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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12.12 군사반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지키고자 반란 세력과 교전하다 사망한 김오랑 소령의 일대기를 그린 평전이다. 김오랑은 자신의 삶에 무척 충실했으며 정의가 아니면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비록 그는 작았지만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군인 정신은 활화산과 같았다. 김오랑은 전두환, 노태우 등 반란 세력이 만든 오욕의 역사 한 귀퉁이에 작은 빛을 비추고 떠남으로써 참 군인이 되엇다. 하지만 가족사는 비극이 되었고, 여전히 우리는 5.16, 12.12 등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버려지고, 잊혀진’ 참 군인의 정신이 무엇인지 김오랑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
목차
추천사 유승민 전)국회의원 / 추천사 전임범 전)제25대 특전사령관 / 김오랑 평전을 발간하며
세상의 문을 두드리다
작은 호랑이의 꿈
격동의 역사 속 군인들과
육군사관학교를 향하여
열릴 때까지 두드려라
군인의 길, 장교의 길
마음의 고향, 화랑대에서
참군인이 되기 위하여
사랑과 투쟁, 그리고 임관
지휘관의 길
전선에서 꾸는 꿈과 사랑
베트남 전선으로 가다
맹호부대 용사가 되어
새색시와 매복특공조
고국으로, 그녀의 품으로 가는 길
사랑과 투쟁을 위하여
인연과 만남 그리고 봄날의 약속
결혼생활과 교관생활
군인의 길, 군인의 굴
운명의 특전사를 향하여
특전사와 아내와 행복
아내의 눈이 되어
성공하는 특전사 중대장의 원칙
명예로운 군인
행복했던 시간을 끝내고
불의와 정의의 갈림길에서
특전사로 돌아온 바보 김오랑
역사를 뒤흔든 총소리
12월 12일, 피의 수요일
안일한 불의의 길, 험난한 정의의 길
김오랑의 죽음, 그 이후
김오랑 연보 / 참고 문헌
세상의 문을 두드리다
작은 호랑이의 꿈
격동의 역사 속 군인들과
육군사관학교를 향하여
열릴 때까지 두드려라
군인의 길, 장교의 길
마음의 고향, 화랑대에서
참군인이 되기 위하여
사랑과 투쟁, 그리고 임관
지휘관의 길
전선에서 꾸는 꿈과 사랑
베트남 전선으로 가다
맹호부대 용사가 되어
새색시와 매복특공조
고국으로, 그녀의 품으로 가는 길
사랑과 투쟁을 위하여
인연과 만남 그리고 봄날의 약속
결혼생활과 교관생활
군인의 길, 군인의 굴
운명의 특전사를 향하여
특전사와 아내와 행복
아내의 눈이 되어
성공하는 특전사 중대장의 원칙
명예로운 군인
행복했던 시간을 끝내고
불의와 정의의 갈림길에서
특전사로 돌아온 바보 김오랑
역사를 뒤흔든 총소리
12월 12일, 피의 수요일
안일한 불의의 길, 험난한 정의의 길
김오랑의 죽음, 그 이후
김오랑 연보 / 참고 문헌
책 속으로
지금도 육군사관학교나 특전사령부 모두 추도식에는 참석하고 있지 않다. 물론 12.12 군사반란과 관련한 그 어떤 인사의 참여도 전무하다. 한때 군 내부에서는 김오랑 중령의 군인정신을 기리자는 분위기가 높았던 적도 있다. 반면 일부에서는 그의 행위를 무모한 짓으로 일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12.12 군사반란을 주도했던 지휘부 역시 군인 입장에서 본다면 김오랑 중령은 다시없을 훌륭한 부하가 아니었을까? 군대는 한 나라가 주권을 행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말이 있다. 군대가 없고서는 주권 자체를 수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군대 안에서 끝까지 정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사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추모회는 불행한 시대에 잠깐 머물다 간 한 사람이 아닌 오래토록 우리의 곁에 빛나는 별로 살아 있을 참군인의 삶과 죽음을 추모하고자 한다.
--- p.19
매복 작전으로 대단한 칭찬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경계 임무가 주인 중대라 이따금 터지는 안전사고로만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투를 통한 혁혁한 전과를 올리자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중대원들의 사기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는 베트콩들을 상대로 한 매복 작전의 성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오랑은 중대장과 함께 인헌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전투 시 용감히 싸운 결과 임무 이상의 능력으로 뚜렷한 공적을 발휘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훈장이었다. 그 후로도 김오랑은 예상 이동로의 관측 능력과 정보를 바탕으로 한 상황 판단으로 모두 두 차례의 성과를 더 거둘 수 있었다.
--- p.160
백영옥이 말한 박 소령은 16대대 18지역대장 박종규였다. 그는 1979년 12.12 군사반란 때 15대대장으로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대대본부 중대 병력을 이끌고 출동하게 된다. 그러나 김오랑과 박종규는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한 시간 속에서 인연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박종규는 육군사관학교 제23기로 김오랑의 2년 선배였다. 충청도 출신인 그는 생도 시절 럭비 선수로 이름을 날렸는데 그에 어울리게 우람한 체격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제3공수여단 간부관사 비호아파트에서 김오랑과 이웃해 살며 형제처럼 지냈다. 특히 아내들끼리는 소소한 살림은 물론 정까지 나눌 정도로 절친했다.
--- p.19
매복 작전으로 대단한 칭찬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경계 임무가 주인 중대라 이따금 터지는 안전사고로만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투를 통한 혁혁한 전과를 올리자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중대원들의 사기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는 베트콩들을 상대로 한 매복 작전의 성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오랑은 중대장과 함께 인헌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전투 시 용감히 싸운 결과 임무 이상의 능력으로 뚜렷한 공적을 발휘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훈장이었다. 그 후로도 김오랑은 예상 이동로의 관측 능력과 정보를 바탕으로 한 상황 판단으로 모두 두 차례의 성과를 더 거둘 수 있었다.
--- p.160
백영옥이 말한 박 소령은 16대대 18지역대장 박종규였다. 그는 1979년 12.12 군사반란 때 15대대장으로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대대본부 중대 병력을 이끌고 출동하게 된다. 그러나 김오랑과 박종규는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한 시간 속에서 인연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박종규는 육군사관학교 제23기로 김오랑의 2년 선배였다. 충청도 출신인 그는 생도 시절 럭비 선수로 이름을 날렸는데 그에 어울리게 우람한 체격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제3공수여단 간부관사 비호아파트에서 김오랑과 이웃해 살며 형제처럼 지냈다. 특히 아내들끼리는 소소한 살림은 물론 정까지 나눌 정도로 절친했다.
--- p.234
출판사 리뷰
“안일한 불의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
‘영화 서울의봄’ 특전사 오진호 소령의 실제 인물
군사 반란에 맞서 사령관을 지키고 군과 국가의 체제 수호를 위해 몸 바친
김오랑 중령의 일대기
참군인으로 죽어서 ‘정의의 길’이 되다
“혹시 김 소령도 내게 할 말이 있는 거 아닌가?”
“… 없습니다.”
“할 말 있으면 솔직히 해보게.”
“사령관님께서 말씀하십시오.”
“…”
사령관실을 나서려는데 정병주의 목소리가 등을 어루만지듯 들려왔다.
“김 소령, 작지만 크다는 생각을 했네. 내가 하고 싶은 말일세.”
탕탕탕탕탕탕-. 1979년 12월 13일 0시 20분에 울린 총소리. 신군부의 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에 맞선 김오랑 소령은 절친했던 제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의 사격명령에 따라 여섯 발의 총탄에 맞고 쓰러졌다. 이날 김오랑 소령의 죽음과 신군부의 특전사사령관 체포는 12.12 군사쿠데타 성공의 서막이자 또다시 군사정권 연장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알리는 비보가 되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불의에 감연히 맞선 김오랑 소령은 오늘날 12.12가 군사반란이라는 법적·역사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무공훈장 추서나 추모비 건립 등에서 신군부 잔존 세력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또 반란수괴 전두환의 육사 사열에서 보듯 김오랑의 명예와 군인정신은 버젓이 짓밟히고 있다. 지금도 육사는 군사쿠데타에 성공한 이들 선배와 그에 맞선 선배들의 군인정신을 혼동하고 있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고 있다.
이 책은 김오랑이 정의의 길을 걷고자 어떻게 살았으며 참군인 정신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오롯이 담은 평전이다. 김오랑은 가난의 굴레에서도 강인한 정신을 바탕으로 육사에 입학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임관한 후에는 수색중대와 베트남 전쟁 파병 등 전후방 주요 부대에서 훌륭히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베트남 전쟁 시 매복 작전에서 베트콩과의 교전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려 인헌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으며, 이후 감각적인 관측 능력과 정보를 바탕으로 적의 예상 이동로를 정확히 파악해 두 차례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베트남 파병 때 시작한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는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펜팔로 시작한 연애는 결국 결혼에 이르렀고, 그의 순애보적인 사랑은 김오랑이 특전사로 원복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총탄에 쓰러진 뒤 김오랑의 아내 백영옥은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해 끝내 김오랑의 가족사는 비극이 되고 말았다. 김오랑은 베트남 파병에서 돌아온 후 학군단 교관을 거쳐 육군보병학교, 특전사, 육군대학, 그리고 다시 특전사로 돌아와 특전사령관의 비서로 보임되었고, 마침내 12월 13일 0시 20분 역사의 하늘에 뜬 장엄한 별이 되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아니 12.12의 진행 상황을 두고도 논란은 여전하다. 가해자의 입장이 다르고 피해자의 입장이 다르다. 저자들은 좀더 객관적인 집필을 위해 12.12 관련자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그때의 상황을 재구성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특히 가족처럼 아껴주던 박종규와의 교전 상황에서는 그의 검찰 진술 기록, 정승화의 증언을 토대로 비교적 상세히 전하고 있다. 박종규는 2009년 12.12 군사반란 30주기를 앞두고 ‘김오랑 중령 추모회’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12.12의 과실은 없고 우리 둘(박종규, 나영조)이 항암에 지쳐 누워 있으니 이제 우리 둘 모두 용서해주시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주십시오”라며 “나는 완전한 패배자”라고 주장했다. 그 밖에도 책에서는 12.12 관련 주역들의 행적을 자세히 추적하고 있다.
특히 저자들 중 한 사람인 김준철은 김오랑의 육사 25기 동기 중 강창희 현 국회의장, 황진하 의원, 권경석 전 의원(모두 새누리당 소속) 등을 만나 김오랑 중령의 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등에 대한 입장을 듣지만 그들 모두 12.12를 군사반란으로 인정하지 않아 입법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들 모두 하나회 소속 인사들이었다.
이처럼 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12.12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오랑의 명예회복이 더딜수록 12.12의 종언 역시 요원할 뿐이다. 이 책이 아름다운 군인, 아니 참 군인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게 저자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영화 서울의봄’ 특전사 오진호 소령의 실제 인물
군사 반란에 맞서 사령관을 지키고 군과 국가의 체제 수호를 위해 몸 바친
김오랑 중령의 일대기
참군인으로 죽어서 ‘정의의 길’이 되다
“혹시 김 소령도 내게 할 말이 있는 거 아닌가?”
“… 없습니다.”
“할 말 있으면 솔직히 해보게.”
“사령관님께서 말씀하십시오.”
“…”
사령관실을 나서려는데 정병주의 목소리가 등을 어루만지듯 들려왔다.
“김 소령, 작지만 크다는 생각을 했네. 내가 하고 싶은 말일세.”
탕탕탕탕탕탕-. 1979년 12월 13일 0시 20분에 울린 총소리. 신군부의 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에 맞선 김오랑 소령은 절친했던 제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의 사격명령에 따라 여섯 발의 총탄에 맞고 쓰러졌다. 이날 김오랑 소령의 죽음과 신군부의 특전사사령관 체포는 12.12 군사쿠데타 성공의 서막이자 또다시 군사정권 연장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알리는 비보가 되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불의에 감연히 맞선 김오랑 소령은 오늘날 12.12가 군사반란이라는 법적·역사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무공훈장 추서나 추모비 건립 등에서 신군부 잔존 세력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또 반란수괴 전두환의 육사 사열에서 보듯 김오랑의 명예와 군인정신은 버젓이 짓밟히고 있다. 지금도 육사는 군사쿠데타에 성공한 이들 선배와 그에 맞선 선배들의 군인정신을 혼동하고 있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고 있다.
이 책은 김오랑이 정의의 길을 걷고자 어떻게 살았으며 참군인 정신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오롯이 담은 평전이다. 김오랑은 가난의 굴레에서도 강인한 정신을 바탕으로 육사에 입학했으며, 졸업과 동시에 임관한 후에는 수색중대와 베트남 전쟁 파병 등 전후방 주요 부대에서 훌륭히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베트남 전쟁 시 매복 작전에서 베트콩과의 교전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려 인헌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으며, 이후 감각적인 관측 능력과 정보를 바탕으로 적의 예상 이동로를 정확히 파악해 두 차례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베트남 파병 때 시작한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는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펜팔로 시작한 연애는 결국 결혼에 이르렀고, 그의 순애보적인 사랑은 김오랑이 특전사로 원복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총탄에 쓰러진 뒤 김오랑의 아내 백영옥은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해 끝내 김오랑의 가족사는 비극이 되고 말았다. 김오랑은 베트남 파병에서 돌아온 후 학군단 교관을 거쳐 육군보병학교, 특전사, 육군대학, 그리고 다시 특전사로 돌아와 특전사령관의 비서로 보임되었고, 마침내 12월 13일 0시 20분 역사의 하늘에 뜬 장엄한 별이 되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아니 12.12의 진행 상황을 두고도 논란은 여전하다. 가해자의 입장이 다르고 피해자의 입장이 다르다. 저자들은 좀더 객관적인 집필을 위해 12.12 관련자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그때의 상황을 재구성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특히 가족처럼 아껴주던 박종규와의 교전 상황에서는 그의 검찰 진술 기록, 정승화의 증언을 토대로 비교적 상세히 전하고 있다. 박종규는 2009년 12.12 군사반란 30주기를 앞두고 ‘김오랑 중령 추모회’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12.12의 과실은 없고 우리 둘(박종규, 나영조)이 항암에 지쳐 누워 있으니 이제 우리 둘 모두 용서해주시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주십시오”라며 “나는 완전한 패배자”라고 주장했다. 그 밖에도 책에서는 12.12 관련 주역들의 행적을 자세히 추적하고 있다.
특히 저자들 중 한 사람인 김준철은 김오랑의 육사 25기 동기 중 강창희 현 국회의장, 황진하 의원, 권경석 전 의원(모두 새누리당 소속) 등을 만나 김오랑 중령의 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등에 대한 입장을 듣지만 그들 모두 12.12를 군사반란으로 인정하지 않아 입법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들 모두 하나회 소속 인사들이었다.
이처럼 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12.12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오랑의 명예회복이 더딜수록 12.12의 종언 역시 요원할 뿐이다. 이 책이 아름다운 군인, 아니 참 군인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게 저자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37.대한민국 현대사 (독서>책소개) > 2.정부수립이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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