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인문교양 (독서>책소개)/1.인문교양

들뢰즈와 칸트 차이와 이념의 철학 (2024)

동방박사님 2024. 9. 17. 07:31
728x90

책소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철학과에서 「들뢰즈 철학에서 시간의 종합과 영화」로 석사 학위를, 「들뢰즈와 칸트: 들뢰즈 철학의 형성에서 칸트 삼비판서의 역할」로 박사 학위를 받은 강선형 저자의 박사 논문을 책으로 엮었다.

질 들뢰즈는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철학자이자 가장 저명한 철학자 중 한 명이지만, 들뢰즈 사상에 대한 뿌리를 이해하고 그의 철학 내부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책은 국내에 많지 않다. 이 책은 들뢰즈 철학의 가장 중요한 테마인 ‘차이’라는 개념의 뿌리가 칸트의 철학에서 왔음을 사유하고, 그 속에서 들뢰즈 철학의 전반과 여러 개념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목차

일러두기 8

서문 철학의 초상화 10
철학이라는 연습 10 /칸트의 초상화 13 /개념의 변신 17

1장 『순수이성비판』의 체계 21

사실과 권리 23 / 『순수이성비판』이라는 법정 27 / 이성의 권리 29 /문제성 있는 이념 32 /이념의 규제적 사용 34 /마치 ~처럼 36

2장 『실천이성비판』의 체계 41

자유의 실재성 43 / 자유의 인식근거인 도덕법칙 47 / 우리에게 맨 처음 주어지는 도덕법칙 49 /이념들의 실재성: 영혼의 불사성 53 / 이념들의 실재성: 신 54 / 『실천이성비판』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 58 /플라톤과 칸트 60

3장 『판단력비판』의 체계 65

삼비판서의 종합적 관계 67 / 취미판단의 무관심성 70 / 취미판단의 보편성 73 / 취미판단의 합목적성 74 / 취미판단의 필연성 77 /목적론적 판단 82 /칸트의 숭고론 86 /숭고론이 알려주는 것 90

4장 칸트적 이념과 들뢰즈적 이념 97

문제성 있는 이념 99 /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102 / 차이로서의 이념 105 / 문제제기적 이념 107 / 이념의 세 계기들 110 / 이념의 세 계기들 사이의 관계 116 / 차이의 실재성 121

5장 칸트적 자아와 들뢰즈적 자아 125

칸트적 종합 127 / 나는 생각한다 133 / 내감의 역설 138 / 분열된 자아를 위한 코기토 141

6장 시간의 세 가지 종합 147

시간의 수동적 종합 149 /시간의 첫 번째 종합 152 /시간의 두 번째 종합 154 /시간의세 번째 종합 158

7장 칸트의 도식과 들뢰즈의 드라마화 163

칸트 철학에서 도식론의 지위 165 /도식론의 문제 169 /들뢰즈의 드라마화 172

8장 차이와 강도 177

지각의 예취들 179 / 강도적 크기 183 / 라이프니츠의 미세지각 185 / 라이프니츠와 칸트 190 / 차이와 강도 194 / 강도와 영원회귀 195 /강도의세 가지 특성 198

9장 이념의 현실화 205

이념의 현실화 207 / 초감성계와 감성계 사이의 심연 211 /범형성 214 /상상력의 개입 218

10장 칸트와 들뢰즈의 법(칙) 개념 221

‘텅 빈 형식’으로서의 법 개념 223 / 양심의 역설 226 / 우울증적 법 의식 230 / 분열증적 법 의식 233 / 성의 횡단성 235 / 판례법 239

11장 법과 시간 243

무죄 판결과 칸트 245 / 칸트에서 칸트로 249 / 칸트적 시간과 아리스토텔레스적 시간 252 / 칸트적 시간과 니체적 시간 258 / 행위의 조건인 반복 263 /시간의 해방 265

12장 『판단력비판』으로 삼비판서 다시 읽기 273

공통감각의 전제 275 / 공통감각의 문제 280 / 공통감각과 양식 283 / 역설감각para-sens 285 / 역설감각과 시간 286 / 칸트의 숭고론이알려주는 것 288 /사슬 풀린 작품 290

13장 들뢰즈의 초월적 경험론 295

『순수이성비판』의 상상력의 해방 297 / 『실천이성비판』의 상상력의 해방 301 / 능력들의 초재적 실행 303 / 기호론과 배움론 306 / 능력들의 해방 310 / 초월적 경험론 311 / 감성적인 것의 존재 315 / 감각의 논리 317 / 프루스트와 베이컨 320 / 이론에서는 옳을지 모르지만 실천에는 쓸모없다고 하는 속설 324

참고문헌 330
찾아보기 338

 

저자 소개 

저 : 강선형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들뢰즈 철학에서 시간의 종합과 영화』로 석사 학위를, 『들뢰즈와 칸트: 들뢰즈 철학의 형성에서 칸트 삼비판서의 역할』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국민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한국프랑스철학회 총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40회 영평상에서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책 속으로

들뢰즈의 칸트 연구는 바로 그러한 철학의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이었다. 시간을 들여 철학에 도달하는 작업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들뢰즈가 칸트를 자신의 고유한 철학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치는 건널목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들뢰즈는 칸트의 글에서 ‘문제’들을 발견하고, 늘 그 문제들과 함께 나아가기 때문이다.
--- p.11~12

들뢰즈에게 철학은 언제나 개념의 창조를 통해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지는 것이지, 고전적인 진리 개념처럼 참이나 진실을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철학적 개념은 하늘의 별처럼 그 자리에 있고 우리가 발견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p.13

철학은 이미 정해진 답을 위해서가 아니라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개념을 창조한다. … 들뢰즈에게 칸트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한 사람의 위대한 철학자이다. 칸트는 그 이전까지는 철학에서 그렇게까지 밀어붙여진 적이 없는 것들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그로부터 ‘개념의 경이로운 전복’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 p.15

들뢰즈는『차이와 반복』에서 차이difference를 칸트적 이념Idee과 동일시하고, 이념으로서의 차이가 현실화되는 크기로서 강도적 크기quantite intensive를 칸트의 ‘지각의 예취들’로부터 취하며, 반복repetition을 표현하는 ‘시간의 텅 빈 형식’ 역시 칸트의 감성 형식으로서의 시간 개념으로부터 읽어낸다.
--- p.17

칸트는 순수 이성의 실천적 영역을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경험의 대상일 수 없는 것들이 언제든 현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월권을 빼앗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들뢰즈는 바로 이 문제성 있는 이념의 객관적 실재성, 다시 말해 존재론적 실재성에 대해 증명하고자 한다.
--- p.100

이념은 그 자체 문제제기적인 것으로서 현상들과 유비적인 관계를 맺기 때문에 객관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념은 그 자체로서는 ‘미규정적인 것’으로 언제나 남아 있으면서, 지성 개념에 대해 통일성 속에서 그 자신의 사용의 최대치로 이끄는 ‘무한한 규정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있고, 또한 현상들과의 유비를 통해 ‘규정 가능한 것’이 된다.
--- p.109

우리가 ‘그것은 사자다’라고 말할 때 알려지지 않은 대상=X는 사자라는 규정을 부여받는다. 우리가 그것을 사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상=X가 시·공간적 규정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더 이상 어떤 것=X가 아닌 것이 될 때이다. 그때 사자는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자가 된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이는 우리가 대상=X라는 텅 빈 형식으로부터 규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결코 사자라고 말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는 이러한 어떤 대상이라는 개념, 대상=X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 의식의 통일이라는 초월적인 조건을 도출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대상을 ‘하나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의식의 형식적 통일성이 반드시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다시 나 자신의 통일적 의식과 나라는 대상적 자아를 분열시키는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 p.133

칸트가 능력들 사이의 일치와 조화를 전제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전달 가능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칸트가 능력들 사이의 일치와 조화를 말할 때 언제나 인식의 전달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들뢰즈는 칸트에 있어서 능력들 사이의 일치와 조화 문제를 ‘공통감각’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의 임의적이고 암묵적인 전제를 비판한다. 앞서 이야기한 바 있듯이 칸트는 공통감각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 것인지 그 원인에 대해서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전제한다.
--- p.283~284

시간이 경첩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은 운동의 종속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운동의 종속에서 해방된 시간의 텅 빈 형식은 차이들을 차이로서 돌아오게 하는 형식이다. 능력들이 경첩에서 빠져나간다는 것도 동일한 함축을 지닌다.
--- p.285

『판단력비판』에서 능력들은 한 지배적인 능력 아래에서 조화를 이루기에 앞서 근본적으로 불일치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들뢰즈는 이러한 능력들의 근본적인 불일치를 중심에 놓고 칸트의 철학을 종합적으로 다시 읽어낸다. 들뢰즈는 칸트가 마지막 비판서에서 보여주는 능력들의 관계 문제를 통해, 앞선 두 비판서에 임의적으로만 전제되어 있던 일치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 p.294

출판사 리뷰

‘필로버스 총서’ 세 번째 책 『들뢰즈와 칸트: 차이와 이념의 철학』은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제출한 저자의 박사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다시 쓴 것이다. 이 책은 칸트의 삼비판서 설명을 맨 앞에 배치하여 칸트의 핵심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동시에 이 부분을 빼고 보아도 들뢰즈를 통해 칸트를 배울 기회를 주기도 한다. 들뢰즈는 수많은 철학자를 연구해 왔지만 그중에서도 칸트는 들뢰즈의 핵심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제기를 해주는 철학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들뢰즈는 칸트가 문제제기했던 철학사의 문제와 더불어 더 나아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철학자가 되었음을 밝혀낸다.

이 책은 칸트의 삼비판서인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과 『판단력비판』을 순차적으로 따르면서 칸트와 들뢰즈의 개념들을 비교하여 밝히고, 마침내 들뢰즈의 철학이 이르는 곳이 어디인지 제시한다. 강선형 저자의 『들뢰즈와 칸트: 차이와 이념의 철학』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철학자이자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인 들뢰즈 사상의 핵심 근저에 있는 칸트 사상을 이해하는 동시에 들뢰즈를 이해할 기회를 제공한다.

*필로버스 총서는 에디스코가 필로버스(www.philoverse.com)와 함께 인문사회 분야 신진 연구자들의 출간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이다.

‘개념의 경이로운 전복’을 이뤄내는 철학자,
철학사에서 새로운 문제제기를 가능하게 한 철학자,
질 들뢰즈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입문서

들뢰즈의 철학은 ‘칸트 연습’에서 흘러나왔다!

칸트와 들뢰즈의 철학 연습


질 들뢰즈(1925~1995)에게 철학이란 참이나 거짓을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철학적 개념을 창조하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들뢰즈가 보기에 칸트는 위대한 철학자였다. 칸트는 그 이전까지는 철학에서 그렇게까지 밀어붙여진 적이 없는 것들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그로부터 개념의 경이로운 전복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는『차이와 반복』에서 차이difference를 칸트적 이념Idee과 동일시하고, 이념으로서의 차이가 현실화되는 크기로서 강도적 크기quantite intensive를 칸트의 ‘지각의 예취들’로부터 취하며, 반복repetition을 표현하는 ‘시간의 텅 빈 형식’ 역시 칸트의 감성 형식으로서의 시간 개념으로부터 읽어낸다.”(강선형, 『들뢰즈와 칸트』, 17쪽)

저자는 칸트의『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과 『판단력비판』을 순차적으로 따르면서, 칸트 철학의 부분 부분이 변신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들뢰즈와 함께 숨 쉬는 칸트를 그린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들뢰즈 철학의 인상만을 훑는 철학의 풍경화가 아닌 칸트 철학의 초상화를 그려내는 들뢰즈의 초상화를 동시에 그려낸다.

칸트의 이념, 문제제기적 개념으로 철학하기

들뢰즈가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문제제기를 위한 개념은 칸트의 ‘이념’이다. 이 이념은『순수이성비판』에서는 문제성 있는 개념으로 언급되다가『실천이성비판』에서 문제제기적인 것으로 마침내 실재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들뢰즈가 칸트의 이념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칸트는 순수 이성의 실천적 영역을 경험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경험의 대상일 수 없는 것들이 언제든 현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월권을 빼앗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들뢰즈는 바로 이 문제성 있는 이념의 객관적 실재성, 다시 말해 존재론적 실재성에 대해 증명하고자 한다.”(강선형, 『들뢰즈와 칸트』, 100쪽)

문제로서의 이념 자체만을 생각했을 때 문제들에 참과 거짓이 있을 수 없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주어진 해답을 가정하지 않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가 신이나 자유 등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의 세 가지 계기와 칸트의 자아, 우주, 신M

“이념은 그 자체 문제제기적인 것으로서 현상들과 유비적인 관계를 맺기 때문에 객관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념은 그 자체로서는 ‘미규정적인 것’으로 언제나 남아 있으면서, 지성 개념에 대해 통일성 속에서 그 자신의 사용의 최대치로 이끄는 ‘무한한 규정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있고, 또한 현상들과의 유비를 통해 ‘규정 가능한 것’이 된다.”(강선형, 『들뢰즈와 칸트』, 109쪽)

들뢰즈는 이념으로부터 세 가지 계기를 구분하여 사유하는데, 그것은 칸트가 자아, 우주, 신에 대해 각각 다른 이념들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다. 들뢰즈는 자아가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미규정적 계기로, 시간과 공간의 절대적 전체성으로서의 ‘우주’라는 이념은 규정 가능한 것으로, ‘신’ 이념은 모든 실재성을 총괄하는 신이라는 존재자로부터 모든 존재자들의 현존을 도출하게 함으로써 조건적인 지성 개념들을 그 사용의 최대치로 확장하게 하는 ‘규정성의 이상’을 구현한다고 본다. 칸트의 방식으로는 이념들의 정당화 조건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뿐이지만 칸트에 대한 들뢰즈의 사유는 이 이념들이 어떻게 발생했는지까지 알게 해준다.

칸트의 ‘어떤 것=X’와 들뢰즈의 ‘텅 빈 형식’

칸트는 우리에게 어떤 것이 표상으로 주어지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감성 형식에 따라 주어진 표상의 다양을 종합하고 그것의 일치를 재인식하는 종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칸트는 이 모든 것의 통일된 의식의 상관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어떤 것=X’라고 하는데, 들뢰즈는 어떤 것=X라는 것을 ‘텅 빈 형식’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그것은 사자다’라고 말할 때 알려지지 않은 대상=X는 사자라는 규정을 부여받는다. 우리가 그것을 사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상=X가 시 · 공간적 규정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더 이상 어떤 것=X가 아닌 것이 될 때이다. 그때 사자는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자가 된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이는 우리가 대상=X라는 텅 빈 형식으로부터 규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결코 사자라고 말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는 이러한 어떤 대상이라는 개념, 대상=X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 의식의 통일이라는 초월적인 조건을 도출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대상을 ‘하나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의식의 형식적 통일성이 반드시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다시 나 자신의 통일적 의식과 나라는 대상적 자아를 분열시키는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강선형, 『들뢰즈와 칸트』, 133쪽)

칸트는 시간과 공간이 운동이나 변화에 귀속되는 것에 반대했다. 칸트의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운동과 시간의 불가분리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공간상의 사물에 대한 경험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직관 형식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칸트 철학에서 시간은 시?공간상 사물들의 운동으로 채워지지 않은, 그 자체로 텅 빈 형식이다. 이 텅 빈 형식으로서의 법 개념은 들뢰즈의 카프카 해석에서 잘 드러난다.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이루어지는 법의 무조건성은 칸트의 도덕법칙과 동일하다. 그러나 들뢰즈가 보기에 내용 없는 텅 빈 형식이 강제되면 양심의 역설, 즉 더 큰 죄의식을 불러오게 된다. 법이 시간을 무한히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우리를 복종시키므로, 시간이 경첩으로부터 빠져나온다는 것은 우리를 죄와 속죄의 순간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의 공통감각과 들뢰즈의 역설감각

칸트는 논리적 공통감각이나 도덕적 공통감각을 감각의 차원으로 환원되지 않는 선험적 원리로 전제한다. 들뢰즈가 보기에 칸트는 능력들의 일치가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사유하지 않고 우리 모두에게 일치가 전제되어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칸트가 능력들 사이의 일치와 조화를 전제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전달 가능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칸트가 능력들 사이의 일치와 조화를 말할 때 언제나 인식의 전달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들뢰즈는 칸트에 있어서 능력들 사이의 일치와 조화 문제를 ‘공통감각’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의 임의적이고 암묵적인 전제를 비판한다. 앞서 이야기한 바 있듯이 칸트는 공통감각이 우리에게 어떻게 주어지는 것인지 그 원인에 대해서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전제한다.”(강선형, 『들뢰즈와 칸트』, 283-284쪽)

들뢰즈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능력들의 통일과 동일한 대상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방향을 의미하는 양식이 아니라,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역설감각만이 차이를 소멸시키지 않고 사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공통감각과 양식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통해 능력들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앞서 언급했던 시간에 대한 표현과 동일한 표현을 사용한다.

“각각의 능력은 경첩들에서 빠져나간다.”(DR, 184/314)

“시간이 경첩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은 운동의 종속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운동의 종속에서 해방된 시간의 텅 빈 형식은 차이들을 차이로서 돌아오게 하는 형식이다. 능력들이 경첩에서 빠져나간다는 것도 동일한 함축을 지닌다.”(강선형, 『들뢰즈와 칸트』, 285쪽)


칸트의 숭고론, 상상력과 이성의 불일치 관계

들뢰즈는 칸트의 숭고론이 보여주는 불일치로부터의 일치의 발생에 주목하며, 칸트의 삼비판서 전체에서 전제된 능력들 사이의 일치를 떠받치고 있는 근본이 바로 이러한 불일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상상력은 이성의 이념 아래에서 소극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무한한 것의 현시로 나아갈 수 있다. 상상력은 전체성의 이념에 다가갈 수 없으면서도 불가능성이라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현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상상력의 무한한 것에 대한 현시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아무것도 현시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상상력이 자연법칙에 따르는 우리의 능력으로서는 이념을 현시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지각하고, 이념과 일치하도록 자신을 고양시키고, 그 자신의 무제한적임을 느낌으로써 현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이렇게 상상력과 이성이 불일치의 관계로부터 일치의 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에서 그것이 발생적 일치를 표현하고 있음을 읽어낸다.

“『판단력비판』에서 능력들은 한 지배적인 능력 아래에서 조화를 이루기에 앞서 근본적으로 불일치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들뢰즈는 이러한 능력들의 근본적인 불일치를 중심에 놓고 칸트의 철학을 종합적으로 다시 읽어낸다. 들뢰즈는 칸트가 마지막 비판서에서 보여주는 능력들의 관계 문제를 통해, 앞선 두 비판서에 임의적으로만 전제되어 있던 일치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강선형, 『들뢰즈와 칸트』, 294쪽)