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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국가』는 이야기다!
질문의 틀을 바꾸는 강의, 문학으로서의 『국가』 읽기
서양 철학의 근간을 놓은 한 권의 책, 철학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고전, 플라톤의 대표 저서, 『국가』. 이 책은 그리스 고전기, 인간과 사회와 우주 전체에 대한 고민에 답하고자 했던 철학의 고전적이고도 본질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이제, 『국가』의 총체적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국가』를 문학이라는 형식에 주목해서 읽으며 본래 역사·정치·문학과 하나였던 철학을 만난다.
실존했던 인물들이 등장해서 토론을 펼치는 『국가』의 문학적인 형식은 작품이 전하고자 했던 철학적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말은 늘 대화 맥락과 그 인물이 걸어온 삶의 궤적과 아테네 역사라는 맥락 속에서 제시된다. 이런 맥락을 놓치고 『국가』에서 플라톤의 주장이라고 생각되는 논변만 골라 읽는 독서로는 플라톤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책과 함께 『국가』의 등장인물들이 각자 어떤 의도로 논변을 펼쳐나가는지 하나하나 따져 읽다 보면 지혜를 ‘소유’하는 것을 넘어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철학함’이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의 틀을 바꾸는 강의, 문학으로서의 『국가』 읽기
서양 철학의 근간을 놓은 한 권의 책, 철학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고전, 플라톤의 대표 저서, 『국가』. 이 책은 그리스 고전기, 인간과 사회와 우주 전체에 대한 고민에 답하고자 했던 철학의 고전적이고도 본질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이제, 『국가』의 총체적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국가』를 문학이라는 형식에 주목해서 읽으며 본래 역사·정치·문학과 하나였던 철학을 만난다.
실존했던 인물들이 등장해서 토론을 펼치는 『국가』의 문학적인 형식은 작품이 전하고자 했던 철학적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말은 늘 대화 맥락과 그 인물이 걸어온 삶의 궤적과 아테네 역사라는 맥락 속에서 제시된다. 이런 맥락을 놓치고 『국가』에서 플라톤의 주장이라고 생각되는 논변만 골라 읽는 독서로는 플라톤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책과 함께 『국가』의 등장인물들이 각자 어떤 의도로 논변을 펼쳐나가는지 하나하나 따져 읽다 보면 지혜를 ‘소유’하는 것을 넘어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철학함’이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국가》는 이야기다
2. 아테네 역사와 《국가》의 이야기
3. 이야기의 시작
4. 트라시마코스와의 대화
5.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의 도전
6. 이상적인 국가의 원칙
7. 수호자의 교육과 삶
8. 이상적인 국가의 덕과 이상적인 개인의 덕
9. 철학자의 통치
10. 철학자를 키우기 위한 교육
11. 이상 국가의 쇠퇴와 다양한 정치체제
12. 행복과 즐거움
13. 예술 비판과 이야기 안의 이야기
14. 이야기의 끝
《국가》 관련 참고 문헌
1. 《국가》는 이야기다
2. 아테네 역사와 《국가》의 이야기
3. 이야기의 시작
4. 트라시마코스와의 대화
5.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의 도전
6. 이상적인 국가의 원칙
7. 수호자의 교육과 삶
8. 이상적인 국가의 덕과 이상적인 개인의 덕
9. 철학자의 통치
10. 철학자를 키우기 위한 교육
11. 이상 국가의 쇠퇴와 다양한 정치체제
12. 행복과 즐거움
13. 예술 비판과 이야기 안의 이야기
14. 이야기의 끝
《국가》 관련 참고 문헌
책 속으로
《국가》에서 벌어지는 논의 그 자체가 참이냐 거짓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 뒤에 숨은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로고스만을 찾아내려는 시도도, 뮈토스라는 형식의 비이성적인 감동만을 찾으려는 시도도 모두 옳지 않다. 뮈토스 안의 로고스를 발견하면서도 뮈토스의 가치를 로고스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비극 작가를 꿈꾸었던 플라톤이 이런 문학적인 형식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 pp.38~39
폴레마르코스가 아네테로 돌아가려는 소크라테스를 붙잡고 머무르기를 간청하는 장면도 폴레마르코스라는 사람이 누군지 고려하면 매우 흥미롭다. … 폴레마르코스가 이렇게 자신만만했던 것은,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과 둘이서만 길을 가고 있었지만, 폴레마르코스는 아데이만토스, 니케라토스 등 여러 사람과 함께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편이 다수이기 때문에 소수인 소크라테스가 폴레마르코스를 비롯한 다수의 생각을 따라야만 한다. 앞 장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폴레마르코스는 민주파의 일원이다. 그리고 피레우스는 민주파의 성지이다. 다수의 의견에 소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폴레마르코스의 대사를 읽는 첫 독자들은 모두 민주정의 강압, 혹은 다수의 횡포을 떠올렸을 것이다. 플라톤은 이 장면에서 민주정의 폭정에 의해 사형을 당한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암시하고 싶었다. --- p.65
드 발은 동물들 또한 이런 기본적인 정의감과 역지사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인간의 윤리 또한 이런 동물적인 직관으로부터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 때 사람들을 (혹은 심지어 동물들까지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정의의 조건이라고 할 때, 정의 문제는 우리가 모든 사람이나 대상을 항상 똑같이 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다른 대우를 하더라도 차별하는 기준이 공평하고 올바른지의 문제와 연결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확히 같지 않은 몫을 나누어주면서도 그 차이를 어떻게 정당화할지의 문제가 정의라는 것이다. --- pp.80~81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도체나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가 부정한 돈을 가지고 사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하려 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법을 집행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금품을 돌려 인맥을 만들고, 대선이나 총선에서 불법 선거 자금을 제공하여 행정부와 입법부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놓는다. 불법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분식회계를 하며, 노동법을 무시하고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막으며, 기업의 부당한 노동권 침해에 반대하여 투쟁하다 세상을 뜬 직원의 시신을 탈취하는 등 국민의 국가를 사기업의 공화국으로 만든다. 법과 규제를 따라야 마땅한 기업이 자기 주제를 넘어서 법과 규제 위에 있으려 하는 것, 다스림을 받아야 함에도 다스리려 하는 것. 소크라테스는 이를 절제 없음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이런 의미에서 절제와 무절제는 올바름, 즉 정의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 p.206
플라톤이 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이데아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국가》의 첫 단어가 ‘내려감’이었던 것처럼 플라톤의 철학은 현실을 지향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경험세계로부터 철학을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신을 관조하는 삶을 가장 최종적인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플라톤의 목표는 아래라고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표는 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파엘로의 그림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그렸다기보다는 각 철학자의 탐구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p.219~220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두고, 그 안에서 좋은 사람이 그 시스템을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좋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잘 양육받아 성장한다고 해서 그가 언제나 철학자로서 최선의 것을 이루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좋은 시스템 안에 들어가야만 철학자로서, 그리고 통치자로서 가장 좋은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플라톤 철학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 p.246
기독교에서, 그리고 많은 입문서에서 설명하듯 두 세계가 존재론적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에만 주목하면 플라톤 철학은 현실의 문제와 아무 관계없이 이상만 추구하는 플라톤주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상 국가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지도자가 될 사람이 가져야 하는 지적인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 소개하기 위해 철학자의 지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맥락에서 두 세계가 설명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철학자가 추구하는 앎이 나라의 경영과 관련되는 모델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라면, 이 앎은 필연적으로 실천적일 수밖에 없다. … 두 세계가 어떻게 구분되어 있는지의 문제보다는, 두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소크라테스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 p.261
플라톤이 현대적인 의미의 민주주의에 대한 적일까? 플라톤은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던 민주정은, 개인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민중에 의한 통치이다. 그런데 플라톤이나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이나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는 서로 동의할 수 있다. --- p.311
민중은 참주를 낳았다. 자유를 원하는 민중의 욕심은 참주에게 권력을 주었고, 자유롭기를 바라던 시민은 참주의 노예가 되었다. 민중은 이제 참주와 그의 패거리를 먹여 살리게 되었고, 참주는 자신을 낳아준 민중이 자기에 대해 불평하면 민중을 압제하고 폭행한다. 참주는 마치 ‘친부 살해자’와 같다. 자신을 낳아준 아비를 폭행하고 때리려들며 죽이려 하는 최악의 인간이 권력을 잡게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민중이 자유민의 구속이라는 연기를 피해서 노예들의 전횡이라는 불에 뛰어드는 셈’(569b)이라고 말한다. 결국 힘들고 가혹한 노예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던 시민들의 운명이다. --- p.315
어떻게 나를 알 수 있을까? 플라톤은 나를 알기 위해 명상을 하거나 참선을 하거나 골방에 들어가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크라테스처럼 시장에 나가 같은 공동체에서 서로 신세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면서 그들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검토하고 찾아가라고 권한다. … 자신에 대한 앎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나에 대한 앎은 내가 계속해서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도와준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선택부터 죽은 뒤 천 년의 여행을 하고 다음 생을 고르는 순간까지도.
홀로 고고하게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 삶의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투쟁하면서 지금 이곳에서 최선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철학이다. 《국가》는 바로 이런 진리를 향한 여정에 함께하자고 플라톤이 우리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폴레마르코스가 아네테로 돌아가려는 소크라테스를 붙잡고 머무르기를 간청하는 장면도 폴레마르코스라는 사람이 누군지 고려하면 매우 흥미롭다. … 폴레마르코스가 이렇게 자신만만했던 것은, 소크라테스는 글라우콘과 둘이서만 길을 가고 있었지만, 폴레마르코스는 아데이만토스, 니케라토스 등 여러 사람과 함께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편이 다수이기 때문에 소수인 소크라테스가 폴레마르코스를 비롯한 다수의 생각을 따라야만 한다. 앞 장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폴레마르코스는 민주파의 일원이다. 그리고 피레우스는 민주파의 성지이다. 다수의 의견에 소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폴레마르코스의 대사를 읽는 첫 독자들은 모두 민주정의 강압, 혹은 다수의 횡포을 떠올렸을 것이다. 플라톤은 이 장면에서 민주정의 폭정에 의해 사형을 당한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암시하고 싶었다. --- p.65
드 발은 동물들 또한 이런 기본적인 정의감과 역지사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인간의 윤리 또한 이런 동물적인 직관으로부터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 때 사람들을 (혹은 심지어 동물들까지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정의의 조건이라고 할 때, 정의 문제는 우리가 모든 사람이나 대상을 항상 똑같이 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다른 대우를 하더라도 차별하는 기준이 공평하고 올바른지의 문제와 연결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확히 같지 않은 몫을 나누어주면서도 그 차이를 어떻게 정당화할지의 문제가 정의라는 것이다. --- pp.80~81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도체나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가 부정한 돈을 가지고 사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하려 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법을 집행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금품을 돌려 인맥을 만들고, 대선이나 총선에서 불법 선거 자금을 제공하여 행정부와 입법부에 자기 사람들을 심어놓는다. 불법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분식회계를 하며, 노동법을 무시하고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막으며, 기업의 부당한 노동권 침해에 반대하여 투쟁하다 세상을 뜬 직원의 시신을 탈취하는 등 국민의 국가를 사기업의 공화국으로 만든다. 법과 규제를 따라야 마땅한 기업이 자기 주제를 넘어서 법과 규제 위에 있으려 하는 것, 다스림을 받아야 함에도 다스리려 하는 것. 소크라테스는 이를 절제 없음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이런 의미에서 절제와 무절제는 올바름, 즉 정의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 p.206
플라톤이 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이데아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국가》의 첫 단어가 ‘내려감’이었던 것처럼 플라톤의 철학은 현실을 지향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경험세계로부터 철학을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신을 관조하는 삶을 가장 최종적인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플라톤의 목표는 아래라고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표는 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파엘로의 그림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그렸다기보다는 각 철학자의 탐구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p.219~220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두고, 그 안에서 좋은 사람이 그 시스템을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좋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잘 양육받아 성장한다고 해서 그가 언제나 철학자로서 최선의 것을 이루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좋은 시스템 안에 들어가야만 철학자로서, 그리고 통치자로서 가장 좋은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플라톤 철학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 p.246
기독교에서, 그리고 많은 입문서에서 설명하듯 두 세계가 존재론적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에만 주목하면 플라톤 철학은 현실의 문제와 아무 관계없이 이상만 추구하는 플라톤주의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상 국가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지도자가 될 사람이 가져야 하는 지적인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 소개하기 위해 철학자의 지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맥락에서 두 세계가 설명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철학자가 추구하는 앎이 나라의 경영과 관련되는 모델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라면, 이 앎은 필연적으로 실천적일 수밖에 없다. … 두 세계가 어떻게 구분되어 있는지의 문제보다는, 두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소크라테스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 p.261
플라톤이 현대적인 의미의 민주주의에 대한 적일까? 플라톤은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던 민주정은, 개인의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민중에 의한 통치이다. 그런데 플라톤이나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이나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는 서로 동의할 수 있다. --- p.311
민중은 참주를 낳았다. 자유를 원하는 민중의 욕심은 참주에게 권력을 주었고, 자유롭기를 바라던 시민은 참주의 노예가 되었다. 민중은 이제 참주와 그의 패거리를 먹여 살리게 되었고, 참주는 자신을 낳아준 민중이 자기에 대해 불평하면 민중을 압제하고 폭행한다. 참주는 마치 ‘친부 살해자’와 같다. 자신을 낳아준 아비를 폭행하고 때리려들며 죽이려 하는 최악의 인간이 권력을 잡게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민중이 자유민의 구속이라는 연기를 피해서 노예들의 전횡이라는 불에 뛰어드는 셈’(569b)이라고 말한다. 결국 힘들고 가혹한 노예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던 시민들의 운명이다. --- p.315
어떻게 나를 알 수 있을까? 플라톤은 나를 알기 위해 명상을 하거나 참선을 하거나 골방에 들어가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크라테스처럼 시장에 나가 같은 공동체에서 서로 신세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면서 그들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검토하고 찾아가라고 권한다. … 자신에 대한 앎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나에 대한 앎은 내가 계속해서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도와준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선택부터 죽은 뒤 천 년의 여행을 하고 다음 생을 고르는 순간까지도.
홀로 고고하게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 삶의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투쟁하면서 지금 이곳에서 최선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철학이다. 《국가》는 바로 이런 진리를 향한 여정에 함께하자고 플라톤이 우리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 pp.383~384
출판사 리뷰
『국가』는 이야기다!
질문의 틀을 바꾸는 강의, 문학으로서의 『국가』 읽기
『국가』는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정의, 정치체제, 국가, 영혼, 철학 등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넓혀온 책이다. 이 책이 2,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온 데에는 『국가』가 문학적인 형식으로 쓰였다는 데에 핵심적인 이유가 있다. 『플라톤 국가 강의』는 『국가』를 문학이라는 형식에 주목해서 읽는 해설서이다. 이 책은 『국가』를 매끄럽게 정리된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해서 전달하기보다 『국가』에서 전개되는 복잡다단한 논쟁을 낱낱이 드러내며 그리스 고전기에 인간과 사회와 우주에 대한 고민에 총체적으로 답하고자 했던 철학의 본질적인 성격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플라톤 국가 강의』는 간접적이고 비이성적이며 특수한 이야기 속에서 보편적인 진리가 드러나도록 하는 서술 방식에 집중하여 『국가』를 읽는 책이다. 『국가』는 저자가 독자에게 직접적인 언어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지 않고 여러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쓰였다. 이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게 만들지만 논리가 전개되는 과정을 드러나도록 하며, 이러한 논리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곧 철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에는 대화 밖과 대화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는 순수한 논리만으로는 충분히 표현되지 못하는 진리를 가리키는 표지가 된다. 『국가』에서는 누군가가 대화에 참여하게 되거나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장면, 동굴의 비유를 비롯한 여러 비유들, 사후의 삶을 소재로 하는 ‘에르 신화’ 등이 의도적으로 제시된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학의 상, 즉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이성적인 명제만으로 구성된 논리라는 이미지가 허물어지며 기존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형식적인 경계를 넘어서도 철학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플라톤은 혼이 불사하며 윤회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플라톤이 추구하는 진리는 명제로서의 참, 혹은 경험에 의해 입증 가능함으로서의 참을 넘어선다. 이야기는 과학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진리에 가까이 가게 한다._본문 중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국가』의 구석구석으로 안내하는 책
『플라톤 국가 강의』는 『국가』에 제시되는 정치학, 경제사, 교육학, 미학의 문제까지 소홀하지 않게 다루며 『국가』가 지닌 포괄적인 성격을 제대로 맛보도록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를 이데아를 설명하는 동굴의 비유, 철인통치, 국가의 세 가지 계급, 영혼을 구성하는 세 부분 정도에 관한 내용으로 만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가』 맨 처음에 던져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정의의 실현 방안을 논의하다 나온 내용이지 그 자체가 플라톤이 결론적으로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국가』는 그 외에도 국가의 기원이 자연적인지 인위적인지에 대한 논쟁,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 영혼이 어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 이상 국가가 명예지상정체·과두정체·민주정체·참주정체의 단계를 거치며 망해가는 과정, 즐거움을 측정하는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플라톤 국가 강의』는 이런 문제 하나하나를 주목하면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다각도에서 사유하도록 한다.
『국가』를 정치적·역사적으로 읽으며 독자를 도발하는 책
『플라톤 국가 강의』의 저자가 강조하듯이 『국가』는 본래 매우 정치적인 의도로, 독자들을 관성적인 사유로부터 벗어나도록 도발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책이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대표적으로 『국가』의 등장인물들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며 『국가』의 첫 독자들이 그 인물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알 수 있다.(이러한 상황 설정은 『국가』의 비극적인 효과를 높이기도 한다.) 『플라톤 국가 강의』는 이러한 저술 의도를 21세기 한국의 독자들이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시의적절하면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들을 설명을 위한 사례로 제시한다. 이는 특정한 사건에 대해 저자와 같은 입장을 지녀야 함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사례를 통해 플라톤 철학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지 보고, 자신이 느끼는 현실에 비추어 플라톤을 다시 해석하며 능동적으로 독서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김영삼, 김대중, 박정희가 4 · 19혁명 직후 한자리에 모여 우리나라를 어떻게 하면 정의롭게 만들 수 있을지를 토론하는 내용의 책을 21세기의 독자들을 위해 썼다고 생각해보라. … (독자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감옥에 가고 사형 언도를 받고, 또 정의 때문에 총에 맞았던 이들의 삶을 염두에 두면서 어떤 나라가 좋고 어떤 나라가 정의로운지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대화를 읽을 것이다. _본문 중에서
플라톤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플라톤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책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독재를 주장하는 전체주의자, 현실에 무관심한 형이상학자, 예술을 싫어한 고리타분한 철학자의 이미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딱지 붙이기’와 도식화된 이해는 우리가 플라톤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철학적인 사유를 막는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우리가 플라톤이 제시하는 이상 국가를 ‘개인의 자유가 없다’고 비판할 때, 이때의 자유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면 어떤 내용의 자유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플라톤이 자유의 제한을 주장한 근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선 독자들이 의문을 느낄 만한 지점에서 플라톤이 주장을 제기한 맥락을 풍부하게 제시하여 플라톤에 반대하기 전에 먼저 플라톤 철학을 이해하도록 하며, ‘민주주의’, ‘전체주의’, ‘형이상학’, ‘철학’과 같은 개념을 깊이를 통해 새롭게 생각해보도록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플라톤은 ~이다’와 같은 단언이 주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넘어서 정치·철학 사상의 입체적인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질문의 틀을 바꾸는 강의, 문학으로서의 『국가』 읽기
『국가』는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정의, 정치체제, 국가, 영혼, 철학 등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넓혀온 책이다. 이 책이 2,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온 데에는 『국가』가 문학적인 형식으로 쓰였다는 데에 핵심적인 이유가 있다. 『플라톤 국가 강의』는 『국가』를 문학이라는 형식에 주목해서 읽는 해설서이다. 이 책은 『국가』를 매끄럽게 정리된 하나의 결론으로 정리해서 전달하기보다 『국가』에서 전개되는 복잡다단한 논쟁을 낱낱이 드러내며 그리스 고전기에 인간과 사회와 우주에 대한 고민에 총체적으로 답하고자 했던 철학의 본질적인 성격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플라톤 국가 강의』는 간접적이고 비이성적이며 특수한 이야기 속에서 보편적인 진리가 드러나도록 하는 서술 방식에 집중하여 『국가』를 읽는 책이다. 『국가』는 저자가 독자에게 직접적인 언어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지 않고 여러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쓰였다. 이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게 만들지만 논리가 전개되는 과정을 드러나도록 하며, 이러한 논리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곧 철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에는 대화 밖과 대화 속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는 순수한 논리만으로는 충분히 표현되지 못하는 진리를 가리키는 표지가 된다. 『국가』에서는 누군가가 대화에 참여하게 되거나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장면, 동굴의 비유를 비롯한 여러 비유들, 사후의 삶을 소재로 하는 ‘에르 신화’ 등이 의도적으로 제시된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학의 상, 즉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이성적인 명제만으로 구성된 논리라는 이미지가 허물어지며 기존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형식적인 경계를 넘어서도 철학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플라톤은 혼이 불사하며 윤회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플라톤이 추구하는 진리는 명제로서의 참, 혹은 경험에 의해 입증 가능함으로서의 참을 넘어선다. 이야기는 과학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진리에 가까이 가게 한다._본문 중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국가』의 구석구석으로 안내하는 책
『플라톤 국가 강의』는 『국가』에 제시되는 정치학, 경제사, 교육학, 미학의 문제까지 소홀하지 않게 다루며 『국가』가 지닌 포괄적인 성격을 제대로 맛보도록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를 이데아를 설명하는 동굴의 비유, 철인통치, 국가의 세 가지 계급, 영혼을 구성하는 세 부분 정도에 관한 내용으로 만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가』 맨 처음에 던져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정의의 실현 방안을 논의하다 나온 내용이지 그 자체가 플라톤이 결론적으로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국가』는 그 외에도 국가의 기원이 자연적인지 인위적인지에 대한 논쟁,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 영혼이 어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 이상 국가가 명예지상정체·과두정체·민주정체·참주정체의 단계를 거치며 망해가는 과정, 즐거움을 측정하는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플라톤 국가 강의』는 이런 문제 하나하나를 주목하면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다각도에서 사유하도록 한다.
『국가』를 정치적·역사적으로 읽으며 독자를 도발하는 책
『플라톤 국가 강의』의 저자가 강조하듯이 『국가』는 본래 매우 정치적인 의도로, 독자들을 관성적인 사유로부터 벗어나도록 도발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책이다. 이러한 기획 의도는 대표적으로 『국가』의 등장인물들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며 『국가』의 첫 독자들이 그 인물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서부터 알 수 있다.(이러한 상황 설정은 『국가』의 비극적인 효과를 높이기도 한다.) 『플라톤 국가 강의』는 이러한 저술 의도를 21세기 한국의 독자들이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시의적절하면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들을 설명을 위한 사례로 제시한다. 이는 특정한 사건에 대해 저자와 같은 입장을 지녀야 함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사례를 통해 플라톤 철학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지 보고, 자신이 느끼는 현실에 비추어 플라톤을 다시 해석하며 능동적으로 독서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김영삼, 김대중, 박정희가 4 · 19혁명 직후 한자리에 모여 우리나라를 어떻게 하면 정의롭게 만들 수 있을지를 토론하는 내용의 책을 21세기의 독자들을 위해 썼다고 생각해보라. … (독자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감옥에 가고 사형 언도를 받고, 또 정의 때문에 총에 맞았던 이들의 삶을 염두에 두면서 어떤 나라가 좋고 어떤 나라가 정의로운지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대화를 읽을 것이다. _본문 중에서
플라톤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플라톤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책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독재를 주장하는 전체주의자, 현실에 무관심한 형이상학자, 예술을 싫어한 고리타분한 철학자의 이미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딱지 붙이기’와 도식화된 이해는 우리가 플라톤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철학적인 사유를 막는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우리가 플라톤이 제시하는 이상 국가를 ‘개인의 자유가 없다’고 비판할 때, 이때의 자유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면 어떤 내용의 자유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플라톤이 자유의 제한을 주장한 근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선 독자들이 의문을 느낄 만한 지점에서 플라톤이 주장을 제기한 맥락을 풍부하게 제시하여 플라톤에 반대하기 전에 먼저 플라톤 철학을 이해하도록 하며, ‘민주주의’, ‘전체주의’, ‘형이상학’, ‘철학’과 같은 개념을 깊이를 통해 새롭게 생각해보도록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플라톤은 ~이다’와 같은 단언이 주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넘어서 정치·철학 사상의 입체적인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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