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국제평화 연구 (독서)/9.난민이야기

난민, 난민화되는 삶 (2021)

동방박사님 2023. 7. 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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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2018년 6월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도착했다. 그 이후 한국 사회는 ‘난민’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현재, 로힝야 난민캠프를 비롯한 전 지구의 열악한 격리시설 곳곳에서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자본주의의 끄트머리에 있는 존재들부터 삶의 기반을 잃고 난민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난민화된 삶이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 연쇄되어 있는가를 보게 한다. 그리고 이 간극 혹은 한계-접점에서, 타자에게 기꺼이 자신을 개방하고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어떻게 지금 여기의 삶이 저 먼 난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가, 또 지속적으로 연결의 감각을 가질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이 책은 2018년 10월 무렵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 발언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연구·활동가들이 모여 만들어낸 시공간의 압축적인 기록이다. 프로젝트 그룹 [난민×현장]이라는 이름은 ‘난민’과 ‘현장’을 서로 부딪쳐, 난민화되는 몸들이 놓인 상태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여러 주제, 즉 난민 인권활동가가 겪는 어려움, 민족국가 바깥의 위안부 할머니들, 난민화된 병역거부(기피)자, 성소수자 난민, 항상적 난민 상태의 동물들, 전체가 드러날 수 없는 난민의 이미지 등은 그 각각의 상태들이 서로를 비추며 연결되고 사유의 그물이 된다.

[난민×현장]은 난민화되는 삶을 사상적·문학적·역사적으로 연구하면서 이러한 삶을 살게 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아카데미 안팎의 사람들이 다양한 입장과 위치에서 첨예하게 토론하는 티치인(Teach-in) 공통장을 만들어 왔다. 이를 통해 난민혐오 속 뿌리 깊은 인종주의,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난민운동의 접점, 로힝야 난민의 고통을 듣는 것이 불/가능한 ‘우리’의 자리, 난민을 만들어내는 전쟁에 연루된 일상에 대한 인식, 금지영역을 깨뜨려 장소의 운명을 바꾸는 힘에 대해서 논의한다. 이처럼 이 책은 아카데미 안팎, 활동가와 연구자의 차이,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의 간극에서 부딪쳤던 한계-접점의 경험을 섬세하게 사유함으로써, 2018년에서 2020년까지 만들어져 온 ‘또 하나의 시공간’을 하나하나 펼쳐 보여 준다.

목차

여는 글 ― 마주침의 ‘한계-접점’에서 7

1부 전염과 매듭

‘증언을 듣는 자’에 대한 증언 / 신지영 31

2부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조선인 ‘위안부’, 그녀들의 귀향의 거부 혹은 실패 / 이지은 92
‘국민화’의 폭력을 거절하는 마음 : ‘난민화’의 메커니즘을 비추는 병역거부와 이행을 다시 생각하며 / 심아정 136
‘동물’의 난민성과 재난민화 : 사하라로 보낸 그 많은 염소는 모두 안녕할까? / 송다금 174
접힌 이미지의 바깥을 펼치며 : 어떤 옷차림의 사람들 / 전솔비 211
이주와 정주 : 베를린 기록 / 이다은·추영롱 240

3부 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들

난민×현장 : 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들 / 이지은·전솔비 261

제1회 신인종주의와 난민

어떻게 국민은 난민을 인종화하는가? / 김현미 278
질문으로서의 차별금지법, 그리고 난민 / 미류 303

제2회 로힝야 난민 이야기

생존하는 것만으로 저항인 사람들의 이야기 / 김기남 334
지금-여기에 ‘로힝야’는 어떻게 도착해 있나 : ‘로힝야 학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 / 신지영·심아정·이지은·전솔비 361

제3회 반군사주의와 난민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 / 쭈야 401
병역거부 운동 : 누구의 위치에서 어떤 평화를 말할 것인가 / 이용석 423
평화를 만드는 말의 모습 / 도미야마 이치로, 심정명 445

글쓴이와 옮긴이 소개 467
 

저자 소개

저 : 도미야마 이치로 (tomiyama ichiro,富山一郞)
 
1957년 교토에서 태어나 교토대학교 농학부를 졸업하였고 같은 대학 농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사카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를 거쳐 현재 도시샤대학교 글로벌스터디즈연구과 교수이다. 프란츠 파농과 이하 후유를 사상의 중심으로 삼아 이를 통해 오키나와를 어떻게 사고해야 할지 지속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일본사회와 「오키나와인」』, 『전장의 기억』, 『폭력의 예감』, 『유착의 사상』, 『시작의 ...
 
저 : 신지영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부교수. 한국·동아시아 마이너리티 코뮌의 형성·변화를 1945년 전후 기록/문학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면서, 현재의 난민·장애·비인간 존재의 곁/뒤에 설 수 있는 글쓰기를 꿈꾼다. 저서로는 『不부/在재의 시대』(2012), 『마이너리티 코뮌』(2016), 『난민, 난민화되는 삶』(2020, 공저), Pandemic Solidarity (2020, 공저), 『動物のまなざしのもとで』(2022, 공...
 
저 : 김현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주요 연구 분야는 젠더의 정치경제학, 노동, 이주자와 난민, 생태 문제다. 지은 책으로 《글로벌 시대의 문화번역》,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한국에서 이주자로 살아가기》,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공저), 《젠더와 사회》(공저),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공저), 《난민, 난민화되는 삶》(공저)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1. 『난민, 난민화되는 삶』 간략한 소개

2018년 6월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도착했다. 그 이후 한국 사회는 ‘난민’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현재, 로힝야 난민캠프를 비롯한 전 지구의 열악한 격리시설 곳곳에서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자본주의의 끄트머리에 있는 존재들부터 삶의 기반을 잃고 난민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난민화된 삶이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 연쇄되어 있는가를 보게 한다. 그리고 이 간극 혹은 한계-접점에서, 타자에게 기꺼이 자신을 개방하고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어떻게 지금 여기의 삶이 저 먼 난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가, 또 지속적으로 연결의 감각을 가질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이 책은 2018년 10월 무렵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 발언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연구·활동가들이 모여 만들어낸 시공간의 압축적인 기록이다. 프로젝트 그룹 「난민×현장」이라는 이름은 ‘난민’과 ‘현장’을 서로 부딪쳐, 난민화되는 몸들이 놓인 상태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여러 주제, 즉 난민 인권활동가가 겪는 어려움, 민족국가 바깥의 위안부 할머니들, 난민화된 병역거부(기피)자, 성소수자 난민, 항상적 난민 상태의 동물들, 전체가 드러날 수 없는 난민의 이미지 등은 그 각각의 상태들이 서로를 비추며 연결되고 사유의 그물이 된다.

「난민×현장」은 난민화되는 삶을 사상적·문학적·역사적으로 연구하면서 이러한 삶을 살게 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아카데미 안팎의 사람들이 다양한 입장과 위치에서 첨예하게 토론하는 티치인(Teach-in) 공통장을 만들어 왔다. 이를 통해 난민혐오 속 뿌리 깊은 인종주의,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난민운동의 접점, 로힝야 난민의 고통을 듣는 것이 불/가능한 ‘우리’의 자리, 난민을 만들어내는 전쟁에 연루된 일상에 대한 인식, 금지영역을 깨뜨려 장소의 운명을 바꾸는 힘에 대해서 논의한다. 이처럼 이 책은 아카데미 안팎, 활동가와 연구자의 차이,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의 간극에서 부딪쳤던 한계-접점의 경험을 섬세하게 사유함으로써, 2018년에서 2020년까지 만들어져 온 ‘또 하나의 시공간’을 하나하나 펼쳐 보여 준다.

2. 『난민, 난민화되는 삶』 상세한 소개
2018년 6월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도착하다

이 책의 필자들은 2018년 10월 프로젝트 그룹 「난민×현장」을 시작했다. 2018년 10월 무렵은 ‘왜’라는 질문 없이도 누구나 난민을 둘러싼 상황을 고민하게 되던 때였다. 2018년 6월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500여 명은 한국 사회가 처음으로 마주한 ‘집단난민’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예멘 난민 수용 반대 청원에 71만 명이 참여하면서 한국 사회가 원래 지니고 있었던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난민을 향해가기 시작했다. 여성에 대한 혐오가 있던 자리를 난민이, 성소수자가 대체해 가는 상황 속에서 ‘상호교차성’에 대한 논의가 부상했지만, 반면에 소수자와 소수자를 대립시키는 포퓰리즘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난민×현장」이 난민운동과 다른 소수자 운동(여성, 장애, 동물, 성소수자, 병역거부)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던 것은 이러한 상황 때문이었다.

난민과 다른 소수자의 ‘접점’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러나 난민과 여성, 난민과 장애, 난민과 동물, 난민과 성소수자...와 같은 식으로 난민과 다른 소수자의 ‘접점’을 모색하려 했던 처음의 기획은, 난민다움, 여성다움, 성소수자다움 등 ‘~다움’을 그/녀들에게 밀어 넣고, 그러한 말로는 결코 표현될 수 없는 내재적 경험의 다채로운 색깔과 깊이를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고 필자들은 회고한다. 「난민×현장」은 소수자 운동이 ‘정체성’을 투쟁의 기반으로 삼아, 고정된 정체성을 벗어난 관계를 만들어 왔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정체성 정치’를 단지 비판하기만 하는 논의와는 거리를 뒀다. 그러나 담론의 층위에서 소수자들 사이의 ‘접점’을 모색하는 것은 ‘정체성’을 고정된 것으로 만들거나 소수자들 사이의 피해의 무게를 재거나 소수자 사이의 대립을 양산하는 포퓰리즘과 연결될 위험이 있었다.

어떻게 난민화되는가를 질문하는 토론 공통장을 모색하다

따라서 「난민×현장」은 ‘어떻게 난민화되는가’를 계속 질문하면서 각각이 놓여 있는 몸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사유와 활동을 전개하려고 했다. 또한 티치인이라는 형식을 전유하여, 아카데미의 안팎이나 연구자와 활동가 등 상이한 위치와 입장을 가진 존재들이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하여 안심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통장을 모색했다. 소박하지만 꾸준했던 「난민×현장」의 활동 속에서, 난민과 ‘우리’의 간극을 인식하게 하는 ‘왜 하는가’라는 물음은, ‘그래도’라는 반작용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이 책의 제목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이러한 멀어짐과 다가감의 반복적인 움직임을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동어반복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제목이, 「난민×현장」에게는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 대한 자각과 난민의 상태 사이에서 갈등했던 결코 안정될 수 없는 장소였다. 그러나,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은 난민들이 있는 자리로부터 「난민×현장」을 멀어지게 한 것이 아니라, ‘그래도’라는 속삭임을 재차 확인하면서, 스스로의 난민화된 삶과 만나고 난민들의 곁에 서도록 촉구하는 힘이었다고 믿는다.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의 간극에 부피와 무게를 부여하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아카데미 안팎, 활동가와 연구자,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의 간극에서 부딪쳤던, 사유·활동·마주침의 한계-접점들을 담고 있다. 이 한계-접점들은, 「난민×현장」이 난민 및 난민화되는 삶에 다가갔고 또 다가갈 수 없었던 지점들을 선명하게 표시한다. 만약 『난민, 난민화되는 삶』이 2018년 이후 난민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며 발행되었던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모두가 좁히려고 하는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 난민과 ‘우리’, 활동가와 연구자, 당사자와 연구자 등이 부딪치면서 생기는 간극을 확 벌려서, 그 지점에 부피와 무게를 부여하려 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 한계-접점을 더 깊이 파고들면서 「난민×현장」은 각각의 ‘몸’이 놓인 자리를 인식하는 동시에, 바로 그 자리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조금씩 상상할 수 있었다.

혐오발언이 난무하는 시대에 공통의 장소는 어떻게 가능할까?

혐오발언의 대상이 여성에서 난민으로, 다시금 성소수자로 연쇄되는 과정 속에서 혐오발언의 또 하나의 양상이 대두했다. 그것은 난민과 여성을, 난민과 노동자를, 난민과 청년을, 소수자와 소수자를 대립시키는 포퓰리즘이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소수자들 사이의 거짓 대립을 증폭시키는 혐오 발언의 포퓰리즘적 확산을 첨예하게 비판하고, 공통의 저항의 장소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을 담았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정체성에 고착되고 각 그룹의 피해의 경중을 재는 폐쇄적인 운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각각의 몸이 놓여 있는 장소가 서로에게 사유의 그물이 되고 투쟁의 공통장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모색했다. 이러한 시도와 실패들은, 점차 공통장이나 공론장이라는 오프라인의 관계 맺기가 어려워져 가고 혐오발언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관계 맺기의 욕망과 윤리를 고민하면서 투쟁의 장소가 지닌 역사성을 질문하게 한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은 누가 난민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난민화하는 조건을 살핀다. 이를 통해 교차하는 권력의 억압과 착취를 비판하는 한편, ‘증언’을 듣고 말하는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증언’을 당사자에게 귀속시키고 절대적인 진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증언을 둘러싼 여러 관계 속에서 ‘증언’의 공통장을 만들어가려는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다양한 화두들

철학적 차원에서, 이 책은 고통이나 상처조차 통치성의 도구로 활용하는 ‘인도주의적 통치성’(버틀러)의 세계에서, 어떻게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의 고통을 듣고 표현하는 공통장이 가능할지를 질문한다. 이는 고통의 재현이 고통 포르노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하는 저항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묻는다. 역사적 차원에서 이 책은 역사 속의 난민과 현재의 난민을 연결 짓고, 난민과 다른 소수자성의 한계-접점을 찾아내는 수많은 구체적인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난민을 최근의 문제로만 파악하거나 난민을 국민국가 비판으로만 파악하는 시도들을 벗어나, 난민화되어가는 각자의 경험과 삶의 문제로 난민 문제를 인식하게 한다.

사회이론의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한국사회의 난민 문제를 인종주의에 대한 접근을 통해서 보여준다. 혐오발언이 난민을 인종화하는 측면, 아시아의 민중봉기가 일어난 지역에서 봉기 이후 불거진 소수민족에 대한 학살, 제도화된 인종주의의 폐해 등이다. 이 책은 일종의 새로운 사회운동론,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운동론으로서도 접근이 가능하다. 즉 권력에 의한 억압과 착취의 교차를 보는 교차성 이론을 새롭게 전유했다. 위안부, 병역거부자, 동물, 이주민 이미지 등 고전적인 주제를 2018~2020년을 관통하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운동의 흐름(성소수자 운동, 난민인권활동, 동물권, 새로운 위안부 논의, 병역거부와 가해자성, 무기거래 감시, 포괄적 차별금지법, 여성장애, 활동가의 위치에 대한 인식)과 연결시킨다. 이를 통해 드러난 한계-접점은 피해나 소수자성의 더하기나 소수성을 다른 소수성과 비교하고 경쟁시키는 방식을 벗어나, 교차하는 억압의 문제를 역사적 경험 속에서 사유하게 한다. 피해와 가해의 구조를 ‘개인’에 환원시키지 않고 자본주의와 군사주의의 큰 틀 안에서 보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예술가, 연구자, 활동가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는 사람들이 논문 혹은 에세이라는 기존의 고착된 글쓰기 장르나 분과화된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중간중간 들어가는 사진이나 그림, 무엇보다 글과 이미지가 교차하는 작품 자체인 글들도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고착된 장르, 분과학적 연구, 글 혹은 이미지라는 양자택일의 경직성을 벗어나 1년 반 동안 한국 사회의 난민과 마주하고 난민화된 삶을 기록한 다채로운 아카이빙, 즉 아카이브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아카이빙이다.

3. 책의 구성

이 책은 ‘우리가 난민이다’라는 동화의 논리도, ‘난민은 남일이다’라는 이화의 논리도 모두 경계한다. 오히려 난민과 난민화된 삶 사이의 관계를 섬세하게 파고들고, 다양한 사유와 활동과 만난다. 1부와 2부에 실린 여덟 편의 글은 이러한 고민 속에서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을 연결짓고 저항의 공통장을 모색하려는 고민을 담았다. 3부에는 티치인에서 발표되었던 다섯 편의 글을 모아 「난민×현장」이 티치인을 통해 경험한 마주침의 한계이자 언젠가 다가올 접점을 표시한다. 한국 사회의 난민화되는 삶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8편의 글은, 이해하기 어렵고 오해하기 쉬운 난민과 관련된 문제들을 각각 ‘자신’의 문제로 느끼게 하며 동시에 타자에게로 다가가게 한다. 또한 활동가, 연구자, 비평가, 예술가, 변호사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는 5편의 글에 묻어나는 현장성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현장을 만들어낼 것인가, 라는 고민을 이어가게 할 것이다.

제1부 ‘매듭과 전염’은 신지영의 「‘증언을 듣는 자’에 대한 증언」으로 채워져 있다. 이 글은 「난민×현장」과 난민 사이의 매듭이 되어 주었던 활동가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난민의 증언을 듣는 활동가’의 증언을 듣고 썼다. 이를 통해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이 얽매인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타자에게 자신을 개방하고 연결되려는 욕망의 전염을 상상해 보고자 했다.

제2부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은 「난민×현장」이 마주한 한계-접점을 각자의 몸이 놓인 위치에서 깊이 파고들어가 부딪친 지점의 파열음을 담았다. 이지은의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위안부’, 그녀들의 귀향의 거부 혹은 실패」는 1991년 이전, 위안부의 경험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위안부임을 증언했던 배봉기, 노수복, 배옥수의 증언에 초점을 맞춘다. 이 글은 귀향을 ‘거부’한 것인지 ‘실패’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는 그녀들의 증언이 서로를 비출 때, 겹쳐지면서 울려 퍼지는 ‘난민의 노래’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가, 그리고 덧대어 부를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심아정의 「‘국민화’의 폭력을 거절하는 마음」은 병역거부를 결심한 친구 박상욱 곁에서 그 병역거부 이후의 시간을 함께하면서 ‘법을 위반한 자들의 정의’가 설 장소를 모색한 글이다. 이글은 병역거부자뿐 아니라 적극적 병역이행자도 난민화된 삶으로 몰아가는 ‘국민화’의 폭력을 간파하고 비남성 및 성소수자들의 병역거부를 논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연다.

송다금의 「동물의 난민성과 재난민화」는 여성이나 난민이 ‘나는 동물이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언설을 파고든다. 즉 ‘불리한 위치, 불리한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재난민화’되어 버리는 ‘동물’이 놓여 있는 상황을 드러내는 전략이다. 이 글은 동물의 항구적 재난 상태를 증명하는 충격적인 사례들을 통해 종차별주의와 육식문화의 폭력성을 성찰하도록 촉구한다.

전솔비의 「접힌 이미지의 바깥을 펼치며」는 난민다운 표정이나 옷차림 등 “~다운 이미지”를 부여하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표현을 모색하기 위해 「이주민패션매거진」 프로젝트에 주목한다. 정형화된 이주노동자의 이미지와 그 위에 놓인 중압감을 단숨에 날려 버리는 예술 프로젝트에 주목하며 이 글은 이주노동자의 ‘눈에 띄고 싶은 욕망’에 초점을 맞춰, 생존권으로 수렴되는 권리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이다은, 추영롱의 「이주와 정주」는 2018년 겨울과 2019년 여름에 베를린에서 만났던 난민, 이주민, 비국민, DV를 피해온 여성 등 다양한 법적 신분의 사람들이 모여 되살린 장소와 관계를, 활자와 이미지로 아카이빙한다. 이들의 작품은 지역적인 동시에 국제적인 관계로, ‘망명 중인 여성들’에게로 향해가면서, 맨몸인 채로 존재를 빛내는 만찬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제3부 ‘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들’은 3회에 걸친 티치인의 발표문을 모아 그 생생한 순간들을 전달한다. 이지은과 전솔비가 공동으로 쓴 「난민×현장 티치인」은 티치인 형식에 대한 설명과 각 회의 분위기와 논점을 구체적으로 쓰고 있다. 제1회인 ‘신인종주의와 난민’에서 발표되었던 김현미의 「국민은 어떻게 난민을 인종화하는가?」는 제주도에 예멘난민이 집단으로 도착하면서 시작된 한국사회의 난민에 대한 혐오발언을 ‘신인종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분석한 것이다. 미류의 「질문으로서의 차별금지법, 그리고 난민」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활동을 전개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난민운동과 소수자운동의 접점을 모색한 실험적인 글로, 연대의 조건을 사유할 수 있는 단서들을 제시한다.

제2회인 ‘로힝야 난민이야기’에서 발표되었던 김기남의 「생존하는 것만으로 저항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로힝야 난민의 역사와 현재를 총체적으로 조명하면서도, 로힝야 학살에 대한 인권기록 운동을 진행해 온 활동가의 실감이 전해진다. 「지금 여기에 로힝야는 어떻게 도착해 있나」는 이지은, 전솔비, 심아정, 신지영이 함께 쓴 글로 로힝야 난민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을 분석하고, 아시아의 식민주의 속 인종주의 차별이 시민권의 부여와 어떻게 연동하고 있는지 향후 난민의 재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역사와 현재의 경험 속에서 조명했다.

제3회인 ‘비군사주의와 난민’에서 발표되었던 쭈야의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겠습니까?」는 예멘이나 시리아 등 난민을 낳는 전쟁에 한국의 군산복합체 한화 등의 무기가 수출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밝힌다. 이용석의 「병역거부운동」은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의 역사를 차분히 되짚으면서 비남성들의 병역거부운동이 지닌 의미를 교차성에 기반하여 생생하게 전해주는 한편, 향후 병역거부운동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도미야마 이치로의 「평화를 만드는 말의 모습」은 심정명의 번역으로 실려, 조선인으로 ‘오인되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이라고 했던 오키나와인들의 말을 파고든다. 이를 통해 “~라면 어쩔 수가 없지만, 나는 ~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미리 배제”된 존재들이 또 다른 “미리배제”된 존재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무의식을 묻고, 이런 무의식을 벗어날 수 있는 “다초점 확장주의”를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