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폭력연구 (책소개)/7.나치히틀러

히틀러가 바꾼 세계 (2011)

동방박사님 2024. 5. 5.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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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단순히 독일의 권력 상위 계층의 이야기나 전범戰犯들에 대한 이야기, 즉 히틀러로 상징되는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틀에 박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삼류화가였던 히틀러가 유럽의 강력한 국가였던 독일의 수장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으며, 그를 선택했던 독일인들의 실제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떻게 독일시민들이 그 시대를 살고 견뎌냈는지에 대해 가장 솔직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제3국가를 설명한다.

목차

1장 아돌프 히틀러 - 유년 시절부터 권력의 중심에 서기까지
불우했던 어린 시절|삼류 화가에서 군인이 된 히틀러|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일곱 번째 당원|운명의 남자|히틀러 신화 창조, 비어홀 폭동|나치의 권력 이양의 리더십|히틀러의 여성관과 세계관|제3제국의 출현

2장 1920년대 독일 - 제1차 세계대전 후 절망과 가난에 허덕이던 독일인
독일 최초의 공화국, 바이마르 공화국|자유군단|독일을 삼킨 인플레이션과 경제 붕괴|반유대주의
히틀러의 권력 장악|반대 세력에 둘러싸인 바이마르 공화국

3장 1930년대 독일 - 극적인 경제 기적, 아우토반에서 국민차까지
나치의 경제 환경, 혼합경제|나치의 국책사업과 실업률|헤르만 괴링|독일노동전선|노동자의 독립

4장 제3제국의 청소년 통제 - 히틀러 유겐트를 통한 ‘이상적인 아리아인’ 만들기
히틀러 유겐트, 청소년 교육과 통제|제12나치친위대, 히틀러 유겐트 사단|아돌프 히틀러 학교|히틀러 유겐트에 대한 저항

5장 제3제국 여성의 삶 - 출산 기계가 된 여성, 자녀ㆍ교회ㆍ주방
게르트루트 숄츠 클린크|어머니로서의 여성|이중 잣대|독일의 재무장과 여성 정책의 충돌|지방 여성에 대한 정책

6장 제3제국 시민의 일상 - 나치의 일체화 프로그램
나치의 종교관|기독교와 일체화 정책|가톨릭|지방 거주자들의 일상|철권통치

7장 제3제국의 문화예술 - 지식인들의 탈출과 나치의 선전선동
불온서적 소각|나치 예술

8장 테러 - 제국의 적에 대한 억압과 박해
반유대주의|불임수술과 안락사 정책

9장 제2차 세계대전 초기 -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프랑스, 소련을 향해 돌격
주코프의 반격

10장 제2차 세계대전 말 - 1941~1944년, 파멸의 징후들
진격을 멈춘 독일 제6군|전차의 무덤이 된 쿠르스크|제2전선|연합군의 압도적인 화력

11장 독일 국내 전선 - 군수산업과 전시경제의 난관,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
독일 산업의 복병, 노동력 부족|연합군의 폭격과 독일의 생산시설

12장 장기화된 전쟁 - 전쟁의 잔혹함과 민간인의 고통
일상적인 삶의 현실|삶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기분 전환|공습의 처참함|국민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13장 마지막 공세 - 절망적인 상황, 지옥 같은 피난길
지옥 같은 피난길|국민돌격대|베를린 공방전|시민에 대한 나치의 복수|항복

14장 반정부 투쟁 - 반나치 운동과 히틀러 암살 계획
공산주의자들의 반정부 투쟁|붉은 오케스트라와 백장미단의 숄 남매|독일 교회의 저항|반나치 활동의 초기 |히틀러 암살 계획, 발키리 작전|실패한 암살 음모

15장 죽음의 수용소 - 나치의 대학살, 최종 해결책
체계적인 살육|독일 병사들의 용감한 저항|죽음의 수용소

16장 사라진 제국의 꿈 - 혼란과 절망에 빠진 독일 국민
항복, 그러나 다시 찾아온 혼란|독일 재건을 위한 여성들의 노력

저자 소개

역 : 박수민

출판번역가 출신의 출판사 대표. 공군 장교로 10년 이상 복무 후 2011년 전역해 파주에 정착했다. 군 생활 중 주로 대미 업무를 했고, 그런 경험을 살려 영문 출판번역가로 활동하다 2013년 직접 책을 펴내고 싶어 출판사를 창업했다. 군 복무 시절 영화 〈D-13〉을 보고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로버트 케네디의 쿠바 미사일 위기 회고록 『13일』을 시작으로 『아마겟돈 레터』 『존 F. 케네디의...

저자 : 매튜 휴즈

런던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에서 군사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브루넬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다. 연구 분야는 제1차 세계대전, 영국 육군, 이스라엘-아랍 분쟁 등이며 국내 출판된 책으로 공동 저서인 『폴그레이브 맥밀런 제1차 세계대전』(생각의 나무, 2008)이 있다.
저자 : 크리스 만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전쟁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런던 서리대학University of Surrey과 유니버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에서 유럽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군사역사 전문가이며 저서로 『전쟁을 바꾼 전투Battles That Changed Warfare』(2011, 공저), 『히틀러의 북극 전쟁Hitler’s Arctic War』(2002), 『나치 친위대 토텐코프SS-Totenkopf』...

책 속으로

1장 _ 아돌프 히틀러|유년 시절부터 권력의 중심에 서기까지
“느닷없이 히틀러의 시선이 내게 꽂혀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나도 쳐다보았다. 살면서 가장 묘한 순간이었다. 의심의 눈초리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런 눈길을 오랫동안 견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눈을 피해서는 안 돼. 그랬다간 뭔가를 숨긴다고 여길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심리학자만이 알 만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 완전히 나에게 향했던 시선이, 갑자기 나를 관통해 알 수 없는 곳까지 도달했다. 너무 이상한 기분이었다. 한동안 나를 응시하던 히틀러의 시선에, 히틀러가 고결한 의도를 지닌 사람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 대부분은 내가 나이를 먹어 유치해졌다며 믿지 않지만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히틀러는 매우 비범한 인물이었다.”--- p.25

2장 _ 1920년대 독일|제1차 세계대전 후 절망과 가난에 허덕이던 독일인
“소시지가 들어간 빵을 무려 40억 마르크에 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치 활동에 공감했고 더불어 히틀러 세력도 점점 커졌다. 사람들이 ‘더 이상 이렇게 버틸 수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이룬 일이 전혀 없었고,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했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는 더욱 확산되었다.” --- p.53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히틀러가 마치 전기로 사람들을 감전시키는 듯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아마 사람들의 삶이 엄청나게 궁핍했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 이 상황에서 히틀러와 히틀러의 주장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히틀러는 ‘당신들을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드릴 테니 모두 나치에 협력하십시오!’ 하고 말했다. 모두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p.60

3장 _ 1930년대 독일|극적인 경제 기적, 아우토반에서 국민차까지
“나는 위대하고 강한 독일 건설을 원했고 그래서 악마와 손을 잡기로 했다.” --- p.69

“희미하게나마 희망이 보였다. … 다들 지쳐 있었기 때문에 실업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그때는 정말 좋은 시절이었다. 지금처럼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질서와 기강이 잡혀 있었다.”(중략) 공공사업은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어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특히 자동차 산업을 부흥시켰다. 새로운 고속도로는 활력을 되찾은 노동자에게 공평하게 기회가 돌아간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낙관적인 분위기는 1938년 정부가 새로 건설한 고속도로를 모든 사람에게 개방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더욱 확산되었다. 동시에 ‘국민 자동차’라는 의미의 폴크스바겐도 출시했다. 하지만 ‘국민 자동차’라는 이상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 p.72

4장 _ 제3제국의 청소년 통제|히틀러 유겐트를 통한 ‘이상적인 아리아인’ 만들기
“청소년은 나치의 소유물이며 우리는 아무에게도 이들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중략) 일단 정권을 쥔 나치는 탁아소에서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기관을 나치화하는 데 착수했다. … 독일 학교는 스포츠를 강조하고 역사, 생물학, 게르만어를 가르쳤다. 역사와 생물학은 나치당의 인종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의식을 촉진하기 위해 내용을 왜곡했다. --- p.108

5장 _ 제3제국 여성의 삶|출산 기계가 된 여성, 자녀ㆍ교회ㆍ주방
나치의 주장은 한마디로 ‘자녀, 교회, 주방’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국가 살림에서 여성은 남성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위대한 일을 맡았다. 여성의 임무는 가정에서 남자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이다. 결혼해서는 동지이자 조력자로서 남성의 부족함을 보충해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독일에서 여성이 지닌 권리다.” --- p.124

1942년 이후 전쟁 상황이 독일에 불리해지면서 공장에 투입된 지방 여성들은 전쟁포로나 강제노동자와 나란히 일하는 등 완전히 군사화된 경제의 혹독함을 겪어야 했다. 나치즘은 겉으로 여성적인 덕목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정권의 통제에 따르지 않거나 ‘천년제국’에서 설 자리가 없는 여성은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 p.135

6장 _ 제3제국 시민의 일상|나치의 일체화 프로그램
“모든 것이 질서정연했고 말끔해졌다. 새로 시작한다는 국가적인 해방감이 있었다.” --- p.145

“처음 나치가 유대인을 공격할 때 나는 유대인이 아니어서 반대하지 않았다. 가톨릭을 박해할 때에는 가톨릭 신도가 아니어서 반대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을 탄압할 때에는 노조원이 아니라서 반대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가다보니 막상 나 자신이 공격 대상이 되었을 때는 반대할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p.153

7장 _ 제3제국의 문화예술|지식인들의 탈출과 나치의 선전선동
공개적인 불온서적 소각은 나치 정권의 문화에 대한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사건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책을 태우는 곳에서 언젠가 사람도 태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독일학생협회가 ‘독일답지 않고 유대인에 물든’ 것으로 판단한 책의 소각활동을 주도했다. ---p.165

나치 정권하에서는 집단이 전부였고 개인은 무시되었다. 나치 예술은 정권이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된 비인격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강조한 선전이었다. --- p.167

8장 _ 테러|제국의 적에 대한 억압과 박해
“정신을 차리고 나니 다시 고문이 시작되었다. 네 번째로 기절하자 고문을 멈췄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184

“우리가 살던 1층에는 할머니 세 분이 함께 살고 계셨다. 돌격대는 그중 한 분을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끌고 나와 마구 때렸다. 나도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지하실로 끌려갔다. … 이날 밤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체포되었는데, 나를 체포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잠시 뒤에 돌격대는 우리를 충분히 손봤다고 생각한 지휘관이 자리를 비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아 있던 대원들은 그 사실에 매우 짜증을 냈다. 대원들은 더 이상 지체할 마음이 없었는지 잽싸게 발길질하더니 내게 ‘꺼져’라고 말했다. … 그러고는 나를 버려둔 채 나가버렸다.” --- p.189

의사 세 명이 이들이 보낸 보고서를 보고 장애아동의 운명을 결정했다. 붉은색 플러스 표시는 죽음, 파란색 마이너스 표시는 생존, 물음표는 결정 보류를 의미했다. 붉은색 플러스 표시가 된 장애아동은 약물을 주입해 죽였다.” --- p.202

9장 _ 제2차 세계대전 초기|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프랑스, 소련을 향해 돌격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때처럼 전쟁에 열광하는 독일 군중은 없었다. …… 나치당 최고위 간부와 독일군 다수도 전쟁에 대해 우려를 많이 했다. 독일 공군 사령관 헤르만 괴링도 그중 한 명인데 그는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와 통화 중에 화가 난 나머지 흥분해서 “빌어먹을 전쟁은 무슨! 당신이 다해!”라고 윽박지르며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 p.213

“1941년 나는 혹독한 추위가 닥친 동부전선에 있었다. 우리 부대는 모스크바에서 40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클린 마을 인근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 날씨였다. 그때 상황은 잊을 수가 없다. … 날씨에 걸맞은 옷이 없던 우리는 봄이 되어서야 겨우 외투와 장갑, 머리 덮개 같은 동복을 지급받아 제대로 갖춰 입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히틀러가 한 말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확신컨대 앞으로 8주 내로 소련군은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할 것이다.’ 그러나 그 후로 히틀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무기를 내려놓은 쪽은 오히려 우리 편이었다.” --- pp.228~230

10장 _ 제2차 세계대전 말|1941~1944년, 파멸의 징후들
“온종일 입김이 얼고 콧구멍과 속눈썹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을 정도로 매서운 추위 속에서, 생각하는 것조차 어려운 추위 속에서 독일 병사들은 싸웠다. … 군인정신과 희미하게 남아 있는 생존본능으로 버텼다. 정신이 마비되고 체력과 극기력과 의지가 모두 소모된 순간, 병사들은 눈밭에 주저앉았다. 누군가 쓰러진 병사를 알아보고 발로 차거나 때려서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의식을 깨웠다. 그러면 병사는 살아남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듯 주변을 손으로 더듬거나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람이 부는 가운데 마치 잊힌 듯 길가에 버려진 채로 주저앉은 자리에 장시간 그대로 있으면 아무도 병사를 분간할 수 없었다.”--- p.236

“미군이 라인강 쪽으로 행군해 오고 있었다. 지나가는 대포, 전차, 트럭을 지켜본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나라에 전쟁을 선포한 거지?’ ‘히틀러란 놈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것 아냐?’라고 자문했다. 그런 장비만 있다면 어떤 군인이든 전쟁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 p.260

11장 _ 독일 국내 전선|군수산업과 전시경제의 난관,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
“노동자들은 입도 뻥긋 못했다. 노조 간부가 늘 감시했기 때문이다. 큰 불평이 없으면 그냥 모든 상황에 순응하며 일했다. 일을 그만두면 다른 할 일도 없었다. 삶의 낙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 당시 사내 갈등은 발생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모두 독일노동전선 소속이었고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만을 터뜨리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철저한 통제 속에 업무에만 열중해야 했고, 자기 일만 제대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p.270

“일부 노동자 계층에서 불안감이 팽배하다. ‘사기극’이라는 말이 다시 들리기도 한다.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해도 크게 기뻐하지 않을 분위기다. ‘정부가 매번 거짓을 말하고 훀다’‘영국 노동자는 독일 노동자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어떤 사람은 비만인데 어떤 사람은 굶어 죽는다’‘노동자의 아내는 노동 봉사에 동원되고 고위 공무원, 특히 장교의 아내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놀고먹는 편안한 삶을 계속한다’‘정부가 제1차 세계대전 때보다 더 어리석게 행동하고 있다’‘사람들 대부분 가슴속의 분노 때문에 지쳐버렸다’‘이제 사기극을 멈출 때이다’같은 말이 떠돌고 있다.” --- p.272

12장 _ 장기화된 전쟁|전쟁의 잔혹함과 민간인의 고통
“한번은 내가 어머니께 ‘평화가 뭐에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사람들이 다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란다’라고 답했다. 내가 다시 ‘그런 날이 오면 식료품 가게에서 달걀 두 개만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평시에는 일곱 개나 여덟 개가 아니라 가게에 있는 달걀을 다 살 수도 있단다’라고 답했다. 내가 ‘그럼 버터 반 파운드도 살 수 있나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당연하지. 달라는 대로 다 준단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럼 평화는 빵 양쪽에 버터를 발라 먹을 수 있는 시기네요’라고 말했다.” --- pp.287~288

“우리는 시체를 30~35층으로 쌓아 올렸다. 시신을 전부 다 쌓고 나서 2~3일 뒤에 그곳을 지날 때에는 연기가 앞을 가려서 눈에 셀로판지를 대고 걸어야 할 정도였다. 공기도 잘 순환되지 않았다. 3~4일 내내 햇빛이 비치지 않아 거의 암흑 상태였다. 보이는 거라고는 멀리 있는 핏빛 공밖에 없었다. 여러 날 함부르크 상공을 뒤덮은 연기와 재로 이루어진 검은 구름에 태양이 가려 있어서 그렇게 보였다. 집 앞에도 시체가 쌓여 있었다. 지나가다 보면 사람 발 더미가 보였는데, 일부는 맨발이었고 일부는 불에 탄 상태였다. 시체만 보고는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어떤 집 지하에서는 가족 전체의 시신이 나왔는데, 죽은 지 2~3주가 지난 경우도 있었다. 성인의 시신도 그리 크지 않았다. 불에 타고 열기에 녹아 거의 미라로 변한 상태였다. 욕조 하나에 일가족 시신을 다 집어넣을 수도 있었다. 길가에 널린 시신을 치우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집 가까운 곳에 쌓아두는 것이었다. 그러면 얼마 후 시신을 공동묘지로 옮겼다.” --- p.297

13장 _ 마지막 공세|절망적인 상황, 지옥 같은 피난길
“다음 날 우리는 단치히Danzig 방향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격했다. 흥분한 아이 엄마가 미쳐버려 갑자기 자기 자식을 바다에 내던졌다. 목매달아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고 죽은 말에서 살을 베어내서 구워먹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여성은 짐마차에서 아기를 낳기도 했다. 모두 제 한 몸 추스르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아프거나 몸이 쇠약해진 사람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309

“소련 군인들이 다가와서는 횃불로 나를 비춰보더니 ‘당신이 머물 곳을 주겠소’라고 말했다. 그곳은 방공호였다. 안에는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날 밤 테이블에서 소련 병사들이 돌아가며 나를 강간했다. 죽는 줄만 알았다.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고 증오심에 견딜 수가 없었다. … 그들은 나를 좋은 먹잇감으로 생각했다. 정확히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한 10명이나 15명쯤 되는 것 같았다. 한 명이 끝나면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오랫동안 그렇게 계속되었다. 그들 중 나를 원했지만 ‘도대체 몇 명이나 여기 왔었소? 그냥 옷 입으시오’라고 말 한 병사가 한 명 있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 p.311

14장 _ 반정부 투쟁|반나치 운동과 히틀러 암살 계획
“한 명씩 붙들려갔다. 첫 번째는 언니였다. 언니는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걸었다. 사형 집행인이 언니처럼 죽은 사형수를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언니는 머리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감옥 전체가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자유여 영원하라!’라고 소리쳤다.” --- p.342

“이 편지를 쓰는 동안 프랑스에서 광범위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소. 하지만 이 일도 폴란드나 소련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비하면 유치한 장난에 불과하오. 내가 어떻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냥 따듯한 방에 앉아 차나 마시겠소? 그렇게 하는 것은 이런 만행에 동조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소? 누군가 내게 ‘그 시절에 당신이 한 일이 뭐요?’ 하고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할 수 있겠소?”--- p.347

“이제 무슨 조치를 해야만 할 때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역사에 반역자로 기록될 것은 뻔하다. 하지만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양심에 대한 반역자가 될 것이다.” --- p.348

15장 _ 죽음의 수용소|나치의 대학살, 최종 해결책
“(중략) 긴 머리칼에 턱수염을 기른 모습이 성직자처럼 보였습니다. 어쨌든 풀밭을 건너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기관총이 있는 곳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서서 진지하면서도 깊고 어두운, 소름 끼치는 시선으로 우리를 한 명 한 명 쳐다보더니 ‘젊은이들, 너희가 쿇는 짓을 신께서 보고 계시네’라고 말하고는 뒤로 돌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 노인의 등에 총을 쏘았습니다. 저는 노인의 시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 pp.357~358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가족을 알아보았다. 서로 손을 꽉 잡고 이를 악물고 죽었기 때문에 다음번 처형을 위해 가스실을 비워야 할 때 시체들을 떼어내기가 어려웠다. 시신은 땀과 오줌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특히 다리는 배설물과 피로 뒤범벅이었다. 시신을 가스실 밖으로 집어던졌는데, 어린아이의 시신은 가벼워서 공중에서 날아다녔다. … 치과의사 스물네 명이 갈고리로 시신의 입을 벌려 금니를 찾아냈다. 금니가 있는 시신은 왼쪽으로 없는 시신은 오른쪽으로 나누어 옮겼다. 나머지 의사는 입안에 있는 금니를 펜치와 해머로 뽑았다.”--- p.377

16장 _ 사라진 제국의 꿈|혼란과 절망에 빠진 독일 국민
“나는 흑인 병사들을 우리의 보호자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제3제국의 선전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정부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 증거가 눈앞에 있으니……. 흑인들은 짐승이 아니었다. 우린 흑인을 백인 미군보다 더 좋아했다. 흑인은 우리에게 ‘우린 흑인 노예고, 너흰 백인 노예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흑인들은 우리를 매우 친절하게 대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난 후 ‘정부가 흑인에 관한 거짓말을 했다면, 그들이 한 다른 거짓말은 뭘까?’하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 p.390

“소련군이 도착하자 잔해를 제거하고 거리 청소를 하기 위해 민간회사에서 여자들을 고용했다. 우리는 개미처럼 일했다. 주변에 남자라곤 시체나 일부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밖에 없었다. 작업장으로 가기 위해 먼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운 좋은 사람들은 에스-반 열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수많은 폭격에도 열차가 그때껏 멀쩡하게 운행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는 베를린에서 트뤼머프라우 단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역할을 했다.”
--- p.404

출판사 리뷰

나치시대 독일인들의 초상,
나치에 대한 공감ㆍ추종ㆍ비난ㆍ공포ㆍ투쟁을 증언하다

제3제국의 그늘, 히틀러의 나치시대 독일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나치 치하의 독일. 어떤 사람들에게 그곳은 지옥이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천국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일인에게 제3제국은 단순히 삶의 터전일 뿐이었다.
히틀러가 통치하던 격동의 시절에 평범한 독일 시민의 일상은 어땠을까?
어떤 이유로 그들은 히틀러를 선택했고,
재무장을 위한 기만적인 정책과 철통정권에 어째서 순응했을까?
나치를 종교처럼 신봉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광신적인 나치즘에 대한 저항은 없었던 것일까? 과연 그들은 고통스럽기만 했던 것일까? 독일인들은 왜 유대인 대량 학살을 묵인했던 것일까?

왜, 히틀러의 나치시대 ‘제3제국’을 다시 이야기하는가?
- 모든 인간은 참고 견딜 만한 정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

히틀러ㆍ나치ㆍ유대인 학살, 이것이 다가 아니다. 나치시대의 이야기는 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수많은 유대인 학살, 깃발과 슬로건, 정치적 세뇌와 강력한 통제로 상징되는 독일의 나치와 히틀러의 시대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히틀러의 업무 할당과 권한이양의 리더십, 성과중심의 조직관리 스킬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제3제국이 12년이라는 짧은 기간 유지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초기 그가 내세운 공정성과 노동자 가치 존중에 대한 일관성 결여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야심찬 목표에 상응하는 건전한 가치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총통이라는 강력한 위력의 정권, 나치라는 막강한 국민 감시와 선전宣傳전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독일 국민에 대한 존중, 나아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파행적 민족정치를 강행하면서 공정성과 국민들과의 가치 공감을 잃었다. 독일 경제 문제를 간과한 채 돌격(전쟁)만을 지향하는 경제정책, 삐뚤어진 인간 심리, 열등감과 열패감으로 등으로 무장된 건전하지 않은 리더가 어떻게 한 세대를 참혹과 잔혹함으로 몰아갔는지를 그 격정의 시대에 살았던 독일인들이 증언한다.

그동안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히틀러의 기괴한 인물성이나 제3제국 말기 ‘최종 해결책’이라는 유대인 대량 학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악행과 이를 묵인한 독일 시민들의 양심, 혹은 나치라는 정권이 어떻게 인간을 세뇌하고 위협하고 정당화시켰는가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 등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독일의 권력 상위 계층의 이야기나 전범戰犯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삼류화가였던 히틀러가 유럽의 강력한 국가였던 독일의 수장에 어떻게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으며, 그를 선택했던 독일인들의 실제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떻게 독일시민들이 그 시대를 살고 견뎌냈는지에 대해 가장 솔직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제3국가를 설명한다.

선량한 보통의 독일인들은 히틀러 치하에서 어떻게 살았나?
제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강요한 가혹하고 불공정한 조약에 서명했다고 생각한 독일시민들(베르사유 조약을 독일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다)은 높은 실업률과 그에 따른 경제 붕괴의 여파 속에서 당연히 독일의 국가적 자존심을 세워주고 배고픔을 해결해 줄 강력한 리더를 원했다. 유럽 내에서도 인정받았던 고급 교육과 높은 문화수준을 자부하던 독일인들에게 이러한 상처를 극복하고 새롭고 강력한 국가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강력한 강령들은 큰 믿음과 기대를 주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정권은 그들을 더 처참한 생활로 몰고 갔다. ‘기쁨을 통한 힘’ 같은 복지 정책이나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 교육을 책임진다는 ‘히틀러 유겐트’ 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지킨다는 ‘노동 수첩’‘노동조합’‘노동의 미’ 등과 같은 정책들은 겉으로는 국민들을 선동하고 만족하게 할 만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결국 국민에 대한 기만과 복지국가의 얼굴을 한 사기극에 불과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들의 양육에 헌신하는 이상적인 여성을 주장하며 다산多産 여성에게 훈장과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정책을 강조하던 나치가 공장과 강제수용소로 여성들을 내몰았던 모순된 여성정책, 그 사이에서 히틀러의 정치적 세뇌교육으로 가정과 기성세대와 정서적 격차를 겪어야 했던 청소년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저항과 목숨을 건 투쟁, 기업인들의 히틀러 이용 그리고 이런 경제인을 다시 이용한 히틀러, 최고 정치 권력자들의 부패와 타락, 언론ㆍ문화ㆍ종교에 대한 일체화 작업들이 초래한 히틀러 우상화 등 독일의 제3제국에서 나타난 전 방위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유감스럽게도 조금만 비틀어서 생각해 보면 현재의 우리 정치와 닮은 부분을 찾을 수 있다.

히틀러와 나치에게 정치는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다”를 자의적으로 바꾼 “정치란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연장이다”였고, 투쟁의 연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투쟁과 전쟁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경제 성장을 위한 투쟁이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독일 주변국 폴란드와 소련, 유대인들이었다. 독일인의 눈과 귀를 막고 사상뿐 아니라 가정과 여성, 이성관과 결혼관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도 정치적으로 세뇌해 궁극적으로는 철통정치를 하겠다는 것이었을 뿐, 국민을 위한 국민의 복지를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이 책 『히틀러가 바꾼 세계』는 정치와 전쟁에서 특출한 성과를 낸 영웅들을 중심으로 독일 나치의 제3제국을 설명하지 않는다. 나치 시대 시민의 생활상에 대해 평범한 시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제3제국의 삶을 생생하고 진정성 있게 전한다. 우린 지금 정치적 사기극에 기만당하지 않기 위해 지난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관심을 두어야 할 시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