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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행使行의 역할·구성·절차에서 문화적 영향까지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를 넓고 깊게 보다
당대 조·명관계 연구 성과를 집약
근래 한중관계는 국내외 정세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전근대 조선과 중국과의 관계 역시 시기별로 큰 변화를 겪지만 조선과 명의 관계는 오늘날 한미관계와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은 당대의 최강국 명을 상대로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문화적 실리를 추구할 전략이 필요했다.
더구나 변방을 수시로 위협했던 여진과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 새로운 왕조의 기틀을 확고하게 다지는 데에도 명과의 관계 안정이 필요했다.
한중 관계사의 중요성이 높아진 시점에, 우리 시대의 전문가들이 합심해 양국 관계가 가장 원만했다고 알려진 시기의 조·명 관계를 종합적으로 살폈다는 점에서 학술사적 의미가 남다른 저작이다.
목차
책머리에
01 명사의 조선 사행
명의 조선 사행 인원: ‘제국의 중개인’_조영헌
《사조선록》에 나타난 명 사신의 조선 인상_이성형
02 상호 인식과 이해
조선 전기 명 사신과의 만남과 조선시의 발견: ‘배우는 시[學詩]’에서 ‘조선의 시[東詩]’로_노경희
16세기 대명 사행 속 명 문인 교류와 중국 인식: 16세기 사행록을 중심으로_김지현
03 사행 의례와 물적 교류
조선 사신의 명 사행과 의례 절차의 재구성_정은주
조선 전기 대명 무역의 유형, 절차, 공간_구도영
04 조선과 명의 주변 지역
조선은 왜 여진인을 대접했을까_박정민
조선 시대의 대일 사행_김경태
1575년 명-여송 교섭과 ‘공순’의 의미: 모범 사례로서의 조명관계에 대한 검토_남민구
저자 소개
저 : 정은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朝鮮時代 明淸 使行 關聯 繪畵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시대 대외관계 기록화 및 회화식 고지도를 연구하며, 한국고지도연구학회 학술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에도시대 나가사키 당관(唐館)을 통해 유입된 중국화풍의 영향 , 중국 역대 직공도의 한인도상(韓人圖像)과...
저 : 정동훈
1981년 대전 출생.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해지며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주는지에 관심을 두고, 한국과 중국 왕조의 역사 인식, 상호 인식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고려시대 외교문서 연구』(2022, 혜안), 『황제의 말과 글: 조선을 대하는 명나라 황제의 두 얼굴』(2023, ...
저 : 이성형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기도에서 고등학교 한문교사로 19년 동안 근무했고, 조선시대 외교문학에 대한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특히 조선 사신들이 방문했던 장소에 관심이 많아 중국 각지를 답사하며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의 효율적인 연계방법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책 속으로
조선에서 명으로 파견한 부경사신赴京使臣의 정·부사나 명 사신을 접대 하는 조선 측 관원들은 모두 최고위 관원인 당상관이 겸직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겸직을 통해 정·부사의 품급을 높이는 관행도 이어졌다.…
반면 명에서 조선을 비롯하여 조공국인 류큐나 베트남에 파견하는 사신들의 품급은 그리 높지 않았다.
명대 환관에게는 직무의 분류만 있었지 품급은 부여되지 않았다.
--- p.21
중종이 답하길, “우리나라의 일인 경우에는 태감이 사신으로 오지만, 중국의 일인 경우에는 문관이 온다”고 했다.…‘조선의 일’이란 대부분 조선 공녀나 화자火者(환관)를 데려가는 일을 지칭했다…‘
중국의 일’이란 명 황제의 즉위 조서를 반포하거나 조선 국왕의 즉위를 승인하는 칙서를 전달하는 일로, 앞선 업무에 비하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선에 파견하는 환관 사신의 대부분을 명이 아니라 조선(혹은 고려)에서 차출한 인력 가운데서 선임했다는 사실이다.
--- p.23
청의 조선 사행 인선을 보면 명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큰 특징은
① 기인旗人(팔기의 구성원) 출신(=한인 배제), ② 3품 이상의 고급 관료로 구성된 것이다.
--- p.38
명의 문신 사신은 24차에 걸쳐 39명이 조선에 파견되었다.…
조선에서는 이들과 주고받은 시문을 모아 《황화집皇華集》이라는 기념 문집을 간행했다.…
《황화집》은 조선에서 국가 주도로 간행된 공식 기념 문집이었다.
--- p.46
〈중조증언〉과 〈요양증언〉에 수록된 명 지식인들의 조선 인상은 대체로 ‘시서지역詩書之域’이나 기자의 가르침을 계승한 ‘예의지방禮義之邦’이다.
--- p.60
‘관각문학’은 문장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기관인 관각에서 공용 목적으로 창작된 문장을 뜻한다.
조선에서 ‘관각’은 홍문관·예문관·춘추관·독서당·승문원·성균관·경연청·규장각·교서관 등을 말한다.
조선 전기에는 특히 집현전에서 양성되고 홍문관과 예문관에서 활동한 관료들을 관각 문인이라 불렀다.
--- p.81
1450년 최초로 문관 출신 명 사신 예겸이 파견되면서 조선과 명의 외교는 ‘창화倡和 외교’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당시 조선의 접반사는 정인지였으며 성삼문·신숙주 등 집현전 문인들과 함께 밤낮없이 중국 사신과 시를 주고받았다.
이때부터 명의 문관 사신이 조선을 방문하면 조선 문인들과 수창하는 것이 외교의 한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 p.85
조선의 시단은 선조 연간 목릉성세를 거치면서…16세기까지 유행했던 송시, 특히 전고를 외우고 자구를 단련하는 학습을 통해 배우는 강서시풍 한시의 영향에서 벗어나, 이달·최경창·백광훈 등 ‘삼당시인三唐詩人’의 등장…이들은 시인의 내면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정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시를 추구했으며, 이는 이전 시기 《황화집》에 실린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미감을 보여 준다.
--- p.102
1609년 동지사의 정사 정경세는 북경의 홍려시 연의 때 명의 승려가 조선 사신보다 앞에 선 것을 두고 서반에게 반차班次를 바꿔줄 것을 요구했으나 예부의 관할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이에 정경세는 명의 동반東班 정9품의 동쪽에 나가 서고, 서장관은 종9품의 반열에 섰으며, 역관들은 명의 승려와 같은 반열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 p.163
국가와 왕실에서 수입할 물건의 종류와 수량 등을 각사各司에서 책정하여 의정부와 호조에 올린다.
호조는 각사에서 올린 공문서를 검토한 뒤 수입품목과 수량, 결제대금 등을 정한다.
의정부에서 공사公事를 초안하고 정승 등이 이를 검토하면, 서사관書寫官이 무역 관련 단자單子를 정서해서 승정원에 보낸다.
국왕이 공무역 단자를 확인하여 문제가 없으면 전교를 내리며, 이로써 공무역 목록이 확정된다.
--- p.193
공무역은…국가의 소용 물품을 조달하는 것이므로…공무원인 통사가 무역상 역할을 담당했다.…
만약 책정된 물품을 구입해 오지 못하면 그 책임으로 물품을 납부할 때까지 옥에 수감되었다.
옥에 갇혀 있어도 물품을 납부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공무역에 대한 통사의 책임은 작지 않았다.
태종 대 공무역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통사가 벌을 받았고, 연산군 대 공무역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통사가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 p.194
여진인은 북평관에 머물면서…각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여진 사행단끼리 싸우는 것은 물론 임금에게 받은 관교와 하사품을 던지는 등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1513년(중종 8)에 내조한 유오을미劉吾乙未는 배사할 때, 관교·삽대 및 하사한 물건을 내던지고 받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바란 것은 당상직인데, 이제 이러하니 무슨 면목으로 나의 휘하를 만나겠습니까?
차라리 목을 매어 죽을지언정 맹세코 본토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분란을 일으킨 것이다.…
예종 때에는 여진인이 술과 반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예조정랑 신숙정의 갓을 벗기고 주먹과 발로 때리는 사건이 있었다.
--- p.249
류큐의 사절이 사료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 말기인 1398년이다. 조선이 건국된 후, 임진왜란 이전까지 류큐에서 조선에 온 사절은 48회며, 조선에서 류큐에 보낸 사절은 두 차례에 불과하다.
첫 번째는 1416년 왜구에 잡혔다가 류큐로 팔려 간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이예를 파견한 일이고, 두 번째는 1429년 표류한 류큐인을 송환할 때 일본의 배에 통사 김원진을 동행시킨 일이다.
--- p.273
출판사 리뷰
힘의 우열에 따른 ‘의례’ 행위를 넘어선 의미 부여
사행은 근대적인 국제 관계가 형성되기 이전의 대표적인 외교 행위였다.
명은 주변국에 조공 이외의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조선 사행은 외교 문서와 함께 예물을 전달하고 답례품을 받아 돌아왔다.
물론 명 사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조선 국왕을 인정하거나 명 황실의 변화를 알리는 외교 문서의 전달이었다. 그
러나 양국 사행은 힘의 우열에 따른 표면적 의례 행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일방적 희생으로 지탱되지는 않았다.
사행 과정을 통해 조선과 명은 사실상 초기의 일시적인 마찰을 극복하고 임진왜란 당시의 원병에서 보듯 ‘순망치한脣亡齒寒’처럼 장기간 상호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더불어 조선 사행은 명의 정세에 관한 정보 파악에 열중하였으며 교역을 통한 이익 확보에도 관심을 가졌다. 양국 사신이 오가며 지적 교류를 넓혀 나간 것은 문화적 자산이 되었다.
미술사·해양사 등 다양한 연구자들의 입체적 조명
이 저서는 조명 관계를 사행에 초점을 맞추어 그 구체적인 면모를 다양한 소재를 통해 분석한 최초의 성과물이다.
여기에는 고려시대사, 조선시대사, 명·청사, 미술사, 한문학,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13명의 연구자가 참여하였다.
이들은 4년에 걸쳐 매달 워크숍을 열고, 개별 논문 완성 후에도 수차례 토론과 수정을 거치며 완성도를 높였다.
사행에 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 양국 간 사행 자체는 물론 여기에서 평안도의 호송군 부담, 조명 외교의 중개자 요동아문 등 파생된 양상들까지 다양한 소재로 분석을 시도하였다.
1권에서는 조선에서 명으로 향한 사행의 시기별 변화, 사행의 운영 양상과 노정, 접경 지역인 평안도와 요동의 사행 지원에 대해 다루었다.
2권에서는 명의 조선 사행, 상호 인식과 이해, 사행 의례와 무역, 주변 지역인 여진, 일본, 여송(오늘날 필리핀의 루손 섬)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뿐만 아니라 명 사신과 조선 접반사 등이 시를 주고받는 ‘창화倡和외교’가 조선 문단에 미친 영향 등 문화적 의미도 짚어냈다.
새로운 시각과 흥미로운 사실들
조·명 관계에 관한, 당대의 연구 성과를 망라한 덕분에 책은 학술사적 의미에 더해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을 담고 있어 읽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임진왜란 당시 명에서 원병을 보낸 이유가, 조선이 단순히 ‘모범 조공국’이어서가 아니라 수도 베이징에 대한 실질적 위협 때문이라는 분석(북경천도를 통해 재편된 조명관계와 ‘순망치한’-조영헌)이 대표적 예다. 명이 위협을 느낀 이유가 베이징을 향한 식량 운반로가 일본의 공격에 취약했기 때문이었다는 실증에는 무릎을 치게 된다.
1593년 명과 일본 사이에 강화교섭이 시작되면서 히데요시가 조선의 왕자를 인질로 요구했다든가, 그를 국왕에 임명하는 명의 책봉사를 보내면서 조선 ‘사절’을 딸려보내기로 했다는 등의 낯선 사실도 보여준다.
조선은 회유를 위해 여진인의 내조來朝를 허용했는데 처우에 불만을 품은 여진인들이 술과 반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예조정랑 신숙정을 때리거나 임금이 준 관교와 하사품을 내던지는 만행을 부리기도 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책을 기획한 권내현 교수는 필자들을 대표하여 “여전히 부족하거나 빠진 내용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겸양을 보이면서도 “사행과 그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조명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지침서로서도 충분할 역할을 하리라”고 자부한다.
말 그대로, 학술사적 의미와 더불어 교과서에서 만나기 힘든 흥미로운 사실들이 담긴 이 책은 교양서로의 역할도 기대할 만하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66408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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