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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명상의 A-Z가 담긴 ‘명상 교과서’
기독교 예배당에서 불교의 선방까지, ‘진짜 나’를 찾아 떠난 모험과 그 여정을 기록한 『선방에서 만난 하나님』의 저자 성소은이 그동안의 수행을 갈무리해 한 권의 책으로 내놓았다. 저자가 디자인전문 대안대학 PaTI(파주타이포그라피 학교)에서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는 〈명상과 수행〉 수업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이제 막 명상을 시작하는 초보자에서부터 이미 명상을 하고 있지만 좀 더 심도 있고 명료한 정보가 필요한 이들에게까지 두루 유용할 책이다. 명상은 요즘 건강강좌에서부터 소셜미디어에 이르기까지 흔히 회자되는 ‘아이템’이지만, 정작 그게 무엇인지 물으면 가부좌 틀고 앉은 이미지 외에는 딱히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명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어디에 어떻게 왜 좋은지, 그리고 어떻게 일상에 명상을 접목할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여기 아주 친절하고 유익한 ‘교과서’ 한 권을 참고하시면 되겠다.
“이 책은 내 몸과 욕망, 감각과 호흡을 이용하고, 적극적인 홀로있음을 연습하고, 문학과 예술, 철학, 고전과 과학이라는 인류가 남긴 지성의 흔적이 어떻게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는지, 부족함을 딛고 온전함으로 가는 인생여정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함께 경험해보려는 시도이다. 허다한 것을 느끼고 아는 각각의 감각이 어떻게 명상과 맞닿아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p.20)
저자에 따르면 명상은 마냥 멍하니 있는 것, 소위 ‘멍 때림’과는 다르다. 멍하니 있는 것은 이완이자 가벼운 쉼이라면, 명상은 집중이자 형질의 변화를 가져오는 연금술, 존재의 질적 변화를 불러오는 ‘혁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혁명은 버거운 삶을 가볍게 해주는 즐거움이며, 언제나 의심의 여지없는 기쁨과 자유를 선사하는 ‘놀이’도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놀 유遊’자를 써서 자신의 수업에 ‘유유遊遊 명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제 교실 안에만 있던 다양한 형태의 명상을 책으로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각자 자기답게 살아갈 용기와 자유를 얻는 데 이 도구를 활용한다면 일상이 더 아름답고 자유롭고 온전해지지 않겠는가.
기독교 예배당에서 불교의 선방까지, ‘진짜 나’를 찾아 떠난 모험과 그 여정을 기록한 『선방에서 만난 하나님』의 저자 성소은이 그동안의 수행을 갈무리해 한 권의 책으로 내놓았다. 저자가 디자인전문 대안대학 PaTI(파주타이포그라피 학교)에서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는 〈명상과 수행〉 수업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이제 막 명상을 시작하는 초보자에서부터 이미 명상을 하고 있지만 좀 더 심도 있고 명료한 정보가 필요한 이들에게까지 두루 유용할 책이다. 명상은 요즘 건강강좌에서부터 소셜미디어에 이르기까지 흔히 회자되는 ‘아이템’이지만, 정작 그게 무엇인지 물으면 가부좌 틀고 앉은 이미지 외에는 딱히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명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어디에 어떻게 왜 좋은지, 그리고 어떻게 일상에 명상을 접목할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여기 아주 친절하고 유익한 ‘교과서’ 한 권을 참고하시면 되겠다.
“이 책은 내 몸과 욕망, 감각과 호흡을 이용하고, 적극적인 홀로있음을 연습하고, 문학과 예술, 철학, 고전과 과학이라는 인류가 남긴 지성의 흔적이 어떻게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는지, 부족함을 딛고 온전함으로 가는 인생여정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함께 경험해보려는 시도이다. 허다한 것을 느끼고 아는 각각의 감각이 어떻게 명상과 맞닿아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p.20)
저자에 따르면 명상은 마냥 멍하니 있는 것, 소위 ‘멍 때림’과는 다르다. 멍하니 있는 것은 이완이자 가벼운 쉼이라면, 명상은 집중이자 형질의 변화를 가져오는 연금술, 존재의 질적 변화를 불러오는 ‘혁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혁명은 버거운 삶을 가볍게 해주는 즐거움이며, 언제나 의심의 여지없는 기쁨과 자유를 선사하는 ‘놀이’도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놀 유遊’자를 써서 자신의 수업에 ‘유유遊遊 명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제 교실 안에만 있던 다양한 형태의 명상을 책으로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각자 자기답게 살아갈 용기와 자유를 얻는 데 이 도구를 활용한다면 일상이 더 아름답고 자유롭고 온전해지지 않겠는가.
목차
추천하는 글 / 여는 글 / 1.명상 정의: 내가 아는 나, 모르는 나 / 2.명상 종류: 나에게 맞는 명상은? / 3.호흡명상: 품위 있게, 앉기 / 4.욕망명상: 나는 무엇을 욕망하나? / 5.홀로명상: 진선미眞善美, 나는 내가 만드는 ‘작품’이다 / 6.뇌명상: 습관을 넘어 통찰로 / 7.예술명상: 나의 ‘얇은 곳’은? / 8.음악명상: 음악, 비극을 전복시키는 느낌표 / 9.심리명상: 감각과 감정, 분리하기 / 10.경전명상: 나를 일으켜 세우는 ‘한 문장’ / 11.과학명상: 내가 창조하는 나 / 12.명상과 나: 〈명상과 수행〉 수업을 듣고 / 닫는 글 / 독자노트 / 나의 반려명상100일 수행 시트 / 참고한 책들
책 속으로
“세속에 몸담고 살면서도 존재의 변화를 꿈꾸고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감각을 결박할 수 없다면 반대로 한껏 열어젖혀 보는 거다. 감각을 최대한 이용하는 선택이다. 여섯 개의 감각은 양날의 칼이다. 마음을 훔치기도 하지만 본성을 일깨우는 것도 이 여섯 감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눈, 귀, 코, 입, 몸, 뜻을 내 안의 온전함과 아름다움을 돋을새김하는 조각칼로 사용하는 것이다. 감각으로 에너지를 빼앗기는 게 아니라 감각을 섬세하게 연마해 내면의 미세한 꿈틀거림을 알아차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으는 일로 사용할 수 있다. 육적을 잘 다루면 ‘부족한 나(ego)’를 넘어서 ‘온전한 나(본성·참나)’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여섯 개의 길, 육도六道가 된다. 감각을 통해야 심연에 닿게 된다.”
---「감각의 힘」중에서
“안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고, 밖은 수많은 의무와 당위가 아우성친다. 피할 곳도 피할 수도 없다. 총체적 혼돈이 삶의 곳곳에서 복병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가 ‘품위 있게’ 앉을 때다. 그곳이 어디든 허리를 곧추 세우고 양 어깨를 활짝 펴고 의연하게 앉아보는 것이다. 몸의 자세는 그대로 마음을 반영하고 삶을 좌우한다. 지치고 고단할수록 아담한 자리에 푹신한 방석을 놓고 그 위에 꼿꼿하게 정좌해보자. 마치 내가 태산太山이 된 것처럼. ‘내가 여기 있다’는 존재의 가장 큰 울림인 호흡은 생生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 호흡을 방편삼아 우리는 언제든지 삶을 가지런히 재편할 수 있다.”
---「품위 있게 앉기」중에서
“‘홀로있음’은 분열된 내면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생의 어느 한 마디도 잘라내거나 부정하지 않고 일관된 의미로 통합하는 삶의 연금술이다. 가히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의 질적 변화는 고요한 숨과 단순한 삶에 깃든다. ‘홀로 있는 힘’이 길러지면 외로움은 모습을 바꾼다. 선한 친구, 누구보다 믿음직한 벗이 된다. 홀로 멈추는 시간이 많을수록 흔들리지 않는다. 온전해진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중에서
“외부의 자극을 위협으로 감지하는 뇌의 레이더, 편도체가 쉬어야 내가 편하다. 습관적으로 과도하게 반응하는 편도체를 잠재우려면 감정과 의식을 분리하는 응급처치를 반복 실시한다. 괴로운 나를 ‘괴로워 죽겠다’는 감정과 분리해 ‘괴롭구나’하고 인정한 뒤 힘든 감정이 지나가길 기다려준다. 전전두피질과 전측대상피질이 편도체에 난 불을 끄는 과정이다. 감정을 보는 나, 뇌가 스스로를 분석하는 능력이 ‘메타인지(Metacognition)’다. 똑똑하다는 돌고래는 말할 것도 없고 AI도 넘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감정에 빠지지 않고 감정을 자각하는 것, 감정과 나를 분리해 감정을 풍경처럼 바라보는 훈련이다. 편도체가 꿈틀할 때마다 ‘잠깐만!’하고 멈추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일단 멈춤을 상황에 대한 판단중지(epoche)로 이어간다. 위기의 순간마다 급브레이크를 밟는 사마타Samatha(止) 명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중에서
“이는 어떤 의도나 목적 없이 대상을 응시할 때 일어나는 순수한 자기감응이다. 바깥에 있는 아름다움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깊이 잠든 본성을 일깨우고, 그 힘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기적 같은 일. 고통이 씻겨 나가고 영혼이 거듭나는 체험, 카타르시스katharsis. 아름다움이라는 심미적 만족감은 순수하게 인간의 정서를 함양한다. 자기 자신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아름다움이란 우리의 정신을 개념화할 수 없는 경지로 이끌어 그곳에서 끊임없이 사유하게 하는 촉매다. 분리된 나와 세계를 잇는 매개다. 인간의 영혼은 아름다움을 먹고 자란다. 아름다움을 맛보려면 얇은 곳을 찾아야 한다. 나만의 얇은 곳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하루하루는 저절로 멋진 인생이 된다.”
---「얇은 곳」중에서
“나를 어둠속에 주저앉히고 피폐하게 만드는 감정은 섣부른 판단이나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따뜻한 시선이 필요할 뿐이다. 무엇보다 상한 감정은 이해받고 사랑받아야 할 어린아이와 같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에 대한 지적인 이해와 정서적 동조가 뒤따를 때 감정은 더 이상 늪이 아닌 길이 된다. ··· 내 감정에 대한 지성적 이해는 그 상황에서 딱 한 걸음 물러나는 일이다. 나와 힘든 감정을 분리시키는 일이다. 아픈 감각에서 자책하는 감정을 빼는 일이다.”
---「스피노자의 아펙트」중에서
“태양이 나만 피해 비추지 않듯이,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아야 한다.
나무가 나를 꾸짖지 않듯이, 나를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
장미가 다른 꽃과 자기를 비교하지 않듯이, 나를 남과 비교 하지 않아야 한다.
비가 마주할 땅을 판단하지 않듯이, 내가 만나는 세상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강줄기가 바다에 다다르듯이, 나는 이윽고 의식의 깊은 심연에 이를 것이다.
바다는 사랑이다. 실은 나도 바다다.”
---「나는 감정이 아니다」중에서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문장 하나가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경전은 그런 ‘지푸라기’들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길벗이다. ‘경전’하면 고리타분한 무엇으로 알기 십상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케케묵은 편견이다. 경전은 오래 살았다고 ‘라떼’ 운운 꼰대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경전, 그분이 얼마나 힙hip한지는 만나보면 안다. 어느 순간 손을 내밀든 꼭 그 만큼의 눈높이로 말을 건네온다. 살아가는 방향을 확인하고 싶을 때,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할 때, 내가 누구인지 흐릿해질 때, 마음 가는 경전 한 권을 조용히 만나보자. 누군가의 열 마디 말보다 더 강하고 힘 있는 ‘한 구절’이 거기 있을 수 있다. 운명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치듯 내 온 존재를 흔들어 깨우고 일으켜 세우는 ‘한 문장’이 수천 년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한 문장」중에서
“후성 유전적 요소와 환경의 상호과정이 유전자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은 몸 속 DNA뿐 아니라 그간 반복해온 ‘매일의 경험’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듯 선명하게 드러낸다. 성격, 말투, 표정, 습관 등 지금의 나를 이루는 특징들은 그동안 다양한 요인이 안팎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틀 지워진 것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살아오면서 형성된 한 사람의 후성유전체는 ‘모든 면에서 유전체에 맞먹는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부모 탓할 근거가 휘청해지는 지점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카르마karma라면 명상수행은 내가 조성하는 후성유전체가 된다.”
---「나와 후성유전체」중에서
“누구 하나 빠짐없이 우리의 고향은 별이다. 내면의 빛으로 살아있다. 그 빛이 시작이요 끝이다. 밖이 아닌 내 안으로 시선을 돌이켜야 하는 이유다. 내 안에 있는 빛을 밖에서 찾는 어리석음을 멈추고 안으로, 안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빛은 심연이다. 심연은 짙푸른 침묵의 바다다. 그 바다가 출렁이는 파동과 그 파동에 공명하는 우주의 메아리를 듣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빛은 오로지 내가 ‘관찰할 때’, ‘찾을 때’, ‘관계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 빛으로 가득한 나를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이 생에 주어진 가장 큰 프로젝트다. 내가 나를 낳을 수 있다. 내면의 빛으로, 내 안의 심연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자 빛으로 가득한 큰 나로 부활하게 하는 길이 ‘명상대로’다. 대도무문大道無門, 큰 길에는 문이 없다. 천지가 열린 길이다. 거칠 것이 없다. 그 길을 ‘걷는 나’가 필요할 뿐이다. 창조자라는 자부심으로 어깨 펴고 당당하게, 인간의 위엄을 지키며 걸어가자. 오늘이라는 레드카펫을.”
---「감각의 힘」중에서
“안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고, 밖은 수많은 의무와 당위가 아우성친다. 피할 곳도 피할 수도 없다. 총체적 혼돈이 삶의 곳곳에서 복병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가 ‘품위 있게’ 앉을 때다. 그곳이 어디든 허리를 곧추 세우고 양 어깨를 활짝 펴고 의연하게 앉아보는 것이다. 몸의 자세는 그대로 마음을 반영하고 삶을 좌우한다. 지치고 고단할수록 아담한 자리에 푹신한 방석을 놓고 그 위에 꼿꼿하게 정좌해보자. 마치 내가 태산太山이 된 것처럼. ‘내가 여기 있다’는 존재의 가장 큰 울림인 호흡은 생生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 호흡을 방편삼아 우리는 언제든지 삶을 가지런히 재편할 수 있다.”
---「품위 있게 앉기」중에서
“‘홀로있음’은 분열된 내면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생의 어느 한 마디도 잘라내거나 부정하지 않고 일관된 의미로 통합하는 삶의 연금술이다. 가히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의 질적 변화는 고요한 숨과 단순한 삶에 깃든다. ‘홀로 있는 힘’이 길러지면 외로움은 모습을 바꾼다. 선한 친구, 누구보다 믿음직한 벗이 된다. 홀로 멈추는 시간이 많을수록 흔들리지 않는다. 온전해진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중에서
“외부의 자극을 위협으로 감지하는 뇌의 레이더, 편도체가 쉬어야 내가 편하다. 습관적으로 과도하게 반응하는 편도체를 잠재우려면 감정과 의식을 분리하는 응급처치를 반복 실시한다. 괴로운 나를 ‘괴로워 죽겠다’는 감정과 분리해 ‘괴롭구나’하고 인정한 뒤 힘든 감정이 지나가길 기다려준다. 전전두피질과 전측대상피질이 편도체에 난 불을 끄는 과정이다. 감정을 보는 나, 뇌가 스스로를 분석하는 능력이 ‘메타인지(Metacognition)’다. 똑똑하다는 돌고래는 말할 것도 없고 AI도 넘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감정에 빠지지 않고 감정을 자각하는 것, 감정과 나를 분리해 감정을 풍경처럼 바라보는 훈련이다. 편도체가 꿈틀할 때마다 ‘잠깐만!’하고 멈추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일단 멈춤을 상황에 대한 판단중지(epoche)로 이어간다. 위기의 순간마다 급브레이크를 밟는 사마타Samatha(止) 명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중에서
“이는 어떤 의도나 목적 없이 대상을 응시할 때 일어나는 순수한 자기감응이다. 바깥에 있는 아름다움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깊이 잠든 본성을 일깨우고, 그 힘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기적 같은 일. 고통이 씻겨 나가고 영혼이 거듭나는 체험, 카타르시스katharsis. 아름다움이라는 심미적 만족감은 순수하게 인간의 정서를 함양한다. 자기 자신을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아름다움이란 우리의 정신을 개념화할 수 없는 경지로 이끌어 그곳에서 끊임없이 사유하게 하는 촉매다. 분리된 나와 세계를 잇는 매개다. 인간의 영혼은 아름다움을 먹고 자란다. 아름다움을 맛보려면 얇은 곳을 찾아야 한다. 나만의 얇은 곳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하루하루는 저절로 멋진 인생이 된다.”
---「얇은 곳」중에서
“나를 어둠속에 주저앉히고 피폐하게 만드는 감정은 섣부른 판단이나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따뜻한 시선이 필요할 뿐이다. 무엇보다 상한 감정은 이해받고 사랑받아야 할 어린아이와 같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에 대한 지적인 이해와 정서적 동조가 뒤따를 때 감정은 더 이상 늪이 아닌 길이 된다. ··· 내 감정에 대한 지성적 이해는 그 상황에서 딱 한 걸음 물러나는 일이다. 나와 힘든 감정을 분리시키는 일이다. 아픈 감각에서 자책하는 감정을 빼는 일이다.”
---「스피노자의 아펙트」중에서
“태양이 나만 피해 비추지 않듯이,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아야 한다.
나무가 나를 꾸짖지 않듯이, 나를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
장미가 다른 꽃과 자기를 비교하지 않듯이, 나를 남과 비교 하지 않아야 한다.
비가 마주할 땅을 판단하지 않듯이, 내가 만나는 세상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강줄기가 바다에 다다르듯이, 나는 이윽고 의식의 깊은 심연에 이를 것이다.
바다는 사랑이다. 실은 나도 바다다.”
---「나는 감정이 아니다」중에서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문장 하나가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경전은 그런 ‘지푸라기’들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길벗이다. ‘경전’하면 고리타분한 무엇으로 알기 십상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케케묵은 편견이다. 경전은 오래 살았다고 ‘라떼’ 운운 꼰대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경전, 그분이 얼마나 힙hip한지는 만나보면 안다. 어느 순간 손을 내밀든 꼭 그 만큼의 눈높이로 말을 건네온다. 살아가는 방향을 확인하고 싶을 때,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할 때, 내가 누구인지 흐릿해질 때, 마음 가는 경전 한 권을 조용히 만나보자. 누군가의 열 마디 말보다 더 강하고 힘 있는 ‘한 구절’이 거기 있을 수 있다. 운명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마주치듯 내 온 존재를 흔들어 깨우고 일으켜 세우는 ‘한 문장’이 수천 년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한 문장」중에서
“후성 유전적 요소와 환경의 상호과정이 유전자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은 몸 속 DNA뿐 아니라 그간 반복해온 ‘매일의 경험’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듯 선명하게 드러낸다. 성격, 말투, 표정, 습관 등 지금의 나를 이루는 특징들은 그동안 다양한 요인이 안팎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틀 지워진 것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살아오면서 형성된 한 사람의 후성유전체는 ‘모든 면에서 유전체에 맞먹는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부모 탓할 근거가 휘청해지는 지점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카르마karma라면 명상수행은 내가 조성하는 후성유전체가 된다.”
---「나와 후성유전체」중에서
“누구 하나 빠짐없이 우리의 고향은 별이다. 내면의 빛으로 살아있다. 그 빛이 시작이요 끝이다. 밖이 아닌 내 안으로 시선을 돌이켜야 하는 이유다. 내 안에 있는 빛을 밖에서 찾는 어리석음을 멈추고 안으로, 안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빛은 심연이다. 심연은 짙푸른 침묵의 바다다. 그 바다가 출렁이는 파동과 그 파동에 공명하는 우주의 메아리를 듣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빛은 오로지 내가 ‘관찰할 때’, ‘찾을 때’, ‘관계할 때’ 모습을 드러낸다. 빛으로 가득한 나를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이 생에 주어진 가장 큰 프로젝트다. 내가 나를 낳을 수 있다. 내면의 빛으로, 내 안의 심연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자 빛으로 가득한 큰 나로 부활하게 하는 길이 ‘명상대로’다. 대도무문大道無門, 큰 길에는 문이 없다. 천지가 열린 길이다. 거칠 것이 없다. 그 길을 ‘걷는 나’가 필요할 뿐이다. 창조자라는 자부심으로 어깨 펴고 당당하게, 인간의 위엄을 지키며 걸어가자. 오늘이라는 레드카펫을.”
---「내가 창조하는 나」중에서
출판사 리뷰
일상을 명상으로
저자는 선방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모습이 명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요동치는 마음을 가만히 한 곳으로 모을 수만 있다면 일상의 어떤 활동이나 명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명상 수업에는 산책이라든가 음악 감상, 경전 읽기, 연필 깎기, 사탕 먹기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활동은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노트북 전원이 들어올 때까지,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을 때, 주전자 물이 끓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이 모든 순간이 바로 깊이 숨 쉬면서 자기 자신과 접속하기 좋은 때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마저 번거롭다면 ‘한숨’조차 명상이 된다고, 저자는 그 문턱을 한없이 낮춰준다. 매일 쉬는 숨도 명상이 될 수 있다면 그래, 한번쯤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삶도 호흡이다. 들숨과 날숨처럼 끝없이 누군가와 생기를 주고, 받고, 나누는. ··· 명상은 특별한 게 아니다.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의도적으로 숨을 쉬는 것, 순수하게 숨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숨을 알아차리듯 마음을 알아차리고, 어떤 현상도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는 일이다. 호흡을 바라보면 마음을 바라보는 힘이 자라난다. 자동화된 내 생각, 내 감정, 마음의 습관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구나’ 하고 마음이 짓는 고통의 끈을 놓는 지름길이다. 숨이 그렇듯 내 삶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나’다. 모든 게 나에서 비롯되고, 나로 끝난다. 나는 언제든 ‘품위 있게 앉기’에 합당하다.”(p.63)
가벼운 한숨부터 의식의 변형을 일으키는 체험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넓고 깊은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바로 호흡이라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호흡에 집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명상은 언제든지 자신이 돌아가 쉬고 충전할 공간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그 공간이 점점 확장되면 어느 순간 그것이 단순한 평안을 넘어 지혜와 통찰로 넓어지고 깊어지며, 궁극적으로 삶의 연금술적 변화도 일어난다는 저자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될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이론부터 실습까지
삼십대에 내면을 향한 여정을 떠났던 저자는 선禪 명상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부족한 나’ 안에 숨어서 반짝이는 ‘온전한 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발견한 ‘참 나’를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실로 데려오는 일은 만만찮은 과정이지만, 저자는 그 과정을 다양한 수련법으로 정제해 이 책에 담았다.
각 장의 말미에는 일상에서 간단하게 실천해볼 수 있는 다채로운 명상법이 소개되어 있다. 불교를 비롯한 종교전통에서 온 수련법도 있으나 대부분은 아로마오일 향을 맡는다든지, 동네를 거닌다든지, 사탕을 녹여먹는다든지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활동이다. 감각을 차단하려 세속을 등진 구도자와는 달리 감각을 내면탐색의 도구로 활용하는 이 방식은 무엇이 진짜 내 욕망인지,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지, 외로움에서 벗어나 창조적 고독으로 가는 문은 어딘지, 내가 창조하고 싶은 나는 어떤 모습인지 응시하게 해준다. 홀로 고요히 앉은 가운데 자신과 세상을 관조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남는 것은 ‘나’ 하나라니,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경지 아닌가.
“새로운 인간공학이 필요한 시기이다. 나는 나를 어떻게 강화할 수 있나? 자기수련은 자기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내가 누구며,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알아야 ‘나다움’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잘 모르는 나. 명상은 애인을 만나듯 공들여 자기를 만나고, 자기 자신을 체험하는 것이다. 만나보면 안다.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나는 ‘아는 자(the knower)’, ‘듣는 자(the hearer)’, ‘보는 자(the seer)’다. 차곡차곡 명상을 쌓아가다 보면 나를 나이게 하는 그, 나의 주인을 알게 된다.”(p.34)
‘진짜 나’가 주인이 되어 창조해가는 삶,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나는 변화, 세상의 혼돈 속에도 흔들리지 않는 태산 같은 중심을 원한다면, 당신에겐 명상이 필요하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삶이 변화하는 마법이 되는 명상, 그 이론부터 실천까지 알차게 담긴 이 책을 통해 피어나는 봄의 신록처럼 변화의 기운을 두 팔 벌려 맞이해보면 어떨까.
저자는 선방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모습이 명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요동치는 마음을 가만히 한 곳으로 모을 수만 있다면 일상의 어떤 활동이나 명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명상 수업에는 산책이라든가 음악 감상, 경전 읽기, 연필 깎기, 사탕 먹기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활동은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노트북 전원이 들어올 때까지,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을 때, 주전자 물이 끓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이 모든 순간이 바로 깊이 숨 쉬면서 자기 자신과 접속하기 좋은 때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마저 번거롭다면 ‘한숨’조차 명상이 된다고, 저자는 그 문턱을 한없이 낮춰준다. 매일 쉬는 숨도 명상이 될 수 있다면 그래, 한번쯤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삶도 호흡이다. 들숨과 날숨처럼 끝없이 누군가와 생기를 주고, 받고, 나누는. ··· 명상은 특별한 게 아니다.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의도적으로 숨을 쉬는 것, 순수하게 숨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숨을 알아차리듯 마음을 알아차리고, 어떤 현상도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는 일이다. 호흡을 바라보면 마음을 바라보는 힘이 자라난다. 자동화된 내 생각, 내 감정, 마음의 습관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구나’ 하고 마음이 짓는 고통의 끈을 놓는 지름길이다. 숨이 그렇듯 내 삶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나’다. 모든 게 나에서 비롯되고, 나로 끝난다. 나는 언제든 ‘품위 있게 앉기’에 합당하다.”(p.63)
가벼운 한숨부터 의식의 변형을 일으키는 체험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넓고 깊은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바로 호흡이라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호흡에 집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명상은 언제든지 자신이 돌아가 쉬고 충전할 공간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그 공간이 점점 확장되면 어느 순간 그것이 단순한 평안을 넘어 지혜와 통찰로 넓어지고 깊어지며, 궁극적으로 삶의 연금술적 변화도 일어난다는 저자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될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이론부터 실습까지
삼십대에 내면을 향한 여정을 떠났던 저자는 선禪 명상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부족한 나’ 안에 숨어서 반짝이는 ‘온전한 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발견한 ‘참 나’를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실로 데려오는 일은 만만찮은 과정이지만, 저자는 그 과정을 다양한 수련법으로 정제해 이 책에 담았다.
각 장의 말미에는 일상에서 간단하게 실천해볼 수 있는 다채로운 명상법이 소개되어 있다. 불교를 비롯한 종교전통에서 온 수련법도 있으나 대부분은 아로마오일 향을 맡는다든지, 동네를 거닌다든지, 사탕을 녹여먹는다든지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활동이다. 감각을 차단하려 세속을 등진 구도자와는 달리 감각을 내면탐색의 도구로 활용하는 이 방식은 무엇이 진짜 내 욕망인지,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지, 외로움에서 벗어나 창조적 고독으로 가는 문은 어딘지, 내가 창조하고 싶은 나는 어떤 모습인지 응시하게 해준다. 홀로 고요히 앉은 가운데 자신과 세상을 관조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남는 것은 ‘나’ 하나라니,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경지 아닌가.
“새로운 인간공학이 필요한 시기이다. 나는 나를 어떻게 강화할 수 있나? 자기수련은 자기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내가 누구며,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알아야 ‘나다움’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잘 모르는 나. 명상은 애인을 만나듯 공들여 자기를 만나고, 자기 자신을 체험하는 것이다. 만나보면 안다.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나는 ‘아는 자(the knower)’, ‘듣는 자(the hearer)’, ‘보는 자(the seer)’다. 차곡차곡 명상을 쌓아가다 보면 나를 나이게 하는 그, 나의 주인을 알게 된다.”(p.34)
‘진짜 나’가 주인이 되어 창조해가는 삶,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나는 변화, 세상의 혼돈 속에도 흔들리지 않는 태산 같은 중심을 원한다면, 당신에겐 명상이 필요하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삶이 변화하는 마법이 되는 명상, 그 이론부터 실천까지 알차게 담긴 이 책을 통해 피어나는 봄의 신록처럼 변화의 기운을 두 팔 벌려 맞이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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