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동양철학의 이해 (독서요약)/8.쉬운철학사상

우정이란 무엇인가 (2025) - 자유롭고 평등한 사귐의 길을 찾아서

동방박사님 2025. 4. 14.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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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정은 자유다!”
‘반항하는 지성’ 박홍규의 우정의 사상사
『우정이란 무엇인가』

‘성찰하고 반항하는 지성’ ‘진정한 자유를 열망하는 영원한 이단아’ 박홍규 교수의 사상사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 시작이 될 이 책은 질문한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고백한다. 

사실 자신은 화려한 인맥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오늘까지도 시골에 파묻혀 평생을 거의 혼자서 살아오다시피 하고 있다고. 혹자는 그런 사람은 우정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은 단호히 말한다. 혈연, 지연, 학연을 근거로 하는 패거리주의는 참된 우정이 될 수 없으며 철폐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진정한 우정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헤매나 결국 얻지 못하고 극심한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오, 나의 친구여, 친구는 없다네!”라는 누구의 말인지 그 출처조차 불분명한 말에 쉽게 매혹되고 마치 그 말이 대단한 진리라도 되는 양 가슴속에 격언처럼 새기고 살아가지 않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지식이니 재산이니 사회적 지위니 하는 것 따위를 자랑하고 과시할 친구는 없지만 대신 평생 책을 친구 삼았노라고 고백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평생 읽은 사상가들의 우정론을 정리한 책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우정이라는 주제에 도전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전한 철학자는 많다. 

그래서 오늘날 일각에서는 자본주의로 인해 더럽혀진 우정을 그들의 책을 읽음으로써 회복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선전하기도 한다.

 일부는 옳은 말이다.

 오늘날의 천민자본주의는 거부되어야만 하고 “그래야 진정한 우정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 어떤 대단한 사상가의 우정론이라 할지라도 단일하고 절대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리하여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여러 사상가의 우정론을 아울러 정리한 이 책은 그 어떤 사람이나 견해도 찬양하거나 숭배하지 않는다. 

오직 그들의 우정론을 종합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검토, 고찰할 뿐이다.

어떤 사상을 다룸에 있어 그 사상이 탄생한 정치·사회·문화적 배경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사상가의 전체 사상을 살피지 않고 우정에 대한 일부 언급만을 떼어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총체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책이 많지 않으며 아예 전무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쓰였다.

 그러므로 개개의 우정론들을 각 시대의 현실과 사상의 맥락 안에서 비교·고찰하여 하나의 거대한 사상사로 엮어낸 이 책은 독창적이기로 유일무이하고, 가치 있다.

목차
머리말

제1부 근대 이전의 우정론

1. 사랑과 우정
2. 고대 동양의 우정론
3. 고대 그리스의 우정론
4.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우정론
5.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론
6. 에피쿠로스의 우정론
7. 스토아학파와 키케로의 우정론
8. 기독교의 우정론
9. 근대 이전 동아시아의 우정론

제2부 근대 이후의 우정론

10. 몽테뉴의 우정론
11. 계몽주의와 루소의 우정론
12. 레싱과 칸트의 우정론
13. 조선 후기의 우정론
14. 담사동의 우정론
15. 현대의 우정론
16. 요약과 전망


저자 소개
저 : 박홍규 (朴洪圭)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사카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하버드로스쿨, 노팅엄대학,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연구했다.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독서독인』으로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책 속으로
동료가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동료 중 두 사람 이상이 다른 동료에게는 없는 공통의 본능이나 관심사, 취향이 있음을 서로 발견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정이 시작하지요. 따라서 서로의 신상에 대해서는 무심하고 각자 그저 자신일 뿐인 것이 우정입니다. 

상대의 직업이나 계급, 수입, 인종, 과거사 등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정은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된 영혼의 만남이니까요. 

각자 독립된 나라의 군주로서 서로의 배경을 떠나 중립적 입장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몸이 만나는 것이 애정이라면, 우정은 벌거벗은 인격이 만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우정은 독단적이고 무책임하고, 의무와도 무관합니다. 

나는 누구의 친구가 될 의무가 없고, 마찬가지로 이 세상 그 누구도 내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가 없습니다. 

어떤 권리 주장도, 필연성도 없습니다.

 우정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가치를 갖지 않습니다. 

생존을 가치 있게 만들 뿐이지요.

완벽한 우정의 표시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준 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 「루이스의 우정론」 중에서

이로써 우리는 공자에게 우정은 반드시 평등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공자는 자기보다 나은 자를 볼 수 없었기에 친구가 없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적어도 소인은 당연히 공자의 친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논어』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고 지식이 많은 유익한 친구와 그렇지 못하고 손해가 되는 친구를 구별하는 것*도 군자라는 범주 안의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신분이나 재력과 같은 외부적 요소와 무관하다 보는 견해는 부당합니다.
--- 「공자의 우정론」 중에서

현대의 자유주의 사회에서 계층 구분은 억압이나 지배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지만, 유교 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계층 구조를 해로운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자연적 차이와 불평등을 삶의 기본적 사실로 인식했으며, 

가족은 인간 삶의 위계질서에 대한 온건한 존재와 필요성의 전형이었습니다. 

많은 인간 발달은 다양한 형태의 계층적 관계를 통해 발생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고, 형은 동생을 돌보고, 교사는 학생을 교육하는 등입니다. 

이러한 계층적 관계들을 포착하려고 노력한 것이 오륜입니다.
--- 「유교 우정론의 특징」 중에서

오늘날에는 막역지우를 ‘거리낌 없이 편하고 가까운 사이’ ‘서로 뜻이 잘 맞는 아주 친밀한 친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지만, 본래는 천지의 참된 도를 깨달아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 간의 교류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 「장자의 우정론」 중에서

묵자는 세상이 혼란한 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묵자에 의하면 자기만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집안이나 자기 나라만 사랑하고 다른 집안이나 다른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묵자가 지향하는 세계는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차별함이 없이 그저 사랑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묵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거부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현하기 힘들다는 이유였지요. 하지만 묵자는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겸애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들도 얼마든지 한다는 것이지요.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가며, 고통 가운데 살을 빼기도 하지 않습니까?
--- 「묵자의 우정론」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필리아를 행복(eudaimonia)으로 이끄는 근본적인 미덕의 하나로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유쾌한 것’입니다. 

행복에는 우정이 필요하고, 우정은 큰 즐거움의 원천입니다. 

다른 모든 재화를 가지고 있더라도 누구도 친구 없이는 살지 않을 것입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가지 우정」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좋은 친구를 많이 둘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친구를 사귀기란 어렵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바라는 최선은 친구를 몇 명 정도 갖는 것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좋은 사람이 되기란 어렵지요.

 인생을 함께 헤쳐 나갈 또 다른 좋은 사람을 찾는 것은 그보다 두 배는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 「디오게네스의 우정론」 중에서

키니코스학파에 의하면 중요한 것은 자신을 향상하는 법을 배우고, 자급자족하고 단순하게 사는 일뿐입니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 중 발전을 위해 엄격한 자기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 발전이 우정이나 공동체에 달려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친구가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친구가 부족한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어떤 사람들은 고독과 독립에 만족하기도 하는 법입니다.
--- 「키니코스학파의 우정론」 중에서

크라테스는 결혼했고 친구가 있었으며, 키니코스학파 철학을 실천하려는 노력으로 서로를 지지했습니다.

그의 우정이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아마도 오늘날의 많은 우정과 다른 점은 사람들과 맺는 가장 깊고 친밀한 관계를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워야 하고, 인간의 취약성과 불완전성을 부끄럽지 않게 드러내야 합니다.

인간의 취약성을 두고 아첨하거나 심지어 수사적으로 꾸미는 것은 결코 우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적인 기능에 편안함을 느끼고 인간의 결함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키니코스학파는 발전에 대한 고상한 이상을 경고합니다. 

그들은 자급자족하며 개개인이 가진 특성을 키우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사람들의 결점과 자연스러운 존재 방식을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면서요.
--- 「키니코스학파의 우정론」 중에서

지금 우리는 그리스철학이라고 하면 바로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리지만, 고대에는 에피쿠로스가 더 유명했고 추종자도 더 많았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소크라테스 등의 목적론적 세계관에 반대했습니다. 

특히 신이 인간 세계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비판했지요.

동시에 기계론이나 결정론에도 반대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우연성과 인간의 자유를 강조했으며, 인간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게 우정이라고 보았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행복의 재료로서 중요히 여겼고, 정원에 정기적으로 여성들과 노예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인에게 근본적인 인간 평등 사상을 소개하고 신을 숭배하는 전통을 깨트렸습니다.

우정과 공동체는 에피쿠로스학파의 핵심입니다. 에피쿠로스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추종자들에게 정치나 공직 생활에 참여하지 말고 우정과 사회적 유대를 중시하라고 적극적으로 권고했습니다. 

당대의 정치는 국가가 제공하는 보호 혜택을 받기 위해 국가 제도에 복종하는 암묵적 계약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만약 따르지 않으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두려움에 기반을 둔 시스템과 같으므로 정의롭지 않다고 에피쿠로스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근거한 공공 규칙이 아니라 우정으로 서로 돕고 보살피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해할 동기가 없고 정의로 가득 차 있기에 법과 형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 「에피쿠로스의 즐거운 우정론」 중에서

『우정에 관하여』에서 키케로는 스토아학파 우정의 이상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법률론』에서 키케로는 자연법에서 정의의 기원을 확인하고 이를 스토아학파의 용어로 정의합니다. 

즉 우리 모두는 자연법의 지배를 받으며, 모든 사람이 완전히 합리적이라면 우리는 이 자연법에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선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자연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그 일을 하지 않는 반면에, 사악하고 비합리적인 사람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우주 공동체 내에 있는 사악하고 비합리적인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키케로와 세계시민주의 및 세계 제국」 중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게 우정이란 서로 다른 사람들과의 우정이자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입니다

또한 유사하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필리아, 우정)이 아니라, 다르고 이질적이며 추한 것에 대한 창조적 사랑(아가페)입니다. 

『생명의 영』에서 그는 동일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닫힌 동료들만을 포함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 개념에 반대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정의 기초로서 유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낯선 사람에 대한 환대를 망각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몰트만의 주장은 뒤에서 볼 데리다의 주장과도 같습니다.
--- 「기독교의 우정론」 중에서

가령 왕심제의 친구인 왕용계(王龍溪, 1498~1583)는 사대부는 항상 스승이어야 한다는 왕심제의 주장에 반대하고, 사도(師道)와 함께 붕우의 도를 중시하면서 사우의 도를 부모 형제에까지 확대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정의 중요성은 도덕적 함양을 돕고 더 나은 자아가 되게 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반면 효는 자아의 핵심이었지요. 

그러므로 양명학에서는 우정의 중요성이 효의 중요성을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우정은 가족 윤리의 보충 자료로 남아 있어야 했지요.
--- 「양명좌파의 사우론」 중에서

볼테르에 의하면 우정은 민감하고 덕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지만 이혼처럼 갈라설 수 있는 것입니다. 

우정에 대한 볼테르의 견해는 키케로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는 달리 우정을 이상화하지 않습니다. 

다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정과 무관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차이가 결정적입니다. 

우정을 이상의 영역에서 현실로 끌어낸다는 점에서 볼테르의 우정론은 나름의 가치가 있습니다.
--- 「볼테르의 우정론」 중에서

루소는 어떤 비밀도 없이, 모든 문제에 대해 동의하는 관계를 우정의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모든 사람에게 확대하는 경우 다른 발언이나 행동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 세상이 됩니다. 

그것이 루소 사후 십 년 만에 터진 프랑스혁명이었습니다. 

루소의 우정은 프랑스 국기의 3색, 즉 청(자유)·백(평등)·적(박애, fraternite) 중 박애라는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 「프랑스혁명과 미슐레의 우정론」 중에서

칸트는 루소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가 자기 방에 걸었던 초상화는 루소의 것이 유일합니다. 

『에밀』을 읽느라 산책을 거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칸트는 루소가 이상으로 삼은 ‘투명한’ 우정이 이상적인 대인관계가 아닐 뿐 아니라 대인관계조차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그는 『도덕형이상학』에서 “순수한 우정, 또는 완전한 우정에 도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설가들의 단골 주제다”라고 했는데, 이는 루소를 염두에 둔 말이었지요.

 칸트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칸트는 사전에 어떤 대인관계에도 구속되지 않는 단순한 인간의 집합 같은 것을 전제하지 않고, 그런 무색투명한 인간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단순한 인력이 우정이라고 보지도 않습니다. 

반대로 인간들이 처음부터 주위 사람들과의 여러 가지 대인관계에 던져져 있고, 그 대인관계에는 인력(引力)과 함께 반발력(反撥力)이라고 하는 상반된 힘이 동시에 작용한다고 보았지요. 

칸트는 인력을 사랑, 반발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존경이라고 합니다.

 즉 우정은 사랑이라는 인력과 존경이라는 반발력의 미묘한 균형상태, 즉 “두 인격 사이의 평등하게 상호적인 사랑과 존경을 통한 결합”입니다.
--- 「칸트의 우정론과 루소의 우정론」 중에서

그러나 그가 중시한 것은 쾌락이나 공익, 미덕 등 어떤 특별한 우정이 아니라, 혈연· 지위·국적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보편적인 우정이었습니다. 

자아를 양심적으로 억제하지 않으면 보편적인 우정을 이룰 수 없다는 그의 우정론은 영웅적 우정론이었습니다.
--- 「담사동 우정론의 평가」 중에서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기대하지 않고, 자연현실에 대한 순수한 이상을 버린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면 냉소적이거나 비관적인 친구가 필요합니다. 

극심한 곤경에 처했을 때는 비관주의자 같은 친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늘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전을 멀리하고, 불완전한 자아에 대한 비전을 재교육하고, 인간의 단순성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무엇보다 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쇼펜하우어의 우정론」 중에서

니체는 칸트와 같이 우정의 조건으로 ‘사랑’과 ‘존중’을 듭니다. 

그런데 칸트의 ‘존중’과 달리 니체는 ‘아곤(agon, 경쟁)’을 내세웁니다. 

니체는 호메로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곤이 초인에 이르는 자기실현 과정에 필수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아곤은 예술의 창조를 위한 경쟁이기도 하지만, 피비린내 나는 전투나 정치적 통치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강한 인간’인 초인이 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니체는 이를 약한 인간성을 길러내는 현대교육과 대비시킵니다.

 현대교육이 무시하는 경쟁·시기·투쟁은 니체가 숭배하는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적 문화의 특징입니다. 

『쓰릴 미』의 두 남자는 어릴 적부터 그런 문화에 의해 길러져 수재가 되었습니다. 

아곤이 없다면 그리스가 타락하듯이, 아곤이 없는 세계는 파멸일 뿐이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아곤’에 의해 친구를 적으로 삼아 선의의 경쟁을 벌임으로써 초인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이른다는 것이지요. 즉 ‘원수를 사랑함’이 아니라 ‘친구를 증오함’으로써 생산적인 경쟁이 가능해집니다.
--- 「니체의 우정론」 중에서

사회학과 함께 인류학에서도 사회적 결속을 형성하는 데 있어 우정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오랫동안 인식돼왔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우정이 호혜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두 사람 사이의 선물이나 호의의 교환으로 가장 잘 상징됩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유대는 관계가 지속되도록 보장하려는 의도로 형성됩니다. 

선물을 주면 보답할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으로는 개인 간의 상호성이 일대일 관계를 넘어 외부로 확장되어 다른 사람을 포함하도록 일반화됩니다. ‘가교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의 생성을 통해서지요. 

그렇게 일반화된 호혜성은 특히 신뢰가 다양한 그룹을 포함하고 확장될 때 사회생활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신뢰가 됩니다.
--- 「우정론 철학의 소멸과 우정론 사회학 및 인류학의 등장」 중에서

데리다의 우정은 아무런 조건이 없는 환대의 당위성에서 출발합니다. 

우정은 모자관계처럼 환대를 전제로 한다고 그는 보았습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동서양의 우정론이 조건을 전제로 한 것과 달리 데리다의 우정론은 무조건적인 환대를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우정의 대상은 가족, 친척, 친구 등과 같은 가까운 타자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까지 미칩니다. 

그러나 레비나스의 환대와 달리 데리다는 법과 제도를 통한 접근을 전제합니다.
--- 「데리다의 우정론」 중에서

철학자들은 이상적인 대인관계가 충족시키는 일반적인 조건을 ‘또 하나의 나’라고 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이지만, 그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한 사람은 고대 로마의 키케로입니다.

 키케로는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이듯이 친구도 ‘또 하나의 나’로서 소중한 존재이기에 사귄다고 말합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인 것은, 내가 나 외의 어떤 목적에 봉사하는 수단이나 도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의 가치는 나 자신이 나에게 목적이라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나는 나 자신으로서 목적이기 때문에 나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친구는 어떤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닙니다. 

사귀는 것 자체에 가치가 있는 사귐이야말로 본래적이고 이상적인 대인관계입니다.
--- 「친구는 또 하나의 나?」 중에서

전통적으로 가족에는 법이 작용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로크나 루소도 그렇게 보았고, 현대에 와서도 마이클 센델 같은 공동체주의자들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상적이지 않은 가족에도 기본적인 정의가 필요합니다. 

현대는 개인주의 시대입니다. 

그것은 이기주의와는 다릅니다. 

개인주의에서 말하는 개인은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존재입니다.

 그러한 개인들로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부부 관계는 수직적이지 않고 수평적으로 평등하며, 그들 사이에 태어나는 자녀도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인정됩니다. 

여기에는 소통을 통한 의사결정과 책임, 그리고 무엇보다도 폭력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합니다. 

부모는 미성년 자녀를 교육하고 보호할 권리와 의무를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은 과거와 달리 개방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가족의 사랑은 그러한 민주적 우정 관계 위에서 비로소 진정으로 가능해집니다.
--- 「가족과 우정」 중에서

우정은 억압과 공포가 지배하는 무서운 세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인간다운 세상의 영혼입니다. 

우정의 지혜 없이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정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연대를 연결합니다. 

따라서 우정은 친구와의 연대임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이기도 합니다. 

우정은 우리가 어떤 억압이나 속박도 없이 자유롭게, 또한 어떤 계급이나 위계도 없이 평등하게 친구로 살아가기 위한 삶의 지혜입니다.
--- 「맺음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서양 사상가들의
철학과 삶의 궤적을 따라
그 우정론의 총체를 살피는 비판적 사유의 여정

이 책이 말하는 우정은 자유이자 평등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며 자치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우정이다. 

따라서 우정에는 필연적으로 억압과 불평등에 함께 대항하고 투쟁하는 일이 수반된다. 

이 책은 그런 관점에 따라 각 시대별 사상가들의 우정론을 비판적으로 살핀다.

 

 이 책은 근대 이전의 우정론을 다루는 1부와 근대 이후의 우정론을 다루는 2부로 크게 나뉜다.

 따라서 고대 유교와 불교, 장자, 묵자의 우정론에 이어 조선 전기의 유교적 우정관으로 나타나는 동양의 우정관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의 우정론이 1부의 내용에 해당한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와 스토아학파의 우정론과 오늘날 우정에 대한 대표적인 책으로 여겨지는 『우정에 관하여』에 담긴 키케로의 우정관, 16세기에 쓰인 마테오리치 『교우론』의 의미와 그 반향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2부에서는 몽테뉴와 루소, 레싱, 칸트 등 근대 철학자들의 우정론을 살핀다. 

젊은 날 라 보에시와 나눈 우정은 몽테뉴의 전 생애와 철학에 크고 깊은 영향을 미쳤다. 

또 오늘날 박애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소는 “어떤 비밀도 없이, 모든 문제에 대해 동의하는 관계”를 우정의 본질로 보았는데, 그런 그의 우정론이 만든 전체주의 세상이 바로 프랑스혁명이었다고 이 책은 분석한다. 

한편 평생 철두철미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유명한 칸트는 『에밀』을 읽다가 산책 시간을 놓쳤을 정도로 루소에게 빠져 있었다. 

그런 그의 우정론은 루소의 우정론과 어떤 점에서 유사하고 다른지도 이 책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동서양의 우정론을 고루 살피는 이 책은 박지원과 정약용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의 우정론을 살피고, 중국의 사회개혁가 담사동의 우정론도 살핀다. 

또한 오늘날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우정론도 살핀다. 

그들에 대한 또 다른 견해를 접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한다. 

끝으로는 앞서 살펴본 우정론들을 요약하고 이제 올 새로운 우정 공동체를 전망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리하여 두려움 따위 없는 세상으로,
모두가 친구가 되는 세상으로 가자!

어쩌면 저자로 하여금 우정이라는 주제를 고심하게 한 것은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평생을 두려워하며 살았던 것 같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교원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갑 차고 경찰서 유치장에 끌려가는 아버지를 보며 울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수십 년 뒤 어른이 된 자신도 그날의 아버지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 당시 신문에 쓴 손바닥만 한 칼럼 하나로 제자뻘 되는 검사에게 열 시간씩 취조를 당했는데, 감히 죽음을 생각할 만큼 두렵고 수치스러웠노라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자신에게는 부모도, 선생도, 이웃도, 친구도, 공권력까지도 모두 두려운 존재일 뿐이었다고 말하는 저자가 자신만은 아무도 두렵게 하지 않고, 모두의 친구로서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며 살고 싶다고 바라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다.

이 책이 말하는 친구란 “단순히 친한 사이가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로 맺어진 공동의 상대”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친구가 몇이나 있는가?

 아니, 이런 친구가 있기나 한가? 우리 사회는 이러한 우정이 싹틀 수 있는 토양인가? 온갖 정치적 갈등과 반목, 대립으로 수십 갈래로 쪼개져버린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 아니냐는 것이다. 

저자는 이 세상의 모든 덫을 깨뜨리자 촉구하며 세계주의적 평등을 상상한 담사동의 이상에 공감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다.

“모두가 친구가 되는 우정의 세상을 만듭시다. 

평등·자유·자치의 우정이 꽃피는 세상을 만듭시다! 그런 우정을 막는 모든 껍데기는 가라! 

그것이 사상이든, 종교든, 이데올로기든 뭐든 없어져라! 

세상에 오로지 우정의 강물만이 도도히 흐르게 하라! 내 주변, 내 마을, 내 나라만이 아니라, 온 세상과 세계를 친구의 땅으로 만듭시다! 

세상 모든 가난하고 차별받는 사람들,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등의 친구가 됩시다! 

나라나 민족을 따지지 말고 인류애로 친구가 되는 세상을 꿈꾸어봅니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5128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