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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 천황의 주장처럼, 천황이 왜 백제의 피가 섞였는지 고대 한국 · 일본어와 수사로 풀어낸 책”
2001년 12월 23일 일본의 125대 아카히토 전 천황은 제50 대 천황인 간무 덴노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발언했다. 2013년 나라현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도 속일본기를 인용하며 다시 한 번 이 말을 했다.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는 속일본기에 기록된 몇 줄의 글귀와 아카히토의 발언 몇 마디가 전부는 아니다. 언어와 기록, 수사를 통해서 독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서 말해주고 있다. 일본이라는 섬을 형성할 때 들어온 남방계와 북방계 중 특히 한반도를 통해 들어온 북방계가 신라어보다는 고구려 · 백제어에 유사한 고대 일본어를 구사했고, 고구려계 수사와 일본 수사가 유사한 점까지 더했다. 고대사에서 전한이 부르던 왜는 백여 개의 작은 도시국가를 통칭하지만, 거기서 두각을 나타낸 남방계로 추정되는 야마토 왕조와 규슈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백제 · 북방계로 유추되는 구노국 중 구노국을 통해서 백제와의 관련성을 설명한다.
한 · 일 관계가 단순히 일본의 제국주의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6~7세기에 백제의 왕가와 궁중에서는 백제어로 말을 한 아스카 왕조가 백강 전투에서 총 국민의 0.36%나 되는 32,000명을 출병시키면서까지 싸웠고, 여기서부터 임진왜란을 거쳐, 일제까지 형성됐다는 주장도 한다.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출신인 일본을 잘 알고 있는 저자 김용운이 일본 왕가의 뿌리, 문법 · 음운과 심지어 방언과 수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각으로 천황의 혈통이 백제의 피가 섞여 있음을 밝혀낸다.
2001년 12월 23일 일본의 125대 아카히토 전 천황은 제50 대 천황인 간무 덴노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발언했다. 2013년 나라현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도 속일본기를 인용하며 다시 한 번 이 말을 했다.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는 속일본기에 기록된 몇 줄의 글귀와 아카히토의 발언 몇 마디가 전부는 아니다. 언어와 기록, 수사를 통해서 독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서 말해주고 있다. 일본이라는 섬을 형성할 때 들어온 남방계와 북방계 중 특히 한반도를 통해 들어온 북방계가 신라어보다는 고구려 · 백제어에 유사한 고대 일본어를 구사했고, 고구려계 수사와 일본 수사가 유사한 점까지 더했다. 고대사에서 전한이 부르던 왜는 백여 개의 작은 도시국가를 통칭하지만, 거기서 두각을 나타낸 남방계로 추정되는 야마토 왕조와 규슈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백제 · 북방계로 유추되는 구노국 중 구노국을 통해서 백제와의 관련성을 설명한다.
한 · 일 관계가 단순히 일본의 제국주의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6~7세기에 백제의 왕가와 궁중에서는 백제어로 말을 한 아스카 왕조가 백강 전투에서 총 국민의 0.36%나 되는 32,000명을 출병시키면서까지 싸웠고, 여기서부터 임진왜란을 거쳐, 일제까지 형성됐다는 주장도 한다.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출신인 일본을 잘 알고 있는 저자 김용운이 일본 왕가의 뿌리, 문법 · 음운과 심지어 방언과 수사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각으로 천황의 혈통이 백제의 피가 섞여 있음을 밝혀낸다.
목차
머리말 _ 김용운
추천의 글 _ 김민배
추모의 글 _ 강성재
Ⅰ. 한일어는 하나의 언어권이다
I-1. 일본열도의 탄생
일본열도에 한반도인이 나타난다
고 몽골로이드의 흔적
아이누어와 한·일어의 관계
한반도에 들어온 인종들
통나무 배를 띄우면 일본에 도착했다
I-2. 일본어의 기초어
한반도인과 일본 농업에 관한 낱말
남한어는 고대 일본어의 기초어
I-3. 고대의 일본
일본어의 시점
집단과 우리
신라어와 백제어를 어떻게 구분하나
같은 언어가 갈라지게 되었다
구별할 수 없는 한·일어
I-4. 한·일 수사(數詞)
수학자가 어학을 연구하는 이유
한·일 수사의 연구
고구려계 수사의 40%가 일본어로 남다
수는 ‘가지’와 かず(ka-zu)였다
한·일어는 독립된 언어권이다
II. 백제 색으로 물들어가는 일본
II-1. 한·일의 정복왕조
여러 개의 「왜(倭)」가 있었다
초기 한반도의 국가형성
고대의 국제역학
일본 정사는 백제계 학자가 썼다
II-2. ‘기마민족 정복왕조’
기마민족의 특성
7명의 칸(千)이 일본에 강림했다
민족이동과 정복
한반도에서 야마토로 진출한 세력들 - 스진(崇神)
왜 오왕 - 오진(應神=熊津)
한·왜 연합의 꿈
야마토(大和)는 백제의 ‘지점(담로)’
아스카는 백제의 망명자를 받아들였다
II-3. 오진 엑서더스
백제문화와 문화어의 이전
바다를 건넌 기술자
고열산업 - 스에키와 철
일본열도로 옮긴 백제
II-4. 게이타이 수수께끼 백제왕가와 일본왕가는 하나였다
현 천황가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백제왕가와 천황가
곤지와 게이타이는 동일인물, 그리고 무령왕의 역할
숨겨진 실상
II-5. 아리송한 가계보
진씨(眞氏)와 왕가
고대 일본의 대귀족
일본 천황가의 3계보
II-6. 백제의 한
일본인의 한반도에 대한 원한의 씨
백제 멸망
역사에 If는 필요 없는가
Ⅲ. 일본어는 백제어로부터 발달했다
Ⅲ-1. 천황은 백제어를 썼다
일본어의 출발점
일본어의 실체-천황어
천황이름에 붙는 ‘仁(히토)’는 원래 ‘人(히토)’였다
와카(和歌)는 백제어로 씌어진 것이다
왕인의 와카(和歌)의 낱말
일본 학자의 편견
Ⅲ-2. 백제학자와 일본어
고대 한국어는 현 한국어보다 일본어에 가깝다
백제학자들의 한자 교육
일본 최대 발명은 훈독체
일본 훈독체의 정착
일본 훈독의 보기
왕인에서 기시쓰 슈시(鬼室集斯)까지
Ⅲ-3. 불교어
천황은 순순히 불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처와 ほとけ(ho-to-ke)
‘보제’가 ‘보리’가 된 까닭
불교는 백제인이 보급시켰다
불교어
Ⅲ-4. 방언
교토어는 백제어, 도쿄어는 신라어와 통한다
옛 형용구 枕詞(ma-ku-ra-ko-to-ba)와 방언
백제어 방언
일본 방언의 다양성
도쿄어·교토어의 비교
가고시마는 남방계, 야마구치는 북방계 가고시마 방언
~했당께
Ⅲ-5. 한·일 문법
일본은 문법 면으로도 정복국가였다
한·일 문법논쟁(문법은 완전히 일치한다)
문법보다 중요한 조사의 사용법
소름이 돋는 어법의 일치
Ⅲ-6. 점점 벌어지는 한·일어의 차이
김춘추와 왜 고관의 대화
8세기 중엽에는 통역이 필요했다
Ⅳ. 한자의 개입이 한국어와 일본어를 나누었다
Ⅳ-1. 가깝고도 먼 언어
한·일어가 갈라지게 된 이유
한자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
당과 한반도는 이웃, 일본열도는 너무 멀었다
한자 개입으로 생긴 음운변화
- 한국어 음운은 증대하고 일본어 음운은 변하지 않았다
중국어에 적극적인 한글과 소극적인 일본 가나(?名)
Ⅳ-2. 상이한 한자관
신라와 백제는 한자도 다르게 읽었다
일본인은 한자어를 자유롭게 다룬다
Ⅳ-3. 음운 돌연변이
한·일어에는 인도·유럽어와 같은 음운법칙이 성립되지 않는다모음은 충돌을 싫어한다
어두 ‘ㅅ’은 된소리로 변한다
‘새우와 게’ 현상
일본어는 색깔모자를 좋아한다
r, l 음의 불규칙성
2음절의 ㄹ(r, l) 소실
한·일어에 언어연대학은 성립되지 않는다
Ⅳ-4. 총정리
한·일 대응어를 찾아내는 방법
동류어로 대응을 찾는다
세련되어지는 일본어
한·일어의 음운표
한글
에필로그
부록① 〈수( )에 대해〉
부록② 〈신라어와 백제어가 섞인 수수께끼의 시 - 일본어 통합의 과정〉
추천의 글 _ 김민배
추모의 글 _ 강성재
Ⅰ. 한일어는 하나의 언어권이다
I-1. 일본열도의 탄생
일본열도에 한반도인이 나타난다
고 몽골로이드의 흔적
아이누어와 한·일어의 관계
한반도에 들어온 인종들
통나무 배를 띄우면 일본에 도착했다
I-2. 일본어의 기초어
한반도인과 일본 농업에 관한 낱말
남한어는 고대 일본어의 기초어
I-3. 고대의 일본
일본어의 시점
집단과 우리
신라어와 백제어를 어떻게 구분하나
같은 언어가 갈라지게 되었다
구별할 수 없는 한·일어
I-4. 한·일 수사(數詞)
수학자가 어학을 연구하는 이유
한·일 수사의 연구
고구려계 수사의 40%가 일본어로 남다
수는 ‘가지’와 かず(ka-zu)였다
한·일어는 독립된 언어권이다
II. 백제 색으로 물들어가는 일본
II-1. 한·일의 정복왕조
여러 개의 「왜(倭)」가 있었다
초기 한반도의 국가형성
고대의 국제역학
일본 정사는 백제계 학자가 썼다
II-2. ‘기마민족 정복왕조’
기마민족의 특성
7명의 칸(千)이 일본에 강림했다
민족이동과 정복
한반도에서 야마토로 진출한 세력들 - 스진(崇神)
왜 오왕 - 오진(應神=熊津)
한·왜 연합의 꿈
야마토(大和)는 백제의 ‘지점(담로)’
아스카는 백제의 망명자를 받아들였다
II-3. 오진 엑서더스
백제문화와 문화어의 이전
바다를 건넌 기술자
고열산업 - 스에키와 철
일본열도로 옮긴 백제
II-4. 게이타이 수수께끼 백제왕가와 일본왕가는 하나였다
현 천황가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백제왕가와 천황가
곤지와 게이타이는 동일인물, 그리고 무령왕의 역할
숨겨진 실상
II-5. 아리송한 가계보
진씨(眞氏)와 왕가
고대 일본의 대귀족
일본 천황가의 3계보
II-6. 백제의 한
일본인의 한반도에 대한 원한의 씨
백제 멸망
역사에 If는 필요 없는가
Ⅲ. 일본어는 백제어로부터 발달했다
Ⅲ-1. 천황은 백제어를 썼다
일본어의 출발점
일본어의 실체-천황어
천황이름에 붙는 ‘仁(히토)’는 원래 ‘人(히토)’였다
와카(和歌)는 백제어로 씌어진 것이다
왕인의 와카(和歌)의 낱말
일본 학자의 편견
Ⅲ-2. 백제학자와 일본어
고대 한국어는 현 한국어보다 일본어에 가깝다
백제학자들의 한자 교육
일본 최대 발명은 훈독체
일본 훈독체의 정착
일본 훈독의 보기
왕인에서 기시쓰 슈시(鬼室集斯)까지
Ⅲ-3. 불교어
천황은 순순히 불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처와 ほとけ(ho-to-ke)
‘보제’가 ‘보리’가 된 까닭
불교는 백제인이 보급시켰다
불교어
Ⅲ-4. 방언
교토어는 백제어, 도쿄어는 신라어와 통한다
옛 형용구 枕詞(ma-ku-ra-ko-to-ba)와 방언
백제어 방언
일본 방언의 다양성
도쿄어·교토어의 비교
가고시마는 남방계, 야마구치는 북방계 가고시마 방언
~했당께
Ⅲ-5. 한·일 문법
일본은 문법 면으로도 정복국가였다
한·일 문법논쟁(문법은 완전히 일치한다)
문법보다 중요한 조사의 사용법
소름이 돋는 어법의 일치
Ⅲ-6. 점점 벌어지는 한·일어의 차이
김춘추와 왜 고관의 대화
8세기 중엽에는 통역이 필요했다
Ⅳ. 한자의 개입이 한국어와 일본어를 나누었다
Ⅳ-1. 가깝고도 먼 언어
한·일어가 갈라지게 된 이유
한자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
당과 한반도는 이웃, 일본열도는 너무 멀었다
한자 개입으로 생긴 음운변화
- 한국어 음운은 증대하고 일본어 음운은 변하지 않았다
중국어에 적극적인 한글과 소극적인 일본 가나(?名)
Ⅳ-2. 상이한 한자관
신라와 백제는 한자도 다르게 읽었다
일본인은 한자어를 자유롭게 다룬다
Ⅳ-3. 음운 돌연변이
한·일어에는 인도·유럽어와 같은 음운법칙이 성립되지 않는다모음은 충돌을 싫어한다
어두 ‘ㅅ’은 된소리로 변한다
‘새우와 게’ 현상
일본어는 색깔모자를 좋아한다
r, l 음의 불규칙성
2음절의 ㄹ(r, l) 소실
한·일어에 언어연대학은 성립되지 않는다
Ⅳ-4. 총정리
한·일 대응어를 찾아내는 방법
동류어로 대응을 찾는다
세련되어지는 일본어
한·일어의 음운표
한글
에필로그
부록① 〈수( )에 대해〉
부록② 〈신라어와 백제어가 섞인 수수께끼의 시 - 일본어 통합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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