, 톨루이의 아들인 훌레구의 이름으로 불린다.
일 칸국(1260~1335)이라고도 부르는 훌레구 울루스는 오늘날의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 자리했다.
주치 울루스(금장 호르드, 1260~1502)는 볼가강 유역을 중심으로 했고, 차가다이 울루스(1260~1678)는 둔황에서 부하라까지 이어지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세력을 펼쳤다.
이 울루스들은 종종 대립하기도 했으나, 대개 ‘칭기스 칸의 후예’라는 강력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유라시아 전 지역의 정치·경제·문화 교류를 지원했다.
그 안에서 초원의 유목 문화뿐 아니라 중국 문명, 이슬람 문명, 가톨릭 문화, 정교회 문화, 불교 문화 등이 섞이며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몽골의 평화’를 뜻하는 라틴어)를 이루었다.
한편 몽골은 영토가 아니라 인구(그리고 가축의 수)로 부를 측정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새로 정복한 영토에서 획득한 사람과 그들의 재능을 유형 재화로 여겨 제국 전역으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과 그를 뒤 따르는 상품, 기술, 제도, 문헌, 사상이 결합하고 발전했다.
몽골이 초래한 이 변화를 칭기스의 교환(the Chinggis exchange)이라고 부르며, 그 영향은 제국 내부는 물론 일본, 동남아시아, 인도, 그리고 대부분의 유럽 등 제국 외부 세계에까지 모두 미쳤다.
주요 내용
제3권 지역사·외부 역사는 몽골인들이 간접적으로 통치했던 특정 지역들에 초점을 맞춘다.
변방과의 연결 고리를 살펴봄으로써 ‘중심부’와 ‘주변부’의 제도와 정책 변화를 조명한다.
모리스 로사비(「몽골 제국의 몽골 지역」)는 제국의 중심부인 몽골 초원과 북중국 지역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주변부로 바뀌는 현상을 분석한다.
쿠빌라이 사후 대칸의 자리를 놓고 반복된 계승 분쟁이 몽골 지역의 무질서를 야기했고, 잦은 쿠데타와 암살은 정치적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러시아,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다른 칸국들과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제국은 빠르게 쇠락하고 중심의 권위는 극도로 축소되었다.
데이비드 로빈슨(「몽골 제국의 속의 고려」)과 로렌초 푸블리치(「조지아와 캅카스」)는 제국과 동서 경계 지역의 관계를 다룬다.
제국 동쪽 변경에 위치한 고려의 국왕은 칭기스계의 부마로, 고려의 백성들은 황후, 궁인, 환관, 군사 지휘관 등의 형태로 제국의 구성원이 되었다.
제국 서쪽 변경에 위치한 조지아와 캅카스 지역은 유럽과 몽골 제국의 경계이자 연결 통로로 기능하며 오스만이라는 새로운 적이 등장할 때까지 상업과 예술 발전을 구가했다.
토머스 올슨(「몽골과 시베리아」)과 로렌스 랭어(「루스 공국」)는 제국 북쪽의 전이지대를 탐구한다.
남부 지역에 비해 인구가 적고 제도가 덜 발전한 이 지역에서 몽골은 임시변통을 활용해야 했다.
동시에 식민 도시를 건설하고 도시를 역참과 연결하면서 서서히 이 지역을 동서 무역로와 연결시켰다.
모스크바는 이 시기의 발전을 바탕으로 몽골의 시대가 끝난 뒤 기독교 세계의 중심인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니콜라 디 코스모(「몽골과 유럽」)는 몽골과 유럽의 관계를 다시 강조하며, 특히 몽골과 조우한 뒤 유럽 세계에 남은 충격과 공포가 예언과 전설의 형태로 퍼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 소문을 좇아서 이탈리아 선교사들과 가톨릭 선교사들이 몽골을 향해 동쪽으로 이동했다.
또한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인 화약이 이 시기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전파되어,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군사 혁명’의 씨앗이 되었다.
레우벤 아미타이(「몽골과 아랍 중동」)는 오늘날 아랍 문명의 중심이 된 곳에 몽골이 미친 영향을 요약한다.
그는 몽골이 1260년 시리아의 아이유브 왕조를 무너트리지 않았다면 맘룩 술탄국은 이집트에서 나와 시리아 지역을 확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몽골의 출현으로 인하여 이슬람 세계가 맘룩을 중심으로 단결했고, 이후 군국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탄센 센(「남아시아와 몽골 제국」)은 몽골이 인도와 연결되는 흥미로운 순간을 재현한다.
두 지역의 관계는 전쟁보다 교류로 구현되었다.
인도 서해안 도시들이 페르시아만의 항구를 통해 일 칸국의 수도 타브리즈와 무역을 개시했다.
이후 이 경로로 중국에서 생산한 청화백자가 서쪽으로 수출됐다.
또한 이 지역에서 기원한 불교와 이 지역으로 전파된 이슬람교가 대원 울루스와 인도의 인적·문화적 교류를 촉진하기도 했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88143375>
'52.중국.동아시아 이해 (독서요약) > 5.유라시아.몽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2 (2026) : 주제별 역사 (0) | 2026.06.13 |
|---|---|
|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 : 정치사 (2026) (0) | 2026.06.12 |
| 몽골 제국과 해역 세계 12-14세기 (2026) (0) | 2026.03.20 |
| 바다의 황제 (2025) - 쿠빌라이 칸은 어떻게 유목 제국을 해양 초강국으로 변모시켰는가 (0) | 2025.04.23 |
| 내몽골 분쟁 위기의 민족지정학 (2024) (0) | 2024.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