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동양철학의 이해 (책소개)/1.동양철학사상

연암 박지원 소설집

동방박사님 2021. 12. 2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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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8세기는 조선 사회가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던 시기다. 지식인 사회에서는 유교 경전 중심의 사유체계에 도전하고 주체적이며 자주적으로 사회의 문제를 재해석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태동했는데 바로 그 중심에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이 있었다.

다산 정약용이 혼란과 도탄에 빠진 조선 사회를 유교적 이상과 질서에 따라 재구성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사구시적인 논리를 펼쳤다면 연암 박지원은 조선 사회의 음습한 부분들을 해학과 풍자, 조롱과 꾸짖음 등의 양식을 통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글을 다수 남겼다. 그는 해학과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조선 사회의 허구성과 위선을 까발리고 고발하였다. 동시에 참된 사회, 참된 인간존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리하여 그의 글은 단순히 기성사회를 붕괴시키고 해체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성과 신분에 종속되지 않고 참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 사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도록 재촉한다.

이 책에 실린 12편의 소설은 연암의 인품과 문제의식을 잘 드러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문학적 양식을 긴밀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사료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간호윤 박사의 밀도 높은 주해와 감칠맛 나는 언어 선택은 연암의 소설의 가치를 현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목차

개정판을 내며
여는 글

마장전
_인간들의 아첨하는 태도를 논란하니 참사내를 보는 것 같다

예덕선생전
_엄 행수가 똥을 쳐서 밥을 먹으니 그의 발은 더럽다지만 입은 깨끗한 게야

민옹전
_종로를 메운 게 모조리 황충(蝗蟲)일세!

양반전
_쯧쯧! 양반, 양반은커녕 일 전(錢) 어치도 안 되는구려

김신선전
_홍기(弘基)는 큰 은자인지라 유희 속에 몸을 숨겼구나

광문자전
_얼굴이 추해 스스로 보아도 용납할 수가 없다

우상전
_비천한 우상에게서 잃어버린 예를 구한다

역학대도전
_학문을 팔아먹는 큰 도둑놈 이야기다

봉산학자전
_참으로 잘 배웠다

호질
_이 선비놈아! 구린내가 역하구나!

허생
_문장이 몹시 비분강개하다

열녀함양박씨전 병서
_남녀의 정욕은 똑같다

제“연암소설 12편”후
개를 키우지 마라
닫는 글
 
 
저자 소개 
저 : 박지원 (朴趾源, 호 : 연암)
 
호는 연암이며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이다.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 운동의 선두 주자였으며 많은 문장을 후세에 남긴 작가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출생하여 자랐으며, 할아버지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박필균(朴弼均)이고, 아버지는 박사유(朴師愈)이며, 어머니는 함평 이씨이다. 아버지가 벼슬 없는 선비로 지냈기 때문에 할아버지 박필균이 양육하였다. 1765년 처음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역 : 간호윤 (簡鎬允)

 
순천향대학교(국어국문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국어교육학과)을 거쳐 인하대학교 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1년, 경기 화성, 물이 많아 이름한 ‘흥천’(興泉) 생이다. 예닐곱 살 때부터 명심보감을 끼고 두메산골 논둑을 걸어 큰할아버지께 갔다. 큰할아버지처럼 한자를 줄줄 읽는 꿈을 꾸었다. 12살에 서울로 올라왔을 때 꿈은 국어선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지금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고전을 가르치고 배우며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글쓰기를 평생 갈 길로 삼는다. 그의 저서들은 특히 고전의 현대화에 잇대고 있다.

『한국 고소설 비평연구』(경인문화사, 2002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기인기사』(푸른역사, 2008),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김영사, 2010),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조율, 2012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그림과 소설이 만났을 때』(새문사, 2014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연암 박지원 소설집』(새물결플러스, 2016), 『아! 나는 조선인이다』(새물결플러스, 2017), 『욕망의 발견』(소명출판, 2018), 『연암 평전』(소명출판, 2019) 등 저서 모두 직간접적으로 고전을 이용하여 현대 글쓰기와 합주를 꾀한 글들이다. 연암 선생이 그렇게 싫어한 사이비 향원(鄕愿)은 아니 되겠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라 한다.
 

책 속으로

연암의 글과 말, 행동은 하나였습니다. 행동과 실천이 따르지 않는 배움은 가치 없습니다. 공부를 하는 이들만이라도 제발 저이를 표석으로 삼아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머리로 공부깨나 했다고 뽐내며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이죽거리거나 야료를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여 연암의 글을 읽고 우정, 정의, 인정이라고는 말라붙은 이 시대에 다시 인정의 샘물, 정의의 샘물, 우정의 샘물이 졸졸 흘러들었으면 합니다.
---「여는 글」중에서

희망은 인간의 등에 붙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세 광인의 등 뒤에 붙은 세상을 다스리는 올바른 도리는 오히려 뚜렷하게 보인다. 지금도 우리는 사실 이런 숙맥불변인 천골들에게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세 광인 중 가장 어리석은 조탑타의 말마따나 ‘충’으로 벗을 사귀고 ‘의’로 벗을 얻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장전」중에서

요즘은 많은 사람이 세상을 요령껏 사는 것이 큰 재주인 양 여기나 이 소설을 찬찬히 읽고는 빙충맞아 보이는 엄 행수라는 인물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한다. 『논어』 「위령공」 편에서 공자는 이런 말을 했다. “더불어 말할 만한데도 함께 말을 하지 않으면 아까운 사람을 잃어버리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못한데도 함께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말도 잃지 않는다.”(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 不失人 亦不失言) 겉모습만 화려한 이들의 뒤꽁무니를 붙좇지 말고 주위를 찬찬히 살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저런 이들을 찾아 사귀어볼 일이다.
---「예덕선생전」중에서

연암은 양반, 그중에서도 특히 선비를 “곧 하늘이 내린 작위”(士乃天爵)라고 할 정도로 높이 쳤다. 그래서 선비는 모름지기 ‘권세와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고 현달해도 선비의 처지를 떠나지 않으며 곤궁해도 선비의 지조를 잃지 말아야 할 것’(弗謀勢利 達不離士 窮不失士)이라고 못 박는다. 하늘이 내린 지위이기에 행실을 그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연암은 이렇듯 양반으로서의 책무를 강조하고 양반의 지위를 확고히 하려 했다. 이는 곧 ‘양반은 명예이고, 명예는 지켜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의 글에 양반에 대한 애증이 적잖이 드러나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 양반임을 대단히 자부했다는 증표다. 연암이 다른 양반들과 달랐던 점은 저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였다는 점이다.
---「양반전」중에서

학문하는 길에는 방법이 따로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을 가는 사람이라도 잡고 묻는 것이 옳다. 어린 종이지만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더 알면 우선 그에게 배워야 한다. 자신이 남과 같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종신토록 고루하고 무식한 경지에 자신을 가두어두는 셈이다.
---「봉산학자전」중에서

우리는 「허생」에서 탐천을 마시고 돈과 명예, 권력에 휘둘리는 이들과 바른 삶을 정립한 경제인과 지식인(讀書人)의 초상을 엿볼 수 있다. 연암소설 중 「허생」은 당대의 모순된 현실을 ‘지적하고 고발’하는 작품 경향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연암은 「허생」에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모순을 시정’하려는 의도를 담아냈다. 허생의 경제적 행동, 변산의 도둑 해결, 시사삼책 제시 등이 바로 그것이다. 독자는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허생」중에서

그러나 연암소설이 지금도 여전히 현실적인 화두가 될 수 있는 것은 양반과 백성의 공생 가능성을 열어두고 독자로 하여금 만인이 공유하는 평화로운 질서를 꿈꾸게 하는 ‘희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연암의 말 중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어느 시대든 ‘개를 키우지 마라’와 같이 훈훈한 정이 있는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연암이 꿈꾸었던 ‘질서’의 실현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제“연암소설 12편”후」중에서
 

출판사 리뷰

18세기는 조선 사회가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던 시기다. 당시에는 완고한 봉건적 신분제 사회의 모순에서 비롯된 내부의 피로도가 임계점에 육박했고, 왜란과 호란을 계기로 국가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지도층의 무능력과 당파주의에 대한 의구심과 냉소가 분출되었으며, 서구의 사상과 문물을 접하게 되면서 기존의 유교 질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리하여 지식인 사회에서는 유교 경전 중심의 사유체계에 도전하고 주체적이며 자주적으로 사회의 문제를 재해석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태동했는데 바로 그 중심에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이 있었다.

다산과 연암은 여러 면에서 서로 비교-대조되는 존재다. 그 둘은 조선 후기의 지식인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그들의 문제의식, 글쓰기 방식과 문체적 특징, 궁극적 목적이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서도 문제의 인물임이 분명하다. 다산 정약용이 혼란과 도탄에 빠진 조선 사회를 유교적 이상과 질서에 따라 재구성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실사구시적인 논리를 펼쳤다면 연암 박지원은 조선 사회의 음습한 부분들을 해학과 풍자, 조롱과 꾸짖음 등의 양식을 통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글을 다수 남겼다. 따라서 기존의 유교 사상과 질서에 충실했던 정조가 당시 사대부들의 문풍을 어지럽힌 배후로 박지원을 지목하며 "근자에 문풍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죄다"라고 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박지원의 글은 도발적이며 전복적이다. 그는 조선 사회의 허구성과 위선을 까발리고 고발하되 해학과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그렇게 한다. 동시에 그는 이 과정에서 참된 사회, 참된 인간존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리하여 그의 글은 단순히 기성사회를 붕괴시키고 해체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성과 신분에 종속되지 않고 참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 사회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도록 재촉한다. 이를 위하여 그는 한 곳에 고정된 정주형 인간이 아니라 여러 곳을 방랑하고 여행하며 다양한 견문을 배우고 성찰하는 유목형 인간으로서 지식인의 배움의 도를 풀어내며, 각계각층의 조선인 뿐 아니라 외국인, 심지어 자연의 미물에게까지 귀를 기울임으로써 그 폭을 한껏 확장한다. 이 책에 실린 12편의 소설은 연암의 그러한 인품과 문제의식을 잘 드러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문학적 양식을 긴밀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사료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간호윤 박사의 밀도 높은 주해와 감칠맛 나는 언어 선택은 연암의 소설의 가치를 현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비록 18세기의 작품이지만 연암의 글은 겉모습만 21세기일 뿐 실상은 여전히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풍습에 매여 허우적거리는 오늘 한국사회의 음험한 지점들을 향해서도 상당한 적실성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자신의 작품 배면에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 땅의 지도층들이 경청하고 가슴에 되새길 내용들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