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불교의 이해 (독서)/6.한국불교미술

조선왕실의 불교미술

동방박사님 2022. 2. 2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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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억불(抑佛)의 시대 조선, 조선의 불교미술은 어떠하였을까?
조선시대는 흔히 숭유억불시대이자 불교미술의 암흑기로 알려져 왔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불교미술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는가? 우리 곁에 남아 있는 다양한 사료를 돌아보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를 초기·중기·후기·말기 등 네 시기로 나누어 왕실의 불교미술을 고찰하였다. 현존하는 왕실 발원 불교미술품에 보이는 ‘궁정 불교 미술 양식(宮廷 佛敎 美術 樣式)’의 성립 과정과 특징을 고찰하고, 이것이 당시 일반인들에 의해 제작된 불교미술과 어떤 차별성을 갖는가, 또 시기적으로는 어떤 특징을 보여 주는가를 살펴보았다. 아울러 각 시기별로 발원자와 후원자의 성격은 어떻게 다르고, 이것이 불교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주목하였으며, 왕실의 불교미술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는가를 중점적으로 고찰하였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오해받아 왔던 조선시대 불교미술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기를 바란다.

목차


제1장 조선왕실과 불교, 불교미술

제2장 조선 초기: 억불정책과 불교미술
1 조선 초기의 왕실 불교
2 왕·대군의 불사와 불교미술
3 비빈(妃嬪)의 불사와 불교미술

제3장 조선 중기: 궁정 양식의 확립
1 조선 중기의 왕실 불교
2 비빈의 불사와 불교미술
3 왕실 주변 인물의 불사와 불교미술

제4장 조선 후기: 원당(願堂) 건립의 성행과 왕실 불사
1 조선 후기의 왕실 불교
2 사찰 중수 및 원당 불사의 성행

제5장 조선 말기: 서울 인근 사찰의 왕실 불사
1 조선 말기의 왕실 불교
2 왕·비빈의 불사와 불교미술
3 종친 및 상궁의 불사와 불교미술

제6장 왕실 불사의 현장
1 내불당(內佛堂)
2 비구니 사찰
 1) 정업원(淨業院)
 2) 자수궁(慈壽宮)·인수궁(仁壽宮)·안일원(安逸院)
3 원당

제7장 왕실 불사의 재원(財源)
1 조선왕실의 재정
2 왕실 불사의 재원
 1) 내수사
 2) 상의원
 3) 궁방

제8장 조선시대 왕실 발원 불교미술의 특징
 

저자 소개 

저 : 김정희 (金廷禧)
 
서울에서 출생하여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불교회화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상임연구원, 서울역사편찬원 위원, 원광대학교 박물관장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원광대학교 인문대학 역사문화학부 고고·미술사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경기도·전라북도·...
 

책 속으로

연복사 5층목탑은 비록 공양왕 대에 중창되었지만 태조가 개국 후 바로 탑을 완공한 사실을 볼 때 그가 이 탑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 탑이 완성된 후 새로 만든 탑을 구경하러 연복사에 행차했을 뿐 아니라 준공을 기념하는 문수법회를 베풀고 친히 거동하여 자초(自超)의 선법 강설을 들었다. --- p.33

왕실 여성들은 … 대부분 권력 뒤에 가려져 정치에서 소외되었는데, 바로 그러한 점이 자신들의 신념과 신앙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이점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조선왕조가 정치적으로 내세운 성리학적 이념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왕의 어머니, 부인, 딸이라는 높은 신분을 이용하여 적극적인 불사를 행할 수 있었다. --- p.60

선조의 불교정책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수립되고 시행되었다. 승려가 전투병력으로 참여하여 산성을 수호하고 둔전을 경작하는 등 불교계의 다양하고 적극적인 활동은 선조 이후 조선 후기 불교정책에 영향을 끼쳤다. --- p.93

문정왕후는 불교를 독신하여 많은 불사를 행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호법의 정치를 실시하였다. 문정왕후의 불심에 대해 그와 함께 불교 중흥정책을 시행하였던 보우는 “대비 전하가 유교를 숭상하고 불도를 소중히 여김은 실로 과거에 드물었고, 하늘을 섬기고 부처를 공경하심 또한 금후에 드물 것”이라 하였다. --- p.110

경술국치 후 고종과 순헌황귀비 등이 예로부터 왕실의 원찰이었던 진관사에 불화를 시주, 발원하면서 일본의 눈을 피하기 위해 황제, 황태자 등의 호칭을 쓰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 p.225

내수사, 상의원, 궁방 등을 중심으로 한 왕실의 불사 후원은 튼튼한 재정을 바탕으로 최고의 장인에 의한 높은 수준의 불교미술을 탄생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조선시대 불교미술의 ‘궁정 양식’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p.325

왕실 발원의 불교미술은 때로는 왕실의 예술가들에 의해 제작되면서 수준 높은 궁정미술 양식을 창출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승려장인들에 의해 주도되면서 제작 당시의 불교미술 양식을 반영하는 등 각 시대마다 특색 있는 미술 양식을 이루었다.
--- p.351
 

출판사 리뷰

“이 책이 ‘숭유억불시대이자 불교미술의 암흑기’라고 알려져 왔던
조선시대 불교미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수년간 불교미술을 연구해 온 사학자이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인 저자 김정희는 유교의 나라인 조선에서 불교미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선시대 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억불(抑佛)’의 이미지와 달리, 조선시대에도 적지 않은 불교미술이 제작되었다. 심지어 유교 숭상의 최고봉인 조선의 왕실에서도 불교미술을 제작한 예가 많다는 사실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엎는다.
물론 조선이 건국된 후에 수많은 사찰이 폐사되고 종파는 통폐합되었으며, 승려가 환속되는 등 큰 폐해를 겪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조선왕조 500년 동안 불교가 시종일관 억압만 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성리학을 기본으로 한 사회였기에 전반적으로 불교가 침체하기는 했지만, 때로는 왕이나 왕비에 의해 불교가 중흥하여 발전하는 등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특히 왕실의 불교미술은 같은 시기 불교미술의 양식을 주도하면서 불교미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억불시대였던 조선시대에 불교를 지탱시키고 불교미술을 발전시킨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왕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호불적 분위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조선 초기에는 강력한 억불정책 아래서도 몇몇 호불적인 왕과 왕실 구성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불사가 이루어졌다. 그 목적도 다양한데, 주로 왕실의 안녕과 선왕의 극락왕생 또는 태자의 탄생을 기원하며 불상과 불화를 시주하고 불경을 간행하였다.
일부 왕실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조선 초기의 불사는 조선 중기에 이르러 문정왕후를 중심으로 새롭게 꽃을 피웠다. 특히 왕실 조각가와 화원이 불교미술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에 따라, 소위 궁정 양식(宮廷樣式)으로 불리는 새로운 양식이 수립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많은 사찰이 중창 또는 중수되었으며, 이에 따라 불교미술이 새롭게 꽃을 피웠다. 왕실에서의 불사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왕실의 원당 및 원찰을 중심으로 불사 후원이 이루어졌다.
조선 말기에는 숨 가쁜 정국 속에서 서울 인근 사찰을 중심으로 왕실 불사가 성행하였다.특히 주목할 점은 왕비와 상궁들의 불사 후원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조선 말기 불교신자는 대부분 여성이었고, 그중에서도 돈과 권력을 가진 왕실의 여인들은 불교와 불교미술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의 불교미술 중에서도 특히 왕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불교미술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되,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과 각 시대별 불교미술의 양식적 특징을 살펴본다. 아울러 각 시기별로 발원자와 후원자의 성격은 어떻게 다르고, 이것이 불교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에 주목하였으며, 왕실의 불교미술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는가를 중점적으로 고찰하였다. 다양한 불화와 불교미술품, 그에 얽힌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 불교미술사 속에서 왕실 불교미술이 갖는 위상에 대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