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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읽기의 혁명 (2024) - 비루한 삶도 고귀한 삶도 부활한다

동방박사님 2024. 9. 20.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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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새롭게 읽기

“사상가로서 니체의 연구는 발굴되지 않은 세계에 대한, ‘아직 고갈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한 인간 영혼의 철저한 연구였다.” (루 살로메)

니체 철학에 다가가기 위한 지도
: ‘아직 고갈되지 않은 가능성’에 접근하기 위해

비루한 삶을 극복하고 주권자 개인으로서 창조적 삶을 권유했던 철학자. 기존의 도덕과 질서를 파괴하고자 했으며 스스로를 다이너마이트로 칭한 철학자.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고 외쳤던 철학자.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가 탄생한 지 올해로 180주년이 되었다. 이에 맞춰 출간된 『니체 읽기의 혁명』은 니체 철학의 혁명적 읽기를 제안한다. 저자는 그 혁명의 목적이 영원회귀 우주론을 기반으로 ‘주권적 개인이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시대’를 열망한 니체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니체 철학을 오늘의 삶과 현실로 소환해 독창적 재해석을 감행한다. 동시에 니체의 삶과 철학의 성장 배경 전반을 알기 쉽게 담고 있다. 이는 니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일종의 우회로인 셈인데, 그 서사 또한 흥미롭게 전개된다. 니체의 인생론을 담아낸 책이나 글의 조각들을 모아놓은 책들이 여럿 출간되어 나오고 있지만, 니체의 진실에 도달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 개인적 자존감이나 고독을 노래한 철학자로 한정하는 시선을 넘어서서, 그의 철학을 반민주주의나 귀족주의로 폄하하는 흐름을 넘어서서 니체가 내린 시대 진단과 삶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짚어내기 위해서는 이 책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철학적 배경과 성장 과정에서 출발하여 ‘신의 죽음’을 거쳐서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 ‘위버멘쉬(극복인)’, ‘운명애’, 공동체와 주권적 개인의 창조적 삶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니체의 철학을 하나의 생명체로 되살린다. 니체를 있는 그대로 되살려내면서도 그의 철학을 우주론과 인생론, 사회철학, 실천론으로 나눠 체계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19세기의 시대 질환을 진단한 철학자를 21세기에 다시금 불러들이고 있다. 19세기 제국주의로 치닫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야기된 허무주의의 병폐는 니체 탄생 이후 180년이 흐른 지금의 모습과 닮아 있거나 변함 없이 지속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니체에게로 다가가기 위한 지도임과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를 탐험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라고 할 수 있다.

목차

머리말 : 영원회귀의 부활과 주권자의 철학

1. 니체의 삶 : 너무나 소박한 너무나 섬세한

철학은 ‘건강하려는 사람의 본능’
강단 학계와 결별하고 철학적 전투 개시
‘최악의 겨울’에 잉태한 차라투스트라
니체가 보수도 진보도 경멸한 까닭

2. 철학의 출발점 : 쇼펜하우어의 우주

기독교와 휴머니즘을 비판한 우주론
남성이 여성을 아름답게 보는 까닭
지구를 떠도는 별들이 내린 마지막 결론
‘작은 우주’의 근대국가 비판

3. 우주론 :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

형이상학적 이분법과 신의 죽음
허무 불감증과 은폐된 허무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는 거대한 힘
영원히 변화하고 되돌아가는 우주

4. 인생론 : 비루한 삶과 고귀한 삶

죽음은 허무 아닌 아름다운 축제
영원회귀 철학과 현대 우주과학
종말인과 위버멘쉬, 누구로 부활할까
백 개나 되는 요람과 해산의 고통

5. 사회철학 : 고귀한 삶의 공동체

반민주주의자, 그 오해와 이해
고귀한 사람을 질투하는 사회
‘위대한 정치’가 구현된 공동체
니체와 마르크스의 대화

6. 실천론 : 주권적 개인의 창조적 삶

니체와 ‘임금노예’의 치욕
반도덕 전투와 전투적 도덕
탈근대의 철학적 기반
주권적 개인의 정치철학

닫는 글 : 21세기 니체와 우주철학
 

저자 소개 

저 : 손석춘 (孫錫春)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학생운동을 했다. 1984년 신문기자로 들어가 2006년까지 언론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과 ‘언론개혁시민연대’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한겨레 여론매체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언론개혁운동의 실천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언론학 박사학위 논문 「한국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출간한 바 있다. 청년 시절 문학평론 「겨레의 진실과 표현의 과제」를 발표하며 ...

책 속으로

그의 철학이 시대적 병증의 치료에 있었기에 병든 사람 못지않게 병든 사회를 비판했다. 니체를 사랑하는 적잖은 이들에게 생소할 수 있지만 작품 곳곳에 그의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이 또렷하게 담겨 있다. 니체 철학을 개인의 권력 욕망을 정당화하는 사상으로 이해하거나 반민주주의자 또는 파시스트라는 비난도 나왔지만, 그의 철학적 목표는 스스로 밝혔듯이 ‘삶의 건강성 회복’이다.
--- p.48

신의 죽음을 받아들여 더는 유일신을 믿지 않게 된 사람들은 ‘신적인 초월적 가치’를 대체한 절대적 또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며 허무감을 잊었다. 신이 죽은 빈자리에 기존의 종교를 대체하는 가치가 ‘대체 종교(Ersatz religion)’로 들어선 셈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대체 종교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허무의 늪에서 벗어났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격신의 존재에 회의가 짙어졌지만 허무가 두려워 신을 부여잡은 사람들 사이에도 대체 종교는 퍼져 있다. 니체가 신을 대체한 국가주의를 비판한 까닭이다. 민주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반유대주의를 반대한 이유도 그것을 대체 종교로 판단해서다.
--- p.103

“모든 생기, 모든 운동, 모든 생성”을 “단계와 힘의 관계를 확정하는 것으로, 싸움으로” 파악한 니체는 “생명체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힘에의 의지도 함께 발견했다. 심지어 누군가를 모시고 있는 자의 의지에서조차 나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는 자기 힘으로 길을 열어가고 싶은 의지를 뜻한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주인이 되기를 원하고, 그 이상이 되기를 원하며, 더욱 강해지기를 원하는” 의지로도 풀이했다. 니체는 “모든 것은 되어간다. 영원한 사실이란 없다”며 일체가 생성의 과정에 있다고 보았다.
--- p.117

여기서 니체가 건넨 ‘가장 무거운 물음’을 다시 불러와 새겨보자. “너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원하는가?” 니체는 이 물음이 주는 엄청난 무게감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강조한다.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삶과 기꺼이 긍정하는 삶을 가른다. 두 가지 삶 또는 두 인간 유형은 우리에게 다소 낯선 번역어로 알려진 ‘인간말종’과 ‘초인’이다.
--- p.155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할 때, 또는 잘못 사랑할 때, 이웃 사랑은 동정이나 연민 따위로 나타나기 쉽다. 니체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 위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용감하게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서 있지 못하다면 어떤 사랑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힘에의 의지를 강화한다.
--- p.165~161

모든 사람이 종말인 아니면 극복인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인생이 비루한 삶과 고귀한 삶으로 나뉘는 것도 아니다. 니체는 정신 변화의 세 단계를 제시한다. 우리는 그것을 종말인의 비루한 삶(병든 삶)에서 극복인의 고귀한 삶(건강한 삶)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 p.169

니체와 마르크스. 두 철학자 모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를 비판하며 사람이 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철학을 제안했다. 다만 니체는 ‘인간의 왜소화’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방점을 두고 비판했다. 19세기에 제국주의로 치닫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사회를 넘어서는 공통의 과제를 놓고 니체도 마르크스도 철학을 전개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들이 지금까지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만 해왔지만 핵심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 했다. 니체에게 철학자는 병든 시대를 치료하는 의사이다.
--- p.218~219

기실 자본주의 사회는 체제에 비판적 행동을 ‘일탈’로 규정함으로써 순응주의를 조장한다. 그 체제가 니체 사후에도 한 세기가 훌쩍 넘도록 지속되어서일까. 니체가 19세기 동시대인을 묘사한 대목은 오히려 지금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김빠진 술과 같은 자신에 진저리”나거나 “신문에 귀 기울이고 부유한 이웃을 곁눈질하고 권력, 돈, 여론의 급격한 부침에 의해 욕망에 자극을 받는” 사람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금도 낯설지 않다.
--- p.256

출판사 리뷰

영원회귀의 부활
: 삶이 영원히 되풀이되더라도 지금처럼 살 것인가?


니체의 매혹은 그의 철학이 시적 언어로 담겨서만도 아니고, 그의 삶이 고독과 광기로 이어져서만도 아니다. 저자는 주권자로서 우리의 삶을 창조적으로 열어가라는 그의 권고가 장엄한 우주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니체의 매혹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영원회귀 우주론을 이해할 때 삶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제시한 ‘극복인’이나 ‘주권적 개인’도 이러한 우주론에 근거하고 있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이러한 해석은 이 책을 다른 니체 관련 저작들 가운데서 독창성을 부여하는 요소이다.

영원회귀, 곧 ‘같은 것의 영원한 회귀’는 인간적 관점에 한해서는 허무주의를 낳지만 우주적 관점에서는 ‘생성의 영원한 회귀’이다. 저자는 니체에게 같은 것의 회귀는 단순한 반복의 문제가 아니라, ‘죽은 채로 사는 삶을 되풀이하겠느냐’는 물음을 통해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충격 요법’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생성이고 영원히 회귀한다면 그만큼 삶의 모든 순간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 우주과학의 최첨단 가설들이 영원회귀의 철학적 사유와 친화적이라며, 그에 따라 ‘모든 것이 영원히 되돌아오더라도 너는 생을 사랑할 것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은 한층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면서 니체의 현재성을 부여한다.

니체가 “휘몰아치며 밀려드는 힘들의 바다”로 표현한 힘에의 의지는 생성의 세계이며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긍정하고 힘에의 의지가 충만할 때 영원회귀는 하나의 놀이이자 축복이 될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대단하게 받아들이지만 “죽음은 아직도 축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하는 니체에게 죽음마저도 아름다운 축제가 될 수 있는 근거는 영원회귀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한편 저자는 영원회귀 우주론에서 제시한 ‘삶의 부활론’이 현대 우주과학의 성과와 맞물려 그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논의되기를 희망한다.

주권자의 철학
: 니체를 혁명적으로 읽는다는 것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니체 철학 읽기의 또 하나의 독창성은 ‘주권적 개인들이 창조적 삶’을 강조한 부분이다. 이를 사회철학과 실천론으로 담아내며 마르크스와 니체의 만남을 주선한다. 저자는 니체 철학은 마르크스가 깊숙이 들여다보지 못한 주권자의 심층을 다루었지만, 마르크스가 폭넓게 파헤친 자본의 이윤 추구와 그 문제점은 지나쳤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니체가 주권자 개개인의 창조적 삶으로서 자기 입법의 과제에 주목했고, 마르크스는 주권적 개인의 자기실현 조건으로서 자본주의 극복의 과제에 주목했다고 간추리고 있다.

이런 차이를 전제하면서도 이들의 공통점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민중 스스로의 통치가 마르크스에게는 ‘노동계급의 해방’으로, 니체에게는 ‘주권자의 자기 입법’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 두 철학자의 지향점은 같다는 것이다. 특히 니체가 “유럽의 노동인들은 하나의 계급으로서 자신들의 상태를 인간이 참을 수 없는 것으로 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탈인간적인 톱니바퀴와 메커니즘으로 인해, 노동인의 ‘비인격화’로 인해, ‘노동 분업’이라는 잘못된 경제학으로 인해 삶은 병이 든다”고 주장할 때 니체와 마르크스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 보인다는 점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이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근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서로 다른 지평에서 비판한 니체와 마르크스의 철학에서 새로운 사회의 전제 조건을 되새겨보기 위함이다. 니체가 비루한 삶을 양산한다고 비판한 19세기 유럽의 민주주의는 마르크스에겐 탐욕스러운 식성으로 무한정 몸집을 불리는 자본주의였다. 순종적 노예도덕을 종말인으로 질타한 니체 이후, 그가 경멸한 ‘비루한 사람’들의 삶은 20세기 내내 지구촌으로 빠르게 퍼졌으며 21세기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민주주의와 함께 확산되고 있는 ‘고귀한 충동’은 사람의 고귀함과 고귀한 삶을 구현하려는 주권자의 창조적 의지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며 니체의 희망이 담긴 글을 남겨두었다.

“진정, 이 대지는 치유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미 대지 주변에는 새로운 내음, 건강에 좋은 내음이 감돌고 있다. 거기에다 새로운 희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