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계국가의 이해 (책소개)/4.러시아역사문화

로자의 러시아 문학강의 - 20세기 코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동방박사님 2022. 11. 1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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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러시아 혁명 100주년!
독자들의 찬사를 받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편 드디어 출간!!!


2014년 출간된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는 러시아 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해설해 독자들의 열광적 반응을 얻었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파워 라이터’ 로쟈 이현우가 이야기하듯 풀어낸 강의는,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지만 막상 읽으려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러시아의 명작들을 만나는 최고의 입문서로 평가받았다. 19세기 편의 말미에서 저자가 예고했던 20세기 편이, 오랜 작업 끝에 드디어 독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등으로 이어지는 문학의 ‘황금시대’였다면, 20세기는 그러한 비옥한 토대가 혁명이란 파랑을 만날 때 어떻게 요동치는지를 설명한다. 노동자의 계급 각성을 그린 최초의 노동자 소설 『어머니』의 고리키에서부터 혁명에 회의적이었던 『닥터 지바고』의 파스테르나크, 공식 문학의 문화 권력자이면서 『고요한 돈 강』으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숄로호프, 모국은 물론 모국어를 떠나 이방의 언어로 작품을 써야 했던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까지, 20세기를 살았던 작가 중 누구도 혁명의 물결을 비껴갈 수 없었다.

혁명과 이념의 문제는 작가들의 작품과 인생에 그 무엇보다 강한 영향을 미쳤고, 그것이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규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었던 러시아 혁명이 100주년을 맞는 2017년, 시대의 고민과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고민했던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보는 것은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목차

책머리에
제 1강.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러시아
제 2강. 소비에트 문학의 시작
고리키의 『어머니』 읽기
제 3강. 자먀틴과 안티유토피아
자먀틴의 『우리들』 읽기
제 4강. 사회주의를 향한 열망과 연민
플라토노프의 『코틀로반』, 『체벤구르』 읽기
제 5강. 지바고 혹은 소비에트 햄릿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읽기
제 6강. 불가코프의 불온한 카니발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읽기
제 7강. 숄로호프와 사회주의리얼리즘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 읽기
제 8강. 솔제니친과 수용소 문학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읽기
제 9강. 나보코프와 예술이라는 피난처
나보코프의 『롤리타』 읽기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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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인용한 한국어판 번역본

 

저자 소개

저 : 이현우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쟈’라는 필명을 가지고 매일 새롭게 출간되는 책들을 소개하는 서평가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대학 안팎에서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 한국문학, 인문학을 강의하며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
 

책 속으로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중요한 단절 혹은 전환이 일어난 해를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하여, 19세기는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한 1789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길게 잡습니다. 그래서 ‘장기 19세기’라고 부릅니다. 반면 20세기는 1914년부터 소련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한 1991년까지로 잡아요. 그렇게 짧게 잡기에 ‘단기 20세기’라고 부릅니다. 이렇듯 시대 구분이 연도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죠.
같은 식으로 ‘20세기 러시아 문학’도 규정해보자면, 작가 기준으로는 고리키부터, 그리고 작품으로는 1902년에 출간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뒤 1973년 출간된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를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파산 선고로 본다면 대략 70년의 역사지요. --- p.14~15

사실 『어머니』는 1905년 러시아 제1차 혁명 이후 긴박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려고 쓴 작품입니다. 사회 변혁의 시기에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 발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일부 비평가들은 인물의 구도나 작품에 드러난 세계관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런 비판이 도식적으로 보입니다. 그 시대 자체가 도식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1980년대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야말로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사회였죠. 억압적이기도 했고요.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평하면서 다양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 p.36

살아 있고-죽어 있는’ 인간과 ‘살아 있고-살아 있는’ 인간이 자먀틴의 인간 구분법입니다. ‘살아 있고-죽어 있는 인간 또한 쓰고 걷고 말하고 행동’하고 강의도 듣고 할 것 다 하지만, 그들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죽은 행동’입니다. ‘살아 있고-살아 있는 인간은 실수와 탐구와 질문과 고통 속에 존재’하니까요. 자먀틴은 ‘쓴다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 p.67

플라토노프는 스탈린과 고리키에게 “저는 계급의 적이 아닙니다. 노동자 계급은 제 고향이며, 제 미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해명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봐도 플라토노프만큼 사회주의 이념에 투철한 작가도 보기 드문데, 왜 이런 비판을 받게 되었을까요. 그건 플라토노프의 작품을 당시 소련의 공식 문학에서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이 소련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허용하는 수준보다 더 왼쪽으로 치우쳤던 것이죠. --- p.91

이 작품에서 불가코프가 보기에 예수가 인간에게 던진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어떤 권력, 어떤 폭력도 없는 정의와 진리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다. 그런 시대가 될 것이다.
불가코프 개인으로 보면, 권력으로부터 받은 억압 때문에 피해망상증에 시달리고, 작가로서는 사망선고를 받고, 모든 작품을 공연 금지당하는 등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권력에 대한 그의 거부감을 떠올려볼 수 있죠.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모두 철폐되는 정의와 진리의 왕국이 도래하리라는 것이 예슈아의 입을 통해 불가코프가 말하고자 했던 자기 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p.177

1994년 조국 러시아로 돌아갔지만 작가로서, 또 반체제 지식인으로서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소련 체제가 무너지자마자 돌아왔더라면 사정이 달랐을 텐데 『붉은 수레바퀴』를 완성하느라 귀국을 늦추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친 겁니다. 그렇더라도 1960~1970년대 솔제니친은 위대한 작가였습니다. 위대한 작가는 단지 글을 잘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요구에 부응할 때 탄생합니다. 시대 조건이 만든다고 할 수 있죠. 그러니 단순히 재능 있는 작가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문학에 대한 사회적 요구,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문학, 이것이 곧 위대한 문학입니다.--- p.221

말하자면 『롤리타』는 그렇게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한없이 다루기 편한 러시아어를 버리고 영어라는 두 번째 언어로, 혹은 이류의 영어로 쓸 수밖에 없었던 나보코프의 설움을 담고 있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건 지극히 개인적 비극이기 때문에 타인의 관심사가 될 수 없음을 작가 자신이 잘 압니다. 그래서 작품에선 전혀 내색하지 않죠. 그러니 『롤리타』를, ‘아, 나보코프의 설움이여’라고 읽을 독자는 거의 없을 거예요. 하지만 작가에게 이 작품의 의미는 그렇다는 말이죠.
--- p.267
 

출판사 리뷰

“러시아 문학은 오직 1917년의 시점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

헝가리의 비평가 죄르지 루카치의 말이다. 1917년은 러시아의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이 연달아 일어나, 지구 상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한 기념비적인 해다. 역사상 시도된 적이 없었던 이 새로운 체제는 삶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산당 집권 후 문학 평가의 기준은 사회주의 이념에 얼마나 잘 부합하느냐, 그 이상을 얼마나 잘 그려냈느냐가 되었고, 그 외에 ‘반동적’이라는 낙인이 찍힌 작가들은 작품 활동을 통제받았다.

사회주의 지침에 잘 부합하여 공식적으로 출간되는 문학은 ‘공식 문학’, 사회주의에 혁명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체제의 탄압을 받아 러시아 내에서 공식 출간될 수 없었던 작품은 ‘비공식 문학’이라 한다. 자먀틴의 『우리들』이나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같은 작품들은 모두 비공식 문학의 대표작이다. 이들은 초판이 외국에서 먼저 출간된 경우며,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나 플라토노프의 『체벤구르』처럼 작가 사후에야 빛을 볼 수 있게 된 작품들도 있다.

비공식 문학이라고 해서 모두 혁명과 사회주의 체제에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닥터 지바고』처럼 혁명에 비판적이거나 불가코프의 희곡들처럼 당 관료들과 속물들을 풍자하는 작품도 있었지만 플라토노프처럼 ‘현실보다 더 왼쪽으로’ 기울어 있기에 현실 사회주의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작가도 있었다. 소련의 수용소 사회를 고발한 솔제니친 같은 작가도 서구나 국내엔 ‘반공 작가’처럼 소개되었지만 사실 그는 억압적 체제를 비판했을 뿐, 근본적으로는 공산주의자였다.

19세기 비판적 리얼리즘은 있는 그대로 현실을 그리지만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는 당위적 현실이 중요합니다. 있어야만 하는 현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국가라도 부족해서 못 먹고 못살 수 있죠. 하지만 그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사회주의리얼리즘이 아니에요. 당성이 부족한 것이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실상은 고전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본문 224쪽)

한마디로 말해, 솔제니친은 사회주의가 응당 그래야 하는 ‘당위적 현실’을 그리지 않고, 체제가 지닌 있는 그대로의 문제를 폭로했기에 소련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이다. 안티유토피아를 다룬 『우리들』의 자먀틴이나 소비에트의 새로운 인간상을 조롱한 『개의 심장』을 쓴 불가코프 역시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에 긍정적 비전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간이 금지되었다.

노벨문학상에 얽힌 이야기들

러시아에는 뛰어난 작가들이 많았던 만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도 많다. 그러나 노벨상을 탔다고 해서 영예롭고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파스테르나크는 반체제적 작품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일대 스캔들이 일어났으며, 솔제니친도 수상 이후 커진 유명세로 인해 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닥터 지바고』가 1957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되었는데, 바로 이듬해인 195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입니다. 거의 전례 없는 결정이었죠. 그와 관련해서 미국 CIA 공작설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1956년 흐루쇼프가 제 20차 전당대회에서 스탈린을 비판하고 1957년 소련에서 최초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면서 미소 사이에 우주개발 경쟁이 시작됩니다. 한발 늦은 미국이 소련 체제를 비방하는 선전의 일환으로 파스테르나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배후에서 밀어주었다는 설입니다. (본문 124쪽)

국외 추방을 면하기 위해 파스테르나크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고, 솔제니친 역시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락하기는 하지만 정부가 귀국을 허락하지 않을까 두려워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1973년에 『수용소 군도』가 프랑스에서 출간된 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1974년에 추방당하고 만다. 당시 냉전 속 동서의 힘겨루기가 문학계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반대로, 또 한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미하일 숄로호프는 표절 시비에 휩싸였다.

숄로호프가 23세 때인 1928년에 『고요한 돈 강』을 발표하는데 작품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20세 때 쓰기 시작해서 23세 때 발표한 걸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이후에는 솔제니친이 공식적으로 표절 문제를 제기합니다. (……) 게다가 숄로호프에게 원고가 없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맞아서 원고가 다 유실되었다고 했습니다. (본문 183~184쪽)

그러다가 1999년 『고요한 돈 강』의 원고 일부가 발견되지만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된다. 숄로호프가 문화 권력자였기 때문에 반체제 인사들은 더 의심하는 편이지만, 현재는 숄로호프의 작품으로 어느 정도 시비가 일단락된 상태다.

뒤늦게 알려진 작가들

안티유토피아 소설 하면 어떤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조지 오웰의 『1984』(1949)라고 대답할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브게니 자먀틴의 『우리들』(1924)이 이 두 작품보다 훨씬 앞선 작품이었다. 흔히 이 세 작품을 묶어 3대 안티유토피아 소설이라 부른다.

실제로 『우리들』에 대한 서평을 쓰기도 했던 오웰은 헉슬리가 『우리들』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말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멋진 신세계』보다 『1984』가 『우리들』에 빚진 바가 크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일기를 쓴다든가 남자 주인공이 여성을 만나 반체제 운동을 하게 되고, 마지막에 저항은 실패로 돌아가고 주인공은 세뇌당하고 마는 결말 등의 설정에 유사점이 많다. 『우리들』은 위의 두 작품뿐 아니라 많은 소설과 영화들에 영향을 끼친 선구적 작품이다. 이렇게 중요한 작품임에도 자먀틴은 초기 작품 이후 자국 내 출간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영어로 먼저 출간되었고, 러시아에서는 1988년에야 공식 출간될 수 있었다.
주로 희곡을 쓰는 극작가였던 미하일 불가코프 역시 1930년대 이후 작품 출간과 공연이 금지되어 1960년대 이후에야 주요 작품들이 출간되기 시작한다. 그의 대표작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유명한 구절로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의 경험이 반영된 문학적 유언이기도 하다. 이 작품 자체가 오랜 세월 집필하며 초고를 불태우기도 했지만, 결국은 생의 마지막 나날까지 기억을 되살려 쓴 필생의 걸작이기 때문이다. 1967년 처음 발표되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이후 불가코프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져, 현재는 체호프와 더불어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올려지는 작가이기도 하다.

시대가 만들어낸 두 언어의 작가 나보코프

러시아 문학사에서뿐 아니라 세계적 문학사상 독특한 위치를 점한 작가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있다. 1955년 출간된 영어 소설 『롤리타』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는 원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집안 출신이었다. 혁명 이후 아버지는 혁명에 반대하는 백군에 가담했다가 암살되고, 동생 역시 나치에게 죽임을 당하는 불행한 가족사를 안고 미국으로 망명한다.

원래 러시아어로 작품을 쓰던 그는 최초의 영어 소설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1941) 이후엔 주로 영어로만 작품 활동을 했다. 나보코프 스스로도 말했듯 모국어를 버리고 ‘두 번째 언어에 불과한’ 영어로 갈아타야 했던 설움은 그의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관점이 되기도 한다.

나보코프의 속내가 이어집니다. 이 냉정한 작가의 목소리가 좀 높아지지요. “어차피 나의 미국인 친구들은 아무도 내 러시아어 소설을 읽지 못했으므로 그들이 내 영어 소설의 장단점을 평가하는 작업은 아무래도 초점이 좀 어긋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의 불만입니다. 그렇게 해선 자기가 영어로 쓴 작품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보코프는 자신이 러시아어로 쓴 작품을 전부 영어로 옮겨놓습니다. 아들과 같이. 그리고 영어로 쓴 작품은 다시 러시아어로 옮겨놓고요. 그렇게 해서 완벽하게 ‘2개 국어 작가’가 탄생하게 됩니다.

결국 나보코프는 러시아어와 영어 양쪽의 언어 모두로 작품을 쓴 전무후무한 작가가 된다. 이 독특한 상황은 20세기 러시아의 상황이 빚어낸 놀라운 결과라 할 수 있다.

20세기 러시아 작가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진 세계에서 저마다의 눈으로 시대를 그려냈다. 그 가운데는 체제의 권력자가 된 이도, 탄압받고 추방당한 이도, 숨죽여 살거나 망명한 이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이들의 작품을 읽다 보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20세기, 그 중심에서 살아간 러시아 민중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