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국근대사 연구 (독서>책소개)/3.일제식민지배

식민지 트라우마

동방박사님 2022. 2. 1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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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민족감정’으로 꿰뚫어 본
식민사회 조선인의 민낯

“피식민지 민족은 힘의 격차가 불러온 폭력적 사태들에 직면해 열등감, 히스테리와 공격성, 수치와 죄의식, 나르시시즘의 보상 욕망에 휘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이 감정, 정신의 상흔들이 민족의 심연에 그리고 역사의 심연에 켜켜이 쌓여 있다. 식민지 시기의 역사는 표면의 현실 역사와 심연의 역사를 동시에 바라볼 때 비록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전체의 윤곽선을 그려볼 수 있다.”

 

목차

들어가며

1장 민족 모욕과 감정의 역사
세기말과 식민지배기를 규정한 4가지 힘/ 역사를 추동하는 감정구조/ 민족 모욕과 수치의 장기 역사/ 민족주의에 침습한 모욕감정과‘ 근대 트라우마’/ 모욕받은 민족의 탈식민화

2장‘ 업수이 여김’과 분노감정의 계몽
이민족의 모욕에 직면한 세기말/ 문명인의‘ 업수이 여김’이 촉발한 자기부정/ 분노공동체로서 민족이라는 감각

3장 문명의 트라우마, 민족의 스티그마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문명화 노선/ 물질문명의 경이를 실감하며 입문한 근대/ 자연정복의 의지를 결여한 민족이라는 스티그마/ 식민지민의 비교 콤플렉스/ 타자의 시선과 신체 이미지에 갇힌 식민지민

4장 모욕을 합리화하는 식민지 사회
일본 오리엔탈리즘의 간지奸智/ 경찰의 전지적全知的 감시망에 포획된 식민지 사회/ 문명화에 동원된 합법적 폭력/ 신체에 새긴 모욕과 처벌/ 식민지 군중의 저‘항콜, 레라 소요’

5장 식민지민이라는 저주
〈경찰범처벌령〉이 규정한 식민지민의 죄와 벌/ 문명화에서 소외된 식민지민의 흔들리는 자의식/‘ 조선인스러움’을 소환하는 호명,“ 요보”/ 저주의 주문‘ 배일排日 조선인’/ 불의와 모욕에 분노하는 식민지민의 거리 소요/ 풍속과 도덕의 규율 공간, 극장/ 식민지라는‘ 비참Les Miserables’의 공동체

6장 식민지민의 인정認定투쟁과 아메리카니즘
3·1만세운동 직후의 불온 정서/ 독립 역량을 가진 민족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 미국에 보내는 구조 요청 신호, 제2차 독립운동/ 식민지민의 오판‘, 상상의 아메리카’

7장 동정과 연예의 민족주의
상호부조의 민족주의/ 식민지민의 불온한 동정열同情熱/ 연예를 매개로 한 동정의 민족화nationalization/ 온 겨레가 거든‘ 해삼위 학생음악단’ 전국순회공연/ 식민지 동정의 감정역학

8장 친일과 매판 협력의 존재양식
‘쫓겨 간 조선인’ 이등신민이 되다/ 오갈 데 없는 재만조선인의 생존법/ 소수민족이자 일본국적자, 민족 갈등의 뇌관/ 친일의 얼굴, 얼궤이즈二鬼子/‘ 善良な 鮮人’ 혹은‘ 나쁜 선인鮮人’

9장 모욕과 폭력의 악순환
식민지민의 허위의식, 의사제국주의‘/ 일본의 개’ 간주, 구축운동 벌이기도/ 모욕 받은 자들의 폭력, 중국인 집단학살(과장, 왜곡된 오보가 불질러/ 평양선 갓난아기까지 살해/ 서둘러 사죄, 구제 금품 모금도/ 1,300여 명 검거 600여 명 기소)/ 식민지민의 민족주의, 히스테리 그리고 공격성

10장 폭력과 호환된 소비 그리고 나르시시즘
비교의 욕망에 사로잡힌 식민지민/ 근대성이라는 근원적 공포와 히스테리/ 혼란스러운‘ 근대 레시피’/ 타인의 시선에 과민한 식민지민의 인상학

에필로그- 모욕받은 민족의 감정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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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유선영
이화여자대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1960년대 청소년기를 보내고, 1970년대 청년기를 보낸 세대로서 경험한 군사독재, 권위주의 공권력, 물질주의, 개발우선주의, 집단주의, 학력주의, 비교 콤플렉스, 국가폭력, 가부장주의, 자기주도성의 상실 등의 문제들에 민감하다. 그런 만큼 인간의 자기 통제력을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이러한...
 

책 속으로

“조선 사람끼리 싸우고 시기하며 강한 자가 약자를 압제하고 업수이 여기면서 외국 사람을 대하면 ‘병신들 같이 행신行身하는’ 까닭에 외국 사람이 조선을 업수이 여긴다.”
-문명인의 ‘업수이 여김’이 촉발한 자기부정(40쪽)

“제일 못나고 제일 가난하고 산천도 남만 못하고 시가市街도 남만 못하고, 가옥도 의복도, 음식도 남만 못하고 과학도, 발명도, 철학도 예술도 없고 일을 할 줄도 모르거니와 할 일도 없고 아마 이러케 불상한 백성은 다시 업슬 것”
-타자의 시선과 신체 이미지에 갇힌 식민지민(75쪽)

청결 여부 판정은 순전히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판단에 맡겨졌으므로 무조건 복종하고 순응하는 것은 물론 없는 살림에 음식 접대, 뒷돈도 챙겨야 했다. 머리에 먼지가 앉았다고 몽둥이로 먼지 털듯이 실컷 두들기는 것을 경찰은 ‘청결한다’고 했고 이런 식으로 70대 노인도 ‘청결하고’ 부녀자도 두들겨 팼다.
-신체에 새긴 모욕과 처벌(107쪽)

요보 호명은 하등민이라는 낙인이었다. …… 요보는 일제가 지배하는 제국 안에서 정상인이 아니라는 낙인stigma이고 민족적 범주였다. 요보라는 호명은 개개인의 개성, 신분, 인격의 차이는 삭제되고 다만 ‘요보 조선인’으로, 즉 조선인이라는 민족범주로만 존재하게 하는 장치였다.
-‘조선인스러움’을 소환하는 호명, “요보”(140쪽)

“인도주의와 정의를 완전히 결여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를 동정하는 미국 의회의 일원이고 위대한 미국 인민의 대표들에게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두 눈에 피눈물을 머금고 감사를 표한다.”
-식민지민의 오판, ‘상상의 아메리카’(188쪽)

1920년대 민족주의는 동정-감정에 의해 추동되었고, 연예에 의해 매개되고 실감되었다. …… 무대와 관객은 구분되지 않았고 그들은 나라를 잃은 망국민이고 식민지민이었다. 이 일체감이야말로 식민지민이 향유한 가장 강력한 카타르시스이고 쾌락이었을 것이다.
-식민지민의 불온한 동정열(221쪽)

‘센료나 센징’은 중국과 일본,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서 이간질, 밀고, 정탐, 앞잡이, 친일매판 협력행위로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또 일본의 비호하에 유흥업, 마약류 취급, 인신매매와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자가 많았다.
-‘善良な 鮮人’ 혹은 ‘나쁜 선인鮮人’(239쪽)

패거리를 이룬 장정들이 핏물 떨어지는 곤봉을 든 채 앞에서 선도하고 그 뒤를 200~300명의 무리가 따르면서 피에 주린 이리떼처럼 중국인을 찾아 다녔다.
-평양선 갓난아기까지 살해(266쪽)

인텔리 여성 89명을 대상으로 ‘미래의 남성상’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고전으로는 괴테의 파우스트, 셰익스피어의 햄릿, 톨스토이의 부활을, 현대작품으로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등 작품의 개요와 주인공 이름쯤은 알아야 하고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감상할 귀, 야구?정구?럭비 경기규칙 정도는 알고 있는 남성”이라 했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민족감정’으로 꿰뚫어 본
식민사회 조선인의 민낯

“피식민지 민족은 힘의 격차가 불러온 폭력적 사태들에 직면해 열등감, 히스테리와 공격성, 수치와 죄의식, 나르시시즘의 보상 욕망에 휘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면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이 감정, 정신의 상흔들이 민족의 심연에 그리고 역사의 심연에 켜켜이 쌓여 있다. 식민지 시기의 역사는 표면의 현실 역사와 심연의 역사를 동시에 바라볼 때 비록 완전하지 않을지라도 전체의 윤곽선을 그려볼 수 있다.”

‘일제 36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도 한다. 당연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진 이들은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영웅과 위인 중심으로 서술되는 것이 보통이기도 하다. 시대의 흐름을 끌고, 흔적을 남기는 것은 이들의 몫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도와 조직 같은 유형의 변화에 주목하는 것이 예사다. 그러나 이 같은 주역과 서술방식?대상에만 주목해서는 역사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미시사며 문화사 등에 눈길을 돌리는 경향이 갈수록 두드러지는 것은 그런 점에서 타당하다.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일제 식민시기의 역사를 다루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의 폭력과 억압 그리고 독립투사와 친일파의 투쟁과 부역에만 주목해서는 식민지의 역사를 온전히 그려낼 수 없다. 정치적 억압, 경제적 착취, 사회적 불의와 민족차별 그리고 독립과 해방을 염원하는 민족주의 저항과 투쟁은 식민지 역사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족모욕이라는 집단경험을 축으로 재구성한 식민지배의 상흔

그 시대를 살아간 조선민족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학술 등 각 분야에 여전히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는 어떻게 봐야 할까. 혹 시쳇말로 “엽전은 안 돼” 하는 자조의 말 역시 식민지배의 잔재 아닐까.

지은이는 근대 문명의 충격과 제국주의의 힘에 휩쓸린 식민지민의 ‘감정’에 주목했다. 그는 식민지배의 경험이란 본질적으로 트라우마, 외상外傷의 경험으로 보았다. 이민족에 의한 폭력과 모욕이 반복되는 과정에 자신의 전통과 문화, 정체성이 온통 부정당하는 정신적 외상을 집단적으로 겪었다고 파악한 것이다. 여기에 식민화를 문명화라 정당화하는 사태를 맞아 집단 불안과, 자신을 보호가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현되면서, 힘에 대한 열망, 비교에 집착하는 열등감, 히스테리와 공격성, 수치와 죄의식, 나르시시즘의 보상 욕망 등을, 다양한 자료를 섭렵해 꼼꼼히 그려냈다.

이 과정에서 서구인의 외모에 대한 열패감, 중국인에게 ‘이등신민’으로서 우월감을 과시하는 얼궤이즈二鬼子, ‘평양사건’에서 터져 나온 히스테리컬한 공격성, 속물주의에 가까운 서양문물 숭배 등 차마 마주 대하기 꺼려지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생생한 민낯이 드러나기도 한다.

책에 담긴 식민지 풍경

다시 보는 민족주의의 실체

식민지민의 트라우마는 근대성 그리고 식민지배의 두 가지 집단경험이 뒤섞인다. 그러나 외상은 ‘역사’가 되지 못했다. 외상은 정신분석의 영역이지 증거, 기록, 실증의 역사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식민지민의 트라우마를 역사화하기 위해 식민지민에게 가해진 외상들을 재구성해 식민지민의 민족주의는 사실 민족적 감정의 다른 이름이며 식민지민의 진정한 자아는 그의 말도, 행동도, 스타일도 아닌 감정으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과 프란츠 파농의 비판을 수용했다. 그리하여 민족모욕과 국치의 경험이 민족감정을 도발하고 민족감정은 다시 경제성장과 근대화를 목표로 흘러갔음을 보여준다.

‘업수이 여김’을 벗어나기 위한, 힘을 향한 욕망

식민지배는 2등, 3등의 하위민족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민족적 위치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통제력 부재와 결여, 그로 인한 모욕과 수치, 불안이 가중될수록 힘에 대한 욕망도 깊이 뿌리를 내린다. 이는 서재필이 1898년 미국으로 돌아가며 한 고별연설에서 “나라를 도와 부강케 하고 용맹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죽기를 작정하고 앞으로 나아가 세계 만국에 동등 대접을 받고 다시는 외국 사람들에게 업수이 여김을 받지 말지어다”한 데서 엿볼 수 있다.

폭력을 동반한 문명화 세례

공진회가 전시하고 있는 것은 문명과 야만의 경계선이다. 1920년대 문화적 민족주의, 실력양성주의, 인격주의, 개조주의는 식민지민의 저주받은 죄의식과 공격성의 산물이다. 근대는 적들의 저주받은 문명이므로 공격해야 하지만 동시에 피할 길 없는 모욕과 수치에서 벗어나게 해 줄 근대였다.

그런가 하면 콜레라 예방을 위한 위생계몽도 민족차별의 경험을 더해 우발적인 콜레라 소요가 벌어지기도 했다. 의사도, 병원도 아닌 (위생)경찰이 주도하는 방역에서 빚어지는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들, 비위생이 공개리에 까발려지는 모욕과 수치, 방역관계자들의 천시와 협박, 경찰과 순사의 칼과 몽둥이에 의한 매질과 피범벅이 되어 유치장에 갇히고 격리된 채로의 죽음이 위생계몽의 실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정투쟁과 아메리카 짝사랑

“서울 시골 할 것 없이 모든 조선 사람들은 미국의원단을 천사단과 같이 알고 고대하는 중.” 1920년 중국을 거쳐 조선을 방문한 미국 의원단을 영접하기 위해 특파된 《매일신보》 기자 백대진이 미국의원단에게 전한 말이다.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등에 기대어 독립을 호소하려던 조선민중의 열망은 ‘자모慈母를 기다리는 유아幼兒의 마음과 애인을 고대하는 정인情人의 가슴’에 비견되었다. 이를 두고 일제 식민 당국은 이를 뇌미賴美사상이라 일축하기도 했다.

왜곡된 민족감정, 약자를 겨냥한 공격성

서구 열강의 근대성과 문명 앞에서 스스로의 열등성을 충격적으로 자각한 이래 식민지민의 모욕과 수치심은 이민족과의 관계에서 분노, 공격성, 그리고 자기파괴적인 무력감을 야기했다. 물질적 부를 향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향한, 학력과 명예를 향한 열망 역시 이러한 공격성의 표출이다. 100여 명의 애꿎은 중국인이 살해된 ‘평양사건’은 자기파괴적 공격성에 포획된 식민지민의 또 다른 집단불안 징후를 보여준다.

자기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나르시시즘의 표출

식민체제는 민족차별과 서열구조에 의존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식민지민은 자기보호를 위해 방어기제로서 나르시시즘에 의존한다. 나르시시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근대성이다. 근대교육과 고등학력, 근대적 지식, 근대적 생활방식과 취향, 영어 등 외국어의 구사, 그리고 서구와 일본에서 수입된 상품의 소비이다. 이화여전을 중퇴하고 《개벽》 기자 등을 역임하며 1930년대 다수의 소설을 썼던 장덕조(1915~?)는 〈내 이상理想하는 스윗트홈〉이라는 글에서 “남편이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가정, 햄 샌드위치를 만들며 피크닉 준비로 소란한 가정, 한강 상류에서 피크닉, 연애감정으로 한 결혼, 월급쟁이 남편, 가난하지만 (미국여배우들과 같은) 아름다운 웃음을 짓는 (자신의) 얼굴, 계란 하나와 버터 칠한 빵 한 조각이 진수성찬인 식탁, 명랑과 쾌활함’이 있는 가정이다”라고 했다. 이것이 식민지 지식인이 꿈꾸던 근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