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교육의 이해 (독서>책소개)/3.역사왜곡비판

일본의 전쟁범죄 (2024) -‘위안부’부터 731부대까지, 역사 전쟁의 진실

동방박사님 2024. 11. 30.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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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 전쟁 중인 한국사회에서
다시 한일 과거사를 말하다
‘위안부’에서 731부대까지,
한 권으로 읽는 일본의 전쟁범죄

한국은 지금 역사 전쟁 중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뉴라이트 계열 인사가 연달아 주요 교육·역사 관련 기관 수장이 됐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놓고 논란 끝에 독립기념관이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일본이 수십 차례 사과해 피로감이 많이 쌓였다”(대통령실) 같은 발언까지 쏟아졌다. 

이런 발언들이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니지만, 과거 독재정권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친일 행위가 부끄러운, 그래서 말해서는 안 되는”(한홍구 성공회대 석좌교수) 일이었다는 점이다. 

지금 뉴라이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번영은 일본, 그리고 일본에서 신문물을 배운 친일파 덕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다시 치열한 역사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섰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김재명의 신간 『일본의 전쟁범죄』는“조금 더 빨리 출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오늘 우리 현실에 꼭 필요한 책”(한홍구)이다. 저자는 생생한 사례를 중심으로 ‘위안부’, 역사 교과서, 독도 영유권, 야스쿠니 신사 등 여전히 뜨거운 한일 과거사에 얽힌 여러 주제를 객관적 자료와 취재에 기반해 깊이 파고든다.

팔레스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동티모르 등 분쟁 현장을 심층 취재해 『오늘의 세계 분쟁』『눈물의 땅, 팔레스타인』등의 책을 낸 저자는 오랫동안 전 세계 분쟁지역을 돌아본 경험에 바탕을 둔 보편적 관점에서 일본이 저지른 잔혹행위를 고발한다. 

국제분쟁 전문가답게 저자의 시선은 좁은 민족주의의 시각을 벗어나 동아시아 전반으로 향한다. 

 

일본의 전쟁범죄』는 731부대의 생체실험, 난징 학살 등 “동아시아의 어두운 과거사가 지닌 문제점”을 제대로 살피고 있다. 

지구촌 곳곳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참상과 비극을 취재한 경험에 바탕해 일본의 전쟁범죄를 분석한 저자는 “분쟁지역을 취재하면서 폭력과 죽음이 일상화된 모습들을 보긴 했지만, 막상 일본의 만행 기록들은 훨씬 끔찍했다”(626쪽)고 평가한다.

『일본의 전쟁범죄』는 일본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미국이 전쟁범죄를 선택적으로 처벌한 과정의 부정의를 짚으며 복잡하게 꼬인 과거사 문제의 해법까지 모색하고 있어 일본의 전쟁범죄를 둘러싼 거의 모든 문제를 총망라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일본 극우와 뉴라이트의 논리가 왜 문제인지,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런 주장을 펴는지, 소모적인 역사 전쟁을 끝내고 미래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일본의 전쟁범죄』가 그 답을 제시할 것이다.

목차
추천사·한홍구
들어가며

1부 역사 왜곡과 ‘신친일파’

1장 후쿠자와 유키치, 조선 침략 부추긴 ‘망언의 뿌리’
2장 일본 극우의 성지 야스쿠니 신사
3장 독도는 분쟁지역인가
4장 침략을 ‘진출’로 바꾼 일본 교과서
5장 한국? 일본? 친일파 감싸는 국적 모를 역사 교과서
6장 친일 위서(僞書)로 과거사 왜곡하는 ‘신친일파’

2부 식민지 조선을 생지옥으로 만들다

1장 폭력적 수탈로 짓누른 ‘야만의 시대’
2장 강제 동원의 야만적 ‘인간 사냥’과 노예노동
3장 “나의 불행은 위안소에 발을 들였을 때 시작됐다”

3부 책임을 외면한 전쟁범죄 주범들

1장 천황제 파시즘이 낳은 괴물, 도조 히데키
2장 전범 처벌 비껴간 히로히토 일왕
3장 ‘이시이 기관’의 수괴, 이시이 시로

4부 20세기 최악의 동아시아 전쟁범죄

1장 너무나 잔인하고 엽기적인 난징(南京) 학살
2장 731부대 ‘악마’들의 생체실험과 세균전쟁
3장 세균 정보와 전쟁범죄 처벌을 맞바꾼 ‘더러운 거래’
4장 패전 뒤 반성 없는 731부대 ‘악마의 의사들’
5장 전쟁의 광기가 낳은 규슈 의대 미군 생체해부

5부 또 다른 전쟁범죄, 공습과 원자폭탄

1장 ‘잔인한’ 르메이, 일본과 한반도를 불태웠다
2장 미국의 전쟁범죄를 정당화한 원폭 신화(神話)
3장 일본 항복을 이끈 주요인, 핵폭탄인가 소련 참전인가
4장 핵폭탄 투하가 낳은 평화주의

6부 정의가 없는 전범재판

1장 전범재판은 ‘승자의 재판’인가
2장 미국의 각본대로 움직인 도쿄 전범재판
3장 ‘가해자’로 몰린 조선의 BC급 전범자들

7부 반복되는 망언과 빛바랜 사과

1장 식민통치는 한국에게 이로웠다? 거듭되는 망언의 역사
2장 ‘위안부’ 망언으로 2차 가해하는 ‘신친일파’
3장 사과와 용서, 누가 어떻게 해야 하나

글을 마치며

저자 소개
저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치학박사.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민족 독립과 분단 극복을 위해 애쓴 인물들에 관한 글을 썼다. 

분단에 대한 관심은 국제분쟁으로 이어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시리아, 레바논, 보스니아, 코소보, 시에라리온 등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 보도했다. 팔레스타인만 20차례 가까이 다녀왔다. 미국 뉴욕시립대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에...

출판사 리뷰
역사 교과서에서 전쟁범죄 지운 일본 극우와 한국 신친일파

‘역사 전쟁’의 주요 전장은 역사 교과서다. 역사 교과서에서 일본 전쟁범죄를 축소·왜곡·미화하려는 시도가 한국, 일본에서 모두 있었다.

일본에서는 후소샤의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대표적이다. ‘조선반도는 일본에 흉기가 되기 쉬운 위치에 있다’는 ‘한반도 흉기론’, 일본 전쟁범죄가 ‘전쟁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는 주장 등 극우 세력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교과서다. 

후소샤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적었지만, 전쟁범죄와 식민 지배를 지우려는 이들의 노력은 성과를 거뒀다.

 ‘위안부’ 문제를 비교적 충실히 다룬 교과서를 내던 니혼쇼세키는 극우 세력의 항의에 시달리다 2003년 문을 닫았다. 

그 뒤 대부분의 교과서가 ‘위안부’ 문제를 다루지 않고, 극우 시각을 담은 교과서 채택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본 극우 세력은 이를 두고 “역사 전쟁에서 우리가 이겼다”라고 자축한다.

한국에서는 ‘교학사 파동’이 있었다. 뉴라이트 계열 연구자들이 집필한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일제에 협력했다는 ‘친일공범론’, 식민 지배 덕분에 조선에 철도와 학교가 많이 세워졌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담았다. 

“교학사 교과서가 후소샤 교과서보다 더 노골적으로 일제 식민 통치를 미화하고 친일파를 옹호한다”(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고 비판받았을 정도다. 

일본의 전쟁범죄』가 뉴라이트를 ‘신친일파’라 칭하는 이유다.

신친일파 뒤에 일본이 있다. 『반일 종족주의』 공저자 이우연은 일본 극우파 후지키 슌이치가 지원한 항공표와 체류비로 UN인권이사회에 참석해 “일제 식민지 시기에 강제 동원은 없었다”고 연설했다. 

반일 종족주의』 대표 필자 이영훈, 그의 스승 안병직이 속한 낙성대경제연구소는 도요타재단의 지원을 받은 적이 있다.

저자는 일본 지원을 받아 신친일파가 펴는 주장에 대해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극우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위안’의 논리나 다름없다”(11쪽)고 꼬집는다.

일본의 전쟁범죄』는 야스쿠니 신사, 독도 영유권, 강제 동원 등의 문제에서도 일본 극우와 신친일파의 논리가 왜 틀렸는지 조목조목 반박하며 그들의 주장을 논파한다.

신친일파는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는가

『일본의 전쟁범죄』는 토지조사사업, ‘위안부’ 문제 등을 중심으로 신친일파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방법을 분석한다.

신친일파는 토지조사사업에 대해 일본이 강제로 뺏은 땅은 거의 없고, 토지조사사업 당시 만든 각종 자료가 지금도 요긴하게 쓰인다는 식으로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들은 물리적 폭력만 문제 삼으며 ‘강제와 폭력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식민 지배라는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폭력 속에서 ‘제도와 정책을 통한 수탈’이 벌어졌다.

본인이 소유한 땅 면적 증가가 이를 입증한다. 910년 일본인이 소유한 논 면적은 조선 전체 논의 5.1퍼센트였는데, 1932년에는 16.1퍼센트가 됐다. 제강점기 후반에는 조선 농업인구의 0.2퍼센트밖에 안 되는 일본인이 조선 논의 5분의 1가량을 소유했다.

경제학자 전강수는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가 많이 늘어난 데는 “토지조사사업이 창출한 제도적 환경, 일제의 권력적 강제와 지주 중심적 농업정책, 그리고 일본인 대지주의 토지 겸병 의지가 함께 작용했음이 틀림없다”며 “이를 토지 수탈이라 하지 않으면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할까?”라고 반문한다.

신친일파의 주장과 달리 물리적 폭력도 있었다. 토지 소유권 분쟁 과정에서 일본 경찰이 농민에게 곤장 90대를 때리거나, 일본 헌병이 여성을 군홧발로 차서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위안부’에 대해서도 신친일파는 ‘좁은 의미의 강제’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자들이 여성을 속이거나 유괴해 ‘위안부’로 만들었을 뿐, 일본군이 직접 강제로 여성들을 끌고 가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학자 야스마루 요시오의 입을 빌어‘좁은 의미의 강제’가 핵심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야스마루는 일본 극우 세력이 ‘좁은 의미의 강제’를 들먹이며 과거사를 지우려 하는 교활한 행태에 매우 비판적이다. 

그는 “속아서든 강제로든 그 지옥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위안부’ 여성들이 끝내 체념하고 상황에 적응해간 것도 강제나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감언, 인신매매, 유괴와 현지에서의 일상적 관리 등은 ‘강제’가 아니냐”라고 되묻는다.(182쪽)

또, 진중일지(일본군 공식 기록물)를 연구한 역사학자 하종문을 인용해 일본군의 작전, 이동과 위안소의 설치, 운영이 깊숙이 결부돼 있었다고 지적한다.

진중일지에서 ‘위안부’ 개인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진중일지를 꼼꼼히 살펴보면 군부대의 이동, 주둔, 작전, 훈련 등 통상적인 움직임과 위안소의 설치·이용이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일본군 행동의 ‘일부’였음이 분명히 드러난다.(178쪽)

신친일파들은 이처럼 “헐값이라도 대가를 지불했으니 수탈은 아니다”

, “‘좁은 의미의 강제’는 없었다”며 수탈, 강제의 의미를 좁게 해석해 일본이 벌인 전쟁범죄를 축소하려 든다.

 식민 지배라는 구조적 폭력에는 눈 감고, 분명히 존재했던 폭력과 일본군 개입조차 없었다고 주장하며 역사를 왜곡한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전쟁범죄 - 난징 학살과 731부대의 생체실험

국제분쟁 전문기자인 저자의 시선은 한일 양국을 넘어 동아시아 전반에서 벌어진 전쟁범죄로 향한다.

1937년~1938년 일본군이 벌인 난징 학살은 일본의 수많은 전쟁범죄 중에서도 유난히 잔혹했다.

일본군은 포로로 잡은 중국군(당시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군)을 양쯔강 변에 일렬로 세워놓고 기관총으로 집단 학살했다. 

일본군 장교들은 군도로 누가 빨리 더 많은 포로의 목을 베느냐며 ‘100인 목 베기’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길 가던 민간인들도 붙잡혀 생매장당했다. 

한마디로 온갖 잔혹한 전쟁범죄들이 한꺼번에 난징에서 저질러졌다.(266~267쪽)

성폭행도 심각했는데, 피해자가 최소 2만 명에서 최대 8만 명으로 추정된다. 

난징 학살을 대중에게 알린 작가 아이리스 장은 “난징의 강간은 역사상 가장 엄청난 집단 강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썼다.

731부대가 벌인 생체실험도 유례를 찾기 힘든 잔인한 전쟁범죄다. 일본군은 세균무기가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 방안이라고 여겨, 세균무기 개발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생체실험 도구로 사용했다. 

최소 3,000명에서 최대 1만 명으로 추정되는 ‘마루타’들이 반복되는 생체실험 끝에 죽어갔다.

일단 731부대 건물로 잡혀 들어간 사람들은 ‘마루타(통나무)’ 취급을 받고 고통 속에 여러 생체실험을 거치며 죽어서야 그곳을 벗어났다. … 한 생체실험에서 살아남으면, 

그다음 실험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게 이어진 여러 가학적인 과정을 겪으면서 끝내는 숨을 거두었다. 

그래도 살아남았다면 독가스 실험으로 죽고 소각로로 실려 갔다.

‘마루타’로 있다가 살아서 나간 이는 없다. 731부대로 붙잡혀 들어가 ‘인간 모르모트’가 된 사람들은 죽음의 공정 속에서 짧든 길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죽었다.(279~280쪽)

‘마루타’는 대부분 반일 성향의 비일본인이었지만, 예외도 있다. 

731부대는 같이 일하던 일본인 요원이 생체실험 과정에서 페스트균에 감염되자 “이는 모두 천황 폐하에게 충성을 하기 위해서다!”라며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저자는 “세균 연구에 미쳐 있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295쪽)이라고 지적한다.

처벌받지 않은 범죄와 뒤틀린 피해의식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전쟁범죄는 그 자체로도 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했지만, 미국이 전쟁범죄를 다룬 방식에도 정의가 없었다.

미국은 일본을 냉전의 파트너로 삼기 위해 전쟁범죄 처벌을 최소화했다. 

총책임자인 히로히토 일왕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세균 정보를 받는 대가로 731부대원들도 처벌하지 않았다.

 육군대신,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도조 히데키 등 일부 고위급 인사들이 처벌받았지만, 일본이 저지른 범죄에 비하면 가벼운 처벌이었다. 

오히려 포로수용소 감시원 등으로 원치 않게 전쟁에 동원된 조선인 전범자의 사형자 수(23명)가 일본인 전범의 사형자 수(7명)보다 많았다.

히로히토 등 주요 전범들이 처벌받지 않은 결과 일본인들은 일본의 전쟁범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자신들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느끼지 못하게 됐다.

무엇보다 히로히토가 ‘천황’ 자리에 그냥 머무는 것을 본 일본인들은 전쟁범죄에 대한 공범 의식을 덜 느끼게 됐다. 

‘국왕이 전쟁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우리도 책임이 없다’는 분위기가 퍼져갔다. 

1948년 12월 주요 범죄자들이 불기소로 풀려남으로써 ‘전범 처벌은 이제 모두 마무리됐다’고 여기게 됐다.

… 미국이 전쟁 주범 히로히토를 비롯해 일본의 전쟁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여러 안건들이 ‘과거사’라는 이름의 미결 상태로 남게 됐다.(240쪽)

처벌은커녕 전쟁범죄 이력을 수단 삼아 승승장구한 이들도 있었다. 

731부대 고급 장교들은 고액의 군인연금을 받는가 하면 생체실험을 통해 쌓은 지식과 수술 기술을 살려 의과대학 교수나 거대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전범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면서 죄의식 대신 일본인도 전쟁 피해자라는 인식이 퍼졌다. 

특히 피해자가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도쿄 대공습과 두 차례의 원자폭탄 투하가 피해의식을 부추겼다.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 피해자가 2천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망각하고 자신들의 고난만 앞세우는 뒤틀린 피해의식 속에서 사과와 반성은 설 자리가 없었다. 

오히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범죄를 반성하는 이들이 ‘자학 사관에 붙잡혔다’고 손가락질받고 있다.

역사 전쟁을 끝내는 방법

일본 사회의 이런 인식에 힘입어 극우 세력과 정치인들은 ‘한일 병합이 합법적이었다’, 

‘일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했다’, ‘식민통치는 한국인에게도 유익했다’ 같은 망언으로 전쟁범죄를 합리화해왔다.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에 관여했음을 인정한 ‘고노 담화’, 식민 지배와 전쟁 책임을 정부 차원에서 인정한 ‘무라야마 담화’ 등 횟수만 따지면 일본은 수십 차례 사과했지만, 진심 어린 사과라 보기 힘들다. 

의례적으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해놓고 금세 망언을 내뱉기 일쑤다.

결국 초점은 일본의 사과 행태에 모아진다. 지난날 저지른 전쟁범죄를 두고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떼거나, 사과를 하더라도 ‘립서비스’ 수준으로 사과의 진정성이 없거나, 사과 뒤 곧바로 망언을 하는 일들이 쳇바퀴처럼 되풀이되어 왔다는 점이다. 

총리가 사과를 하면 각료가 뒤집는 망언을 하고, 그런 사실을 선거에서 훈장처럼 내거는 일들이 ‘일본식 사과’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606쪽)

그런데도 ‘이제 지난 일이니 다 잊고 용서하자’는 이들을 향해 『일본의 전쟁범죄』는 ‘피해자만이 용서할 수 있는 주체’라고 강조하며,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말을 끌어온다.

용서하지 않을 권리도, 용서할 권리도, 범죄자와의 관계에서 오직 피해자가 갖는 권리이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범죄자 가족들도, 후손들도, 친구들도, 더군다나 정치가들이 용서를 구할 수는 없다.(621쪽)

역사 전쟁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 등의 조치가 있을 때만 그 일이 가능하고, 그래야 화해도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한일 두 나라의 화해, 좀 더 범위를 넓혀 동아시아의 화해를 위해선 ‘용서’라는 길목을 지나야 한다. 

용서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진상규명, 그에 합당한 배상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뤄질 것이다. 

피해자(또는 그 유가족)가 아닌 제3자가 이래라저래라 용서와 화해를 말할 수 없다.(623쪽)

『일본의 전쟁범죄』는 일본 식민 지배와 전쟁범죄에 대한 고발을 넘어 지금의 역사 전쟁을 끝내고, 미래 동아시아의 화해와 연대를 이끌 방법을 모색한다. 『

일본의 전쟁범죄』를 읽는 일은 여전히 뜨겁기만 한 한일 과거사의 주요 논쟁을 차분히 짚는 일이자 “지금도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과거사 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돌아보고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평화의 내일을 생각해보는 계기”(626쪽)가 될 것이다.

『일본의 전쟁범죄』가 던지는 메시지는 자신들이 당한 피해만 곱씹으며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를 외면하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우리, 여전히 전쟁범죄가 벌어지는 수많은 분쟁지역의 시민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나만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평화로 한발 다가가는 고통의 연대의 출발점”(한홍구)이기 때문이다.

추천평
내가 김재명 기자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1980년대, 광주의 충격 속에 젊은 사학도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현대사 공부를 막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때 그는 『정경문화』 기자로 활동하면서 이승만의 정적 최능진에 이어, 김성숙, 김창숙, 장건상, 정화암, 유림, 조완구 등을 소개하는 글을 연달아 게재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현대사 연구가 황무지 상태여서, 현대사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이 최능진이 누군지, 김산의 『아리랑』에 나오는 금강산의 붉은 승려 김충창이 혁신계 김성숙이었는지도 모를 때였다. 

정경문화』에 실린 중간파 인사들에 대한 김재명 기자의 글을 밑줄 쳐가며 읽고 또 읽던 기억이 지금도 삼삼하다. 그 기사들은 곧 『한국현대사의 비극: 중간파의 이상과 좌절』이란 책으로 모아졌다.

그 후 김재명 기자는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팔레스타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동티모르, 캄보디아, 보스니아와 코소보,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남북아메리카 지역의 볼리비아, 쿠바 관타나모, 그리고 미국 등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으로 뛰어들었다.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파헤치던 그가 지구촌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 고통과 비극을 전하는 분쟁지역 취재기자가 된 것이다. 

그동안 『오늘의 세계 분쟁』, 『석유, 욕망의 샘』,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시리아전쟁』 등 여러 권의 분쟁지역 관련 저서를 낸 김재명 기자가 이제 신간 『일본의 전쟁범죄』를 갖고 동북아와 한반도로 돌아왔다.

『일본의 전쟁범죄』는 조금 더 빨리 출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오늘 우리 현실에 꼭 필요한 책이다. 2004년 처음 등장하여 한때 반짝했다 사라졌던 뉴라이트들이 친일 정권의 광기 어린 인사로 교육과 역사와 관련된 주요 국가기관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친일 행위가 부끄러운, 그래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면, 민주화 이후 뉴라이트들은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번영은 일본과 일본으로부터 신문물을 열심히 배운 친일파 덕이라며,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넘어 훈장을 주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의 전쟁범죄』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수행 과정에서 어떤 범죄가 저질러졌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와 전쟁범죄라는 주제에 관한 서술은 한국인들에게는 아무래도 민족주의적 편향이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재명의 신간이 갖는 강점은 일본의 전쟁범죄를 좁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전 세계 분쟁지역을 돌아본 경험에 바탕을 둔 보편적인 관점에서 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재명은 “아프리카나 중동, 발칸반도 같은 분쟁지역을 취재하면서 폭력과 죽음이 일상화된 모습들을 보긴 했지만, 막상 일본의 만행 기록들은 훨씬 끔찍했다”라고 술회했다.

나아가 이 책은 전범국가인 일본을 타협적이고 선택적인 방식으로 응징한 ‘미국의 잘못된 전쟁 행위’에 대해서도 철저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김재명은 가해국 일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과거의 식민 지배와 전쟁범죄에 대해 반성도 사죄도 않고 있는 점에 극히 비판적이지만, 도쿄 대공습이나 두 차례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 민중들이 입은 피해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미국이 도쿄 전범재판 등에서 단죄한 똑같은 전쟁범죄가 미국에 의해 일본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베트남, 나아가 미국이 개입한 수많은 분쟁지역에서 저질러졌음을 독자들도 기억해줄 것을 요구한다.

 나만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평화로 한발 다가가는 고통의 연대의 출발점이다.

이 책에 서술된 내용과 구체적인 사례들은 읽어나가기 힘들 만큼 참혹하고 어둡고 무겁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김재명 기자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깊이 살펴보게 된 것은 “동아시아의 어두운 과거사가 지닌 문제점들을 제대로 아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는 수십 년째 준전시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한국전쟁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의 출구에 다가서게 되는 줄 알았는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뒤 제2의 한국전쟁의 입구에 서 있게 되었다.

김재명 기자는 세계의 분쟁지역을 다닐 때 “아득한 절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약자, 못 가진 자들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쪽”에 확고히 서 있었다. 

역사 교과서에 대한 공격으로 대표되는 뉴라이트들의 준동은 결국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떤 세계관을 갖게 만드느냐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다.

 한국사회는 지금 ‘중일마(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로 살 것인가, 아니면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로 살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쟁투를 벌이고 있다. 

이 어두운 시대에 김재명의 『일본의 전쟁범죄』는 양심을 가진 인간이라면 왜 ‘중일마’의 자세로 살아서는 안 되는가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 한홍구 (성공회대 석좌교수, 한국현대사)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9705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