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역사기행 (독서)/5.세계문화기행

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2023)

동방박사님 2024. 1. 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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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모든 버려진 장소에는 이야기가 있다
죄수들의 섬 앨커트래즈, 소금사막 우유니의 기차 폐기장, ‘미국의 살인 수도’ 게리…
‘흑역사 랜드마크’ 40곳에서 만난 절반의 세계사


한때 화려한 영광을 누렸으나 이제는 누구도 찾지 않는 장소, 폐허. 이런 폐허들은 아무 쓸모도 없다고 여겨지지만, 사실 폐허에는 ‘쓸모 있는’ 교훈이 가득하다. 어리석음과 오만, 차별과 편견 등 인류가 저지른 수많은 흑역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탈옥하지 못한 것으로 악명 높은 앨커트래즈 교도소에는 가혹한 형벌의 폐해가, 소금사막으로 유명한 우유니의 기차 폐기장에는 세상의 변화를 미리 읽지 못한 어리석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가디언(The Guardian)』이 선정한 ‘영국 최고의 대중문화역사가 중 한 명’이자 『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별난 장소들의 지도(Atlas of Improbable Places)』 등을 집필한 ‘이색 명소 전문가’ 트래비스 엘버러는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곳을 통해 우리를 크고 작은 흑역사의 세계로 이끈다. 폐허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전에 미처 몰랐던 절반의 세계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목차

서문

예정된 운명이 이루어진 곳

버려진 아이들의 안식처는 왜 유기되었나: 뷔위카다 보육원/튀르키예
체르노빌 참사의 숨은 그림자: 자르노비에츠 원자력발전소/폴란드
소련 붕괴도 견딘 이곳을 무너뜨린 것: 피라미덴/노르웨이
건축가는 그 부부의 운명을 예견했을까: 도나시카성/포르투갈
아이티 혁명의 영웅은 왜 독재자가 됐을까: 상수시 궁전/아이티
크누트 대왕의 경고가 현실이 되다: 루비에르크누드 등대/덴마크
모든 것을 반대한 이의 최후: 사메자노성/이탈리아

세상의 변화에서 끝내 도태되다

‘책의 도시’에 남은 ‘붉은 군대’의 흔적: 뷘스도르프/독일
문명의 중심지를 굴복시킨 것: 알울라/사우디아라비아
‘환희의 성채’가 맞은 인과응보: 만두/인도
〈007〉 속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크라코/이탈리아
이 땅에선 오직 죽음만이 현실이다: 그렌게스베리/스웨덴
마이클 잭슨이 찾던 스튜디오에 음악 대신 사이렌 소리만: 플리머스/서인도제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모래사막: 콜만스코프/나미비아
에디슨의 꿈이 묻혀 있던 곳: 케니컷/미국
히틀러는 왜 조상들의 고향을 없애려고 했을까: 될러스하임/오스트리아

시간의 무게에 잠식되다

날개를 잃은 ‘바다 위의 나비’: 웨스트피어/영국
‘크리스마스의 수호성인’에서 ‘크리스마스 유령’으로: 샌타클로스/미국
내전과 쿠데타도 무너뜨리지 못한 옛 영광: 듀코르팰리스 호텔/라이베리아
누구도 ‘일본의 하와이’를 찾지 않는다: 하치조로열 호텔/일본
나폴레옹이 그리워한 땅에 양 떼만 남았다: 그랑오텔드라포레/프랑스
‘카멜롯’이란 이름의 저주: 카멜롯 테마파크/영국
프랭크 시내트라가 사랑했던 ‘사막의 기적’: 솔턴시리비에라/미국
수족관이 된 쇼핑몰: 뉴월드몰/태국
그들이 휴양지에 대포를 쏜 이유: 쿠파리/크로아티아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와 그리스의 평행이론: 헬리니콘 올림픽 단지/그리스

찬란한 영광의 잔해

아프로디테의 탄생지, 분쟁의 중심에 서다: 니코시아 국제공항/키프로스
소금사막의 땅은 왜 열차의 무덤이 됐을까: 우유니 기차 폐기장/볼리비아
빅토리아 시대의 종언을 알리다: 크리스털팰리스 지하도/영국
성지 순례와 노예 매매가 교차했던 곳: 수아킨/수단
뉴욕 대표 지하철역이 폐쇄된 이유: 시청 지하철역/미국
혁명가, 테러리스트, 그리고 Objekt 825: 발라클라바 잠수함 기지/크리미아반도

오래된 이야기의 마침표

가톨릭 현대화를 이끈 ‘우주선’의 최후: 세인트피터스 신학대학/영국
‘복지의 섬’에 세워진 음산한 건물: 루스벨트섬 천연두 병원/미국
결코 전달되지 않는 편지들의 보관소: 볼테라 정신병원/이탈리아
‘기적의 도시’는 왜 ‘미국의 살인 수도’가 됐을까: 시티감리교교회/미국
여성들은 그 섬을 벗어날 수 없었다: 아캄펜섬/우간다
연방대법원 건물 설계자의 비밀스러운 오점: 시사이드 요양원/미국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구단의 훈련장이 간직한 비밀: 레녹스성 병원/영국
새들만 살던 ‘펠리컨섬’은 왜 죄수들의 섬이 됐을까: 앨커트래즈 교도소/미국

 

저자 소개 

저 : 트래비스 엘버러 (Travis Elborough)
 
카리브해의 해적부터 LP까지, 대중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글쓰기의 대가. 《가디언(The Guardian)》이 선정한 ‘영국 최고의 대중문화역사가 중 한 명’으로 웨스트민스터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낯선 장소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지식과 교훈을 전달하는 데 탁월하다. 2020년 에드워드 스탠퍼드 여행 글쓰기 상(Edward Stanford Travel Writing ...

역 : 성소희

 
서울대학교에서 미학과 서어서문학을 공부했다. 글밥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고전 추리 범죄소설 100선』, 『여름날 바다에서』, 『키다리 아저씨』, 『베르토를 찾아서』, 『하버드논리학 수업』, 『미래를 위한 지구 한 바퀴』, 『알렉산더 맥퀸: 광기와 매혹』,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코코 샤넬: 세기의 아이콘』 등이 있으며, 철학 잡지 [뉴 필로소퍼]...

책 속으로

역사는 … 끝내 소용없어진 장소들로 가득 차 있다. … 이런 장소가 품은 이야기는 덧없음과 소진, 흥망성쇠, 산업화와 환경, 인류의 오만, 신뢰할 수 없는 기억과 기념에 관해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다. … 이 책은 버림받고, 소외되고, 사람이 살지 않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들의 지명 사전이다.
--- p.11

잊혀서 완전히 사라진 대상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치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그 반대다. 버려진 장소는 다가올 세상을, 잔해에서 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더 오래 더 열심히 생각해보라고 격려한다.
--- p.13

앙리 크리스토프는 아이티 혁명의 영웅이었다. … 1791년 노예 반란이 일어난 직후, 크리스토프는 투생 루베르튀르가 이끄는 무장 단체에 합류해서 식민 지배를 타도하는 투쟁에 나섰다. 그 결과, 아이티는 1804년에 최초로 흑인이 독립을 주도한 주권국가이자 유일하게 노예 반란을 통해 성공적으로 노예를 해방한 사회가 되었다. … 그런데 아이티의 독립과 해방 후에도 서열이 낮았던 사람들의 삶은 장밋빛과 거리가 멀었다. … 크리스토프가 가장 집착했던 프로젝트는 그 자신을 위한 요새 궁전을 세우는 일이었다. … 건설 과정은 길었고, 평범한 아이티인 수백 명,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이티 사람들은 끔찍하고 치명적인 환경에서 고생스럽게 일했으며, 아주 사소한 죄로도 즉결 판결을 받아 총살형을 당했다.
--- pp.44~48

될러스하임의 죽음은, 더 나아가 될러스하임이 지역 풍경과 지도에서 거의 완전히 지워진 일은 의도적인 말소의 결과였다. 이 삭제는 아돌프 히틀러의 직접적인 지시, 적어도 암묵적 동의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고 집단학살을 저지른 독재자가 보기에 될러스하임의 죄목은 할머니와 아버지의 고향 근처라는 것이었다. … 될러스하임은 두 세대 전에 히틀러 집안과 맺은 인연을 널리 알리려고 했을 때 베를린으로부터 냉대만 받았다. ‘총통의 고향’이라고 알리는 우표를 발행하는 일도, 친척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에 기념 명판을 세우는 일도 금지당했다.
--- pp.124~125

아프리카 최초의 최첨단 5성급 호텔이었던 듀코르팰리스는 갖가지 최신 편의 설비를 갖추었다. 원형 레스토랑에서는 최고의 요리사들이 프랑스 음식과 아프리카 음식을 내놓았다. 창밖으로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빼어난 바다와 도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 듀코르팰리스는 국가 행사도 열었고, 심지어 학교로도 쓰여서 라이베리아 국민에게 애정을 듬뿍 받았다. 그런데 1980년 쿠데타를 시작으로 소요 사태가 줄줄이 잇따랐고, 결국 온 나라가 내전에 휘말렸다. 내전은 1989년부터 1997년까지 맹렬하게 이어졌다. 호텔은 내전이 터지기 몇 달 전에 문을 닫았고, 잠시 과도 정부에 점령당했다. 전쟁 중에 포격당하고 약탈당했던 듀코르팰리스는 빈민가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 pp.156~158

1920년대에는 솔턴시의 전망이 장밋빛으로만 보였다. … 데시 아나즈와 프랭크 시내트라, 딘 마틴 등 씀씀이가 헤픈 유명인사는 물론이고 그들을 쫓아다니며 귀찮게 구는 기자들까지 솔턴시로 대거 몰려들었다. 이 방문객들은 날씨가 화창하고, 다양한 대회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일상이 느긋하고, 어딜 가나 미인 선발대회가 열리는 곳에서 술독에 빠져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 슬프게도 이 모든 활동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호수가 주변 자연환경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렸다. … 게다가 호숫물도 염도가 심각하게 높아지고 위험할 만큼 오염되었다. 자연 발생하는 암염과 주변 농지에서 흘러나오는 화학 비료와 살충제가 서서히 호수에 스며든 탓이었다. … 독성 물질 때문에 호숫물에서 산소가 사라지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해 호숫가로 밀려왔다. 사탕을 입에 물고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휴양객으로 붐비던 호숫가에서 죽은 물고기가 썩어갔다.
--- pp.184~187

크리스털팰리스는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를 위해 하이드파크 안에 세워졌다. … 1854년에 문을 열고 ‘모형으로 가득한 백과사전’이라고 홍보한 이곳은 가장 훌륭한 유원지가 되었다. 좌우 균형을 맞춰서 가꾸고 분수를 배치한 정원, 조경한 녹지 위를 어슬렁거리는 실물 크기 공룡 복제품, 역시 실물 크기로 모방해놓은 이집트 궁정, 영국박물관이 소장한 진짜 유물을 본떠서 만든 고대 석관까지 있었다. … 이 통로의 유용성은 1936년 11월 30일 이후로 크게 줄어들었다. 크리스털팰리스가 화재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소방관 500명과 소방차 90대로도 진압할 수 없었던 이 비극적인 대화재를 두고 윈스턴 처칠은 “한 시대의 끝”이라고 단언했다.
--- pp.224~228

시먼은 1916년에 다코타웨슬 리언대학교에서 게리로 왔다. 게리에서 그는 낙천적 성격 덕분에 ‘서니 짐Sunny Jim(명랑한 짐-옮긴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울러 인종적 관용과 더 커다란 통합을 지지하며 큰 목소리를 냈다. … 시먼은 교회가 게리의 모든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기를 바랐다. 그러나 수많은 백인 신도의 저항과 인종 차별 탓에 모두를 포용하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꺾이고 말았다. … 시먼은 1929년에 결국 신도들에게 쫓겨나서 오하이오주 랭커스터 교구로 옮겼다. 그는 게리를 떠나면서도 이곳에는 “진보와 환대라는 진정 서구적인 정신”이 있다며 게리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밝혔다.
--- pp.279~281

레녹스성 병원에 억류된 환자 다수는 그저 지능지수가 낮다고 판정받거나, 사회 시스템에서 소외되어 범죄에 빠진 청소년과 청년이었다. 2013년, 《데일리레코드》는 노먼 텔퍼의 사례를 보도했다. 텔퍼는 학교를 무단결석한 후 고작 열네 살에 레녹스성 병원에 갇혔고, 40년 넘게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1930년대에는 성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 노동자 계층 젊은 여성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분류하고 병원에 입원시켰다. 병원이 문을 닫을 때 즈음 이런 여성들은 노년이 되어 있었다. 당시 레녹스성 병원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편파적이고 해로운 진단에 희생된 환자들을 다루었다고 밝혔다. … 점차 정신 질환 치료를 향한 태도가 변화했고, 레녹스성 병원의 열악한 상황과 환자가 겪는 가혹한 대우를 비판하는 보고서도 여러 건 발표되었다. 1989년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의 연구는 병원 환자의 4분의 1이 “심각한 저체중 및 영양실조”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레녹스성 병원은 1990년대에 단계적으로 폐쇄되었다.
--- pp.297~300

출판사 리뷰

“오직 죽음만이 현실이다”…예정된 파국을 피하지 못한 장소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예정된 운명이 이루어진 곳〉은 쓸쓸한 최후를 암시하는 징조가 있었지만 끝내 파국을 맞은 장소들을 다룬다. 포르투갈의 도나시카성은 파우메이라의 지주였던 주앙 주제 페헤이라 헤구가 자기 부부의 결혼을 기념하려고 지은 건축물이다. 하지만 이 부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 깨지면서 건축이 중단됐다. 건축가는 처음부터 이들의 운명을 예견한 듯 고딕, 아라베스크, 낭만주의 등 다양한 양식이 충돌하는 성을 지었고, 끝내 완공되지 못한 성은 황폐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덴마크의 루비에르크누드 등대는 인간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자연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크누트 대왕의 경고가 현실이 된 곳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크누트 대왕은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칭송하는 이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왕좌를 바닷가로 옮긴 뒤 바닷물에 ‘멈추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바닷물은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아첨꾼들은 몸을 흠뻑 적신 후에야 잘못을 뉘우쳤다. 루비에르크누드 등대 또한 바다가 해안선을 계속 갉아먹으면서 쌓여 드는 모래더미를 감당하지 못해 1968년 폐쇄됐다. 2019년 내륙 쪽으로 옮겨졌지만, 이 등대의 운명이 얼마나 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세상의 변화에서 끝내 도태되다〉에서는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해 폐허가 된 공간들을 기록한다.

미국의 케니컷은 ‘에디슨의 꿈이 묻혀 있던 곳’이었다. 그가 발명한 전구와 전기 제품에 전력을 공급하려면 구리가 필요했고, 케니컷은 당시까지 발견된 구리 매장지 가운데 구리가 가장 풍부한 곳이었다. 수백 명의 광부가 구리 광산 붐을 타고 케니컷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구리 매장량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1938년 광산 다섯 곳과 철도가 폐쇄됐다. 스웨덴의 그렌게스베리는 유럽 전역에서 생산되는 철의 1/4이 나는 베리슬라겐 지방에서도 가장 풍부한 철광석층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1990년 광산이 문을 닫은 뒤로 300년 넘게 그렌게스베리를 지탱한 광산업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고, 다 허물어진 주택이 더 자주 눈에 띈다. 그렌게스베리는 이후 ‘감록켄’ 음악 축제를 주최하며 헤비메탈을 기반으로 한 산업을 육성하려 했으나, 감록켄 주최 측이 “오직 죽음만이 현실이다”라는 자료를 발표할 정도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으면서 그마저 실패했다.

소금사막의 땅에 세워진 ‘열차들의 무덤’…찬란한 영광의 잔해들

〈시간의 무게에 잠식되다〉는 한때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였지만, 지금은 누구도 찾지 않는 곳들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의 샌타클로스는 크리스마스철을 강조한 휴양지로 1950년대에 크게 번성했다. 마을 우체국은 “발신인: 산타클로스”라는 소인이 찍힌 편지를 보내주는 서비스로 인기를 끌었고, 여관에서 파는 ‘산타할아버지 럼파이’도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시카고와 로스앤젤레스를 연결하던 66번 국도가 다른 도로에 대체되다가 1985년에 공식 폐쇄되면서 마을도 함께 몰락했다. ‘크리스마스의 수호성인’을 연상시키던 이곳은 이제 ‘크리스마스 유령’을 떠올리게 한다. 아서왕의 전설을 모티브로 만든 영국의 카멜롯 테마파크도 한때는 한 해에 100만 명이 방문하는 명소였다. 관광객들은 테마파크 정문을 통과한 후 멀린의 마법사 학교에 입학하거나, 마상 창 시합을 구경했다. 하지만 관광객 수가 점점 줄더니 런던 하계올림픽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 60주년 행사가 열린 2012년에 결국 문을 닫았다.

〈찬란한 영광의 잔해〉는 과거 눈부신 번영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쇠락한 장소들을 다룬다.

소금사막으로 유명한 볼리비아의 우유니 근처에는 ‘열차들의 무덤’이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영국은 초석 등의 천연자원을 운송할 목적으로 철도를 세우고, 주요 환승역을 우유니에 건설했다. 하지만 인공 질산염의 등장으로 볼리비아 초석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철도 사업도 쇠퇴했다. 한때 신흥 철도 도시였던 우유니 근처에는 녹슨 증기기관과 객차가 줄지어 앉은 우유니 기차 폐기장이 생겼다. 시청 지하철역에서는 ‘성공의 역설’을 읽을 수 있다. 뉴욕 최초의 지하철망 IRT에서 가장 유명한 역이었던 시청 지하철역은 샹들리에와 스테인드글라스 천창 등의 화려한 건축 덕분에 ‘지하의 대성당’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시청 지하철역이 이끈 지하철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폐쇄를 불러왔다. 철도망이 확장되고, 신규 노선이 추가되자 구조상 승객이 더 많이 탈 수 있는 긴 열차를 도입할 수 없던 시청 지하철역은 1945년 문을 닫았다.

폐허, 그 쓸모없음의 쓸모

〈오래된 이야기의 마침표〉는 차별과 혐오 등 시대의 어둠을 증언하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간다의 아캄펜섬은 과거 이 지역 여성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보여준다. 처녀성을 잃지 않은 딸은 비싼 결혼 지참금을 받을 수 있는 값비싼 ‘상품’이었지만, 결혼 전에 임신한 여성은 가족의 잠재적 수입을 빼앗은 데다가 먹여 살릴 입을 늘린 ‘죄인’이었다. 그들은 먹을 것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이 외딴섬에 유배되어 굶어 죽거나,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랫동안 젊은 여성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던 아캄펜섬은 분요니호수의 수위가 계속 높아짐에 따라 머지않아 물 아래로 ‘사라질’ 예정이다.

이탈리아의 볼테라 정신병원은 정신병자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의 증거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정신병원 중 하나였던 이곳은 많은 환자를 관리하기 위해 병원보다는 감옥에 가깝게 운영됐다. 인슐린으로 유도한 코마 상태, 전기 충격 요법 등의 끔찍한 치료가 수시로 행해졌고, 환자들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일을 막기 위해 가족들이 쓴 편지를 전하지 않았다. ‘결코 전달되지 않는 편지들의 보관소’였던 이곳은 1978년 폐쇄됐다.

이처럼 ‘쓸모없는’ 장소들, 끝내 소용없어진 장소들은 “덧없음과 소진, 흥망성쇠, 산업화와 환경, 인류의 오만, 신뢰할 수 없는 기억과 기념”에 관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폐허는 미래를 읽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자연 앞에 한없이 무력하면서도 자연을 파괴하는 오만, 여성·정신병자·흑인 등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혹한 차별을 묵묵히 증언한다. 그것이 폐허의 쓸모이자, 폐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