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인문교양 (독서요약)/1.인문교양

예수, 하버드에 오다 (2026) - 1세기 랍비의 지혜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방박사님 2026. 5. 20. 07:13
728x90

책소개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0년간 사랑받은 하버드 명강의 ‘예수와 윤리적 삶’!

1세기에 살았던 한 사람이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
어떤 윤리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이 책은 ‘무조건 믿습니다’를 외는 ‘믿음 좋은 크리스천들’과는
달라도 너무도 다른 젊은이들의 도마 위에서 예수가 어떻게 요리되는지를 보여준다.
─조현(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유튜브 조현TV휴심정 운영자)

살다 보면 종종 결정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때론 알면서도 비윤리의 경계를 넘는다.
딜레마에 빠지는 그때, 기독교인들만의 예수가 아닌, 2000년 전 유대 땅에 살았던
지혜 높은 랍비 예수를 만나 가슴을 울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최인아(최인아 책방 대표)

1980년대 초 하버드대학교는 학부에 ‘윤리적 사유(Moral Reasoning)’ 분과를 신설했다.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는 하버드 졸업생들이 부정한 거래나 불법 행위에 연루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학교 차원에서 ‘윤리적 사유’를 교육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 분과의 강좌로 개설돼, 20여 년이 넘도록 학생들의 호응을 받아온 ‘예수와 윤리적 삶(Jesus and Moral Life)’이라는 강의의 내용을 총괄하여 책으로 옮긴 것이다.

 책에서는 예수의 윤리적 모범과 가르침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윤리적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저자 하비 콕스는 ‘공정’, ‘공동체’, ‘관용’, ‘연대’, ‘정의로운 선택’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핵심 윤리적 가치들을 예수의 가르침과 연결한다.

 가족 관계, 정치, 유전학, 성, 계급과 세대 갈등, 의료와 생명 윤리, 인종 문제, 생태계, 폭력과 비폭력, 죽음과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는 윤리적 선택의 장면들을 폭넓게 다룬다.

 특히 예수를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이끄는 ‘랍비’로 설정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급변하는 윤리적, 도덕적 환경 속에서 1세기 갈릴리의 랍비 예수를 오늘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 속에서 소화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또한 이 책은 예수를 교리적 대상이나 신앙 고백의 중심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대신 예수를 윤리적 결단을 촉구하는 질문자,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스승, 그리고 권력과 제도에 도전한 사회적 비평가로 조명한다. 

강의실이라는 현대적 공간에서 예수를 다시 불러낸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목차
추천의 말
들어가는 말

1. 그는 그때, 우리는 지금
2. 랍비 예수의 등장
3. 이야기로 가득한 세상

I 그들이 예수에 대해 한 이야기들

4. ‘낳고’의 발라드
5. 적절한 여인을 고르다
6. 에덴에서 추방
7. 구루들과 의심스러운 자들
8. 시므온 효과
9. 마귀를 물리쳐라
10. 캠페인이 시작되다

II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

11. 예수는 자기 백성들의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12. 소금과 등잔
13. 랍비가 토라를 가르치다
14. 비유와 죽비
15. 부정한 최고 경영자와 망나니 아들
16. 큰 무리가 모여든 까닭
17. 아마겟돈 신드롬

III 다른 이들이 예수에 대해 한 더 많은 이야기들

18. 변화산과 예언자의 밤길
19. 배수진과 가두극장
20. 재판과 재심
21. 죽은 자가 걸어 다님
22. 이성, 감정 그리고 고문
23.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24. 하나님 없는 세상?
25. 부활절 이야기
26. 우주의 홍소

마치면서
감사의 말
초판 옮긴이의 말
개정판에 붙여


저자 소개 
저 : 하비 콕스 (Harvey Cox) 
1929년에 태어났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 1년간 독일 베를린에서 거주하면서 동독 교회와 하버드대학 간의 연락 책임을 맡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기독학생운동(SCM)과 흑인민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보스턴 흑인 거주 지역에서 흑인해방과 민권운동을 위해 노력했다. 

1965년 이후 하버드신학대학교에서 종교학을 가르쳤다. ...


역 :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종교학과 명예 교수. 

우리 시대 대표적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McMaster University)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 등의 객원교수, 북미 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 한국종...

책 속으로
1980년대 초 하버드대학교 학부에서 나에게 새로 도입된 학부 교과 과정인 ‘윤리적 사유(Moral Reasoning)’ 분과에서 예수에 관한 과목 하나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을 당시, 나 스스로가 이런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있었다.

 하버드대학교 학부에서 이런 분과를 창설한 것은 우리 주변에서 점점 더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온갖 현상을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부정한 거래, 불의한 범법 행위, 환자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많은 의사들, 자기들의 연구 자료를 날조하는 과학자들 등에 대한 이야기가 왜 이리도 많이 들려오는가? 

더욱 한심한 것은 왜 이런 엉터리들 중 더러가 바로 우리 대학 졸업생들이란 말인가?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왜 그다지도 많이 그렇게 엄청나게 나쁜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 학생들이 받는 교육에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게 아닐까?
--- pp.15-16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책이 하버드 교정을 넘어 더 먼 곳으로 퍼져가, 더욱 포괄적인 탐색 작업을 촉발하고 모든 연령층의 독자들과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혹은 그런 배경이 없는 독자들을 초청해서, 이 신나는 탐색 작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의 독자들이 내 강의를 듣던 대부분의 학생 이상으로 성경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고 전제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답답한 윤리적 근본주의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는 식의 상대주의 중 어느 쪽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1세기 저 로마 제국 어느 이름 모를 구석에 나타난 한 랍비를 다시 한번 새롭게 살펴보도록 하자고 초청하는 것이다. 

그의 삶은 역사상 윤리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컸다고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 p.31

예수를 극히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당황스러운 존재로 생각한 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었다. 

자기 전통을 잘 알고 있던 유대인 학생들은 예수를 이사야나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 전통을 이어받은 동료 유대인으로 생각했다. 

불교인들은 당장 예수를 중생들이 모두 열반에 들도록 도와주기 위해 스스로 열반에 들기를 미루기로 한 ‘보살’이라 생각했다. 

이슬람교도들은 그를 예언자들 중 하나라고 여기고, 예수가 쿠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이 모두가 예수를 영감의 원천으로, 그리고 용기와 자기희생의 모델로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안내자로서는 뭔가 꼭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 pp.34-35

학생들이라고 딴 별에 사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윤리적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면서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면, 음식점이나 가족 모임, 텔레비전 토론 패널, 피자집, 동네 술집에서 하는 이야기를 엿들을 때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선의와 혼란의 메아리를 발견할 수 있다. 

학생들이든 어른들이든 우리 모두는 결국 같은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셈이다. 

우리는 옛 지침으로는 모든 사람을 다 설득할 수 없는, 심지어 우리마저도 설득할 수 없는 시대에 살면서 ‘올바른 일’을 하려 애쓰고 있다. 

도대체 ‘올바른 일’이란 무엇인가? 예수는 그것이 무엇인지 분간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
--- p.43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예수에게 부여한 온갖 현란한 호칭 이전에 그는 무엇보다도 유대인 랍비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전례가 없는 특수한 역사적 정황 속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채택하기는 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유대인의 율법 토라를 가르치고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려고 애쓴 유대인 랍비였다. 

그는 어려운 질문에 손쉬운 답을 주는 대신, 오랜 랍비적 전통에 따라 또 다른 질문을 던지거나 한 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대인 랍비였다.
--- p.44

예수와 우리 사이에 있는 간극을 메우는 일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비결은 랍비의 전통에 따라 이야기하는 이로서의 예수와 우리 자신의 인간적 상상력 사이에 가로놓인 연결 고리를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합쳐질 때, 그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사는 분으로서, 윤리적으로 잠든 상태에 있는 우리를 일깨우는 분이 될 수 있다.
--- p.45

이것이 바로 랍비로서의 예수와 윤리적 상상력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그의 짧은 생애를 이야기로 들려주고 그것들을 실천하게 하는 일로 보냈다. 

심지어 그가 도발적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이라든지 고문받고 죽음을 당한 것도 그의 삶에 대한 설화의 일부가 되었다. 그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일깨움을 얻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사람들이 그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서 생각하도록, 선택과 행동이 필요한 여러 가지 상황에 그들 스스로를 넣고 상상해보도록, 요컨대, 그들의 상상력을 사용하도록 끊임없이 사람들을 일깨워주었다.
--- p.50

종교적 설화는 모든 설화와 마찬가지로 해가 될 수도 있고 이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야기의 세계에서 종교적 설화는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모든 설화에서와 같이 종교적 설화는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족장들과 왕들에 대한 이야기처럼 전설이나 노래나 무용담 같은 형식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요나나 에스더의 이야기처럼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선지자 에스겔의 이야기에 나오는 바퀴와 불병거처럼, 혹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전갈이
나 용처럼 상상적인 비전의 결정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적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들과 다른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종교적 이야기들이 그 자체를 넘어, 경험적 입증이나 반증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결정적 차원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다.
--- p.66

랍비 예수는 전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이야기꾼이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도 서로 겨루고 상충하는 설화의 세계에서 살았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우열을 다투던 다른 많은 이야기가 오래전에 사라져 잠잠해진 이후 아직까지 계속 살아 있다. 

누가 지금 로마 황제의 영광과 권력을 노래하는가?

 누가 지금 이집트 신 이시스, 페르시아의 신 미트라의 어두운 신비를 읊조리는가? 

그러나 이 팔레스타인 랍비의 이야기는 2,000년 이상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입에서 되풀이되고 있지 않은가. 

그의 이야기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오늘 이 시대를 위한 그의 영적, 윤리적 가르침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첫발을 디디는 것이다.
--- p.81

다른 학생은 나에게 예수가 오늘날 이른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라는 것에 시달린 일이 있으리라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물론 나는 만족스러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마도 예수는 알고 있었고, 그래서 다른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비상한 능력을 가지게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가 그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학생의 질문은 하나의 압도적인 설화가 어떻게 심각한 윤리적 반성을 촉발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 p.134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제도는 일괄적인 경제적 재분배에 해당한다. 

종들도 자유함을 얻고, 모든 부채와 채무도 탕감되고, 융자도 용서를 받고, 저당 잡힌 토지도 본래의 소유주에게로 돌아가고, 모든 농지까지도 1년 동안 경작하지 않은 채 놀린다. 

희년 제도는 축적되는 불의의 힘을 인정하고 근본적이고 과격한 해결책을 명한다. 

부자와 힘센 사람은 더욱 큰 부자가 되고 더욱더 힘센 사람이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획기적인 ‘뉴딜’, 다시 다같이 ‘출발점으로 돌아가 시작’할 기회가 필요하다.
--- p.176

랍비 예수의 비유들을 다른 영적 스승들이 말한 비유들과 비교해보면 거기에는 놀라운 유사점과 중요한 차이 모두가 있다. 이야기는 물론 많은 종교 전통에서 즐겨 쓰던 교수 방법이다. 

유대교 랍비들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도교 ‘사막의 교부’들도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수피 수도사들과 불교 스님들도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종류의 이야기를 하고 있나를 보면 그들 사이에 같은 점이 무엇이고 다른 점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그러나 예수가 한 이야기들은 선불교 스님들이 해준 유명한 공안(公案)과 비교할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사들도 어떤 윤리적 지침을 전달하려는 것보다는 듣는 사람들에게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려 했다.
--- p.241

기술의 발달, 특히 무기 제조 기술의 발달로 개인들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와 분리되었고, 그 결과 인간은 자신이 거기에 개입됐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고 엄청난 악을 저지를 수 있게 되었다.

 몇천 마일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이 계산해놓은 목표물을 향해 ‘발사’ 단추를 누르는 것은 어떤 사람을 향해 창을 던지는 것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싸움에 쓰던 도끼와 탄도 미사일 사이에는 양적 격차가 존재한다. 대량 살상이 일상화될 수 있다.
--- pp.377-378

비록 오늘의 세계관이 이런 성경 이야기가 떠돌아다닐 때의 세계관과 매우 다르지만, 아직도 둘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거나, 적어도 얼른 보기에 그런 유사성이 있는 듯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1세기 조상들처럼 21세기에 사는 우리도 죽음의 문제에 아직도 매료와 함께 두려움을 느끼고, 죽은 사람들이 죽어 있지 않다고 할 때 불안과 함께 묘한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부활이라는 생각은 처음 퍼진 이후 아직까지 하나의 ‘스캔들’로 남아 있지만, 이를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는 시대마다 달랐다.
--- p.413

물론 이것은 부활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일 뿐이다. 

나는 물론 다른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어느 해석도 폄하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 ‘해석’이라는 것은 매우 아류적이다. 

그 ‘무엇’은 우리의 모든 이론이나 해석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가져다주고 일깨워주는 경험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때, 그 모든 이론은 그 중요성을 잃기 시작한다.
--- p.431

이런 생각은 생태 문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과 동물과 식물은 이 지구라는 우주선에서 다 함께 큰 위험에 직면해 있다. 

우주선 자체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운행하고 있는 이 우주 바다 자체도 위험하다. 모두가 같은 것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공동의 운명에 처해 있다. 

역사의 궁극 완성을 이야기할 때 나 개인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서 안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인간 역사에 초점을 맞추기만 해서도 안 된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인간종)’가 나타나기 이전 억겁의 세월을 지탱해온 실재를 위한 희망이어야 하고, 그 희망은 목성의 가장 먼 달이나 지극히 작은 우리 이웃을 위한 희망이기도 하다.
--- p.437

그러나 거창한 질문, 곧 윤리적 용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윤리적 결단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들이 믿기에 무엇이 옳은 일인지를 가려내는 법을 배운 다음, 그들은 그것을 그대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배포를 가지고 있는가? 

인기가 없는 결단의 결과를 참아내고, 반대와 조롱이 그들을 고립시키더라도 끝까지 의연해할 용기를 불러올 수 있는가? (450~451쪽)

예수는 어느 교회 기구에 속해 있지 않다. 사실 속한 적도 없다.

 예수가 이제 ‘세상에 속해 있다면’ 그것이 그가 속해 있어야 마땅한 곳이다. 

만약 이슬람교도들이나 불교 신도들, 여성 운동가나 인문주의자들이 예수를 자기들의 사람이라 주장한다면, 그들의 예수관이 물론 유일한 결정판일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한, 그 주장도 전적으로 정당하다. 

나는 예수를 환각초라 한다든가 떠오르는 사업가라 한다거나 심지어 훌륭한 의도를 가진 정신병자라 묘사한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예수가 이런 이상한 수의를 벗어던지고 그들이 그를 장사 지낸 무덤의 무장 보초원까지도 나가떨어지게 하리라 확신한다. 

그 젊은이가 부활절 주일에 무덤에 나타난 세 여인에게 던진 힘 있는 질문, “어찌하여 부인들은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습니까?

” 하는 것은 아직도 적절한 질문이다.
--- pp.456-457

예수가 하버드에 왔다. 한 번만이 아니다.

 그는 내가 ‘예수와 윤리적 삶’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기 오래전부터 와 있었고 내가 그 과목을 가르치지 않게 되었어도 하버드를 떠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그는 아직 거기 있는데, 여전히 포착하기 어렵고, 여전히 꼭 집어 뭐라 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는 변함이 없는 이, 바로 그 랍비다.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p.458

그들은 모두 나사렛 예수를 더 알면 알수록 그들의 윤리적 사유가 그만큼 명쾌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그 여학생과 마찬가지로, 많은 학생은 역사적으로 가장 큰 윤리적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이 인간 예수를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수는 많은 경우 너무 멀리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우리가 잘못된 곳에서 그를 찾기 때문일 것이다.
--- pp.462-463

출판사 리뷰
하버드 강의실에 울려 퍼진 예수의 질문들!
윤리적 선택의 갈림길에서 던지는
도발적이고 사려 깊은 성찰과
1세기 랍비의 지혜로 되찾는 보편적 삶의 윤리

오늘의 언어로 다시 만나는 《예수, 하버드에 오다》 한국어 개정판 출간

국내 종교, 인문 분야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 오랫동안 읽혀온 하비 콕스의 《예수, 하버드에 오다(When Jesus Came to Harvard)》가 한국어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됐다. 

《예수, 하버드에 오다》는 세계적 신학자이자 사회윤리 사상가인 하비 콕스가 하버드대학교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다시 읽고 질문한 기록이다. 

이 책은 예수를 단순한 신앙의 대상이나 종교적 상징으로 다루지 않고, 오늘의 사회와 삶을 향해 윤리적 결단을 요구하는 질문자로 되살려낸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기존 번역문을 현재 독자의 언어 감각에 맞게 다듬고 종교, 윤리, 철학 분야의 현대적 용어 체계를 반영해 가독성을 크게 높였다. 

초판 출간 이후 변화한 언어 환경과 학문적 논의를 반영해 종교, 윤리, 철학 분야의 현대적 용어 체계를 적용했다. 

이를 통해 학문적 엄밀성은 유지하되 불필요한 난해함을 줄여, 종교적 배경이 없는 일반 독자들도 책의 문제의식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표지 디자인 역시 새롭게 재구성됐다. 

하버드대학교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예수를 상징하는 크로스를 결합해, 인문서의 무게감과 현대적 감각을 동시에 담아냈다.

 이는 ‘하버드’와 ‘예수’라는 두 상징적 공간의 만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하비 콕스, 하버드에서 예수를 다시 묻다

저자 하비 콕스는 40여 년간 하버드대학교에서 종교와 사회, 윤리 문제를 강의해온 세계적 신학자다. 

그는 종교를 교회 내부의 신앙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구조와 정치, 문화 속에서 작동하는 공적 담론으로 분석해온 대표적인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예수, 하버드에 오다》는 콕스가 1980년대 초부터 20여 년 동안 하버드대학교 학부에서 개설한 ‘예수와 윤리적 삶(Jesus and Moral Life)’이라는 강의를 토대로 집필한 책이다. 당시 이 강의는 ‘윤리적 사유(Moral Reasoning)’ 분과에 속해 있었으며, 종교 강좌가 아니라 윤리 교육의 일환으로 개설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강의의 출발점은 단순했다.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불의와, 심지어 명문대 졸업생들이 연루된 비윤리적 사건들 앞에서, 대학 교육이 윤리적 판단 능력을 길러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콕스는 예수를 통해 학생들과 함께 윤리적 사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답을 주지 않는 스승, 질문을 던지는 랍비 예수

이 책에서 예수는 교리를 가르치는 종교 창시자가 아니라, 질문을 통해 사고를 흔드는 유대 랍비로 등장한다. 

콕스는 예수를 철저히 1세기 유대 전통 속의 랍비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의 말과 행동을 당대의 문화적, 사회적 맥락 안에서 해석한다. 

랍비 전통의 핵심은 고정된 규범을 반복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이야기와 비유, 반문을 통해 기존의 관습과 사고방식을 뒤흔들고 듣는 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예수 역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사람들 각자가 윤리적 선택의 책임을 지도록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 하버드에 오다》는 ‘예수라면 무엇을 했을까’라는 단순한 모방의 질문을 넘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선택해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다. 

예수를 교리적 대상이나 신앙 고백의 중심이 아니라 윤리적 결단을 촉구하는 질문자,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스승, 권력과 제도에 도전한 사회적 비평가로 조명한다. 강의실이라는 현대적 공간에서 예수를 다시 불러낸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공정, 공동체, 연대 ― 오늘의 윤리적 선택을 묻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매우 폭넓다. 

가족 관계와 정치, 유전학과 성, 계급과 세대 갈등, 의료 과정과 생명 윤리, 인종 문제, 생태계, 고문과 폭력·비폭력, 죽음과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가 직면한 주요 윤리적 쟁점들이 예수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제시된다. 

특히 ‘공정’, ‘공동체’, ‘관용’, ‘연대’, ‘정의로운 선택’과 같은 가치들이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사유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수의 비유와 행동은 오늘의 복잡한 사회 문제 앞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윤리적 상상력을 제공한다. 

하비 콕스는 이 책에서 예수를 통해 윤리적 근본주의와 무책임한 상대주의라는 두 극단을 모두 경계한다.

 또한 독자에게 정답을 제공하지 않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사고의 방향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급변하는 윤리적, 도덕적 환경 속에서 1세기 갈릴리의 랍비 예수를 오늘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삶 속에서 소화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종교를 다시 사유하다

《예수, 하버드에 오다》는 종교가 세속화된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도 중요한 질문으로 다룬다. 

하버드대학교는 원래 목사 양성을 위해 설립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대표적인 세속적 연구 중심 대학이 되었다. 반면 예수는 세계 최대 종교의 중심인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이 두 상징적 공간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가치의 충돌과 혼란이 심화된 시대적 상황을 드러낸다. 

과학과 합리성이 종교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종교는 오늘날 극단화된 형태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하비 콕스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종교 전통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재사유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다.

그는 신앙 전통을 과거의 유물로 보존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할 공적 자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종교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르거나, 반대로 정치적으로 과잉 동원되는 현실에 대한 중요한 대안적 시각을 제공한다.

지금, 왜 《예수, 하버드에 오다》인가

지식과 정보는 넘치지만 가치의 기준은 혼란스러운 시대, 《예수, 하버드에 오다》는 신앙과 학문, 윤리와 삶의 관계를 다시 묻는 책이다.

 이 책은 신앙을 변호하거나 반박하는 데 머물지 않고, 독자 스스로 질문하고 사유하도록 이끈다. 한국 사회 역시 종교적 다양성과 세속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서 있다. 

대학과 공론장, 미디어에서 종교적 담론은 때로 과도하게 정치화되거나 반대로 사적 영역으로 축소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정판은 학계와 교회, 시민사회가 서로를 오해하지 않고 생산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예수, 하버드에 오다》는 신앙을 변호하거나 반박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신앙과 학문, 공적 삶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솔직하고도 정교하게 드러내며, 독자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과거의 전통을 현재의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지적 훈련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윤리적 상상력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다.

추천평
누군가에게는 몰래 옷자락이라도 만지고 싶은 아이돌 스타였으나 누군가에게는 주먹을 부르는 밉상이었던 청년 예수. 

2000년이 지난 후에도 그는 여전히 환호와 질타의 한가운데 있다. 

성서가 여전히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인데도 말이다. 

크리스천과 무슬림이나 무신론자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다.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도 예수에 대한 다른 견해들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처녀가 남자 없이 임신하고, 하나님이라면서도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에게 버림받음을 한탄하고, 그런데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부활 이야기 등은 과학과 너무도 거리가 멀지만, 정통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믿지 않으면 불신앙이라며 마녀사냥이라도 할 공세를 거두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매도쯤은 아무런 상관조차 하지 않는 하버드생들이 머리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의심스러운 성서 구절에 대해 까놓고 토론을 벌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책은 1912년을 끝으로 예수에 대한 과목이 자취를 감춘 하버드대학교에서 70년 만에 ‘무조건 믿습니다’를 외는 ‘믿음 좋은 크리스천들’과는 달라도 너무도 다른 젊은이들의 도마 위에서 예수가 어떻게 요리되는지를 보여준다. 

시골 교회의 순박한 풍토에서 자랐으면서도 꼰대 기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기적과 섹스에 대한 질문까지도 독려한 하비 콕스 교수가 아니라면 누가 목사가 설립한 학교에서 이렇게 불순한 논쟁을 펼쳐 금기의 둑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가.

하버드대학교에서 대흥행한 하비 콕스 교수의 ‘예수와 윤리적 삶’ 강의는 윤리라는 딱딱한 단어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재미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낄낄거리며 웃다가 어떤 정통 신학자도 가져다주지 못한, 예수가 진정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바로 그곳에 자기도 모르게 가 있게 한다는 것이다. 

유대 랍비 예수가 기존의 유대 교사들에게서는 들어볼 수 없던 비유를 들어 ‘닫힌 감각’을 열어주었듯이, 하비 콕스 교수 역시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눈에 든 들보를 빼준다.

교회 안에서는 모르핀을 맞은 것처럼 기쁨에 들뜨다가도 교회 밖 현실에서는 늘 막히고 힘들고 길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새로운 관점을 열어 활로를 만들어준다. 

가족 관계, 정치 유전학, 성, 계급, 소유, 세대 갈등 등 다양한 상황의 윤리적 선택 앞에서 막막한 현대인들에게, ‘하버드에 온 예수’는 ‘답하는 존재’가 아닌 ‘질문하는 존재’로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깨워주기 때문이다.
- 조현 (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유튜브 조현TV휴심정 운영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나의 ‘인생 책’에서 빠지지 않는 책이다. 

20년 전 ‘진짜 사춘기’를 겪으며 방황할 때 위안을 넘어 지혜와 영감을 얻은 후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선물했다. 나는 이 책을 나는 왜 읽고 또 읽었을까?

살다 보면 종종 결정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대개 유불리를 기준으로 선택하지만 그리 간단치 않을 때도 있다. 가족 문제, 진로 문제, 친구 문제, 돈 문제……, 모두 인격을 시험하는 문제들이다. 

유리한 방향과 인간적으로도 괜찮은 방향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딜레마에 빠지는 그때, 이 책을 펼쳐 보시라. 기독교인들만의 예수가 아닌, 2000년 전 유대 땅에 살았던 지혜 높은 랍비 예수를 만나 가슴을 울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화이트칼라 범죄에 하버드대학교 출신이 연루되는 일이 잦았다. 

그러자 대학 측은 자신들이 뭔가 중요한 걸 가르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졌고 자성 끝에 ‘윤리적 사유’라는 강좌를 개설한다. 

‘예수와 윤리적 삶’은 ‘윤리적 사유’ 강좌의 여러 과목 중 하나였다. 

이 재미없어 보이는 과목을 학생들은 과연 들었을까. 뜻밖에도 굉장히 많은 학생이 수강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윤리 문제로 고민하는 하버드 지성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다들 경쟁과 속도에 치여 살다 정작 중요한 걸 잊고 살았다는 뒤늦은 깨달음이었을까.

지금, 이곳의 우리들도 갈팡질팡하는 것 같다. 때론 알면서도 비윤리의 경계를 넘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언젠가는 이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라는. 이 질문을 가슴에 품은 분들께 마음을 담아 추천한다. 《예수, 하버드에 오다》. 당신의 가슴에도 그를 들이기를!
- 최인아 (최인아 책방 대표)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70333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