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晉州城)은 외적을 막기 위하여 삼국시대부터 조성한 성으로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유서깊은 곳이다. 고려 말 우왕 5년(1379년)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잦은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본래 토성이던 것을 石城으로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직후에는 성의 중앙에 남북으로 內城을 쌓았다.
선조 25년(1592년) 10월 왜군 2만이 침략해 오자 김시민(金時敏)장군이 이끄는 3,800여 명의 군사와 城民이 힘을 합쳐 물리쳤으니 이것이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이듬해 6월에는 왜군 10만여 명이 다시 침략해 옴에 7만 民·官·軍이 이에 맞서 싸우다 모두 순국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영남포정사 : 망미루(望美樓)라고도 불리며,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 창건하여 경상남도 관찰사 감영의 정문이었으며, 경남도청이 옮겨지기전까지 도청의 정문이기도 했다.
촉석루는 진주의 상징이자, 영남제일의 명승이다. 戰時에는 將卒을 지휘하던 지휘소로, 평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고려 고종 28년(1241년) 창건된 이래 수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였으며, 임진왜란때 불탄것을 광해군 10년(1618년), 전보다 웅장한 건물로 중건하여 1948년 국보로 지정된 바 있으나 1950년 6.25동란으로 다시 불탔으며, 지금의 건물은 1960년 시민의 성금으로 중건하였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누대로 촉석루란 이름은 강가운데 돌이 우뚝 솟아 있다하여 붙인 이름이며, 남장대 또는 장원루라 부르기도 했다.
<진주성 수문장 교대식>
조선시대 성의 수문을 지키던 수문장들이 근무를 마치고 다음 근무자와 교대하는 장면을 실제에 입각해 재현하는 것이다. 의식은 대북을 쳐 시간을 알리는 경점의식을 시작으로 공북문 앞 군사 집결, 병마절도사 김시민 장군 행차, 중군영 수문군사 교대의식 등을 거쳐 군사들이 배치를 풀고 의식을 끝내는 예필의식으로 마무리된다.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 :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5호
장단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짜여있고 붙임새의 기교가 복잡하다.
진주교방 굿거리춤 :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 - 고려 문종때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관기제도에 의해 교방청에서 전승되어진 춤이다. 조선왕조의 몰락으로 교방과 관기제도가 폐지되자 기녀조합이 결성되고 양성소인 권번이 생겨나서 맥을 이어오던 춤이다.
진주교방 굿거리 춤은 우리춤의 네가지 요소인 恨, 흥, 멋, 態와 情, 重, 動을 고루 갖추고 3분박 4박자에 맞추어 추는 춤으로서 춤의 성격은 차분하면서도 은은하고, 섬세하면서도 애절한 舞態로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굿거리춤, 입춤, 수건춤 등으로 불리어지기도 하는데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자지러질 정도로 무태를 부리며 간드러진 팔목의 놀림과 겨드랑사위가 뛰어난 춤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교방계열의 상류사회 춤이다. 장단이나 소고를 들고 추는 춤사위에서는 연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추었던 춤의 특징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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