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문학의 이해 (책소개)/3.한국문학

45.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동방박사님 2022. 3. 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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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작가 양귀자가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이라는 삶의 공간을 무대로 80년대 소시민들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준 연작소설집이다. 『원미동 사람들』에 실린 11편의 소설은 1986년 3월부터 1987년 8월까지 문예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발표되었는데 소설이 발표될 때마다 문단이 크게 주목하여 이미 문제작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1987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원미동 사람들』 초판이 발행되었고, 현재까지 총111쇄를 기록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서점가의 스테디셀러로 시간의 벽을 뛰어넘고 있다. 이번에 도서출판 쓰다에서 새롭게 모습을 바꾸어 출간한 4판은 한층 가독성 있는 편집으로 독자와 만난다.

 

목차

멀고 아름다운 동네
불씨
마지막 땅
원미동 시인
한 마리의 나그네 쥐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방울새
찻집 여자
일용할 양식
지하 생활자
한계령
 

 

저자 소개

저 : 양귀자 (梁貴子)
 
1955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고 원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에 『다시 시작하는 아침』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등장한 후, 창작집 『귀머거리새』와 『원미동 사람들』을 출간, “단편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90년대 들어서 양귀자는 장편소설에 주력했다. 한때 출판계에 퍼져있던 ‘양귀자 3년 주기설’이 말해주듯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
 

책 속으로

『원미동 사람들』이 네 번째 옷을 갈아입는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어 외양은 다 바꾸었지만
내용은 온전히 그대로 두었다.
수많은 독후감이 전하는 대로,
우리 앞에 무엇이 닥쳐올지 예감할 수 없는
‘원미동’으로 상징되는 헐벗은 일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서다.
어쩌면 더욱 가혹해졌다고도 여겨진다.
개정판을 내면서 첨삭이나 수정을 가하지 않은 이유다.
- 『원미동 사람들』 개정판을 내는 작가의 말

서울은 막무가내로 그들을 밀어내었다. 온갖 책략을 동원해서 그들을 쫓아낸 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음흉한 작별을 고했다. 달리는 트럭의 짐칸에 실려서 그는 부천시의 인사를 받았다. 어서 오십시오. 저 반지르르한 인사말 속에는 또 어떤 속임수가 담겨 있는 것인지, 새삼 불안에 떨며, 아니 추위에 떨며 그는 펼쳐지는 새 풍경을 바라보았다.
- “멀고 아름다운 동네” 중에서

남들은 나를 일곱 살짜리로서 부족함이 없는 그저 그만한 계집아이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게 틀림없지만, 나는 결코 그저 그만한 어린아이는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 알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게 건방지다면 하다못해 집안 돌아가는 사정이나 동네 사람들의 속마음 정도는 두루 알아맞힐 수 있는 눈치만큼은 환하니까. 그도 그럴 것이 사실을 말하자면 내 나이는 여덟 살이거나 아홉 살, 둘 중의 하나이다.
- “원미동 시인” 중에서

싱싱청과물의 주인 사내는 이제 막 이사 와서 동네 형편은 전혀 모르는 듯하였다. 무작정 과일전만 벌였으면 혹시 괜찮았을 것을 눈치도 없이 ‘부식 일절 가게 안에 있음’이란 종이쪽지를 붙여놓고 파·콩나물·두부·상추·양파 따위 부식 일절이 아닌 부식 일체를 팔기 시작하였다.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김포슈퍼와 형제슈퍼의 딱 가운데 지점에서, 그것도 결사적인 고객 확보로 바늘끝처럼 날카로운 두 가게 앞에 버젓이 부식 일절 운운한 쪽지를 매달아놓았으니 무사할 리가 없었다.
- “일용할 양식” 중에서

“어쨌든 앞으로 서울 나올 일 있으면 우리 카페로 와. 신사동 로터리 바로 앞이니까 찾기도 쉬워. 일주일 후에 오픈할 거야. 이름도 정했어. 작가 선생 마음에 들는지 모르겠다. ‘좋은 나라’라고 지었는데, 네가 못마땅해도 할 수 없어. 벌써 간판까지 달았는걸 뭐.”
좋은 나라로 찾아와. 잊지 마라. 좋은 나라. 은자는 거듭 다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카페 이름을 ‘좋은 나라’로 지은 것에 대해 나는 조금도 못마땅하지 않았다. 얼마나 좋은 이름인가. 다만 내가 그 좋은 나라를 찾아갈 수 있을는지, 아니 좋은 나라 속에 들어가 만날 수 있게 될는지 그것이 불확실할 뿐이었다.
-“한계령” 중에서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문학사적 공간으로 평가되는 ‘원미동’

80년대 부천시 원미동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꿈의 도시로 편입하려는 자, 혹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숱한 밤을 악몽으로 지새운 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물론 원미동이 고향이고 터전이었던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이웃으로 살고 있었다. 80년대의 이런 삶의 풍경은 어디에도 널려 있었다. 지난한 밥벌이의 구차한 행로, 도무지 손에서 놓아 버릴 수 없는 아주 소박하고 작은 꿈들, 그럼에도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는 작은 꿈들의 쓸쓸한 소멸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사회의 부박한 삶과 그 진행의 현상이 축약되어 있음을 실감하며 살아가야 하는 곳’ 이었다. 『원미동 사람들』에 수록된 11편의 단편들은 바로 그런 공간을 문학적 지도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함으로 압도적인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아직도 『원미동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원미동 사람들』이 111쇄를 거듭해가며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널리 읽히는 이유가, 또한 국정 국어교과서에 연작소설 중 하나인 “일용할 양식” 전문이 실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중학생들의 필독서가 된 것이 단지 문학적 성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현실은 여전히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꿈꾸며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배반하기 일쑤이고, 주변부와 중심부의 갈등은 나날이 심화되었으며, 유형무형의 폭력은 한층 교묘해졌다. 그런 현실적 상황들 때문에 아직도 소설 속 삽화들은 전혀 생경하지 않고 너무나 익숙한 우리 이웃들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몇 년 전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최근 전국 각지에서 보내오는 엄청난 양의 독후감을 전달받고 있으며 그 독후감의 대부분이 중학생들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독후감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문장이 ‘우리 동네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아주 옛날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과 많이 비슷하다.’ 등이었다는 것도 그런 정황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양귀자 소설’ 만의 특징,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

『원미동 사람들』은 결코 명랑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각각의 소설마다 절망의 고개를 넘고 있는 사람들의 쓸쓸한 삽화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양귀자 소설 특유의 박진감 있는 문체와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문장들, 그리고 빈틈을 공략하는 재기발랄한 유머와 소소한 반전을 거듭하는 활달한 이야기 전개로 소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재미’를 충분하게 누릴 수 있다.

‘양귀자 소설’은 거대 담론을 다루지 않고 과장되지 않지만 작은 이야기로 세상을 크게 울리는 힘이 있다. 그것이 소설 『원미동 사람들』을 오래도록 우리들 곁에 머물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다.
 

추천평

양귀자가 그려 보이는 원미동은 작고도 큰 세계이다. 그 세계는 소설 속에서는 부천시 원미동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그 장소에 살고 있는 몇몇 인물들이 펼쳐 보이는 작은 삶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양귀자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 세계는 커다란 세계이다. 그것은 원미동의 세계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원미동은 “멀고 아름다운 동네”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양귀자의 역설적 표현을 빌리면 “가나안에서 무릉도원까지”의 아득한 거리에 있는 동네가 아니라, “기어이 또 하나의 희망”을 만들어가며 살아야 할 우리들의 동네이다. 그러므로 원미동은 작고도 큰 세계이다.
홍정선(문학평론가)
『원미동 사람들』에는 성장과 소외, 풍족과 빈곤, 폭압과 자유에의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갈등하며 공존했던 80년대의 소시민적 삶의 풍속도가 담겨 있다. 그러나 ‘원미동’의 세계가 문제적인 것은 단순히 한 시대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삶의 진실성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원미동’은 멀리 있지만 아름다운 혹은 멀리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희망의 공간적 이름이다.
황도경(문학평론가)
그동안 비평가들은 양귀자 선생의 소설을 이해하는 단어로 ‘슬픔’을 꼽았습니다. 슬픔 어린 눈으로 가족과 이웃 나아가 세계를 아우른다는 것이죠. 그 따뜻한 슬픔이 원미동 거리를 차가운 네프스키 거리와 다르게 만드는 힘일 겁니다. 저는 양귀자 선생의 ‘슬픔’ 앞에 ‘단단한’이란 수식어를 두고 싶습니다. 『원미동 사람들』에는 격이 다른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가난한 것, 배우지 못한 것, 치욕적인 상처를 받은 것, 이런 것들을 복원시키는 양선생의 손길은 참 섬세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살아난 지지리도 못난 삶 자체는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도 주지 못합니다. 독자들이 원미동 사람들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이 작은 인간들이 수많은 절망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탁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