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동양철학의 이해 (책소개)/1.동양철학사상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 홍대용의 북경여행기

동방박사님 2021. 12. 2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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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18세기 북학파의 선구자이자, 과학사상가였으며, 문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담헌 홍대용이 1765년에서 1766년에 걸쳐 6개월동안 북경을 여행하고 그 여정을 기록한 여행일기 『을병연행록』을 알기 쉬운 현대어로 옮긴 것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함께 여행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을병연행록』은 한글로 씌어진 최초의 장편 기행문으로, 우리 문학사의 귀중한 문학유산이기도 하다. 특히 한글본 연행록은 풍부한 내용과 함께 고여의 미려함과 고전의 가치가 뛰어나 국문학 연구에서도 귀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은 한문본과의 비교를 통해 고어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며, 특히 한글본 연행록을 옮긴 것이다.
이 책에는 홍대용의 자전적 고백과 개인적인 일상의 기록에서부터 중국의 문화와 서양 문물을 바라보는 주체적인 역사 인식, 그리고 지적 호기심 가득한 과학자로서의 진보적인 면모와 통찰력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 일기에서 보여준 그의 지적 호기심은 학문론에서부터 역사, 주자학, 양명학, 시론, 화론(畵論), 천문학, 수학, 음악, 병법, 과거론, 인격론 등등 백과전서적인 편폭을 지니고 있어 당시 홍대용의 사상이 조선시대 실학자들에게 주요한 학문적 원천이 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18세기 조선과 중국의 문화와 풍습 및 두 나라 문화 교류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부록으로는 박지원, 이송의 글을 실어 당시 지식인들의 이 여행에 대한 평가를 살펴볼 수 있으며, 최근 북경에서 발견된 홍대용의 초상화등을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목차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중국 여행
일러두기

1. 압록강을 건너다
경성을 떠나다
요동벌을 지나다
산해관에서 정녀묘를 보다

2. 드디어 북경에 들다
북경에 들어가다
조참에 따라가 황제의 행차를 보다
정양문 밖에서 희자 놀음을 보다
관에서 환술을 보며 즐기다

3. 천주당과 유리창에 가다
유리창에서 북경의 문물을 보다
천주당에서 서양 신부를 만나다
몽고관과 동천주당에 가다
항주 선비들의 이야기를 듣다

4. 천애의 지기를 이루다
간정동에서 중국 선비를 만나다
태화전의 장려한 기상을 보다
황제가 노닐던 서산을 구경하다
담헌 팔경을 노래하다
천애의 지기를 이루다
혼천의 제도를 논하다
마침내 이별이 되다

5. 의무려산에 오르다
의무려산에 올라 북진묘를 바라보다
다시 압록강을 바라보다

부록
홍덕보 묘지명
담헌 홍덕보 묘표
회우록서
홍대용의 여행 경로
홍대용 주요 연보
홍대용의 주요 저서
인명해설
찾아보기

 

저자 소개

역자 : 박성순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동국대학교 강사로 있으며, 「정전의 창조적 해체와 실학의 방법」,「우정의 윤리학과 북학파의 문학사상」등의 논문이 있다.
역자 : 김태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홍대용 평전』,『홍대용과 그의 시대』,『춘향전 비교연구』(공저),『임진왜란과 한국문학』(공저),『한국문학의 동아시아적 시각』1,2 등이 있으며, 그 외 논문 다수가 있다.
저자 : 홍대용 (1731~1783)
북학파의 지도자이자 18세기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자연철학자로, 자는 덕보이고 호는 담헌이다. 천문과 율력에 뛰어나 혼천의를 만들었고 지구의 자전설과 우주무한론을 제창하였다. 일찍이 과거를 포기하고 참 선비로서의 수양과 참 학문의 실천에 평생 정진하였다.
 
 

책 속으로

동국 사적의 대강
조선은 남북이 4천 리이고 동서가 1천여 리이다. 나눠서 팔도를 만들었는데, 가운데는 이른바 경기도니 나라 도읍이 있다. 경기도 동쪽은 이른바 강원도니 또한 동쪽으로 바다를 임하고, 강원도 북쪽은 이른바 함경도니 또한 동으로 바다를 임하며 북으로 백두산에 이르고, 함경도 서쪽은 이른바 평안도니 서로 바다를 임하며 북으로 압록강을 사이하고, 평안도 남쪽은 이른바 황해도니 또한 서해를 임하며 남으로 경기도를 연하고, 경기도 남쪽은 충청도니 동으로 강원도를 연하며 서로 바다를 임하고, 충청도 서남쪽은 이른바 전라도니 서남으로 바다를 임하여 중국의 표류한 상선이 혹 이르고, 전라도 동쪽은 이른바 경상도니 동남은 바다를 임하며, 그 북쪽은 충청도요 그 동북은 강원도니, 이것이 일국 지형의 대강이다.
동방은 처음에 임금이 없더니, 신인이 있어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렸다. 이로써 모시어 임금을 삼아 중국 요임금 시대에 위에 올랐다. 그후에 자손의 형세가 쇠미하여 무왕 때에 이르러 기자가 동으로 봉하시니, 여덟 가지 가르침을 베풀어 사람을 죽인 자는 그 명을 대신하고, 재물을 도적하는 자는 재물 임자의 종으로 삼으니, 수년 만에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그후 자손이 세 나라로 나누니 이른바 진한 변한 마한이며 지금 삼한이라 일컫는다. 삼한의 자손이 한 무제 때에 이르러 다 멸망하여 네 고을을 만들었다. 선제 오봉 연간에 이르러 박씨가 일어나 다시 나라를 세워 신라라 일컫고, 한때 백제와 고구려 두 나라가 있어 삼국이 나눠 웅거하니, 수 양제와 당 태종이 동으로 쳐들어와 이기지 못한 것은 곧 고구려이다. 당 명종 때에 이르러 당군 소정방으로 보내어 고구려와 백제를 칠 때, 신라가 또한 장수 김유신으로 하여금 한가지로 쳐서 드디어 두 나라를 멸하고 땅이 다 신라에 속하니, 신라는 나라를 천 년을 누리고, 왕씨가 나라를 세워 이름을 고려라 일컬었다. 고려는 5백년에 망하여 명나라 태조 28년에 본국이 되며, 태조 황제가 이름을 명하여 조선이라 일컬으니, 이것이 역대 흥망의 대강이다.
--- pp.320-321
높은 집에서 가슴을 헤치며 흥이 날고자 하니 한때의 좋은 모꼬지가 예로 응당 드무리로다. 앉기를 깊이 하매 어찌 자주 햇빛이 옮김을 아끼리오. 곧 저녁 북소리를 들어도 돌아가기를 빌지 아니하리로다. 다시 동풍에 버들꽃이 나는 것을 보니 고향 뫼와 구름 나무 꿈에 희미하도다.
--- 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