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생각의 힘 (책소개)/2.한국사회비평

지식인

동방박사님 2021. 11. 1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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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 지식인은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

“과거의 지식인은 시대를 명료하게 해석해주었지만, 지금의 지식인은 시대의 어둠에 어둠을 더할 뿐이다.” 오늘날 프랑스 철학자 레지 드브레의 이 탄식에서 자유로운 지식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지식인의 ‘종말’, 지식인의 ‘죽음’ 등 지식인의 변화를 둘러싼 부정적 담론과 지식인에 대한 비판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특히 한국 사회는 민주화와 정보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변화와 맞물려 지식인 사회의 풍경도, 사회와 대중이 지식인에게 기대하는 바도 큰 변화를 겪었다. 독재 권력에 맞서 진리와 정의를 위해 투신하는 지식인, 도덕성과 시대정신의 담지자로 존경받는 지식인은 과거의 풍경이 되었고, 대학의 학문 연구는 국가와 자본의 요구 앞에서 공공성과 자율성을 훼손당하고 있다. 정보 기술의 발달로 지식이 더 이상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이 되지 못하는 상황도 지식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잠식당한 지식인 사회라는 현실에서 이 책은 다시 ‘지식인이란 누구인가’를 묻는다. 이 질문의 의미는 완벽한 정답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식을 놓지 않는 물음 자체에 있을 것이다. 이 고전적이면서도 첨예한 주제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 속에서 지식인이 어떤 역할을 해왔으며, 만하임·그람시·사르트르·촘스키·푸코 같은 사상가들은 지식인의 본질과 역할에 대해 어떤 주장을 펼쳤는지, 그리고 지식인이 대학·언론·자본주의·민주주의와 관련해 어떤 쟁점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차례로 살펴보며, 마지막으로 오늘날 새롭게 요청되는 지식인상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질문과 탐색을 통해 저자는 지식인이 누구인지 묻는 것은 곧 지식인이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인지를 묻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지식인의 본질은 기술적·기능적 앎에 있지 않다.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현실의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직접 행동하는 사람. ‘권력을 가진 자에게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사회의 약자에게는 관용적 태도를 베푸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 진실의 가치를 믿고 이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 이것이 사람들이 지식인에게 바라는 모습이다. 결국 ‘지식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과연 그 사람이 약자를 위해 얼마만큼 진실한 태도로 어떤 행동을 하느냐의 문제와 닿아 있다.”

행동하는 지성, 약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사람, 사회에 자극을 주는 존재

지식인을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이 말에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의미에 대한 탐색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었는데, 결국 초점은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맞춰져 있다. 이는 지식인은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대중의 암묵적 동의를 반영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지식인은 ‘행동하는 지성’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이 바라는 진정한 지식인은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현실의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는 사람”, “자신의 출신 계급과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사람”, “은폐된 사회 문제를 폭로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함으로써 사회에 자극을 주는 존재”이다. 지식인의 본질은 기술적·기능적 앎에 있지 않으며, 사회는 단순히 지식과 교양을 갖춘 기능적 지식인보다 이성적 판단과 실천력을 지닌 지식인을 더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지식인의 소명과 전문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지식인을 보통 사람과 동떨어진 존재로 유리시킬 위험이 있다. 지식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방식 가운데서 하나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일 뿐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사회 문제에 발언하고 참여하는 것 역시 모든 구성원에게 필요한 덕목이지 특정 직업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무엇이 아니다. 저자는 참된 지식인의 자세와 역할을 강조하되 지식인을 신화화하고 영웅시하는 위험을 경계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도와 계몽은 사절, 연대와 토론은 환영” ― 지식인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하여
지식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느 인터넷 토론방의 캐치프레이즈는 오늘날의 지식인이 지녀야 할 태도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간섭은 사절 연대는 환영, 지도는 사절 지혜는 환영, 계몽은 사절 토론은 환영.” 이 책은 ‘경계인’과 ‘집단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구화·지식정보 사회에 새롭게 요청되는 지식인의 모습을 탐색하고 있다.

지식인이 과거의 지위를 상실한 오늘날의 상황과 관련해 저자는 프랑스의 사상가 폴 발레리의 사유에 주목한다. 발레리가 생각한 지식인은 체제의 내적 기능에 결부되지 않는 존재로,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고착화를 방지한다는 점에서 체제에 기여한다. 지식인의 위상은 체제의 폐쇄성을 열어놓는 지점, 다른 장소의 가능성이 움트는 지점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은 체제 안에 있으면서 그 바깥에 있는 ‘경계인’이다. 이러한 주장은, 지식인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냄으로써 기존의 사고 체계에 흠집을 내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단순히 격려와 위로를 주는 것은 지식인의 행동”이 아니다. 격려와 위로가 희망을 제시하는 듯하지만, 사회 문제를 개인의 과오나 의지의 결핍으로 돌리려는 태도가 숨어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태도는 현재의 고정된 틀을 지속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진정한 지식인은 고정 관념에 대한 도전 속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겪는다. 어느 쪽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 경계에 선 이들은 형벌을 받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하고 이를 구체적인 제도를 통해 실현하려는 태도는 ‘인생은 원래 그래’라거나 ‘둥글둥글하게 살아라’라는 식의 타협적인 태도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진정한 지식인들이 제시하는 전망은 서서히 파급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지식 정보 사회와 지식인의 위기는 대중의 지식인화를 가져왔다. 새로운 탈출구에 대한 대중의 모색은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으로 나타났다. 시민 사회의 민주적 변화와 기술 진보를 거치며 대중이 지식인을 견인하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것이 2000년대 한국의 촛불 시위다. 전위가 이끌고 대중이 따라가는 단일한 대오 대신 각자가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가운데 거대한 힘을 발휘했다. 모든 것이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의 핵심 모순을 극복할 대안의 가능성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이제 소수의 지성으로 사회가 움직이던 시대는 지나갔고, 전통적 스승의 상도 흔들리고 있다. 대중은 스스로 지식을 생산하고 이를 익명의 타인과 공유한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레비의 말처럼 “지속적으로 재평가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는 지식의 공간에서 구성원들이 맺는 유동적인 관계에 집단 지성의 요체”가 있다. 이런 관계가 직접민주주의 담론을 형성하게 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바꾸어주며, 이질적인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 다른 생각을 배척하고 상호 비판의 기능을 상실할 때 구성원 간의 수평적 관계망이 파괴되고 과격한 주장만이 힘을 얻는 오류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지식인의 이중성과 위장된 중립성 등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가운데 지식인의 신뢰 회복을 모색한다. 그 길은 스티브 풀러가 말한 ‘독립적 사고, 자율적 태도’와 ‘인류 공동의 대의를 추구하는 연대’로 나 있다. 에밀 뒤르켐의 말처럼 사회는 호혜와 상호성에 기반을 둔 책임과 연대의 복합체이며, 지식인의 의무는 이러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이 의무를 다할 때 지식인에 대한 신뢰는 자연스럽게 쌓일 것이다.

“이제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회 변화를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식인은 더 이상 누군가를 지도하는 위치에 서지 않아야 하며, 중립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써서도 안 된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 그것은 연대가 아니라 간섭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는 것,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훈계이다.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의 유용한 지식을 타인과 나눌 때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은 다시 한번 부각될 것이다.”

지식인을 말하다, 현대 지식인론의 9가지 풍경
카를 만하임 ― 자유 부동하는 지식인

“지식인은 어떠한 집단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떠도는 사회적 지위를 지닌 사람.” 지식인이 사회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맡는 존재라고 생각한 만하임은 특정 이익 집단에 속하지 않고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뛰어넘은 사람, 즉 계급성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사고하는 ‘자유 부동하는’ 지식인상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지식인의 임무는 피지배 계급의 편에서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철폐하는 변혁의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것이다. 저자는 과연 지식인이 지배 계급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지 등의 맥락에서 만하임 주장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계급적 한계를 벗어나 ‘진실’을 말하려 했던 지식인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들의 노력에 힘입어 사회가 더 나은 곳으로 변해왔다는 점에서, 자신의 사회적 계급적 위치를 벗어나 총체적으로 사회 구조를 봐야 한다는 만하임의 주장은 여전히 타당하다고 말한다.

안토니오 그람시 ― 유기적 지식인

“지식인은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고 그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사회적 책무를 띤 사람이다.” 그람시는 지식인이 연결된 계급의 성격과 지식인 집단의 이념에 따라 ‘전통적 지식인’과 ‘유기적 지식인’을 구분했다. 전통적 지식인은 특정 계급과의 관계를 상실한 사람들이고, 유기적 지식인은 지식을 이용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지식인이다. 지배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이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지식층이라면 피지배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은 프롤레타리아 사회를 위한 지식층으로, 후자가 그람시적 지식인의 본령이다. 그람시는 유기적 지식인 그룹의 총체를 당이라고 보았고 당의 대중에 대한 지도적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지식인의 역할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깨뜨리고, 스스로를 조직하지 못하는 대중을 지도해 혁명의 길로 나아가게 하며, 대중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유기적 지식인을 길러내는 데 있다고 본 그람시의 지식인론은 이론을 넘어 실천적 성격을 지닌다.

장 폴 사르트르 ― 보편적 지식인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사람.” 사르트르에게 지식인은 자기 분야에서 얻은 진리를 사회 전체로 보편화하는 사람이며, 그가 지향하는 보편성은 지배 계급과 자신이 속한 계급의 특수주의를 넘어선다. 출신 계급이나 자신이 봉사하는 계급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지식인은 ‘조직 내의 지식인’에 불과하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은 대중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와 싸워 그것이 낳는 사회의 불평등을 폭로해야 하며, 지배 계급에 의해 주어진 자본으로서의 지식을 민중 문화를 고양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야 하며,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한 계층 안에서 실용 지식 전문가를 배출해 그들이 자신의 계층과 유기적인 지식인이 될 수 있게 힘쓰며, 지식의 보편성, 사상의 자유, 진리를 되찾아 인간의 미래를 전망해야 하며, 궁극적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진행 중인 행동을 근본적인 것으로 전환시켜야 하며, 모든 권력에 대항해 대중이 추구하는 역사적 목표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미셸 푸코 ― 특수적 지식인

“보편적 지식인의 세기는 사라져가고 있다.” 68운동을 통해 대중이 스스로 지식을 소유하고 자신을 표현하게 되면서 보편적 지식인 또는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의 자리가 유전공학자, 사회복지사, 정신과의사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로 대체되었다. 푸코는 이들을 ‘특수적 지식인’이라고 부른다. 특수적 지식인은 보편, 모범, 모두를 위한 진리 대신 가족, 주택, 남녀 관계 같은 일상생활에 대해 성찰하고 그 지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푸코에 따르면 진리를 둘러싼 지식인의 국지적 투쟁은 특정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 중요성을 띤다. 여성, 죄수, 환자, 동성애자 등 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권력의 제약과 폭력에 맞서 벌이는 투쟁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며, 권력의 모든 부분에서 전개된다. 푸코는 다른 이들을 지도하고 강권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거부한다. 특수적 지식인은 대중과 함께 사회의 여러 영역에 존재하는 모순을 파악한 후 투쟁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러한 투쟁이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푸코의 생각이다.

피에르 부르디외 ― 자율적 지식인

“지식인은 보편성의 변호사이다.” 부르디외는 정치적 개입을 지식인의 의무로 간주한다. 보편적 가치가 침해당할 때에 이를 수호하기 위해 정치적 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지식인은 학문·예술과 정치 참여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두 영역을 조화시킬 수 있다. 그는 ‘자율적 지식인’을 제시하면서, 지식인은 외부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자율적 지식인의 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르디외가 보기에 지식인은 문화적 자산을 소유했다는 점에서 지배 계층에 속하지만, 동시에 정치적·경제적 지배를 받는 피지배 계층이기도 하다. 진정한 지식인은 세속적 권력과 정치적·경제적 권위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부르디외의 핵심 주장이다. 그의 자율적 지식인은 보편적 진리의 대변자로서 모든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는 사르트르의 ‘보편적 지식인’과 실질적이고 일상적인 지점에서 활동하는 푸코의 ‘특수적 지식인’을 통합한 지식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와 레지 드브레 ― 지식인의 종언

“인간, 인류, 국가, 국민, 프롤레타리아, 창조자 혹은 이런 차원의 실재의 위치를 차지하면서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주체인 지식인은 이제 종언을 고했다.” 리오타르가 제시하는 변화의 핵심은 지식인의 지적 권위와 행동의 근거가 되었던 보편적 이념이 20세기 중반 이후 가치를 상실했다는 데 있다. 정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거대 서사가 퇴조하고 보편적 가치가 의미를 잃었으며 수행적인 지식 교육이 횡행하는 현실에서는 지식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드브레 역시 “과거의 지식인은 시대를 명료하게 해석해줬지만 지금의 지식인은 시대의 어둠에 어둠을 더할 뿐”이라고 탄식한다. 현대의 지식인을 ‘최후의 지식인’으로 규정하는 드브레는 현대의 지식인들에 대해 여전히 사회의 윤리와 도덕을 선도한다고 확신하는 ‘도덕적 자아도취증’, 자신들만의 틀에 갇혀 대중과 단절된 ‘집단 자폐증’, 연구도 하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현실감 상실증’, 자신의 이름이 잊힐까 두려워 언론에 장단을 맞추고 설익은 견해를 유창한 언변으로 늘어놓는 ‘순간적 임기응변증’, 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내는 ‘만성적 예측 불능증’의 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그문트 바우만 ― 해석자로서의 지식인

바우만은 특히 탈근대 사회의 소비문화에 주목한다. 시장이 유일하게 체계의 정당성을 가지는 소비 사회에서 지식인 역시 시장을 통제할 힘이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지식에 과도한 권위를 부여하면서 ‘문화적 입법자’인 양 행세하던 지식인, 근대적 시민을 설계하고 시민을 문명화하려는 근대 국가의 노력을 합법화했던 지식인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하는 바우만은 대안으로서 ‘해석적 지식인’을 제시한다. 탈근대적 조건에서 지식인은 보편성과 이에 기초한 입법적 역할을 포기하고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석자로서의 지식인은 분열된 의미 공동체 간의 소통을 증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바우만은 또 지식인의 과제로서 근대성이 개인의 자율성과 민주적 관용이라는 실천적 이성의 계기를 산업 및 상품 생산의 도구적 이성에 부속시켜온 역사가 필연적 귀결이 아님을 드러내고, 공포를 직시하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것을 주문한다.

에드워드 사이드 ― 아마추어 지식인

“인간의 비참함과 억압에 대한 진실의 표준들 안에서 빈민, 불이익 받는 자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들, 힘없는 자들에 대한 재현 행위를 실천하는 사람들.” 사이드에게 지식인은 추방자, 주변인, 아마추어,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언어의 저술가다. 그는 현대 지식인의 가장 큰 문제로 전문직업주의를 들며, 아마추어리즘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아마추어란 직업적 전문성을 뛰어넘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성찰할 수 있는 정신과 태도를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사이드에게 지식인은 또한 추방자이며, 재현에 능한 사람이다. 그는 사회 현상에 대한 자신의 이념과 주장을 표명하는 지식인의 재현은 항상 빈민, 사회적 약자, 말할 수 없는 사람, 재현할 수 없는 사람, 힘없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놈 촘스키 ― 진실의 지식인

“지식인이란 공동체에서 우리의 관심사와 행동에 대해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진실한 존재.”
촘스키에 따르면 진실을 말해야 하는 이유는 대중 교화에 있으며, 더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다. 촘스키는 저명한 지식인과 책임 있는 지식인을 구별하는데, 기준은 ‘마음가짐’이다. 책임 있는 지식인은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촘스키가 보기에 대부분의 지식인은 침묵하고 그 대가로 안위를 보장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보는 촘스키는 진실을 말하는 지식인과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대중이 연대해 희망의 시대, 낙관의 시대로 세상을 바꿔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목차

들어가는 말 - 지식인, 행동하는 사람

1장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1. 지식과 지식인
2. 지식인의 역할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2장 지식인의 역사
1. 고대의 지식인
2. 중세의 지식인
3. 근대의 지식인
4. 드레퓌스 사건

3장 현대의 지식인론
1. 카를 만하임 - 자유 부동하는 지식인
2. 안토니오 그람시 - 유기적 지식인
3. 장 폴 사르트르 - 보편적 지식인
4. 미셸 푸코 - 특수적 지식인
5. 피에르 부르디외 - 자율적 지식인
6.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와 레지 드브레 - 지식인의 종언
7. 지그문트 바우만 - 해석자로서의 지식인
8. 에드워드 사이드- 아마추어 지식인
9. 놈 촘스키 - 진실의 지식인

4장 지식인을 둘러싼 쟁점
1. 지식인과 대학
2. 지식인과 언론
3. 지식인과 자본주의
4. 지식인과 민주주의

5장 현재적 의의와 전망
1. 경계인
2. 집단 지성
3. 지식인의 신뢰 회복을 위해

개념의 연표 - 지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