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나루에서 잠실대교로
송파나루는 삼전도(삼발나루)와 함께 서울과 광주를 잇는 중요한 나루터로 이곳의 송파장은 한성부 소속이 아닌 광주부 소속이었기 때문에 금난전권이 미치지 않아 사상들이 자유롭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송파는 영남지방으로부터 충청 내륙지방을 경유하는 상경로와 영남 내륙지방인 태백산, 봉화와 관동지방에서 여주, 이천을 경유하는 상경로가 만나는 한강변의 유통거점 이었다. 송파나루는 1960년대 까지 뚝섬과 송파를 잇는 배가 운항 되었으마 1960년대 말에 이르러 강남지역의 개발로 송파나루 앞으로 흐르던 한강을 매립하고 샛강을 정비 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한강 물길의 흔적은 한강을 메우다 남긴 석촌호수에서 찿아 볼 수 있고 내륙지방에서 이어진 옛 길은 잠실대교, 천호대교로 연결된다.
송파나루에서 잠실대교로
송파나루는 삼전도(삼발나루)와 함께 서울과 광주를 잇는 중요한 나루터로 이곳의 송파장은 한성부 소속이 아닌 광주부 소속이었기 때문에 금난전권이 미치지 않아 사상들이 자유롭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송파는 영남지방으로부터 충청 내륙지방을 경유하는 상경로와 영남 내륙지방인 태백산, 봉화와 관동지방에서 여주, 이천을 경유하는 상경로가 만나는 한강변의 유통거점 이었다. 송파나루는 1960년대 까지 뚝섬과 송파를 잇는 배가 운항 되었으마 1960년대 말에 이르러 강남지역의 개발로 송파나루 앞으로 흐르던 한강을 매립하고 샛강을 정비 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한강 물길의 흔적은 한강을 메우다 남긴 석촌호수에서 찿아 볼 수 있고 내륙지방에서 이어진 옛 길은 잠실대교, 천호대교로 연결된다.
뚝섬나루에서 영동대교로
뚝섬나루는 조선시대 경기도 양주목에 속했던 땅으로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여 과거 호조戶曹의 수세소收稅所가 있었던 곳이다. 또한 한강상류에서 운송되는 목재의 집산지로서 한양 최대의 목재시장이 있었고 숯의 판매도 활발하여‘숯광골“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뚝섬나루는 맞은편의 삼전도와 봉은사가 있는 수도산쪽으로 건너가는 교통로로서 1960년대 까지 중요한 기능을 했지만 1973년 영동대교의 선설로 기능이 사라졌다.
1972 잠실대교
광진구 자양동과 송파구 신천동을 잇는 다리로서 건설 당시에는 길이 1,280m로 마포대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다리였다. 1970년 10월에 착공하여 1972년 7월1일에 준공했다. 잠실대교의 개통으로 잠실에 대단위 거주지역과 상업지역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고 성남등 외곽 위성도시와의 접근성도 향상 되었다.
또한 잠실대교에는 한강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수중보인 잠실수중보가 건설 되었다. 수중보는 한강의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한강 이용도를 높여 주었다.
잠실대교 조감도
잠실지구 개별사업 설명회 당시 사용한 조감도이다. 잠실대교는 광주대단지 주민들의 도심이동을 원활하게 하기위한 목적에서 건설되었으나 잠실지구에 대단위 거주 지역과 상업지역이 형성되는 데 기여 하였다.
1972.5.24
교각 기초공사
잠실대교 교각 기초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사진이다. 잠실대교는 교각은 우물통기초, 교대는 파일기초로 시공 하였다. 1970.10.9
상판 설치 공사
상부 강판 설치공사 당시 촬영한 사진이다. 잠실대교는 1년 10개월만에 준공하여 토목공사 사상 최단기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1972.1.9
택지개발사업과 한강다리
1960년대 한강개발사업은 공유수면 매립과 강변택지조성사업이었다. 서울시는 한강을 개발하면서 한강변의 공유수면을 매립하거나 강변의 제방을 옮겨 발생한 부지를 택지로 조성하였다. 공유수면 매립사업은 1962년 동부이촌동. 서빙고등 지구를 시작으로 1971년까지 반포, 압구정,구의, 잠실등 총19개 지구에서 진행 되었다. 택지개발 사업과 연게하여 잠실대교 1972년, 영동대교 1973년, 등 크고 작은 다리들이 건설되었다. 특히 잠실대교의 경우 건설비 전액을 잠실 택지 개발사업의 비용으로 충당하여 조달하였다.
1973 영동대교 永東大橋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청담동을 잇는 교량으로 한강다리 중 일곱번째로 건설된 도로교통이다. 서울시가 도심권 인구 분산과 영동지구 개발을 위해 1970년 8월13일에 착공해 1973년 11월 8일에 완공 하였다.
당시에는 영동교로 불렸으나. 1984년 11월에 한강에 놓인 다리의 명칭을 대교로 바꾸면서 영동대교로 변경되었다. 이 다리의 가설로 청담동, 삼성동 일원의 상업 중심지역과 주거지역의 발전을 도모 하였다. 또한 ㅎ한남, 잠실대교에 밀집디는 교통량을 분산시켜 소통을 원활 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 왔다.
영동대교 교각공사
영동대교 교각공사 사진이다. 교량 하부는 구주식 교각으로 우물통기초로 건설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71.4.25.
완공된 영동대교
남부순환도로와 동시에 완공된 영동대교의 모습이다. 아래쪽이 남부순환도로로 이어지는 교차로이다.
1973.11.3.
개통직전의 영동대교
한강개발 계획
강남연동개발을 계기로 한강은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하천으로 변모하였다. 이후 1981년 88서울올림픽 유치가 결정 되면서 이를 게기로 한강을 정비하는 대규모사업이 추진되었다. 치수 기능 확대를 위한 저수로 정비, 고수부지 조성, 올림픽대로등 도시고속화도로 개통, 한강물 정화를 위한 하수처리장건설, 유람선 및 레저 스포츠시설 건립 등이 포함된 대규모 공사였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4년간 추진된 이 사업으로 한강은 수해를 벗어난 친수공간으로 새로 탄생하게 되었다. 반면 과도한 인공구조물의 도입으로 자연환경이 손실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