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인문교양 (독서요약)/1.인문교양

먼저 온 미래 (2025)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동방박사님 2025. 7. 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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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이세돌-알파고 대국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과 경험, 가치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 “이 책은 하나의 패배가 단지 결과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_정재승(KAIST 뇌인지과학과·융합인재학부 교수) 추천
★★★ 조훈현, 유창혁, 박정상, 김지석, 신진서… 바둑계 전설들에게 직접 듣는 AI 이후의 세계

소설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과학기술이 삶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탐구해 온 저널리스트-작가 장강명이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만나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를 돌아보고, 인공지능이 문학계를 비롯한 여러 업계에 가져올 변화를 전망한 르포르타주다. 

장강명은 터미네이터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이 전문가의 권위와 자부심을 부수고, 일과 경험을 변질시키고, 우리가 추구하던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알파고 이후 프로기사들은 평생 알고 있던 이론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인공지능에게 다시 바둑을 배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에게 바둑은 예술이자 철학이었고, 프로기사로서의 삶은 바둑의 최고 권위자라는 자부심을 의미했다. 

알파고와의 대국 3년 후 이세돌 9단은 바둑계 은퇴를 선언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어린 시절, 바둑은 예술과 같은 것으로 배웠다. (…) 내가 배웠던 예술 그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바둑을 공부하는 방법, 바둑을 관전하는 문화, 바둑을 통해 추구하던 가치가 모두 달라졌다.

 장강명은 다른 업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리라 전망한다. 

압도적인 실력의 인공지능이 헐값에 보급되는 것.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당하며,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에 따라야 하는 것. 

예컨대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매일 위대한 장편을 288편씩 내놓을 때 소설가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책은 바둑계의 경험을 거울삼아 우리 모두가 마주할 근미래의 풍경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터미네이터를 막고 일자리는 지키더라도 어떤 인간적 가치들은 그 과정에서 틀림없이 부서질 것이다. (…) 

그리고 우리는 그런 파괴가 일어난 뒤에야 그 가치들의 정체를 뒤늦게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 _26쪽

목차
1. 먼저 온 미래
2. 오만과 편견, 그리고 창의성
3. 가장 중요한 문제
4. 평평함과 공평함
5. 언어라는 도구 너머에서
6. 불변의 법칙과 변질되는 개념들
7. 새로운 일자리, 혹은 ‘죽음의 집’
8.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9. 가치가 이끄는 기술
10. 인공지능이 아직 하지 못하는 일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 : 장강명 
연세대 공대 졸업 뒤 건설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동아일보에 입사해 11년 동안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 기자로 일했다. 

기자로 일하면서 이달의기자상, 관훈언론상, 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 대상 등을 받았다.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장편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 장편소설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



책 속으로
2016년 3월 10일 아침에 신문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의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AI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진 다음 날이었다.
--- p.11

나는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들이 어떤 충격을 받았고 어떤 혼란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어떻게 적응했고 그 적응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보급되면 소설가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봤다.
--- p.25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게 창의성이든 문학성이든 뭐든 간에, 그걸 인간만 가질 수 있다고 말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알파고가 주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 p.47

신진서 9단에게는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같은 선배 기사들과의 큰 차이점이 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을 스승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 p.69

작가든, 편집자든, 출판사든 문학계의 발 빠른 플레이어들이 그 인공지능을 이용하고 그만큼 다른 경쟁자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오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인공지능이 문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같은 한가한 고민을 할 여유는 사라진다.
--- p.79

한 업계의 종사자와 지망생은 인공지능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인공지능을 거부한다고 의견을 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그로 인해 수혜를 입는 그룹이 생긴다. 

그 그룹 구성원은 인공지능이 가져온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람직한 일로 볼 것이다.
--- p.102~103

즉,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인공지능처럼 쓸모 있고 강력한 기술은 마치 야수와 같다. 

일단 거리에 뛰쳐나오면 붙잡아 우리에 가두는 것이 매우 어렵다. (…) 사실상 그 야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아직 거리에 나오기 전뿐이라고 봐야 한다.
--- p.107

인공지능은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그 무언가는 사실상 우리가 살아야 하는 환경 그 자체일 것이다.
--- p.113

‘AI 활용 음원 생산 시스템’은 인간의 감성과 완성도를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그 시스템 안에 인간이 있으니까. 인공지능에게 모자란 부분은 인간이 보충하면 되니까.
--- p.138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이며, 사용 여부는 각자 선택하면 되고, 사용하건 사용하지 않건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켜나가면 된다’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본다. 

그들의 순진한 전망은 틀렸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 p.187

‘새로운 일자리는 계속 생길 것’이라고 말할 때, 일자리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회적 가치와 자긍심의 원천인가, 아니면 내가 계좌로 상당한 돈을 꾸준히 입금받는 어떤 이유를 말하는가?
--- p.202

탁월함을 첫 번째 목표로 추구하지 않을 때 예술은 무엇이 될까? 

권위 있는 클래식 음반사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보다 사연 많은 멤버들이 모인 직장인 아마추어 관현악단의 연주가 더 감동적이라며 추켜세운다면 클래식 음악은 무엇이 될까?
--- p.251

바둑계 종사자들은 구글이 알파고를 은퇴시키고 다음 과제로 단백질 구조 예측을 택한 이유를 단순하게 본다.

 바둑은 돈이 안 되니까.
--- p.279

커즈와일, 머스크, 혹은 구글이나 애플은 우리가 더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게 되면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저 ‘기술 사상가’들이 내놓는 기술적 해법은,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 외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말과 비슷하다.
--- p.298~299

근미래 기술이 우리 삶과 사회의 소중한 가치들을 훼손하는 것은 내게 당대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공기처럼 소중하지만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그 가치들의 존재감을 SF의 방법론을 활용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p.327

즉, 제약업계와 건설업계에서는 기업들의 이익에 반해 어느 정도 공적 관리 체제가 마련되어 있고, 많은 사람이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이게 ‘정상’ 아닐까? 청소년 수백만 명이 매일 몇 시간씩 사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서도 이런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 p.333

가치의 근원에 대한 문제, 기술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근사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현대의 사상가를 기다린다.
--- p.338~339

출판사 리뷰
“인공지능이 창의적인 바둑을 둘 수 있다면
언젠가는 기계가 수학의 난제도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창의적인 예술작품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일까?”

창의성, 문학성, 인간성의 의미를 다시 묻다
AI 시대에 ‘인간의 문학’은 무엇이 될 것인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결과뿐 아니라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바둑계에서는 ‘알파고는 컴퓨터니까 계산력이 중요한 후반에 강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창의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초반 포석에서 오히려 더 강한 면모를 보였다. 

지금은 많은 프로기사가 알파고의 바둑이 창의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창의성은 인간의 전유물 아닌가? 

인공지능에게 창의성이 있다면, 창의적인 문학작품도 매일 수천 편씩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장강명은 문학은 바둑과 다르다고 전제하면서도 실제로 불가능한 것은 매우 적다고 말한다.

 그것이 알파고가 남긴 교훈이라는 것이다.

알파고 이후에도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인간의 바둑을 두겠다’라고 말한 프로기사들이 있다. 

막상 이들에게 인간의 바둑이 정확히 무엇인지 질문하면 착각과 실수,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과 제스처, 승부를 둘러싼 스토리 등 탁월함과는 무관한 요소들이 답변으로 돌아온다.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매일 수백 편의 걸작을 쏟아낼 때, ‘인간의 문학’도 그와 비슷한 의미가 될지 모른다. 

문장력은 부족해도 독특한 ‘인생 스토리’가 있는 작가가 더 주목받을 것이다.

 문장력은 인공지능이 보완할 수 있으니까.

 장강명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여러 업계에서 추구하던 가치가 변질되리라 전망한다.

어떤 업계에 인공지능이 보급되기 시작하면 이를 멈추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수혜를 입는 그룹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기사 중에서도 인공지능 도입을 반기는 이들이 있다

. 이들은 바둑에 늦게 입문해서, 초반 감각이 부족해서, 정상급 기사들과 정보 격차가 있어서 생기는 실력 차이를 좁힐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누군가는 어느 날 자신의 장기를 잃어버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장강명은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 확장한다.

 AI 기술을 보유한 빅테크 기업이 어떤 업계의 판도와 그 업계에 속한 이들의 삶을 좌우해도 되는가?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가?

“AI 시대에 예술가들은 자신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잘 만드는 기술과 그 자신을 교묘하게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스포츠카를 사서 인증하거나, 다른 유명 인사를 저격하는 요령도 함께.” _268쪽

“나는 가치가 기술을 이끌기를 바란다.
가치 있는 기술은 그런 맥락에서만 나온다.
지금 우리는 정반대의 현상을 겪고 있다.”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는 거짓말
과학기술에 대한 가치의 통제가 가능하려면…

일부 전문가는 ‘인공지능은 그저 도구일 뿐, 사용 여부는 각자 선택하면 된다’라고 주장한다. 

장강명은 그들의 순진한 전망은 틀렸다고 단언한다. 

어떤 기술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스마트폰 사용은 더 이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택시 기사가 내비게이션의 추천 경로를 따르는 것도, 대중음악 뮤지션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음원을 유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무언가를 경험하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바꿔놓았다.

 인공지능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그 자체가 될지 모른다.

한편 ‘AI 시대에도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생길 것’이라는 낙관론에서 말하는 일자리는 사회적 가치와 자부심의 원천일까, 아니면 급여를 받는 이유에 불과할까?

 책은 그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알파고 이후에도 프로기사들의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권위와 자부심은 추락했다. 

실력이 급상승한 프로기사는 ‘AI 치팅’을 의심받는다.

 바둑 팬들이 해설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의 견해가 아니라, ‘AI 추천수’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역할이다.

 진보라는 대의 앞에서 전문가의 자부심은 사소한 가치일까? 인공지능의 보조 인력으로 전락하더라도 급여만 주어지면 괜찮을까?

장강명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제약회사가 거쳐야 하는 임상시험을 예로 들며,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적·제도적 통제를 주장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나 우리의 삶과 사회에 끼칠 파급력에 비해 이를 견제할 장치는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국제원자력기구를 통한 핵무기·원자력 통제, 국가 간 조약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처럼 국경을 뛰어넘는 대응도 주문한다.

 장강명은 더 나아가 빅테크 기업들이 말하는, 과격하고 납작한 의미의 ‘좋은 삶’을 넘어, 더 나은 미래를 믿고 상상하는 인문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런 상상이야말로 인공지능이 아직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치의 근원에 대한 문제, 기술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근사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현대의 사상가를 기다린다. 

똑똑한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로 몰려가지 말고 이 문제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_338~339쪽

추천평
우리는 늘 미래가 멀리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가끔 어떤 직업, 어떤 공동체, 어떤 게임은 그 미래를 조금 더 빨리 맞는다. 바둑이 그랬다. 

『먼저 온 미래』는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가장 먼저 들이닥친 풍경을 조용히 기록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바둑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자부심이 무너질 때의 울림, 자신의 세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독자인 우리도 이미 앉아 있다.

장강명은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졌던 바로 그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이후의 날들(혼란, 분노, 부정, 수용)을 따라간다. 

기술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인간의 직관을 무력화할 때, 우리는 ‘인간적인 것’의 정의를 다시 묻게 된다.

 장강명은 ‘패배’를 감상적으로 미화하지도 않고, 기술을 무서워하는 반동으로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대신 무력함 속에서조차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인다. 

이 책은 하나의 패배가 단지 결과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아마도 이 질문이 등장할 때일 것이다. 

‘위대한 작품이 하루에 288편씩 나온다면, 그건 여전히 위대한가?’ 바둑판 위에서, 혹은 문학의 세계에서, 그 질문은 똑같이 울린다. 

장강명은 알파고와 함께 무너진 것이 단지 실력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폐허 위에 남겨진 아름다움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인간적으로 바라본다. 

기술이 능가할 수 없는 유일한 감각이 있다면, 아마 그것일 것이다.
- 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융합인재학부 교수)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8032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