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교와 나룻배
제3한강교 교각 아래 마룻배를 타고 가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다. 이 나룻배는 한남대교 (제2한강교)가 건설되기 전까지 한남동과 신사동을 이어 주었다. (1969년 임인식촬영)
한강진에서 한남대교로
한강진은 도성의 정남에 위치해 한남동과 사평나루 (지금의 강남구 신사동)를 이어주는 주요한 나루로서 한양에서 광주를 거쳐 삼남지역으로 나가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이곳에는 한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고추, 마늘 감자, 고구마 등의 농산물과 목재, 장작 등이 유통되었다, 한강나루 근처에 한남동과 신사동을 연결하는 제3한강교 (한남대교)가 1969년에 건설되었고 1970년 7월7일에 개통된 경부고속도로와 연결 되었다. 또한 이 다리는 강남대로, 잠원로, 압국정로 등 강남 주요 대로와 이어져 있다.
마포나루에서 마포대교로
용산강(한강과 만초천이 만나는 곳)이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마포나루는 수상교통의 요충지로 삼남지방에서 오는 물품이 모이는 장소 중 하나였다. 서강과 용산이 세곡운송의 중심지 였다면, 마포는 어물로과 상품 유통의 중심지였다. 또한 마포 건너편에 있는 하중도인 여의도를 지나 육로로 시흥과 연결되는 도로를 이어주는 나루터였다. 이 길은 시흥간로라 불렸는데 도성의 남대문에서 만리현, 마포로 이어져 율도, 여의도 방학곶을 지난다. 그러나 철도가 부설되면서 물화가 집산되던 마포의 기능이 점차 줄어들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강화만이 막혀 한강으로 배들의 출입이 불가능해지면서 마포의 나루기능은 사라지게 되었다.
1969 한남대교 (제3한강교)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 사이를 잇는 다리로 한강에 네 번째로 건설된 교량이다. 1966년 1월19일 착공해 4년만인 1969년 12월 25일 준공하였다.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되며 강남지역 대규모 개발을 위해 가설되었다. 개통 당시에는 6차선 교량으로 제3한강교로 부르다가 1985년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하면서 지금의 이름인 한남대교로 변경되었다. 이후 교통량 증가에 따라 몇 번의 확장공사를 거친 2004년 8월 너비 51.2m, 왕복12차로로 개통하여 한강에서 가장 넓은 다리가 되었다.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제3한강교는 1970년대 7월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와 맞불려 개통되어 고속도로와 영동(강남) 신시가지의 진입로가 되었다. (1971년 국가기록원)
한남대교 교각 상판공사
한강다리와 강남시대
1980년대 서울의 인구급증에 따라라 새로운 택지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이미 1963년 서울시에 편입 되었으나 아직 한적한 시골로 남아 있던 강남 (영동)개발이 시작된다. 이 개발사업의 촉진제가 된 것은 한남대교이다. 유사시 시민 도강용으로 1966년 착공된 한남대교는 계획당시 평화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강남개발보다 군사적 필요성이 더 컷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선설 중이던 경부 고속도로 개통과 맞물리면서 강남지durd[[ 대규모 신시가지를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970 마포대교 서울대교
마포구 용강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잇는 다리로 1968년 2월에 착공하여 1970년 5월에 준공 되었다. 1968년부터 시작된 한강개발계획의 핵심사업으로 추진되어 황무지 상태의 여의도를 “서울의 맨하튼”으로 비약시키는 발판이 되었다. 건설 당시에는 “서울대교‘라고 부르다가 1984년에 ’마포대교” 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강종합개발사업에 따라 올림픽대로가 개통되면서 늘어난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 1996년 대대적인 개보수공사가 진행되어 왕복 8차로의 대교로 확장되었다.
마포대교와 여의도 비행장
시가지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여의도 비행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하단에 보이는 다리가 마포대교 (서울대교)이며, 멀리 동부이촌동 아파트 간지와 한강대교 (제1한강교) 및 한강철교가 보인다. 1970.11.15
마포대교 상량식
마포와 여의도를 연결하는 마포대교 (서울대교)의 상량식이 진행되 있는 상황을 찍은 사진이다. 1968년 2월 29일 착공해 2년3개월만에 완공했다
1970.3.11
마포대교와 여의도 시범 아파트
본격적인 개발 이전의 여의도 모습이다. 여의도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서울대교 (현 마포대교0를 건설하고 최초의 현대적 고층 아파트 단지인 시범아파트를 1971년에 완공하였다.
여의도 汝矣島 개발과 한강다리
여의도 개발이 시작되기 전 여의도는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비행장만 있었을뿐 황무지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1967년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면서 인공섬으로 조성되었다. 섬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광장과 국회의사당, KBS,증권거래소, 시범 아파트 등이 들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상업 주거 공간으로 탈 바꿈 하였다. 또한 서울대교(1970년) 원효대교(1981년), 서강대교(1999년)가 건설되어 섬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부도심으로 성장할수 있었다.
1965년 여름 홍수 뒤 한강대교의 모습을 강남에서 강북방향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노들섬에 위치한 위락시설들이 침수된 모습과 함께 한강인도교를 지나는 행렬이 인상적이다. 1967년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이 추진되기 이전 한강은 장마철 홍수가 잦아 서울 일부 저지대의 경우 매년 침수되는 것이 거의 연례행사였을 정도 였다.
하지만 소양강댐, 충주댐 등 다목적댐이 상류에 건설되고 강바닥을 준설하고 제방을 조성하면서 수해를 예전보다 많이 줄일수 있었다
한치규 촬영 1965년 7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