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혀온 천주교인들은 해미읍성에 있는 감옥 두곳에 가두어 놓았다가 처형하였다.처형된 자들에 대한 자료는 교회측기록 67명 관측기록 65명과 무명순교자로 기록된 47명으로 되어 있으나 그밖에 이름모를 순교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해미 진영장의 독자적 처결에 있어서 사후에 문책거리가 됨직한 신분의 사람들은 홍주(홍성) 및 공주 등 상급 고을로 이송하였는데 이송사실과 이송자들에 대한 이름은 기록에 남겨져 있다고 한다.해미읍성이나 여숫골에서 처형된 자들의 대부분은 홍성이나 공주로 이송되지 못한 서민층이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는 심리나 기록 절차 없이 마구잡이로 죽였다.또한 1866년 10월 병인양요 이후에는 먼저 처형한 뒤에 조정에 보고하는 선참후계령(先斬後啓令)이 내려진터라 천주교 신자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